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 — 여사吳子 勵士
1엄한 형벌과 밝은 상만으로 이기기에 넉넉한가
武侯問曰:「嚴刑明賞,足以勝乎?」起對曰:「嚴明之事,臣不能悉。雖然,非所恃也。夫發號布令而人樂聞,興師動眾而人樂戰,交兵接刃而人樂死。此三者,人主之所恃也。」
무후가 「엄한 형벌과 밝은 상이 이기기에 넉넉한가」 물으니 오기가 답하였다. 「엄하고 밝게 하는 일은 신이 다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믿을 바는 아닙니다. 호령을 내고 영을 펴면 사람이 듣기를 즐거워하고, 군사를 일으켜 무리를 움직이면 사람이 싸우기를 즐거워하며, 무기를 맞대고 칼날을 겨루면 사람이 죽기를 즐거워하는 것, 이 셋이 임금이 믿을 바입니다.」
2공 있는 이를 잔치하고 공 없는 이를 격려하라
武侯曰:「致之奈何?」對曰:「君舉有功而進饗之,無功而勵之。」
무후가 「어떻게 이르게 하는가」 하니 답하였다. 「임금께서 공 있는 이를 들어 잔치하여 나아가게 하고 공 없는 이를 격려하십시오.」
3사당 뜰의 세 줄 잔치 — 삼 년 뒤 만 명이 스스로 갑옷을 입다
於是武侯設坐廟廷,為三行,饗士大夫。上功坐前行,餚席兼重器、上牢;次功坐中行,餚席、器差減;無功坐後行,餚席無重器。饗畢而出,又頒賜有功者父母妻子於廟門外,亦以功為差。有死事之家,歲使使勞賜其父母,著不忘於心。行之三年,秦人興師,臨於西河,魏士聞之,不待吏令,介冑而奮擊之者以萬數。
이에 무후가 사당 뜰에 자리를 베풀어 세 줄로 하여 사대부를 잔치하였다. 으뜸 공은 앞줄에 앉아 안주와 자리에 귀한 그릇과 큰 희생을 겸하였고, 다음 공은 가운뎃줄에 앉아 안주와 자리와 그릇을 차차 줄였으며, 공 없는 이는 뒷줄에 앉아 안주와 자리에 귀한 그릇이 없었다. 잔치가 끝나 나오면 또 사당 문 밖에서 공 있는 이의 부모와 처자에게 상을 내리되 역시 공으로 차등하였다. 나랏일로 죽은 집이 있으면 해마다 사신을 보내 그 부모를 위로하고 상을 주어 마음에 잊지 않음을 드러냈다. 이렇게 세 해를 행하자 진나라 사람이 군사를 일으켜 서하에 이르렀는데, 위나라 군사가 이 소식을 듣고 관리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갑옷과 투구를 갖추어 떨쳐 치는 이가 만으로 헤아려졌다.
4공 없는 이 오만으로 진나라 오십만을 깨뜨리다
武侯召吳起而謂曰:「子前日之教行矣。」起對曰:「臣聞人有短長,氣有盛衰。君試發無功者五萬人,臣請率以當之,脫其不勝,取笑於諸侯,失權於天下矣。今使一死賊伏於曠野,千人追之,莫不梟視狼顧,何者?恐其暴起而害己也。是以一人投命,足懼千夫。今臣以五萬之眾而為一死賊,率以討之,固難敵矣。」於是武侯從之,兼車五百乘,騎三千匹,而破秦五十萬眾。此勵士之功也。
무후가 오기를 불러 「그대가 전날 가르친 것이 행해졌다」 하니 오기가 답하였다. 「신이 듣건대 사람에게는 장단이 있고 기운에는 성쇠가 있다 합니다. 임금께서 시험 삼아 공 없는 이 오만 명을 내주시면 신이 거느리고 맞서기를 청합니다. 만일 이기지 못하면 제후에게 웃음거리가 되고 천하에 권세를 잃을 것입니다. 지금 죽음을 각오한 도적 하나가 넓은 들에 엎드려 있으면 천 사람이 쫓으면서도 올빼미처럼 두리번거리고 이리처럼 돌아보지 않는 이가 없으니 어째서입니까. 그가 갑자기 일어나 제 몸을 해칠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목숨을 던지면 천 사람을 두렵게 하기에 넉넉합니다. 지금 신이 오만의 무리로 죽음을 각오한 도적 하나를 만들어 거느리고 치면 참으로 당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에 무후가 따라 수레 오백 대와 기병 삼천을 겸하게 하니 진나라 오십만 무리를 깨뜨렸다. 이것이 군사를 격려한 공이다.
5수레가 수레를 잡지 못하면 군사를 깨뜨려도 공이 없다
先戰一日,吳起令三軍曰:「諸吏士當從受敵。車、騎與徒,若車不得車,騎不得騎,徒不得徒,雖破軍,皆無功。」故戰之日,其令不煩而威震天下。
싸우기 하루 전에 오기가 삼군에 영을 내렸다. 「여러 관리와 군사는 마땅히 각기 맞서 적을 받으라. 수레와 기병과 보병이 만약 수레가 수레를 잡지 못하고 기병이 기병을 잡지 못하며 보병이 보병을 잡지 못하면 군사를 깨뜨려도 다 공이 없다.」 그러므로 싸우는 날 그 명령이 번거롭지 않으면서 위엄이 천하를 떨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