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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도 견도 — 전보六韜 戰步

무경칠서 — 손자 밖의 여섯 武經七書 · 강태공에 가탁·황석공에 가탁·위료(尉繚)·오기(吳起)·사마양저(司馬穰苴)·이정(李靖) · 전국시대~당 (기원전 4세기~7세기) · 단락 1 · 한자 197자 · 낭독 0.8분

「무경칠서 — 손자 밖의 여섯」 육도 「육도 견도 — 전보」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송나라가 무관을 뽑는 교과서로 정한 일곱 병서 가운데 손자병법을 뺀 여섯. 육도(六韜)는 문왕·무왕이 태공망에게 묻는 문답으로 나라 다스리기에서 수레·기병·야전·물 건너기까지 예순 편, 삼략(三略)은 황석공이 장량에게 주었다는 짧은 세 편, 위료자(尉繚子)는 진나라 앞뒤의 군령과 오·십 편제를 낱낱이 적은 스물네 편, 오자(吳子)는 오기가 위 무후에게 답한 여섯 편, 사마법(司馬法)은 춘추 이전 군례를 전하는 다섯 편, 이위공문대(李衛公問對)는 당 태종과 이정이 기정(奇正)·허실·번한(蕃漢)·공수를 주고받은 세 권이다. 「군사는 흉기다」, 「사람을 이르게 하고 사람에게 이끌리지 않는다」, 「천 장 만 구절이 여러 방법으로 그르치게 한다는 한 구절을 벗어나지 않는다」가 여기서 나왔다. 손자병법 다음에 읽는 병가의 나머지 여섯 갈래를 한 자리에 모았다.

1보병이 수레·기병과 싸우는 법 — 명롱(命籠)

武王問太公曰:「步兵與車騎戰奈何?」太公曰:「步兵與車騎戰者,必依丘陵險阻,長兵強弩居前,短兵弱弩居後,更發更止。敵之車騎雖眾而至,堅陣疾戰,材士強弩,以備我後。」武王曰:「吾無丘陵,又無險阻。敵人之至,既眾且武,車騎翼我兩旁,獵我前後。吾三軍恐懼,亂敗而走,為之奈何?」太公曰:「令我士卒為行馬,木蒺藜,置牛馬隊伍,為四武衝陣;望敵車騎將來,均置蒺莉;掘地匝後,廣深五尺,名曰命籠。人操行馬進步,闌車以為壘,推而前後,立而為屯;材士強弩,備我左右。然後令我三軍,皆疾戰而不解。」武王曰:「善哉!」

무왕이 태공에게 물었다. 「보병이 수레와 기병과 싸우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태공이 말하였다. 「보병이 수레와 기병과 싸우려면 반드시 언덕과 험한 곳에 의지하여 긴 무기와 센 쇠뇌를 앞에 두고 짧은 무기와 약한 쇠뇌를 뒤에 두어 번갈아 쏘고 번갈아 그칩니다. 적의 수레와 기병이 비록 많이 이르러도 굳게 진 치고 빨리 싸우며 재사와 강노로 우리 뒤를 지킵니다.」 무왕이 「우리에게 언덕도 없고 험한 곳도 없는데 적이 이르러 많고 또 무예가 뛰어나 수레와 기병이 우리 양쪽을 감싸고 우리 앞뒤를 사냥하듯 하여 우리 삼군이 두려워 어지러이 패하여 달아나면 어찌해야 하는가」 하니 태공이 말하였다. 「우리 사졸에게 행마와 나무 마름쇠를 만들게 하고 소와 말을 대오에 두어 사무충진을 만듭니다. 적의 수레와 기병이 오는 것을 바라보면 마름쇠를 고르게 두고 뒤를 둘러 땅을 파되 너비와 깊이 다섯 자로 하니 이름하여 명롱(命籠)이라 합니다. 사람마다 행마를 잡고 나아가며 수레를 막아 보루로 삼아 밀어 앞뒤로 하고 세워 둔으로 삼습니다. 재사와 강노로 우리 좌우를 지킵니다. 그런 뒤에 우리 삼군으로 하여금 다 빨리 싸워 풀지 않게 합니다.」 무왕이 「좋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