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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紀篇

논형 論衡 · 왕충(王充) · 80년 무렵 · 단락 18 · 한자 4,740자 · 낭독 19.0분

「논형」 자기편 「自紀篇」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후한 사람 왕충이 스스로 밝힌 이 책의 뜻은 넉 자다 — 「疾虛妄」, 헛되고 망령된 것을 미워한다. 하늘이 사람 일에 응해 재앙을 내린다느니, 죽으면 귀신이 되어 앙갚음한다느니, 날을 가려야 탈이 없다느니 하는 그 시대의 말을 하나하나 붙들고 따진다. 따지는 결이 남다르다. 어른의 말이라 하여 그냥 두지 않는다 — 공자에게 묻고(問孔), 맹자를 찌르고(刺孟), 한비를 그르다 한다(非韓). 하늘이 꾸짖어 재앙을 내린다는 말에는, 그러면 하늘은 어찌 임금 하나를 두고 온 나라에 가뭄을 내리느냐고 되묻는다. 「虛」 자가 붙은 아홉 편(書虛·變虛·異虛·感虛·福虛·禍虛·龍虛·雷虛·道虛)이 한 줄로 서서, 옛 책에 적힌 신통한 이야기를 차례로 붙든다. 「增」 자가 붙은 세 편(語增·儒增·藝增)은 말이 어떻게 부풀려지는가를 다룬다. 길험편에는 부여의 동명이 활을 잘 쏘아 왕이 죽이려 하자 남쪽으로 달아나 엄호수에 이르렀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 남은 동명 기록 가운데 가장 이른 꼴이다.

王充者,會稽上虞人也,字仲任。其先本魏郡元城一姓。孫一幾世嘗從軍有功,封會稽陽亭。一歲倉卒國絕,因家焉。以農桑為業。世祖勇任氣,卒咸不揆於人。歲兇,橫道傷殺,怨仇眾多。會世擾亂,恐為怨仇所擒,祖父泛舉家簷載,就安會稽,留錢唐縣,以賈販為事。生子二人,長曰蒙,少曰誦,誦即充父。祖世任氣,至蒙、誦滋甚。故蒙、誦在錢唐,勇勢凌人。末復與豪家丁伯等結怨,舉家徙處上虞。

왕충은 회계 상우 사람이니 자는 중임이다. 그 선조는 본디 위군 원성의 한 성이다. 손 아무개 몇 대가 일찍이 종군하여 공이 있어 회계 양정에 봉해졌다. 한 해에 창졸히 나라가 끊겨 인하여 집을 삼았다. 농사와 뽕 치기를 업으로 삼았다. 세조가 용맹하고 기운에 맡겨 마침내 다 남에게 헤아려지지 않았다. 해가 흉하면 길을 가로막고 상하고 죽여 원수가 많았다. 마침 세상이 어지러워 원수에게 잡힐까 두려워 조부 범이 온 집을 짐 실어 회계로 편안히 나아가 전당현에 머물러 장사를 일로 삼았다. 아들 둘을 낳으니 맏은 몽이요 아우는 송이니 송이 곧 충의 아비다. 조상 대대로 기운에 맡겼는데 몽·송에 이르러 더욱 심하였다. 그러므로 몽·송이 전당에 있어 용맹한 세로 남을 능멸하였다. 끝에 다시 호족 정백 등과 원한을 맺어 온 집이 상우로 옮겨 처하였다.

建武三年,充生。為小兒,與儕倫遨戲,不好狎侮。儕倫好掩雀、捕蟬、戲錢、林熙,充獨不肯。誦奇之。六歲教書,恭願仁順,禮敬具備,矜莊寂寥,有臣人之志。父未嘗笞,母未嘗非,閭里未嘗讓。八歲出於書館,書館小僮百人以上,皆以過失袒謫,或以書醜得鞭。充書日進,又無過失。手書既成,辭師受《論語》、《尚書》,日諷千字。經明德就,謝師而專門,援筆而眾奇。所讀文書,亦日博多。才高而不尚苟作,口辯而不好談對,非其人,終日之言。其論說始若詭於眾,極聽其終,眾乃是之。以筆著文,亦如此焉;操行事上,亦如此焉。在縣位至掾功曹,在都尉府位亦掾功曹,在太守為列掾五官功曹行事,入州為從事。不好徼名於世,不為利害見將。常言人長,希言人短。專薦未達,解已進者過。及所不善,亦弗譽;有過不解,亦弗復陷。能釋人之不大過,亦悲夫人之細非。好自周,不肯自彰,勉以行操為基,恥以材能為名。眾會乎坐,不問不言,賜見君將,不及不對。在鄉里,慕蘧伯玉之節;在朝廷,貪史子魚之行。見污傷,不肯自明;位不進,亦不懷恨。貧無一畝庇身,志佚於王公;賤無鬥石之秩,意若食萬鍾。得官不欣,失位不恨。處逸樂而慾不放,居貧苦而志不倦。淫讀古文,甘聞異言。世書俗說,多所不安,幽處獨居,考論實虛。

건무 삼년에 충이 났다. 어린아이가 되어 또래와 노닐며 희롱하고 업신여기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또래가 참새 잡고 매미 잡고 돈 놀이하고 나무 타기를 좋아하였으나 충은 홀로 하려 하지 않았다. 송이 기이하게 여겼다. 여섯 살에 글을 가르치니 공손하고 어질고 순하여 예와 공경이 갖추어지고 씩씩하고 고요하여 신하 되는 뜻이 있었다. 아비가 일찍이 매질하지 않고 어미가 일찍이 나무라지 않고 마을이 일찍이 꾸짖지 않았다. 여덟 살에 서관에 나가니 서관의 작은 아이가 백 사람 이상인데 다 허물로 옷 벗겨 꾸짖음을 당하거나 혹 글씨가 못나 매를 맞았다. 충은 글씨가 날로 나아가고 또 허물이 없었다. 손 글씨가 이미 이루어지자 스승에게 하직하고 「논어」·「상서」를 받아 날마다 천 자를 외웠다. 경이 밝고 덕이 이루어지자 스승을 하직하고 한 분야를 파고들어 붓을 잡으니 뭇사람이 기이하게 여겼다. 읽는 바 문서도 날로 넓고 많았다. 재주가 높으나 구차히 짓기를 숭상하지 않았고 입이 변론하나 담론과 대답을 좋아하지 않아 그 사람이 아니면 종일 말하지 않았다. 그 논설이 처음에는 뭇사람과 어긋나는 듯하나 그 끝을 끝까지 들으면 뭇사람이 곧 옳다 하였다. 붓으로 글을 지음도 또한 이와 같았고 지조와 행실로 위를 섬김도 또한 이와 같았다. 현에서 자리가 연 공조에 이르고 도위부에서 자리가 또한 연 공조요 태수에게서 열연 오관 공조 행사가 되고 주에 들어 종사가 되었다. 세상에 이름을 구하기 좋아하지 않고 이해로 장수에게 보이지 않았다. 늘 남의 장점을 말하고 남의 단점을 드물게 말하였다. 오로지 아직 벼슬에 오르지 못한 이를 천거하고, 이미 오른 이의 허물은 풀어 주었다. 착하지 않은 바에 미쳐서도 또한 기리지 않았고 허물이 있어 풀지 않아도 또한 다시 모함하지 않았다. 남의 크지 않은 허물을 풀 수 있고 또한 남의 가는 그름을 슬퍼하였다. 스스로 두루 하기 좋아하고 스스로 드러내려 하지 않아 행실과 지조로 터를 삼기 힘쓰고 재주와 능함으로 이름함을 부끄러워하였다. 뭇사람이 자리에 모이면 묻지 않으면 말하지 않고 임금과 장수에게 뵈어도 미치지 않으면 대답하지 않았다. 고을에 있어 거백옥의 절개를 사모하고 조정에 있어 사자어의 행실을 탐하였다. 더럽혀지고 상함을 보아도 스스로 밝히려 하지 않고 자리가 나아가지 않아도 또한 한을 품지 않았다. 가난하여 몸을 가릴 한 이랑도 없었으나 뜻은 왕공보다 편안하였고 천하여 한 말 한 섬의 녹도 없었으나 뜻은 만종을 먹는 듯하였다. 벼슬을 얻어도 기뻐하지 않고 자리를 잃어도 한하지 않았다. 편안하고 즐거움에 처하여도 바람이 놓이지 않고 가난하고 괴로움에 살아도 뜻이 게으르지 않았다. 옛글을 흠뻑 읽고 다른 말 듣기를 달게 여겼다. 세상의 책과 속된 설에 편안하지 않은 바가 많아 그윽한 데 처하여 홀로 살며 실다움과 헛됨을 살펴 논하였다.

充為人清重,遊必擇友,不好苟交。所友位雖微卑,年雖幼稚,行苟離俗,必與之友。好傑友雅徒,不氾結俗材。俗材因其微過,蜚條陷之,然終不自明,亦不非怨其人。或曰:「有良材奇文,無罪見陷,胡不自陳?羊勝之徒,摩口膏舌;鄒陽自明,入獄復出。苟有全完之行,不宜為人所缺;既耐勉自伸,不宜為人所屈。」答曰:不清不見塵,不高不見危,不廣不見削,不盈不見虧。士茲多口,為人所陷,蓋亦其宜。好進故自明,憎退故自陳。吾無好憎,故默無言。羊勝為讒,或使之也;鄒陽得免,或拔之也。孔子稱命,孟子言天,吉凶安危,不在於人。昔人見之,故歸之於命,委之於時,浩然恬忽,無所怨尤。福至不謂己所得,禍到不謂己所為。故時進意不為豐,時退志不為虧。不嫌虧以求盈,不違險以趨平,不鬻智以乾祿,不辭爵以吊名,不貪進以自明,不惡退以怨人。同安危而齊死生,鈞吉凶而一敗成,遭十羊勝,謂之無傷。動歸於天,故不自明。

충은 사람됨이 맑고 무거워 노닒에 반드시 벗을 가리고 구차한 사귐을 좋아하지 않았다. 벗한 이가 자리가 비록 미천하고 나이가 비록 어려도 행실이 진실로 풍속을 떠나면 반드시 더불어 벗하였다. 뛰어난 벗과 우아한 무리를 좋아하고 속된 재주와 널리 맺지 않았다. 속된 재주가 그 작은 허물로 인하여 거짓 고발장을 띄워 모함하였으나 끝내 스스로 밝히지 않고 또한 그 사람을 그르다 하고 원망하지 않았다. 어떤 이는 말한다. 「좋은 재주와 기이한 글이 있는데 죄 없이 모함을 당하고 어찌 스스로 펴지 않는가. 양승의 무리는 입을 갈고 혀에 기름칠하였고 추양은 스스로 밝혀 옥에 들었다가 다시 나왔다. 진실로 온전한 행실이 있으면 남에게 흠 잡힘이 마땅하지 않고 이미 힘써 스스로 펼 수 있으면 남에게 굽힘이 마땅하지 않다.」 답한다. 맑지 않으면 먼지가 보이지 않고 높지 않으면 위태함이 보이지 않고 넓지 않으면 깎임이 보이지 않고 차지 않으면 이지러짐이 보이지 않는다. 선비에게 입이 많으면 남에게 모함당함이 아마 또한 그 마땅함이다. 나아가기를 좋아하므로 스스로 밝히고 물러남을 미워하므로 스스로 편다. 나는 좋아함과 미워함이 없으므로 잠잠히 말이 없다. 양승이 참소함은 혹 시킨 것이요 추양이 면함을 얻음은 혹 뽑아 준 것이다. 공자가 명을 일컫고 맹자가 하늘을 말하니 길흉과 편안하고 위태함은 사람에게 있지 않다. 옛사람이 이를 보았으므로 명에 돌리고 때에 맡겨 넓고 담담하여 원망하고 탓하는 바가 없었다. 복이 이르러도 제가 얻은 바라 하지 않고 화가 이르러도 제가 한 바라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때가 나아가도 뜻이 넉넉하다 하지 않고 때가 물러나도 뜻이 이지러졌다 하지 않는다. 이지러짐을 혐의하여 참을 구하지 않고 험함을 피하여 평평함으로 달리지 않고 앎을 팔아 녹을 구하지 않고 작위를 사양하여 이름을 낚지 않고 나아감을 탐하여 스스로 밝히지 않고 물러남을 미워하여 남을 원망하지 않는다. 편안함과 위태함을 같이하고 죽음과 삶을 가지런히 하며 길흉을 고르게 하고 패함과 이룸을 하나로 하니 열 양승을 만나도 상함이 없다 한다. 움직임을 하늘에 돌리므로 스스로 밝히지 않는다.

充性恬淡,不貪富貴。為上所知,拔擢越次,不慕高官。不為上所知,貶黜抑屈,不恚下位。比為縣吏,無所擇避。或曰:「心難而行易,好友同志,仕不擇地,濁操傷行,世何效放?」答曰:可效放者,莫過孔子。孔子之仕,無所避矣。為乘田委吏,無於邑之心;為司空相國,無說豫之色。舜耕歷山,若終不免;及受堯禪,若卒自得。憂德之不豐,不患爵之不尊;恥名之不白,不惡位之不遷。垂棘與瓦同櫝,明月與礫同囊,苟有二寶之質,不害為世所同。世能知善,雖賤猶顯;不能別白,雖尊猶辱。處卑與尊齊操,位賤與貴比德,斯可矣。

충은 성품이 담담하여 부귀를 탐하지 않았다. 위에게 알려져 차례를 넘어 뽑혀도 높은 벼슬을 사모하지 않았다. 위에게 알려지지 않아 깎이고 내쳐지고 눌리고 굽혀도 낮은 자리를 성내지 않았다. 잇달아 현의 아전이 되었으나 가리고 피하는 바가 없었다. 어떤 이는 말한다. 「마음은 어렵고 행실은 쉬우며 벗은 뜻을 같이하는 이를 좋아하면서 벼슬에 땅을 가리지 않으니 흐린 지조가 행실을 상하는데 세상이 어찌 본받겠는가?」 답한다. 본받을 만한 이는 공자보다 나은 이가 없다. 공자의 벼슬은 피한 바가 없었다. 승전과 위리가 되어도 답답한 마음이 없었고 사공과 상국이 되어도 기뻐하는 빛이 없었다. 순이 역산에서 밭 갈 때 끝내 면하지 못할 듯하였고 요의 선양을 받음에 미쳐서는 마침내 절로 얻은 듯하였다. 덕이 넉넉하지 않음을 근심하고 작위가 높지 않음을 근심하지 않으며 이름이 밝혀지지 않음을 부끄러워하고 자리가 옮기지 않음을 미워하지 않는다. 수극과 기와가 궤를 같이하고 명월과 자갈이 자루를 같이하여도 진실로 두 보배의 바탕이 있으면 세상에 같이 여겨짐이 해롭지 않다. 세상이 착함을 알 수 있으면 비록 천하여도 오히려 드러나고 흑백을 가릴 수 없으면 비록 높아도 오히려 욕된다. 낮음에 처하여 높음과 지조를 가지런히 하고 자리가 천하여도 귀함과 덕을 견주면 이것이 옳다.

俗性貪進忽退,收成棄敗。充升擢在位之時,眾人蟻附;廢退窮居,舊故叛去。志俗人之寡恩,故閒居作《譏俗》、《節義》十二篇。冀俗人觀書而自覺,故直露其文,集以俗言。或譴謂之淺。答曰:以聖典而示小雅,以雅言而說丘野,不得所曉,無不逆者。故蘇秦精說於趙,而李兌不說;商鞅以王說秦,而孝公不用。夫不得心意所欲,雖盡堯、舜之言,猶飲牛以酒,啖馬以脯也。故鴻麗深懿之言,關於大而不通於小。不得已而強聽,入胸者少。孔子失馬於野,野人閉不與,子貢妙稱而怒,馬圄諧說而懿。俗曉〔形〕露之言,勉以深鴻之文,猶和神仙之藥以治鼽咳,制貂狐之裘以取薪菜也。且禮有所不待,事有所不須。斷決知辜,不必皋陶;調和葵韭,不俟狄牙;閭巷之樂,不用《韶》、《武》;裡母之祀,不待太牢。既有不須,而又不宜。牛刀割雞,舒戟採葵,鈇鉞裁箸,盆盎酌卮,大小失宜,善之者希。何以為辯?喻深以淺。何以為智?喻難以易。賢聖銓材之所宜,故文能為深淺之差。

속된 성품은 나아감을 탐하고 물러남을 소홀히 하며 이룸을 거두고 패함을 버린다. 충이 뽑혀 올라 자리에 있을 때 뭇사람이 개미처럼 붙었고 폐하여 물러나 궁하게 살자 옛 벗이 배반하여 갔다. 속인의 은혜 적음에 뜻을 두었으므로 한가히 살며 「기속」·「절의」 열두 편을 지었다. 속인이 책을 보고 스스로 깨닫기 바랐으므로 바로 그 글을 드러내고 속된 말로 모았다. 어떤 이가 꾸짖어 얕다 하였다. 답한다. 성스러운 경전으로 소아에게 보이고 우아한 말로 시골에 설명하면 깨닫는 바를 얻지 못하여 거스르지 않는 이가 없다. 그러므로 소진이 조나라에 정밀히 설명하였으나 이태가 기뻐하지 않았고 상앙이 왕도로 진나라에 설명하였으나 효공이 쓰지 않았다. 무릇 마음과 뜻이 바라는 바를 얻지 못하면 비록 요·순의 말을 다하여도 오히려 소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말에게 포를 먹임이다. 그러므로 크고 곱고 깊고 아름다운 말은 큰 것에 관계하고 작은 것에 통하지 않는다. 마지못해 억지로 들어도 가슴에 드는 것이 적다. 공자가 들에서 말을 잃어 들사람이 닫고 주지 않으니 자공이 묘하게 일컬어도 노하였고 마부가 우스개로 설명하니 기뻐하였다. 속인이 드러난 말을 깨닫는데 깊고 큰 글로 힘쓰게 함은 신선의 약을 섞어 코 막힘과 기침을 다스리고 담비와 여우의 갖옷을 만들어 땔나무와 나물을 취함과 같다. 또 예에 기다리지 않는 바가 있고 일에 기다리지 않는 바가 있다. 죄를 결단하여 앎에 반드시 고요가 아니어도 되고 아욱과 부추를 조화함에 적아를 기다리지 않고 골목의 음악에 「소」·「무」를 쓰지 않고 마을 어미의 제사에 태뢰를 기다리지 않는다. 이미 기다리지 않음이 있고 또 마땅하지 않음이 있다. 소 잡는 칼로 닭을 베고 창을 펴서 아욱을 캐고 도끼로 젓가락을 마르고 동이로 잔에 따르면 크고 작음이 마땅함을 잃어 착하다 하는 이가 드물다. 무엇으로 변론을 삼는가. 깊은 것을 얕은 것으로 비유한다. 무엇으로 슬기를 삼는가. 어려운 것을 쉬운 것으로 비유한다. 어질고 성스러운 이가 재주를 저울질하여 마땅한 바로 하므로 글이 깊고 얕음의 차등을 할 수 있다.

充既疾俗情,作《譏俗》之書;又閔人君之政,徒欲治人,不得其宜,不曉其務,愁精苦思,不睹所趨,故作《政務》之書。又傷偽書俗文多不實誠,故為《論衡》之書。夫賢聖歿而大義分,蹉跎殊趨,各自開門。通人觀覽,不能釘銓。遙聞傳授,筆寫耳取,在百歲之前。曆日彌久,以為昔古之事,所言近是,信之入骨,不可自解,故作《實論》。其文盛,其辯爭,浮華虛偽之語,莫不澄定。沒華虛之文,存敦龐之樸,撥流失之風,反宓戲之俗。

충이 이미 속된 정을 미워하여 「기속」의 책을 짓고 또 임금의 정사가 한갓 사람을 다스리려 하나 그 마땅함을 얻지 못하고 그 힘쓸 바를 깨닫지 못하여 정신을 근심하고 생각을 괴롭혀도 달려갈 바를 보지 못함을 민망히 여겼으므로 「정무」의 책을 지었다. 또 거짓 책과 속된 글이 흔히 실답고 정성되지 않음을 아파하였으므로 「논형」의 책을 지었다. 무릇 어질고 성스러운 이가 죽고 큰 뜻이 나뉘어 어긋나 다른 데로 달려 저마다 스스로 문을 열었다. 통한 사람이 보고 살펴도 따져 저울질할 수 없다. 멀리 전하여 줌을 듣고 붓으로 쓰고 귀로 취함이 백 년 앞에 있다. 날을 거쳐 더욱 오래되니 옛날의 일이라 여겨 말하는 바가 옳음에 가깝다 하여 믿음이 뼈에 들어 스스로 풀 수 없으므로 「실론」을 지었다. 그 글이 성하고 그 변론이 다투니 뜨고 화려하고 헛되고 거짓된 말이 맑게 정해지지 않음이 없다. 화려하고 헛된 글을 잠기게 하고 도탑고 큰 질박함을 남기며 흘러 잃은 풍조를 다스려 복희의 풍속으로 돌린다.

充書形露易觀。或曰:「口辯者其言深,筆敏者其文沉。案經藝之文,賢聖之言,鴻重優雅,難卒曉睹。世讀之者,訓古乃下。蓋賢聖之材鴻,故其文語與俗不通。玉隱石間,珠匿魚腹,非玉工珠師,莫能採得。寶物以隱閉不見,實語亦宜深沉難測。《譏俗》之書,欲悟俗人,故形露其指,為分別之文。《論衡》之書,何為複然?豈材有淺極,不能為〔深〕覆?何文之察,與彼經藝殊軌轍也?」

충의 책은 꼴이 드러나 보기 쉽다. 어떤 이는 말한다. 「입이 변론하는 이는 그 말이 깊고 붓이 민첩한 이는 그 글이 가라앉는다. 살피건대 경예의 글과 어질고 성스러운 이의 말은 크고 무겁고 넉넉하고 우아하여 갑자기 깨달아 보기 어렵다. 세상에 읽는 이는 옛것을 풀이하여야 곧 내린다. 아마 어질고 성스러운 이의 재주가 커서 그 글과 말이 속된 것과 통하지 않는다. 옥은 돌 사이에 숨고 구슬은 물고기 배에 숨어 옥 장인과 구슬 스승이 아니면 캐어 얻을 수 없다. 보배로운 물건은 숨어 닫혀 보이지 않으니 실다운 말도 마땅히 깊이 가라앉아 헤아리기 어려워야 한다. 「기속」의 책은 속인을 깨우치려 하므로 그 가리킴을 드러내어 분별하는 글을 하였다. 「논형」의 책은 무엇 때문에 다시 그러한가. 어찌 재주에 얕음이 극하여 깊이 덮을 수 없어서인가. 어찌 글이 살펴져 저 경예와 궤도가 다른가?」

答曰:玉隱石間,珠匿魚腹,故為深覆。及玉色剖於石心,珠光出於魚腹,其〔猶〕隱乎?吾文未集於簡札之上,藏於胸臆之中,猶玉隱珠匿也;及出露,猶玉剖珠出乎,爛若天文之照,順若地理之曉,嫌疑隱微,盡可名處。且名白,事自定也。

답한다. 옥이 돌 사이에 숨고 구슬이 물고기 배에 숨으므로 깊이 덮인다. 옥빛이 돌 속에서 쪼개지고 구슬빛이 물고기 배에서 나옴에 미쳐서는 그것이 오히려 숨는가. 내 글이 아직 대와 찰 위에 모이지 않고 가슴속에 감추어져 있음은 옥이 숨고 구슬이 숨음과 같고 나와 드러남에 미쳐서는 옥이 쪼개지고 구슬이 나옴과 같아 찬란하기 하늘 무늬의 비춤 같고 순하기 땅 결의 밝음 같아 혐의하고 숨은 미세함이 다 이름하여 처리할 수 있다. 또 이름이 밝혀지면 일이 절로 정해진다.

《論衡》者,論之平也。口則務在明言,筆則務在露文。高士之文雅,言無不可曉,指無不可睹。觀讀之者,曉然若盲之開目,聆然若聾之通耳。三年盲子,卒見父母,不察察相識,安肯說喜?道畔巨樹,塹邊長溝,所居昭察,人莫不知。使樹不巨而隱,溝不長而匿,以斯示人,堯、舜猶惑。人面色部七十有餘,頰肌明潔,五色分別,隱微憂喜,皆可得察,佔射之者,十不失一。使面黝而黑醜,垢重襲而覆部,佔射之者,十而失九。

「논형」은 논의 평이다. 입은 말을 밝힘에 힘쓰고 붓은 글을 드러냄에 힘쓴다. 높은 선비의 문아는 말에 깨달을 수 없음이 없고 가리킴에 볼 수 없음이 없다. 보고 읽는 이가 환하기 눈먼 이가 눈을 뜸 같고 밝기 귀먹은 이가 귀가 통함 같다. 세 해 눈먼 아이가 마침내 부모를 봄에 또렷이 서로 알아보지 못하면 어찌 기꺼이 기뻐하겠는가. 길가의 큰 나무와 구렁 가의 긴 도랑은 있는 곳이 밝게 살펴져 사람이 알지 못함이 없다. 나무가 크지 않고 숨고 도랑이 길지 않고 숨게 하여 이로써 사람에게 보이면 요·순도 오히려 홀린다. 사람 얼굴빛의 부위가 일흔 남짓인데 뺨 살이 밝고 깨끗하며 다섯 빛이 나뉘면 숨은 근심과 기쁨을 다 살필 수 있어 점쳐 맞히는 이가 열에 하나를 잃지 않는다. 얼굴이 검고 추하며 때가 거듭 덮여 부위를 덮게 하면 점쳐 맞히는 이가 열에 아홉을 잃는다.

夫文由語也,或淺露分別,或深迂優雅,孰為辯者?故口言以明志,言恐滅遺,故著之文字。文字與言同趨,何為猶當隱閉指意?獄當嫌辜,卿決疑事,渾沌難曉,與彼分明可知,孰為良吏?夫口論以分明為公,筆辯以荴露為通,吏文以昭察為良。深覆典雅,指意難睹,唯賦頌耳!經傳之文,賢聖之語,古今言殊,四方談異也。當言事時,非務難知,使指閉隱也。後人不曉,世相離遠,此名曰語異,不名曰材鴻。淺文讀之難曉,名曰不巧,不名曰知明。秦始皇讀韓非之書,歎曰:「猶獨不得此人同時。」其文可曉,故其事可思。如深鴻優雅,須師乃學,投之於地,何嘆之有?夫筆著者,欲其易曉而難為,不貴難知而易造;口論務解分而可聽,不務深迂而難睹。孟子相賢,以眸子明了者,察文,以義可曉。

무릇 글은 말에서 말미암으니 혹 얕게 드러나 분별하고 혹 깊고 멀어 넉넉하고 우아하면 어느 것이 변론하는 이인가. 그러므로 입으로 말하여 뜻을 밝히나 말이 없어지고 잃을까 두려우므로 문자에 짓는다. 문자와 말은 취지가 같은데 무엇 때문에 오히려 마땅히 가리키는 뜻을 숨겨 닫는가. 옥사가 혐의의 죄를 당하고 경이 의심스러운 일을 결단함에 혼돈하여 깨닫기 어려움과 저 분명하여 알 수 있음이 어느 것이 좋은 아전인가. 무릇 입으로 논함은 분명함으로 공정함을 삼고 붓으로 변론함은 드러남으로 통함을 삼고 아전의 글은 밝게 살핌으로 좋음을 삼는다. 깊이 덮고 우아하여 가리키는 뜻을 보기 어려움은 오직 부와 송뿐이다! 경전의 글과 어질고 성스러운 이의 말은 고금에 말이 다르고 사방에 이야기가 다르다. 일을 말할 때에 마땅히 알기 어렵게 하여 가리킴을 닫아 숨게 함에 힘쓴 것이 아니다. 뒷사람이 깨닫지 못함은 세상이 서로 떨어져 멀어서니 이를 이름하여 말이 다르다 하지 재주가 크다 이름하지 않는다. 얕은 글을 읽어 깨닫기 어려우면 이름하여 공교하지 않다 하지 앎이 밝다 이름하지 않는다. 진 시황이 한비의 글을 읽고 탄식하였다. 「오히려 홀로 이 사람과 같은 때에 있지 못하는구나.」 그 글이 깨달을 만하므로 그 일을 생각할 만하였다. 깊고 크고 넉넉하고 우아하여 스승을 기다려야 배운다면 땅에 던질 것이지 무슨 탄식이 있겠는가. 무릇 붓으로 짓는 이는 그것이 깨닫기 쉽고 하기 어렵기를 바라지 알기 어렵고 짓기 쉬움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입으로 논함은 풀어 나누어 들을 만함에 힘쓰지 깊고 멀어 보기 어려움에 힘쓰지 않는다. 맹자가 어진 이를 봄에 눈동자가 밝고 또렷함으로 하니 글을 살핌에 뜻이 깨달을 만함으로 한다.

充書違詭於俗。或難曰:「文貴夫順合眾心,不違人意,百人讀之莫譴,千人聞之莫怪。故管子曰:『言室滿室,言堂滿堂。』今殆說不與世同,故文刺於俗,不合於眾。」

충의 책은 속된 것과 어긋난다. 어떤 이가 힐난한다. 「글은 무릇 뭇 마음에 순하게 맞아 사람의 뜻을 어기지 않아 백 사람이 읽어도 꾸짖음이 없고 천 사람이 들어도 괴이함이 없음을 귀하게 여긴다. 그러므로 관자가 이르기를 『방에서 말하면 방에 가득하고 당에서 말하면 당에 가득하다』 하였다. 이제 거의 설이 세상과 같지 않으므로 글이 속된 것을 찔러 뭇사람에 맞지 않는다.」

答曰:論貴是而不務華,事尚然而不高合。論說辯然否,安得不譎常心、逆俗耳?眾心非而不從,故喪黜其偽,而存定其真。如當從順人心者,循舊守雅,諷習而已,何辯之有?孔子侍坐於魯哀公,公賜桃與黍,孔子先食黍而後啖桃,可謂得食序矣,然左右皆掩口而笑,貫俗之日久也。今吾實猶孔子之序食也,俗人違之,猶左右之掩口也。善雅歌,於鄭為人悲;禮舞,於趙為不好。堯、舜之典,伍伯不肯觀;孔、墨之籍,季、孟不肯讀。寧危之計,黜於閭巷;撥世之言,訾於品俗。有美味於斯,俗人不嗜,狄牙甘食。有寶玉於是,俗人投之,卞和佩服。孰是孰非,可信者誰?禮俗相背,何世不然?魯文逆祀,畔者三人。蓋獨是之語,高士不捨,俗夫不好;惑眾之書,賢者欣頌,愚者逃頓。

답한다. 논은 옳음을 귀하게 여기고 화려함을 힘쓰지 않으며 일은 그러함을 숭상하고 맞음을 높이지 않는다. 논설이 그렇고 아님을 가리니 어찌 늘 그러한 마음을 뒤집고 속된 귀를 거스르지 않겠는가. 뭇 마음이 그르면 따르지 않으므로 그 거짓을 잃고 내치고 그 참을 남기고 정한다. 마땅히 사람 마음을 따라 순하게 한다면 옛것을 따르고 우아함을 지켜 외고 익힐 뿐이니 무슨 변론이 있겠는가. 공자가 노 애공을 모시고 앉았는데 공이 복숭아와 기장을 주니 공자가 먼저 기장을 먹고 뒤에 복숭아를 먹었으니 먹는 차례를 얻었다 할 만한데 좌우가 다 입을 가리고 웃음은 풍속에 익은 날이 오래어서다. 이제 나는 실로 공자의 먹는 차례와 같은데 속인이 어김은 좌우가 입을 가림과 같다. 우아한 노래를 잘함이 정나라에서는 사람에게 슬픔이 되고 예의 춤이 조나라에서는 좋지 않음이 된다. 요·순의 전을 오패가 보려 하지 않고 공·묵의 책을 계·맹이 읽으려 하지 않는다. 위태함을 편안히 하는 꾀가 골목에서 내쳐지고 세상을 다스리는 말이 뭇 풍속에서 헐뜯긴다. 여기 아름다운 맛이 있어 속인이 즐기지 않는데 적아는 달게 먹는다. 여기 보배 옥이 있어 속인이 던지는데 변화는 차서 지닌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르며 믿을 만한 이는 누구인가. 예와 풍속이 서로 등짐이 어느 세상엔들 그렇지 않은가. 노 문공이 거꾸로 제사하니 배반한 이가 세 사람이었다. 아마 홀로 옳은 말은 높은 선비가 버리지 않고 속된 지아비가 좋아하지 않으며 뭇사람을 홀리는 책은 어진 이가 기뻐하며 노래하고 어리석은 이가 달아나 넘어진다.

充書不能純美。或曰:「口無擇言,筆無擇文。文必麗以好,言必辯以巧。言了於耳,則事味於心;文察於目,則篇留於手。故辯言無不聽,麗文無不寫。今新書既在論譬,說俗為戾,又不美好,於觀不快。蓋師曠調音,曲無不悲;狄牙和膳,餚無淡味。然則通人造書,文無暇穢。《呂氏》、《淮南》懸於市門,觀讀之者無訾一言。今無二書之美,文雖眾盛,猶多譴毀。」答曰:夫養實者不育華,調行者不飾辭。豐草多華英,茂林多枯枝。為文欲顯白其為,安能令文而無譴毀?救火拯溺,義不得好;辯論是非,言不得巧。入澤隨龜,不暇調足;深淵捕蛟,不暇定手。言姦辭簡,指趨妙遠;語甘文峭,務意淺小。稻穀千鍾,糠皮太半;閱錢滿億,穿決出萬。大羹必有淡味,至寶必有瑕穢,大簡必有大好,良工必有不巧。然則辯言必有所屈,通文猶有所黜。言金由貴家起,文糞自賤室出,《淮南》、《呂氏》之無累害,所由出者,家富官貴也。夫貴,故得懸於市,富,故有千金副。觀讀之者,惶恐畏忌,雖見乖不合,焉敢譴一字?

충의 책은 순수하게 아름다울 수 없다. 어떤 이는 말한다. 「입에 가릴 말이 없고 붓에 가릴 글이 없다. 글은 반드시 곱고 좋아야 하고 말은 반드시 변론하고 교묘해야 한다. 말이 귀에 밝으면 일이 마음에 맛있고 글이 눈에 살펴지면 편이 손에 머문다. 그러므로 변론하는 말은 듣지 않음이 없고 고운 글은 쓰지 않음이 없다. 이제 새 책이 이미 논하고 비유함에 있어 속된 것을 설명함이 어긋나고 또 아름답고 좋지 않아 봄에 시원하지 않다. 아마 사광이 음을 고르면 곡이 슬프지 않음이 없고 적아가 반찬을 조화하면 안주에 싱거운 맛이 없다. 그러니 통한 사람이 책을 지음에 글에 틈과 더러움이 없다. 「여씨」·「회남」이 저자 문에 걸렸는데 보고 읽는 이가 한 마디도 헐뜯음이 없었다. 이제 두 책의 아름다움이 없이 글이 비록 많고 성하여도 오히려 꾸짖고 헐뜯음이 많다.」 답한다. 무릇 열매를 기르는 이는 꽃을 기르지 않고 행실을 고르는 이는 말을 꾸미지 않는다. 넉넉한 풀에 꽃이 많고 무성한 숲에 마른 가지가 많다. 글을 함에 그 함을 희고 드러나게 하려 하니 어찌 글에 꾸짖고 헐뜯음이 없게 할 수 있는가. 불을 끄고 빠진 이를 건짐에 의가 좋을 수 없고 옳고 그름을 변론함에 말이 교묘할 수 없다. 못에 들어 거북을 따름에 발을 고를 겨를이 없고 깊은 못에서 교룡을 잡음에 손을 정할 겨를이 없다. 말이 간사하고 말이 간략하면 가리키는 취지가 묘하고 멀며 말이 달고 글이 가파르면 뜻이 얕고 작음에 힘쓴다. 벼와 곡식 천 종에 겨와 껍질이 태반이요 돈을 헤아려 억이 차면 꿰미가 끊어져 만이 나온다. 큰 국에 반드시 싱거운 맛이 있고 지극한 보배에 반드시 흠과 더러움이 있고 큰 대쪽에 반드시 크게 좋음이 있고 좋은 장인에 반드시 공교하지 않음이 있다. 그러니 변론하는 말에 반드시 굽히는 바가 있고 통한 글에 오히려 내칠 바가 있다. 말이 쇠라 함은 귀한 집에서 일어나고 글이 똥이라 함은 절로 천한 집에서 나오니 「회남」·「여씨」에 누와 해가 없음은 나온 바가 집이 부유하고 벼슬이 귀해서다. 무릇 귀하므로 저자에 걸 수 있었고 부유하므로 천금의 부상이 있었다. 보고 읽는 이가 두려워하고 꺼려 비록 어긋나 맞지 않음을 보아도 어찌 감히 한 글자를 꾸짖겠는가.

充書既成,或稽合於古,不類前人。或曰:「謂之飾歲偶辭,或徑或迂,或屈或舒。謂之論道,實事委瑣,文給甘酸,諧於經不驗,集於傳不合,稽之子長不當,內之子雲不入。文不與前相似,安得名佳好,稱工巧?」答曰:飾貌以強類者失形,調辭以務似者失情。百夫之子,不同父母,殊類而生,不必相似,各以所稟,自為佳好。文必有與合然後稱善,是則代匠斫不傷手,然後稱工巧也。文士之務,各有所從,或調辭以巧文,或辯偽以實事。必謀慮有合,文辭相襲,是則五帝不異事,三王不殊業也。美色不同面,皆佳於目;悲音不共聲,皆快於耳。酒醴異氣,飲之皆醉;百穀殊味,食之皆飽。謂文當與前合,是謂舜眉當複八採,禹目當複重瞳。

충의 책이 이미 이루어졌는데 혹 옛것에 맞추어 살피면 앞사람과 같지 않다. 어떤 이는 말한다. 「이를 해를 꾸미고 말을 짝한다 하니 혹 곧고 혹 멀며 혹 굽히고 혹 편다. 이를 도를 논한다 하니 실다운 일이 자질구레하고 글이 달고 심을 준다. 경에 맞추면 증험되지 않고 전에 모으면 맞지 않고 자장에게 살피면 마땅하지 않고 자운에게 넣으면 들지 않는다. 글이 앞과 서로 비슷하지 않은데 어찌 좋다 이름하고 공교하다 일컬음을 얻겠는가?」 답한다. 모습을 꾸며 억지로 비슷하게 하는 이는 꼴을 잃고 말을 골라 비슷함에 힘쓰는 이는 정을 잃는다. 백 지아비의 아들이 부모를 같이하지 않고 다른 무리로 나서 반드시 서로 비슷하지 않아 저마다 받은 바로 절로 좋음이 된다. 글이 반드시 더불어 맞은 뒤에야 착하다 일컬으면 이는 장인을 대신하여 깎아 손을 상하지 않은 뒤에야 공교하다 일컬음이다. 문사의 힘씀은 저마다 좇는 바가 있으니 혹 말을 골라 글을 공교하게 하고 혹 거짓을 가려 일을 실답게 한다. 반드시 꾀와 생각에 맞음이 있고 문사가 서로 이어야 한다면 이는 오제가 일을 달리하지 않고 삼왕이 업을 달리하지 않음이다. 아름다운 빛은 얼굴이 같지 않아도 다 눈에 좋고 슬픈 음은 소리를 함께하지 않아도 다 귀에 시원하다. 술과 단술은 기운이 달라도 마시면 다 취하고 백곡은 맛이 달라도 먹으면 다 배부르다. 글이 마땅히 앞과 맞아야 한다 함은 순의 눈썹이 마땅히 다시 여덟 채색이어야 하고 우의 눈이 마땅히 다시 겹눈동자여야 한다 함이다.

充書文重。或曰:「文貴約而指通,言尚省而趨明。辯士之言要而達,文人之辭寡而章。今所作新書,出萬言,繁不省,則讀者不能盡;篇非一,則傳者不能領。被躁人之名,以多為不善。語約易言,文重難得。玉少石多,多者不為珍;龍少魚眾,少者固為神。」答曰:有是言也。蓋〔要〕言無多,而華文無寡。為世用者,百篇無害;不為用者,一章無補。如皆為用,則多者為上,少者為下。累積千金,比於一百,孰為富者?蓋文多勝寡,財寡愈貧。世無一卷,吾有百篇;人無一字,吾有萬言,孰者為賢?今不曰所言非,而云泰多,不曰世不好善,而云不能領,斯蓋吾書所以不得省也。夫宅舍多,土地不得小;戶口眾,簿籍不得少。今失實之事多,華虛之語眾,指實定宜,辯爭之言,安得約徑?韓非之書,一條無異,篇以十第,文以萬數。夫形大,衣不得褊;事眾,文不得褊。事眾文饒,水大魚多。帝都谷多,王市肩磨。書雖文重,所論百種。按古太公望,近董仲舒,傳作書篇百有餘,吾書亦才出百,而云泰多,蓋謂所以出者微,觀讀之者不能不譴呵也。河水沛沛,比夫眾川,孰者為大?蟲繭重厚,稱其出絲,孰為多者?

충의 책은 글이 무겁다. 어떤 이는 말한다. 「글은 간략하면서 가리킴이 통함을 귀하게 여기고 말은 덜면서 취지가 밝음을 숭상한다. 변사의 말은 요긴하면서 통달하고 문인의 말은 적으면서 드러난다. 이제 지은 새 책은 만 마디를 넘어 번거로워 덜지 않으니 읽는 이가 다할 수 없고 편이 하나가 아니니 전하는 이가 거느릴 수 없다. 조급한 사람의 이름을 입어 많음으로 착하지 않음을 삼는다. 말이 간략하면 말하기 쉽고 글이 무거우면 얻기 어렵다. 옥은 적고 돌은 많으니 많은 것은 진귀하지 않고 용은 적고 물고기는 많으니 적은 것이 본디 신령하다.」 답한다. 이 말이 있다. 아마 요긴한 말은 많음이 없고 화려한 글은 적음이 없다. 세상에 쓰이는 것은 백 편이라도 해가 없고 쓰이지 않는 것은 한 장이라도 보탬이 없다. 다 쓰인다면 많은 것이 위가 되고 적은 것이 아래가 된다. 천금을 쌓음을 일백에 견주면 어느 것이 부자인가. 아마 글은 많음이 적음을 이기고 재물이 적으면 더욱 가난하다. 세상에 한 권이 없는데 나는 백 편이 있고 사람에게 한 글자가 없는데 나는 만 마디가 있으니 어느 것이 어진가. 이제 말한 바가 그르다 하지 않고 너무 많다 하고 세상이 착함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 않고 거느릴 수 없다 하니 이것이 아마 내 책이 덜 수 없는 까닭이다. 무릇 집이 많으면 토지가 작을 수 없고 호구가 많으면 장부가 적을 수 없다. 이제 실상을 잃은 일이 많고 화려하고 헛된 말이 많은데 실상을 가리키고 마땅함을 정하는 변론하고 다투는 말이 어찌 간략하고 지름길일 수 있겠는가. 한비의 책은 한 조목에 다름이 없는데 편이 열로 차례 지어지고 글이 만으로 헤아려진다. 무릇 몸이 크면 옷이 좁을 수 없고 일이 많으면 글이 좁을 수 없다. 일이 많고 글이 넉넉함은 물이 크면 물고기가 많음이다. 제왕의 도읍에 곡식이 많고 왕의 저자에 어깨가 스친다. 책이 비록 글이 무거워도 논하는 바가 백 가지다. 살피건대 옛날 태공망과 가까이 동중서가 전과 책을 지음이 편이 백 남짓인데 내 책도 겨우 백을 넘는데 너무 많다 하니 아마 나온 바가 미미하여 보고 읽는 이가 꾸짖고 나무라지 않을 수 없음을 이름이다. 하수가 넘실넘실함을 저 뭇 내와 견주면 어느 것이 큰가. 벌레 고치가 무겁고 두터워 그 실 냄을 일컬으면 어느 것이 많은가.

充仕數不耦,而徒著書自紀。或〔戲〕曰:「所貴鴻材者,仕宦耦合,身容說納,事得功立,故為高也。今吾子涉世落魄,仕數黜斥,材未練於事,力未盡於職,故徒幽思屬文,著記美言,何補於身?眾多欲以何移乎?」答曰:材鴻莫過孔子。孔子才不容,斥逐,伐樹,接〔淅〕,見圍,削跡,困餓陳、蔡,門徒菜色。今吾材不逮孔子,不偶之厄,未與之等,偏可輕乎?且達者未必知,窮者未必愚。遇者則得,不遇失之。故夫命厚祿善,庸人尊顯;命薄祿惡,奇俊落魄。比以偶合稱材量德,則夫專城食土者,材賢孔、墨。身貴而名賤,則居潔而行墨。食千鍾之祿,無一長之德,乃可戲也。若夫德高而名白,官卑而祿泊,非才能之過,未足以為累也。士願與憲共廬,不慕與賜同衡;樂與夷俱旅,不貪與蹠比跡。高士所貴,不與俗均,故其名稱不與世同。身與草木俱朽,聲與日月並彰,行與孔子比窮,文與楊雄為雙,吾榮之。身通而知困,官大而德細,於彼為榮,於我為累。偶合容說,身尊體佚,百載之後,與物俱歿,名不流於一嗣,文不遺於一札,官雖傾倉,文德不豐,非吾所臧。德汪而淵懿,知滂沛而盈溢,筆瀧漉而雨集,言溶㵠而泉出,富材羨知,貴行尊志,體列於一世,名傳於千載,乃吾所謂異也。

충이 벼슬함에 자주 짝하지 못하여 한갓 책을 지어 스스로 기록한다. 어떤 이가 희롱하여 말한다. 「큰 재주를 귀하게 여기는 까닭은 벼슬에 짝하여 맞아 몸이 용납되고 설이 받아들여져 일이 얻어지고 공이 서므로 높음이 된다. 이제 그대는 세상을 건넘에 낙백하여 벼슬에 자주 내치고 물리쳐져 재주가 아직 일에 단련되지 않고 힘이 아직 직책에 다하지 않았으므로 한갓 그윽이 생각하여 글을 이어 기록을 짓고 말을 아름답게 하니 몸에 무슨 보탬인가. 많음으로 무엇을 옮기려 하는가?」 답한다. 재주가 큼이 공자보다 나은 이가 없다. 공자는 재주가 용납되지 않아 물리치고 쫓겨나 나무가 베이고 쌀 씻던 것을 건지고 에워싸이고 자취가 깎이고 진·채에서 곤하고 주려 문도가 나물빛이었다. 이제 내 재주가 공자에 미치지 못하고 짝하지 못한 액이 아직 그와 같지 않은데 치우쳐 가벼이 여길 수 있는가. 또 통달한 이가 반드시 알지 않고 궁한 이가 반드시 어리석지 않다. 만난 이는 얻고 만나지 못하면 잃는다. 그러므로 무릇 명이 두텁고 녹이 좋으면 용렬한 사람이 높이 드러나고 명이 얇고 녹이 나쁘면 기이하고 준수한 이가 낙백한다. 짝하여 맞음으로 재주를 일컫고 덕을 헤아리면 무릇 성을 오로지하고 땅을 먹는 이가 재주가 공·묵보다 어질다. 몸이 귀하고 이름이 천하면 거처는 깨끗하나 행실은 검다. 천 종의 녹을 먹으면서 한 가지 장점의 덕이 없으면 곧 희롱할 만하다. 저 덕이 높고 이름이 밝으며 벼슬이 낮고 녹이 박함은 재주와 능함의 허물이 아니니 누로 삼기에 넉넉하지 않다. 선비는 원헌과 집을 함께하기 원하고 자공과 수레를 같이함을 사모하지 않으며 백이와 함께 나그네 되기를 즐기고 도척과 자취를 견줌을 탐하지 않는다. 높은 선비가 귀하게 여기는 바는 속된 것과 고르지 않으므로 그 이름과 일컬음이 세상과 같지 않다. 몸이 풀과 나무와 함께 썩어도 소리가 해와 달과 아울러 빛나고 행실이 공자와 궁함을 견주고 글이 양웅과 짝이 됨을 나는 영광으로 여긴다. 몸이 통하나 앎이 곤하고 벼슬이 크나 덕이 가늚은 저에게는 영광이나 나에게는 누다. 짝하여 맞아 용납되고 설이 받아들여져 몸이 높고 몸이 편안하여도 백 년 뒤에 물건과 함께 없어져 이름이 한 후사에 흐르지 않고 글이 한 찰에 남지 않으면 벼슬이 비록 창고를 기울여도 문덕이 넉넉하지 않으니 내가 착하게 여기는 바가 아니다. 덕이 넓고 깊고 아름다우며 앎이 넘치고 가득하며 붓이 줄줄 흘러 비처럼 모이고 말이 넘쳐 샘처럼 나와 재주를 넉넉히 하고 앎을 남기며 행실을 귀하게 하고 뜻을 높여 몸이 한 세상에 벌여지고 이름이 천 년에 전해짐이 곧 내가 이른바 남다름이다.

充細族孤門。或啁之曰:「宗祖無淑懿之基,文墨無篇籍之遺,雖著鴻麗之論,無所稟階,終不為高。夫氣無漸而卒至曰變,物無類而妄生曰異,不常有而忽見曰妖,詭於眾而突出曰怪。吾子何祖?其先不載。況未嘗履墨塗,出儒門,吐論數千萬言,宜為妖變,安得寶斯文而多賢?」答曰:鳥無世鳳皇,獸無種麒麟,人無祖聖賢,物無常嘉珍。才高見屈,遭時而然。士貴,故孤興;物貴,故獨產。文孰常在有以放賢,是則〔醴〕泉有故源,而嘉禾有舊根也。屈奇之士見,倜儻之辭生,度不與俗協,庸角不能程。是故罕發之跡,記於牒籍;希出之物,勒於鼎銘。五帝不一世而起,伊、望不同家而出。千里殊跡,百載異發。士貴雅材而慎興,不因高據以顯達。母驪犢騂,無害犧牲;祖濁裔清,不榜奇人。鯀惡禹聖,叟頑舜神。伯牛寢疾,仲弓潔全;顏路庸固,回傑超倫;孔、墨祖愚,丘、翟聖賢;揚家不通,卓有子雲;桓氏稽可,譎出君山。更稟於元,故能著文。

충은 가는 겨레와 외로운 문이다. 어떤 이가 조롱하여 말한다. 「조상에 맑고 아름다운 터가 없고 문묵에 책의 남김이 없으니 비록 크고 고운 논을 지어도 받아 오를 바가 없어 끝내 높음이 되지 않는다. 무릇 기운이 차츰 없이 갑자기 이름을 변괴(變)라 하고, 물건이 무리 없이 망령되이 남을 이변(異)이라 하고, 늘 있지 않다가 문득 보임을 요사(妖)라 하고, 뭇사람과 어긋나 튀어나옴을 괴이(怪)라 한다. 그대는 무엇을 조상으로 하는가. 그 선조가 실리지 않았다. 하물며 일찍이 먹 길을 밟고 유가 문에서 나오지 않았는데 논을 토함이 수천만 마디니 마땅히 요사와 변이가 되니 어찌 이 글을 보배로 여기고 어짊이 많다 하겠는가?」 답한다. 새에 대대로 봉황이 없고 짐승에 종자로 기린이 없고 사람에 조상으로 성현이 없고 물건에 늘 아름답고 진귀함이 없다. 재주가 높으나 굽힘을 봄은 때를 만나 그러함이다. 선비가 귀하므로 외로이 일어나고 물건이 귀하므로 홀로 난다. 글이 어찌 늘 어진 이를 본받음에 있겠는가, 이는 곧 예천에 옛 근원이 있고 가화에 옛 뿌리가 있다 함이다. 굽고 기이한 선비가 보이면 뛰어난 말이 나니 헤아림이 속된 것과 맞지 않아 용렬한 뿔이 헤아릴 수 없다. 이 때문에 드물게 발하는 자취가 첩과 책에 기록되고 드물게 나오는 물건이 솥 새김에 새겨진다. 오제가 한 세상에 일어나지 않았고 이·망이 한 집에서 나오지 않았다. 천 리에 자취가 다르고 백 년에 발함이 다르다. 선비는 우아한 재주를 귀하게 여겨 삼가 일어나고 높은 근거에 인하여 드러나 통달하지 않는다. 어미가 검고 송아지가 붉어도 희생에 해롭지 않고 조상이 흐리고 후예가 맑아도 기이한 사람을 헐뜯지 않는다. 곤은 악하고 우는 성스러우며 고수는 완악하고 순은 신령하다. 백우는 병들어 누웠고 중궁은 깨끗하고 온전하며 안로는 용렬하고 고루하나 안회는 뛰어나 무리를 넘고 공·묵의 조상은 어리석으나 공구·묵적은 성현이며 양씨 집은 통하지 않았으나 뛰어나게 자운이 있고 환씨는 살필 만하나 뒤집어 군산이 나왔다. 다시 원에서 받으므로 글을 지을 수 있다.

充以徙家闢詣揚州部丹陽、九江、廬江。後入為治中,材小任大,職在刺割,筆札之思,歷年寢廢。,罷州家居。年漸七十,時可懸輿。仕路隔絕,志窮無如。事有否然,身有利害。發白齒落,日月逾邁,儔倫彌索,鮮所恃賴。貧無供養,志不娛快。歷數冉冉,庚辛域際,雖懼終徂,愚猶沛沛,乃作《養性》之書,凡十六篇。養氣自守,適時則酒,閉明塞聰,愛精自保,適輔服藥引導,庶冀性命可延,斯須不老。既晚無還,垂書示後。惟人性命,長短有期,人亦蟲物,生死一時。年曆但記,孰使留之?猶入黃泉,消為土灰。上自黃、唐,下臻秦、漢而來,折衷以聖道,□理於通材,如衡之平,如鑑之開,幼老生死古今,罔不詳該。命以不延,籲嘆悲哉!

충이 집을 옮김으로 양주부 단양·구강·여강에 불려 나아갔다. 뒤에 들어와 치중이 되어 재주는 작고 맡음은 커서 직책이 찌르고 벰에 있어 붓과 찰의 생각이 해를 거쳐 잠자고 폐하였다. 주를 그만두고 집에 살았다. 나이가 점점 일흔이라 때가 수레를 매달 만하였다. 벼슬길이 막혀 끊기고 뜻이 궁하여 어찌할 수 없었다. 일에 아니고 그러함이 있고 몸에 이해가 있다. 머리털이 희고 이가 빠지며 해와 달이 더욱 가고 무리가 더욱 쓸쓸하여 믿고 의지할 바가 드물었다. 가난하여 봉양이 없고 뜻이 즐겁고 시원하지 않았다. 역수가 점점 가서 경신의 지경에 이르러 비록 끝내 죽음을 두려워하나 어리석음이 오히려 넘쳐 곧 「양성」의 책을 지으니 무릇 열여섯 편이다. 기운을 길러 스스로 지키고 때에 맞게 술을 마시며 밝음을 닫고 총명을 막아 정을 아껴 스스로 보전하고 마침 약을 먹고 이끌기를 도와 거의 성품과 명이 늘어 잠깐이라도 늙지 않기 바란다. 이미 늦어 돌이킬 수 없으니 글을 드리워 뒤에 보인다. 오직 사람의 성품과 명은 길고 짧음에 기한이 있고 사람도 벌레와 물건이라 죽고 삶이 한때다. 나이가 다만 기록될 뿐 누가 머물게 하겠는가. 오히려 황천에 들어 사라져 흙과 재가 된다. 위로 황·당으로부터 아래로 진·한 이래에 이르기까지 성인의 도로 절충하고 통한 재주로 이치를 살펴 저울의 평평함 같고 거울의 열림 같아 어리고 늙고 살고 죽음과 고금을 자세히 갖추지 않음이 없다. 명이 늘지 않으니 탄식하여 슬프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