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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도 표도 — 오운택병六韜 烏雲澤兵

무경칠서 — 손자 밖의 여섯 武經七書 · 강태공에 가탁·황석공에 가탁·위료(尉繚)·오기(吳起)·사마양저(司馬穰苴)·이정(李靖) · 전국시대~당 (기원전 4세기~7세기) · 단락 1 · 한자 278자 · 낭독 1.1분

「무경칠서 — 손자 밖의 여섯」 육도 「육도 표도 — 오운택병」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송나라가 무관을 뽑는 교과서로 정한 일곱 병서 가운데 손자병법을 뺀 여섯. 육도(六韜)는 문왕·무왕이 태공망에게 묻는 문답으로 나라 다스리기에서 수레·기병·야전·물 건너기까지 예순 편, 삼략(三略)은 황석공이 장량에게 주었다는 짧은 세 편, 위료자(尉繚子)는 진나라 앞뒤의 군령과 오·십 편제를 낱낱이 적은 스물네 편, 오자(吳子)는 오기가 위 무후에게 답한 여섯 편, 사마법(司馬法)은 춘추 이전 군례를 전하는 다섯 편, 이위공문대(李衛公問對)는 당 태종과 이정이 기정(奇正)·허실·번한(蕃漢)·공수를 주고받은 세 권이다. 「군사는 흉기다」, 「사람을 이르게 하고 사람에게 이끌리지 않는다」, 「천 장 만 구절이 여러 방법으로 그르치게 한다는 한 구절을 벗어나지 않는다」가 여기서 나왔다. 손자병법 다음에 읽는 병가의 나머지 여섯 갈래를 한 자리에 모았다.

1늪에서의 오운진 — 까마귀처럼 흩어지고 구름처럼 모인다

武王問太公曰:「引兵深入諸侯之地,與敵人臨水相拒。敵富而眾,我貧而寡。踰水擊之,則不能前。欲久其日,則糧食少。吾居斥鹵之地,四旁無邑,又無草木。三軍無所掠取,牛馬無所芻牧。為之奈何?」太公曰:「三軍無備,士卒無糧,牛馬無食。如此者,索便詐敵而亟去之,設伏兵於後。」武王曰:「敵不可得而詐。吾士卒迷惑。敵人越我前後,吾三軍敗而走。為之奈何?」太公曰:「如此者,分為衝陳,便兵所處。須其畢出,發我伏兵,疾擊其後,強弩兩旁,射其左右,車騎分為烏雲之陳,備其前後,三軍疾戰。敵人見我戰合,其大軍必濟水而來。發我伏兵,疾擊其後,車騎衝其左右,敵人雖眾,其將可走。凡用兵之大要,當敵臨戰,必置衝陳,便兵所處,然後以車騎分為烏雲之陳,此用兵之奇也。所謂烏雲者,烏散而雲合,變化無窮者也。」武王曰:「善哉!」

무왕이 태공에게 물었다. 「군사를 이끌고 제후의 땅에 깊이 들어가 적과 물을 사이에 두고 맞섰다. 적은 부유하고 많으며 우리는 가난하고 적다. 물을 건너 치자니 나아갈 수 없고 날을 오래 끌자니 양식이 적다. 우리는 소금기 있는 땅에 있어 사방에 읍이 없고 또 풀과 나무도 없다. 삼군이 노략할 데가 없고 소와 말이 꼴 먹을 데가 없으니 어찌해야 하는가.」 태공이 말하였다. 「삼군에 방비가 없고 사졸에 양식이 없으며 소와 말에 먹이가 없으니 이런 때는 편한 방도를 찾아 적을 속이고 빨리 떠나되 뒤에 복병을 둡니다.」 무왕이 「적을 속일 수 없고 우리 사졸이 헤매며 적이 우리 앞뒤를 넘어 우리 삼군이 패하여 달아나면 어찌해야 하는가」 하니 태공이 말하였다. 「이런 때는 충진으로 나누어 군사가 있기 편한 곳으로 삼습니다. 적이 다 나오기를 기다려 우리 복병을 내어 그 뒤를 빨리 치고 강노로 양쪽에서 그 좌우를 쏘며 수레와 기병은 나누어 오운의 진을 만들어 그 앞뒤에 대비하고 삼군이 빨리 싸웁니다. 적이 우리와 싸움이 붙은 것을 보면 그 대군이 반드시 물을 건너옵니다. 우리 복병을 내어 그 뒤를 빨리 치고 수레와 기병이 그 좌우를 충돌하면 적이 비록 많아도 그 장수를 달아나게 할 수 있습니다. 군사를 쓰는 큰 요체는 적을 맞아 싸움에 임하면 반드시 충진을 두어 군사가 있기 편한 곳으로 삼은 뒤에 수레와 기병을 나누어 오운의 진을 만드는 것이니 이것이 군사를 쓰는 기이함입니다. 오운이란 까마귀처럼 흩어지고 구름처럼 모여 변화가 무궁한 것입니다.」 무왕이 「좋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