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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十二元朝秘史 卷12

몽골비사 元朝秘史 · 지은이 알 수 없음 · 쥐해(1228년 무렵) 성립 · 명나라 초 한문본 · 단락 8 · 한자 2,296자 · 낭독 9.2분

「몽골비사」 한 권 「권十二」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애초에 원나라 사람의 조상은, 하늘이 낸 푸른 빛깔의 이리 한 마리였다」 — 몽골 사람이 제 손으로 적은 가장 오래된 책. 테무친이 아홉 살에 아버지를 잃고 버려진 데서 시작해, 오논강 물속에 얼굴만 내밀고 밤을 넘기고, 양털 수레에 숨겨져 살아나고, 마침내 아홉 다리 흰 깃대를 세우기까지가 담겼다. 어머니 후엘룬이 두 젖을 꺼내 아들을 꾸짖고, 자무카가 「네 마리 개」를 늘어놓고, 피를 흘리지 않고 죽여 달라 청하는 대목들은 정사(正史)가 지운 목소리다. 원사 고려전과 짝이 되는 자리에 놓인다.

1조치가 숲속 백성을 거두다

兔兒年,成吉思命拙赤領右手軍,去征林木中百姓,令不合引路,斡亦剌種的忽都合別乞比萬斡亦剌種,先來歸附,就引拙赤去征萬斡亦剌。入至失黑失惕地面,斡亦刺禿巴思諸種都投降了。至萬乞兒吉思種處,其官人也迪亦納勒等也歸附了,將白海青、白騸馬、黑貂鼠來拜見拙赤。自失必兒等種以南林木中百姓,拙赤都收捕了,遂領著乞兒吉思萬戶、千戶,並林木中百姓的官人,將著海青、騸馬、貂鼠等物,回來拜見成吉思。成吉思以斡亦剌種的忽禿合別乞先來歸附,將扯扯亦堅名的女子與了他的子亦納勒赤,將拙赤的女豁雷罕與了亦納勒赤的兄,將阿剌合名的女子與了汪古種,卻對拙赤說:「我兒子中你最長,今日初出征去,不曾教人馬生受,將他林木中百姓都歸附了,我賞與你百姓。」

토끼해에 칭기스가 조치에게 명하여 오른손 군사를 거느리고 숲속 백성을 치게 하고, 부카에게 길을 이끌게 하였다. 오이라트 겨레의 쿠두카 베키가 만 오이라트 겨레보다 먼저 와서 붙좇았으므로, 그가 조치를 이끌고 만 오이라트를 치러 갔다. 시크시드 땅에 들어가니 오이라트와 투바스 여러 갈래가 다 항복하였다. 만 키르기스 겨레에 이르니 그 관인 예디 이날 등도 붙좇아, 흰 송골매와 흰 불깐 말과 검은 담비를 가지고 와서 조치를 뵈었다. 시비르 등 여러 갈래로부터 남쪽 숲속 백성을 조치가 다 거두었다. 마침내 키르기스의 만호와 천호와 숲속 백성의 관인을 거느리고, 송골매와 불깐 말과 담비 따위를 가지고 돌아와 칭기스를 뵈었다. 칭기스는 오이라트 겨레의 쿠두카 베키가 먼저 와서 붙좇은 까닭에 체첵겐이라는 이름의 딸을 그의 아들 이날치에게 주고, 조치의 딸 코라이칸을 이날치의 형에게 주고, 알라카라는 이름의 딸을 옹구드 겨레에게 주었다. 그러고는 조치에게 말하였다. "내 아들 가운데 네가 맏이인데, 오늘 처음 싸움에 나가 사람과 말을 고생시키지 않고 저 숲속 백성을 다 붙좇게 하였다. 내가 너에게 그 백성을 상으로 주겠다."

2보로쿨이 죽고 도르베이 도크신이 투마드를 치다

再命孛羅忽勒征豁裏禿馬惕種,其官人歹都禿勒已死,其妻孛脫灰塔兒渾管著百姓。孛羅忽勒到時,令三人於大軍前行,至日晚入深林徑路間,不覺他哨望的人自後至,將路截了,殺了孛羅忽勒。太祖聞知大怒,欲親征,孛斡兒出、木合裏諫止,別命朵兒伯朵黑申再去征。朵兒伯朵黑申嚴整軍馬,於先行的把截處虛張聲勢,卻從忽刺安不合獸行的小徑行去。又恐軍人畏懼不行,令人各背條子十根,若不行的,用此懲戒。每人又各將帶錛、斧、鋸、鑿等器,將當路樹木除去。行至山頂,下視禿馬惕地面百姓,如天窗上看下面一般,大軍直進,彼中不想卒到,就筵席間擄了。

다시 보로쿨에게 명하여 코리 투마드 겨레를 치게 하였다. 그 관인 다이두쿨은 이미 죽고 그 아내 보토카이 타르쿤이 백성을 다스리고 있었다. 보로쿨이 이르러 세 사람을 대군 앞에 가게 하였는데, 날이 저물어 깊은 숲 좁은 길에 들어섰을 때 저들의 망보던 사람이 뒤에서 이르러 길을 끊은 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보로쿨이 죽임을 당하였다. 태조가 이를 듣고 크게 노하여 몸소 치러 가려 하니, 보오르추와 무칼리가 말려 그치게 하고, 따로 도르베이 도크신에게 명하여 다시 치게 하였다. 도르베이 도크신이 군마를 엄히 정돈하고, 먼저 갔던 길이 막힌 데에서 헛되이 소리와 기세를 벌여 놓고는, 도리어 쿨라안 부카의 짐승 다니는 좁은 길로 갔다. 또 군사가 두려워하여 나아가지 않을까 하여 사람마다 회초리 열 개씩을 지게 하고, 나아가지 않는 자가 있으면 이것으로 다스리게 하였다. 또 사람마다 자귀와 도끼와 톱과 끌 따위 연장을 지니고 길을 막는 나무를 베어 치우게 하였다. 산꼭대기에 이르러 투마드 땅 백성을 내려다보니 마치 천창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과 같았다. 대군이 곧장 밀고 들어가니, 저들은 갑자기 이를 줄을 생각하지 못하여 잔치 자리에서 그대로 사로잡혔다.

3여자 서른 때문에 붙잡힌 코르치

在先豁兒赤官人、忽都合別乞二人被禿馬惕拿住,在孛脫灰塔兒渾處。其二人被拿的緣故,因太祖許豁兒赤娶三十個妻。豁兒赤知禿馬惕女子生得美,要娶三十個,致那百姓反了,將他拿住。太祖得知,因忽都合別乞知林木中百姓動靜,所以使他去,也被他拿了。既收捕了禿馬惕後,賞與了孛羅兀勒一百禿馬惕的百姓,與了豁兒赤三十個禿馬惕的女子,忽都合別乞處與了孛脫灰答兒渾。

앞서 코르치 관인과 쿠두카 베키 두 사람이 투마드에게 붙잡혀 보토카이 타르쿤에게 있었다. 그 두 사람이 붙잡힌 까닭은 이러하다. 태조가 코르치에게 아내 서른을 얻게 허락하였는데, 코르치가 투마드의 여자들이 잘생겼다는 것을 알고 서른을 얻으려 하다가 그 백성이 배반하여 그를 붙잡은 것이다. 태조가 이를 알고, 쿠두카 베키가 숲속 백성의 움직임을 아는 까닭에 그를 보냈는데 그도 붙잡혔다. 투마드를 거둔 뒤에 보로쿨에게 투마드 백성 일백을 상으로 주고, 코르치에게 투마드의 여자 서른을 주고, 쿠두카 베키에게는 보토카이 타르쿤을 주었다.

4백성을 어머니와 아우와 아들들에게 나누다

太祖將百姓分與了母親及弟與諸子說:「共立國的是母親,兒子中最長是拙赤,諸弟中最小是斡惕赤斤。」母親並斡惕赤斤處共與了一萬百姓,母親嫌少,不曾做聲。兒子拙赤處與了九千,察阿歹處與了八千,斡歌歹處與了五千,拖雷處與了五千,弟合撒兒處與了四千,阿勒赤歹處與了二千,別勒古臺處與了一千五百。有叔父答阿兒臺,因先曾從王罕,太祖欲要廢他,孛斡兒出等三人對太祖說:「自的家自壞,如自的火自滅一般。你的父親遺念,只留得你這個叔父,怎忍廢他。他既不省事,你可想著你父親,休絕了。」於是太祖心下辛酸,應許著,怒遂息了。

태조가 백성을 어머니와 아우들과 여러 아들에게 나누어 주며 말하였다. "함께 나라를 세운 이는 어머니시고, 아들 가운데 맏이는 조치요, 아우 가운데 막내는 오트치긴이다." 어머니와 오트치긴에게 아울러 백성 일만을 주니 어머니가 적다고 여겼으나 말씀하지 않았다. 아들 조치에게 구천을 주고, 차가다이에게 팔천을 주고, 오고데이에게 오천을 주고, 톨루이에게 오천을 주고, 아우 카사르에게 사천을 주고, 알치다이에게 이천을 주고, 벨구테이에게 일천오백을 주었다. 숙부 다아리타이는 앞서 옹칸을 따른 일이 있어 태조가 그를 내치려 하니, 보오르추 등 세 사람이 태조에게 말하였다. "제 집안을 제가 무너뜨리는 것은 제 불을 제가 끄는 것과 같습니다. 그대 아버지가 남기신 자취로 오직 이 숙부 한 분만 남았는데 어찌 차마 내치겠습니까. 그가 일을 알지 못하더라도 그대는 아버지를 생각하여 끊지 마십시오." 이에 태조가 마음이 시큰하여 받아들이니 노여움이 마침내 가라앉았다.

5저마다 딸릴 관인을 정하다

太祖於訶額侖母親並斡惕赤斤處與了一萬百姓,委付了古出等四個官人。拙赤處委付了忽難等三個官人,察阿歹處委付了合剌察兒等三個官人。又說:「察阿歹性剛,子細教闊客搠思早晚根前說話者。」斡歌歹處委付了亦魯等二人,拖雷處委付了哲歹等二人,合撒兒處委付了者卜客,阿勒赤歹處委付了察兀兒孩。

태조가 후엘룬 어머니와 오트치긴에게 백성 일만을 주고 쿠추 등 네 관인을 딸려 주었다. 조치에게는 쿠난 등 세 관인을 딸려 주고, 차가다이에게는 카라차르 등 세 관인을 딸려 주었다. 또 말하였다. "차가다이는 성미가 굳세니, 코코초스를 자세히 살펴 아침저녁으로 곁에서 말하게 하라." 오고데이에게는 일루가 등 둘을 딸려 주고, 톨루이에게는 제데이 등 둘을 딸려 주고, 카사르에게는 제브케를 딸려 주고, 알치다이에게는 차우르카이를 딸려 주었다.

6어머니가 두 젖을 내놓고 꾸짖다

晃豁塔歹種的蒙力克有七子,第四子名闊闊出,為巫,喚做帖卜騰格理。其兄弟七人比惡,將太祖弟合撒兒打了,來告太祖。太祖正因他事怒間,說:「你平日說人不能敵,如何卻被他打?」於是合撒兒垂淚起去,三日不見太祖。帖卜騰格理來說:「長生天的聖旨神來告說:『一次教帖木真管百姓,一次教合撒兒管百姓。』若不將合撒兒去了,事未可知。」太祖聽了這話,就那夜去拿合撒兒。有古出等將這緣故,對太祖母親訶額侖說。訶額侖用白駝駕車,連夜起行,日出時,到合撒兒處,正見太祖將合撒兒衣袖拴住,去了冠帶。問的中間,見母親到,好生驚恐。母怒下車,將合撒兒解了,與了冠帶,盛怒,盤坐,出兩乳置膝上,問道:「您見了麽?這是您吃的乳,合撒兒何罪?你自將骨肉殘毀。初你小時,曾吃了我這一個乳,合赤溫、斡惕赤斤兩個吃不了這一個乳,惟合撒兒將我這二乳都吃了,使我胸中寬快。為那般,所以帖木真心有技能,合撒兒有氣力能射,但凡百姓叛的,用弓箭收捕了。如今敵人已盡絕,不用他了。」太祖見母親怒息子,卻說:「怕也怕了,羞也羞了。」說罷遂退。後太祖不教母親知,將合撒兒百姓奪去,止與了一千四百。後訶額侖得知,心內憂悶,所以早老了。合撒兒處初委付的者卜客,走入巴兒忽真地面去了。

콩코탄 겨레의 뭉릭에게 아들 일곱이 있었는데, 넷째 아들의 이름은 코코추로 무당이 되어 텝 텡게리라 불렸다. 그 형제 일곱이 함께 모질게 굴어 태조의 아우 카사르를 때렸다. 카사르가 태조에게 와서 아뢰었다. 태조가 마침 다른 일로 노하던 참이라 말하였다. "너는 평소에 남이 당하지 못한다고 말하더니, 어찌하여 도리어 저에게 맞았느냐." 이에 카사르가 눈물을 흘리며 일어나 나가 사흘을 태조에게 나타나지 않았다. 텝 텡게리가 와서 말하였다. "오래 사는 하늘의 뜻이 신으로 내려와 이르기를 '한 번은 테무친에게 백성을 다스리게 하고 한 번은 카사르에게 백성을 다스리게 하리라' 하였습니다. 카사르를 없애지 않으면 일이 어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태조가 이 말을 듣고 그날 밤에 카사르를 잡으러 갔다. 쿠추 등이 이 사연을 태조의 어머니 후엘룬에게 알렸다. 후엘룬이 흰 낙타에 수레를 메워 밤을 새워 떠나, 해 뜰 무렵에 카사르에게 이르렀다. 마침 태조가 카사르의 옷소매를 묶고 갓과 띠를 벗겨 놓고 캐묻는 참이었다. 어머니가 이른 것을 보고 몹시 놀라고 두려워하였다. 어머니가 노하여 수레에서 내려 카사르를 풀어 주고 갓과 띠를 돌려주고는, 크게 노하여 책상다리로 앉아 두 젖을 꺼내어 무릎 위에 올려놓고 물었다. "너희가 이것을 보았느냐. 이것은 너희가 먹은 젖이다. 카사르에게 무슨 죄가 있느냐. 네가 스스로 제 살붙이를 해치는구나. 애초에 네가 어릴 때 이 젖 하나를 다 먹었고, 카치운과 오트치긴 둘은 이 젖 하나를 다 먹지 못하였다. 오직 카사르만이 내 이 두 젖을 다 먹어 내 가슴을 시원하게 하였다. 그런 까닭에 테무친은 마음에 재주가 있고 카사르는 기운이 있어 활을 잘 쏘아, 무릇 배반하는 백성을 활과 화살로 거두어들였다. 이제 적이 다 없어졌다고 그가 쓸모없어졌느냐." 태조가 어머니의 노여움이 가라앉은 것을 보고 말하였다. "두렵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합니다." 말을 마치고 물러났다. 뒤에 태조가 어머니가 알지 못하게 카사르의 백성을 빼앗고 다만 일천사백만 주었다. 뒤에 후엘룬이 이를 알고 마음이 답답하여 일찍 늙었다. 카사르에게 처음 딸려 주었던 제브케는 바르구진 땅으로 달아났다.

7오트치긴이 텝 텡게리의 등뼈를 꺾다

在後,有九等言語的人,都聚在帖卜騰格理處,多如太祖處聚的人。有斡惕赤斤的百姓,也去投了。斡惕赤斤使莎豁兒去取,被帖卜騰格理打了,韝著馬鞍在他身上回來。次日,斡惕赤斤自去,其兄弟七人圍著說:「你如何敢差人來取百姓?」欲要捶打,斡惕赤斤恐懼,說:「我不當差人。」他說:「你既不是,當伏罪。」令於後面跪了。斡惕赤斤於次日清早,太祖未起時,入去跪著說這緣故,說罷哭了。太祖未言中間,孛兒帖兀真夫人欠伸,用被遮了胸,垂淚著說:「他是如何的?晃豁壇在前將合撒兒打了,如今又要斡惕赤斤跪,是何道理?你今見在,他尚將你檜柏般長成的弟每殘害。久後你老了,如亂麻群鳥般的百姓,如何肯服你小的歹的兒子每管?」說罷哭了。太祖對斡惕赤斤說:「帖卜騰格理如今來時由你。」於是斡惕赤斤起身去,準備了三個力士。少頃,蒙力克領著七子來,帖卜騰格理至酒局西邊,才坐。斡惕赤斤將他衣領揫住,說:「你昨日教我伏罪,我如今與你比試。」斡惕赤斤揫向外去,中間,帖卜騰格理帽落於火盆邊,其父拾起嗅了,置於懷中。太祖說:「您出去鬥氣力。」揫著出時,門限外原準備的三個力士,迎著拿了,將他脊骨折斷,棄於左邊車梢頭。」斡惕赤斤卻入去說:「帖卜騰格理昨日要我伏罪,今日才與他比試,卻臥著了,推辭不肯起,元來也是平等的伴當。「其父蒙克力覺了,垂淚說:「我自皇帝未起創之先,做伴當到今日。」才說中間,六子便塞著門,圍著火盆立,捋起衣袖。太祖驚起,說:「教躲了!我出去。」說罷出立,帶弓箭的散班,圍著立了。太祖見帖卜騰格理已死,使人用帳房遮了死屍,便起營去了。

그 뒤에 아홉 가지 말을 쓰는 사람들이 다 텝 텡게리에게 모여, 태조에게 모인 사람보다 많았다. 오트치긴의 백성도 그리로 가서 붙었다. 오트치긴이 소코르를 보내어 데려오게 하니, 텝 텡게리에게 매를 맞고 말안장을 등에 진 채로 돌아왔다. 이튿날 오트치긴이 몸소 가니, 그 형제 일곱이 에워싸고 말하였다. "네가 어찌 감히 사람을 보내어 백성을 데려가려 하느냐." 그러고는 때리려 하였다. 오트치긴이 두려워 말하였다. "내가 사람을 보내지 말았어야 했소." 저들이 말하였다. "네가 이미 그르다 하니 마땅히 죄를 받아라." 그러고는 뒤에서 무릎 꿇게 하였다. 오트치긴이 이튿날 이른 새벽에 태조가 아직 일어나기 전에 들어가 무릎 꿇고 이 사연을 아뢰고, 말을 마치고 울었다. 태조가 아직 말하지 않는 사이에 부르테 우진 부인이 기지개를 켜다가 이불로 가슴을 가리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저들이 어떠한 자입니까. 콩코탄이 앞서 카사르를 때리더니 이제 또 오트치긴을 무릎 꿇게 하니 이 무슨 도리입니까. 그대가 지금 살아 계신데도 저들이 노송나무처럼 자란 그대의 아우들을 해칩니다. 뒷날 그대가 늙으면, 어지러운 삼이나 새 떼 같은 백성이 어찌 그대의 어리고 못한 아들들이 다스리는 데 따르겠습니까." 말을 마치고 울었다. 태조가 오트치긴에게 말하였다. "텝 텡게리가 이제 오거든 네 마음대로 하라." 이에 오트치긴이 일어나 나가 장사 셋을 준비하였다. 조금 있다가 뭉릭이 일곱 아들을 데리고 왔다. 텝 텡게리가 술자리 서쪽에 이르러 막 앉았다. 오트치긴이 그 옷깃을 움켜쥐고 말하였다. "네가 어제 나더러 죄를 받으라 하였으니 내가 이제 너와 겨루어 보겠다." 오트치긴이 움켜쥐고 밖으로 끌어내는 사이에 텝 텡게리의 모자가 화로 가에 떨어졌다. 그 아버지가 주워 냄새를 맡고 품에 넣었다. 태조가 말하였다. "너희는 나가서 힘을 겨루어라." 움켜쥐고 나갈 때 문지방 밖에 미리 준비해 둔 장사 셋이 맞받아 그를 붙잡아 등뼈를 꺾어 놓고, 왼쪽 수레 뒤끝에 버렸다. 오트치긴이 도로 들어와 말하였다. "텝 텡게리가 어제 나더러 죄를 받으라 하기에 오늘 겨루려 하였더니, 도리어 누워서 핑계 대고 일어나려 하지 않습니다. 알고 보니 그도 별것 아닌 동무였습니다." 그 아버지 뭉릭이 알아채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나는 황제께서 아직 일어서기 전부터 오늘까지 동무가 되어 왔습니다." 그 말을 하는 사이에 여섯 아들이 곧 문을 막고 화로를 둘러서서 옷소매를 걷어 올렸다. 태조가 놀라 일어나 말하였다. "비켜라, 내가 나가겠다." 말을 마치고 나가 서니, 활 차는 산반이 에워싸고 섰다. 태조가 텝 텡게리가 이미 죽은 것을 보고, 사람을 시켜 장막으로 주검을 덮게 하고 곧 영을 옮겨 갔다.

8천창으로 나가 버린 주검

帖卜騰格理死屍遮的帳房,門與天窗初皆壓蓋了,令人看守。至第三日將曉,天窗開著,死屍自出去了。審視果然,太祖說:「帖卜騰格理將我弟每打了,又無故讒譖的上頭,天不愛他,連他身命都將去了。」遂怪責蒙力克道:「自的子不能教訓,要與我齊等,所以將他送了。我若早知您這等德性,只好教你與劄木合、阿勒壇、忽察兒每一例廢了來。」又說:「若早間說的話,晚夕改了;晚間說的話,早晨改了,莫不被人言說呵羞恥。因在先說定免你死,有來,罷。」怒遂息了。自帖卜騰格理死後,蒙力克父子每的氣勢,遂消減了。

텝 텡게리의 주검을 덮은 장막은 문과 천창을 처음에 다 눌러 덮고 사람을 시켜 지키게 하였다. 사흗날 새벽에 이르러 천창이 열려 있고 주검이 스스로 나가 버렸다. 살펴보니 과연 그러하였다. 태조가 말하였다. "텝 텡게리가 내 아우들을 때리고 또 까닭 없이 헐뜯은 까닭에 하늘이 그를 아끼지 않아 그 목숨까지 가져갔다." 그러고는 뭉릭을 나무라 말하였다. "제 아들을 가르치지 못하여 나와 나란히 하려 한 까닭에 그를 죽게 하였다. 내가 그대들의 이런 성품을 진작 알았더라면, 그대를 자무카와 알탄과 쿠차르 들과 한가지로 없애 버렸을 것이다." 또 말하였다. "아침에 한 말을 저녁에 고치고 저녁에 한 말을 아침에 고친다면, 남에게 말거리가 되어 부끄럽지 않겠는가. 앞서 그대의 죽음을 면해 주기로 정한 일이 있으니 그만두겠다." 노여움이 마침내 가라앉았다. 텝 텡게리가 죽은 뒤로 뭉릭 부자의 기세는 마침내 줄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