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묵자 › 비명중

非命中

묵자 墨子 · 묵적(墨翟)과 그 문인들 · 기원전 4세기 무렵 · 단락 3 · 한자 1,070자 · 낭독 4.3분

「묵자」 비명중 「非命中」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전국시대에 유가와 나란히 「두 큰 무리」로 꼽히던 학파의 글이다. 한 사람의 저술이 아니라 묵적과 그 문인들이 대를 이어 보탠 것이라, 같은 주장을 상·중·하 세 벌로 적어 둔 편이 많다. 문파가 갈려 저마다 옮겨 적은 자취로 본다. 열 가지 주장이 뼈대다 — 어진 이를 높이고(상현), 위와 옳음을 같이하고(상동), 아울러 사랑하고(겸애), 침을 그르다 하고(비공), 씀에 마디 짓고(절용), 장사에 마디 짓고(절장), 하늘의 뜻을 따르고(천지), 귀신을 밝히고(명귀), 음악을 그르다 하고(비악), 명을 그르다 한다(비명). 「남의 집 보기를 제 집같이 하면 누가 훔치겠는가」가 겸애편에, 복숭아 한 알을 훔치면 벌하면서 남의 나라를 치면 기린다는 「비공」의 계단이, 잣대 없이 말하면 「돌아가는 물레 위에 해 뜨고 지는 자리를 세우는 것」이라는 세 표(三表)가 비명편에 있다. 끝의 「공수」 한 편은 이야기다. 초나라가 구름사다리를 만들어 송나라를 치려 하자 묵자가 열 낮 열 밤을 걸어가 공수반과 띠와 나뭇조각으로 아홉 번 겨루어 이기고, 돌아오는 길에 비를 만나 정작 그 송나라 마을 문 안에서 비를 못 피한다.

子墨子言曰:凡出言談、由文學之爲道也,則不可而不先立義法。若言而無義,譬猶立朝夕於員鈞之上也,則雖有巧工,必不能得正焉。然今天下之情僞,未可得而識也,故使言有三法。三法者何也?有本之者,有原之者,有用之者。於其本之也,考之天鬼之志,聖王之事。於其原之也,徵以先王之書。用之奈何?發而爲刑政。此言之三法也。今天下之士君子,或以命爲亡。我所以知命之有與亡者,以衆人耳目之情知有與亡。有聞之,有見之,謂之有;莫之聞,莫之見,謂之亡。然胡不嘗考之百姓之情?自古以及今,生民以來者,亦嘗有見命之物、聞命之聲者乎?則未嘗有也。若以百姓爲愚不肖,耳目之情不足因而爲法。然則胡不嘗考之諸侯之傳言流語乎?自古以及今,生民以來者,亦嘗有聞命之聲、見命之體者乎?則未嘗有也。然胡不嘗攷之聖王之事?古之聖王,舉孝子而勸之事親,尊賢良而勸之爲善,發憲布令以教誨,明賞罰以勸沮。若此,則亂者可使治,而危者可使安矣。若以爲不然,昔者桀之所亂,湯治之;紂之所亂,武王治之。此世不渝而民不改,上變政而民易教。其在湯武則治,其在桀紂則亂。安危治亂在上之發政也,則豈可謂有命哉?夫曰有命云者,亦不然矣。

묵자가 말하였다. 「무릇 말을 내고 글과 배움을 말미암아 도를 삼는 데는 먼저 옳음의 법을 세우지 않을 수 없다. 만일 말하면서 옳음이 없으면 비유하면 돌아가는 물레 위에 해 뜨고 지는 자리를 세우는 것과 같아, 비록 공교로운 장인이 있어도 반드시 바름을 얻을 수 없다.

그런데 이제 천하의 참되고 거짓됨을 얻어 알 수 없으므로 말에 세 법을 두게 한다. 세 법이란 무엇인가. 밑동으로 삼을 것이 있고, 근원으로 캘 것이 있고, 써 볼 것이 있다.

그 밑동으로 삼음에는 하늘과 귀신의 뜻과 거룩한 왕의 일에 상고한다. 그 근원으로 캠에는 앞선 임금의 글로 증험한다. 씀은 어떠한가. 내어 형벌과 정사로 삼는다. 이것이 말의 세 법이다.

이제 천하의 선비와 군자가 더러 명이 없다 한다. 내가 명이 있고 없음을 아는 까닭은 뭇 사람의 귀와 눈의 정으로 있고 없음을 아는 것이다. 들은 이가 있고 본 이가 있으면 있다 하고, 아무도 듣지 못하고 아무도 보지 못하였으면 없다 한다.

그러면 어찌 일찍이 백성의 정에 상고하지 않는가. 예로부터 이제까지 사람이 난 뒤로 또한 일찍이 명의 물건을 보고 명의 소리를 들은 이가 있는가. 곧 일찍이 있지 않았다.

만일 백성이 어리석고 못나 귀와 눈의 정을 말미암아 법 삼기에 넉넉하지 않다 한다면, 그러면 어찌 일찍이 제후가 전한 말과 흐르는 말에 상고하지 않는가. 예로부터 이제까지 사람이 난 뒤로 또한 일찍이 명의 소리를 듣고 명의 몸을 본 이가 있는가. 곧 일찍이 있지 않았다.

그러면 어찌 일찍이 거룩한 왕의 일에 상고하지 않는가. 옛적 거룩한 왕이 효자를 들어 어버이 섬기기를 권하고 어질고 좋은 이를 높여 착함 하기를 권하며, 법을 내고 명을 펴 가르치고 상과 벌을 밝혀 권하고 막았다. 이와 같으면 어지러운 이를 다스릴 수 있고 위태로운 이를 편안케 할 수 있다.

만일 그렇지 않다 여긴다면, 옛적에 걸이 어지럽힌 것을 탕임금이 다스렸고 주가 어지럽힌 것을 무왕이 다스렸다. 이 세상이 달라지지 않고 백성이 고쳐지지 않았는데, 위가 정사를 바꾸매 백성이 가르침을 쉬 따랐다. 탕임금과 무왕에게 있으면 다스려지고 걸과 주에게 있으면 어지러웠다. 편안하고 위태롭고 다스려지고 어지러움이 위가 정사를 냄에 있으니, 어찌 명이 있다 하겠는가. 무릇 명이 있다 이르는 것은 또한 그렇지 않다.」

今夫有命者言曰:我非作之後世也,自昔三代有若言以傳流矣。今故先生對之?曰:夫有命者,不志昔也三代之聖善人與?意亡昔三代之暴不肖人也?何以知之?初之列士桀大夫,慎言知行,此上有以規諫其君長,下有以教順其百姓。故上得其君長之賞,下得其百姓之譽。列士桀大夫聲聞不廢,傳流至今,而天下皆曰其力也,一見命焉。

이제 저 명이 있다는 이가 말하기를 「내가 뒷세상에 지은 것이 아니라 옛적 세 대부터 이런 말이 있어 전하여 흘렀다」 한다. 이제 그러므로 선생이 이에 답한다.

말하기를, 무릇 명이 있다는 이는 옛적 삼대의 거룩하고 착한 사람을 뜻하는가, 아니면 옛적 삼대의 사납고 못난 사람을 뜻하는가.

무엇으로 이를 아는가. 처음의 여러 선비와 뛰어난 대부는 말을 삼가고 행함을 알아, 위로는 그 임금과 어른을 바로 간하고 아래로는 그 백성을 가르쳐 따르게 하였다. 그러므로 위로는 그 임금과 어른의 상을 얻고 아래로는 그 백성의 기림을 얻었다. 여러 선비와 뛰어난 대부의 이름과 소문이 폐하지 않고 전하여 흘러 이제까지 이르러 천하가 다 그 힘이라 하니, 한 번도 명을 본 적이 없다.

是故昔者三代之暴王,不繆其耳目之淫,不慎其心志之辟,外之敺騁田獵畢弋,內沈於酒樂,而不顧其國家百姓之政。繁爲無用,暴逆百姓,使下不親其上。是故國爲虛厲,身在刑僇之中。必不能曰:「我罷不肖,我爲刑政不善。」必曰:「我命故且亡。」雖昔也三代之窮民,亦由此也。內之不能善事其親戚,外之不能善事其君長,惡恭儉而好簡易,貪飲食而惰從事,衣食之財不足,使身至有飢寒凍餒之憂,必不能曰:「我罷不肖,我從事不疾。」必曰:「我命固且窮。」雖昔也三代之僞民,亦猶此也。繁飾有命,以教衆愚樸之人矣。聖王之患此也,故書之竹帛,琢之盤盂,鏤之金石。於先王之書《仲虺之告》曰:「我聞有夏人矯天命,布命於下,帝式是惡,用闕師。」此語夏王桀之執有命也,湯與仲虺共非之。先王之書《太誓》之言然,曰:「紂夷之居,而不肎事上帝,棄闕其先神而不祀也。曰:『我民有命,毋僇其務。』天不亦棄縱而不葆。」此言紂之執有命也,武王以《太誓》非之。有於《三代》《不國》有之,曰:「女毋崇天之有命也。」命《三》《不國》亦言命之無也。於召公之《執令》於然,且:「敬哉!無天命,惟予二人,而無造言,不自降天之,哉得之。」在於商夏之詩書,曰:「命者,暴王作之。」且今天下之士君子,將欲辯是非利害之故,當天有命者,不可不疾非也。執有命者,此天下之厚害也,是故子墨子非之也。

그러므로 옛적 삼대의 사나운 왕이 그 귀와 눈의 넘침을 얽어매지 않고 그 마음과 뜻의 치우침을 삼가지 않아, 밖으로는 말 달려 사냥하고 그물질하고 주살질하며 안으로는 술과 음악에 잠겨 그 나라와 백성의 정사를 돌아보지 않았다. 쓸데없는 것을 번거로이 하고 백성에게 사납고 거슬러 아래가 그 위를 친히 하지 않게 하였다. 그러므로 나라가 빈터가 되고 몸이 형벌과 죽임 가운데 있었다.

그런데도 반드시 「나는 못나고 내가 형벌과 정사 함이 착하지 않다」 하지 못하고 반드시 「내 명이 본디 또 없어지는 것이다」 하였다.

비록 옛적 삼대의 막힌 백성도 또한 이를 말미암았다. 안으로 그 친척을 잘 섬기지 못하고 밖으로 그 임금과 어른을 잘 섬기지 못하며, 공손하고 검소함을 미워하고 손쉽고 헐렁함을 좋아하고 먹고 마시기를 탐하고 일 좇기에 게을러 옷과 밥 될 재물이 넉넉하지 않아, 몸이 주리고 추워 얼 근심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반드시 「나는 못나고 내가 일 좇음이 재빠르지 않다」 하지 못하고 반드시 「내 명이 본디 또 막히는 것이다」 하였다.

비록 옛적 삼대의 거짓된 백성도 또한 이와 같아, 명이 있다는 것을 번거로이 꾸며 뭇 어리석고 순박한 사람을 가르쳤다.

거룩한 왕이 이를 근심하였으므로 대나무와 비단에 적고 소반과 그릇에 쪼고 쇠와 돌에 새겼다.

앞선 임금의 글 「중훼의 고함」에 이르기를 「내가 들으니 하나라 사람이 하늘의 명을 속여 아래에 명을 펴매 하느님이 이를 미워하여 그 군사를 잃게 하였다」 하였다. 이는 하나라 왕 걸이 명이 있다고 잡음을 말한 것이니, 탕임금과 중훼가 함께 이를 그르다 하였다.

앞선 임금의 글 「태서」의 말이 그러하여 이르기를 「주가 평평히 처하여 하느님 섬기기를 즐겨하지 않고 그 앞선 신을 버려 제사하지 않으며, 이르기를 『내 백성에게 명이 있으니 그 힘씀을 죽이지 말라』 하였다. 하늘이 또한 놓아 버리고 지키지 않았다」 하였다. 이는 주가 명이 있다고 잡음을 말한 것이니, 무왕이 「태서」로 이를 그르다 하였다.

「삼대(三代)」와 「불국(不國)」에 있어 이르기를 「너는 하늘에 명이 있음을 높이지 말라」 하였으니, 「삼대」와 「불국」도 또한 명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소공의 「집령(執令)」에 그러하여 「공경하라. 하늘의 명이 없으니 오직 우리 두 사람이라. 스스로 말을 지어내지 말라. 하늘에서 스스로 내린 것이 아니니 그래서 얻은 것이다」 하였다.

상과 하의 「시」와 「서」에 이르기를 「명이란 사나운 왕이 지은 것이다」 하였다.

또 이제 천하의 선비와 군자가 장차 옳고 그름과 이롭고 해로움의 까닭을 가리고자 한다면, 마땅히 하늘에 명이 있다는 이를 재빨리 그르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명이 있다고 잡는 이는 천하의 두터운 해로움이니, 그러므로 묵자가 이를 그르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