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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위공문대 — 권중唐李問對 卷中

무경칠서 — 손자 밖의 여섯 武經七書 · 강태공에 가탁·황석공에 가탁·위료(尉繚)·오기(吳起)·사마양저(司馬穰苴)·이정(李靖) · 전국시대~당 (기원전 4세기~7세기) · 단락 18 · 한자 3,467자 · 낭독 13.9분

「무경칠서 — 손자 밖의 여섯」 이위공문대 「이위공문대 — 권중」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송나라가 무관을 뽑는 교과서로 정한 일곱 병서 가운데 손자병법을 뺀 여섯. 육도(六韜)는 문왕·무왕이 태공망에게 묻는 문답으로 나라 다스리기에서 수레·기병·야전·물 건너기까지 예순 편, 삼략(三略)은 황석공이 장량에게 주었다는 짧은 세 편, 위료자(尉繚子)는 진나라 앞뒤의 군령과 오·십 편제를 낱낱이 적은 스물네 편, 오자(吳子)는 오기가 위 무후에게 답한 여섯 편, 사마법(司馬法)은 춘추 이전 군례를 전하는 다섯 편, 이위공문대(李衛公問對)는 당 태종과 이정이 기정(奇正)·허실·번한(蕃漢)·공수를 주고받은 세 권이다. 「군사는 흉기다」, 「사람을 이르게 하고 사람에게 이끌리지 않는다」, 「천 장 만 구절이 여러 방법으로 그르치게 한다는 한 구절을 벗어나지 않는다」가 여기서 나왔다. 손자병법 다음에 읽는 병가의 나머지 여섯 갈래를 한 자리에 모았다.

1「천 장 만 구절이 『남을 이르게 하고 남에게 이끌리지 않는다』를 벗어나지 않는다」

太宗曰:「朕觀諸兵書,無出孫武;孫武十三篇,無出虛實。夫用兵,識虛實之勢,則無不勝焉。今諸將中,但能言『背實擊虛』。及其臨敵,則鮮識虛實者。蓋不能致人,而反為敵所致故也。如何?卿悉為諸將言其要。」 靖曰:「先教之以奇正相變之術,然後語之以虛實之形,可也。諸將多不知以奇為正,以正為奇,且安識虛是實,實是虛哉!」 太宗曰:「『策之而知得失之計,作之而知動靜之理,形之而知死生之地,角之而知有餘不足之處。』,此則奇正在我,虛實在敵歟?」 靖曰:「奇正者,所以致敵之虛實也。敵實則我必以正,敵虛則我必為奇。苟將不知奇正,則雖知敵虛實,安能致之哉?臣奉詔,但教諸將以奇正,然後虛實自知焉。」 太宗曰:「以奇為正者,敵意其奇,則吾正擊之;以正為奇者,敵意其正,則吾奇擊之。使敵勢常虛,我勢常實。當以此法授諸將,使易曉爾。」 靖曰:「千章萬句,不出乎『致人而不致於人』而已。臣當以此教諸將。」

태종이 말하였다. 「짐이 여러 병서를 보니 손무를 넘는 것이 없고 손무 열세 편은 허실을 넘는 것이 없다. 군사를 쓰는 데 허실의 형세를 알면 이기지 못할 것이 없다. 지금 여러 장수 가운데 『실을 등지고 허를 친다』고 말할 줄만 알고 적에 임하면 허실을 아는 이가 드물다. 남을 이르게 하지 못하고 도리어 적에게 이끌리기 때문이다. 어떤가, 경이 여러 장수에게 그 요체를 다 말하라.」 이정이 말하였다. 「먼저 기정이 서로 변하는 술법을 가르친 뒤에 허실의 형상을 말하는 것이 옳습니다. 여러 장수는 흔히 기로 정을 삼고 정으로 기를 삼을 줄 모르니 어찌 허가 실이고 실이 허임을 알겠습니까.」 태종이 「『헤아려 득실의 계책을 알고, 움직여 동정의 이치를 알며, 드러내어 사생의 땅을 알고, 겨루어 남고 모자란 곳을 안다』 하였으니 이는 기정이 나에게 있고 허실이 적에게 있는 것인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기정은 적의 허실을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적이 실하면 나는 반드시 정으로 하고 적이 허하면 나는 반드시 기로 합니다. 장수가 기정을 모르면 적의 허실을 알아도 어찌 이르게 하겠습니까. 신이 조서를 받들어 다만 여러 장수에게 기정을 가르치면 그런 뒤에 허실은 절로 알게 됩니다.」 태종이 「기로 정을 삼는 것은 적이 기라 여기면 내가 정으로 치는 것이요, 정으로 기를 삼는 것은 적이 정이라 여기면 내가 기로 치는 것이다. 적의 형세를 늘 허하게 하고 내 형세를 늘 실하게 한다. 마땅히 이 법으로 여러 장수에게 주어 알기 쉽게 하라」 하니 이정이 「천 장 만 구절이 『남을 이르게 하고 남에게 이끌리지 않는다』를 벗어나지 않을 뿐입니다. 신이 마땅히 이것으로 여러 장수를 가르치겠습니다」 하였다.

2요지 도독부의 번한 군사

太宗曰:「朕置瑤池都督,以隸安西都護,蕃漢之兵,如何處置?」 靖曰:「天之生人,本無蕃漢之別。然地遠荒漠,必以射獵而生,由此常習戰鬬。若我恩信撫之,衣食周之,則皆漢人矣。陛下置此都護,臣請收漢戍卒,處之內地,減省糧饋。兵家所謂『治力之法』也。但擇漢吏有熟蕃情者,散守堡障,此足以經久。或遇有警,則虞卒出焉。」

태종이 「짐이 요지 도독부를 두어 안서도호에 예속시켰는데 번과 한의 군사를 어떻게 처치하겠는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하늘이 사람을 낼 때 본디 번과 한의 구별이 없습니다. 그러나 땅이 멀고 거친 사막이라 반드시 활 쏘고 사냥하여 살므로 이로 말미암아 늘 싸움을 익힙니다. 우리가 은혜와 신의로 어루만지고 옷과 밥을 두루 하면 다 한인이 됩니다. 폐하께서 이 도호를 두셨으니 신은 한의 수자리 군졸을 거두어 내지에 두고 양식 보냄을 덜기를 청합니다. 병가에서 이른바 『힘을 다스리는 법』입니다. 다만 번의 정세에 익숙한 한의 관리를 가려 보루를 흩어 지키게 하면 이것으로 오래갈 수 있습니다. 혹 경보가 있으면 우졸이 나갑니다.」

3『손자』의 「힘을 다스림」 — 셋에서 여섯으로

太宗曰:「《孫子》所言『治力』,何如?」 靖曰:「『以近待遠,以佚待勞,以飽待飢』,此略言其槩爾。善用兵者,推此三義而有六焉;以誘待來,以靜待躁,以重待輕,以嚴待懈,以治待亂,以守待攻。反是,則力有弗逮。非治之之術,安能臨兵哉?」 太宗曰:「今人習《孫子》者,但誦空文,鮮克推廣其義。治力之法,宜偏告諸將。」

태종이 「『손자』가 말한 『힘을 다스림』은 어떠한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가까운 것으로 먼 것을 기다리고 편안한 것으로 수고로운 것을 기다리며 배부른 것으로 굶주린 것을 기다린다』 하였으니 이는 대략 그 개요를 말한 것일 뿐입니다. 군사를 잘 쓰는 이는 이 세 뜻을 미루어 여섯을 두니, 꾐으로 오는 것을 기다리고 고요함으로 조급함을 기다리며 무거움으로 가벼움을 기다리고 엄함으로 게으름을 기다리며 다스림으로 어지러움을 기다리고 지킴으로 공격을 기다립니다. 이와 반대면 힘이 미치지 못합니다. 다스리는 술법이 아니면 어찌 군사에 임하겠습니까.」 태종이 「지금 『손자』를 익히는 이는 빈 글만 외우고 그 뜻을 미루어 넓힐 줄 아는 이가 드물다. 힘을 다스리는 법을 여러 장수에게 두루 알려야 한다」 하였다.

4새 군사를 가르치는 세 등급

太宗曰:「舊將老卒,凋零殆盡,諸軍新置,不經陳敵。今教以何道為要?」 靖曰:「臣常教士,分為三等:必先結伍法,伍法既成,授之軍校,此一等也。軍校之法,以一為十,以十為百,此一等也。授之裨將,裨將乃總諸校之隊,聚為陳圖,此一等也。大將軍察此三等之教,於是大閱,稽考制度,分別奇正,誓眾行罰。陛下臨高觀之,無施不可。」

태종이 「옛 장수와 늙은 군졸이 다 없어져 가고 여러 군을 새로 두었는데 적과 진을 겪지 않았다. 지금 무슨 도로 가르치는 것이 요긴한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신이 늘 군사를 가르치는 데 세 등급으로 나눕니다. 반드시 먼저 오법을 맺으니 오법이 이루어지면 군교에게 주는 것이 한 등급입니다. 군교의 법은 하나로 열을 삼고 열로 백을 삼는 것이 한 등급입니다. 비장에게 주면 비장이 여러 교의 대를 총괄하여 모아 진도를 만드는 것이 한 등급입니다. 대장군이 이 세 등급의 가르침을 살피고 이에 크게 사열하여 제도를 상고하고 기정을 분별하며 무리에게 맹세하고 벌을 행합니다. 폐하께서 높은 데 올라 보시면 베풀어 안 될 것이 없습니다.」

5오법이 요체 — 다섯에서 스물다섯, 일흔다섯으로

太宗曰:「伍法有數家,孰者為要?」 靖曰:「臣案《春秋》左氏傳云:『先偏後伍。』,又《司馬法》曰:『五人為伍。』,《尉繚子》有〈束武令〉,漢制有尺籍伍符;後世符籍,以紙為之,於是失其制矣。臣酌其法,自五人而變為二十五人,自二十五人而變為七十五人,此則步卒七十二人,甲士三人之制也。舍車用騎,則二十五人當八馬,此則五兵五當之制也。是則諸家兵法,唯伍法為要。小列之五人,大列之二十五人,參列之七十五人,又五參其數,得三百七十五人。三百人為正,六十人為奇,此則百五十人分為二正,而三十人分為二奇,蓋左右等也。穰苴所謂『五人為伍,十伍為隊』,至今因之,此其要也。」

태종이 「오법에 여러 가가 있는데 어느 것이 요체인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신이 『춘추좌씨전』을 살피니 『편을 먼저 하고 오를 뒤에 한다』 하였고 또 『사마법』에 『다섯 사람이 오가 된다』 하였으며 『위료자』에 「속오령」이 있고 한나라 제도에 척적과 오부가 있었는데 후세의 부적은 종이로 만들어 이에 그 제도를 잃었습니다. 신이 그 법을 참작하여 다섯 사람에서 변하여 스물다섯 사람으로 하고 스물다섯 사람에서 변하여 일흔다섯 사람으로 하니 이는 보졸 일흔둘에 갑사 셋의 제도입니다. 수레를 버리고 기병을 쓰면 스물다섯 사람이 말 여덟에 해당하니 이는 다섯 병기가 다섯에 해당하는 제도입니다. 그러니 여러 가의 병법 가운데 오직 오법이 요체입니다. 작은 열은 다섯 사람, 큰 열은 스물다섯 사람, 셋을 합한 열은 일흔다섯 사람이요 또 그 수를 다섯 곱하면 삼백일흔다섯 사람을 얻습니다. 삼백 사람이 정이 되고 예순 사람이 기가 되니 이는 백오십 사람이 나뉘어 두 정이 되고 서른 사람이 나뉘어 두 기가 되는 것으로 대개 좌우가 같습니다. 양저가 이른바 『다섯 사람이 오가 되고 열 오가 대가 된다』는 것을 지금까지 따르니 이것이 그 요체입니다.」

6육화진 — 밖은 모나고 안은 둥글다

太宗曰:「朕與李勣論兵,多同卿說,但勣不究出處爾,卿所制六花陳法,出何術乎?」 靖曰:「臣所本諸葛亮八陳法也。大陳包小陳,大營包小營,隅落鉤連,曲折相對,古制如此,臣為圖因之,故外畫之方,內環之圓,是成六花,俗所號爾。」 太宗曰:「內圓外方,何謂也?」 靖曰:「方生於正,圓生於奇。方所以矩其步,圓所以綴其旋。是以,步數定於地,行綴應乎天。步定綴齊,則變化不亂。八陳為六,武侯之舊法焉。」 太宗曰:「畫方以見步,點圓以見兵。步教足法,兵教手法,手足便利,思過半乎?」 靖曰:「吳起云:『絕而不離,却而不散。』此步法也。教士猶布棊於盤,若無畫路,棊安用之?孫武曰:『地生度,度生量,量生數,數生稱,稱生勝。勝兵若以鎰稱銖,敗兵若以銖稱鎰。』皆起於度量方國也。」 太宗曰:「深乎!孫武之言。不度地之遠近,形之廣狹,則何以制其節乎?」 靖曰:「庸將罕能知其節者也。『善戰者,其勢險,其節短;勢加彍弩,節如發機。』,臣修其術:凡立隊,相去各十步;駐隊,去前隊二十步;每隔一隊,立一戰隊。前進以五十步為節,角一聲,諸隊皆散立,不過十步之內。至第四角聲,籠槍跪坐。於是鼓之,三呼三擊,三十步至五十步,以制敵之變。馬軍從背出,亦五十步臨時節止。前正後奇,觀敵如何。再鼓之,則前奇後正,復邀敵來,伺隙擣虛。此六花大率皆然也。」

태종이 「짐이 이적과 병법을 논하면 대개 경의 말과 같으나 적은 출처를 따지지 않을 뿐이다. 경이 만든 육화진법은 무슨 술법에서 나왔는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신이 근본한 것은 제갈량의 팔진법입니다. 큰 진이 작은 진을 감싸고 큰 진영이 작은 진영을 감싸며 모서리가 갈고리처럼 이어지고 굽이가 서로 마주하니 옛 제도가 이러합니다. 신이 그림으로 만들어 따랐으므로 밖은 모나게 그리고 안은 둥글게 둘러 육화를 이루니 세속에서 부르는 이름일 뿐입니다.」 태종이 「안이 둥글고 밖이 모난 것은 무슨 뜻인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모남은 정에서 나고 둥긂은 기에서 납니다. 모남은 그 걸음을 재는 것이요 둥긂은 그 도는 것을 잇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걸음의 수는 땅에서 정해지고 가며 잇는 것은 하늘에 응합니다. 걸음이 정해지고 이음이 가지런하면 변화가 어지럽지 않습니다. 팔진을 여섯으로 한 것은 무후의 옛 법입니다.」 태종이 「모남을 그려 걸음을 보이고 둥긂을 점 찍어 군사를 보인다. 걸음은 발의 법을 가르치고 군사는 손의 법을 가르치니 손발이 편리하면 반을 넘어 생각한 것인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오기가 『끊겨도 떨어지지 않고 물러나도 흩어지지 않는다』 하였으니 이것이 걸음의 법입니다. 군사를 가르치는 것은 바둑판에 바둑돌을 놓는 것과 같으니 그린 길이 없으면 바둑돌을 어디에 쓰겠습니까. 손무가 『땅이 도(度)를 낳고 도가 양(量)을 낳으며 양이 수(數)를 낳고 수가 칭(稱)을 낳으며 칭이 이김을 낳는다. 이기는 군사는 일(鎰)로 수(銖)를 다는 것 같고 지는 군사는 수로 일을 다는 것 같다』 하였으니 다 모난 나라를 재고 헤아리는 데서 일어난 것입니다.」 태종이 「깊도다, 손무의 말이여. 땅의 멀고 가까움과 형체의 넓고 좁음을 재지 않으면 어찌 그 절도를 제어하겠는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용렬한 장수는 그 절도를 아는 이가 드뭅니다. 『잘 싸우는 이는 그 형세가 험하고 그 절도가 짧다. 형세는 시위를 당긴 쇠뇌 같고 절도는 쇠뇌 틀을 놓는 것 같다』 하였는데 신이 그 술법을 닦았습니다. 대를 세우는 데 서로 열 걸음씩 떨어지고 주대는 앞 대에서 스무 걸음 떨어지며 한 대 건너 하나씩 전대를 세웁니다. 앞으로 나아감은 쉰 걸음을 절도로 하여 뿔피리 한 소리에 여러 대가 다 흩어져 서되 열 걸음 안을 넘지 않습니다. 넷째 뿔피리 소리에 창을 세우고 꿇어앉습니다. 이에 북을 치면 세 번 소리치고 세 번 치며 서른 걸음에서 쉰 걸음까지 적의 변화를 제어합니다. 마군은 등 뒤에서 나가되 역시 쉰 걸음에서 때에 따라 절도로 그칩니다. 앞은 정 뒤는 기로 하여 적이 어떻게 하는가를 봅니다. 다시 북을 치면 앞은 기 뒤는 정으로 하여 다시 적이 오는 것을 맞아 틈을 엿보고 허를 칩니다. 이 육화는 대체로 다 그러합니다.」

7조공의 「표목을 세운다」는 말과 파진악무

太宗曰:「曹公《新書》云:『作陳對敵,必先立表,引兵就表而陳。一部受敵,餘部不進救者,斬。』,此何術乎?」 靖曰:「臨敵立表,非也。此但教戰時法爾。古人善用兵者,教正不教奇,驅眾若驅羣羊,與之進,與之退,不知所之也。曹公驕而好勝,當時,諸將奉《新書》者,莫敢攻其短。且臨敵立表,無乃晚乎?臣竊觀陛下所製破陳樂舞,前出四表,後綴八旛,左右折旋,趨步金鼓,各有其節,此即八陳圖,四頭八尾之制也。人間但見樂舞之盛,豈有知軍容如斯焉?」 太宗曰:「昔漢高帝定天下,歌云:『安得猛士兮守四方。』,蓋兵法可以意授,不可語傳。朕為破陳樂舞,唯卿已曉其表矣,後世其知我不苟作也。」 太宗曰:「方色五旗為正乎?旛麾折衝為奇乎?分合為變,其隊數曷為得宜?」 靖曰:「臣參用古法,凡三隊合,則旗相倚而不交;五隊合,則兩旗交;十隊合,則五旗交。吹角,開五交之旗,則一復散而為十;開二交之旗,則一復散而為五;開相倚不交之旗,則一復散而為三。兵散則以合為奇,合則以散為奇。三令五申,三散三合,然復歸於正,四頭八尾,乃可教焉,此隊法所宜也。」太宗稱善。

태종이 「조공의 『신서』에 『진을 치고 적을 마주하면 반드시 먼저 표목을 세우고 군사를 이끌어 표목에 나아가 진 친다. 한 부가 적을 받는데 나머지 부가 나아가 구하지 않으면 벤다』 하였는데 이는 무슨 술법인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적에 임하여 표목을 세우는 것은 그릅니다. 이는 다만 싸움을 가르칠 때의 법일 뿐입니다. 옛사람 가운데 군사를 잘 쓰는 이는 정을 가르치고 기를 가르치지 않았으니 무리를 몰기를 양 떼를 몰듯 하여 함께 나아가고 함께 물러나되 어디로 가는지 모르게 하였습니다. 조공은 교만하고 이기기를 좋아하여 당시 여러 장수 가운데 『신서』를 받든 이들이 감히 그 단점을 치지 못하였습니다. 또 적에 임하여 표목을 세우면 늦지 않겠습니까. 신이 가만히 폐하께서 만드신 파진악무를 보니 앞에 네 표목을 내고 뒤에 여덟 번을 이으며 좌우로 꺾어 돌고 징과 북에 걸음을 맞추어 각기 그 절도가 있으니 이것이 곧 팔진도의 머리 넷 꼬리 여덟의 제도입니다. 세상 사람은 다만 악무의 성대함만 보니 어찌 군사의 모습이 이러한 줄 알겠습니까.」 태종이 「옛날 한 고제가 천하를 정하고 노래하기를 『어찌하면 사나운 군사를 얻어 사방을 지킬까』 하였으니 대개 병법은 뜻으로 줄 수 있어도 말로 전할 수 없다. 짐이 파진악무를 만들었는데 오직 경만이 그 겉을 알았으니 후세가 짐이 함부로 짓지 않았음을 알 것이다」 하였다. 태종이 「방색의 다섯 깃발은 정인가, 번과 휘와 절충은 기인가, 나누고 합함이 변화가 되는데 그 대의 수는 어찌해야 마땅한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신이 옛 법을 참작해 쓰니 세 대가 합하면 깃발이 서로 기대되 교차하지 않고, 다섯 대가 합하면 두 깃발이 교차하며, 열 대가 합하면 다섯 깃발이 교차합니다. 뿔피리를 불어 다섯 교차한 깃발을 열면 하나가 다시 흩어져 열이 되고, 두 교차한 깃발을 열면 하나가 다시 흩어져 다섯이 되며, 서로 기대되 교차하지 않은 깃발을 열면 하나가 다시 흩어져 셋이 됩니다. 군사가 흩어지면 합함으로 기를 삼고 합하면 흩어짐으로 기를 삼습니다. 세 번 명령하고 다섯 번 거듭하며 세 번 흩고 세 번 합한 뒤에 다시 정으로 돌아가 머리 넷 꼬리 여덟을 비로소 가르칠 수 있으니 이것이 대의 법에 마땅한 바입니다.」 태종이 좋다 하였다.

8전기·함기·유기 — 삼복의 뜻

太宗曰:「曹公有『戰騎、陷騎、遊騎』,今馬軍何等比乎?」 靖曰:「臣案《新書》云:『戰騎居前,陷騎居中,遊騎居後。如此,則是各立名號,分為三類爾。大抵騎隊八馬當車徒二十四人,二十四騎當車徒七十二人,此古制也。車徒常教以正,騎隊常教以奇。』據曹公,前後及中,分為三覆,不言兩廂,舉一端言也。後人不曉三覆之義,則戰騎必前於陷騎、遊騎,如何使用?臣熟用此法,回軍轉陳,則遊騎當前、戰騎當後、陷騎臨變而分,皆曹公之術也。」 太宗笑曰:「多少人為曹公所惑。」

태종이 「조공에게 『전기·함기·유기』가 있는데 지금 마군은 어느 것에 견주는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신이 『신서』를 살피니 『전기는 앞에 있고 함기는 가운데 있으며 유기는 뒤에 있다. 이렇게 하면 각기 이름을 세워 세 부류로 나눈 것일 뿐이다. 대개 기병 대 여덟 마리가 수레와 보병 스물넷에 해당하고 기병 스물넷이 수레와 보병 일흔둘에 해당하니 이것이 옛 제도다. 수레와 보병은 늘 정으로 가르치고 기병 대는 늘 기로 가르친다』 하였습니다. 조공에 따르면 앞과 뒤와 가운데를 세 겹으로 나누고 두 옆은 말하지 않았으니 한 끝을 든 것입니다. 뒷사람이 세 겹의 뜻을 몰라 전기가 반드시 함기와 유기보다 앞서야 한다면 어떻게 쓰겠습니까. 신이 이 법을 익숙히 써서 군사를 돌려 진을 바꾸면 유기가 앞에 서고 전기가 뒤에 서며 함기는 변화에 임하여 나뉘니 다 조공의 술법입니다.」 태종이 웃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조공에게 홀렸는가」 하였다.

9수레·보병·기병은 한 법이니 쓰는 것은 사람에게

太宗曰:「車、步、騎三者,一法也。其用在人乎?」 靖曰:「臣案《春秋》『魚麗陳』,先偏後伍,此則車步無騎,謂之左右拒,言拒禦而已,非取出奇勝也。晉荀吳伐狄,舍車為行,此則騎多為便,唯務奇勝,非拒禦而已。臣均其術,凡一馬當三人,車步稱之,混為一法,用之在人。敵安知吾車果何出?騎果何來?徒果何從哉?或潛九地,或動九天,其知如神,惟陛下有焉,臣何足以知之?」

태종이 「수레·보병·기병 셋은 한 법인데 그 쓰임은 사람에게 있는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신이 『춘추』의 『어리진』을 살피니 편을 먼저 하고 오를 뒤에 하였으니 이는 수레와 보병에 기병이 없는 것으로 좌우 거(拒)라 하니 막는다는 말일 뿐 기이함으로 이기려는 것이 아닙니다. 진나라 순오가 적을 칠 때 수레를 버리고 보병 대열로 한 것은 기병이 많은 것이 편하니 오직 기이함으로 이기려 힘쓴 것이지 막는 것만이 아닙니다. 신이 그 술법을 고르게 하니 말 하나가 세 사람에 해당하고 수레와 보병이 이에 맞추어 한 법으로 섞으니 쓰는 것은 사람에게 있습니다. 적이 어찌 우리 수레가 과연 어디서 나오고 기병이 과연 어디서 오며 보병이 과연 어디를 따르는지 알겠습니까. 혹은 구지에 잠기고 혹은 구천에서 움직여 그 앎이 신 같은 것은 오직 폐하께 있으니 신이 어찌 알기에 넉넉하겠습니까.」

10태공의 땅 그리는 법 — 사방 육백 보

太宗曰:「太公書云:『地方六百步或六十步,表十二辰。』其術如何?」 靖曰:「畫地方一千二百步,開方之形也。每部占地二十步之方,橫以五步立一人,縱以四步立一人,凡二千五百人,分五方,空地四處,所謂陳間容陳者也。武王伐紂,虎賁各掌三千人,每陳六千人,共三萬之眾,此太公畫地之法也。」

태종이 「태공의 글에 『땅 사방 육백 보 또는 육십 보에 열두 진을 표한다』 하였는데 그 술법은 어떠한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땅을 사방 천이백 보로 그리니 모난 것을 편 모양입니다. 부마다 사방 스무 걸음의 땅을 차지하고 가로로 다섯 걸음에 한 사람을 세우고 세로로 네 걸음에 한 사람을 세워 모두 이천오백 사람을 다섯 방위로 나누고 빈 땅이 네 곳이니 이른바 진 사이에 진을 담는다는 것입니다. 무왕이 주왕(紂)을 칠 때 호분이 각기 삼천 사람을 맡고 진마다 육천 사람으로 모두 삼만의 무리였으니 이것이 태공이 땅을 그린 법입니다.」

11육화진의 사열은 땅 얼마를 쓰는가

太宗曰:「卿六花陳畫地幾何?」 靖曰:「大閱:地方千二百步者,其義六陳,各占地四百步,分為東西兩廂,空地一千二百步為教戰之所。臣嘗教士三萬,每陳五千人,以其一為營法,五為方、圓、曲、直、銳之形,每陳五變,凡二十五變而止。」

태종이 「경의 육화진은 땅을 얼마나 그리는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크게 사열할 때 땅 사방 천이백 보는 그 뜻이 여섯 진이 각기 사백 보의 땅을 차지하고 동서 두 옆으로 나누며 빈 땅 천이백 보를 싸움 가르치는 곳으로 삼는 것입니다. 신이 일찍이 군사 삼만을 가르치되 진마다 오천 사람으로 그 하나는 진영의 법으로 삼고 다섯은 방·원·곡·직·예의 모양으로 삼아 진마다 다섯 번 변하니 모두 스물다섯 번 변하고 그쳤습니다.」

12오행진 — 실은 땅의 모양에 따른 것

太宗曰:「五行陳如何?」 靖曰:「本因五方色立此名,方、圓、曲、直、銳,實因地形使然。凡軍不素習此五者,安可以臨敵乎?兵,詭道也,故強名五行焉。文之以術數相生相克之義,其實兵形象水,因地制流,此其旨也。」

태종이 「오행진은 어떠한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본디 다섯 방위의 빛깔에 따라 이 이름을 세웠으나 방·원·곡·직·예는 실은 땅의 모양에 따라 그렇게 된 것입니다. 군사가 평소 이 다섯을 익히지 않으면 어찌 적에 임하겠습니까. 군사는 속이는 도이므로 억지로 오행이라 이름하고 술수의 상생상극의 뜻으로 꾸민 것이지, 실은 군사의 형상은 물을 본떠 땅에 따라 흐름을 정하니 이것이 그 뜻입니다.」

13빈모·방원과 복병의 법 — 음양 두 뜻일 뿐

太宗曰:「李勣言:『牝牡、方圓,伏兵法。』,古有是否?」 靖曰:「牝牡之法,出於俗傳,其實陰陽二義而已。臣案范蠡云:『後則用陰,先則用陽。盡敵陽節,盈吾陰節而奪之。』,此兵家陰陽之妙也。范蠡又云:『設右為牝,益左為牡,早晏以順天道。』,此則左右、早晏臨時不同,在乎奇正之變者也。左右者,人之陰陽;早晏者,天之陰陽;奇正者,天人相變之陰陽。若執而不變,則陰陽俱廢,如何?守牝牡之形而已。故形之者,以奇示敵,非吾正也;勝之者,以正擊敵,非吾奇也。此謂奇正相變。兵伏者,不止山谷草木,伏藏所以為伏也;其正如山,其奇如雷,敵雖對面,莫測吾奇正所在。至此,夫何形之有焉?」

태종이 「이적이 『빈모(牝牡)와 방원은 복병의 법』이라 하는데 옛날에 이런 것이 있었는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빈모의 법은 세속에 전하는 데서 나왔으니 실은 음양 두 뜻일 뿐입니다. 신이 범려의 말을 살피니 『뒤에는 음을 쓰고 앞에는 양을 쓴다. 적의 양의 절도를 다하게 하고 우리 음의 절도를 채워 빼앗는다』 하였으니 이것이 병가 음양의 묘함입니다. 범려가 또 『오른쪽을 빈으로 두고 왼쪽을 더하여 모로 하며 이르고 늦음으로 하늘의 도를 따른다』 하였으니 이는 좌우와 이르고 늦음이 때에 따라 다른 것으로 기정의 변화에 있습니다. 좌우란 사람의 음양이요 이르고 늦음이란 하늘의 음양이요 기정이란 하늘과 사람이 서로 변하는 음양입니다. 만약 고집하여 변하지 않으면 음양이 다 폐해지니 어찌 빈모의 모양만 지키겠습니까. 그러므로 드러내는 것은 기로 적에게 보이는 것이지 우리 정이 아니요, 이기는 것은 정으로 적을 치는 것이지 우리 기가 아닙니다. 이것을 기정이 서로 변한다 합니다. 군사의 매복은 산과 골짜기와 풀과 나무에 그치지 않으니 숨기고 감추는 것이 매복이 되는 까닭입니다. 그 정은 산 같고 그 기는 우레 같아 적이 마주 보고도 우리 기정이 어디 있는지 헤아리지 못합니다. 여기에 이르면 무슨 모양이 있겠습니까.」

14네 짐승의 진과 상·우·치·각 — 속이는 도

太宗曰:「四獸之陳,又以商、羽、徵、角象之,何道也?」 靖曰:「詭道也。」 太宗曰:「可廢乎?」 靖曰:「存之所以能廢之也。若廢而不用,詭愈甚焉。」 太宗曰:「何謂也?」 靖曰:「假之以四獸之陳,及天地風雲之號,又加商金、羽水、徵火、角木之配,此皆兵家自古詭道。存之,則餘詭不復增矣;廢之,則使貪使愚之術,從何而施哉!」 太宗良久曰:「卿宜祕之,無泄於外。」

태종이 「네 짐승의 진을 또 상·우·치·각으로 본뜬 것은 무슨 도인가」 하니 이정이 「속이는 도입니다」 하였다. 태종이 「폐할 수 있는가」 하니 이정이 「두는 것이 폐할 수 있는 까닭입니다. 폐하고 쓰지 않으면 속임이 더욱 심해집니다」 하였다. 태종이 「무슨 뜻인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네 짐승의 진과 천지풍운의 이름을 빌리고 또 상은 금, 우는 물, 치는 불, 각은 나무의 배합을 더하니 이는 다 병가에 예부터 있는 속이는 도입니다. 두면 나머지 속임이 다시 늘지 않고, 폐하면 탐하는 이를 부리고 어리석은 이를 부리는 술법을 어디서 베풀겠습니까.」 태종이 한참 있다가 「경은 이것을 비밀히 하여 밖에 새지 않게 하라」 하였다.

15사랑을 먼저 하고 위엄을 뒤에

太宗曰:「嚴刑峻法,使人畏我而不畏敵,朕甚惑之。昔光武以孤軍當王莽百萬之眾,非有刑法臨之。此何由乎?」 靖曰:「兵家勝敗,情狀萬殊,不可以一事推也。如陳勝、吳廣敗秦師,豈勝、廣刑法能加於秦乎?光武之起,蓋順人心之怨莽也,況又王尋、王邑不曉兵法,徒誇兵眾,所以自敗。臣案《孫子》曰:『卒未親附而罰之,則不服;已親附而罰不行,則不可用。』此言凡將,先有愛結於士,然後可以嚴刑也。若愛未加,而獨用峻法,鮮克濟焉。」 太宗曰:「《尚書》云:『威克厥愛,允濟;愛克厥威,允罔功。』,何謂也?」 靖曰:「愛設於先,威設於後,不可反是也;若威加於前,愛救於後,無益於事矣。《尚書》所以慎戒其終,非所以作謀於始也。故《孫子》之法,萬代不刊。」

태종이 「엄한 형벌과 준엄한 법으로 사람이 나를 두려워하고 적을 두려워하지 않게 한다는 것을 짐은 몹시 의심한다. 옛날 광무제가 외로운 군사로 왕망의 백만 무리를 당하였는데 형법으로 임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병가의 승패는 정상이 만 가지로 다르니 한 가지 일로 미룰 수 없습니다. 진승·오광이 진나라 군사를 깨뜨린 것이 어찌 진승·오광의 형법이 진나라에 더해질 수 있어서였겠습니까. 광무제의 일어남은 대개 사람의 마음이 왕망을 원망하는 것을 따른 것이요, 게다가 왕심·왕읍이 병법을 몰라 한갓 군사의 많음만 자랑하였으므로 스스로 패한 것입니다. 신이 『손자』를 살피니 『군졸이 아직 친하게 따르지 않는데 벌하면 복종하지 않고, 이미 친하게 따르는데 벌이 행해지지 않으면 쓸 수 없다』 하였습니다. 이 말은 장수가 먼저 사랑으로 군사와 맺은 뒤에야 엄한 형벌을 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아직 더해지지 않았는데 홀로 준엄한 법만 쓰면 이루는 이가 드뭅니다.」 태종이 「『상서』에 『위엄이 사랑을 이기면 참으로 이루고 사랑이 위엄을 이기면 참으로 공이 없다』 하였는데 무슨 뜻인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사랑을 먼저 베풀고 위엄을 뒤에 베푸는 것이지 거꾸로 해서는 안 됩니다. 위엄을 앞에 더하고 사랑으로 뒤에 구하면 일에 보탬이 없습니다. 『상서』는 그 끝을 삼가 경계한 것이지 처음에 꾀를 짓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손자』의 법은 만대에 고칠 수 없습니다.」

16소선을 평정하고 위신의 집을 몰수하지 않은 까닭

太宗曰:「卿平蕭銑,諸將皆欲籍偽臣家,以賞士卒,獨卿不從,以謂蒯通不戮於漢,既而江漢歸順。朕由是思古人有言曰:『文能附眾,武能威敵。』其卿之謂乎?」 靖曰:「漢光武平赤眉,入賊營中,案行,賊曰:『蕭王推赤心於人腹中。』此蓋先料人情本非為惡,豈不豫慮哉?臣頃討突厥,總蕃漢之眾,出塞千里,未嘗戮一揚干,斬一莊賈,亦推赤誠、存至公而已矣。陛下過聽,擢臣以不次之位。若於文武,則何敢當?」

태종이 「경이 소선을 평정할 때 여러 장수가 다 거짓 신하의 집을 몰수하여 사졸에게 상 주려 하였는데 경만이 따르지 않고 괴통이 한나라에서 죽임을 당하지 않은 것을 들었더니 이윽고 강한이 귀순하였다. 짐이 이로 말미암아 옛사람이 『문은 무리를 붙게 하고 무는 적을 위엄으로 누른다』 한 말을 생각하니 경을 이른 것인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한 광무제가 적미를 평정하고 적의 진영에 들어가 돌아보니 적이 『소왕은 붉은 마음을 사람의 배 속에 밀어 넣는다』 하였습니다. 이는 대개 사람의 정이 본디 악을 하려는 것이 아님을 먼저 헤아린 것이니 어찌 미리 헤아리지 않았겠습니까. 신이 지난번 돌궐을 치며 번과 한의 무리를 거느리고 요새 밖 천 리를 나갔으나 양간 하나를 죽이거나 장가 하나를 벤 적이 없으니 역시 붉은 정성을 밀고 지극한 공정을 지켰을 뿐입니다. 폐하께서 지나치게 들으시어 신을 차례를 넘어 발탁하셨으니 문무로 말하면 어찌 감히 감당하겠습니까.」

17당검을 죽을 간첩으로 삼았다는 의심 — 주와 객, 빠름과 오램

太宗曰:「昔唐儉使突厥,卿因擊而敗之。人言卿以儉為死間,朕至今疑焉。如何?」 靖再拜曰:「臣與儉比肩事主,料儉說必不能柔服,故臣因縱兵擊之,所以去大惡,不顧小義也。人謂以儉為死間,非臣之心。案《孫子》〈用間〉,最為下策。臣嘗著論其末云:水能載舟,亦能覆舟;或用間以成功,或憑間以傾敗。若束髮事君,當朝正色,忠以盡節,信以竭誠,雖有善間,安可用乎?唐儉小義,陛下何疑!」 太宗曰:「誠哉!『非仁義不能使間』,此豈纖人所為乎?周公大義滅親,況一使人乎?灼無疑矣!」 太宗曰:「兵,貴為主,不貴為客;貴速,不貴久。何也?」 靖曰:「兵,不得已而用之,安在為客且久哉?《孫子》曰:『遠輸則百姓貧。』此為客之獘也。又曰:『役不再籍,糧不三載。』此不可久之驗也。臣校量主客之勢,則有變客為主,變主為客之術。」 太宗曰:「何謂也?」 靖曰:「『因糧於敵』,是變客為主也;『飽能飢之,佚能勞之』,是變主為客也。故兵不拘主客遲速,唯發必中節,所以為宜。」 太宗曰:「古人有諸?」 靖曰:「昔越伐吳,以左右二軍鳴鼓而進,吳分兵禦之。越以中軍潛涉,不鼓,襲敗吳師,此變客為主之驗也。石勒與姬澹戰,澹兵遠來,勒遣孔萇為前鋒,逆擊澹軍,孔萇退而澹來追,勒以伏兵夾擊之,澹軍大敗,此變勞為佚之驗也。古人如此者多。」

태종이 「옛날 당검이 돌궐에 사신으로 갔을 때 경이 그 틈에 쳐서 깨뜨렸다. 사람들이 경이 당검을 죽을 간첩으로 삼았다 하니 짐이 지금까지 의심한다. 어떤가」 하니 이정이 두 번 절하고 말하였다. 「신은 당검과 나란히 임금을 섬겼는데 당검의 말로는 반드시 유순하게 복종시킬 수 없을 것을 헤아렸으므로 신이 그 틈에 군사를 풀어 친 것이니 큰 악을 없애려고 작은 의를 돌아보지 않은 것입니다. 사람들이 당검을 죽을 간첩으로 삼았다 하는 것은 신의 마음이 아닙니다. 『손자』 「용간」을 살피면 가장 아래 계책입니다. 신이 일찍이 그 끝에 논하기를,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고 배를 엎을 수도 있으니 혹은 간첩으로 공을 이루기도 하고 혹은 간첩에 기대다 넘어져 패하기도 한다. 머리를 묶고 임금을 섬겨 조정에서 낯빛을 바르게 하고 충성으로 절개를 다하며 믿음으로 정성을 다한다면 좋은 간첩이 있은들 어찌 쓸 수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당검의 작은 의를 폐하께서는 어찌 의심하십니까.」 태종이 「참으로 그렇다. 『인의가 아니면 간첩을 부릴 수 없다』 하였으니 이것이 어찌 옹졸한 사람이 할 일이겠는가. 주공은 큰 의로 친족을 멸하였는데 하물며 한 사신이겠는가. 뚜렷하여 의심이 없다」 하였다. 태종이 「군사는 주인이 되는 것을 귀히 여기고 손이 되는 것을 귀히 여기지 않으며 빠름을 귀히 여기고 오램을 귀히 여기지 않는다 하는데 어째서인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군사는 부득이하여 쓰는 것이니 어찌 손이 되어 또 오래 있겠습니까. 『손자』에 『멀리 나르면 백성이 가난하다』 하였으니 이것이 손이 되는 폐단입니다. 또 『부역을 두 번 징발하지 않고 양식을 세 번 싣지 않는다』 하였으니 이것이 오래 할 수 없다는 징험입니다. 신이 주와 객의 형세를 견주니 손을 주인으로 바꾸고 주인을 손으로 바꾸는 술법이 있습니다.」 태종이 「무슨 뜻인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양식을 적에게서 얻는다』는 것이 손을 주인으로 바꾸는 것이요, 『배부른 이를 굶주리게 하고 편안한 이를 수고롭게 한다』는 것이 주인을 손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군사는 주와 객, 더디고 빠름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발하면 반드시 절도에 맞는 것이 마땅함이 됩니다.」 태종이 「옛사람에게 그런 일이 있는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옛날 월나라가 오나라를 칠 때 좌우 두 군사가 북을 울리며 나아가니 오나라가 군사를 나누어 막았습니다. 월나라가 중군으로 몰래 건너 북을 치지 않고 오나라 군사를 습격하여 패하게 하였으니 이것이 손을 주인으로 바꾼 징험입니다. 석륵이 희담과 싸울 때 희담의 군사가 멀리서 오니 석륵이 공장을 선봉으로 보내 희담의 군사를 맞아 치게 하고 공장이 물러나자 희담이 쫓아오니 석륵이 복병으로 협격하여 희담의 군사가 크게 패하였으니 이것이 수고로움을 편안함으로 바꾼 징험입니다. 옛사람 가운데 이런 이가 많습니다.」

18쇠마름쇠와 행마는 막을 뿐

太宗曰:「鐵蒺蔾、行馬,太公所制。是乎?」 靖曰:「有之,然拒敵而已。兵貴致人,非欲拒之也。太公《六韜》言守禦之具爾,非攻戰所施也。」

태종이 「쇠마름쇠와 행마는 태공이 만든 것인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있기는 하나 적을 막을 뿐입니다. 군사는 남을 이르게 하는 것을 귀히 여기지 막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태공의 『육도』는 지키고 막는 도구를 말한 것일 뿐 치고 싸우는 데 베푸는 것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