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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도 표도 — 돌전六韜 突戰

무경칠서 — 손자 밖의 여섯 武經七書 · 강태공에 가탁·황석공에 가탁·위료(尉繚)·오기(吳起)·사마양저(司馬穰苴)·이정(李靖) · 전국시대~당 (기원전 4세기~7세기) · 단락 1 · 한자 315자 · 낭독 1.3분

「무경칠서 — 손자 밖의 여섯」 육도 「육도 표도 — 돌전」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송나라가 무관을 뽑는 교과서로 정한 일곱 병서 가운데 손자병법을 뺀 여섯. 육도(六韜)는 문왕·무왕이 태공망에게 묻는 문답으로 나라 다스리기에서 수레·기병·야전·물 건너기까지 예순 편, 삼략(三略)은 황석공이 장량에게 주었다는 짧은 세 편, 위료자(尉繚子)는 진나라 앞뒤의 군령과 오·십 편제를 낱낱이 적은 스물네 편, 오자(吳子)는 오기가 위 무후에게 답한 여섯 편, 사마법(司馬法)은 춘추 이전 군례를 전하는 다섯 편, 이위공문대(李衛公問對)는 당 태종과 이정이 기정(奇正)·허실·번한(蕃漢)·공수를 주고받은 세 권이다. 「군사는 흉기다」, 「사람을 이르게 하고 사람에게 이끌리지 않는다」, 「천 장 만 구절이 여러 방법으로 그르치게 한다는 한 구절을 벗어나지 않는다」가 여기서 나왔다. 손자병법 다음에 읽는 병가의 나머지 여섯 갈래를 한 자리에 모았다.

1돌전 — 성 아래까지 밀고 들어온 적을 치는 법

武王問太公曰:「敵人深入長驅,侵掠我地,驅我牛馬,其三軍大至,薄我城下。吾士卒大恐,人民係累,為敵所虜。吾欲以守則固,以戰則勝。為之奈何?」太公曰:「如此者,謂之突兵。其牛馬必不得食,士卒絕糧,暴擊而前。令我遠邑別軍,選其銳士,疾擊其後。審其期日,必會於晦,三軍疾戰,敵人雖眾,其將可虜。」武王曰:「敵人分為三四,或戰而侵掠我地,或止而收我牛馬,其大軍未盡至,而使寇薄我城下,致吾三軍恐懼,為之奈何?」太公曰:「謹候敵人,未盡至則設備而待之。去城四里而為壘,金鼓旌旂皆列而張,別隊為伏兵。令我壘上,多精強弩,百步一突門,門有行馬,車騎居外,勇力銳士,隱而處,敵人若至,使我輕卒合戰而佯走,令我城上立旌旂,擊鼙鼓,完為守備。敵人以我為守城,必薄我城下,發吾伏兵以充其內,或擊其外,三軍疾戰,或擊其前,或擊其後,勇者不得鬥,輕者不及走,名曰突戰。敵人雖眾,其將必走。」武王曰:「善哉!」

무왕이 태공에게 물었다. 「적이 깊이 들어와 길게 몰아 우리 땅을 침노하고 우리 소와 말을 몰아가며 그 삼군이 크게 이르러 우리 성 아래에 육박한다. 우리 사졸이 크게 두려워하고 백성이 묶여 적에게 사로잡힌다. 우리가 지키면 굳고 싸우면 이기게 하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태공이 말하였다. 「이런 것을 돌병(突兵)이라 합니다. 그 소와 말은 반드시 먹지 못하고 사졸은 양식이 끊겨 사납게 치며 나아옵니다. 우리 먼 읍의 별군으로 하여금 그 정예를 가려 그 뒤를 빨리 치게 하십시오. 그 기일을 자세히 하여 반드시 그믐에 모여 삼군이 빨리 싸우면 적이 비록 많아도 그 장수를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무왕이 「적이 서넛으로 나뉘어 혹은 싸우며 우리 땅을 침노하고 혹은 머물며 우리 소와 말을 거두며 그 대군이 다 이르지 않았는데 도적을 시켜 우리 성 아래에 육박하게 하여 우리 삼군이 두려워하면 어찌해야 하는가」 하니 태공이 말하였다. 「적을 삼가 살펴 다 이르지 않았으면 방비를 베풀고 기다리십시오. 성에서 사 리 떨어져 보루를 만들고 징과 북과 깃발을 다 벌여 펴며 별대를 복병으로 삼습니다. 우리 보루 위에 정예 강노를 많이 두고 백 보마다 돌문 하나를 두어 문에 행마를 두고 수레와 기병은 밖에 있으며 용력 있는 정예는 숨어 있습니다. 적이 이르면 우리 가벼운 군졸로 맞붙어 싸우다 거짓 달아나게 하고 우리 성 위에 깃발을 세우고 북을 치며 수비를 온전히 하게 합니다. 적은 우리가 성을 지킨다고 여겨 반드시 우리 성 아래에 육박하니 우리 복병을 내어 그 안을 채우고 혹은 그 밖을 치며 삼군이 빨리 싸워 혹은 그 앞을 치고 혹은 그 뒤를 치면 용감한 이도 싸우지 못하고 날랜 이도 달아나지 못하니 이름하여 돌전(突戰)이라 합니다. 적이 비록 많아도 그 장수가 반드시 달아납니다.」 무왕이 「좋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