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辭過

묵자 墨子 · 묵적(墨翟)과 그 문인들 · 기원전 4세기 무렵 · 단락 6 · 한자 1,279자 · 낭독 5.1분

「묵자」 사과 「辭過」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전국시대에 유가와 나란히 「두 큰 무리」로 꼽히던 학파의 글이다. 한 사람의 저술이 아니라 묵적과 그 문인들이 대를 이어 보탠 것이라, 같은 주장을 상·중·하 세 벌로 적어 둔 편이 많다. 문파가 갈려 저마다 옮겨 적은 자취로 본다. 열 가지 주장이 뼈대다 — 어진 이를 높이고(상현), 위와 옳음을 같이하고(상동), 아울러 사랑하고(겸애), 침을 그르다 하고(비공), 씀에 마디 짓고(절용), 장사에 마디 짓고(절장), 하늘의 뜻을 따르고(천지), 귀신을 밝히고(명귀), 음악을 그르다 하고(비악), 명을 그르다 한다(비명). 「남의 집 보기를 제 집같이 하면 누가 훔치겠는가」가 겸애편에, 복숭아 한 알을 훔치면 벌하면서 남의 나라를 치면 기린다는 「비공」의 계단이, 잣대 없이 말하면 「돌아가는 물레 위에 해 뜨고 지는 자리를 세우는 것」이라는 세 표(三表)가 비명편에 있다. 끝의 「공수」 한 편은 이야기다. 초나라가 구름사다리를 만들어 송나라를 치려 하자 묵자가 열 낮 열 밤을 걸어가 공수반과 띠와 나뭇조각으로 아홉 번 겨루어 이기고, 돌아오는 길에 비를 만나 정작 그 송나라 마을 문 안에서 비를 못 피한다.

子墨子曰:古之民,未知爲宮室時,就陵阜而居,穴而處。下潤濕傷民,故聖王作爲宮室,爲宮室之法,曰:高足以辟潤濕,邊足以圉風寒,上足以待雪霜雨露,宮墻之高,足以別男女之禮。謹此則止,凡費財勞力不加利者,不爲也。是故聖王作爲宮室,便於生,不以爲觀樂也。作爲衣服帶履,便於身,不以爲辟怪也。故節於身,誨於民,是以天下之民可得而治,財用可得而足。當今之主,其爲宮室則與此異矣。必厚作斂於百姓,暴奪民衣食之財,以爲宮室臺榭曲直之望、青黃刻鏤之飾。爲宮室若此,故左右皆法象之,是以其財不足以待凶饑,振孤寡,故國貧而民難治也。君實欲天下之治而惡其亂也,當爲宮室不可不節。

묵자가 말하였다. 「옛적 백성이 아직 집 지을 줄 모르던 때에는 언덕에 나아가 살고 굴을 파고 지냈다. 아래가 눅눅하고 젖어 백성을 다치므로 거룩한 왕이 집을 지었다.

집 짓는 법은 이러하다. 높이는 눅눅하고 젖음을 피하기에 넉넉하고, 둘레는 바람과 추위를 막기에 넉넉하고, 위는 눈과 서리와 비와 이슬을 견디기에 넉넉하며, 담의 높이는 사내와 계집의 예를 가르기에 넉넉하다. 이것만 삼가고 그친다. 무릇 재물을 쓰고 힘을 수고롭게 하되 이로움을 더하지 않는 것은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거룩한 왕이 집을 지음은 사는 데 편하게 하려 함이지 볼거리로 즐기려 함이 아니었고, 옷과 띠와 신을 지음은 몸에 편하게 하려 함이지 괴이하게 꾸미려 함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제 몸에 절도를 지켜 백성을 가르쳤고, 이로써 천하 백성이 다스려지고 재물과 쓰임이 넉넉해질 수 있었다.

이제 임금이 집 짓는 것은 이와 다르다. 반드시 백성에게 두터이 거두고 백성의 옷과 밥 될 재물을 사납게 빼앗아, 집과 대와 정자를 굽고 곧게 바라보이도록 하고 푸르고 누렇게 새겨 꾸민다. 집 짓기를 이같이 하니 좌우가 다 이를 본떠, 이로써 그 재물이 흉년과 굶주림에 대비하고 외롭고 홀로 된 이를 건지기에 넉넉하지 않다. 그러므로 나라가 가난하고 백성이 다스리기 어렵다.

임금이 참으로 천하가 다스려지기를 바라고 그 어지러움을 미워한다면, 마땅히 집 짓는 데 아껴 쓰지 않을 수 없다.」

古之民未知爲衣服時,衣皮帶茭,冬則不輕而溫,夏則不輕而凊。聖王以爲不中人之情,故作誨婦人治絲麻,㨡布絹,以爲民衣。爲衣服之法:冬則練帛之中,足以爲輕且煖;夏則絺綌之中,足以爲輕且凊。謹此則止。故聖人爲衣服,適身體、和肌膚而足矣,非榮耳目而觀愚民也。當是之時,堅車良馬不知貴也,刻鏤文采不知喜也。何則?其所道之然。故民衣食之財,家足以待旱水凶饑者,何也?得其所以自養之情,而不感於外也。是以其民儉而易治,其君用財節而易贍也。府庫實滿,足以待不然;兵革不頓,士民不勞,足以征不服。故霸王之業可行於天下矣。當今之王,其爲衣服則與此異矣。冬則輕煗,夏則輕凊,皆已具矣。必厚作斂於百姓,暴奪民衣食之財,以爲錦繡文采靡曼之衣。鑄金以爲鉤,珠玉以爲珮,女工作文采,男工作刻鏤,以爲身服。此非云益煗之情也,單財勞力,畢歸之於無用也。以此觀之,其爲衣服,非爲身體,皆爲觀好。是以其民淫僻而難治,其君奢侈而難諫也。夫以奢侈之君御好淫僻之民,欲用無亂,不可得也。君實欲天下之治而惡其亂,當爲衣服不可不節。

옛적 백성이 아직 옷 지을 줄 모르던 때에는 가죽을 입고 풀을 띠었는데, 겨울에는 가볍지 않으나 따뜻하고 여름에는 가볍지 않으나 시원하였다. 거룩한 왕이 이를 사람의 정에 맞지 않다 여겨, 여인에게 명주와 삼을 다루고 베와 명주를 짜게 가르쳐 백성의 옷을 지었다.

옷 짓는 법은 이러하다. 겨울에는 다듬은 비단으로 가볍고 따뜻하기에 넉넉하게 하고, 여름에는 가는 갈포와 굵은 갈포로 가볍고 시원하기에 넉넉하게 한다. 이것만 삼가고 그친다.

그러므로 성인이 옷을 지음은 몸에 맞고 살갗에 화하면 넉넉하였지, 귀와 눈을 영화롭게 하여 어리석은 백성에게 보이려 함이 아니었다. 이때에는 굳은 수레와 좋은 말을 귀히 여길 줄 모르고 새기고 무늬 놓은 것을 기뻐할 줄 몰랐다. 어째서인가. 그 이끄는 바가 그러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백성의 옷과 밥 될 재물이 집마다 가뭄과 큰물과 흉년과 굶주림에 대비하기에 넉넉하였으니 어째서인가. 그 스스로 기르는 정을 얻어 밖에 흔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로써 그 백성이 검소하여 다스리기 쉽고 그 임금이 재물 씀에 절도가 있어 넉넉하기 쉬웠다. 곳간이 가득 차 뜻밖의 일에 대비하기에 넉넉하고, 병기와 갑옷이 무디지 않고 선비와 백성이 수고롭지 않아 굴복하지 않는 이를 치기에 넉넉하였다. 그러므로 으뜸과 왕의 업을 천하에 행할 수 있었다.

이제 왕이 옷 짓는 것은 이와 다르다. 겨울에 가볍고 따뜻하며 여름에 가볍고 시원한 것이 다 이미 갖추어졌는데도, 반드시 백성에게 두터이 거두고 백성의 옷과 밥 될 재물을 사납게 빼앗아 비단에 수놓고 무늬 놓은 하늘거리는 옷을 짓는다. 쇠를 부어 갈고리를 만들고 구슬과 옥으로 노리개를 만들며, 여인은 무늬를 놓고 사내는 새김을 하여 몸에 걸칠 옷을 짓는다.

이는 따뜻함을 더한다는 정이 아니라 재물을 다하고 힘을 수고롭게 하여 다 쓸데없는 데로 돌리는 것이다. 이로 보건대 그 옷을 지음은 몸을 위함이 아니라 다 보기 좋게 하려는 것이다. 이로써 그 백성이 넘치고 치우쳐 다스리기 어렵고 그 임금이 사치하여 간하기 어렵다. 무릇 사치한 임금으로 넘치고 치우친 백성을 몰면서 어지러움이 없기를 바란들 얻을 수 없다.

임금이 참으로 천하가 다스려지기를 바라고 그 어지러움을 미워한다면, 마땅히 옷 짓는 데 아껴 쓰지 않을 수 없다.

古之民未知爲飲食時,素食而分處。故聖人作誨男耕稼樹藝,以爲民食。其爲食也,足以增氣充虛、彊體適腹而已矣。故其用財節,其自養儉,民富國治。今則不然,厚作斂於百姓,以爲美食芻豢,蒸炙魚鼈,大國累百器,小國累十器,前方丈,目不能徧視,手不能徧操,口不能徧味,冬則凍冰,夏則餲饐。人君爲飲食如此,故左右象之,是以富貴者奢侈,孤寡者凍餒,雖欲無亂,不可得也。君實欲天下治而惡其亂,當爲食飲不可不節。

옛적 백성이 아직 먹고 마실 줄 모르던 때에는 거친 것을 먹고 따로 흩어져 지냈다. 그러므로 성인이 사내에게 밭 갈고 심고 가꾸기를 가르쳐 백성의 먹을 것을 지었다. 그 먹을 것이란 기운을 더하고 빈 데를 채우며 몸을 굳세게 하고 배에 맞으면 그뿐이었다. 그러므로 그 재물 씀에 절도가 있고 스스로 기름이 검소하여 백성이 가멸고 나라가 다스려졌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 백성에게 두터이 거두어 아름다운 밥과 기른 짐승과 찌고 구운 물고기와 자라를 마련하되, 큰 나라는 백 그릇을 쌓고 작은 나라는 열 그릇을 쌓아 앞이 한 길이나 되니 눈으로 다 볼 수 없고 손으로 다 잡을 수 없고 입으로 다 맛볼 수 없어, 겨울에는 얼어붙고 여름에는 쉬어 버린다.

임금이 먹고 마시기를 이같이 하니 좌우가 이를 본떠, 이로써 가멸고 귀한 이는 사치하고 외롭고 홀로 된 이는 얼고 주린다. 비록 어지러움이 없기를 바란들 얻을 수 없다.

임금이 참으로 천하가 다스려지기를 바라고 그 어지러움을 미워한다면, 마땅히 먹고 마시는 데 아껴 쓰지 않을 수 없다.

古之民未知爲舟車時,重任不移,遠道不至。故聖王作爲舟車,以便民之事。其爲舟車也,完固輕利,可以任重致遠。其爲用財少,而爲利多,是以民樂而利之。故法令不急而行,民不勞而上足用,故民歸之。當今之主,其爲舟車與此異矣。完固輕利皆已具,必厚作斂於百姓,以飾舟車,飾車以文采,飾舟以刻鏤。女子廢其紡織而脩文采,故民寒;男子離其耕稼而脩刻鏤,故民飢。人君爲舟車若此,故左右象之。是以其民飢寒並至,故爲姦衺。姦衺多則刑罰深,刑罰深則國亂。君實欲天下之治而惡其亂,當爲舟車不可不節。

옛적 백성이 아직 배와 수레를 지을 줄 모르던 때에는 무거운 짐이 옮겨지지 않고 먼 길이 이르러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거룩한 왕이 배와 수레를 지어 백성의 일을 편하게 하였다. 그 배와 수레는 온전하고 굳고 가볍고 편해 무거운 것을 지고 멀리 이를 수 있었다. 그 재물 씀은 적고 이로움은 많았으니, 이로써 백성이 즐거워하고 이롭게 여겼다. 그러므로 법과 명이 급하지 않아도 행해지고 백성이 수고롭지 않아도 위가 쓰기에 넉넉하였으니, 그래서 백성이 그에게 돌아왔다.

이제 임금이 배와 수레를 지음은 이와 다르다. 온전하고 굳고 가볍고 편한 것이 다 이미 갖추어졌는데도, 반드시 백성에게 두터이 거두어 배와 수레를 꾸미되 수레는 무늬로 꾸미고 배는 새겨 꾸민다. 여인이 그 길쌈을 버리고 무늬를 놓으므로 백성이 춥고, 사내가 그 밭갈이를 떠나 새김을 하므로 백성이 주린다.

임금이 배와 수레를 이같이 지으니 좌우가 이를 본떠, 이로써 그 백성에게 주림과 추위가 아울러 이른다. 그러므로 간사하고 그릇된 짓을 하고, 간사하고 그릇됨이 많으면 형벌이 깊어지고, 형벌이 깊어지면 나라가 어지럽다.

임금이 참으로 천하가 다스려지기를 바라고 그 어지러움을 미워한다면, 마땅히 배와 수레를 짓는 데 아껴 쓰지 않을 수 없다.

凡回於天地之閒,包於四海之內,天壤之情,陰陽之和,莫不有也,雖至聖不能更也。何以知其然?聖人有傳:天地也,則曰上下;四時也,則曰陰陽;人情也,則曰男女;禽獸也,則曰牡牝雄雌也。真天壤之情,雖有先王,不能更也。雖上世至聖,必蓄私不以傷行,故民無怨。宮無拘女,故天下無寡夫。內無拘女,外無寡夫,故天下之民衆。當今之君,其蓄私也,大國拘女累千,小國累百,是以天下之男多寡無妻,女多拘無夫。男女失時,故民少。君實欲民之衆而惡其寡,當蓄私不可不節。

무릇 하늘과 땅 사이를 도는 것과 사해 안에 싸인 것 가운데, 하늘과 땅의 정과 음과 양의 화함을 지니지 않은 것이 없으니 비록 지극한 성인이라도 고칠 수 없다.

무엇으로 그러함을 아는가. 성인이 전한 것이 있다. 하늘과 땅은 위와 아래라 하고, 네 철은 음과 양이라 하고, 사람의 정은 사내와 계집이라 하고, 새와 짐승은 수컷과 암컷이라 한다. 참으로 하늘과 땅의 정이라 비록 앞선 임금이 있어도 고칠 수 없다.

비록 옛 세상의 지극한 성인이라도 반드시 사사로이 여인을 두었으나 그 행실을 다치지 않았으므로 백성이 원망하지 않았다. 궁에 갇힌 여인이 없었으므로 천하에 홀아비가 없었다. 안에 갇힌 여인이 없고 밖에 홀아비가 없었으므로 천하의 백성이 많았다.

이제 임금이 사사로이 여인을 두되 큰 나라는 갇힌 여인이 천을 쌓고 작은 나라는 백을 쌓는다. 이로써 천하에 사내는 홀로 되어 아내 없는 이가 많고 여인은 갇혀 지아비 없는 이가 많다. 사내와 계집이 때를 잃으므로 백성이 적다.

임금이 참으로 백성이 많기를 바라고 그 적음을 미워한다면, 마땅히 사사로이 여인 두는 데 절제하지 않을 수 없다.

凡此五者,聖人之所儉節也,小人之所淫佚也。儉節則昌,淫佚則亡。此五者不可不節,夫婦節而天地和,風雨節而五穀孰,衣服節而肌膚和。

무릇 이 다섯은 성인이 검소하게 절제하는 바요 소인이 넘치게 흐르는 바다. 검소하게 절제하면 창성하고 넘치게 흐르면 없어진다. 이 다섯은 절제하지 않을 수 없다. 지아비와 지어미가 절도를 지키면 하늘과 땅이 화하고, 바람과 비가 절도에 맞으면 다섯 곡식이 익고, 옷이 절도에 맞으면 살갗이 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