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무경칠서 — 손자 밖의 여섯 › 오자

오자 — 도국吳子 圖國

무경칠서 — 손자 밖의 여섯 武經七書 · 강태공에 가탁·황석공에 가탁·위료(尉繚)·오기(吳起)·사마양저(司馬穰苴)·이정(李靖) · 전국시대~당 (기원전 4세기~7세기) · 단락 10 · 한자 1,084자 · 낭독 4.3분

「무경칠서 — 손자 밖의 여섯」 오자 「오자 — 도국」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송나라가 무관을 뽑는 교과서로 정한 일곱 병서 가운데 손자병법을 뺀 여섯. 육도(六韜)는 문왕·무왕이 태공망에게 묻는 문답으로 나라 다스리기에서 수레·기병·야전·물 건너기까지 예순 편, 삼략(三略)은 황석공이 장량에게 주었다는 짧은 세 편, 위료자(尉繚子)는 진나라 앞뒤의 군령과 오·십 편제를 낱낱이 적은 스물네 편, 오자(吳子)는 오기가 위 무후에게 답한 여섯 편, 사마법(司馬法)은 춘추 이전 군례를 전하는 다섯 편, 이위공문대(李衛公問對)는 당 태종과 이정이 기정(奇正)·허실·번한(蕃漢)·공수를 주고받은 세 권이다. 「군사는 흉기다」, 「사람을 이르게 하고 사람에게 이끌리지 않는다」, 「천 장 만 구절이 여러 방법으로 그르치게 한다는 한 구절을 벗어나지 않는다」가 여기서 나왔다. 손자병법 다음에 읽는 병가의 나머지 여섯 갈래를 한 자리에 모았다.

1유복을 입고 병법으로 위 문후를 뵙다

吳起儒服以兵機見魏文侯。文侯曰:「寡人不好軍旅之事。」

오기가 유복을 입고 병법으로 위 문후를 뵈었다. 문후가 「과인은 군사의 일을 좋아하지 않소」 하였다.

2「임금께서는 어찌 말씀이 마음과 어긋나십니까」

起曰:「臣以見占隱,以往察來,主君何言與心違?今君四時使斬離皮革,掩以朱漆,畫以丹青,爍以犀象,冬日衣之則不溫,夏日衣之則不涼。為長戟二丈四尺,短戟一丈二尺,革車奄戶,縵輪籠轂,觀之於目則不麗,乘之以田則不輕,不識主君安用此也?若以備進戰退守而不求能用者,譬猶伏雞之搏狸、乳犬之犯虎,雖有鬥心,隨之死矣。昔承桑氏之君,修德廢武,以滅其國;有扈氏之君,恃眾好勇,以喪其社稷。明主鑒玆,必內修文德,外治武備。故當敵而不進,無逮於義矣;僵屍而哀之,無逮於仁矣。」

오기가 말하였다. 「신은 드러난 것으로 숨은 것을 헤아리고 지난 것으로 올 것을 살핍니다. 임금께서는 어찌 말씀이 마음과 어긋나십니까. 지금 임금께서 사철 가죽을 베어 붉은 옻을 칠하고 단청을 그리며 무소 뿔과 상아로 빛나게 하시니, 겨울에 입으면 따뜻하지 않고 여름에 입으면 서늘하지 않습니다. 긴 창 두 길 넉 자와 짧은 창 한 길 두 자를 만들고 가죽 수레로 문을 가리며 바퀴를 씌우고 바퀴통을 감싸시니, 눈으로 보면 곱지 않고 타고 사냥하면 가볍지 않습니다. 임금께서 이것을 어디에 쓰시려는지 모르겠습니다. 나아가 싸우고 물러나 지키는 데 갖추면서 쓸 줄 아는 이를 구하지 않으시면, 비유하자면 알 품은 닭이 살쾡이와 싸우고 젖 먹이는 개가 범을 범하는 것과 같아 싸울 마음은 있어도 따라서 죽을 뿐입니다. 옛날 승상씨의 임금은 덕을 닦고 무를 폐하여 그 나라를 멸하였고, 유호씨의 임금은 무리를 믿고 용맹을 좋아하여 그 사직을 잃었습니다. 밝은 임금은 이것을 거울삼아 반드시 안으로 문덕을 닦고 밖으로 무비를 다스립니다. 그러므로 적을 앞에 두고 나아가지 않는 것은 의에 미치지 못한 것이요, 시체를 앞에 두고 슬퍼하는 것은 인에 미치지 못한 것입니다.」

3서하를 지켜 일흔여섯 번 싸워 예순네 번 온전히 이기다

於是文侯身自布席,夫人捧觴,醮吳起於廟,立為大將,守西河。與諸侯大戰七十六,全勝六十四,餘則鈞解。闢土四面,拓地千里,皆起之功也。

이에 문후가 몸소 자리를 깔고 부인이 술잔을 받들어 사당에서 오기에게 술을 내리고 대장으로 세워 서하를 지키게 하였다. 제후와 크게 일흔여섯 번 싸워 예순네 번 온전히 이기고 나머지는 비겼다. 사방으로 땅을 열어 천 리를 넓혔으니 다 오기의 공이다.

4네 가지 화합하지 못함

吳子曰:「昔之圖國家者,必先教百姓而親萬民。有四不和:不和於國,不可以出軍;不和於軍,不可以出陳;不和於陳,不可以進戰;不和於戰,不可以決勝。是以有道之主,將用其民,必先和而造大事。不敢信其私謀,必告於祖廟,啟於元龜,參之天時,吉乃後舉。民知君之愛其命,惜其死,若此之至,而與之臨難,則士以進死為榮,退生為辱矣。」

오자가 말하였다. 「옛날 나라를 도모한 이는 반드시 먼저 백성을 가르치고 만민을 친하게 하였다. 화합하지 못함이 넷 있으니, 나라에서 화합하지 못하면 군사를 낼 수 없고, 군사에서 화합하지 못하면 진을 칠 수 없으며, 진에서 화합하지 못하면 나아가 싸울 수 없고, 싸움에서 화합하지 못하면 승리를 결단할 수 없다. 그러므로 도 있는 임금이 그 백성을 쓰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화합하게 한 뒤에 큰일을 벌인다. 감히 제 사사로운 꾀를 믿지 않고 반드시 조상의 사당에 고하고 큰 거북에 묻고 하늘의 때를 참작하여 길한 뒤에야 일으킨다. 백성이 임금이 제 목숨을 아끼고 제 죽음을 애석히 여기는 것이 이처럼 지극함을 알고서 그와 함께 어려움에 임하면 군사는 나아가 죽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고 물러나 사는 것을 부끄러움으로 여긴다.」

5도·의·모·요 — 네 가지 덕

吳子曰:「夫道者,所以反本復始;義者,所以行事立功;謀者,所以違害就利;要者,所以保業守成。若行不合道,舉不合義,而處大居貴,患必及之。是以聖人綏之以道,理之以義,動之以禮,撫之以仁。此四德者,修之則興,廢之則衰。故成湯討桀而夏民喜悅,周武伐紂而殷人不非。舉順天人,故能然矣。」

오자가 말하였다. 「도란 근본으로 돌아가 처음을 회복하는 것이요, 의란 일을 행하여 공을 세우는 것이요, 모란 해를 피하고 이로움에 나아가는 것이요, 요란 업을 보전하고 이룬 것을 지키는 것이다. 행실이 도에 맞지 않고 거동이 의에 맞지 않으면서 큰 자리에 처하고 귀한 데 거하면 근심이 반드시 미친다. 그러므로 성인은 도로 편안히 하고 의로 다스리며 예로 움직이고 인으로 어루만진다. 이 네 덕은 닦으면 흥하고 폐하면 쇠한다. 그러므로 성탕이 걸을 치자 하나라 백성이 기뻐하였고 주 무왕이 주왕(紂)을 치자 은나라 사람이 그르다 하지 않았다. 거동이 하늘과 사람에 순하였으므로 그럴 수 있었다.」

6다섯 번 이긴 이는 화를 입고 한 번 이긴 이는 제(帝)가 된다

吳子曰:「凡制國治軍,必教之以禮,勵之以義,使有恥也。夫人有恥,在大足以戰,在小足以守矣。然戰勝易,守勝難。故曰︰『天下戰國,五勝者禍,四勝者弊,三勝者霸,二勝者王,一勝者帝。』是以數勝得天下者稀,以亡者眾。」

오자가 말하였다. 「나라를 다스리고 군사를 다스리는 데는 반드시 예로 가르치고 의로 격려하여 부끄러움이 있게 해야 한다. 사람에게 부끄러움이 있으면 크게는 싸우기에 넉넉하고 작게는 지키기에 넉넉하다. 그러나 싸워 이기기는 쉽고 이김을 지키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천하의 싸우는 나라 가운데 다섯 번 이긴 이는 화를 입고, 네 번 이긴 이는 피폐하며, 세 번 이긴 이는 패자가 되고, 두 번 이긴 이는 왕이 되며, 한 번 이긴 이는 제(帝)가 된다』 하였다. 그러므로 자주 이겨 천하를 얻은 이는 드물고 망한 이는 많다.」

7군사가 일어나는 다섯 까닭과 다섯 이름

吳子曰:「凡兵之所起者有五:一曰爭名,二曰爭利,三曰積惡,四曰內亂,五曰因饑。其名又有五:一曰義兵,二曰強兵,三曰剛兵,四曰暴兵,五曰逆兵。禁暴救亂曰義,恃眾以伐曰強,因怒興師曰剛,棄禮貪利曰暴,國亂人疲、舉事動眾曰逆。五者之數,各有其道:義必以禮服,強必以謙服,剛必以辭服,暴必以詐服,逆必以權服。」

오자가 말하였다. 「군사가 일어나는 까닭이 다섯이니, 첫째 이름을 다툼, 둘째 이익을 다툼, 셋째 악이 쌓임, 넷째 안의 어지러움, 다섯째 굶주림이다. 그 이름이 또 다섯이니, 첫째 의병, 둘째 강병, 셋째 강병(剛兵), 넷째 폭병, 다섯째 역병이다. 포악을 금하고 어지러움을 구하는 것을 의라 하고, 무리를 믿고 치는 것을 강이라 하며, 노여움으로 군사를 일으키는 것을 강(剛)이라 하고, 예를 버리고 이익을 탐하는 것을 폭이라 하며, 나라가 어지럽고 사람이 지쳤는데 일을 벌여 무리를 움직이는 것을 역이라 한다. 다섯 가지에 각기 도가 있으니, 의는 반드시 예로 복종시키고, 강은 반드시 겸손으로 복종시키며, 강(剛)은 반드시 말로 복종시키고, 폭은 반드시 속임으로 복종시키며, 역은 반드시 권도로 복종시킨다.」

8백성을 헤아려 다섯 무리를 가리다

武侯問曰:「願聞治兵、料人、固國之道。」起對曰:「古之明王,必謹君臣之禮,飾上下之儀,安集吏民,順俗而教,簡募良材,以備不虞。昔齊桓募士五萬,以霸諸侯;晉文召為前行四萬,以獲其志;秦繆置陷陣三萬,以服鄰敵。故強國之君,必料其民。民有膽勇氣力者,聚為一卒;樂於進戰效力以顯其忠勇者,聚為一卒;能踰高超遠、輕足善走者,聚為一卒;王臣失位而欲見功於上者,聚為一卒;棄城去守、欲除其醜者,聚為一卒。此五者,軍之練銳也。有此三千人,內出可以決圍,外入可以屠城矣。」

무후가 「군사를 다스리고 사람을 헤아리며 나라를 굳게 하는 도를 듣고 싶다」 하니 오기가 답하였다. 「옛날 밝은 왕은 반드시 임금과 신하의 예를 삼가고 위아래의 의식을 꾸미며 관리와 백성을 편안히 모으고 풍속을 따라 가르치며 좋은 재목을 가려 뽑아 뜻밖의 일에 대비하였습니다. 옛날 제 환공은 군사 오만을 모아 제후의 패자가 되었고, 진(晉) 문공은 앞줄 사만을 불러 그 뜻을 이루었으며, 진(秦) 목공은 진을 무너뜨리는 군사 삼만을 두어 이웃 적을 복종시켰습니다. 그러므로 강한 나라의 임금은 반드시 그 백성을 헤아립니다. 백성 가운데 담력과 용기와 기력이 있는 이를 모아 한 졸로 삼고, 나아가 싸워 힘을 바쳐 제 충용을 드러내기를 즐기는 이를 모아 한 졸로 삼으며, 높은 데를 넘고 먼 데를 뛰어 발이 가볍고 잘 달리는 이를 모아 한 졸로 삼고, 왕의 신하로 자리를 잃어 위에 공을 보이고자 하는 이를 모아 한 졸로 삼으며, 성을 버리고 수비를 떠나 그 부끄러움을 씻고자 하는 이를 모아 한 졸로 삼습니다. 이 다섯이 군사의 정예입니다. 이런 이 삼천 명이 있으면 안에서 나가 포위를 깨뜨릴 수 있고 밖에서 들어가 성을 도륙할 수 있습니다.」

9진은 이미 정해졌고 수비는 이미 굳었으며 싸움은 이미 이겼다

武侯問曰:「願聞陳必定、守必固、戰必勝之道。」起對曰:「立見且可,豈直聞乎?君能使賢者居上,不肖者處下,則陳已定矣;民安其田宅,親其有司,則守已固矣;百姓皆是吾君而非鄰國,則戰已勝矣。」

무후가 「진이 반드시 정해지고 수비가 반드시 굳으며 싸움이 반드시 이기는 도를 듣고 싶다」 하니 오기가 답하였다. 「당장 보실 수 있는데 어찌 듣기만 하시겠습니까. 임금께서 어진 이를 위에 있게 하고 못난 이를 아래에 있게 하시면 진은 이미 정해진 것이요, 백성이 제 밭과 집에 편안하고 제 관리를 친하게 여기면 수비는 이미 굳은 것이요, 백성이 다 우리 임금을 옳다 하고 이웃 나라를 그르다 하면 싸움은 이미 이긴 것입니다.」

10초 장왕은 근심하였는데 임금은 기뻐하십니다

武侯嘗謀事,群臣莫能及,罷朝而有喜色。起進曰:「昔楚莊王嘗謀事,群臣莫能及,罷朝而有憂色。申公問曰:『君有憂色,何也?』曰:『寡人聞之,世不絕聖,國不乏賢。能得其師者王,能得其友者霸。今寡人不才而群臣莫及者,楚國其殆矣。』此楚莊王之所憂而君說之,臣竊懼矣。」於是武侯有慚色。

무후가 일찍이 일을 꾀하는데 뭇 신하가 미치지 못하자 조회를 파하고 기쁜 빛이 있었다. 오기가 나아가 말하였다. 「옛날 초 장왕이 일을 꾀하는데 뭇 신하가 미치지 못하자 조회를 파하고 근심하는 빛이 있었습니다. 신공이 『임금께서 근심하는 빛이 있으시니 어째서입니까』 물으니 『과인이 듣건대 세상에 성인이 끊이지 않고 나라에 어진 이가 모자라지 않으니, 그 스승을 얻을 수 있는 이는 왕이 되고 그 벗을 얻을 수 있는 이는 패자가 된다 하였소. 지금 과인이 재주 없는데 뭇 신하가 미치지 못하니 초나라가 위태롭소』 하였습니다. 이것은 초 장왕이 근심한 바인데 임금께서는 기뻐하시니 신은 속으로 두렵습니다.」 이에 무후가 부끄러운 빛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