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무경칠서 — 손자 밖의 여섯 › 육도

육도 표도 — 오운산병六韜 烏雲山兵

무경칠서 — 손자 밖의 여섯 武經七書 · 강태공에 가탁·황석공에 가탁·위료(尉繚)·오기(吳起)·사마양저(司馬穰苴)·이정(李靖) · 전국시대~당 (기원전 4세기~7세기) · 단락 1 · 한자 226자 · 낭독 0.9분

「무경칠서 — 손자 밖의 여섯」 육도 「육도 표도 — 오운산병」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송나라가 무관을 뽑는 교과서로 정한 일곱 병서 가운데 손자병법을 뺀 여섯. 육도(六韜)는 문왕·무왕이 태공망에게 묻는 문답으로 나라 다스리기에서 수레·기병·야전·물 건너기까지 예순 편, 삼략(三略)은 황석공이 장량에게 주었다는 짧은 세 편, 위료자(尉繚子)는 진나라 앞뒤의 군령과 오·십 편제를 낱낱이 적은 스물네 편, 오자(吳子)는 오기가 위 무후에게 답한 여섯 편, 사마법(司馬法)은 춘추 이전 군례를 전하는 다섯 편, 이위공문대(李衛公問對)는 당 태종과 이정이 기정(奇正)·허실·번한(蕃漢)·공수를 주고받은 세 권이다. 「군사는 흉기다」, 「사람을 이르게 하고 사람에게 이끌리지 않는다」, 「천 장 만 구절이 여러 방법으로 그르치게 한다는 한 구절을 벗어나지 않는다」가 여기서 나왔다. 손자병법 다음에 읽는 병가의 나머지 여섯 갈래를 한 자리에 모았다.

1산에서의 오운진 — 산성

武王問太公曰:「引兵深入諸侯之地,遇高山盤石,其上亭亭,無有草木,四面受敵。吾三軍恐懼,士卒迷惑。吾欲以守則固,以戰則勝。為之奈何?」太公曰:「凡三軍處山之高,則為敵所栖;處山之下,則為敵所囚。既以被山而處,必為烏雲之陣。烏雲之陣,陰陽皆備。或屯其陰,或屯其陽。處山之陽,備山之陰;處山之陰,備山之陽;處山之左,備山之右;處山之右,備山之左。其山,敵所能陵者,兵備其表;衢道通谷,絕以武車;高置旌旂,謹敕三軍,無使敵人知吾之情,是謂山城。行列已定,士卒已陣,法令已行,奇正已設,各置衝陣於山之表,便兵所處,乃分車騎為烏雲之陣。三軍疾戰,敵人雖眾,其將可擒。」

무왕이 태공에게 물었다. 「군사를 이끌고 제후의 땅에 깊이 들어가 높은 산과 너럭바위를 만났는데 그 위가 우뚝하여 풀과 나무가 없고 사면에서 적을 받는다. 우리 삼군이 두려워하고 사졸이 헤맨다. 우리가 지키면 굳고 싸우면 이기게 하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태공이 말하였다. 「삼군이 산의 높은 데 있으면 적에게 갇히는 새가 되고 산의 아래에 있으면 적의 포로가 됩니다. 이미 산을 등지고 자리 잡았으면 반드시 오운(烏雲)의 진을 만들어야 합니다. 오운의 진은 음과 양을 다 갖추어 혹은 그 그늘에 둔치고 혹은 그 양지에 둔칩니다. 산의 양지에 있으면 산의 그늘을 막고, 산의 그늘에 있으면 산의 양지를 막으며, 산의 왼쪽에 있으면 산의 오른쪽을 막고, 산의 오른쪽에 있으면 산의 왼쪽을 막습니다. 그 산에서 적이 오를 수 있는 곳은 군사로 그 겉을 지키고, 큰길과 골짜기는 무거로 끊으며, 깃발을 높이 세우고 삼군을 삼가 단속하여 적이 우리 속내를 알지 못하게 하니 이것을 산성(山城)이라 합니다. 행렬이 정해지고 사졸이 진을 치고 법령이 행해지고 기(奇)와 정(正)의 배치가 끝나면 각기 충진을 산의 겉에 두어 군사가 있기 편한 곳으로 삼고 이에 수레와 기병을 나누어 오운의 진을 만듭니다. 삼군이 빨리 싸우면 적이 비록 많아도 그 장수를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