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위공문대 — 권하唐李問對 卷下
1구묘와 옛 성 — 음양의 꺼림은 사람의 일일 뿐
太宗曰:「太公云:『以步兵與車騎戰者,必依丘墓、險阻。』,又《孫子》云:『天隙之地,丘墓、故城,兵不可處。』,如何?」 靖曰:「用眾在乎心一,心一在乎禁祥去疑。儻主將有所疑忌,則羣情搖;羣情搖,則敵乘釁而至矣。故安營據地,便乎人事而已。若澗、井、陷、隙之地,及如牢羅之處,人事不便者也。故兵家引而避之,防敵乘我。丘墓故城,非絕險處,我得之為利,豈宜反去之乎?太公所說,兵之至要也。」 太宗曰:「朕思凶器無甚於兵者,行兵苟便於人事,豈以避忌為疑?今後,諸將有以陰陽拘忌、失於事宜者,卿當丁寧誡之。」 靖再拜謝曰:「臣按《尉繚子》云:『黃帝以德守之,以刑伐之,是謂刑德。非天官、時日之謂也。』,然詭道可使由之,不可使知之。後世庸將,泥於術數,是以多敗,不可不誡也。陛下聖訓,臣即宣告諸將。」
태종이 「태공이 『보병으로 수레·기병과 싸우려면 반드시 무덤과 험한 곳에 의지하라』 하였고 또 『손자』에 『하늘이 낸 틈의 땅과 무덤·옛 성에는 군사가 머물 수 없다』 하였는데 어떤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무리를 쓰는 것은 마음이 하나 됨에 있고 마음이 하나 됨은 길흉의 조짐을 말하지 못하게 하고 의심을 없애는 데 있습니다. 혹 주장이 꺼리는 바가 있으면 뭇 사람의 마음이 흔들리고, 뭇 사람의 마음이 흔들리면 적이 틈을 타 이릅니다. 그러므로 진영을 편안히 하고 땅에 의지하는 것은 사람의 일에 편하게 할 뿐입니다. 골짜기·우물·구덩이·틈의 땅과 짐승 우리나 그물에 걸린 듯한 곳은 사람의 일에 편하지 않은 것이라 병가가 이끌어 피하니 적이 우리를 타는 것을 막는 것입니다. 무덤과 옛 성은 아주 험한 곳이 아니라 우리가 얻으면 이로운데 어찌 도리어 버리겠습니까. 태공이 말한 것이 군사의 지극한 요체입니다.」 태종이 「짐이 생각건대 흉기로 군사보다 심한 것이 없으니 군사를 행함에 참으로 사람의 일에 편하다면 어찌 피하고 꺼리는 것으로 의심하겠는가. 이후로 여러 장수 가운데 음양의 얽매임으로 일의 마땅함을 잃는 이가 있으면 경이 정성껏 경계하라」 하였다. 이정이 두 번 절하고 사례하며 말하였다. 「신이 『위료자』를 살피니 『황제는 덕으로 지키고 형벌로 쳤으니 이것을 형덕이라 한다. 천관과 시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였습니다. 그러나 속이는 도는 그대로 따르게 할 수는 있어도 알게 할 수는 없습니다. 후세의 용렬한 장수가 술수에 빠져 그래서 많이 패하니 경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폐하의 성스러운 가르침을 신이 곧 여러 장수에게 알리겠습니다.」
2나누고 모으는 것 — 부견의 비수와 오한의 촉
太宗曰:「兵有分有聚,各貴適宜。前代事迹,孰為善此者?」 靖曰:「苻堅總百萬之眾,而敗於淝水,此兵能合而不能分之所致也。吳漢討公孫述,與副將劉尚分屯,相去二十里,述來攻漢,尚出合擊,大破之,此兵分而能合之所致也。太公云:『分不分,為縻軍;聚不聚,為孤旅。』」 太宗曰:「然。苻堅初得王猛,實知兵,遂取中原。及猛卒,堅果敗,此縻軍之謂乎?吳漢為光武所任,兵不遙制,故漢果平蜀,此不陷孤旅之謂乎?得失事迹,足為萬代鑑。」
태종이 「군사에는 나눔이 있고 모음이 있어 각기 마땅함을 귀히 여긴다. 전대의 일 가운데 누가 이것을 잘하였는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부견은 백만 무리를 거느리고도 비수에서 패하였으니 이는 군사가 합할 줄만 알고 나눌 줄 몰라서입니다. 오한이 공손술을 칠 때 부장 유상과 나누어 주둔하여 서로 이십 리 떨어졌는데 공손술이 오한을 치자 유상이 나와 합쳐 쳐서 크게 깨뜨렸으니 이는 군사가 나뉘고도 합할 수 있어서입니다. 태공이 『나눌 것을 나누지 않으면 얽매인 군사요, 모을 것을 모으지 않으면 외로운 군사다』 하였습니다.」 태종이 말하였다. 「그렇다. 부견이 처음 왕맹을 얻었을 때 참으로 병법을 알아 마침내 중원을 취하였다. 왕맹이 죽자 부견은 과연 패하였으니 이것이 얽매인 군사를 이른 것인가. 오한은 광무제에게 맡겨져 군사를 멀리서 제어하지 않았으므로 오한이 과연 촉을 평정하였으니 이것이 외로운 군사에 빠지지 않은 것을 이른 것인가. 득실의 자취가 만대의 거울이 되기에 넉넉하다.」
3「여러 방법으로 그르치게 한다」 한 구절
太宗曰:「朕觀千章萬句,不出乎『多方以誤之』一句而已。」 靖良久曰:「誠如聖語。大凡用兵,若敵人不誤,則我師安能克哉?譬如奕棊,兩敵均焉,一著或失,竟莫能救。是古今勝敗,率由一誤而已,況多失者乎!」
태종이 「짐이 천 장 만 구절을 보니 『여러 방법으로 그르치게 한다』는 한 구절을 벗어나지 않을 뿐이다」 하니 이정이 한참 있다가 말하였다. 「참으로 성상의 말씀과 같습니다. 무릇 군사를 쓸 때 적이 그르치지 않으면 우리 군사가 어찌 이기겠습니까. 비유하면 바둑에서 두 적수가 고른데 한 수를 혹 잃으면 끝내 구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고금의 승패는 대개 한 번 그르침에서 말미암을 뿐이니 하물며 여러 번 잃는 이겠습니까.」
4공격과 수비는 한 법 — 모자람을 보이고 남음을 보인다
太宗曰:「攻守二事,其實一法歟?《孫子》言:『善攻者,敵不知其所守;善守者,敵不知其所攻。』即不言敵來攻我,我亦攻之;我若自守,敵亦守之。攻守兩齊,其術奈何?」 靖曰:「前代似此相攻相守者,多矣。皆曰:『守則不足,攻則有餘。』便謂不足為弱,有餘為強,蓋不悟攻守之法也。臣案《孫子》云:『不可勝者,守也;可勝者,攻也。』謂敵未可勝,則我且自守;待敵可勝,則攻之爾;非以強弱為辭也。後人不曉其義,則當攻而守,當守而攻。二役既殊,故不能一其法。」 太宗曰:「信乎!有餘不足,使後人惑其強弱。殊不知守之法,要在示敵以不足;攻之法,要在示敵以有餘也。示敵以不足,則敵必來攻,此是敵不知其所攻者也;示敵以有餘,則敵必自守,此是敵不知其所守者也。攻守一決,敵與我分為二事。若我事得,則敵事敗;敵事得,則我事敗。得失成敗,彼我之事分焉。攻守者,一而已矣;得一者,百戰百勝。故曰:『知彼知己,百戰不殆。』其知一之謂乎?」 靖再拜曰:「深乎!聖人之法也。攻是守之機,守是攻之策,同歸乎勝而已矣。若攻不知守,守不知攻,不唯二其事,抑又二其官;雖口誦孫、吳,而心不思妙攻守兩齊之說,其孰能知其然哉?」
태종이 「공격과 수비 두 가지는 실은 한 법인가. 『손자』에 『잘 치는 이는 적이 지킬 곳을 모르고 잘 지키는 이는 적이 칠 곳을 모른다』 하였는데 적이 와서 나를 치면 나도 그를 치고 내가 스스로 지키면 적도 지킨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공격과 수비가 둘 다 같을 때 그 술법은 어찌하는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전대에 이처럼 서로 치고 서로 지킨 것이 많습니다. 다 『지키면 모자라고 치면 남는다』 하여 곧 모자람을 약함이라 하고 남음을 강함이라 하니 대개 공격과 수비의 법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신이 『손자』를 살피니 『이길 수 없는 것은 지킴이요 이길 수 있는 것은 공격이다』 하였으니 적을 아직 이길 수 없으면 내가 우선 스스로 지키고 적을 이길 수 있게 되기를 기다려 치라는 말이지 강약으로 말한 것이 아닙니다. 뒷사람이 그 뜻을 몰라 쳐야 할 때 지키고 지켜야 할 때 치니 두 일이 이미 다르므로 그 법을 하나로 하지 못합니다.」 태종이 말하였다. 「참으로 그렇다. 남음과 모자람이 뒷사람으로 하여금 강약에 홀리게 하였다. 지키는 법은 요체가 적에게 모자람을 보이는 데 있고 치는 법은 요체가 적에게 남음을 보이는 데 있음을 전혀 모른 것이다. 적에게 모자람을 보이면 적이 반드시 와서 치니 이는 적이 칠 곳을 모르는 것이요, 적에게 남음을 보이면 적이 반드시 스스로 지키니 이는 적이 지킬 곳을 모르는 것이다. 공격과 수비는 한 번 결단하는 것인데 적과 내가 나뉘어 두 일이 된다. 내 일이 얻어지면 적의 일이 패하고 적의 일이 얻어지면 내 일이 패한다. 득실과 성패는 저와 나의 일로 나뉜다. 공격과 수비는 하나일 뿐이니 하나를 얻는 이는 백 번 싸워 백 번 이긴다. 그러므로 『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하였으니 그 하나를 안다는 말인가.」 이정이 두 번 절하고 말하였다. 「깊도다, 성인의 법이여. 공격은 수비의 기틀이요 수비는 공격의 계책이니 함께 이김으로 돌아갈 뿐입니다. 치면서 지킬 줄 모르고 지키면서 칠 줄 모르면 그 일을 둘로 할 뿐 아니라 또 그 직책도 둘로 합니다. 입으로 손·오를 외워도 마음으로 공격과 수비가 둘 다 같다는 묘한 설을 생각하지 않으면 누가 그러함을 알겠습니까.」
5「나라가 커도 싸움을 좋아하면 망한다」 — 마음을 치고 기운을 지킨다
太宗曰:「《司馬法》言:『國雖大,好戰必亡;天下雖平,忘戰必危。』,此亦攻守一道乎?」 靖曰:「有國有家者,曷嘗不講乎攻守也?夫攻者,不止攻其城、擊其陳而已,必有攻其心之術焉;守者,不止完其壁、堅其陳而已,必也守吾氣而有待焉。大而言之,為君之道;小而言之,為將之法。夫攻其心者,所謂知彼者也;守吾氣者,所謂知己者也。」 太宗曰:「誠哉!朕常臨陳,先料敵之心與己之心孰審,然後彼可得而知焉;察敵之氣與己之氣孰治,然後我可得而知焉。是以知彼知己,兵家大要。今之將臣,雖未知彼,苟能知己,則安有失利者哉?」 靖曰:「孫武所謂『先為不可勝』者,知己者也;『以待敵之可勝』者,知彼者也。又曰:『不可勝在己,可勝在敵。』臣斯須不敢失此誡。」
태종이 「『사마법』에 『나라가 커도 싸움을 좋아하면 반드시 망하고 천하가 평안해도 싸움을 잊으면 반드시 위태롭다』 하였는데 이것도 공격과 수비가 한 도인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나라와 집을 가진 이가 어찌 공격과 수비를 강구하지 않은 적이 있겠습니까. 공격이란 그 성을 치고 그 진을 치는 데 그치지 않고 반드시 그 마음을 치는 술법이 있으며, 수비란 그 벽을 온전히 하고 그 진을 굳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반드시 내 기운을 지키며 기다림이 있습니다. 크게 말하면 임금의 도요 작게 말하면 장수의 법입니다. 그 마음을 친다는 것은 이른바 저를 아는 것이요 내 기운을 지킨다는 것은 이른바 나를 아는 것입니다.」 태종이 말하였다. 「참으로 그렇다. 짐은 늘 진에 임하면 먼저 적의 마음과 내 마음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치밀한가를 헤아린 뒤에 저를 알 수 있었고, 적의 기운과 내 기운 가운데 어느 것이 다스려졌는가를 살핀 뒤에 나를 알 수 있었다. 그러므로 저를 알고 나를 아는 것이 병가의 큰 요체다. 지금 장수인 신하가 저를 알지 못하더라도 참으로 나를 알 수 있다면 어찌 이로움을 잃는 이가 있겠는가.」 이정이 「손무가 말한 『먼저 이길 수 없게 한다』는 것이 나를 아는 것이요 『적을 이길 수 있게 되기를 기다린다』는 것이 저를 아는 것입니다. 또 『이길 수 없음은 나에게 있고 이길 수 있음은 적에게 있다』 하였으니 신은 잠시도 감히 이 경계를 잃지 않습니다」 하였다.
6「삼군의 기운을 빼앗을 수 있다」 — 아침 기운은 시각이 아니다
太宗曰:「《孫子》言『三軍可奪氣』之法:『朝氣銳,晝氣惰,暮氣歸。善用兵者,避其銳氣,擊其惰歸。』,如何?」 靖曰:「夫含生稟血,鼓作鬬爭,雖死不省者,氣使然也。故用兵之法,必先察吾士眾,激吾勝氣,乃可以擊敵焉。吳起『四機』,以氣機為上,無他道也,能使人人自鬬,則其銳莫當。所謂朝氣銳者,非限時刻而言也;舉一日始末為喻也。凡三鼓,而敵不衰不竭,則安能必使之惰歸哉?蓋學者徒謂空文,而為敵所誘。苟悟奪之之理,則兵可任矣。」
태종이 「『손자』가 말한 『삼군의 기운을 빼앗을 수 있다』는 법에 『아침 기운은 날카롭고 낮 기운은 게으르며 저녁 기운은 돌아간다. 군사를 잘 쓰는 이는 그 날카로운 기운을 피하고 게으르고 돌아가는 것을 친다』 하였는데 어떤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생명을 머금고 피를 받은 것이 북을 치고 싸움을 일으켜 죽어도 돌아보지 않는 것은 기운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군사를 쓰는 법은 반드시 먼저 우리 사졸을 살피고 우리의 이기는 기운을 격동시켜야 적을 칠 수 있습니다. 오기의 『네 기틀』에서 기운의 기틀을 으뜸으로 삼은 것은 다른 도가 없으니 사람마다 스스로 싸우게 할 수 있으면 그 날카로움을 당할 이가 없습니다. 이른바 아침 기운이 날카롭다는 것은 시각을 한정하여 말한 것이 아니라 하루의 처음과 끝을 들어 비유한 것입니다. 무릇 북을 세 번 쳐도 적이 쇠하지 않고 다하지 않으면 어찌 반드시 게으르고 돌아가게 하겠습니까. 대개 배우는 이가 한갓 빈 글이라 여기다 적에게 꾐을 당합니다. 참으로 빼앗는 이치를 깨달으면 군사를 맡길 수 있습니다.」
7이적을 어떻게 태자에게 물려줄까
太宗曰:「卿嘗言李勣能兵法,久可用否?然非朕控御,則不可用也。他日太子治,若何御之?」 靖曰:「為陛下計,莫若黜勣,令太子復用之,則必感恩圖報,於理何損乎?」 太宗曰:「善!朕無疑矣。」
태종이 「경이 일찍이 이적이 병법에 능하다 하였는데 오래 쓸 만한가. 그러나 짐이 제어하지 않으면 쓸 수 없다. 뒷날 태자 치가 어떻게 그를 제어하겠는가」 하니 이정이 「폐하를 위해 헤아리건대 이적을 내쳤다가 태자로 하여금 다시 쓰게 하는 것만 한 것이 없으니 그러면 반드시 은혜에 감격하여 보답을 꾀할 것입니다. 이치에 무슨 손해가 있겠습니까」 하였다. 태종이 「좋다. 짐은 의심이 없다」 하였다.
8이적과 장손무기가 함께 국정을 잡으면
太宗曰:「李勣若與長孫無忌共掌國政,他日如何?」 靖曰:「勣忠義,臣可保任也。無忌佐命大功,陛下以肺腑之親,委之輔相;然外貌下士,內實嫉賢。故尉遲敬德,面折其短,遂引退焉;侯君集恨其忘舊,因以犯逆,皆無忌致其然也。陛下詢及臣,臣不敢避其說。」 太宗曰:「勿泄也,朕徐思其處置。」
태종이 「이적이 만약 장손무기와 함께 국정을 잡으면 뒷날 어떻겠는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이적은 충의로워 신이 보증할 수 있습니다. 무기는 창업을 도운 큰 공이 있고 폐하께서 살붙이의 친함으로 보상을 맡기셨습니다. 그러나 겉으로는 선비에게 몸을 낮추나 속은 실로 어진 이를 시기합니다. 그러므로 위지경덕이 면전에서 그 단점을 꺾다가 마침내 물러났고, 후군집이 옛정을 잊었다고 한하다가 그로 인해 반역을 범하였으니 다 무기가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폐하께서 신에게 물으시니 신이 감히 그 말을 피하지 않습니다.」 태종이 「누설하지 마라. 짐이 천천히 그 처치를 생각하겠다」 하였다.
9장수를 거느리는 임금 — 유방·항우와 광무제
太宗曰:「漢高祖能將將,其後韓、彭見誅,蕭何下獄,何故如此?」 靖曰:「臣觀劉、項,皆非將將之君。當秦之亡也,張良本為韓報仇。陳平、韓信皆怨楚不用,故假漢之勢,自為奮爾。至於蕭、曹、樊、灌,悉由亡命。高祖因之以得天下。設使六國之後復立,人人各懷其舊,則雖有能將將之才,豈為漢用哉?臣謂漢得天下,由張良借箸之謀,蕭何漕輓之功也。以此言之,韓、彭見誅,范增不用,其事同也。臣故謂劉、項皆非將將之君。」 太宗曰:「光武中興,能保全功臣,不任以吏事,此則善於將將乎?」 靖曰:「光武雖藉前構,易於成功,然莽勢不下於項籍,寇、鄧未越於蕭、張,獨能推赤心,用柔治,保全功臣,賢於高祖遠矣!以此論將將之道,臣謂光武得之。」
태종이 「한 고조는 장수를 거느릴 수 있었는데 그 뒤 한신·팽월이 죽임을 당하고 소하가 옥에 갇힌 것은 무슨 까닭인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신이 보건대 유방과 항우는 다 장수를 거느리는 임금이 아닙니다. 진나라가 망할 때 장량은 본디 한(韓)나라를 위해 원수를 갚으려 하였고 진평과 한신은 다 초나라가 써 주지 않음을 원망하였으므로 한(漢)나라의 형세를 빌려 스스로 떨쳤을 뿐입니다. 소하·조참·번쾌·관영은 다 달아나 숨어 살던 이들에서 나왔습니다. 고조가 이들에 힘입어 천하를 얻었습니다. 만일 육국의 후예가 다시 섰다면 사람마다 각기 옛 주인을 품었을 것이니 장수를 거느리는 재주가 있어도 어찌 한나라에 쓰였겠습니까. 신이 생각건대 한나라가 천하를 얻은 것은 장량이 젓가락을 빌린 꾀와 소하가 물길로 나른 공에 말미암습니다. 이로 말하면 한신·팽월이 죽임을 당한 것과 범증이 쓰이지 못한 것은 그 일이 같습니다. 신이 그러므로 유방과 항우가 다 장수를 거느리는 임금이 아니라 하는 것입니다.」 태종이 「광무제가 중흥하여 공신을 온전히 보전하고 관리의 일을 맡기지 않았으니 이것은 장수를 거느리기를 잘한 것인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광무제는 앞선 터전에 힘입어 공을 이루기 쉬웠으나 왕망의 형세가 항우보다 낮지 않았고 구순·등우가 소하·장량을 넘지 못하였는데 홀로 속마음을 다 내보여 믿어 주고 부드러운 다스림을 써서 공신을 온전히 보전하였으니 고조보다 훨씬 어집니다. 이것으로 장수를 거느리는 도를 논하면 신은 광무제가 얻었다고 여깁니다.」
10장수 보내는 예 — 재계와 부월
太宗曰:「古者出師命將,齋三日,授之以鉞,曰:『從此至天,將軍制之。』又授之以斧,曰:『從此至地,將軍制之。』又推其轂,曰:『進退唯時。既行,軍中但聞將軍之令,不聞君命。』朕謂此禮久廢,今欲與卿定遣將之儀,如何?」 靖曰:「臣竊謂聖人制作,致齋於廟者,所以假威於神也;授斧鉞又推其轂者,所以委寄以權也。今陛下每有出師,必與公卿議論,告廟而後遣,此則邀以神至矣;每有任將,必使之便宜從事,此則假以權重矣。何與於致齋推轂邪?盡合古禮,其義同焉,不須參定。」 上曰:「善!」乃命近臣書此二事,為後世法。
태종이 말하였다. 「옛날에 군사를 내며 장수에게 명할 때 사흘 재계하고 월을 주며 『이로부터 하늘까지 장군이 제어하라』 하고 또 부를 주며 『이로부터 땅까지 장군이 제어하라』 하며 또 그 수레바퀴를 밀며 『나아가고 물러남은 오직 때에 따르라. 이미 떠나면 군중에서는 다만 장군의 명령만 듣고 임금의 명은 듣지 않는다』 하였다. 짐이 생각건대 이 예가 오래 폐하였으니 지금 경과 함께 장수 보내는 의식을 정하려 하는데 어떤가.」 이정이 말하였다. 「신이 가만히 생각건대 성인이 제작하되 사당에서 재계를 지극히 한 것은 신에게서 위엄을 빌리려는 것이요, 부월을 주고 또 수레바퀴를 민 것은 권한을 맡기려는 것입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군사를 낼 때마다 반드시 공경과 의논하고 사당에 고한 뒤에 보내시니 이는 신을 맞이함이 지극한 것이요, 장수를 맡길 때마다 반드시 편의대로 일을 좇게 하시니 이는 권한을 빌려 줌이 무거운 것입니다. 재계를 지극히 하고 수레바퀴를 미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다 옛 예에 맞고 그 뜻이 같으니 참작하여 정할 것이 없습니다.」 임금이 「좋다」 하고 이에 가까운 신하에게 명하여 이 두 일을 적어 후세의 법으로 삼게 하였다.
11음양 술수를 폐할 수 있는가 — 갑자일과 왕망일, 전단과 태공
太宗曰:「陰陽術數,廢之可乎?」 靖曰:「不可。兵者,詭道也。託之以陰陽術數,則使貪使愚,茲不可廢也。」 太宗曰:「卿嘗言:『天官、時日,明將不法,闇將拘之。』,廢亦宜然!」 靖曰:「昔紂以甲子日亡,武王以甲子日興;天官、時日,甲子一也。殷亂周治,興亡異焉。又宋武帝以徃亡日起兵,軍吏以為不可,帝曰:『我徃彼亡。』果克之。由此言之,可廢明矣。然而田單為燕所圍,單命一人為神,拜而祠之,神言:『燕可破。』,單於是以火牛出擊燕,大破之。此是兵家詭道,天官、時日亦猶此也。」 太宗曰:「田單託神怪而破燕,太公焚蓍龜而滅紂。二事相反,何也?」 靖曰:「其機一也,或逆而取之,或順而行之是也。昔太公佐武王,至牧野,遇雷雨,旗鼓毀折,散宜生欲卜吉而後行,此則因軍中疑懼,必假卜以問神焉。太公以為腐草枯骨無足問。且以臣伐君,豈可再乎?然觀散宜生發機於前,太公成機於後,逆順雖異,其理致則同。臣前所謂術數不可廢者,蓋存其機於未萌也。及其成功,在人事而已矣。」
태종이 「음양 술수를 폐해도 되는가」 하니 이정이 「안 됩니다. 군사는 속이는 도입니다. 음양 술수에 의탁하면 탐하는 이를 부리고 어리석은 이를 부리니 이것은 폐할 수 없습니다」 하였다. 태종이 「경이 일찍이 『천관과 시일은 밝은 장수는 본받지 않고 어두운 장수는 얽매인다』 하였으니 폐하는 것도 마땅하다」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옛날 주왕은 갑자일에 망하고 무왕은 갑자일에 일어났으니 천관과 시일은 갑자로 하나입니다. 은나라는 어지럽고 주나라는 다스려져 흥망이 달랐습니다. 또 송 무제가 왕망일에 군사를 일으키니 군리가 안 된다 하였으나 무제가 『내가 가면 저가 망한다』 하여 과연 이겼습니다. 이로 말하면 폐할 수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전단이 연나라에 포위되었을 때 전단이 한 사람에게 명하여 신이 되게 하고 절하며 제사하니 신이 『연나라를 깨뜨릴 수 있다』 하였고 전단이 이에 꼬리에 불을 붙인 소를 몰아 나가 연나라를 쳐서 크게 깨뜨렸습니다. 이것이 병가의 속이는 도이니 천관과 시일도 이와 같습니다.」 태종이 「전단은 신괴에 의탁하여 연나라를 깨뜨렸고 태공은 시초와 거북을 불사르고 주왕을 멸하였다. 두 일이 서로 반대인데 어째서인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그 기틀은 하나이니 혹은 거슬러 취하고 혹은 따라 행한 것입니다. 옛날 태공이 무왕을 도와 목야에 이르러 우레와 비를 만나 깃발과 북이 부서지니 산의생이 길함을 점친 뒤에 가려 하였습니다. 이는 군중이 의심하고 두려워하므로 반드시 점을 빌려 신에게 묻는 것입니다. 태공은 썩은 풀과 마른 뼈는 물을 것이 못 된다고 여겼습니다. 또 신하로서 임금을 치는데 어찌 두 번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산의생이 앞에서 기틀을 일으키고 태공이 뒤에서 기틀을 이룬 것을 보면 거스름과 따름은 달라도 그 이치는 같습니다. 신이 앞서 술수를 폐할 수 없다 한 것은 대개 아직 싹트지 않은 데서 그 기틀을 두려는 것입니다. 그 공을 이루는 데 이르면 사람의 일에 있을 뿐입니다.」
12절제의 군사 — 크게 이기지도 크게 지지도 않는다
太宗曰:「當今將帥,唯李勣、道宗、薛萬徹。除道宗以親屬外,孰堪大用?」 靖曰:「陛下嘗言勣、道宗用兵,不大勝亦不大敗;萬徹若不大勝即須大敗。臣愚思聖言,不求大勝亦不大敗者,節制之兵也;或大勝或大敗者,幸而成功者也。故孫武云:『善戰者,立於不敗之地,而不失敵之敗也。』,節制在我云爾。」
태종이 「지금 장수는 오직 이적·도종·설만철뿐이다. 도종은 친족이라 빼고 누가 크게 쓸 만한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폐하께서 일찍이 이적과 도종은 군사를 써서 크게 이기지도 크게 지지도 않고, 만철은 크게 이기지 않으면 곧 크게 진다 하셨습니다. 신이 어리석게 성상의 말씀을 생각건대 크게 이김을 구하지 않고 크게 지지도 않는 것은 절제의 군사요, 혹 크게 이기고 혹 크게 지는 것은 요행으로 공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손무가 『잘 싸우는 이는 패하지 않을 땅에 서서 적의 패함을 놓치지 않는다』 하였으니 절제가 나에게 있다는 말입니다.」
13싸우지 않음은 나에게, 반드시 싸움은 적에게
太宗曰:「兩陳相臨,欲言不戰,安可得乎?」 靖曰:「昔晉師伐秦,交綏而退。《司馬法》曰:『逐奔不遠,縱綏不及。』臣謂綏者,御轡之索也。我兵既有節制,彼敵亦正行伍,豈敢輕戰哉?故有出而交綏,退而不逐,各防其失敗者也。孫武云:『勿擊堂堂之陳,無邀正正之旗。』若兩陳體均勢等,苟一輕肆,為其所乘,則或大敗,理使然也。是故,兵有不戰、有必戰。夫不戰者在我,必戰者在敵。」 太宗曰:「不戰在我,何謂也?」 靖曰:「孫武云:『我不欲戰者,畫地而守之,敵不得與我戰者,乖其所之也。』敵有人焉,則交綏之間,未可圖也。故曰不戰在我。夫必戰在敵者,孫武云:『善動敵者,形之,敵必從之;予之,敵必取之。以利動之,以本待之。』。敵無人焉,則必來戰,吾得以乘而破之。故曰必戰者在敵。」
태종이 「두 진이 서로 마주하여 싸우지 않으려 한다면 될 수 있는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옛날 진(晉)나라 군사가 진(秦)나라를 칠 때 고삐를 맞대고 물러났습니다. 『사마법』에 『달아나는 이를 쫓되 멀리 가지 않고 고삐를 늦추되 미치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신이 생각건대 수(綏)란 고삐를 잡는 끈입니다. 우리 군사가 이미 절제가 있고 저 적도 항오를 바르게 하였으면 어찌 감히 가벼이 싸우겠습니까. 그러므로 나가서 고삐를 맞대고 물러나되 쫓지 않아 각기 그 실패를 막은 것입니다. 손무가 『당당한 진은 치지 말고 정정한 깃발은 맞지 마라』 하였습니다. 두 진이 몸이 고르고 형세가 같은데 참으로 한 번 가벼이 굴어 저에게 타이면 혹 크게 패하니 이치가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군사에는 싸우지 않음이 있고 반드시 싸움이 있습니다. 싸우지 않는 것은 나에게 있고 반드시 싸우는 것은 적에게 있습니다.」 태종이 「싸우지 않음이 나에게 있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손무가 『내가 싸우려 하지 않으면 땅에 금을 긋고 지켜도 적이 나와 싸우지 못하니 그 가는 바를 어그러뜨리기 때문이다』 하였습니다. 적에게 사람이 있으면 고삐를 맞댄 사이에 도모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싸우지 않음이 나에게 있다 합니다. 반드시 싸움이 적에게 있다는 것은 손무가 『적을 잘 움직이는 이는 드러내면 적이 반드시 따르고 주면 적이 반드시 취한다. 이로움으로 움직이고 근본으로 기다린다』 하였습니다. 적에게 사람이 없으면 반드시 와서 싸우니 우리가 타서 깨뜨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싸움이 적에게 있다 합니다.」
14역대의 절제를 그림으로 엮어 올리라
太宗曰:「深乎!節制之兵。得其法則昌,失其法則亡。卿為纂述歷代善於節制者,具圖來上,朕當擇其精微,垂於後世。」 靖曰:「臣前所進黃帝、太公二陳圖,并《司馬法》、諸葛亮奇正之法,此已精悉。歷代名將,用其一二,成功者亦眾矣。但史官鮮克知兵,不能紀其實迹焉。臣敢不奉詔,當纂述以聞。」
태종이 「깊도다, 절제의 군사여. 그 법을 얻으면 창성하고 그 법을 잃으면 망한다. 경은 역대에 절제를 잘한 이를 엮어 그림을 갖추어 올리라. 짐이 마땅히 그 정밀한 것을 가려 후세에 남기겠다」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신이 앞서 올린 황제·태공의 두 진도와 『사마법』, 제갈량의 기정의 법이 이미 정밀하고 자세합니다. 역대 이름난 장수가 그 한둘을 써서 공을 이룬 이도 많습니다. 다만 사관이 병법을 아는 이가 드물어 그 실제 자취를 적지 못하였습니다. 신이 감히 조서를 받들지 않겠습니까. 마땅히 엮어 아뢰겠습니다.」
15병법의 세 등급 — 도·천지·장법, 그리고 책을 이적에게 전하다
太宗曰:「兵法,孰為最深?」 靖曰:「臣常分為三等,使學者當漸而至焉。一曰道,二曰天地,三曰將法。夫道之說,至微至深;《易》所謂『聰明叡智,神武而不殺』者是也。夫天之說陰陽,地之說險易。善用兵者,能以陰奪陽,以險攻易;《孟子》所謂『天時地利』者是也。夫將法之說,在乎任人利器;《三略》所謂『得士者昌』、《管子》所謂『器必堅利』者是也。」 太宗曰:「然!吾謂不戰而屈人之兵者,上也;百戰百勝者,中也;深溝高壘以自守者,下也。以是校量,孫武著書,三等皆具焉。」 靖曰:「觀其文,迹其事,亦可差別矣。若張良、范蠡、孫武,脫然高引,不知所往,此非知道,安能爾乎?若樂毅、管仲、諸葛亮,戰必勝,守必固,此非察天時地利,安能爾乎?其次王猛之保秦,謝安之守晉,非任將擇材,繕完自固,安能爾乎?故習兵之學,必先繇下以及中,繇中以及上,則漸而深矣。不然,則垂空言,徒記誦,無足取也。」 太宗曰:「道家忌三世為將者,不可妄傳也,亦不可不傳也。卿其慎之。」靖再拜出,盡傳其書與李勣。
태종이 「병법은 무엇이 가장 깊은가」 하니 이정이 말하였다. 「신은 늘 세 등급으로 나누어 배우는 이가 차츰 이르게 합니다. 첫째는 도요 둘째는 천지요 셋째는 장법입니다. 도의 설은 지극히 은미하고 지극히 깊으니 『주역』에 이른바 『총명하고 슬기로우며 신묘한 무용으로 죽이지 않는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하늘의 설은 음양이요 땅의 설은 험하고 평탄함입니다. 군사를 잘 쓰는 이는 음으로 양을 빼앗고 험함으로 평탄함을 치니 『맹자』에 이른바 『천시와 지리』가 그것입니다. 장법의 설은 사람을 맡기고 병기를 날카롭게 하는 데 있으니 『삼략』에 이른바 『선비를 얻은 이는 창성한다』와 『관자』에 이른바 『병기는 반드시 굳고 날카로워야 한다』가 그것입니다.」 태종이 「그렇다. 나는 싸우지 않고 남의 군사를 굽히는 것이 으뜸이요 백 번 싸워 백 번 이기는 것이 중간이요 도랑을 깊이 파고 보루를 높여 스스로 지키는 것이 아래라 여긴다. 이것으로 헤아리면 손무가 지은 책에 세 등급이 다 갖추어져 있다」 하였다. 이정이 말하였다. 「그 글을 보고 그 일을 더듬으면 또한 차별할 수 있습니다. 장량·범려·손무처럼 훌쩍 높이 물러나 간 곳을 모르게 한 것은 도를 아는 이가 아니면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악의·관중·제갈량처럼 싸우면 반드시 이기고 지키면 반드시 굳은 것은 천시와 지리를 살핀 이가 아니면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그 다음 왕맹이 진(秦)나라를 보전하고 사안이 진(晉)나라를 지킨 것은 장수를 맡기고 재목을 가려 수선하여 스스로 굳게 한 이가 아니면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병법의 배움은 반드시 먼저 아래에서 중간에 이르고 중간에서 위에 이르러야 차츰 깊어집니다. 그렇지 않으면 빈말을 남기고 한갓 외울 뿐이니 취할 것이 없습니다.」 태종이 「도가는 삼대가 장수 되는 것을 꺼리니 함부로 전해서도 안 되고 전하지 않아서도 안 된다. 경은 삼가라」 하였다. 이정이 두 번 절하고 나가 그 책을 이적에게 다 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