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對作篇

논형 論衡 · 왕충(王充) · 80년 무렵 · 단락 8 · 한자 2,342자 · 낭독 9.4분

「논형」 대작편 「對作篇」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후한 사람 왕충이 스스로 밝힌 이 책의 뜻은 넉 자다 — 「疾虛妄」, 헛되고 망령된 것을 미워한다. 하늘이 사람 일에 응해 재앙을 내린다느니, 죽으면 귀신이 되어 앙갚음한다느니, 날을 가려야 탈이 없다느니 하는 그 시대의 말을 하나하나 붙들고 따진다. 따지는 결이 남다르다. 어른의 말이라 하여 그냥 두지 않는다 — 공자에게 묻고(問孔), 맹자를 찌르고(刺孟), 한비를 그르다 한다(非韓). 하늘이 꾸짖어 재앙을 내린다는 말에는, 그러면 하늘은 어찌 임금 하나를 두고 온 나라에 가뭄을 내리느냐고 되묻는다. 「虛」 자가 붙은 아홉 편(書虛·變虛·異虛·感虛·福虛·禍虛·龍虛·雷虛·道虛)이 한 줄로 서서, 옛 책에 적힌 신통한 이야기를 차례로 붙든다. 「增」 자가 붙은 세 편(語增·儒增·藝增)은 말이 어떻게 부풀려지는가를 다룬다. 길험편에는 부여의 동명이 활을 잘 쏘아 왕이 죽이려 하자 남쪽으로 달아나 엄호수에 이르렀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 남은 동명 기록 가운데 가장 이른 꼴이다.

或問曰:「賢聖之空生,必有以用其心。上自孔、墨之黨,下至苟、孟之徒,教訓必作垂文。何也?」

어떤 이가 묻는다. 「어질고 성스러운 이가 헛되이 남에 반드시 그 마음을 쓸 바가 있다. 위로 공·묵의 무리로부터 아래로 순·맹의 무리에 이르기까지 가르침에 반드시 글을 드리워 지음은 어째서인가?」

對曰:聖人作經,藝者傳記,匡濟薄俗,驅民使之歸實誠也。案六略之書,萬三千篇,增善消惡,割截橫拓,驅役遊慢,期便道善,歸政道焉。孔子作《春秋》,周民弊也。故採求毫毛之善,貶纖介之惡,撥亂世,反諸正,人道浹,王道備,所以檢押靡薄之俗者,悉具密致。夫防決不備,有水溢之害;網解不結,有獸失之患。是故周道不弊,則民不文薄;民不文薄,《春秋》不作。楊、墨之學不亂〔儒〕義,則孟子之傳不造;韓國不小弱,法度不壞廢,則韓非之書不為;高祖不辨得天下,馬上之計未轉,則陸賈之語不奏;眾事不失實,凡論不壞亂,則桓譚之論不起。故夫賢聖之興文也,起事不空為,因因不妄作。作有益於化,化有補於正。故漢立蘭台之官,校審其書,以考其言。董仲舒作道術之書,頗言災異政治所失,書成文具,表在漢室。主父偃嫉之,誣奏其書。天子下仲舒於吏,當謂之下愚。仲舒當死,天子赦之。夫仲舒言災異之事,孝武猶不罪而尊其身,況所論無觸忌之言,核道實之事,收故實之語乎!故夫賢人之在世也,進則盡忠宣化,以明朝廷;退則稱論貶說,以覺失俗。俗也不知還,則立道輕為非;論者不追救,則迷亂不覺悟。

대답한다. 성인이 경을 짓고 재주 있는 이가 전기를 지음은 얇은 풍속을 바로잡고 건져 백성을 몰아 실다운 정성에 돌아가게 함이다. 살피건대 육략의 책 만삼천 편은 착함을 더하고 악을 없애며 가로 넓힘을 베고 끊으며 노닐고 게으른 이를 몰아 부려 곧 도의 착함을 기약하여 정사의 도에 돌린다. 공자가 「춘추」를 지음은 주나라 백성이 폐해서다. 그러므로 터럭만 한 착함을 채택하여 구하고 실오라기만 한 악을 깎아 어지러운 세상을 다스려 바름으로 돌리니 사람의 도가 두루 하고 왕의 도가 갖추어져 쓰러지고 얇은 풍속을 단속하는 것이 다 갖추어져 빽빽하고 촘촘하다. 무릇 둑이 터짐에 갖추지 않으면 물이 넘치는 해가 있고 그물이 풀려 매지 않으면 짐승이 달아나는 환난이 있다. 이 때문에 주나라 도가 폐하지 않았으면 백성이 겉치레하고 각박하지 않았을 것이요 백성이 겉치레하고 각박하지 않았으면 「춘추」가 지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양·묵의 배움이 유가의 뜻을 어지럽히지 않았으면 맹자의 전이 지어지지 않았을 것이요 한(韓)나라가 작고 약하지 않고 법도가 무너져 폐하지 않았으면 한비의 책이 되지 않았을 것이요 고조가 천하 얻음을 가리지 않고 말 위의 꾀가 아직 바뀌지 않았으면 육가의 말이 아뢰어지지 않았을 것이요 뭇일이 실상을 잃지 않고 무릇 논이 무너지고 어지럽지 않았으면 환담의 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무릇 어질고 성스러운 이가 글을 일으킴은 일을 일으킴에 헛되이 하지 않고 인함에 인하여 망령되이 짓지 않는다. 지음에 교화에 이익이 있고 교화에 바름에 보탬이 있다. 그러므로 한(漢)나라가 난대의 벼슬을 세워 그 책을 살피고 그 말을 살핀다. 동중서가 도술의 책을 지어 자못 재이가 정치의 잃은 바라 말하니 책이 이루어지고 글이 갖추어져 한나라 왕실에 드러났다. 주보언이 미워하여 그 책을 무고하여 아뢰었다. 천자가 중서를 아전에게 내리니 마땅히 하우라 하였다. 중서가 마땅히 죽을 것인데 천자가 용서하였다. 무릇 중서가 재이의 일을 말하여도 효무가 오히려 죄주지 않고 그 몸을 높였는데 하물며 논하는 바에 꺼림에 부딪치는 말이 없고 도의 실상의 일을 살피고 옛 실상의 말을 거둠이랴! 그러므로 무릇 어진 사람이 세상에 있어 나아가면 충성을 다하고 교화를 펴서 조정을 밝히고 물러나면 논을 일컫고 설을 깎아 잃은 풍속을 깨우친다. 풍속이 돌아올 줄 모르면 도를 세움에 가벼이 그름이 되고 논하는 이가 좇아 구하지 않으면 미혹하고 어지러워 깨닫지 못한다.

是故《論衡》之造也,起眾書並失實,虛妄之言勝真美也。故虛妄之語不黜,則華文不見息;華文放流,則實事不見用。故《論衡》者,所以銓輕重之言,立真偽之平,非苟調文飾辭,為奇偉之觀也。其本皆起人間有非,故盡思極心,以〔譏〕世俗。世俗之性,好奇怪之語,說虛妄之文。何則?實事不能快意,而華虛驚耳動心也。是故才能之士,好談論者,增益實事,為美盛之語;用筆墨者,造生空文,為虛妄之傳。聽者以為真然,說而不捨;覽者以為實事,傳而不絕。不絕,則文載竹帛之上;不捨,則誤入賢者之耳。至或南面稱師,賦姦偽之說;典城佩紫,讀虛妄之書。明辨然否,疾心傷之,安能不論?孟子傷楊、墨之議大奪儒家之論,引平直之說,褒是抑非,世人以為好辯。孟子曰:「予豈好辯哉?予不得已!」今吾不得已也!虛妄顯於真,實誠亂於偽,世人不悟,是非不定,紫失雜廁,瓦玉集糅,以情言之,豈吾心所能忍哉!衛驂乘者越職而呼車,惻怛發心,恐〔上〕之危也。夫論說者閔世憂俗,與衛驂乘者同一心矣。愁精神而幽魂魄。動胸中之靜氣,賊年損壽,無益於性,禍重於顏回,違負黃、老之教,非人所貪,不得已,故為《論衡》。文露而旨直,辭姦而情實。其《政務》言治民之道。《論衡》諸篇,實俗間之凡人所能見,與彼作者無以異也。若夫九《虛》、三《增》、《論死》、《訂鬼》,世俗所久惑,人所不能覺也。人君遭弊,改教於上;人臣愚惑,作論於下。〔下〕實得,則上教從矣。冀悟迷惑之心,使知虛實之分。實虛之分定,而華偽之文滅。華偽之文滅,則純誠之化日以孽矣。

이 때문에 「논형」의 지음은 뭇 책이 아울러 실상을 잃고 헛되고 망령된 말이 참되고 아름다움을 이김에서 일어났다. 그러므로 헛되고 망령된 말이 내쳐지지 않으면 화려한 글이 쉼을 보지 못하고 화려한 글이 놓여 흐르면 실다운 일이 쓰임을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논형」은 가볍고 무거운 말을 저울질하고 참과 거짓의 평을 세우는 것이지 구차히 글을 고르고 말을 꾸며 기이하고 위대한 볼거리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 근본이 다 사람 사이에 그름이 있음에서 일어나므로 생각을 다하고 마음을 극하여 세속을 나무란다. 세속의 성품은 기이하고 괴이한 말을 좋아하고 헛되고 망령된 글을 기뻐한다. 어째서인가. 실다운 일은 마음을 시원하게 할 수 없으나 화려하고 헛됨은 귀를 놀라게 하고 마음을 움직여서다. 이 때문에 재주와 능함의 선비로 담론을 좋아하는 이는 실다운 일을 더하여 아름답고 성한 말을 하고 붓과 먹을 쓰는 이는 빈 글을 지어내어 헛되고 망령된 전을 한다. 듣는 이가 참으로 그렇다 여겨 기뻐하며 버리지 않고 보는 이가 실다운 일이라 여겨 전하여 끊지 않는다. 끊지 않으면 글이 대와 비단 위에 실리고 버리지 않으면 그릇되이 어진 이의 귀에 든다. 혹 남면하여 스승이라 일컫고 간사하고 거짓된 설을 펴며 성을 맡고 자줏빛을 차고 헛되고 망령된 책을 읽음에 이른다. 그렇고 아님을 밝게 가리는 이가 마음을 아파하고 상하니 어찌 논하지 않을 수 있는가. 맹자가 양·묵의 의논이 유가의 논을 크게 빼앗음을 아파하여 평평하고 곧은 설을 끌어 옳음을 기리고 그름을 억누르니 세상 사람이 변론 좋아한다 여겼다. 맹자가 말하였다. 「내가 어찌 변론을 좋아하겠는가? 내가 마지못해서다!」 이제 나도 마지못해서다! 헛되고 망령됨이 참보다 드러나고 실다운 정성이 거짓에 어지러워져 세상 사람이 깨닫지 못하고 옳고 그름이 정해지지 않으며 자줏빛과 붉음이 섞여 있고 기와와 옥이 뒤섞이니 정으로 말하면 어찌 내 마음이 참을 수 있는 바이겠는가! 위나라 참승이 직책을 넘어 수레를 부름은 슬픈 마음이 일어나 위가 위태할까 두려워서다. 무릇 논설하는 이가 세상을 민망히 여기고 풍속을 근심함은 위나라 참승과 같은 한 마음이다. 정신을 근심하고 혼백을 그윽하게 하며 가슴속의 고요한 기운을 움직여 나이를 해치고 수명을 덜어 성품에 이익이 없고 화가 안회보다 무거우며 황·노의 가르침을 어기고 저버려 사람이 탐하는 바가 아니나 마지못해서이므로 「논형」을 지었다. 글은 드러나고 뜻은 곧으며 말은 간사하나 정은 실답다. 그 「정무」는 백성 다스리는 도를 말한다. 「논형」 여러 편은 실로 속간의 범인이 볼 수 있는 바라 저 짓는 이와 다를 것이 없다. 저 아홉 「허」와 세 「증」과 「논사」·「정귀」는 세속이 오래 홀린 바요 사람이 깨달을 수 없는 바다. 임금이 폐단을 만나면 위에서 가르침을 고치고 신하가 어리석고 홀리면 아래에서 논을 짓는다. 아래가 실로 얻으면 위의 가르침이 따른다. 미혹한 마음을 깨우쳐 헛되고 실다움의 나뉨을 알게 하기 바란다. 실다움과 헛됨의 나뉨이 정해지면 화려하고 거짓된 글이 없어진다. 화려하고 거짓된 글이 없어지면 순수하고 정성된 교화가 날로 불어난다.

或曰:「聖人作,賢者述。以賢而作者,非也。《論衡》、《政務》,可謂作者。」曰:〔非〕作也,亦非述也,論也。論者,述之次也。《五經》之興,可謂作矣。太史公《書》、劉子政《序》、班叔皮《傳》,可謂述矣。桓君山《新論》、鄒伯奇《檢論》,可謂論矣。今觀《論衡》、《政務》,桓、鄒之二論也,非所謂作也。造端更為,前始未有,若倉頡作書,奚仲作車是也。《易》言伏羲作八卦,前是未有八卦,伏羲造之,故曰作也。文王圖八,自演為六十四,故曰衍。謂《論衡》之成,猶六十四卦,而又非也。六十四卦以狀衍增益,其卦溢,其數多。今《論衡》就世俗之書,訂其真偽,辯其實虛,非造始更為,無本於前也。儒生就先師之說,詰而難之;文吏就獄之事,覆而考之,謂《論衡》為作,儒生、文吏謂作乎?

어떤 이는 말한다. 「성인이 짓고 어진 이가 기술한다. 어진 이로서 짓는 이는 그르다. 「논형」·「정무」는 짓는 이라 할 만하다.」 답한다. 지음이 아니요 또한 기술도 아니요 논이다. 논은 기술의 버금이다. 「오경」의 일어남은 지음이라 할 만하다. 태사공의 「서」와 유자정의 「서」와 반숙피의 「전」은 기술이라 할 만하다. 환군산의 「신론」과 추백기의 「검론」은 논이라 할 만하다. 이제 「논형」·「정무」를 보면 환·추의 두 논이지 이른바 지음이 아니다. 실마리를 만들어 다시 하여 앞서 처음 있지 않음은 창힐이 글자를 짓고 해중이 수레를 지음이 그것이다. 「역」에 복희가 팔괘를 지었다 말함은 앞서 팔괘가 있지 않았는데 복희가 만들었으므로 지음이라 한다. 문왕이 여덟을 그려 스스로 늘려 예순넷으로 하였으므로 연이라 한다. 「논형」의 이루어짐이 예순네 괘와 같다 하면 또한 그르다. 예순네 괘는 모양으로 늘려 더하여 그 괘가 넘치고 그 수가 많다. 이제 「논형」은 세속의 책에 나아가 그 참과 거짓을 바로잡고 그 실다움과 헛됨을 가리니 처음을 만들어 다시 함이 아니요 앞에 근본이 없음이 아니다. 유생이 선사의 설에 나아가 따져 힐난하고 문리가 옥사의 일에 나아가 뒤집어 살피는데 「논형」을 지음이라 하면 유생·문리를 지음이라 하는가.

上書奏記,陳列便宜,皆欲輔政。今作書者,猶〔上〕書奏記,說發胸臆,文成手中,其實一也。夫上書謂之奏記,轉易其名謂之書。建初孟年,中州頗歉,潁川、汝南民流四散,聖主憂懷,詔書數至。《論衡》之人,奏記郡守,宜禁奢侈,以備睏乏。言不納用,退題記草,名曰《備乏》。酒縻五穀,生起盜賊,沉湎飲酒,盜賊不絕,奏記郡守,禁民酒。退題記草,名曰《禁酒》。由此言之,夫作書者,上書奏記之文也。記謂之造作上書,上書奏記是作也?

글을 올리고 기를 아룀은 편의를 벌여 다 정사를 도우려 함이다. 이제 책 짓는 이는 글을 올리고 기를 아룀과 같아 설이 가슴에서 나와 글이 손안에서 이루어지니 그 실은 하나다. 무릇 글을 올림을 주기라 하고 그 이름을 바꾸어 책이라 한다. 건초 첫 해에 중주가 자못 흉년 들어 영천·여남 백성이 사방으로 흘러 흩어지니 성주가 근심하여 조서가 자주 이르렀다. 「논형」의 사람이 군수에게 기를 아뢰어 마땅히 사치를 금하여 곤함과 모자람에 대비하라 하였다. 말이 받아 쓰이지 않아 물러나 기의 초고에 제목하여 「비핍」이라 이름하였다. 술이 오곡을 허비하여 도적을 일으키고 술에 빠져 마시니 도적이 끊이지 않아 군수에게 기를 아뢰어 백성의 술을 금하라 하였다. 물러나 기의 초고에 제목하여 「금주」라 이름하였다. 이로써 말하면 무릇 책 짓는 이는 글을 올리고 기를 아뢰는 글이다. 기를 지음이라 하면 글을 올리고 기를 아룀이 지음인가.

晉之乘,而楚之檮杌,魯之春秋,人事各不同也。《易》之乾坤,《春秋》之「元」,楊氏之「玄」,卜氣號不均也。由此言之,唐林之奏,谷永之章,《論衡》、《政務》,同一趨也。漢家極筆墨之林,書論之造,漢家尤多。陽成子張作「樂」,揚子雲造「玄」,二經發於臺下,讀於闕掖,卓絕驚耳,不述而作,材疑聖人,而漢朝不譏。況《論衡》細說微論,解釋世俗之疑,辯照是非之理,使後進曉見然否之分,恐其廢失,著之簡牘,祖經章句之說,先師奇說之類也。其言伸繩,彈割俗傳。俗傳蔽惑,偽書放流,賢通之人,疾之無已。孔子曰:「詩人疾之不能默,丘疾之不能伏。」是以論也。玉亂於石,人不能別。或若楚之王尹以玉為石,卒使卞和受刖足之誅。是反為非,虛轉為實,安能不言?俗傳既過,俗書之偽。若夫鄒衍謂今天下為一州,四海之外有若天下者九州。《淮南書》言共工與顓頊爭為天子,不勝,怒而觸不周之山,使天柱折,地維絕。堯時十日並出,堯上射九日;魯陽戰而日暮,援戈麾日,日為卻還。世間書傳,多若等類,浮妄虛偽,沒奪正是。心漬湧,筆手擾,安能不論?論則考之以心,效之以事,浮虛之事,輒立證驗。若太史公之書,據許由不隱,燕太子丹不使日再中。讀見之者,莫不稱善。

진나라의 「승」과 초나라의 「도올」과 노나라의 「춘추」는 사람의 일이 저마다 같지 않다. 「역」의 건곤과 「춘추」의 「원」과 양씨의 「현」은 점치는 기운의 이름이 고르지 않다. 이로써 말하면 당림의 주와 곡영의 장과 「논형」·「정무」는 같은 한 취지다. 한나라 집안은 붓과 먹의 숲을 다하여 책과 논의 지음이 한나라 집안에 더욱 많다. 양성자장이 「악」을 짓고 양자운이 「현」을 지으니 두 경이 대 아래에서 발하여 궐 곁에서 읽혀 뛰어나 귀를 놀라게 하고 기술하지 않고 지어 재주가 성인에 의심되나 한나라 조정이 나무라지 않았다. 하물며 「논형」의 가는 설과 작은 논은 세속의 의심을 풀고 옳고 그름의 이치를 가려 비추어 뒤에 나아가는 이가 그렇고 아님의 나뉨을 깨달아 보게 하니 그 폐하여 잃을까 두려워 대와 서찰에 지음은 경의 장구의 설을 조상으로 삼고 선사의 기이한 설의 무리다. 그 말은 먹줄을 펴서 속된 전함을 튕기고 벤다. 속된 전함이 가리고 홀리며 거짓된 책이 놓여 흐르니 어질고 통한 사람이 미워함이 그침이 없다. 공자가 말하였다. 「시인이 미워하여 잠잠할 수 없고 나 구(丘)는 미워하여 엎드릴 수 없다.」 이 때문에 논한다. 옥이 돌에 어지러워지면 사람이 가릴 수 없다. 혹 초나라의 왕과 윤이 옥을 돌로 여겨 마침내 변화가 발 잘리는 벌을 받게 함과 같다. 옳음이 도리어 그름이 되고 헛됨이 실다움으로 바뀌니 어찌 말하지 않을 수 있는가. 속된 전함이 이미 지나치고 속된 책이 거짓이다. 저 추연이 지금 천하를 한 주라 하고 사해 밖에 천하 같은 것 아홉 주가 있다 함과 같다. 「회남서」에 공공이 전욱과 천자 되기를 다투다가 이기지 못하여 노하여 부주산을 받아 하늘 기둥이 꺾이고 땅 벼리가 끊어지게 하였다 말한다. 요 때 열 해가 아울러 나와 요가 아홉 해를 쏘았고 노양이 싸우다 해가 저물자 창을 들어 해를 향해 휘두르니 해가 되돌아왔다 한다. 세간의 책과 전에 흔히 이런 무리 같은 것이 뜨고 망령되고 헛되고 거짓되어 바르고 옳음을 잠기게 하고 빼앗는다. 마음이 젖어 솟구치고 붓과 손이 흔들리니 어찌 논하지 않을 수 있는가. 논하면 마음으로 살피고 일로 증험하여 뜨고 헛된 일에 문득 증험을 세운다. 태사공의 책 같은 것은 허유가 숨지 않았고 연 태자 단이 해를 다시 한가운데 있게 하지 못하였다 함에 근거하니 읽고 보는 이가 착하다 일컫지 않음이 없다.

《政務》為郡國守相、縣邑令長陳通政事所當尚務,欲令全民立化,奉稱國恩。《論衡》九《虛》三《增》,所以使浴務實誠也;《論死》、《訂鬼》,所以使浴薄喪葬也。孔子徑庭麗級,被棺斂者不省。劉子政上薄葬,奉送藏者不約。光武皇帝草車茅馬,為明器者不姦。何世書俗言不載?信死之語汶濁之也。今著《論死》及《死偽》之篇,明死無知,不能為鬼,冀觀覽者將一曉解約葬,更為節儉。斯蓋《論衡》有益之驗也。言苟有益,雖作何害?倉頡之書,世以紀事;奚仲之車,世以自載;伯餘之衣,以辟寒暑;桀之瓦屋,以辟風雨。夫不論其利害,而徒譏其造作,是則倉頡之徒有非,《世本》十五家皆受責也。故夫有益也,雖作無害也。雖無害,何補?

「정무」는 군국의 수와 상과 현읍의 영과 장을 위해 정사에 마땅히 숭상하고 힘쓸 바를 펴 통하게 하여 온 백성이 교화를 세워 나라의 은혜를 받들어 일컫게 하려 한다. 「논형」의 아홉 「허」와 세 「증」은 풍속이 실다운 정성에 힘쓰게 하는 까닭이요 「논사」·「정귀」는 풍속이 장사를 간소하게 하도록 하는 까닭이다. 공자가 뜰을 가로질러 층계를 밟았으나 옥으로 염하는 이가 살피지 않았다. 유자정이 얇은 장사를 올렸으나 받들어 보내고 감추는 이가 줄이지 않았다. 광무황제가 풀 수레와 띠 말로 하였으나 명기를 만드는 이가 간사하지 않았다. 어느 세상의 책과 속된 말이 싣지 않았는가. 죽음을 믿는 말이 흐리게 한 것이다. 이제 「논사」와 「사위」의 편을 지어 죽어 앎이 없어 귀신이 될 수 없음을 밝히니 보고 읽는 이가 장차 한 번 깨달아 장사를 줄이고 다시 절약하고 검소하게 하기 바란다. 이것이 아마 「논형」이 이익 있음의 증험이다. 말에 진실로 이익이 있으면 비록 짓는들 무슨 해인가. 창힐의 글자는 세상이 일을 기록하고 해중의 수레는 세상이 스스로 싣고 백여의 옷은 추위와 더위를 피하고 걸의 기와집은 바람과 비를 피한다. 무릇 그 이해를 논하지 않고 한갓 그 만들어 지음을 나무라면 이는 창힐의 무리에게 그름이 있고 「세본」의 열다섯 집이 다 책망을 받음이다. 그러므로 무릇 이익이 있으면 비록 지어도 해가 없다. 비록 해가 없어도 무슨 보탬인가.

古有命使採爵,欲觀風俗知下情也。《詩》作民間,聖王可雲「汝民也,何發作」,囚罪其身,歿滅其詩乎?今已不然,故《詩》傳〔至〕今。《論衡》、《政務》,其猶《詩》也,冀望見採,而雲有過。斯蓋《論衡》之書所以興也。且凡造作之過,意其言妄而謗誹也。《論衡》實事疾妄,《齊世》、《宣漢》、《恢國》、《驗符》、《盛褒》、《須頌》之言,無誹謗之辭。造作如此,可以免於罪矣。

옛날에 명하여 사자를 시켜 시를 채택함은 풍속을 보고 아래 정을 알려 함이다. 「시」가 민간에서 지어졌는데 성왕이 「너는 백성인데 어찌 지어 만드는가」 말하고 그 몸을 가두어 죄주고 그 시를 없애 멸하였겠는가. 이제 이미 그렇지 않으므로 「시」가 지금에 전해진다. 「논형」·「정무」는 그 「시」와 같아 채택되기 바라는데 허물이 있다 말한다. 이것이 아마 「논형」의 책이 일어난 까닭이다. 또 무릇 만들어 짓는 허물은 그 말이 망령되고 비방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논형」은 일을 실답게 하고 망령됨을 미워하니 「제세」·「선한」·「회국」·「험부」·「성포」·「수송」의 말에 비방하는 말이 없다. 만들어 지음이 이 같으면 죄를 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