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兼愛下

묵자 墨子 · 묵적(墨翟)과 그 문인들 · 기원전 4세기 무렵 · 단락 8 · 한자 2,900자 · 낭독 11.6분

「묵자」 겸애하 「兼愛下」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전국시대에 유가와 나란히 「두 큰 무리」로 꼽히던 학파의 글이다. 한 사람의 저술이 아니라 묵적과 그 문인들이 대를 이어 보탠 것이라, 같은 주장을 상·중·하 세 벌로 적어 둔 편이 많다. 문파가 갈려 저마다 옮겨 적은 자취로 본다. 열 가지 주장이 뼈대다 — 어진 이를 높이고(상현), 위와 옳음을 같이하고(상동), 아울러 사랑하고(겸애), 침을 그르다 하고(비공), 씀에 마디 짓고(절용), 장사에 마디 짓고(절장), 하늘의 뜻을 따르고(천지), 귀신을 밝히고(명귀), 음악을 그르다 하고(비악), 명을 그르다 한다(비명). 「남의 집 보기를 제 집같이 하면 누가 훔치겠는가」가 겸애편에, 복숭아 한 알을 훔치면 벌하면서 남의 나라를 치면 기린다는 「비공」의 계단이, 잣대 없이 말하면 「돌아가는 물레 위에 해 뜨고 지는 자리를 세우는 것」이라는 세 표(三表)가 비명편에 있다. 끝의 「공수」 한 편은 이야기다. 초나라가 구름사다리를 만들어 송나라를 치려 하자 묵자가 열 낮 열 밤을 걸어가 공수반과 띠와 나뭇조각으로 아홉 번 겨루어 이기고, 돌아오는 길에 비를 만나 정작 그 송나라 마을 문 안에서 비를 못 피한다.

子墨子言曰:仁人之事者,必務求興天下之利,除天下之害。然當今之時,天下之害孰爲大?曰:若大國之攻小國也,大家之亂小家也,强之劫弱,衆之暴寡,詐之謀愚,貴之敖賤,此天下之害也。又與爲人君者之不惠也,臣者之不忠也,父者之不慈也,子者之不孝也,此又天下之害也。又與今人之賤人,執其兵刃毒藥水火,以交相虧賊,此又天下之害也。姑嘗本原若衆害之所自生,此胡自生?此自愛人、利人生與?卽必曰非然也,必曰從惡人、賊人生。分名乎天下惡人而賊人者,兼與?別與?卽必曰別也。然卽之交別者,果生天下之大害者與?是故別非也。

묵자가 말하였다. 「어진 사람의 일은 반드시 천하의 이로움을 일으키고 천하의 해로움을 없애기를 힘써 구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이 때에 천하의 해로움 가운데 무엇이 큰가. 말하기를,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치고 큰 집이 작은 집을 어지럽히며, 굳센 이가 약한 이를 겁박하고 무리 많은 이가 적은 이에게 사납고 속이는 이가 어리석은 이를 꾀하고 귀한 이가 천한 이에게 거만한 것, 이것이 천하의 해로움이다.

또 남의 임금 된 이가 은혜롭지 않고 신하 된 이가 참되지 않고 아비 된 이가 사랑하지 않고 아들 된 이가 효도하지 않는 것, 이 또한 천하의 해로움이다.

또 이제 사람이 남을 천히 여겨 그 병기와 칼과 독약과 물과 불을 잡고 서로 헐고 해치는 것, 이 또한 천하의 해로움이다.

잠시 시험 삼아 이 뭇 해로움이 어디서 나는지 밑동을 캐 보자. 이것이 어디서 나는가. 이것이 남을 사랑하고 남을 이롭게 함에서 나는가. 곧 반드시 그렇지 않다 할 것이요, 반드시 남을 미워하고 남을 해침에서 난다 할 것이다.

천하에 남을 미워하고 남을 해치는 이를 갈라 이름하면 아우름인가 가름인가. 곧 반드시 가름이라 할 것이다. 그러면 이 서로 가르는 것이 과연 천하의 큰 해로움을 내는 것인가. 그러므로 가름은 그르다.」

子墨子曰:非人者,必有以易之。若非人而無以易之,譬之猶以水救火也,其說將必無可焉。是故子墨子曰:兼以易別。然卽兼之可以易別之故何也?曰:藉爲人之國若爲其國,夫誰獨舉其國以攻人之國者哉?爲彼者由爲己也。爲人之都若爲其都,夫誰獨舉其都以伐人之都者哉?爲彼猶爲己也。爲人之家若爲其家,夫誰獨舉其家以亂人之家者哉?爲彼猶爲己也。然卽國都不相攻伐,人家不相亂賊,此天下之害與?天下之利與?卽必曰天下之利也。姑嘗本原若衆利之所自生,此胡自生?此自惡人、賊人生與?卽必曰非然也,必曰從愛人、利人生。分名乎天下愛人而利人者,別與?兼與?卽必曰兼也。然卽之交兼者,果生天下之大利者與?是故子墨子曰:兼是也。

묵자가 말하였다. 「남을 그르다 하는 이는 반드시 바꿀 것이 있어야 한다. 만일 남을 그르다 하면서 바꿀 것이 없으면, 비유하면 물로 불을 끄는 것과 같아 그 말이 장차 반드시 될 것이 없다.」

그러므로 묵자가 말하였다. 「아우름으로 가름을 바꾼다.

그러면 아우름이 가름을 바꿀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말하기를, 남의 나라 위하기를 제 나라 위하듯 하면 무릇 누가 홀로 그 나라를 들어 남의 나라를 치겠는가. 남을 위함이 저를 위함에서 말미암기 때문이다. 남의 도읍 위하기를 제 도읍 위하듯 하면 무릇 누가 홀로 그 도읍을 들어 남의 도읍을 치겠는가. 남을 위함이 저를 위함과 같기 때문이다. 남의 집 위하기를 제 집 위하듯 하면 무릇 누가 홀로 그 집을 들어 남의 집을 어지럽히겠는가. 남을 위함이 저를 위함과 같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라와 도읍이 서로 치지 않고 사람과 집이 서로 어지럽히고 해치지 않으니, 이것이 천하의 해로움인가 천하의 이로움인가. 곧 반드시 천하의 이로움이라 할 것이다.

잠시 시험 삼아 이 뭇 이로움이 어디서 나는지 밑동을 캐 보자. 이것이 어디서 나는가. 이것이 남을 미워하고 남을 해침에서 나는가. 곧 반드시 그렇지 않다 할 것이요, 반드시 남을 사랑하고 남을 이롭게 함에서 난다 할 것이다.

천하에 남을 사랑하고 남을 이롭게 하는 이를 갈라 이름하면 가름인가 아우름인가. 곧 반드시 아우름이라 할 것이다. 그러면 이 서로 아우르는 것이 과연 천하의 큰 이로움을 내는 것인가.」

그러므로 묵자가 말하였다. 「아우름이 옳다.」

且鄉吾本言曰:仁人之事者,必務求興天下之利,除天下之害。今吾本原兼之所生天下之大利者也,吾本原別之所生天下之大害者也。是故子墨子曰:別非而兼是者,出乎若方也。今吾將正求興天下之利而取之,以兼爲正。是以聰耳明目相爲視聽乎,是以股肱畢强相爲動宰乎,而有道肆相教誨。是以老而無妻子者,有所侍養以終其壽;幼弱孤童之無父母者,有所放依以長其身。今唯毋以兼爲政,卽若其利也。不識天下之士所以皆聞兼而非之者,其故何也?

또 앞서 내가 본디 말하기를 「어진 사람의 일은 반드시 천하의 이로움을 일으키고 천하의 해로움을 없애기를 힘써 구하는 것이다」 하였다. 이제 나는 아우름이 천하의 큰 이로움을 냄을 밑동에서 캤고, 가름이 천하의 큰 해로움을 냄을 밑동에서 캤다.

그러므로 묵자가 말하였다. 「가름이 그르고 아우름이 옳다는 것이 이런 자리에서 나온다.」

이제 내가 장차 바르게 천하의 이로움 일으키기를 구하여 그것을 취하려면 아우름으로 바름을 삼는다. 이로써 귀 밝고 눈 밝은 이가 서로 보고 들어 주고, 이로써 팔다리가 굳센 이가 서로 움직여 주며, 도 있는 이가 힘써 서로 가르친다. 이로써 늙어 아내와 자식 없는 이가 모시고 기를 데를 얻어 그 목숨을 마치고, 어리고 약한 고아로 어버이 없는 이가 의지할 데를 얻어 그 몸을 기른다.

이제 오직 아우름으로 정사 하면 곧 그 이로움이 이러하다. 천하의 선비가 다 아우름을 듣고 그르다 하는 까닭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然而天下之士非兼者之言猶未止也,曰:「兼卽善矣,雖然,豈可用哉?」子墨子曰:用而不可,雖我亦將非之。且焉有善而不可用者?姑嘗兩而進之,設以爲二士,使其一士者執別,使其一士者執兼。是故別士之言曰:「吾豈能爲吾友之身若爲吾身,爲吾友之親若爲吾親?」是故退睹其友,飢卽不食,寒卽不衣,疾病不侍養,死喪不葬埋。別士之言若此,行若此。兼士之言不然,行亦不然,曰:「吾聞爲高士於天下者,必爲其友之身若爲其身,爲其友之親若爲其親,然後可以爲高士於天下。」是故退睹其友,飢則食之,寒則衣之,疾病侍養之,死喪葬埋之。兼士之言若此,行若此。若之二士者,言相非而行相反與?當使若二士者,言必信,行必果,使言行之合,猶合符節也,無言而不行也。然卽敢問:今有平原廣野於此,被甲嬰胄,將往戰,死生之權未可識也;又有君大夫之遠使於巴、越、齊、荆,往來及否未及否,未可識也。然卽敢問不識將惡擇之也?家室,奉承親戚,提挈妻子,而寄託之,不識於兼之有是乎?於別之有是乎?我以爲當其於此也,天下無愚夫愚婦,雖非兼之人,必寄託之於兼之有是也。此言而非兼,擇卽取兼,卽此言行費也。不識天下之士,所以皆聞兼而非之者,其故何也?

그런데 천하의 선비 가운데 아우름을 그르다 하는 이의 말이 오히려 그치지 않아 말한다. 「아우름은 좋다. 그러나 어찌 쓸 수 있겠는가.」

묵자가 말하였다. 「써서 안 될 것이면 비록 나라도 또한 장차 그르다 하겠다. 또 어찌 좋으면서 쓸 수 없는 것이 있겠는가.

잠시 시험 삼아 둘을 놓고 나아가 보자. 두 선비를 두어 그 한 선비는 가름을 잡게 하고 그 한 선비는 아우름을 잡게 한다.

그러므로 가름을 잡은 선비의 말은 이러하다. 『내가 어찌 능히 내 벗의 몸을 내 몸 위하듯 하고 내 벗의 어버이를 내 어버이 위하듯 하겠는가.』 그러므로 물러가 그 벗을 보되 주려도 먹이지 않고 추워도 입히지 않고 병들어도 모셔 기르지 않고 죽어도 묻지 않는다. 가름을 잡은 선비의 말이 이와 같고 행함이 이와 같다.

아우름을 잡은 선비의 말은 그렇지 않고 행함도 그렇지 않아 말한다. 『내가 들으니 천하에 높은 선비 된 이는 반드시 그 벗의 몸을 제 몸 위하듯 하고 그 벗의 어버이를 제 어버이 위하듯 한 뒤에야 천하에 높은 선비가 될 수 있다 한다.』 그러므로 물러가 그 벗을 보되 주리면 먹이고 추우면 입히고 병들면 모셔 기르고 죽으면 묻는다. 아우름을 잡은 선비의 말이 이와 같고 행함이 이와 같다.

이 두 선비는 말이 서로 그르고 행함이 서로 거꾸로인가. 마땅히 이 두 선비로 하여금 말이 반드시 미덥고 행함이 반드시 여물어 말과 행함이 맞기를 부절 맞추듯 하여 말하고 행하지 않음이 없다 하자.

그러면 감히 묻는다. 이제 여기 고른 벌판과 넓은 들이 있어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장차 가서 싸우려는데 죽고 사는 저울을 알 수 없다 하자. 또 임금이나 대부가 멀리 파와 월과 제와 형에 사신 가는데 가고 오고 미치고 못 미침을 알 수 없다 하자.

그러면 감히 묻는다. 장차 어느 쪽을 가리겠는가. 집안을 맡기고 어버이를 받들게 하고 아내와 자식을 이끌게 하여 맡길 때, 아우름 쪽에 이것이 있겠는가 가름 쪽에 이것이 있겠는가.

나는 이에 이르러서는 천하에 어리석은 사내와 어리석은 아낙이라도, 비록 아우름을 그르다 하는 사람이라도 반드시 아우름 쪽에 맡기리라 여긴다. 이는 말로는 아우름을 그르다 하면서 가릴 때는 아우름을 취하는 것이니, 곧 이는 말과 행함이 어긋나는 것이다. 천하의 선비가 다 아우름을 듣고 그르다 하는 까닭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然而天下之士非兼者之言猶未止也,曰:「意可以擇士,而不可以擇君乎?」姑嘗兩而進之,設以爲二君,使其一君者執兼,使其一君者執別。是故別君之言曰:「吾惡能爲吾萬民之身若爲吾身,此泰非天下之情也。人之生乎地上之無幾何也,譬之猶駟馳而過隙也。」是故退睹其萬民,飢卽不食,寒卽不衣,疾病不侍養,死喪不葬埋。別君之言若此,行若此。兼君之言不然,行亦不然,曰:「吾聞爲明君於天下者,必先萬民之身,後爲其身,然後可以爲明君於天下。」是故退睹其萬民,飢卽食之,寒卽衣之,疾病侍養之,死喪葬埋之。兼君之言若此,行若此。然卽交若之二君者,言相非而行相反與?常使若二君者,言必信,行必果,使言行之合,猶合符節也,無言而不行也。然卽敢問:今歲有癘疫,萬民多有勤苦凍餒,轉死溝壑中者,旣已衆矣。不識將擇之二君者,將何從也?我以爲當其於此也,天下無愚夫愚婦,雖非兼君,必從兼君是也。言而非兼,擇卽取兼,卽此言行拂也,不識天下所以皆聞兼而非之者,其故何也?

그런데 천하의 선비 가운데 아우름을 그르다 하는 이의 말이 오히려 그치지 않아 말한다. 「그것으로 선비는 가릴 수 있어도 임금은 가릴 수 없지 않은가.」

잠시 시험 삼아 둘을 놓고 나아가 보자. 두 임금을 두어 그 한 임금은 아우름을 잡게 하고 그 한 임금은 가름을 잡게 한다.

그러므로 가름을 잡은 임금의 말은 이러하다. 「내가 어찌 능히 내 만 백성의 몸을 내 몸 위하듯 하겠는가. 이는 천하의 정에 크게 어긋난다. 사람이 땅 위에 사는 것이 얼마 되지 않아, 비유하면 네 마리 말이 달려 틈을 지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물러가 그 만 백성을 보되 주려도 먹이지 않고 추워도 입히지 않고 병들어도 모셔 기르지 않고 죽어도 묻지 않는다. 가름을 잡은 임금의 말이 이와 같고 행함이 이와 같다.

아우름을 잡은 임금의 말은 그렇지 않고 행함도 그렇지 않아 말한다. 「내가 들으니 천하에 밝은 임금 된 이는 반드시 만 백성의 몸을 먼저 하고 제 몸을 뒤로 한 뒤에야 천하에 밝은 임금이 될 수 있다 한다.」 그러므로 물러가 그 만 백성을 보되 주리면 먹이고 추우면 입히고 병들면 모셔 기르고 죽으면 묻는다. 아우름을 잡은 임금의 말이 이와 같고 행함이 이와 같다.

그러면 이 두 임금은 말이 서로 그르고 행함이 서로 거꾸로인가. 늘 이 두 임금으로 하여금 말이 반드시 미덥고 행함이 반드시 여물어 말과 행함이 맞기를 부절 맞추듯 하여 말하고 행하지 않음이 없다 하자.

그러면 감히 묻는다. 이제 이 해에 모진 돌림병이 있어 만 백성 가운데 애쓰고 괴로워하며 얼고 주려 도랑과 골짜기에 굴러 죽는 이가 이미 많다 하자. 알 수 없거니와 장차 이 두 임금 가운데 가린다면 누구를 좇겠는가.

나는 이에 이르러서는 천하에 어리석은 사내와 어리석은 아낙이라도, 비록 아우름의 임금을 그르다 하더라도 반드시 아우름의 임금을 좇는 것이 옳다 하리라 여긴다. 말로는 아우름을 그르다 하면서 가릴 때는 아우름을 취하니, 곧 이는 말과 행함이 어긋나는 것이다. 천하가 다 아우름을 듣고 그르다 하는 까닭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然而天下之士非兼者之言猶未止也,曰:兼卽仁矣,義矣。雖然,豈可爲哉?吾譬兼之不可爲也,猶挈泰山以超江河也。故兼者,直願之也,夫豈可爲之物哉?子墨子曰:夫挈泰山以超江河,自古之及今,生民而來未嘗有也。今若夫兼相愛、交相利,此自先聖六王者親行之。何以知先聖六王之親行之也?子墨子曰:吾非與之並世同時,親聞其聲,見其色也。以其所書於竹帛,鏤於金石,琢於槃盂,傳遺後世子孫者知之。《泰誓》曰:「文王若日若月乍照,光於四方,于西土。」卽此言文王之兼愛天下之博大也,譬之日月兼照天下之無有私也,卽此文王兼也。雖子墨子之所謂兼者,於文王取法焉。且不唯《泰誓》爲然,雖《禹誓》卽亦猶是也。禹曰:「濟濟有衆,咸聽朕言,非惟小子敢行稱亂,蠢茲有苗,用天之罰,若予旣率爾羣對諸羣以征有苗。」禹之征有苗也,非以求以重富貴、干福祿、樂耳目也,以求興天下之利,除天下之害,卽此禹兼也。雖子墨子之所謂兼者,於禹求焉。且不唯《禹誓》爲然,雖《湯說》卽亦猶是也。湯曰:「惟予小子履,敢用玄牡,告於上天后曰:今天大旱,卽當朕身履,未知得罪于上下。有善不敢蔽,有罪不敢赦,簡在帝心。萬方有罪,卽當朕身。朕身有罪,無及萬方。」卽此言湯貴爲天子,富有天下,然且不憚以身爲犧牲,以祠說于上帝鬼神,卽此湯兼也。雖子墨子之所謂兼者,於湯取法焉。且不唯《誓命》與《湯說》爲然,周《詩》卽亦猶是也。周《詩》曰:「王道蕩蕩,不偏不黨。王道平平,不黨不偏。其直若矢,其易若厎。君子之所履,小人之所視。」若吾言非語道之謂也?古者文武爲正,均分賞賢罰暴,勿有親戚弟兄之所阿,卽此文武兼也。雖子墨子之所謂兼者,於文武取法焉。不識天下之人所以皆聞兼而非之者,其故何也?

그런데 천하의 선비 가운데 아우름을 그르다 하는 이의 말이 오히려 그치지 않아 말한다. 「아우름은 어질고 옳다. 그러나 어찌 할 수 있겠는가. 내가 아우름을 할 수 없음에 견주면 태산을 들고 강수와 하수를 뛰어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아우름이란 다만 바랄 뿐이니 무릇 어찌 할 수 있는 것이겠는가.」

묵자가 말하였다. 「무릇 태산을 들고 강수와 하수를 뛰어넘는 것은 예로부터 이제까지 사람이 난 뒤로 일찍이 있지 않았다. 이제 저 아울러 서로 사랑하고 사귀어 서로 이롭게 함은 앞선 거룩한 여섯 왕이 몸소 행하였다.

무엇으로 앞선 거룩한 여섯 왕이 몸소 행하였음을 아는가.」

묵자가 말하였다. 「내가 그와 세상을 나란히 하고 때를 같이하여 몸소 그 소리를 듣고 그 낯빛을 본 것은 아니다. 그가 대나무와 비단에 적고 쇠와 돌에 새기고 소반과 그릇에 쪼아 뒷세상 자손에게 전하여 남긴 것으로 안다.

「태서」에 이르기를 「문왕이 해 같고 달 같아 비추어 사방에 빛나고 서녘 땅에 빛났다」 하였다. 곧 이는 문왕이 천하를 아울러 사랑함이 넓고 큼을 말한 것이니, 비유하면 해와 달이 천하를 아울러 비추어 사사로움이 없는 것과 같다. 곧 이것이 문왕의 아우름이다. 비록 묵자가 이르는 아우름도 문왕에게서 법을 취한 것이다.

또 「태서」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우서(禹誓)」도 또한 이와 같다. 우임금이 말하기를 「많고 많은 무리여, 다 내 말을 들으라. 오직 나 작은 이가 감히 어지러움을 일컬어 행하려는 것이 아니라, 꿈틀거리는 이 유묘가 있어 하늘의 벌을 쓰는 것이다. 이제 내가 너희 뭇 무리를 이끌고 유묘를 치겠다」 하였다. 우임금이 유묘를 친 것은 가멸고 귀함을 무겁게 하고 복과 녹을 구하고 귀와 눈을 즐겁게 하려 함이 아니라 천하의 이로움을 일으키고 천하의 해로움을 없애기를 구한 것이니, 곧 이것이 우임금의 아우름이다. 비록 묵자가 이르는 아우름도 우임금에게서 구한 것이다.

또 「우서」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탕설(湯說)」도 또한 이와 같다. 탕임금이 말하기를 「오직 나 작은 이 리(履)가 감히 검은 수소를 써서 하늘의 임금께 아뢰옵니다. 이제 하늘이 크게 가무니 곧 마땅히 제 몸 리에게 있는 일이라, 위아래에 죄를 얻었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착함이 있으면 감히 가리지 않고 죄가 있으면 감히 용서하지 않으니 가림이 하느님의 마음에 있습니다. 만방에 죄가 있으면 곧 마땅히 제 몸에 있고, 제 몸에 죄가 있으면 만방에 미치지 않게 하소서」 하였다.

곧 이는 탕임금이 귀하기가 천자요 가멸기가 천하를 가졌는데도 제 몸을 희생으로 삼아 하느님과 귀신에게 빌기를 꺼리지 않았음을 말한 것이니, 곧 이것이 탕임금의 아우름이다. 비록 묵자가 이르는 아우름도 탕임금에게서 법을 취한 것이다.

또 「서명(誓命)」과 「탕설」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주나라 「시」도 또한 이와 같다. 주나라 「시」에 이르기를 「왕의 도가 넓고 넓어 치우치지 않고 패거리 짓지 않네. 왕의 도가 고르고 고르니 패거리 짓지 않고 치우치지 않네. 그 곧기가 화살 같고 그 판판하기가 숫돌 같네. 군자가 밟는 바요 소인이 보는 바라」 하였다.

내 말이 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옛적에 문왕과 무왕이 바름을 삼아 고르게 나누어 어진 이에게 상 주고 사나운 이를 벌하되 친척과 아우와 형이라 하여 두둔함이 없었으니, 곧 이것이 문왕과 무왕의 아우름이다. 비록 묵자가 이르는 아우름도 문왕과 무왕에게서 법을 취한 것이다. 천하 사람이 다 아우름을 듣고 그르다 하는 까닭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然而天下之非兼者之言猶未止,曰:意不忠親之利,而害爲孝乎?子墨子曰:姑嘗本原之孝子之爲親度者。吾不識孝子之爲親度者,亦欲人愛利其親與?意欲人之惡賊其親與?以說觀之,卽欲人之愛利其親也。然卽吾惡先從事卽得此?若我先從事乎愛利人之親,然後人報我以愛利吾親乎?意我先從事乎惡賊人之親,然後人報我以愛利吾親乎?卽必吾先從事乎愛利人之親,然後人報我以愛利吾親也。然卽之交孝子者,果不得已乎?毋先從事愛利人之親者與?意以天下之孝子爲遇,而不足以爲正乎?姑嘗本原之先王之所書《大雅》之所道曰:「無言而不讎,無德而不報。投我以桃,報之以李。」卽此言愛人者必見愛也,而惡人者必見惡也。不識天下之士所以皆聞兼而非之者,其故何也?意以爲難而不可爲邪?嘗有難此而可爲者。昔荆靈王好小要,當靈王之身,荆國之士飯不踰乎一,固據而後興,扶垣而後行。故約食爲其難爲也,然後爲而靈王說之,未踰於世而民可移也,卽求以鄉其上也。昔者越王句踐好勇,教其士臣三年,以其知爲未足以知之也。焚舟失火,鼓而進之。其士偃前列、伏水火而死者,不可勝數也。當此之時,不鼓而退也,越國之士可謂顫矣。故焚身爲其難爲也,然後爲而越王說之,未踰於世而民可移也,卽求以鄉其上也。昔者晉文公好苴服。當文公之時,晉國之士大布之衣,牂羊之裘,練帛之冠,且苴之屨,入見文公,出以踐之朝。故苴服爲其難爲也,然後爲而文公說之,未踰於世而民可移也,卽求以鄉其上也。是故約食、焚舟、苴服,此天下之至難爲也,然後爲而上說之,未踰於世而民可移也。何故也?卽求以鄉其上也。今若夫兼相愛、交相利,此其有利且易爲也,不可勝計也。我以爲則無有上說之者而已矣,苟有上說之者,勸之以賞譽,威之以刑罰,我以爲人之於就兼相愛、交相利也,譬之猶火之就上、水之就下也,不可防止於天下。

그런데 천하에 아우름을 그르다 하는 이의 말이 오히려 그치지 않아 말한다. 「그것이 어버이의 이로움에 참되지 못하여 효도를 해치는 것이 아닌가.」

묵자가 말하였다. 「잠시 시험 삼아 효자가 어버이를 위해 헤아리는 것을 밑동에서 캐 보자. 내가 알 수 없거니와, 효자가 어버이를 위해 헤아릴 때 또한 남이 그 어버이를 사랑하고 이롭게 하기를 바라겠는가, 남이 그 어버이를 미워하고 해치기를 바라겠는가. 말로 보건대 곧 남이 그 어버이를 사랑하고 이롭게 하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면 내가 무엇을 먼저 좇아야 이를 얻겠는가. 내가 먼저 남의 어버이를 사랑하고 이롭게 하기를 좇은 뒤에 남이 나에게 내 어버이를 사랑하고 이롭게 함으로 갚겠는가. 아니면 내가 먼저 남의 어버이를 미워하고 해치기를 좇은 뒤에 남이 나에게 내 어버이를 사랑하고 이롭게 함으로 갚겠는가. 곧 반드시 내가 먼저 남의 어버이를 사랑하고 이롭게 하기를 좇은 뒤에 남이 나에게 내 어버이를 사랑하고 이롭게 함으로 갚을 것이다.

그러면 이 서로 효자 된 이들은 과연 마지못해 하는 것인가. 먼저 남의 어버이를 사랑하고 이롭게 하기를 좇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니면 천하의 효자가 어리석어 바름으로 삼기에 넉넉하지 않다 여기는가.

잠시 시험 삼아 앞선 임금이 적은 「대아」가 말한 바를 밑동에서 캐 보자. 이르기를 「말은 갚아지지 않는 것이 없고 덕은 갚아지지 않는 것이 없네. 내게 복숭아를 던지면 오얏으로 갚네」 하였다. 곧 이는 남을 사랑하는 이는 반드시 사랑을 받고 남을 미워하는 이는 반드시 미움을 받음을 말한 것이다. 천하의 선비가 다 아우름을 듣고 그르다 하는 까닭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어렵다 하여 할 수 없다 여기는가. 일찍이 이보다 어려우면서도 한 일이 있다.

옛적에 형(荊) 영왕이 가는 허리를 좋아하매 영왕의 몸이 있는 동안 형나라 선비가 밥을 한 그릇 넘기지 않고, 굳게 짚고서야 일어나고 담을 붙들고서야 다녔다. 그러므로 밥을 줄이는 것은 하기 어려운 일인데 그것을 하매 영왕이 기뻐하였고, 한 세대를 넘기지 않아 백성을 옮길 수 있었으니 곧 그 위를 향하려 구한 것이다.

옛적에 월왕 구천이 날램을 좋아하여 그 선비와 신하를 세 해 가르쳤는데, 그 앎으로는 그들을 알기에 넉넉하지 못하다 여겼다. 배를 불살라 불을 놓고 북을 쳐 나아가게 하니, 그 선비가 앞줄에 엎어지고 물과 불에 엎드려 죽은 이를 이루 셀 수 없었다. 이때에 북을 치지 않고 물러나게 하였다면 월나라 선비는 떨었다 할 만하다. 그러므로 몸을 사르는 것은 하기 어려운 일인데 그것을 하매 월왕이 기뻐하였고, 한 세대를 넘기지 않아 백성을 옮길 수 있었으니 곧 그 위를 향하려 구한 것이다.

옛적에 진 문공이 거친 옷을 좋아하매 문공의 때에 진나라 선비가 굵은 베옷을 입고 암양 가죽 갖옷을 입고 다듬은 비단 갓을 쓰고 거친 신을 신고, 들어가 문공을 뵙고 나와 조정을 밟았다. 그러므로 거친 옷은 하기 어려운 일인데 그것을 하매 문공이 기뻐하였고, 한 세대를 넘기지 않아 백성을 옮길 수 있었으니 곧 그 위를 향하려 구한 것이다.

그러므로 밥을 줄이고 배를 사르고 거친 옷을 입는 것은 천하에 지극히 하기 어려운 일인데 그것을 하매 위가 기뻐하였고, 한 세대를 넘기지 않아 백성을 옮길 수 있었다. 무슨 까닭인가. 곧 그 위를 향하려 구한 것이다.

이제 저 아울러 서로 사랑하고 사귀어 서로 이롭게 함은 그 이로움이 있고 또 하기 쉬움이 이루 셀 수 없다. 나는 다만 위에서 기뻐하는 이가 없을 뿐이라 여긴다. 진실로 위에서 기뻐하는 이가 있어 상과 기림으로 권하고 형벌로 위엄 있게 하면, 나는 사람이 아울러 서로 사랑하고 사귀어 서로 이롭게 함에 나아감이 비유하면 불이 위로 나아가고 물이 아래로 나아가는 것과 같아 천하에 막을 수 없으리라 여긴다.」

故兼者,聖王之道也,王公大人之所以安也,萬民衣食之所以足也。故君子莫若審兼而務行之。爲人君必惠,爲人臣必忠,爲人父必慈,爲人子必孝,爲人兄必友,爲人弟必悌。故君子莫若欲爲惠君、忠臣、慈父、孝子、友兄、悌弟,當若兼之不可不行也。此聖王之道而萬民之大利也。

그러므로 아우름은 거룩한 왕의 도요, 왕공과 대인이 편안해지는 까닭이요, 만 백성의 옷과 밥이 넉넉해지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아우름을 살펴 힘써 행하는 것만 한 것이 없다.

남의 임금 되어서는 반드시 은혜롭고, 남의 신하 되어서는 반드시 참되고, 남의 아비 되어서는 반드시 사랑하고, 남의 아들 되어서는 반드시 효도하고, 남의 형 되어서는 반드시 벗하고, 남의 아우 되어서는 반드시 공손하다.

그러므로 군자가 은혜로운 임금과 참된 신하와 사랑하는 아비와 효도하는 아들과 벗하는 형과 공손한 아우가 되고자 한다면, 마땅히 아우름을 행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거룩한 왕의 도요 만 백성의 큰 이로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