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왕 상梁惠王上
1하필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孟子見梁惠王。王曰:「叟!不遠千里而來,亦將有以利吾國乎?」 孟子對曰:「王!何必曰利?亦有仁義而已矣。王曰:『何以利吾國?』大夫曰:『何以利吾家?』士庶人曰:『何以利吾身?』上下交征利而國危矣。萬乘之國,弒其君者,必千乘之家;千乘之國,弒其君者,必百乘之家。萬取千焉,千取百焉,不為不多矣。苟為後義而先利,不奪不饜。未有仁而遺其親者也,未有義而後其君者也。王亦曰仁義而已矣,何必曰利?」
맹자가 양혜왕을 뵈었다. 왕이 말했다. "어르신께서 천 리를 멀다 않고 오셨으니, 또한 장차 내 나라를 이롭게 할 것이 있겠습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왕께서는 하필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다만 인(仁)과 의(義)가 있을 뿐입니다. 왕이 '무엇으로 내 나라를 이롭게 할까' 하면, 대부는 '무엇으로 내 집을 이롭게 할까' 하고, 선비와 백성은 '무엇으로 내 몸을 이롭게 할까' 합니다. 위아래가 서로 이익을 다투면 나라가 위태로워집니다.
만승(萬乘)의 나라에서 그 임금을 죽이는 자는 반드시 천승의 집안이요, 천승의 나라에서 그 임금을 죽이는 자는 반드시 백승의 집안입니다. 만에서 천을 가지고 천에서 백을 가지는 것이 적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의를 뒤로 하고 이익을 앞세우면, 빼앗지 않고서는 만족하지 못합니다.
어질면서 제 어버이를 버린 자는 없었고, 의로우면서 제 임금을 뒤로 한 자는 없었습니다. 왕께서는 다만 인과 의를 말씀하실 뿐이니, 하필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2어진 이라야 이것을 즐긴다
孟子見梁惠王。王立於沼上,顧鴻雁麋鹿,曰:「賢者亦樂此乎?」 孟子對曰:「賢者而後樂此;不賢者雖有此,不樂也。詩云:『經始靈台,經之營之。庶民攻之,不日成之。經始勿亟,庶民子來。王在靈囿,麀鹿攸伏。麀鹿濯濯,白鳥鶴鶴。王在靈沼,於牣魚躍。』文王以民力為台為沼,而民歡樂之,謂其台曰靈台,謂其沼曰靈沼,樂其有麋鹿魚鱉。古之人與民偕樂,故能樂也。《湯誓》曰:『時日害喪,予及女皆亡。』民欲與之偕亡,雖有台池鳥獸,豈能獨樂哉?」
맹자가 양혜왕을 뵈었다. 왕이 못가에 서서 기러기와 사슴을 돌아보며 말했다. "어진 이도 이런 것을 즐깁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어진 이라야 이것을 즐깁니다. 어질지 못한 이는 이런 것이 있어도 즐기지 못합니다. 《시》에 이르기를 '영대(靈臺)를 짓기 시작하여 재고 헤아리시니, 백성이 달려들어 며칠 안 되어 이루었네. 서두르지 말라 하셨으나 백성이 자식처럼 왔네. 왕이 영유(靈囿)에 계시니 암사슴이 엎드려 있고, 암사슴은 살졌으며 흰 새는 깨끗하네. 왕이 영소(靈沼)에 계시니 아, 가득히 물고기가 뛰노네' 하였습니다.
문왕이 백성의 힘으로 대를 짓고 못을 팠는데 백성이 도리어 기뻐하고 즐거워하여, 그 대를 영대라 하고 그 못을 영소라 하며, 거기에 사슴과 물고기가 있음을 즐거워했습니다. 옛사람은 백성과 함께 즐겼으므로 능히 즐길 수 있었습니다.
《탕서》에 이르기를 '이 해는 언제나 없어지려나, 내 너와 함께 망하리라' 하였습니다. 백성이 함께 망하기를 바란다면, 대와 못과 새와 짐승이 있은들 어찌 혼자 즐길 수 있겠습니까?"
3오십 보로 백 보를 비웃다
梁惠王曰:「寡人之於國也,盡心焉耳矣。河內凶,則移其民於河東,移其粟於河內;河東凶亦然。察鄰國之政,無如寡人之用心者。鄰國之民不加少,寡人之民不加多,何也?」 孟子對曰:「王好戰,請以戰喻。填然鼓之,兵刃既接,棄甲曳兵而走。或百步而後止,或五十步而後止;以五十步笑百步,則何如?」 曰:「不可,直不百步耳,是亦走也。」 曰:「王如知此,則無望民之多於鄰國也。不違農時,穀不可勝食也;數罟不入洿池,魚鼈不可勝食也;斧斤以時入山林,材木不可勝用也。穀與魚鼈不可勝食,材木不可勝用;是使民養生喪死無憾也。養生喪死無憾,王道之始也。五畝之宅,樹之以桑,五十者可以衣帛矣;雞豚狗彘之畜,無失其時,七十者可以食肉矣;百畝之田,勿奪其時,數口之家可以無饑矣。謹庠序之教,申之以孝悌之義,頒白者不負戴於道路矣。七十者衣帛食肉,黎民不饑不寒,然而不王者,未之有也。狗彘食人食而不知檢,塗有餓莩而不知發。人死,則曰:『非我也,歲也。』是何異於刺人而殺之,曰:『非我也,兵也。』王無罪歲,斯天下之民至焉。」
양혜왕이 말했다. "과인은 나라에 마음을 다할 뿐입니다. 하내(河內)에 흉년이 들면 그 백성을 하동으로 옮기고 곡식을 하내로 옮기며, 하동에 흉년이 들어도 그렇게 합니다. 이웃 나라의 정치를 살펴보아도 과인만큼 마음 쓰는 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웃 나라의 백성이 더 줄지 않고 과인의 백성이 더 늘지 않으니 어찌 된 일입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왕께서 전쟁을 좋아하시니 전쟁으로 비유하겠습니다. 둥둥 북을 울려 칼날이 맞부딪친 뒤에 갑옷을 버리고 병기를 끌며 달아납니다. 어떤 이는 백 보를 간 뒤에 멈추고 어떤 이는 오십 보를 간 뒤에 멈추는데, 오십 보로 백 보를 비웃는다면 어떻겠습니까?"
왕이 말했다. "안 되지요. 다만 백 보가 아닐 뿐, 그것도 달아난 것입니다."
"왕께서 이것을 아신다면 백성이 이웃 나라보다 많아지기를 바라지 마십시오.
농사철을 어기지 않으면 곡식을 다 먹을 수 없고, 촘촘한 그물을 웅덩이에 넣지 않으면 물고기와 자라를 다 먹을 수 없으며, 도끼를 때맞춰 산림에 들이면 재목을 다 쓸 수 없습니다. 곡식과 물고기를 다 먹을 수 없고 재목을 다 쓸 수 없으면, 이는 백성이 산 이를 기르고 죽은 이를 보내는 데 한이 없게 하는 것입니다. 산 이를 기르고 죽은 이를 보내는 데 한이 없는 것, 그것이 왕도(王道)의 시작입니다.
다섯 이랑의 집에 뽕나무를 심으면 쉰 살 된 이가 비단옷을 입을 수 있고, 닭과 돼지와 개를 기르되 때를 놓치지 않으면 일흔 살 된 이가 고기를 먹을 수 있으며, 백 이랑의 밭에 때를 빼앗지 않으면 여러 식구의 집이 굶주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학교의 가르침을 삼가 효도와 공경의 뜻을 거듭 일러 주면, 반백이 된 이가 길에서 짐을 지거나 이고 다니지 않을 것입니다. 일흔 살 된 이가 비단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뭇 백성이 굶주리지 않고 춥지 않은데도 왕 노릇 하지 못한 이는 아직 없었습니다.
개와 돼지가 사람의 양식을 먹는데도 단속할 줄 모르고, 길에 굶어 죽은 이가 있는데도 창고를 열 줄 모릅니다. 사람이 죽으면 '내가 아니라 흉년 탓이다' 하니, 이것이 사람을 찔러 죽이고서 '내가 아니라 병기 탓이다' 하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왕께서 흉년을 탓하지 않으신다면 천하의 백성이 몰려올 것입니다."
4몽둥이로 죽이나 정치로 죽이나
梁惠王曰:「寡人願安承教。」 孟子對曰:「殺人以梃與刃,有以異乎?」 曰:「無以異也。」 「以刃與政,有以異乎?」 曰:「無以異也。」 曰:「庖有肥肉,廄有肥馬,民有饑色,野有餓莩;此率獸而食人也。獸相食,且人惡之;為民父母行政,不免於率獸而食人,惡在其為民父母也?仲尼曰:『始作俑者,其無後乎?』為其像人而用之也。如之何其使斯民饑而死也!」
양혜왕이 말했다. "과인은 편안한 마음으로 가르침을 받고자 합니다."
맹자가 대답했다. "사람을 몽둥이로 죽이는 것과 칼로 죽이는 것에 다름이 있습니까?"
"다를 것이 없습니다."
"칼로 죽이는 것과 정치로 죽이는 것에 다름이 있습니까?"
"다를 것이 없습니다."
"푸줏간에 살진 고기가 있고 마구간에 살진 말이 있는데 백성에게 굶주린 빛이 있고 들에 굶어 죽은 이가 있다면, 이는 짐승을 몰아 사람을 잡아먹게 하는 것입니다. 짐승끼리 서로 잡아먹는 것도 사람이 미워하는데, 백성의 부모가 되어 정치를 하면서 짐승을 몰아 사람을 잡아먹게 함을 면하지 못한다면, 어디에 백성의 부모 됨이 있겠습니까?
중니께서 '처음 나무 인형을 만든 자는 그 후손이 없으리라' 하셨으니, 그것이 사람을 본떠서 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찌 이 백성을 굶겨 죽게 한단 말입니까!"
5어진 이에게는 적이 없다
梁惠王曰:「晉國,天下莫強焉,叟之所知也。及寡人之身,東敗於齊,長子死焉;西喪地於秦七百里;南辱於楚。寡人恥之,願比死者壹洒之,如之何則可?」 孟子對曰:「地方百里,而可以王。王如施仁政於民,省刑罰,薄稅斂,深耕易耨;壯者以暇日修其孝悌忠信,入以事其父兄,出以事其長上;可使制梃以撻秦楚之堅甲利兵矣。彼奪其民時,使不得耕耨以養其父母。父母凍餓,兄弟妻子離散。彼陷溺其民,王往而征之,夫誰與王敵?故曰:『仁者無敵。』王請勿疑。」
양혜왕이 말했다. "진(晉)나라가 천하에 이보다 강한 데가 없었음은 어르신도 아시는 바입니다. 그런데 과인의 대에 이르러 동쪽으로 제나라에 패해 맏아들이 죽었고, 서쪽으로 진(秦)나라에 땅 칠백 리를 잃었으며, 남쪽으로 초나라에 욕을 보았습니다. 과인이 이를 부끄러워하여 죽은 이들을 위해 한번 씻고자 하니,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땅이 사방 백 리라도 왕 노릇을 할 수 있습니다. 왕께서 만약 백성에게 어진 정치를 베푸시어 형벌을 덜고 세금을 가볍게 하며 깊이 갈고 김매기 쉽게 하시고, 젊은이가 여가에 효도와 공경과 충성과 신의를 닦아 들어가서는 아비와 형을 섬기고 나가서는 어른과 윗사람을 섬기게 하시면, 몽둥이를 만들어서도 진나라와 초나라의 단단한 갑옷과 날카로운 병기를 칠 수 있게 됩니다.
저들은 제 백성의 농사철을 빼앗아 갈고 김매어 그 부모를 봉양하지 못하게 합니다. 부모가 얼고 굶주리며 형제와 처자가 흩어집니다. 저들이 제 백성을 구렁에 빠뜨렸으니, 왕께서 가서 치신다면 누가 왕과 맞서겠습니까? 그러므로 '어진 이에게는 적이 없다' 하는 것입니다. 왕께서는 부디 의심하지 마십시오."
6사람 죽이기를 좋아하지 않는 이가 천하를 하나로
孟子見梁襄王。出,語人曰:「望之不似人君,就之而不見所畏焉。卒然問曰:『天下惡乎定?』「吾對曰:『定於一。』「『孰能一之?』「對曰:『不嗜殺人者能一之。』『孰能與之?』「對曰:『天下莫不與也。王知夫苗乎?七八月之間旱,則苗槁矣。天油然作雲,沛然下雨,則苗浡然興之矣。其如是,孰能御之?今夫天下之人牧,未有不嗜殺人者也。如有不嗜殺人者,則天下之民皆引領而望之矣。誠如是也,民歸之,由水之就下,沛然誰能御之?』」
맹자가 양양왕을 뵙고 나와서 사람들에게 말했다. "멀리서 보아도 임금 같지 않고 가까이 가도 두려워할 만한 데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대뜸 묻기를 '천하가 어디에서 정해지겠소?' 하기에, 내가 '하나에서 정해집니다' 하였다.
'누가 능히 하나로 할 수 있소?' 하기에,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지 않는 이가 능히 하나로 할 수 있습니다' 하였다.
'누가 그에게 따르겠소?' 하기에 이렇게 대답했다. '천하에 따르지 않을 이가 없습니다. 왕께서는 저 모종을 아십니까? 칠팔월 사이에 가물면 모종이 마릅니다. 하늘이 뭉게뭉게 구름을 일으켜 좍좍 비를 내리면 모종이 쑥쑥 일어납니다. 그와 같으니 누가 이를 막겠습니까?
지금 천하에 백성을 다스리는 이들 가운데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만약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지 않는 이가 있다면 천하의 백성이 모두 목을 늘이고 그를 바라볼 것입니다. 참으로 그렇게 되면 백성이 그에게 돌아가는 것이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과 같으리니, 그 좍좍 흐르는 것을 누가 막겠습니까?'"
7소는 보았고 양은 보지 못했다
齊宣王問曰:「齊桓、晉文之事可得聞乎?」 孟子對曰:「仲尼之徒,無道桓、文之事者,是以後世無傳焉;臣未之聞也。無以,則王乎?」 曰:「德何如,則可以王矣?」 曰:「保民而王,莫之能禦也。」 曰:「若寡人者,可以保民乎哉?」 曰:「可。」 曰:「何由知吾可也?」 曰:「臣聞之胡齕曰,王坐於堂上,有牽牛而過堂下者,王見之,曰:『牛何之?』對曰:『將以釁鐘。』王曰:『舍之!吾不忍其觳觫,若無罪而就死地。』對曰:『然則廢釁鐘與?』曰:『何可廢也?以羊易之!』不識有諸?」 曰:「有之。」 曰:「是心足以王矣。百姓皆以王為愛也,臣固知王之不忍也。」 王曰:「然。誠有百姓者。齊國雖褊小,吾何愛一牛?即不忍其觳觫,若無罪而就死地,故以羊易之也。」 曰:「王無異於百姓之以王為愛也。以小易大,彼惡知之?王若隱其無罪而就死地,則牛羊何擇焉?」 王笑曰:「是誠何心哉?我非愛其財而易之以羊也。宜乎百姓之謂我愛也。」 曰:「無傷也,是乃仁術也,見牛未見羊也。君子之於禽獸也,見其生,不忍見其死;聞其聲,不忍食其肉。是以君子遠庖廚也。」 王說曰:「《詩》云:『他人有心,予忖度之。』夫子之謂也。夫我乃行之,反而求之,不得吾心。夫子言之,於我心有戚戚焉。此心之所以合於王者,何也?」 曰:「有復於王者曰:『吾力足以舉百鈞,而不足以舉一羽;明足以察秋毫之末,而不見輿薪。』則王許之乎?」 曰:「否。」 「今恩足以及禽獸,而功不至於百姓者,獨何與?然則一羽之不舉,為不用力焉;輿薪之不見,為不用明焉;百姓之不見保,為不用恩焉。故王之不王,不為也,非不能也。」 曰:「不為者與不能者之形,何以異?」 曰:「挾太山以超北海,語人曰:『我不能。』是誠不能也。為長者折枝,語人曰:『我不能。』是不為也,非不能也。故王之不王,非挾太山以超北海之類也;王之不王,是折枝之類也。老吾老,以及人之老;幼吾幼,以及人之幼;天下可運於掌。《詩》云:『刑於寡妻,至於兄弟,以御於家邦。』言舉斯心加諸彼而已。故推恩足以保四海,不推恩無以保妻子。古之人所以大過人者,無他焉,善推其所為而已矣。今恩足以及禽獸,而功不至於百姓者,獨何與?權,然後知輕重;度,然後知長短。物皆然,心為甚。王請度之。抑王興甲兵,危士臣,構怨於諸侯,然後快於心與?」 王曰:「否。吾何快於是?將以求吾所大欲也。」 曰:「王之所大欲,可得聞與?」 王笑而不言。 曰:「為肥甘不足於口與?輕暖不足於體與?抑為采色不足視於目與?聲音不足聽於耳與?便嬖不足使令於前與?王之諸臣,皆足以供之;而王豈為是哉?」 曰:「否。吾不為是也。」 曰:「然則王之大欲,可知已:欲闢土地,朝秦楚,蒞中國而撫四夷也。以若所為,求若所欲,猶緣木而求魚也。」 王曰:「若是其甚與?」 曰:「殆有甚焉。緣木求魚,雖不得魚,無後災;以若所為,求若所欲,盡心力而為之,後必有災。」 曰:「可得聞與?」 曰:「鄒人與楚人戰,則王以為孰勝?」 曰:「楚人勝。」 曰:「然則小固不可以敵大,寡固不可以敵眾,弱固不可以敵強。海內之地,方千里者九,齊集有其一;以一服八,何以異於鄒敵楚哉?蓋亦反其本矣。今王發政施仁,使天下仕者皆欲立於王之朝,耕者皆欲耕於王之野,商賈皆欲藏於王之市,行旅皆欲出於王之途,天下之欲疾其君者皆欲赴愬於王。其若是,孰能御之?」 王曰:「吾惛,不能進於是矣。願夫子輔吾志,明以教我。我雖不敏,請嘗試之。」 曰:「無恆產而有恆心者,惟士為能。若民,則無恆產,因無恆心。苟無恆心,放辟邪侈,無不為已。及陷於罪,然後從而刑之,是罔民也。焉有仁人在位,罔民而可為也?是故明君制民之產,必使仰足以事父母,俯足以畜妻子;樂歲終身飽,凶年免於死亡;然後驅而之善,故民之從之也輕。今之制民之產,仰不足以事父母,俯不足以畜妻子;樂歲終身苦,凶年不免於死亡;此惟救死而恐不贍,奚暇治禮義哉?王欲行之,則盍反其本矣:五畝之宅,樹之以桑,五十者可以衣帛矣;雞豚狗彘之畜,無失其時,七十者可以食肉矣;百畝之田,勿奪其時,八口之家可以無饑矣;謹庠序之教,申之以孝悌之義,頒白者不負戴於道路矣。老者衣帛食肉,黎民不饑不寒,然而不王者,未之有也。」
제선왕이 물었다. "제환공과 진문공의 일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중니의 문도 가운데 환공과 문공의 일을 말한 이가 없어 후세에 전해진 것이 없으니, 신은 듣지 못했습니다. 굳이 말하라 하시면 왕도(王道)를 말씀드릴까요?"
"덕이 어떠하면 왕 노릇을 할 수 있습니까?"
"백성을 지키면서 왕 노릇을 하면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과인 같은 사람도 백성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할 수 있습니다."
"무엇으로 내가 할 수 있음을 아십니까?"
"신이 호흘에게 들었습니다. 왕께서 당상에 앉아 계실 때 소를 끌고 당 아래를 지나는 자가 있었는데, 왕께서 보시고 '소를 어디로 끌고 가느냐?' 하시니 '장차 종에 피를 바르려 합니다' 하였고, 왕께서 '놓아주어라. 벌벌 떨며 죄 없이 죽을 곳으로 가는 것을 내가 차마 보지 못하겠다' 하셨습니다. '그러면 종에 피 바르는 일을 그만둘까요?' 하니 '어찌 그만두겠느냐. 양으로 바꾸어라' 하셨다고 합니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있었습니다."
"그 마음이면 왕 노릇 하기에 넉넉합니다. 백성은 모두 왕께서 재물을 아끼신 것이라 여기지만, 신은 왕께서 차마 못 하신 것임을 진작 알았습니다."
왕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참으로 그런 백성이 있었습니다. 제나라가 비록 좁고 작으나 내 어찌 소 한 마리를 아끼겠습니까? 다만 벌벌 떨며 죄 없이 죽을 곳으로 가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여 양으로 바꾼 것입니다."
"왕께서는 백성이 왕을 인색하다 여기는 것을 이상히 여기지 마십시오. 작은 것으로 큰 것을 바꾸었으니 저들이 어찌 알겠습니까? 왕께서 죄 없이 죽을 곳으로 가는 것을 가엾이 여기셨다면, 소와 양에 무슨 가릴 것이 있겠습니까?"
왕이 웃으며 말했다. "그것이 참으로 무슨 마음이었을까요? 내가 재물을 아껴 양으로 바꾼 것은 아닌데, 백성이 나를 인색하다 하는 것도 마땅하겠습니다."
"상심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바로 인(仁)을 이루는 방법입니다. 소는 보았고 양은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군자가 짐승에 대하여, 그 산 것을 보면 차마 그 죽는 것을 보지 못하고, 그 소리를 들으면 차마 그 고기를 먹지 못합니다. 그래서 군자는 푸줏간을 멀리하는 것입니다."
왕이 기뻐하며 말했다. "《시》에 '남이 지닌 마음을 내가 헤아린다' 하였으니 선생을 두고 한 말입니다. 내가 그렇게 하고서 돌이켜 찾아보아도 내 마음을 알 수 없었는데, 선생께서 말씀하시니 내 마음에 뭉클함이 있습니다. 이 마음이 왕도에 맞는다 함은 어째서입니까?"
"어떤 이가 왕께 아뢰기를 '내 힘은 삼천 근을 들기에 넉넉하나 깃털 하나를 들기에는 부족하고, 내 눈은 가는 털끝을 살피기에 넉넉하나 수레에 실은 섶은 보지 못한다' 한다면, 왕께서 이를 인정하시겠습니까?"
"아니지요."
"지금 은혜가 짐승에게 미치기에는 넉넉한데 공이 백성에게 이르지 못하니, 유독 어째서입니까? 그렇다면 깃털 하나를 들지 못함은 힘을 쓰지 않기 때문이요, 수레의 섶을 보지 못함은 눈을 쓰지 않기 때문이며, 백성이 보살핌을 받지 못함은 은혜를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왕께서 왕 노릇 하지 못하심은 하지 않으시는 것이지 못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 않는 것과 못 하는 것의 모습은 어떻게 다릅니까?"
"태산을 옆에 끼고 북해를 뛰어넘는 일을 두고 '나는 못 한다' 한다면 이는 참으로 못 하는 것입니다. 어른을 위해 나뭇가지를 꺾는 일을 두고 '나는 못 한다' 한다면 이는 하지 않는 것이지 못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왕께서 왕 노릇 하지 못하심은 태산을 끼고 북해를 뛰어넘는 따위가 아니라 나뭇가지를 꺾는 따위입니다.
내 어버이를 어버이로 섬겨 남의 어버이에까지 미치고, 내 아이를 아이로 사랑하여 남의 아이에까지 미치면, 천하를 손바닥 위에서 움직일 수 있습니다. 《시》에 '아내에게 본을 보여 형제에게 이르고 집과 나라를 다스린다' 하였으니, 이 마음을 들어 저기에 더할 뿐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미루면 사해를 지키기에 넉넉하고, 은혜를 미루지 않으면 처자도 지킬 수 없습니다. 옛사람이 남보다 크게 뛰어났던 까닭은 다른 것이 아니라 그 하는 바를 잘 미루었을 뿐입니다.
지금 은혜가 짐승에게 미치기에는 넉넉한데 공이 백성에게 이르지 못하니 유독 어째서입니까? 저울질한 뒤에야 가볍고 무거움을 알고, 재어 본 뒤에야 길고 짧음을 압니다. 만물이 다 그러하거니와 마음이 더욱 그렇습니다. 왕께서는 부디 헤아려 보십시오.
아니면 왕께서 군사를 일으켜 신하를 위태롭게 하고 제후에게 원한을 맺은 뒤에야 마음이 시원하시겠습니까?"
왕이 말했다. "아닙니다. 내 어찌 그것을 시원해하겠습니까. 장차 내가 크게 바라는 바를 구하려는 것입니다."
"왕께서 크게 바라시는 바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왕이 웃으며 말하지 않았다.
"기름지고 단 것이 입에 모자라서입니까? 가볍고 따뜻한 것이 몸에 모자라서입니까? 아니면 고운 빛깔이 눈에 모자라서입니까? 소리가 귀에 모자라서입니까? 총애하는 이들이 앞에서 부리기에 모자라서입니까? 왕의 신하들이 다 그것을 대기에 넉넉하니, 왕께서 어찌 그런 것을 위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나는 그런 것을 위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왕께서 크게 바라시는 바를 알 만합니다. 땅을 넓히고 진나라와 초나라의 조회를 받으며 중국에 임하여 사방 오랑캐를 어루만지려는 것입니다. 그런 방법으로 그런 바람을 구하시는 것은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왕이 말했다. "그토록 심합니까?"
"아마 그보다 더 심할 것입니다.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하면 물고기를 얻지 못해도 뒤탈은 없으나, 그런 방법으로 그런 바람을 구하여 마음과 힘을 다해 하신다면 뒤에 반드시 재앙이 있습니다."
"들을 수 있겠습니까?"
"추나라 사람과 초나라 사람이 싸우면 왕께서는 누가 이기리라 보십니까?"
"초나라 사람이 이기지요."
"그렇다면 작은 것은 본디 큰 것을 대적할 수 없고, 적은 것은 본디 많은 것을 대적할 수 없으며, 약한 것은 본디 강한 것을 대적할 수 없습니다. 온 천하의 땅에 사방 천 리가 아홉인데 제나라가 모아야 그 하나를 가졌을 뿐입니다. 하나로 여덟을 굴복시키려는 것이 추나라가 초나라를 대적하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어찌 그 근본으로 돌아가지 않으십니까?
이제 왕께서 정치를 펴고 어짊을 베푸시어, 천하에 벼슬하려는 이가 다 왕의 조정에 서기를 바라고, 밭 가는 이가 다 왕의 들에서 갈기를 바라고, 장사꾼이 다 왕의 저자에 물건을 두기를 바라고, 나그네가 다 왕의 길로 나서기를 바라며, 천하에 제 임금을 미워하는 이가 다 왕께 달려와 하소연하기를 바란다면, 그와 같으니 누가 이를 막겠습니까?"
왕이 말했다. "내가 어두워 여기서 더 나아가지 못하겠습니다. 선생께서 내 뜻을 도와 밝게 가르쳐 주십시오. 내 비록 민첩하지 못하나 한번 해 보겠습니다."
"일정한 생업이 없으면서도 일정한 마음을 지니는 것은 오직 선비만이 할 수 있습니다. 백성으로 말하면 일정한 생업이 없으면 그로 인해 일정한 마음이 없습니다. 일정한 마음이 없으면 방탕하고 치우치고 삿되고 사치함을 하지 않는 것이 없게 됩니다. 그리하여 죄에 빠진 뒤에 좇아가 벌한다면 이는 백성을 그물질하는 것입니다. 어진 사람이 자리에 있으면서 어찌 백성을 그물질하는 짓을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밝은 임금은 백성의 생업을 마련해 주되, 반드시 위로는 부모를 섬기기에 넉넉하고 아래로는 처자를 기르기에 넉넉하게 하여, 풍년에는 한 해 내내 배부르고 흉년에는 죽음을 면하게 합니다. 그런 뒤에 이끌어 선(善)으로 나아가게 하므로 백성이 따르기가 쉽습니다.
지금 백성의 생업을 마련하는 것은, 위로는 부모를 섬기기에 모자라고 아래로는 처자를 기르기에 모자라며, 풍년에도 한 해 내내 괴롭고 흉년에는 죽음을 면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오직 죽음을 면하는 데도 넉넉하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판이니, 어느 겨를에 예의를 닦겠습니까?
왕께서 이를 행하고자 하신다면 어찌 그 근본으로 돌아가지 않으십니까. 다섯 이랑의 집에 뽕나무를 심으면 쉰 살 된 이가 비단옷을 입을 수 있고, 닭과 돼지와 개를 기르되 때를 놓치지 않으면 일흔 살 된 이가 고기를 먹을 수 있으며, 백 이랑의 밭에 때를 빼앗지 않으면 여덟 식구의 집이 굶주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학교의 가르침을 삼가 효도와 공경의 뜻을 거듭 일러 주면 반백이 된 이가 길에서 짐을 지거나 이고 다니지 않을 것입니다. 늙은이가 비단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뭇 백성이 굶주리지 않고 춥지 않은데도 왕 노릇 하지 못한 이는 아직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