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非攻中

묵자 墨子 · 묵적(墨翟)과 그 문인들 · 기원전 4세기 무렵 · 단락 5 · 한자 1,318자 · 낭독 5.3분

「묵자」 비공중 「非攻中」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전국시대에 유가와 나란히 「두 큰 무리」로 꼽히던 학파의 글이다. 한 사람의 저술이 아니라 묵적과 그 문인들이 대를 이어 보탠 것이라, 같은 주장을 상·중·하 세 벌로 적어 둔 편이 많다. 문파가 갈려 저마다 옮겨 적은 자취로 본다. 열 가지 주장이 뼈대다 — 어진 이를 높이고(상현), 위와 옳음을 같이하고(상동), 아울러 사랑하고(겸애), 침을 그르다 하고(비공), 씀에 마디 짓고(절용), 장사에 마디 짓고(절장), 하늘의 뜻을 따르고(천지), 귀신을 밝히고(명귀), 음악을 그르다 하고(비악), 명을 그르다 한다(비명). 「남의 집 보기를 제 집같이 하면 누가 훔치겠는가」가 겸애편에, 복숭아 한 알을 훔치면 벌하면서 남의 나라를 치면 기린다는 「비공」의 계단이, 잣대 없이 말하면 「돌아가는 물레 위에 해 뜨고 지는 자리를 세우는 것」이라는 세 표(三表)가 비명편에 있다. 끝의 「공수」 한 편은 이야기다. 초나라가 구름사다리를 만들어 송나라를 치려 하자 묵자가 열 낮 열 밤을 걸어가 공수반과 띠와 나뭇조각으로 아홉 번 겨루어 이기고, 돌아오는 길에 비를 만나 정작 그 송나라 마을 문 안에서 비를 못 피한다.

子墨子言曰:古者王公大人爲政於國家者,情欲毀譽之審,賞罰之當,刑政之不過失,故當攻戰而不可爲也。今師徒唯毋興起,冬行恐寒,夏行恐暑,此不可以冬夏爲者也。春則廢民耕稼樹藝,秋則廢民穫斂。今唯毋廢一時,則百姓飢寒凍餒而死者,不可勝數;今嘗計軍上,竹箭、羽旄、幄幕、甲、盾、撥,劼往而靡弊腑冷不反者,不可勝數;又與矛、戟、戈、劒、乘車,其列往碎折靡弊而不反者,不可勝數;與其牛馬肥而往、瘠而反,往死亡而不反者,不可勝數;與其涂道之脩遠,糧食輟絕而不繼,百姓死者,不可勝數也;與其居處之不安,食飲之不時,飢飽之不節,百姓之道疾病而死者,不可勝數。喪師多不可勝數,喪師盡不可勝計,則是鬼神之喪其主后,亦不可勝數。

묵자가 말하였다. 「옛적에 왕공과 대인으로 나라에 정사 하는 이가 참으로 헐뜯음과 기림이 살펴지고 상과 벌이 마땅하고 형벌과 정사가 지나쳐 잃지 않기를 바랐으니, 그러므로 마땅히 쳐서 싸우는 것을 해서는 안 된다.

이제 군사를 일으키면 겨울에 가자니 추울까 두렵고 여름에 가자니 더울까 두려우니, 이는 겨울과 여름에 할 수 없는 것이다. 봄에는 백성이 밭 갈고 심고 가꾸는 것을 폐하고 가을에는 백성이 거두는 것을 폐한다. 이제 오직 한 철만 폐하여도 백성이 주리고 추워 얼어 죽는 이를 이루 셀 수 없다.

이제 시험 삼아 군사에 든 것을 셈해 보자. 대나무 화살과 깃과 깃대와 장막과 갑옷과 방패와 활채가 가서 헐고 해지고 썩어 돌아오지 않는 것을 이루 셀 수 없고, 또 창과 갈래창과 미늘창과 칼과 타는 수레가 줄지어 가서 부서지고 꺾이고 헐고 해져 돌아오지 않는 것을 이루 셀 수 없고, 그 소와 말이 살져서 가고 여위어 돌아오며 가서 죽어 돌아오지 않는 것을 이루 셀 수 없고, 그 길이 멀어 양식이 끊겨 이어지지 않아 백성이 죽는 이를 이루 셀 수 없고, 그 사는 데가 편안하지 않고 먹고 마심이 때에 맞지 않고 주리고 배부름이 고르지 않아 백성이 길에서 병들어 죽는 이를 이루 셀 수 없다.

군사를 잃음이 많음을 이루 셀 수 없고 군사를 다 잃음을 이루 셀 수 없으니, 곧 이는 귀신이 그 제사 받들 주인을 잃는 것 또한 이루 셀 수 없다.」

國家發政,奪民之用、廢民之利若此甚衆,然而何爲爲之?曰:我貪伐勝之名,及得之利,故爲之。子墨子言曰:計其所自勝,無所可用也。計其所得,反不如所喪者之多。今攻三里之城,七里之郭,攻此不用銳,且無殺而徒得,此然也。殺人多必數於萬,寡必數於千,然後三里之城、七里之郭且可得也。今萬乘之國,虛數於千,不勝而入,廣衍數於萬,不勝而辟。然則土地者,所有餘也;王民者,所不足也。今盡王民之死,嚴下上之患,以爭虛城,則是棄所不足,而重所有餘也。爲政若此,非國之務者也。

나라가 정사를 내어 백성의 쓰임을 빼앗고 백성의 이로움을 폐함이 이처럼 심히 많은데 무엇 하러 그것을 하는가. 말하기를 「내가 쳐서 이긴 이름과 얻는 이로움을 탐하므로 한다」 한다.

묵자가 말하였다. 「그 스스로 이긴 바를 셈하여도 쓸 데가 없다. 그 얻은 바를 셈하면 도리어 잃은 바가 많은 것만 못하다.

이제 세 리 되는 성과 일곱 리 되는 성곽을 치는데, 이를 치되 날카로운 병기를 쓰지 않고 또 죽임 없이 그저 얻는다면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을 죽임이 많으면 반드시 만으로 세고 적어도 반드시 천으로 센 뒤에야 세 리 성과 일곱 리 성곽을 얻을 수 있다.

이제 만승의 나라에 빈 고을이 천으로 세어 다 채우지 못하고 들어가며, 넓은 벌판이 만으로 세어 다 채우지 못하고 열려 있다. 그러면 땅은 남는 것이요 왕의 백성은 모자란 것이다. 이제 왕의 백성을 다 죽게 하고 아래와 위의 근심을 엄하게 하여 빈 성을 다투니, 이는 모자란 것을 버리고 남는 것을 무겁게 하는 것이다. 정사 함이 이와 같으면 나라가 힘쓸 일이 아니다.」

飾攻戰者也言曰:南則荆吳之王,北則齊晉之君,始封於天下之時,其土地之方,未至有數百里也;人徒之衆,未至有數十萬人也。以攻戰之故,土地之博至有數千里,人徒之衆至有數百萬人,是故攻戰之速也。子墨子言曰:雖四五國則得利焉,猶謂之非行道也。譬若醫之藥人之有病者然,今有醫於此,和合其祝藥之于天下之有病者而藥之,萬人食此,若醫四五人得利焉,猶謂之非行藥也。故孝子不以食其親,忠臣不以食其君。古者封國於天下,尚者以耳之所聞,近者以目之所見,以攻戰亡者不可勝數。何以知其然也?東方有莒之國者,其爲國甚小,閒於大國之閒,不敬事於大,大國亦弗之從而愛利。是以東者越人夾削其壤地,西者齊人兼而有之。計莒之所以亡於齊越之閒者,以是攻戰也。雖南者陳蔡,其所以亡於吳越之閒者,亦以攻戰。雖北者且一、不著何,其所以亡於燕代胡貊之閒者,亦以攻戰也。是故子墨子曰:古者有語:「謀而不得,則以往知來,以見知隱。」謀若此,可得而知矣。

쳐서 싸움을 꾸미는 이가 말한다. 「남으로는 형과 오의 왕이요 북으로는 제와 진(晉)의 임금이니, 처음 천하에 봉해졌을 때 그 땅의 모가 몇백 리에 이르지 못하였고 사람 무리가 몇십만에 이르지 못하였다. 쳐서 싸운 까닭으로 땅의 넓이가 몇천 리에 이르고 사람 무리가 몇백만에 이르렀으니, 그러므로 쳐서 싸움이 빠른 길이다.」

묵자가 말하였다. 「비록 네댓 나라가 이로움을 얻었어도 오히려 도를 행함이 아니라 하겠다. 비유하면 의원이 병 있는 이에게 약 쓰는 것과 같다. 이제 여기 의원이 있어 그 약을 지어 천하에 병 있는 이에게 먹인다 하자. 만 사람이 이를 먹었는데 네댓 사람이 이로움을 얻었다면 오히려 약을 행함이 아니라 하겠다. 그러므로 효자가 이를 그 어버이에게 먹이지 않고 참된 신하가 이를 그 임금에게 먹이지 않는다.

옛적에 천하에 나라를 봉하매, 오랜 것은 귀로 들은 바로 하고 가까운 것은 눈으로 본 바로 하건대, 쳐서 싸움으로 없어진 나라를 이루 셀 수 없다.

무엇으로 그러함을 아는가. 동쪽에 거(莒)라는 나라가 있어 그 나라 됨이 심히 작고 큰 나라 사이에 끼어 있었는데, 큰 나라를 공경히 섬기지 않고 큰 나라 또한 좇아 사랑하고 이롭게 하지 않았다. 이로써 동쪽으로는 월나라 사람이 그 땅을 끼고 깎았고 서쪽으로는 제나라 사람이 아울러 가졌다. 거나라가 제나라와 월나라 사이에서 없어진 까닭을 셈하면 이 쳐서 싸움 때문이다.

비록 남쪽의 진(陳)과 채(蔡)가 오나라와 월나라 사이에서 없어진 까닭도 또한 쳐서 싸움 때문이요, 비록 북쪽의 저일(且一)과 부저하(不著何)가 연나라와 대나라와 호와 맥 사이에서 없어진 까닭도 또한 쳐서 싸움 때문이다.」

그러므로 묵자가 말하였다. 「옛적에 말이 있어 『꾀하여 얻지 못하면 지난 것으로 올 것을 알고 드러난 것으로 숨은 것을 안다』 하였다. 이같이 꾀하면 얻어 알 수 있다.」

飾攻戰者之言曰:彼不能收用彼衆,是故亡。我能收用我衆,以此攻戰於天下,誰敢不賓服哉?子墨子言曰:子雖能收用子之衆,子豈若古者吳闔閭哉?古者吳闔閭教七年,奉甲執兵,奔三百里而舍焉,次注林,出於冥隘之徑,戰於柏舉,中楚國而朝宋與魯。及至夫差之身,北而攻齊,舍於汶上,戰於艾陵,大敗齊人而葆之大山。東而攻越,濟三江五湖,而葆之會稽。九夷之國莫不賓服。於是退不能賞孤,施舍羣萌,自恃其力,伐其攻,譽其智,怠於教,遂築姑蘇之臺,七年不成。及若此,則吳有離罷之心。越王句踐視吳上下不相得,收其衆以復其讐。入北郭,徙大內,圍王宮,而吳國以亡。昔者晉有六將軍,而智伯莫爲强焉。計其土地之博,人徒之衆,欲以抗諸侯,以爲英名。故差論其爪牙之士,比列其舟車之衆,以攻中行氏而有之。以其謀爲旣已足矣,又攻茲范氏而大敗之。并三家以爲一家而不止,又圍趙襄子於晉陽。及若此,則韓魏亦相從而謀曰:「古者有語:『脣亡則齒寒。』趙氏朝亡,我夕從之;趙氏夕亡,吾朝從之。詩曰:『魚水不務,陸將何及乎?』」是以三主之君一心戮力,辟門除道,奉甲興士,韓魏自外,趙氏自內,擊智伯,大敗之。

쳐서 싸움을 꾸미는 이의 말에 「저이는 그 무리를 거두어 쓰지 못하였으므로 없어졌다. 나는 능히 내 무리를 거두어 써서 이로써 천하에 쳐 싸우니 누가 감히 따라 굴복하지 않겠는가」 한다.

묵자가 말하였다. 「그대가 비록 능히 그대의 무리를 거두어 쓴들 그대가 어찌 옛적 오나라 합려만 하겠는가.

옛적에 오나라 합려가 일곱 해를 가르쳐, 갑옷을 지고 병기를 잡고 삼백 리를 달려 머물고 주림(注林)에 묵고 명애(冥隘)의 좁은 길로 나와 백거(柏擧)에서 싸워 초나라 가운데를 차지하고 송나라와 노나라를 조회하게 하였다.

부차의 몸에 이르러서는 북으로 제나라를 쳐서 문수 가에 머물고 애릉에서 싸워 제나라 사람을 크게 지우고 태산에 몰아넣었으며, 동으로 월나라를 쳐서 세 강과 다섯 호수를 건너 회계에 몰아넣으니 아홉 오랑캐의 나라가 따라 굴복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이에 물러가서는 능히 외로운 이에게 상 주고 뭇 백성에게 베풀지 못하고, 스스로 제 힘을 믿고 제 친 것을 자랑하고 제 슬기를 기리며 가르침에 게을러, 마침내 고소대(姑蘇臺)를 쌓아 일곱 해에도 이루지 못하였다. 이에 이르매 오나라에 떠나고 지친 마음이 생겼다. 월왕 구천이 오나라 위아래가 서로 얻지 못함을 보고 그 무리를 거두어 그 원수를 갚아, 북쪽 성곽에 들어가 큰 창고를 옮기고 왕궁을 에워싸매 오나라가 이로써 없어졌다.

옛적에 진(晉)나라에 여섯 장군이 있었는데 지백보다 굳센 이가 없었다. 그 땅의 넓이와 사람 무리의 많음을 셈하여 제후에게 맞서 꽃다운 이름을 삼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그 손톱과 어금니 되는 선비를 가려 논하고 그 배와 수레의 무리를 벌여 중항씨를 쳐서 가졌다. 그 꾀함이 이미 넉넉하다 여겨 또 범씨를 쳐서 크게 지웠다. 세 집을 아울러 한 집을 삼고도 그치지 않아 또 조 양자를 진양에서 에워쌌다.

이에 이르매 한씨와 위씨가 또한 서로 좇아 꾀하여 말하였다. 『옛적에 말이 있어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 하였다. 조씨가 아침에 없어지면 우리가 저녁에 좇을 것이요, 조씨가 저녁에 없어지면 우리가 아침에 좇을 것이다. 「시」에 이르기를 「물고기가 물에 힘쓰지 않으면 뭍에 이르러 무엇이 미치겠는가」 하였다.』

이로써 세 주인의 임금이 한마음으로 힘을 합하여 문을 열고 길을 쓸고 갑옷을 받들고 선비를 일으켜, 한씨와 위씨는 밖에서 조씨는 안에서 지백을 쳐 크게 지웠다.」

是故子墨子言曰:古者有語曰:「君子不鏡於水,而鏡於人。鏡於水見面之容,鏡於人則知吉與凶。」今以功戰爲利,則蓋嘗鑒之於智伯之事乎?此其爲不吉而凶,旣可得而知矣。

그러므로 묵자가 말하였다. 「옛적에 말이 있어 『군자는 물에 비추지 않고 사람에 비춘다. 물에 비추면 낯의 모양을 보고 사람에 비추면 길함과 흉함을 안다』 하였다. 이제 쳐서 싸움을 이롭다 여긴다면 어찌 일찍이 지백의 일에 비추어 보지 않는가. 이것이 길하지 않고 흉함은 이미 얻어 알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