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위공문대 — 권상唐李問對 卷上
1고구려를 치는 데 「신은 정병(正兵)으로 하겠습니다」
太宗曰:「高麗數侵新羅,朕遣使諭,不奉詔,將討之,如何?」 靖曰:「探知蓋蘇文自恃知兵,謂中國無能討,故違命。臣請師三萬,擒之。」 太宗曰:「兵少地遙,以何術臨之?」 靖曰:「臣以正兵。」 太宗曰:「平突厥時,用奇兵。今言正兵,何也?」 靖曰:「諸葛亮七擒孟獲,無他道也,正兵而已矣。」 太宗曰:「晉馬隆計涼州,亦是依八陳圖,作偏箱車。地廣,則用鹿角車營;路狹,則為木屋施於車上,且戰且前。信乎!正兵古人所重也。」 靖曰:「臣討突厥,西行數千里,若非正兵,安能致遠?偏箱、鹿角,兵之大要,一則治力,一則前拒,一則束部伍,三者迭相為用,斯馬隆所得古法深矣!」
태종이 말하였다. 「고구려가 자주 신라를 침노하여 짐이 사신을 보내 타일렀으나 조서를 받들지 않으니 장차 칠까 하는데 어떤가.」 이정이 말하였다. 「탐지하니 개소문이 스스로 병법을 안다고 믿어 중국이 칠 수 없다고 여겨 명을 어긴 것입니다. 신이 군사 삼만을 청하여 사로잡겠습니다.」 태종이 「군사는 적고 땅은 먼데 무슨 술법으로 임하겠는가」 하니 이정이 「신은 정병(正兵)으로 하겠습니다」 하였다. 태종이 「돌궐을 평정할 때는 기병(奇兵)을 썼는데 지금 정병(正兵)이라 하니 어째서인가」 하니 이정이 「제갈량이 맹획을 일곱 번 사로잡은 것은 다른 길이 없고 정병(正兵)일 뿐이었습니다」 하였다. 태종이 말하였다. 「진나라 마륭이 양주를 도모할 때도 팔진도에 따라 편상거를 만들었다. 땅이 넓으면 녹각거로 진영을 치고 길이 좁으면 수레 위에 나무 집을 얹어 싸우며 나아갔다. 참으로 정병(正兵)은 옛사람이 무겁게 여긴 것이다.」 이정이 말하였다. 「신이 돌궐을 칠 때 서쪽으로 수천 리를 갔으니 정병(正兵)이 아니면 어찌 멀리 이르렀겠습니까. 편상과 녹각은 군사의 큰 요체로 하나는 힘을 다스리고 하나는 앞을 막으며 하나는 부오를 묶으니, 셋이 번갈아 서로 쓰이는 데서 마륭이 옛 법을 얻은 것이 깊습니다.」
2곽읍의 싸움 — 물러남이 기(奇)가 된 까닭
太宗曰:「朕破宋老生,初交鋒,義師少却。朕親以鐵騎自南原馳下,橫突之。老生兵斷後,大潰,遂擒之。此正兵乎?奇兵乎?」 靖曰:「陛下天縱聖武,非學而能。臣案兵法,自黃帝以來,先正而後奇,先仁義而後權譎。且霍邑之戰,師以義舉者,正也;建成墜馬,右軍少却者,奇也。」 太宗曰:「彼時少却,幾敗大事,曷謂奇邪?」 靖曰:「凡兵以前向為正,後却為奇。且右軍不却,則老生安致之來哉?法曰:『利而誘之,亂而取之。』老生不知兵,恃勇急進,不意斷後,見擒於陛下。此所謂以奇為正也。」 太宗曰:「霍去病暗與孫、吳合,誠有是夫?當右軍之却也,高祖失色;及朕奮擊,反為我利,孫、吳暗合,卿實知言。」 太宗曰:「凡兵却,皆可謂之奇乎?」 靖曰:「不然。夫兵却:旗參差而不齊,鼓大小而不應,令喧嚻而不一,此真敗却也,非奇也;若旗齊鼓應,號令如一,紛紛紜紜,雖退走,非敗也,必有奇也。法曰:『佯北勿追。』又曰:『能而示之不能。』皆奇之謂也。」 太宗曰:「霍邑之戰,右軍少却,其天乎?老生被擒,其人乎?」 靖曰:「若非正兵變為奇,奇兵變為正,則安能勝哉?故善用兵者,奇正在人而已。變而神之,所以推乎天也。」太宗俛首。
태종이 말하였다. 「짐이 송노생을 깨뜨릴 때 처음 맞붙자 의병이 조금 물러났다. 짐이 몸소 철기를 이끌고 남쪽 언덕에서 달려 내려가 가로로 충돌하니 노생의 군사가 뒤가 끊겨 크게 무너져 마침내 사로잡았다. 이것이 정병(正兵)인가 기병(奇兵)인가.」 이정이 말하였다. 「폐하는 하늘이 낸 성스러운 무용이라 배워서 능한 것이 아닙니다. 신이 병법을 살피건대 황제 이래로 정을 먼저 하고 기를 뒤에 하며 인의를 먼저 하고 권모를 뒤에 하였습니다. 또 곽읍의 싸움에서 군사를 의로 일으킨 것은 정이요, 건성이 말에서 떨어져 우군이 조금 물러난 것은 기입니다.」 태종이 「그때 조금 물러나 큰일을 거의 그르쳤는데 어찌 기라 하는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군사는 앞으로 향하는 것을 정으로 삼고 뒤로 물러나는 것을 기로 삼습니다. 또 우군이 물러나지 않았다면 노생이 어찌 나오게 되었겠습니까. 병법에 『이로움으로 꾀고 어지러움을 틈타 취한다』 하였습니다. 노생은 병법을 모르고 용맹을 믿고 급히 나아가다 뒤가 끊길 줄 모르고 폐하께 사로잡혔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기로써 정을 삼는 것입니다.」 태종이 말하였다. 「곽거병이 손·오와 저절로 합하였다더니 참으로 그런 일이 있구나. 우군이 물러날 때 고조께서 낯빛을 잃으셨는데 짐이 떨쳐 치자 도리어 우리에게 이로움이 되었으니 손·오와 저절로 합하였다는 경의 말이 참으로 옳다.」 태종이 「군사가 물러나는 것은 다 기라 할 수 있는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군사가 물러날 때 깃발이 들쭉날쭉 가지런하지 않고 북이 크고 작아 응하지 않으며 호령이 시끄러워 하나가 아니면 이는 참으로 패하여 물러나는 것이지 기가 아닙니다. 깃발이 가지런하고 북이 응하며 호령이 한결같으면 어지러워 보여도 물러나 달아나더라도 패한 것이 아니니 반드시 기가 있습니다. 병법에 『거짓 패하면 쫓지 마라』 하였고 또 『능하면서 능하지 않은 듯 보인다』 하였으니 다 기를 말한 것입니다.」 태종이 「곽읍의 싸움에서 우군이 조금 물러난 것은 하늘인가, 노생이 사로잡힌 것은 사람인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정병(正兵)이 기병(奇兵)으로 변하고 기병(奇兵)이 정병(正兵)으로 변하지 않았다면 어찌 이길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므로 군사를 잘 쓰는 이는 기정이 사람에게 있을 뿐입니다. 변하여 신묘하게 하는 것을 하늘에 돌리는 것입니다.」 태종이 고개를 숙였다.
3기정은 미리 나누는가 임시로 만드는가
太宗曰:「奇正素分之歟?臨時制之歟?」 靖曰:「案曹公《新書》曰:『己二而敵一,則一術為正,一術為奇;己五而敵一,則三術為正,二術為奇。』此言大略爾。唯孫武云:『戰勢,不過奇正,奇正之變,不可勝窮。奇正相生,如循環之無端,孰能窮之?』斯得之矣。安有素分之邪?若士卒未習吾法,偏裨未熟吾令,則必為之二術。教戰時,各認旗鼓,迭相分合,故曰:分合為變,此教戰之術爾。教閱既成,眾知吾法,然後如驅羣羊,由將所指,孰分奇正之別哉?孫武所謂『形人而我無形』,此乃奇正之極致。是以,素分者,教閱也;臨時制變者,不可勝窮也。」 太宗曰:「深乎!深乎!曹公必知之矣!但《新書》所以授諸將而已,非奇正本法。」
태종이 「기정은 평소에 나누는가, 때에 임하여 만드는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조공의 『신서』에 『내가 둘이고 적이 하나면 한 술은 정으로 한 술은 기로 하고, 내가 다섯이고 적이 하나면 세 술은 정으로 두 술은 기로 한다』 하였으니 이는 대략을 말한 것일 뿐입니다. 오직 손무가 『싸움의 형세는 기정에 지나지 않으나 기정의 변화는 이루 다할 수 없다. 기정이 서로 낳는 것이 끝없는 고리 같으니 누가 다하겠는가』 하였으니 이것이 얻은 것입니다. 어찌 평소에 나누는 것이 있겠습니까. 사졸이 우리 법을 익히지 못하고 편비가 우리 명령에 익숙하지 않으면 반드시 두 술로 합니다. 싸움을 가르칠 때 각기 깃발과 북을 알아 번갈아 나누고 합하므로 『나누고 합함이 변화가 된다』 하니 이것은 싸움을 가르치는 술법일 뿐입니다. 가르침과 사열이 이루어져 무리가 우리 법을 알면 그런 뒤에는 양 떼를 몰듯 장수가 가리키는 대로 하니 누가 기정의 구별을 나누겠습니까. 손무가 말한 『남은 드러내고 나는 형체가 없다』는 것이 곧 기정의 지극함입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나눈다는 것은 가르침과 사열이요, 때에 임하여 변화를 만든다는 것은 이루 다할 수 없는 것입니다.」 태종이 「깊도다, 깊도다. 조공이 반드시 알았을 것이다. 다만 『신서』는 여러 장수에게 주려던 것일 뿐 기정의 본법은 아니다」 하였다.
4「기병(奇兵)은 곁을 친다」는 말
太宗曰:「曹公云:『奇兵旁擊。』,卿謂若何?」 靖曰:「臣案曹公註《孫子》曰:『先出合戰為正,後出為奇。』此與旁擊之拘異焉。臣愚謂大眾所合為正,將所自出為奇,烏有先後旁擊之拘哉?」 太宗曰:「吾之正,使敵視以為奇;吾之奇,使敵視以為正。斯所謂『形人』者歟?以奇為正,以正為奇,變化莫測。斯所謂『無形』者歟?」 靖再拜曰:「陛下神聖,迥出古人,非臣所及。」
태종이 「조공이 『기병(奇兵)은 곁을 친다』 하였는데 경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신이 조공의 『손자』 주를 살피니 『먼저 나가 맞붙어 싸우는 것이 정이요 뒤에 나가는 것이 기다』 하였으니 이는 곁을 친다는 얽매임과 다릅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에는 대군이 합하는 것이 정이요 장수가 스스로 내는 것이 기이니 어찌 먼저와 뒤, 곁을 친다는 얽매임이 있겠습니까.」 태종이 말하였다. 「나의 정을 적이 기로 보게 하고 나의 기를 적이 정으로 보게 하는 것이 이른바 『남을 드러낸다』는 것인가. 기로 정을 삼고 정으로 기를 삼아 변화를 헤아릴 수 없는 것이 이른바 『형체가 없다』는 것인가.」 이정이 두 번 절하고 「폐하는 신성하시어 옛사람을 멀리 뛰어넘으시니 신이 미칠 바가 아닙니다」 하였다.
5손무만이 나누고 합함을 할 수 있었다 — 오기의 술법
太宗曰:「分合為變者,奇正安在?」 靖曰:「善用兵者,無不正,無不奇,使敵莫測。故正亦勝,奇亦勝。三軍之士,止知其勝,莫知其所以勝,非變而能通,安能至是哉?分合所出,唯孫武能之,吳起而下,莫可及焉。」 太宗曰:「吳術若何?」 靖曰:「臣請略言之。魏武侯問吳起兩軍相向,起曰:『使賤而勇者前擊,鋒始交而北,北而勿罰。觀敵進取,一坐一起,奔北不追,則敵有謀矣;若悉眾追北,行止縱橫,此敵人不才,擊之勿疑。』臣謂吳術大率多此類,非孫武所謂以正合也。」
태종이 「나누고 합함이 변화가 되면 기정은 어디에 있는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군사를 잘 쓰는 이는 정 아닌 것이 없고 기 아닌 것이 없어 적이 헤아리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정도 이기고 기도 이깁니다. 삼군의 군사는 그 이김만 알고 이기는 까닭은 모르니 변하여 통할 수 있는 이가 아니면 어찌 여기에 이르겠습니까. 나누고 합함이 나오는 것은 오직 손무만이 할 수 있었고 오기 이하는 미치지 못하였습니다.」 태종이 「오기의 술법은 어떠한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신이 대략 말씀드리겠습니다. 위 무후가 오기에게 두 군사가 마주 향한 것을 물으니 오기가 『천하고 용감한 이로 하여금 앞에서 치게 하되 칼날이 처음 맞붙으면 달아나게 하고 달아나도 벌하지 마십시오. 적이 나아가 취하는 것을 보아 한 번 앉고 한 번 일어나며 달아나는 이를 쫓지 않으면 적에게 꾀가 있는 것이요, 만약 온 무리로 달아나는 이를 쫓아 가고 멈춤이 어지러우면 이는 적이 재주 없는 것이니 치기를 의심하지 마십시오』 하였습니다. 신이 보건대 오기의 술법은 대개 이런 류가 많으니 손무가 말한 정으로 합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6「한금호는 기정의 지극함을 어찌 알았겠습니까」 — 부견이 진 까닭
太宗曰:「卿舅韓擒虎,嘗言卿可與論孫、吳,亦奇正之謂乎?」 靖曰:「擒虎安知奇正之極,但以奇為奇,以正為正爾!曾未知奇正相變,循環無窮者也。」 太宗曰:「古人臨陳出奇,攻人不意,斯亦相變之法乎?」 靖曰:「前代戰鬬,多是以小術而勝無術,以片善而勝無善,斯安足以論兵法也!若謝玄之破苻堅,非謝玄之善也,蓋苻堅之不善也。」 太宗顧侍臣,檢〈謝玄傳〉,閱之,曰:「苻堅甚處是不善?」 靖曰:「臣觀《苻堅載記》曰:『秦諸軍皆潰敗,唯慕容垂一軍獨全。堅以千餘騎赴之,垂子寶勸垂殺堅,不果。』此有以見秦軍之亂,慕容垂獨全,蓋堅為垂所陷明矣!夫為人所陷而欲勝敵,不亦難乎?臣固曰:無術焉,苻堅之類是也。」 太宗曰:「《孫子》謂:『多筭勝少筭』,有以知少筭勝無筭。凡事皆然。」
태종이 「경의 외숙 한금호가 일찍이 경과 손·오를 논할 만하다 하였는데 이것도 기정을 말한 것인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금호가 어찌 기정의 지극함을 알았겠습니까. 다만 기를 기로 여기고 정을 정으로 여겼을 뿐이니 기정이 서로 변하여 끝없이 도는 것은 알지 못하였습니다.」 태종이 「옛사람이 진에 임하여 기를 내어 뜻하지 않은 곳을 친 것도 서로 변하는 법인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전대의 싸움은 흔히 작은 술법으로 술법 없는 이를 이기고 한 조각 잘함으로 잘함 없는 이를 이긴 것이니 어찌 병법을 논하기에 넉넉하겠습니까. 사현이 부견을 깨뜨린 것은 사현이 잘한 것이 아니라 부견이 잘하지 못한 것입니다.」 태종이 시신을 돌아보아 「사현전」을 찾아 읽고 「부견이 어디가 잘하지 못하였는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신이 『부견재기』를 보니 『진나라 여러 군사가 다 무너졌는데 오직 모용수의 한 군사만 홀로 온전하였다. 부견이 천여 기병으로 그에게 달려가니 모용수의 아들 보가 아비에게 부견을 죽이라고 권하였으나 이루지 못하였다』 하였습니다. 여기서 진나라 군사가 어지러운데 모용수만 홀로 온전한 것을 보면 부견이 모용수에게 빠진 것이 분명합니다. 남에게 빠지고서 적을 이기려 하니 어렵지 않겠습니까. 신이 그러므로 술법이 없다 한 것이니 부견의 류가 그것입니다.」 태종이 「『손자』에 『셈이 많은 이가 셈이 적은 이를 이긴다』 하였으니 셈이 적은 이가 셈이 없는 이를 이기는 것도 알 수 있다. 모든 일이 다 그러하다」 하였다.
7『악기문』인가 『악기문(握機文)』인가
太宗曰:「黃帝兵法,世傳《握奇文》,或謂為《握機文》,何謂也?」 靖曰:「奇音機,故或傳為機,其義則一。考其詞云:『四為正,四為奇,餘奇為握機。』奇,餘零也,因此音機。臣愚謂兵無不是機,安在乎握而言也?當為餘奇則是。夫正兵受之於君,奇兵將所自出。法曰:『令素行以教其民者,則民服。』此受之於君者也。又曰:『兵不豫言,君命有所不受。』此將所自出者也。凡將,正而無奇,則守將也;奇而無正,則鬬將也;奇正皆得,國之輔也。是故,握機、握奇,本無二法,在學者兼通而已。」
태종이 「황제의 병법을 세상에서 『악기문(握奇文)』이라 전하고 더러 『악기문(握機文)』이라 하는데 무슨 뜻인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기(奇)의 음이 기(機)이므로 더러 기(機)로 전하니 그 뜻은 하나입니다. 그 글을 상고하면 『넷은 정이요 넷은 기이며 남은 기를 악기(握機)라 한다』 하였습니다. 기(奇)는 남은 나머지이니 그래서 음이 기(機)입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에는 군사는 기틀 아닌 것이 없으니 어찌 쥔다(握)고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마땅히 남은 기(餘奇)로 해야 옳습니다. 정병(正兵)은 임금에게서 받고 기병(奇兵)은 장수가 스스로 냅니다. 병법에 『명령이 평소에 행해져 그 백성을 가르친 이는 백성이 복종한다』 하였으니 이는 임금에게서 받는 것입니다. 또 『군사는 미리 말하지 않으니 임금의 명도 받지 않는 것이 있다』 하였으니 이는 장수가 스스로 내는 것입니다. 장수가 정만 있고 기가 없으면 지키는 장수요, 기만 있고 정이 없으면 싸우는 장수요, 기정을 다 얻으면 나라의 보좌입니다. 그러므로 악기와 악기(握奇)는 본디 두 법이 아니니 배우는 이가 겸하여 통하는 데 있을 뿐입니다.」
8진의 수는 아홉, 가운데 빈 데를 대장이 쥔다
太宗曰:「陳數有九,中心零者,大將握之。四面八向,皆取準焉。陳間容陳,隊間容隊。以前為後,以後為前。進無速奔,退無遽走。四頭八尾,觸處為首,敵衝其中,兩頭皆救。數起於五,而終於八,此何謂也?」 靖曰:「諸葛亮以石縱橫,布為八行,方陳之法即此圖也。臣嘗教閱,必先此陳。世所傳《握機文》,蓋得其粗也。」
태종이 말하였다. 「진의 수가 아홉인데 가운데 빈 데는 대장이 쥔다. 사면 팔방이 다 여기서 기준을 취한다. 진 사이에 진을 담고 대 사이에 대를 담는다. 앞을 뒤로 삼고 뒤를 앞으로 삼는다. 나아가되 빨리 달리지 않고 물러나되 급히 달아나지 않는다. 머리 넷 꼬리 여덟에 부딪치는 곳이 머리가 되어 적이 그 가운데를 충돌하면 두 머리가 다 구한다. 수가 다섯에서 일어나 여덟에서 끝나니 이것은 무슨 뜻인가.」 이정이 말하였다. 「제갈량이 돌을 가로세로 여덟 줄로 벌였으니 방진의 법이 곧 이 그림입니다. 신이 일찍이 가르치고 사열할 때 반드시 이 진을 먼저 하였습니다. 세상에 전하는 『악기문』은 대개 그 거친 것을 얻은 것입니다.」
9팔진은 본디 하나 — 황제의 정전법에서 나왔다
太宗曰:「天地風雲,龍虎鳥蛇,斯八陳何義也?」 靖曰:「傳之者,誤也。古人祕藏此法,故詭設八名爾。八陳本一也,分為八焉。若天地者,本乎旗號;風雲者,本乎旛名;龍虎鳥蛇者,本乎隊伍之別。後世誤傳,詭設物象,何止八而已乎?」 太宗曰:「數起於五,而終於八,則非設象,實古制也。卿試陳之。」 靖曰:「臣案黃帝始立丘井之法,因以制兵,故井分四道,八家處之,其形井字,開方九焉。五為陳法,四為間地,此所謂起於五也。虛其中,大將居之,環其四面,諸部連繞,此所謂終於八也。及乎變化制敵,則『紛紛紜紜,鬬亂而法不亂;渾渾沌沌,形圓而勢不散』,此所謂散而成八,復而為一者也。」 太宗曰:「深乎!黃帝之制兵也。後世雖有天智神略,莫能出其鬪閾,降此,孰有繼之者乎?」 靖曰:「周之始興,則太公實繕其法。始於岐都,以建井畝;戎車三百輛,虎賁三百人,以立軍制;六步七步,六伐七伐,以教戰法。陳師牧野,太公以百夫致師,以成武功,以四萬五千人,勝紂七十萬眾。周《司馬法》,本太公者也。太公既沒,齊人得其遺法。至桓公霸天下,任管仲,復修太公法,謂之節制之師,諸侯畢服。」 太宗曰:「儒者多言管仲霸臣而已,殊不知兵法乃本於王制也。諸葛亮王佐之才,自比管、樂,以此知管仲亦王佐也。但周衰時,王不能用,故假齊興師爾。」 靖再拜曰:「陛下神聖,知人如此。老臣雖死,無媿昔賢也。臣請言管仲制齊之法:三分齊國以為三軍。五家為軌,故五人為伍;十軌無里,故五十人為小戎;四里為連,故二百人為卒;十連為鄉,故二千人為旅;五鄉一帥,故萬人為軍。亦由《司馬法》:『一帥五旅,一旅五卒』之義焉。其實皆得太公之遺法。」
태종이 「천·지·풍·운·용·호·조·사, 이 팔진은 무슨 뜻인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전한 이가 잘못한 것입니다. 옛사람이 이 법을 비밀히 감추었으므로 거짓으로 여덟 이름을 두었을 뿐입니다. 팔진은 본디 하나인데 여덟으로 나눈 것입니다. 천지란 깃발의 이름에 근본하고 풍운이란 번의 이름에 근본하며 용호조사란 대오의 구별에 근본합니다. 후세에 잘못 전하여 거짓으로 물상을 두었으니 어찌 여덟에 그치겠습니까.」 태종이 「수가 다섯에서 일어나 여덟에서 끝난다면 물상을 둔 것이 아니라 실로 옛 제도다. 경이 시험 삼아 말해 보라」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신이 살피건대 황제가 처음 구정(丘井)의 법을 세우고 그로써 군사를 제도하였으므로 정(井)을 네 길로 나누어 여덟 집이 사니 그 모양이 정(井) 자라 모난 것을 열면 아홉입니다. 다섯은 진법이 되고 넷은 사이 땅이 되니 이것이 이른바 다섯에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를 비워 대장이 거하고 그 사면을 둘러 여러 부가 잇대어 두르니 이것이 이른바 여덟에서 끝난다는 것입니다. 변화하여 적을 제어하는 데 이르면 『어지러이 섞여 싸움이 어지러워도 법은 어지럽지 않고, 혼돈하여 형체가 둥글어도 형세는 흩어지지 않는다』 하니 이것이 이른바 흩어져 여덟이 되고 돌아와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태종이 「깊도다, 황제의 군사 제도여. 후세에 하늘 같은 지혜와 신묘한 책략이 있어도 그 문지방을 넘지 못하였다. 이 아래로 누가 이은 이가 있는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주나라가 처음 일어날 때 태공이 실로 그 법을 닦았습니다. 기의 도읍에서 시작하여 정전을 세우고 융거 삼백 대와 호분 삼백 명으로 군제를 세우며 여섯 걸음 일곱 걸음, 여섯 번 치고 일곱 번 치는 것으로 싸움의 법을 가르쳤습니다. 목야에 군사를 벌이고 태공이 백 명으로 싸움을 걸어 무공을 이루었으니 사만 오천 명으로 주왕(紂)의 칠십만 무리를 이겼습니다. 주나라의 『사마법』은 태공에게 근본한 것입니다. 태공이 죽은 뒤 제나라 사람이 그 남긴 법을 얻었습니다. 환공이 천하의 패자가 되어 관중을 맡기고 다시 태공의 법을 닦았으니 이를 절제의 군사라 하여 제후가 다 복종하였습니다.」 태종이 「유자들은 흔히 관중이 패자의 신하일 뿐이라 하고 병법이 곧 왕제에 근본한 줄은 전혀 모른다. 제갈량은 왕을 도울 재목으로 스스로 관중과 악의에 견주었으니 이로써 관중도 왕을 도울 이였음을 알겠다. 다만 주나라가 쇠할 때 왕이 쓰지 못하였으므로 제나라를 빌려 군사를 일으켰을 뿐이다」 하였다. 이정이 두 번 절하고 말하였다. 「폐하는 신성하시어 사람을 아심이 이와 같으니 노신은 죽어도 옛 어진 이에게 부끄럽지 않습니다. 신이 관중이 제나라를 제도한 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나라를 셋으로 나누어 삼군으로 삼았습니다. 다섯 집이 궤(軌)가 되므로 다섯 사람이 오가 되고, 열 궤가 리(里)가 되므로 쉰 사람이 소융이 되며, 네 리가 연(連)이 되므로 이백 사람이 졸이 되고, 열 연이 향(鄉)이 되므로 이천 사람이 여가 되며, 다섯 향에 수(帥) 하나이므로 만 사람이 군이 됩니다. 역시 『사마법』의 『한 수에 다섯 여, 한 여에 다섯 졸』의 뜻에 말미암은 것입니다. 실은 다 태공이 남긴 법을 얻은 것입니다.」
10『사마법』과 병가의 세 문·네 종류
太宗曰:「《司馬法》,人言穰苴所述,是歟?否也?」 靖曰:「案〈史記.穰苴傳〉,齊景公時,穰苴善用兵,敗燕、晉之師,景公尊為司馬之官,由是稱為司馬穰苴,子孫號司馬氏。至齊威王,追論古司馬法,又述穰苴所學,遂有《司馬穰苴書》數十篇。今世所傳兵家者流,又分權謀、形勢、陰陽、技巧四種,皆出司馬法也。」 太宗曰:「漢張良、韓信,序次兵法,凡百八十二家,刪取要用,定著三十五家。今失其傳,何也?」 靖曰:「張良所學,太公《六韜》、《三略》是也;韓信所學,穰苴、孫武是也。然大體不出三門、四種而已。」 太宗曰:「何謂三門?」 靖曰:「臣案太公《謀》八十一篇,所謂陰謀不可以言窮;太公《言》七十一篇,不可以兵窮;太公《兵》八十五篇,不可以財窮。此三門也。」 太宗曰:「何謂四種?」 靖曰:「漢任宏所論是也。凡兵家流,權謀為一種,形勢為一種,及陰陽、技巧二種,此四種也。」
태종이 「『사마법』은 사람들이 양저가 지었다 하는데 그런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사기』 「양저전」을 살피면 제 경공 때 양저가 용병을 잘하여 연·진의 군사를 깨뜨리니 경공이 사마의 벼슬로 높였으므로 이로 말미암아 사마양저라 일컬었고 자손이 사마씨라 하였습니다. 제 위왕에 이르러 옛 사마법을 추론하고 또 양저가 배운 바를 서술하여 마침내 『사마양저서』 수십 편이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 세상에 전하는 병가의 류를 또 권모·형세·음양·기교 네 종류로 나누는데 다 사마법에서 나왔습니다.」 태종이 「한나라 장량·한신이 병법을 차례 지어 모두 백팔십이 가에서 요긴한 것을 깎아 취하여 서른다섯 가를 정하였는데 지금 그 전함을 잃은 것은 어째서인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장량이 배운 것은 태공의 『육도』·『삼략』이요 한신이 배운 것은 양저·손무입니다. 그러나 대체로 세 문과 네 종류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태종이 「무엇을 세 문이라 하는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신이 살피건대 태공의 『모』 팔십일 편은 이른바 음모라 말로 다할 수 없고, 태공의 『언』 칠십일 편은 군사로 다할 수 없으며, 태공의 『병』 팔십오 편은 재물로 다할 수 없으니 이것이 세 문입니다.」 태종이 「무엇을 네 종류라 하는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한나라 임굉이 논한 것입니다. 병가의 류로 권모가 한 종류, 형세가 한 종류, 음양·기교 두 종류이니 이것이 네 종류입니다.」
11『사마법』이 사냥을 첫머리에 둔 까닭
太宗曰:「《司馬法》首序蒐狩,何也?」 靖曰:「順其時,而要之以神,重其事也。周禮最為大政,成有岐陽之蒐,康有酆宮之朝,穆有塗山之會,此天子之事也。及周衰,齊桓有昭陵之師,晉文有踐土之盟,此諸侯奉行天子之事也。其實用九伐之法,以威不恪,假之以朝會,因之以巡狩,訓之以甲兵;言無事兵不妄舉,必於農隙,不忘武備也。故首序蒐狩,不其深乎?」
태종이 「『사마법』이 첫머리에 수(蒐)와 수(狩)의 사냥을 서술한 것은 어째서인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그 때를 따르되 신으로 요약하여 그 일을 무겁게 한 것입니다. 『주례』에 가장 큰 정사이니 성왕에게 기양의 수가 있었고 강왕에게 풍궁의 조회가 있었으며 목왕에게 도산의 모임이 있었으니 이는 천자의 일입니다. 주나라가 쇠하자 제 환공에게 소릉의 군사가 있었고 진 문공에게 천토의 맹세가 있었으니 이는 제후가 천자의 일을 받들어 행한 것입니다. 실은 구벌의 법을 써서 공손하지 않은 이를 위협하되 조회를 빌리고 순수에 따라 갑병으로 훈련한 것이니, 일이 없으면 군사를 함부로 일으키지 않고 반드시 농한기에 하되 무비를 잊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첫머리에 사냥을 서술한 것이 깊지 않습니까.」
12초나라의 이광(二廣) 제도와 주나라 제도
太宗曰:「《春秋》楚子二廣之法云:『百官象物而動,軍政不戒而備。』此亦得周制與?」 靖曰:「案左氏說:楚子乘廣三十乘,廣有一卒,卒偏之兩。軍行,右轅,以轅為法,故挾轅而戰,皆周制也。臣謂百人曰卒,五十人曰兩,此是每車一乘,用士百五十人,比周制差多爾。周一乘,步卒七十二人,甲士三人。以二十五人為一甲,凡三甲,共七十五人。楚,山澤之國,車少而人多,分為三隊,則與周制同矣。」
태종이 「『춘추』에 초자의 이광의 법에 『백관이 물상을 본떠 움직이고 군정이 경계하지 않아도 갖추어진다』 하였는데 이것도 주나라 제도를 얻은 것인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좌씨의 설을 살피건대 초자가 타는 광이 삼십 승이고 광에 졸 하나가 있으며 졸은 편의 양(兩)입니다. 군사가 갈 때 오른쪽 끌채로 하여 끌채를 법으로 삼으므로 끌채를 끼고 싸우니 다 주나라 제도입니다. 신이 생각건대 백 사람을 졸이라 하고 쉰 사람을 양이라 하니 이는 수레 한 승마다 군사 백오십 명을 쓰는 것이라 주나라 제도에 견주면 조금 많을 뿐입니다. 주나라는 한 승에 보졸 일흔둘, 갑사 셋입니다. 스물다섯 사람을 한 갑으로 하여 모두 세 갑이니 함께 일흔다섯 사람입니다. 초나라는 산과 늪의 나라라 수레가 적고 사람이 많아 세 대로 나누면 주나라 제도와 같습니다.」
13순오가 수레를 헐고 보병으로 한 것
太宗曰:「春秋荀吳伐狄,毀車為行,亦正兵歟?奇兵歟?」 靖曰:「荀吳用車法爾,雖舍車而法在其中焉。一為左角,一為右角,一為前拒,分為三隊,此一乘法也,千萬乘皆然。臣案曹公《新書》云:『攻車七十五人,前拒一隊,左右角二隊;守車一隊,炊子十人,守裝五人,廄養五人,樵汲五人,共二十五人。攻守二乘,凡百人。興兵十萬,用車千乘,輕重二千。』此大率孫、吳之舊法也。又觀漢魏之間軍制:五車為隊,僕射一人;十車為師,率長一人;凡車千乘,將吏二人。多多倣此。臣以今法參用之,則跳盪,騎兵也;戰鋒隊,步騎相半也;駐隊,兼車乘而出也。臣西討突厥,越險數千里,此制未嘗敢易。蓋古法節制,信可重焉。」
태종이 「춘추에 순오가 적을 칠 때 수레를 헐고 보병 대열로 한 것은 정병(正兵)인가 기병(奇兵)인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순오는 수레의 법을 썼을 뿐이니 수레를 버렸어도 법은 그 안에 있습니다. 하나는 왼쪽 모서리, 하나는 오른쪽 모서리, 하나는 앞막이로 세 대로 나눈 것이 한 승의 법이니 천만 승이 다 그러합니다. 신이 조공의 『신서』를 살피니 『공거는 일흔다섯 사람으로 앞막이 한 대와 좌우 모서리 두 대이며, 수거는 한 대로 밥 짓는 이 열, 장비 지키는 이 다섯, 마구간 기르는 이 다섯, 나무하고 물 긷는 이 다섯으로 모두 스물다섯이다. 공거와 수거 두 승이 모두 백 사람이다. 군사 십만을 일으키면 수레 천 승에 가볍고 무거운 것 이천이다』 하였으니 이는 대개 손·오의 옛 법입니다. 또 한·위 사이의 군제를 보면 수레 다섯이 대가 되어 복야 한 사람, 수레 열이 사가 되어 솔장 한 사람, 수레 천 승에 장리 두 사람이니 대개 이것을 본떴습니다. 신이 지금 법으로 참작하여 쓰면 도탕은 기병이요, 전봉대는 보병과 기병이 반반이요, 주대는 수레를 겸하여 나가는 것입니다. 신이 서쪽으로 돌궐을 칠 때 험한 곳 수천 리를 넘었으나 이 제도를 감히 바꾼 적이 없습니다. 옛 법의 절제는 참으로 무겁게 여길 만합니다.」
14번과 한의 수자리는 각기 법을 달리하라
太宗幸靈州,迴,召靖賜坐,曰:「朕命道宗及阿史那社尒等討薛延陁,而鐵勒諸部乞置漢官,朕皆從其請。延陁西走,恐為後患,故遣李勣討之。今荒方悉平,然諸部蕃漢雜處,以何道經久,使得兩全安之?」 靖曰:「陛下勑自突厥至回紇部落,凡置驛六十六處,以通斥候,斯已得策矣。然臣愚以謂漢戍宜自為一法,蕃落宜自為一法,教習各異,勿使混同。或遇寇至,則密勑主將,臨時變號易服,出奇擊之。」 太宗曰:「何道也?」 靖曰:「此所謂『多方以誤之』之術也。蕃而示之漢,漢而示之蕃,彼不知蕃漢之別,則莫能測我攻守之計矣。善用兵者,先為不可測,則敵乖其所之也。」 太宗曰:「正合朕意。卿可密教邊將,只以此蕃漢,便見奇正之法矣。」 靖再拜曰:「聖慮天縱,聞一知十,臣安能極其說哉!」
태종이 영주에 갔다 돌아와 이정을 불러 자리를 내리고 말하였다. 「짐이 도종과 아사나사이 등에게 명하여 설연타를 치게 하였더니 철륵의 여러 부락이 한관(漢官)을 두기를 청하기에 짐이 다 그 청을 따랐다. 연타가 서쪽으로 달아나 뒷근심이 될까 하여 이적을 보내 치게 하였다. 지금 변방이 다 평정되었으나 여러 부락에 번과 한이 섞여 사니 무슨 도로 오래도록 둘 다 온전히 편안하게 하겠는가.」 이정이 말하였다. 「폐하께서 돌궐에서 회흘 부락까지 역참 예순여섯 곳을 두어 척후를 통하게 하셨으니 이미 좋은 계책을 얻으셨습니다. 그러나 신의 어리석은 생각에는 한의 수자리는 스스로 한 법을 삼고 번의 부락은 스스로 한 법을 삼아 가르침과 익힘을 각기 달리하여 뒤섞이지 않게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혹 도적이 이르면 주장에게 은밀히 칙명을 내려 때에 임하여 호를 바꾸고 옷을 바꾸어 기병(奇兵)을 내어 치게 하십시오.」 태종이 「무슨 도인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여러 방법으로 그르치게 한다』는 술법입니다. 번이면서 한으로 보이고 한이면서 번으로 보이면 저들은 번과 한의 구별을 모르니 우리의 치고 지키는 계책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군사를 잘 쓰는 이는 먼저 헤아릴 수 없게 하니 적이 갈 바를 어그러뜨립니다.」 태종이 「바로 짐의 뜻에 맞다. 경은 은밀히 변장에게 가르치라. 이 번과 한만으로도 기정의 법을 볼 수 있다」 하였다. 이정이 두 번 절하고 「성상의 헤아림은 하늘이 내신 것이라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아시니 신이 어찌 그 설을 다하겠습니까」 하였다.
15제도 있는 군사는 용렬한 장수라도 패하지 않는다
太宗曰:「諸葛亮言:『有制之兵,無能之將,不可敗也;無制之兵,有能之將,不可勝也。』朕疑此談非極致之論。」 靖曰:「武侯有所激云爾。臣案《孫子》曰:『教道不明,吏卒無常,陳兵縱橫,曰亂。』自古亂軍引勝,不可勝紀。夫教道不明者,言教閱無古法也;吏卒無常者,言將臣權任無久職也;亂軍引勝者,言己自潰敗,非敵勝之也。是以武侯言:兵卒有制,雖庸將未敗;若兵卒自亂,雖賢將危之,又何疑焉?」 太宗曰:「教閱之法,信不可忽。」 靖曰:「教得其道,則士樂為用;教不得法,雖朝督暮責,無益於事矣。臣所以區區古制,皆纂以圖者,庶乎成有制之兵也。」 太宗曰:「卿為我擇古陳法,悉圖以上。」
태종이 「제갈량이 『제도 있는 군사는 무능한 장수라도 패하게 할 수 없고, 제도 없는 군사는 유능한 장수라도 이기게 할 수 없다』 하였는데 짐은 이 말이 지극한 논의는 아닌가 의심한다」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무후가 격하여 그렇게 말한 것일 뿐입니다. 신이 『손자』를 살피니 『가르치는 도가 밝지 않고 관리와 군졸이 일정하지 않으며 진의 군사가 어지러운 것을 난이라 한다』 하였습니다. 예부터 어지러운 군사가 승리를 끌어들인 것은 이루 적을 수 없습니다. 가르치는 도가 밝지 않다는 것은 가르침과 사열에 옛 법이 없다는 말이요, 관리와 군졸이 일정하지 않다는 것은 장수의 권한과 임무에 오랜 직책이 없다는 말이요, 어지러운 군사가 승리를 끌어들인다는 것은 제 스스로 무너져 패한 것이지 적이 이긴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무후가 군졸에 제도가 있으면 용렬한 장수라도 패하지 않고 군졸이 스스로 어지러우면 어진 장수라도 위태롭다 한 것이니 또 무엇을 의심하겠습니까.」 태종이 「가르치고 사열하는 법은 참으로 소홀히 할 수 없다」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가르침이 그 도를 얻으면 군사가 즐겨 쓰이고, 가르침이 법을 얻지 못하면 아침에 감독하고 저녁에 꾸짖어도 일에 보탬이 없습니다. 신이 옛 제도에 정성을 다하여 다 그림으로 엮은 것은 제도 있는 군사를 이루기를 바라서입니다.」 태종이 「경은 나를 위해 옛 진법을 가려 다 그려 올리라」 하였다.
16번의 말은 기병(奇兵)이고 한의 쇠뇌는 정병(正兵)인가
太宗曰:「蕃兵唯勁馬奔衝,此奇兵歟?漢兵唯強弩犄角,此正兵歟?」 靖曰:「案《孫子》云:『善用兵者,求之於勢,不貴於人,故能擇人而任勢。』夫所謂擇人者,各隨蕃漢所長而戰也。蕃長於馬,馬利乎速鬬;漢長於弩,弩利乎緩戰。此自然各任其勢也,然非奇正所分。臣前曾部蕃漢必變號易服者,奇正相生之法也。馬亦有正,弩亦有奇,何常之有哉?」 太宗曰:「卿更細言其術。」 靖曰:「先形之,使敵從之,是其術也。」 太宗曰:「朕悟之矣。《孫子》曰:『形兵之極,至於無形。』又曰:『因形以措勝於眾,眾不能知。』其此之謂乎!」 靖再拜曰:「深乎!陛下聖慮,已思過半矣。」
태종이 「번의 군사는 오직 굳센 말로 달려 충돌하니 이는 기병(奇兵)인가. 한의 군사는 오직 강노로 기각을 이루니 이는 정병(正兵)인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손자』를 살피니 『군사를 잘 쓰는 이는 형세에서 구하고 사람에게 요구하지 않으므로 사람을 가려 형세에 맡길 수 있다』 하였습니다. 이른바 사람을 가린다는 것은 각기 번과 한의 장기를 따라 싸우는 것입니다. 번은 말에 능하니 말은 빨리 싸우는 데 이롭고, 한은 쇠뇌에 능하니 쇠뇌는 느린 싸움에 이롭습니다. 이는 절로 각기 그 형세에 맡기는 것이지 기정으로 나뉘는 것은 아닙니다. 신이 앞서 번과 한이 반드시 호를 바꾸고 옷을 바꾸게 한 것은 기정이 서로 낳는 법입니다. 말에도 정이 있고 쇠뇌에도 기가 있으니 어찌 일정함이 있겠습니까.」 태종이 「경은 그 술법을 더 자세히 말하라」 하니 이정이 「먼저 드러내어 적이 따르게 하는 것이 그 술법입니다」 하였다. 태종이 「짐이 깨달았다. 『손자』에 『군사를 드러냄의 극치는 형체가 없는 데 이른다』 하였고 또 『형체에 따라 무리에게 승리를 두니 무리는 알지 못한다』 하였으니 이것을 이른 것인가」 하니 이정이 두 번 절하고 「깊도다, 폐하의 성스러운 헤아림이 이미 반을 넘어 생각하셨습니다」 하였다.
17「오랑캐로 오랑캐를 치는 것이 중국의 형세」
太宗曰:「近契丹、奚皆內屬,置松漠、饒樂二都督,統於安北都護,朕用薛萬徹,如何?」 靖曰:「萬徹不如阿史那社尒及執失思力、契苾何力,此皆蕃臣之知兵者也。因常與之言松漠、饒樂山川道路,蕃情逆順,遠至于西域部落十數種,歷歷可信。臣教之以陳法,無不點頭服義。望陛下任之勿疑。若萬徹,則勇而無謀,難以獨任。」 太宗笑曰:「蕃人皆為卿役使。古人云:『以蠻夷攻蠻夷,中國之勢也。』卿得之矣。」
태종이 「근래 거란과 해가 다 내속하여 송막·요락 두 도독부를 두고 안북도호에 통솔하게 하였는데 짐이 설만철을 쓰려 하니 어떤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만철은 아사나사이와 집실사력·계필하력만 못하니 이들은 다 병법을 아는 번의 신하입니다. 늘 그들과 송막·요락의 산천과 길, 번의 정세와 순역을 이야기하였는데 멀리 서역 부락 십수 종까지 낱낱이 믿을 만합니다. 신이 진법을 가르치니 고개를 끄덕여 의에 복종하지 않는 이가 없었습니다. 폐하께서는 맡기시고 의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만철은 용감하나 꾀가 없어 홀로 맡기기 어렵습니다.」 태종이 웃으며 「번인이 다 경에게 부림을 받는구나. 옛사람이 『오랑캐로 오랑캐를 치는 것이 중국의 형세』라 하였는데 경이 얻었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