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非攻上

묵자 墨子 · 묵적(墨翟)과 그 문인들 · 기원전 4세기 무렵 · 단락 3 · 한자 479자 · 낭독 1.9분

「묵자」 비공상 「非攻上」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전국시대에 유가와 나란히 「두 큰 무리」로 꼽히던 학파의 글이다. 한 사람의 저술이 아니라 묵적과 그 문인들이 대를 이어 보탠 것이라, 같은 주장을 상·중·하 세 벌로 적어 둔 편이 많다. 문파가 갈려 저마다 옮겨 적은 자취로 본다. 열 가지 주장이 뼈대다 — 어진 이를 높이고(상현), 위와 옳음을 같이하고(상동), 아울러 사랑하고(겸애), 침을 그르다 하고(비공), 씀에 마디 짓고(절용), 장사에 마디 짓고(절장), 하늘의 뜻을 따르고(천지), 귀신을 밝히고(명귀), 음악을 그르다 하고(비악), 명을 그르다 한다(비명). 「남의 집 보기를 제 집같이 하면 누가 훔치겠는가」가 겸애편에, 복숭아 한 알을 훔치면 벌하면서 남의 나라를 치면 기린다는 「비공」의 계단이, 잣대 없이 말하면 「돌아가는 물레 위에 해 뜨고 지는 자리를 세우는 것」이라는 세 표(三表)가 비명편에 있다. 끝의 「공수」 한 편은 이야기다. 초나라가 구름사다리를 만들어 송나라를 치려 하자 묵자가 열 낮 열 밤을 걸어가 공수반과 띠와 나뭇조각으로 아홉 번 겨루어 이기고, 돌아오는 길에 비를 만나 정작 그 송나라 마을 문 안에서 비를 못 피한다.

子墨子言曰:古者王公大人情欲得而惡失,欲安而惡危,故當攻戰而不可不非。今有一人,入人園圃,竊其桃李,衆聞則非之,上爲政者得則罰之。此何也?以虧人自利也。至攘人犬豕雞豚者,其不義又甚入人園圃竊桃李。是何故也?以虧人愈多,其不仁茲甚,罪益厚。至入人欄廏,取人馬牛者,其不仁義又甚攘人犬豕雞豚。此何故也?以其虧人愈多,苟虧人愈多,其不仁茲甚,罪益厚。至殺不辜人也,扡其衣裘,取戈劒者,其不義又甚入人欄廄、取人馬牛。此何故也?以其虧人愈多。苟虧人愈多,其不仁茲甚矣,罪益厚。當此,天下之君子皆知而非之,謂之不義。今至大爲攻國,則弗知非,從而譽之,謂之義。此可謂知義與不義之別乎?

묵자가 말하였다. 「옛적에 왕공과 대인이 참으로 얻기를 바라고 잃음을 미워하며 편안하기를 바라고 위태로움을 미워하였으니, 그러므로 마땅히 쳐서 싸우는 것을 그르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한 사람이 남의 밭과 뜰에 들어가 그 복숭아와 오얏을 훔치면 무리가 듣고 그르다 하고 위에서 정사 하는 이가 알면 벌한다. 이는 어째서인가. 남을 헐어 저를 이롭게 하기 때문이다.

남의 개와 돼지와 닭을 훔치는 데 이르러서는 그 옳지 않음이 또 남의 밭과 뜰에 들어가 복숭아와 오얏을 훔치는 것보다 심하다. 이는 무슨 까닭인가. 남을 헒이 더 많기 때문이다. 남을 헒이 더 많으면 그 어질지 않음이 더 심하고 죄가 더 두텁다.

남의 우리와 마구간에 들어가 남의 말과 소를 가져가는 데 이르러서는 그 어질지 않고 옳지 않음이 또 남의 개와 돼지와 닭을 훔치는 것보다 심하다. 이는 무슨 까닭인가. 그 남을 헒이 더 많기 때문이다. 진실로 남을 헒이 더 많으면 그 어질지 않음이 더 심하고 죄가 더 두텁다.

죄 없는 사람을 죽여 그 옷과 갖옷을 벗기고 창과 칼을 가져가는 데 이르러서는 그 옳지 않음이 또 남의 우리와 마구간에 들어가 남의 말과 소를 가져가는 것보다 심하다. 이는 무슨 까닭인가. 그 남을 헒이 더 많기 때문이다. 진실로 남을 헒이 더 많으면 그 어질지 않음이 더 심하고 죄가 더 두텁다.

이에 대해서는 천하의 군자가 다 알아 그르다 하고 옳지 않다 한다. 이제 크게 남의 나라를 치는 데 이르러서는 그르다 할 줄 모르고 좇아 기리며 옳다 한다. 이것을 옳음과 옳지 않음의 가림을 안다 할 수 있겠는가.」

殺一人謂之不義,必有一死罪矣。若以此說往,殺十人十重不義,必有十死罪矣;殺百人百重不義,必有百死罪矣。當此,天下之君子皆知而非之,謂之不義。今至大爲不義攻國,則弗知而非,從而譽之,謂之義。情不知其不義也,故書其言以遺後世。若知其不義也,夫奚說書其不義以遺後世哉?

한 사람을 죽이면 옳지 않다 하여 반드시 한 죽을죄가 있다. 만일 이 말로 미루어 가면, 열 사람을 죽이면 열 곱으로 옳지 않아 반드시 열 죽을죄가 있고, 백 사람을 죽이면 백 곱으로 옳지 않아 반드시 백 죽을죄가 있다.

이에 대해서는 천하의 군자가 다 알아 그르다 하고 옳지 않다 한다. 이제 크게 옳지 않음을 하여 남의 나라를 치는 데 이르러서는 그르다 할 줄 모르고 좇아 기리며 옳다 한다. 참으로 그 옳지 않음을 알지 못하므로 그 말을 적어 뒷세상에 남긴다. 만일 그 옳지 않음을 안다면 무릇 무슨 까닭으로 그 옳지 않음을 적어 뒷세상에 남기겠는가.

今有人於此,少見黑曰黑,多見黑曰白,則以此人不知白黑之辯矣;少嘗苦曰苦,多嘗苦曰甘,則必以此人爲不知甘苦之辯矣。今小爲非,則知而非之。大爲非攻國,則不知非,從而譽之,謂之義。此可謂知義與不義之辯乎?是以知天下之君子也,辯義與不義之亂也。

이제 여기 어떤 사람이 검은 것을 조금 보고는 검다 하고 많이 보고는 희다 한다면, 이 사람은 희고 검음의 가림을 알지 못한다 할 것이다. 쓴 것을 조금 맛보고는 쓰다 하고 많이 맛보고는 달다 한다면, 반드시 이 사람은 달고 씀의 가림을 알지 못한다 할 것이다.

이제 작게 그름을 하면 알아 그르다 하고, 크게 그름을 하여 남의 나라를 치면 그르다 할 줄 모르고 좇아 기리며 옳다 한다. 이것을 옳음과 옳지 않음의 가림을 안다 할 수 있겠는가. 이로써 천하의 군자가 옳음과 옳지 않음을 가림에 어지러움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