非儒下
儒者曰:「親親有術,尊賢有等。」言親疏尊卑之異也。其禮曰:「喪父母三年,妻、後子三年,伯父、叔父、弟兄、庶子其,戚族人五月。」若以親疏爲歲月之數,則親者多而疏者少矣,是妻、後子與父同也。若以尊卑爲歲月數,則是尊其妻子與父母同,而親伯父、宗兄而卑子也。逆孰大焉?其親死,列尸弗斂,登屋,窺井,挑鼠穴,探滌器,而求其人焉。以爲實在,則戇愚甚矣。如其亡也,必求焉,僞亦大矣。
유가가 말한다. 「친한 이를 친히 함에 갈래가 있고 어진 이를 높임에 등급이 있다.」 친하고 성글고 높고 낮음의 다름을 말한 것이다.
그 예에 이르기를 「어버이 상은 세 해요 아내와 맏아들도 세 해며, 백부와 숙부와 아우와 형과 서자는 한 해요 겨레 사람은 다섯 달이다」 한다.
만일 친하고 성근 것으로 햇수와 달수를 삼는다면 친한 이는 많고 성근 이는 적어야 하는데, 이는 아내와 맏아들을 아비와 같이 한 것이다. 만일 높고 낮음으로 햇수와 달수를 삼는다면 이는 제 아내와 자식을 높이기를 어버이와 같이 하고, 백부와 종형을 친히 하되 아들보다 낮춘 것이다. 거스름이 무엇이 이보다 크겠는가.
그 어버이가 죽으매 주검을 벌여 놓고 거두지 않고 지붕에 올라가고 우물을 들여다보고 쥐구멍을 쑤시고 씻은 그릇을 뒤지며 그 사람을 찾는다. 참으로 있다 여긴다면 어리석음이 심하고, 없어졌는데도 반드시 찾는다면 거짓됨이 또한 크다.
取妻身迎,祗褍爲僕,秉轡授綏,如仰嚴親。昏禮威儀,如承祭祀。顛覆上下,悖逆父母,下則妻子,妻子上侵。事親若此,可謂孝乎?儒者迎妻:妻之奉祭祀,子將守宗廟,故重之。應之曰:此誣言也。其宗兄守其先宗廟數十年,死,喪之其,兄弟之妻奉其先之祭祀,弗服。則喪妻子三年,必非以守奉祭祀也。夫憂妻子,以大負絫,有曰:「所以重親也。」爲欲厚所至私,輕所至重,豈非大姦也哉?
아내를 맞을 때 몸소 맞이하여 단정한 옷을 입고 마부가 되어 고삐를 잡고 손잡이 줄을 주기를 엄한 어버이를 우러르듯 한다. 혼례의 몸가짐이 제사를 받드는 듯하다. 위아래를 뒤엎고 아비와 어미를 거슬러 아래로 아내와 자식을 두니, 아내와 자식이 위를 침노한다. 어버이 섬김이 이와 같으니 효도라 할 수 있겠는가.
선비가 아내를 맞으며 「아내가 제사를 받들고 아들이 장차 종묘를 지킬 것이므로 무겁게 여긴다」 한다.
이에 응하여 말한다. 이는 속이는 말이다. 그 종형이 그 앞선 종묘를 몇십 해 지키다가 죽으면 그 상은 한 해요, 형제의 아내가 그 앞선 제사를 받들어도 상복을 입지 않는다. 그러면 아내와 자식의 상을 세 해 하는 것은 반드시 제사를 지켜 받들기 때문이 아니다.
무릇 아내와 자식을 근심하여 크게 짐을 지우고서 「어버이를 무겁게 하는 까닭이다」 하니, 가장 사사로운 데를 두터이 하고자 하여 가장 무거운 데를 가벼이 하는 것이라 어찌 큰 간사함이 아니겠는가.
有强執有命以說議曰:「壽夭貧富,安危治亂,固有天命,不可損益。窮達賞罰,幸否有極,人之知力,不能爲焉。」羣吏信之,則怠於分職;庶人信之,則怠於從事。不治則亂,農事緩則貧,貧且亂政之本,而儒者以爲道教,是賊天下之人者也。
또 굳이 명이 있다고 잡아 달래어 의논하기를 「오래 살고 일찍 죽음과 가난하고 가멸음과 편안하고 위태로움과 다스려지고 어지러움에 본디 하늘의 명이 있어 덜고 더할 수 없다. 막히고 통함과 상과 벌에 요행과 아님이 끝이 있으니 사람의 앎과 힘으로 할 수 없다」 한다.
뭇 아전이 이를 믿으면 나뉜 직분에 게으르고, 뭇 사람이 이를 믿으면 일 좇음에 게으르다. 다스리지 않으면 어지럽고 농사 일이 느리면 가난하니, 가난하고 또 어지러움은 정사의 밑동을 거스르는 것이다. 그런데 선비가 이를 도와 가르침으로 삼으니, 이는 천하 사람을 해치는 것이다.
且夫繁飾禮樂以淫人,久喪僞哀以謾親,立命緩貧而高浩居,倍本棄事而安怠徹。貪於飲食,惰於作務,陷於飢寒,危於凍餒,無以違之。是苦人氣,𪕼鼠藏,而羝羊視,賁彘起。君子笑之,怒曰:「散人,焉知良儒!」夫夏乞麥禾,五穀既收,大喪是隨,子姓皆從,得厭飲食,畢治數喪,足以至矣。因人之家以爲翠,恃人之野以爲尊,富人有喪,乃大說喜,曰:「此衣食之端也。」
또 무릇 예와 악을 번거로이 꾸며 사람을 넘치게 하고, 상을 오래 하며 거짓 슬퍼하여 어버이를 속이고, 명을 세워 가난을 느슨히 하면서 거만하게 높이 앉고, 밑동을 저버리고 일을 버리면서 게으름에 편안하다.
먹고 마시기를 탐하고 힘쓰기에 게을러 주리고 추움에 빠지고 얼어 죽을 위태로움에 이르러도 이를 벗어날 길이 없다. 이는 사람의 기운을 괴롭히는 것이라, 두더지처럼 감추고 숫양처럼 노려보고 멧돼지처럼 일어난다. 군자가 이를 비웃으면 성내어 말하기를 「어수룩한 사람이 어찌 좋은 선비를 알겠는가」 한다.
무릇 여름에는 보리와 벼를 빌고, 다섯 곡식을 거두고 나면 큰 상을 따라다니며 아들과 겨레가 다 좇아 실컷 먹고 마시니, 몇 상만 다 치르면 넉넉히 이른다. 남의 집을 말미암아 살찌고 남의 들에 기대어 높은 체하며, 가멸은 사람에게 상이 있으면 이에 크게 기뻐하여 말하기를 「이것이 옷과 밥의 실마리다」 한다.
儒者曰:「君子必古服言,然後仁。」應之曰:所謂古之服言者,皆嘗新矣,而古人服之、言之,則非君子也。然則必法非君子之服,言非君子之言,而後仁乎?
유가가 말한다. 「군자는 반드시 옛 옷을 입고 옛말을 한 뒤에야 어질다.」
이에 응하여 말한다. 이른바 옛 옷과 옛말이란 다 일찍이 새것이었으니, 옛사람이 이를 입고 이를 말하였다면 곧 군자가 아니다. 그러면 반드시 군자 아닌 이의 옷을 법 삼고 군자 아닌 이의 말을 말한 뒤에야 어진 것인가.
又曰:「君子循而不作。」應之曰:古者羿作弓,伃作甲,奚仲作車,巧垂作舟。然則今之鮑、函、車、匠皆君子也,而羿、伃、奚仲、巧垂皆小人邪?且其所循,人必或作之,然則其所循皆小人道也。
또 말한다. 「군자는 좇을 뿐 짓지 않는다.」
이에 응하여 말한다. 옛적에 예(羿)가 활을 짓고 여(伃)가 갑옷을 짓고 해중이 수레를 짓고 교수가 배를 지었다. 그러면 이제 가죽장이와 갑옷장이와 수레장이와 목수가 다 군자요 예와 여와 해중과 교수는 다 소인인가. 또 그 좇는 바를 사람이 반드시 누군가 지었을 것이니, 그러면 그 좇는 바가 다 소인의 도다.
又曰:「君子勝不逐奔,揜函弗射,强則助之胥車。」應之曰:若皆仁人也,則無說而相與。仁人以其取舍是非之理相告,無故從有故也,弗知從有知也,無辭必服,見善必遷,何故相與?若兩暴交爭,其勝者欲不逐奔,揜函弗射,施則助之胥車,雖盡能猶且不得爲君子也。意暴殘之國也,聖將爲世除害,興師誅罰,勝將因用儒術令士卒曰:「毋逐奔,揜函勿射,施則助之胥車。」暴亂之人也得活,天下害不除,是爲羣殘父母而深賊世也,不義莫大焉。
또 말한다. 「군자는 이겨도 달아나는 이를 좇지 않고, 갑옷을 덮어 가린 이를 쏘지 않고, 수레가 굴러가면 그 수레 끌기를 돕는다.」
이에 응하여 말한다. 만일 다 어진 사람이라면 서로 다툴 까닭이 없다. 어진 사람은 그 취하고 버리고 옳고 그름의 이치를 서로 일러, 까닭 없는 이가 까닭 있는 이를 좇고 알지 못하는 이가 아는 이를 좇으며, 할 말이 없으면 반드시 굴복하고 착함을 보면 반드시 옮기니 무슨 까닭으로 서로 다투겠는가.
만일 두 사나운 이가 서로 다투어 그 이긴 이가 달아나는 이를 좇지 않고 갑옷을 덮어 가린 이를 쏘지 않고 수레 끌기를 돕는다면, 비록 능함을 다한들 오히려 군자가 될 수 없다.
혹 사납고 잔인한 나라가 있어 성인이 장차 세상을 위해 해로움을 없애려 군사를 일으켜 베고 벌하는데, 이기려 하면서 선비의 재주를 써서 사졸에게 명하기를 「달아나는 이를 좇지 말고 갑옷을 덮어 가린 이를 쏘지 말고 수레가 굴러가면 끌기를 도우라」 한다면, 사납고 어지러운 사람이 살아나고 천하의 해로움이 없어지지 않는다. 이는 무리 지어 어버이를 해치고 세상을 깊이 해치는 것이니 옳지 않음이 이보다 큰 것이 없다.
又曰:「君子若鍾,擊之則鳴,弗擊不鳴。」應之曰:夫仁人事上竭忠,事親得孝,務善則美,有過則諫,此爲人臣之道也。今擊之則鳴,弗擊不鳴,隱知豫力,恬漠待問而後對,雖有君親之大利,弗問不言。若將有大寇亂,盜賊將作,若機辟將發也,他人不知,己獨知之,雖其君親皆在,不問不言,是夫大亂之賊也。以是爲人臣不忠,爲子不孝,事兄不弟,交遇人不貞良。夫執後不言之朝,物見利使,己雖恐後言,君若言而未有利焉,則高拱下視,會噎爲深,曰:「惟其未之學也。」用誰急,遺行遠矣。
또 말한다. 「군자는 종과 같아 치면 울고 치지 않으면 울지 않는다.」
이에 응하여 말한다. 무릇 어진 사람은 위를 섬김에 참됨을 다하고 어버이를 섬김에 효도를 얻으며, 착함에 힘쓰면 아름답고 허물이 있으면 간한다. 이것이 남의 신하 된 도다.
이제 치면 울고 치지 않으면 울지 않아 앎을 숨기고 힘을 아끼며 무심히 물음을 기다린 뒤에야 답하니, 비록 임금과 어버이에게 큰 이로움이 있어도 묻지 않으면 말하지 않는다.
만일 장차 큰 도적과 어지러움이 있어 도둑이 일어나려 하고 덫이 튀려 하는데, 남은 알지 못하고 저만 홀로 아는 자리에서, 비록 그 임금과 어버이가 다 있어도 묻지 않으면 말하지 않으니 이는 무릇 큰 어지러움의 도적이다.
이로써 남의 신하가 되어 참되지 않고, 아들이 되어 효도하지 않고, 형을 섬김에 아우답지 않고, 사람을 사귀어 만남에 곧고 좋지 않다.
무릇 뒤에 말하기를 잡는 조정에서, 물건에 이로움이 보여 부리게 되면 제가 비록 뒤늦게 말할까 두려워하면서도, 임금이 말하되 아직 이로움이 없으면 곧 손을 높이 모으고 아래를 보며 목에 걸린 듯 깊이 하고 말하기를 「오직 그것을 아직 배우지 못하였습니다」 한다. 누가 급하게 쓰려 한들 행함에서 멀다.
夫一道術學業,仁義也。皆大以治人,小以任官,遠用徧施,近以脩身,不義不處,非理不行,務興天下之利,曲直周旋,利則止,此君子之道也。以所聞孔丘之行,則本與此相反謬也。齊景公問晏子曰:「孔子爲人何如?」晏子不對,公又復問,不對。景公曰:「以孔丘語寡人者衆矣,俱以爲賢人也。今寡人問之,而子不對,何也?」晏子對曰:「嬰不肖,不足以知賢人。雖然,嬰聞所謂賢人者,入人之國,必務合其君臣之親,而弭其上下之怨。孔丘之荆,知白公之謀,而奉之以石乞,君身幾滅,而白公僇。嬰聞賢人得上不虛,得下不危,言聽於君必利人,教行下必於上,是以言明而易知也,行易而易從也,行義可明乎民,謀慮可通乎君臣。今孔丘深慮同謀以奉賊,勞思盡知以行邪,勸下亂上,教臣殺君,非賢人之行也。入人之國,而與人之賊,非義之類也。知人不忠,趣之爲亂,非仁義之也。逃人而後謀,避人而後言,行義不可明於民,謀慮不可通於君,臣嬰不知孔丘之有異於白公也,是以不對。」景公曰:「嗚呼!貺寡人者衆矣,非夫子,則吾終身不知孔丘之與白公同也。」
무릇 한 도와 재주와 배움과 업이 어짊과 옳음이다. 다 크게는 사람을 다스리고 작게는 벼슬을 맡으며, 멀리 써서 두루 베풀고 가까이 몸을 닦아, 옳지 않으면 처하지 않고 이치가 아니면 행하지 않으며, 천하의 이로움 일으키기에 힘써 굽고 곧게 돌아 이로우면 그친다. 이것이 군자의 도다.
들은 바 공구(孔丘)의 행함으로는 밑동부터 이와 서로 어긋난다.
제 경공이 안자에게 물었다. 「공자는 사람됨이 어떠한가.」 안자가 답하지 않았다. 공이 또 다시 물었으나 답하지 않았다.
경공이 말하였다. 「공구를 과인에게 말한 이가 많은데 다 어진 사람이라 하였다. 이제 과인이 묻는데 그대가 답하지 않으니 어째서인가.」
안자가 답하였다. 「제가 못나 어진 사람을 알기에 넉넉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가 들으니 이른바 어진 사람은 남의 나라에 들어가면 반드시 그 임금과 신하의 친함을 합하고 그 위아래의 원망을 그치게 하기에 힘쓴다 합니다.
공구가 초나라(荊)에 가서 백공(白公)의 꾀를 알고 석걸(石乞)을 그에게 받들어, 임금의 몸이 거의 없어지고 백공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제가 들으니 어진 사람은 위를 얻어도 헛되지 않고 아래를 얻어도 위태롭지 않으며, 말이 임금에게 들리면 반드시 사람을 이롭게 하고 가르침이 아래에 행해지면 반드시 위에 이르므로, 말이 밝아 알기 쉽고 행함이 쉬워 좇기 쉽습니다. 행하는 옳음을 백성에게 밝힐 수 있고 헤아리는 꾀를 임금과 신하에게 통할 수 있습니다.
이제 공구가 깊이 헤아려 함께 꾀하여 도적을 받들고, 생각을 수고롭게 하고 앎을 다하여 그릇됨을 행하며, 아래를 권하여 위를 어지럽히고 신하를 가르쳐 임금을 죽이게 하니 어진 사람의 행실이 아닙니다.
남의 나라에 들어가 남의 도적과 함께하니 옳음의 무리가 아닙니다. 사람이 참되지 않음을 알고 그를 재촉하여 어지럽게 하니 어짊과 옳음이 아닙니다. 사람을 피한 뒤에 꾀하고 사람을 피한 뒤에 말하여, 행하는 옳음을 백성에게 밝힐 수 없고 헤아리는 꾀를 임금에게 통할 수 없습니다.
신 영(嬰)은 공구가 백공과 다름이 있음을 알지 못하니, 이로써 답하지 않았습니다.」
경공이 말하였다. 「아, 과인에게 말해 준 이가 많았으나 그대가 아니었으면 나는 죽도록 공구가 백공과 같음을 알지 못하였겠다.」
孔丘之齊,見景公。景公說,欲封之以尼谿,以告晏子。晏子曰:「不可。夫儒,浩居而自順者也,不可以教下;好樂而淫人,不可使親治;立命而怠事,不可使守職;宗喪循哀,不可使慈民;機服勉容,不可使導衆。孔丘盛容脩飾以蠱世,弦歌鼓舞以聚徒,繁登降之禮以示儀,務趨翔之節以觀衆,博學不可使議世,勞思不可以補民,絫壽不能盡其學,當年不能行其禮,積財不能贍其樂,繁飾邪術以營世君,盛爲聲樂以淫遇民,其道不可以期世,其學不可以導衆。今君封之,以利齊俗,非所以導國先衆。」公曰:「善。」於是厚其禮,留其封,敬見而不問其道。孔丘乃志怒於景公與晏子,乃樹鴟夷子皮於田常之門,告南郭惠子以所欲爲,歸於魯。有頃,閒齊將伐魯,告子貢曰:「賜乎!舉大事於今之時矣。」乃遣子貢之齊,因南郭惠子以見田常,勸之伐吳,以教高、國、鮑、晏,使毋得害田常之亂,勸越伐吳。三年之內,齊吳破國之難,伏尸以言術數,孔丘之誅也。
공구가 제나라에 가서 경공을 뵈었다. 경공이 기뻐하여 이계(尼谿)에 봉하고자 하여 안자에게 고하였다.
안자가 말하였다. 「안 됩니다. 무릇 선비는 거만하게 높이 앉아 스스로 따르는 이라 아래를 가르칠 수 없고, 음악을 좋아하여 사람을 넘치게 하니 몸소 다스리게 할 수 없고, 명을 세워 일에 게으르니 직분을 지키게 할 수 없고, 상을 높이고 슬픔을 좇으니 백성을 사랑하게 할 수 없고, 이상한 옷과 꾸민 낯빛으로 하니 무리를 이끌게 할 수 없습니다.
공구는 낯빛을 성하게 하고 꾸며 세상을 홀리고, 거문고와 노래와 북과 춤으로 무리를 모으고, 오르내리는 예를 번거로이 하여 몸가짐을 보이고, 종종걸음과 나는 듯한 마디에 힘써 무리에게 보입니다. 널리 배우나 세상을 의논하게 할 수 없고, 생각을 수고롭게 하나 백성을 도울 수 없습니다. 목숨을 여러 번 살아도 그 배움을 다할 수 없고, 한창때를 다해도 그 예를 행할 수 없고, 재물을 쌓아도 그 음악을 대기에 넉넉하지 않습니다.
그릇된 재주를 번거로이 꾸며 세상 임금을 홀리고, 소리와 음악을 성하게 하여 백성을 넘치게 하니, 그 도로 세상을 기약할 수 없고 그 배움으로 무리를 이끌 수 없습니다. 이제 임금께서 그를 봉하여 제나라 풍속을 이롭게 하려 하시나, 나라를 이끌고 무리를 앞세우는 바가 아닙니다.」
공이 말하였다. 「좋다.」
이에 그 예를 두터이 하되 그 봉함은 머물러 두고, 공경히 보되 그 도는 묻지 않았다.
공구가 이에 경공과 안자에게 뜻으로 노하여, 이에 치이자피(鴟夷子皮)를 전상(田常)의 문에 세우고 남곽혜자(南郭惠子)에게 하고자 하는 바를 고하고 노나라로 돌아갔다.
얼마 뒤 제나라가 장차 노나라를 치려 함을 듣고 자공에게 고하기를 「사(賜)야, 큰일을 이제 이때에 일으키겠다」 하였다. 이에 자공을 제나라에 보내 남곽혜자를 말미암아 전상을 뵙고 오나라 치기를 권하게 하며, 고씨와 국씨와 포씨와 안씨를 가르쳐 전상의 어지러움을 해치지 못하게 하고 월나라에게 오나라 치기를 권하게 하였다.
세 해 안에 제나라와 오나라가 나라 깨어지는 어려움을 겪어 엎어진 주검을 셈으로 말할 지경이 되었으니, 공구가 부른 죽음이다.
孔丘爲魯司寇,舍公家而於季孫,季孫相魯君而走,季氏與邑人爭門關,決植。
공구가 노나라 사구가 되어 공가(公家)를 버리고 계손에게 붙었다. 계손이 노나라 임금을 도우며 달아나매, 계씨가 고을 사람과 문의 빗장을 다투다가 문설주를 끊었다.
孔丘窮於蔡陳之閒,藜羹不糂。十日,子路爲享豚,孔丘不問肉之所由來而食。褫人衣以酤酒,孔丘不問酒之所由來而飲。哀公迎孔丘,席不端弗坐,割不正弗食。子路進,請曰:「何其與陳蔡反也?」孔丘曰:「來,吾語女。曩與女爲苟生,今與女爲苟義。」夫飢約則不辭妄取以活身,贏飽則僞行以自飾。汙邪詐僞,孰大於此?
공구가 채나라와 진나라 사이에서 막혀 명아주국에 낟알도 넣지 못하였다. 열흘 만에 자로가 돼지를 삶으니 공구가 고기가 어디서 왔는지 묻지 않고 먹었고, 남의 옷을 벗겨 술을 사 오니 공구가 술이 어디서 왔는지 묻지 않고 마셨다.
애공이 공구를 맞으매 자리가 반듯하지 않으면 앉지 않고 자른 것이 바르지 않으면 먹지 않았다. 자로가 나아가 청하여 말하기를 「어찌 진나라와 채나라에서와 거꾸로입니까」 하니, 공구가 말하기를 「오라, 내가 네게 말하마. 지난날에는 너와 더불어 구차히 살았고 이제는 너와 더불어 구차히 옳음을 한다」 하였다.
무릇 주리고 죄이면 함부로 취하기를 마다하지 않아 몸을 살리고, 남고 배부르면 거짓 행실로 스스로 꾸민다. 더럽고 그릇되고 속이고 거짓됨이 무엇이 이보다 크겠는가.
孔丘與其門弟子閒坐,曰:「夫舜見瞽叟就然,此時天下圾乎!周公旦非其人也邪?何爲舍亓家室而託寓也?」孔丘所行,心術所至也。其徒屬弟子皆效孔丘,子貢、季路輔孔悝亂乎衛,陽虎亂乎齊,佛肸以中牟叛,桼雕刑殘,莫大焉。夫爲弟子,後生其師,必脩其言,法其行,力不足、知弗及而後已。今孔丘之行如此,儒士則可以疑矣。
공구가 그 문하 제자와 한가히 앉아 말하기를 「무릇 순임금이 고수를 보고 어쩔 줄 몰라 하였으니 이때에 천하가 위태로웠구나. 주공 단은 그 사람이 아니었던가. 어찌 그 집을 버리고 남에게 붙어 살았는가」 하였다.
공구가 행한 바는 마음 쓰는 재주가 이른 바다. 그 무리와 제자가 다 공구를 본떠, 자공과 계로가 공회(孔悝)를 도와 위나라를 어지럽히고, 양호가 제나라를 어지럽히고, 불힐이 중모로 저버렸으며, 칠조가 형벌로 몸이 상하였으니 이보다 큰 것이 없다.
무릇 제자 된 이와 뒤에 난 이는 그 스승의 말을 반드시 닦고 그 행함을 법 삼아, 힘이 넉넉하지 않고 앎이 미치지 못한 뒤에야 그친다. 이제 공구의 행함이 이와 같으니 선비를 의심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