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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도 표도 — 분험六韜 分險

무경칠서 — 손자 밖의 여섯 武經七書 · 강태공에 가탁·황석공에 가탁·위료(尉繚)·오기(吳起)·사마양저(司馬穰苴)·이정(李靖) · 전국시대~당 (기원전 4세기~7세기) · 단락 1 · 한자 207자 · 낭독 0.8분

「무경칠서 — 손자 밖의 여섯」 육도 「육도 표도 — 분험」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송나라가 무관을 뽑는 교과서로 정한 일곱 병서 가운데 손자병법을 뺀 여섯. 육도(六韜)는 문왕·무왕이 태공망에게 묻는 문답으로 나라 다스리기에서 수레·기병·야전·물 건너기까지 예순 편, 삼략(三略)은 황석공이 장량에게 주었다는 짧은 세 편, 위료자(尉繚子)는 진나라 앞뒤의 군령과 오·십 편제를 낱낱이 적은 스물네 편, 오자(吳子)는 오기가 위 무후에게 답한 여섯 편, 사마법(司馬法)은 춘추 이전 군례를 전하는 다섯 편, 이위공문대(李衛公問對)는 당 태종과 이정이 기정(奇正)·허실·번한(蕃漢)·공수를 주고받은 세 권이다. 「군사는 흉기다」, 「사람을 이르게 하고 사람에게 이끌리지 않는다」, 「천 장 만 구절이 여러 방법으로 그르치게 한다는 한 구절을 벗어나지 않는다」가 여기서 나왔다. 손자병법 다음에 읽는 병가의 나머지 여섯 갈래를 한 자리에 모았다.

1험한 곳을 나누어 맞설 때 — 군성(軍城)

武王問太公曰:「引兵深入諸侯之地,與敵人相遇於險阨之中。吾左山而右水;敵右山而左水,與我分險相拒。吾欲以守則固,以戰則勝,為之奈何?」太公曰:「處山之左,急備山之右;處山之右,急備山之左。險有大水,無舟楫者,以天潢濟吾三軍。已濟者,亟廣吾道,以便戰所。以武衝為前後,列其強弩,令行陣皆固。衢道谷口,以武衝絕之。高置旌旂,是為軍城。凡險戰之法,以武衝為前,大櫓為衛;材士強弩,翼吾左右。三千人為一屯,必置衝陣,便兵所處。左軍以左,右軍以右,中軍以中,並攻而前。已戰者,還歸屯所,更戰更息,必勝乃已。」武王曰:「善哉!」

무왕이 태공에게 물었다. 「군사를 이끌고 제후의 땅에 깊이 들어가 적과 험한 곳에서 서로 만났다. 우리는 왼쪽이 산이고 오른쪽이 물이며 적은 오른쪽이 산이고 왼쪽이 물이라 우리와 험한 곳을 나누어 맞선다. 우리가 지키면 굳고 싸우면 이기게 하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태공이 말하였다. 「산의 왼쪽에 있으면 급히 산의 오른쪽을 막고 산의 오른쪽에 있으면 급히 산의 왼쪽을 막습니다. 험한 곳에 큰물이 있고 배와 노가 없으면 뗏목 다리인 천황(天潢)으로 우리 삼군을 건넵니다. 이미 건넌 이는 빨리 우리 길을 넓혀 싸울 곳을 편하게 합니다. 무충을 앞뒤로 삼고 그 강노를 벌여 행진이 다 굳게 합니다. 큰길과 골짜기 어귀는 무충으로 끊습니다. 깃발을 높이 세우니 이것이 군성(軍城)입니다. 험한 데서 싸우는 법은 무충을 앞으로 삼고 큰 방패를 호위로 삼으며 재사와 강노가 우리 좌우를 날개처럼 감쌉니다. 삼천 명을 한 둔으로 삼고 반드시 충진을 두어 군사가 있기 편한 곳으로 삼습니다. 좌군은 왼쪽으로, 우군은 오른쪽으로, 중군은 가운데로 함께 치며 나아갑니다. 이미 싸운 이는 둔소로 돌아가 번갈아 싸우고 번갈아 쉬되 반드시 이긴 뒤에야 그칩니다.」 무왕이 「좋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