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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도 호도 — 금고六韜 金鼓

무경칠서 — 손자 밖의 여섯 武經七書 · 강태공에 가탁·황석공에 가탁·위료(尉繚)·오기(吳起)·사마양저(司馬穰苴)·이정(李靖) · 전국시대~당 (기원전 4세기~7세기) · 단락 1 · 한자 238자 · 낭독 1.0분

「무경칠서 — 손자 밖의 여섯」 육도 「육도 호도 — 금고」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송나라가 무관을 뽑는 교과서로 정한 일곱 병서 가운데 손자병법을 뺀 여섯. 육도(六韜)는 문왕·무왕이 태공망에게 묻는 문답으로 나라 다스리기에서 수레·기병·야전·물 건너기까지 예순 편, 삼략(三略)은 황석공이 장량에게 주었다는 짧은 세 편, 위료자(尉繚子)는 진나라 앞뒤의 군령과 오·십 편제를 낱낱이 적은 스물네 편, 오자(吳子)는 오기가 위 무후에게 답한 여섯 편, 사마법(司馬法)은 춘추 이전 군례를 전하는 다섯 편, 이위공문대(李衛公問對)는 당 태종과 이정이 기정(奇正)·허실·번한(蕃漢)·공수를 주고받은 세 권이다. 「군사는 흉기다」, 「사람을 이르게 하고 사람에게 이끌리지 않는다」, 「천 장 만 구절이 여러 방법으로 그르치게 한다는 한 구절을 벗어나지 않는다」가 여기서 나왔다. 손자병법 다음에 읽는 병가의 나머지 여섯 갈래를 한 자리에 모았다.

1삼군은 경계로 굳어지고 게으름으로 패한다

武王問太公曰:「引兵深入諸侯之地,與敵相當。而天大寒甚暑,日夜霖雨,旬日不止。溝壘悉壞,隘塞不守,斥堠懈怠,士卒不戒。敵人夜來,三軍無備,上下惑亂,為之奈何?」太公曰:「凡三軍以戒為固,以怠為敗。令我壘上,誰何不絕;人執旌旂,外內相望,以號相命,勿令乏音,而皆外向。三千人為一屯,誡而約之,各慎其處。敵人若來,視我軍之警戒,至而必還,力盡氣怠。發我銳士,隨而擊之。」武王曰:「敵人知我隨之,而伏其銳士,佯北不止。遇伏而還,或擊我前,或擊我後,或薄我壘。吾三軍大恐,擾亂失次,離其處所。為之奈何?」太公曰:「分為三隊,隨而追之,勿越其伏。三隊俱至,或擊其前後,或陷其兩旁。明號審令,疾擊而前,敵人必敗。」

무왕이 태공에게 물었다. 「군사를 이끌고 제후의 땅에 깊이 들어가 적과 맞섰는데 날이 몹시 춥거나 몹시 덥고 밤낮으로 장맛비가 열흘 동안 그치지 않아 도랑과 보루가 다 무너지고 요새를 지키지 못하며 척후가 게으르고 사졸이 경계하지 않는다. 적이 밤에 오면 삼군이 방비가 없어 위아래가 홀리고 어지러우니 어찌해야 하는가.」 태공이 말하였다. 「삼군은 경계로 굳어지고 게으름으로 패합니다. 우리 보루 위에 「누구냐」 하고 묻는 소리가 끊이지 않게 하고, 사람마다 깃발을 잡아 안팎이 서로 바라보며 호령으로 서로 명하여 소리가 끊이지 않게 하되 다 밖을 향하게 하십시오. 삼천 명을 한 둔으로 삼아 경계하고 약속하여 각기 제자리를 삼가게 합니다. 적이 오면 우리 군사의 경계함을 보고 이르러서도 반드시 돌아가니 힘이 다하고 기운이 게을러집니다. 우리 정예를 내어 따라가 칩니다.」 무왕이 「적이 우리가 따르는 것을 알고 그 정예를 매복시키고 거짓 패하여 그치지 않다가 복병을 만나면 돌아서서 혹은 우리 앞을 치고 혹은 우리 뒤를 치며 혹은 우리 보루에 육박하여, 우리 삼군이 크게 두려워하고 어지러워 차례를 잃고 제자리를 떠나면 어찌해야 하는가」 하니 태공이 말하였다. 「세 부대로 나누어 따라 쫓되 그 복병을 넘지 마십시오. 세 부대가 함께 이르러 혹은 그 앞뒤를 치고 혹은 그 양쪽을 무너뜨리며, 호령을 밝히고 영을 자세히 하여 빨리 치며 나아가면 적이 반드시 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