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문공 상滕文公上
1성선을 말하고 반드시 요순을 일컫다
滕文公為世子,將之楚,過宋而見孟子。孟子道性善,言必稱堯、舜。 世子自楚反,復見孟子。孟子曰:「世子疑吾言乎?夫道一而已矣。成覸謂齊景公曰:『彼丈夫也,我丈夫也,吾何畏彼哉?』顏淵曰:『舜何人也?予何人也?有為者亦若是。』公明儀曰:『文王我師也,周公豈欺我哉?』今滕絕長補短,將五十里也,猶可以為善國。《書》曰:『若藥不瞑眩,厥疾不瘳。』」
등문공이 세자였을 때 초나라로 가다가 송나라를 지나며 맹자를 뵈었다. 맹자는 성선(性善)을 말하고 말할 때마다 반드시 요순을 일컬었다.
세자가 초나라에서 돌아오는 길에 다시 맹자를 뵈었다. 맹자가 말했다. "세자께서는 제 말을 의심하십니까? 무릇 도는 하나일 뿐입니다.
성간이 제경공에게 '저이도 사내요 나도 사내인데 내 어찌 저이를 두려워하랴' 했고, 안연은 '순은 어떤 사람이며 나는 어떤 사람인가. 하려는 이는 또한 이와 같다' 했으며, 공명의는 '문왕은 내 스승이시다. 주공이 어찌 나를 속이시랴' 했습니다.
지금 등나라는 긴 데를 잘라 짧은 데를 채우면 장차 오십 리가 될 터이니, 그래도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습니다. 《서》에 '약이 어지럽지 않으면 그 병이 낫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2삼년상을 치르다 — 바람과 풀
滕定公薨,世子謂然友曰:「昔者孟子嘗與我言於宋,於心終不忘。今也不幸至於大故,吾欲使子問於孟子,然後行事。」 然友之鄒問於孟子。 孟子曰:「不亦善乎!親喪固所自盡也。曾子曰:『生,事之以禮;死,葬之以禮,祭之以禮,可謂孝矣。』諸侯之禮,吾未之學也。雖然,吾嘗聞之矣:三年之喪,齋疏之服,飦粥之食,自天子達於庶人,三代共之。」 然友反命,定為三年之喪。父兄百官皆不欲也,故曰:「吾宗國魯先君莫之行,吾先君亦莫之行也;至於子之身而反之,不可。且《志》曰:『喪祭從先祖。』」曰:「吾有所受之也。」 謂然友曰:「吾他日未嘗學問,好馳馬試劍。今也父兄百官不我足也;恐其不能盡於大事。子為我問孟子。」 然友復之鄒問孟子。 孟子曰:「然,不可以他求者也。孔子曰:『君薨,聽於冢宰,飦粥,面深墨,即位而哭。百官有司,莫敢不哀,先之也。上有好者,下必有甚焉者矣。君子之德,風也;小人之德,草也。草上之風必偃。』。是在世子。」 然友反命。 世子曰:「然,是誠在我。」 五月居廬,未有命戒。百官族人,可謂曰知。及至葬,四方來觀之。顏色之戚,哭泣之哀,弔者大悅。
등정공이 돌아가시자 세자가 연우에게 말했다. "지난날 맹자가 나와 송나라에서 말한 것을 마음에 끝내 잊지 못한다. 이제 불행히 큰일을 당했으니, 그대를 시켜 맹자께 여쭙게 한 뒤에 일을 치르고자 한다."
연우가 추나라에 가서 맹자께 여쭈었다.
맹자가 말했다. "또한 좋지 않은가! 어버이의 상은 본디 스스로 다해야 하는 것이다. 증자께서 '살아 계실 때는 예로 섬기고, 돌아가시면 예로 장사 지내고 예로 제사 지내면 효라 할 만하다' 하셨다. 제후의 예는 내가 배우지 못했다. 그러나 내 일찍이 들었으니, 삼년상에 거친 상복을 입고 미음과 죽을 먹는 것은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삼대가 함께한 것이다."
연우가 돌아와 아뢰니 삼년상으로 정했다. 아버지뻘 형뻘 되는 친족과 백관이 다 원하지 않아 말했다. "우리 종주국인 노나라의 선군들도 행하지 않았고 우리 선군들도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대의 대에 이르러 뒤집는 것은 안 됩니다. 또 《지(志)》에 '상례와 제례는 선조를 따른다' 하였습니다." 세자가 말했다. "나는 받은 바가 있다."
연우에게 말했다. "내가 지난날 배우고 묻지 않고 말 달리기와 칼 쓰기를 좋아했다. 이제 친족과 백관이 나를 넉넉지 못하다 여기니, 큰일에 다하지 못할까 두렵다. 그대는 나를 위해 맹자께 여쭈라."
연우가 다시 추나라에 가서 맹자께 여쭈었다.
맹자가 말했다. "그렇다. 다른 데서 구할 수 없는 일이다. 공자께서 '임금이 돌아가시면 총재에게 정사를 맡기고, 죽을 먹으며 낯빛이 짙게 검어지고, 자리에 나아가 곡한다. 백관과 유사가 감히 슬퍼하지 않는 이가 없으니, 앞장서 보였기 때문이다. 위에서 좋아하는 이가 있으면 아래에서 반드시 더한 이가 있다. 군자의 덕은 바람이요 소인의 덕은 풀이니, 풀 위에 바람이 불면 반드시 눕는다' 하셨다. 이는 세자께 달렸다."
연우가 돌아와 아뢰었다.
세자가 말했다. "그렇다. 이는 참으로 나에게 달렸다."
다섯 달 동안 여막에 거처하며 명령과 경계를 내리지 않았다. 백관과 겨레붙이가 '안다'고 할 만했다. 장사에 이르러 사방에서 와서 보았는데, 낯빛의 슬픔과 곡읍의 애통함에 조문하는 이들이 크게 흡족해했다.
3나라 다스림을 묻다 — 경계와 정전(井田)
滕文公問為國。 孟子曰:「民事不可緩也。《詩》云:『晝爾于茅,宵爾索绹。亟其乘屋,其始播百穀。』民之為道也,有恒產者有恒心,無恒產者無恒心。茍無恒心,放僻邪侈,無不為已。及陷乎罪然後從而刑之,是罔民也。焉有仁人在位罔民而可為也?是故賢君必恭儉禮下,取於民有制。陽虎曰:『為富不仁矣;為仁不富矣。』 夏后氏五十而貢,殷人七十而助,周人百畝而徹。其實皆什一也。徹者徹也,助者藉也。龍子曰:『治地莫善於助,莫不善於貢。貢者校數歲之中以為常。樂歲粒米狼戾,多取之而不為虐,則寡取之;兇年糞其田而不足,則必取盈焉。為民父母,使民盻盻然,將終歲勤動,不得以養其父母,又稱貸而益之,使老稚轉乎溝壑,惡在其為民父母也?』夫世祿滕固行之矣。《詩》云:『雨我公田,遂及我私。』惟助為有公田。由此觀之,雖周亦助也。 設為庠序學校以教之。庠者養也,校者教也,序者射也。夏曰校,殷曰序,周曰庠,學則三代共之,皆所以明人倫也。人倫明於上,小民親於下。有王者起,必來取法,是為王者師也。《詩》云:『周雖舊邦,其命維新。』文王之謂也。子力行之,亦以新子之國!」 使畢戰問井地。 孟子曰:「子之君將行仁政,選擇而使子,子必勉之。夫仁政必自經界始。經界不正,井地不均,穀祿不平。是故暴君污吏必慢其經界。經界既正,分田制祿,可坐而定也。」 「夫滕壤地褊小,將為君子焉,將為野人焉。無君子莫治野人,無野人莫養君子。請野九一而助,國中什一使自賦。卿以下必有圭田。圭田五十畝,餘夫二十五畝。死徙無出鄉,鄉田同井,出入相友,守望相助,疾病相扶持,則百姓親睦。方里而井;井九百畝,其中為公田。八家皆私百畝,同養公田。公事畢,然後敢治私事,所以別野人也。此其大略也。若夫潤澤之,則在君與子矣。」
등문공이 나라 다스림을 물었다.
맹자가 말했다. "백성의 일은 늦출 수 없습니다. 《시》에 '낮에는 띠를 베고 밤에는 새끼를 꼬아, 서둘러 지붕에 올라라. 그래야 온갖 곡식을 뿌리기 시작한다' 하였습니다.
백성의 도리란 일정한 생업이 있으면 일정한 마음이 있고, 일정한 생업이 없으면 일정한 마음이 없습니다. 진실로 일정한 마음이 없으면 방탕하고 치우치고 삿되고 사치함을 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죄에 빠진 뒤에 좇아가 벌한다면 이는 백성을 그물질하는 것입니다. 어진 사람이 자리에 있으면서 어찌 백성을 그물질하는 짓을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어진 임금은 반드시 공손하고 검소하며 아랫사람에게 예를 갖추고, 백성에게 거두는 데 법도가 있습니다. 양호가 '부자가 되려면 어질지 못하고, 어질려면 부자가 되지 못한다' 했습니다.
하후씨는 오십 이랑에 공법(貢法)을 썼고, 은나라 사람은 칠십 이랑에 조법(助法)을 썼으며, 주나라 사람은 백 이랑에 철법(徹法)을 썼는데, 그 실상은 다 십분의 일입니다. 철(徹)이란 거둔다는 뜻이요 조(助)란 빌린다는 뜻입니다.
용자가 말했습니다. '땅을 다스리는 데 조법보다 좋은 것이 없고 공법보다 나쁜 것이 없다. 공법이란 여러 해의 중간을 견주어 일정한 액수로 삼는 것이다. 풍년에는 낟알이 넘쳐나 많이 거두어도 모진 것이 아닌데 도리어 적게 거두고, 흉년에는 그 밭에 거름 값도 모자라는데 반드시 채워 거둔다. 백성의 부모가 되어 백성으로 하여금 원망스러운 눈으로 한 해 내내 부지런히 움직이고도 제 부모를 봉양하지 못하게 하고, 또 빚을 내어 채우게 하여 늙은이와 어린이가 도랑과 골짜기에 굴러 떨어지게 한다면, 어디에 백성의 부모 됨이 있겠는가?'
무릇 대대로 녹을 주는 것은 등나라가 본디 행하고 있습니다. 《시》에 '우리 공전에 비를 내리시고 이어 우리 사전에 미치소서' 하였으니, 오직 조법에만 공전이 있습니다. 이로 보건대 주나라도 조법을 썼습니다.
상(庠)·서(序)·학(學)·교(校)를 세워 가르치십시오. 상이란 기른다는 뜻이요, 교란 가르친다는 뜻이요, 서란 활 쏜다는 뜻입니다. 하나라는 교라 하고 은나라는 서라 하고 주나라는 상이라 했으며, 학은 삼대가 함께했으니 다 인륜을 밝히는 것입니다. 인륜이 위에서 밝으면 백성이 아래에서 친해집니다.
왕자가 일어나면 반드시 와서 법을 취할 것이니, 이는 왕자의 스승이 되는 것입니다. 《시》에 '주나라가 비록 옛 나라이나 그 천명은 새롭다' 하였으니 문왕을 이른 것입니다. 그대가 힘써 행하시어 또한 그대의 나라를 새롭게 하십시오!"
필전을 시켜 정전법을 묻게 했다.
맹자가 말했다. "그대의 임금이 장차 어진 정치를 행하려 하여 골라 그대를 보내셨으니 그대는 반드시 힘쓰시오. 무릇 어진 정치는 반드시 경계(經界)를 바로잡는 데서 시작하오. 경계가 바르지 않으면 정전이 고르지 않고 녹으로 주는 곡식이 공평하지 않소. 그러므로 포악한 임금과 더러운 관리는 반드시 그 경계를 소홀히 하오. 경계가 이미 바르면 밭을 나누고 녹을 정하는 일은 앉아서도 정할 수 있소.
무릇 등나라는 땅이 좁고 작으나 장차 군자도 있어야 하고 들사람도 있어야 하오. 군자가 없으면 들사람을 다스리지 못하고, 들사람이 없으면 군자를 기르지 못하오.
청하건대 들에서는 구분의 일로 조법을 쓰고, 나라 안에서는 십분의 일로 스스로 바치게 하시오. 경(卿) 이하는 반드시 규전(圭田)이 있어야 하니, 규전은 오십 이랑이요 남는 장정에게는 스물다섯 이랑을 주오.
죽거나 옮겨도 고을을 나가지 않고, 고을의 밭이 같은 정(井)에 들어 드나들며 서로 벗하고 지키고 망보며 서로 돕고 앓고 병들면 서로 부축하면, 백성이 친하고 화목해지오.
사방 한 리가 한 정이 되니 한 정이 구백 이랑이고 그 가운데가 공전이오. 여덟 집이 다 사전 백 이랑을 가지고 함께 공전을 가꾸어, 공전 일을 마친 뒤에야 감히 사전 일을 다스리니, 이것이 들사람을 구별하는 방법이오. 이것이 그 대강이오. 저 이를 매끄럽게 다듬는 것은 임금과 그대에게 달렸소."
4허행과의 논쟁 — 마음 쓰는 이와 힘쓰는 이
有為神農之言者許行,自楚之滕,踵門而告文公,曰:「遠方之人,聞君行仁政,愿受一廛而為氓。」文公與之處。其徒數十人,皆衣褐、捆屨、織席以為食。 陳良之徒陳相與其弟辛,負耒耜而自宋之滕。曰:「聞君行聖人之政,是亦聖人也,愿為聖人氓。」 陳相見許行而大悅,盡棄其學而學焉。 陳相見孟子,道許行之言曰:「滕君則誠賢君也;雖然,未聞道也。賢者與民并耕而食,饔飧而治。今也滕有倉廩府庫,則是厲民而以自養也,惡得賢?」 孟子曰:「許子必種粟而後食乎?」 曰:「然。」 「許子必織布而後衣乎?」 曰:「否,許子衣褐。」 「許子冠乎?」 曰:「冠。」 曰:「奚冠?」 曰:「冠素。」 曰:「自織之與?」 曰:「否,以粟易之。」 曰:「許子奚為不自織?」 曰:「害於耕。」 曰:「許子以釜甑爨、以鐵耕乎?」 曰:「然。」 「自為之與?」 曰:「否,以粟易之。」 「以粟易械器者,不為厲陶冶;陶冶亦以其械器易粟者,豈為厲農夫哉?且許子何不為陶冶,舍皆取諸其宮中而用之?何為紛紛然與百工交易?何許子之不憚煩?」 曰:「百工之事,固不可耕且為也。」 「然則治天下獨可耕且為與?有大人之事,有小人之事。且一人之身,而百工之所為備。如必自為而後用之,是率天下而路也。故曰:或勞心,或勞力。勞心者治人,勞力者治於人。治於人者食人,治人者食於人──天下之通義也。」 「當堯之時,天下猶未平,洪水橫流,氾濫於天下;草木暢茂,禽獸繁殖;五穀不登,禽獸偪人;獸蹄鳥跡之道,交於中國。堯獨憂之,舉舜而敷治焉。舜使益掌火;益烈山澤而焚之,禽獸逃匿。禹疏九河,瀹濟、漯而注諸海;決汝、漢,排淮、泗,而注之江,然後中國可得而食也。當是時也,禹八年於外,三過其門而不入,雖欲耕,得乎?」 「后稷教民稼穡,樹藝五穀,五穀熟而民人育。人之有道也,飽食煖衣,逸居而無教,則近於禽獸。聖人有憂之,使契為司徒,教以人倫:父子有親,君臣有義,夫婦有別,長幼有序,朋友有信。放勛曰:『勞之來之、匡之直之、輔之翼之,使自得之;又從而振德之。』聖人之憂民如此,而暇耕乎?」 「堯以不得舜為己憂;舜以不得禹、皋陶為己憂。夫以百畝之不易為己憂者,農夫也。分人以財謂之惠,教人以善謂之忠,為天下得人者謂之仁。是故以天下與人易,為天下得人難。孔子曰:『大哉,堯之為君!惟天為大,惟堯則之。蕩蕩乎民無能名焉!君哉舜也!巍巍乎有天下而不與焉!』堯舜之治天下,豈無所用其心哉?亦不用於耕耳。」 「吾聞用夏變夷者,未聞變於夷者也。陳良,楚產也;悅周公、仲尼之道,北學於中國,北方之學者,未能或之先也。彼所謂豪傑之士也。子之兄弟事之數十年,師死而遂倍之。昔者孔子沒,三年之外,門人治任將歸,入揖於子貢,相向而哭,皆失聲,然後歸。子貢反,筑室於場,獨居三年,然後歸。他日子夏、子張、子游以有若似聖人,欲以所事孔子事之,強曾子。曾子曰:『不可,江漢以濯之,秋陽以暴之,皜皜乎不可尚已。』今也南蠻鴃舌之人,非先王之道,子倍子之師而學之,亦異於曾子矣。吾聞出於幽谷、遷于喬木者,未聞下喬木而入於幽谷者。魯頌曰:『戎狄是膺,荊舒是懲。』周公方且膺之,子是之學,亦為不善變矣。」 「從許子之道,則市賈不貳,國中無偽;雖使五尺之童適市,莫之或欺。布帛長短同,則賈相若;麻縷絲絮輕重同,則賈相若;五穀多寡同,則賈相若;屨大小同,則賈相若。」 曰:「夫物之不齊,物之情也。或相倍蓰,或相什百,或相千萬;子比而同之,是亂天下也。巨屨小屨同賈,人豈為之哉?從許子之道,相率而為偽者也,惡能治國家?」
신농의 말을 하는 허행이라는 이가 초나라에서 등나라로 와서 문 앞에 이르러 문공에게 아뢰었다. "먼 지방 사람이 임금께서 어진 정치를 행하신다 듣고, 집터 하나를 받아 백성이 되기를 바랍니다." 문공이 살 곳을 주었다. 그 무리 수십 인이 다 거친 옷을 입고 신을 삼고 자리를 짜서 먹고살았다.
진량의 문도 진상이 그 아우 신과 함께 쟁기와 보습을 지고 송나라에서 등나라로 와서 말했다. "임금께서 성인의 정치를 행하신다 들었으니 이 또한 성인이십니다. 성인의 백성이 되기를 바랍니다."
진상이 허행을 보고 크게 기뻐하여 제가 배운 것을 다 버리고 그에게 배웠다.
진상이 맹자를 뵙고 허행의 말을 전했다. "등나라 임금은 참으로 어진 임금입니다. 그러나 아직 도를 듣지 못했습니다. 어진 이는 백성과 함께 밭 갈아 먹고 손수 밥 지어 먹으며 다스립니다. 지금 등나라에 곳간과 창고가 있으니, 이는 백성을 괴롭혀 제 몸을 기르는 것입니다. 어찌 어질다 하겠습니까?"
맹자가 말했다. "허자는 반드시 곡식을 심은 뒤에 먹는가?"
"그렇습니다."
"허자는 반드시 베를 짠 뒤에 옷을 입는가?"
"아닙니다. 허자는 거친 옷을 입습니다."
"허자는 관을 쓰는가?"
"씁니다."
"무슨 관을 쓰는가?"
"흰 관을 씁니다."
"손수 짠 것인가?"
"아닙니다. 곡식으로 바꿉니다."
"허자는 어찌하여 손수 짜지 않는가?"
"밭 가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허자는 솥과 시루로 밥을 짓고 쇠붙이로 밭을 가는가?"
"그렇습니다."
"손수 만든 것인가?"
"아닙니다. 곡식으로 바꿉니다."
"곡식으로 그릇과 연장을 바꾸는 것이 옹기장이와 대장장이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면, 옹기장이와 대장장이가 그 그릇과 연장으로 곡식을 바꾸는 것이 어찌 농부를 괴롭히는 것이겠는가?
또 허자는 어찌 옹기장이와 대장장이 노릇을 하여, 죄다 제 집 안에서 가져다 쓰지 않는가? 어찌하여 어수선하게 온갖 장인과 바꾸는가? 어찌 허자는 번거로움을 꺼리지 않는가?"
"온갖 장인의 일은 본디 밭 갈면서 겸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천하를 다스리는 일만은 밭 갈면서 겸할 수 있는가? 대인의 일이 있고 소인의 일이 있다. 또 한 사람의 몸에 온갖 장인이 만든 것이 갖추어져 있다. 만약 반드시 손수 만든 뒤에 쓴다면, 이는 천하를 이끌고 길바닥에 나서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한다. '어떤 이는 마음을 쓰고 어떤 이는 힘을 쓴다. 마음 쓰는 이는 남을 다스리고 힘쓰는 이는 남에게 다스려진다. 남에게 다스려지는 이는 남을 먹이고, 남을 다스리는 이는 남에게 먹여진다.' 이것이 천하에 두루 통하는 의리다.
요임금 때에 천하가 아직 고르지 못하여 홍수가 멋대로 흘러 천하에 넘쳤다. 초목이 무성하고 새와 짐승이 번식했으며, 오곡이 여물지 않고 새와 짐승이 사람을 핍박했다. 짐승 발자국과 새 발자국의 길이 나라 안에 얽혔다. 요임금 홀로 이를 근심하시어 순을 들어 다스리게 하셨다.
순은 익에게 불을 맡기니, 익이 산과 늪에 불을 놓아 태우자 새와 짐승이 달아나 숨었다. 우임금은 아홉 강을 트고 제수와 탑수를 뚫어 바다로 대며, 여수와 한수를 트고 회수와 사수를 밀어 강으로 대었다. 그런 뒤에야 나라 안이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이때에 우임금은 여덟 해를 밖에서 지내며 세 번 제 집 문 앞을 지나면서도 들어가지 않으셨으니, 밭 갈고자 한들 될 일이겠는가?
후직은 백성에게 농사를 가르쳐 오곡을 심고 가꾸게 하니, 오곡이 익어 백성이 길러졌다. 사람에게 도리가 있으니, 배불리 먹고 따뜻이 입고 편안히 살면서 가르침이 없으면 새와 짐승에 가까워진다. 성인이 이를 근심하시어 설(契)을 사도로 삼아 인륜을 가르치게 하셨다. 아비와 자식에게 친함이 있고, 임금과 신하에게 의리가 있으며, 지아비와 지어미에게 분별이 있고, 어른과 아이에게 차례가 있으며, 벗에게 믿음이 있게 하셨다.
방훈께서 '수고롭게 하고 오게 하며, 바로잡고 곧게 하며, 돕고 붙들어 스스로 얻게 하고, 또 뒤따라 은덕으로 떨쳐 주라' 하셨다. 성인이 백성을 근심하심이 이와 같은데 밭 갈 겨를이 있었겠는가?
요임금은 순을 얻지 못함을 제 근심으로 삼으셨고, 순임금은 우와 고요를 얻지 못함을 제 근심으로 삼으셨다. 무릇 백 이랑이 다스려지지 않음을 제 근심으로 삼는 이는 농부다.
남에게 재물을 나누는 것을 혜(惠)라 하고, 남에게 선을 가르치는 것을 충(忠)이라 하며, 천하를 위해 사람을 얻는 것을 인(仁)이라 한다. 그러므로 천하를 남에게 주기는 쉬워도 천하를 위해 사람을 얻기는 어렵다.
공자께서 '크시도다, 요의 임금 되심이여! 오직 하늘이 크신데 오직 요임금만이 이를 본받으셨다. 넓고 넓어 백성이 이름 붙일 수 없구나! 임금답도다, 순이여! 우뚝하게 천하를 가지시고도 그것에 매이지 않으셨구나!' 하셨다. 요와 순이 천하를 다스리심에 어찌 마음 쓴 바가 없었겠는가. 다만 밭 가는 데 쓰지 않으셨을 뿐이다.
나는 중화로 오랑캐를 바꾼다는 말은 들었어도 오랑캐에게 바뀐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진량은 초나라 사람인데 주공과 중니의 도를 기뻐하여 북으로 중국에 와서 배웠고, 북방의 학자 가운데 그를 앞선 이가 없었다. 그는 이른바 호걸의 선비다.
그대 형제가 그를 수십 년 섬기다가 스승이 죽자 마침내 배반했다. 옛날 공자께서 돌아가시고 삼 년이 지난 뒤 문인들이 짐을 챙겨 돌아가려 할 때, 들어가 자공에게 읍하고 서로 마주 보며 곡하다가 다 목이 쉰 뒤에야 돌아갔다. 자공은 돌아와 무덤가에 집을 짓고 홀로 삼 년을 산 뒤에야 돌아갔다.
뒷날 자하·자장·자유가 유약이 성인을 닮았다 하여 공자를 섬기던 예로 그를 섬기려고 증자에게 강권했다. 증자께서 '안 된다. 강수와 한수로 씻고 가을볕에 쬔 듯이 희고 희어 더할 수 없다' 하셨다.
지금 남쪽 오랑캐의 왜가리 같은 소리를 내는 사람이 선왕의 도를 그르다 하는데, 그대가 그대의 스승을 배반하고 그에게 배우니 또한 증자와 다르다. 나는 그윽한 골짜기에서 나와 높은 나무로 옮긴다는 말은 들었어도, 높은 나무에서 내려와 그윽한 골짜기로 든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노송》에 '융과 적을 치고 형과 서를 징계한다' 하였다. 주공도 바야흐로 이들을 치셨는데 그대가 이것을 배우니, 또한 잘 바꾸지 못한 것이다."
"허자의 도를 따르면 저자에 두 값이 없어 나라 안에 거짓이 없어집니다. 비록 다섯 자 아이를 저자에 보내도 아무도 속이지 않습니다. 베와 비단이 길이가 같으면 값이 같고, 삼과 실과 솜이 무게가 같으면 값이 같으며, 오곡이 많고 적음이 같으면 값이 같고, 신이 크고 작음이 같으면 값이 같습니다."
"무릇 물건이 고르지 않은 것은 물건의 실정이다. 어떤 것은 서로 갑절 다섯 곱이 되고, 어떤 것은 열 곱 백 곱이 되며, 어떤 것은 천 곱 만 곱이 된다. 그대가 나란히 놓아 같게 하려 하니 이는 천하를 어지럽히는 것이다. 굵은 신과 가는 신이 값이 같다면 사람이 어찌 가는 신을 만들겠는가? 허자의 도를 따르는 것은 서로 이끌고 거짓을 행하는 것이니, 어찌 나라를 다스리겠는가?"
5묵자 이지 — 사랑에 차등이 없다는 말
墨者夷之,因徐辟而求見孟子。孟子曰:「吾固愿見,今吾尚病,病愈,我且往見。」夷子不來! 他日又求見孟子。孟子曰:「吾今則可以見矣。不直則道不見,我且直之。吾聞夷子墨者,墨者之治喪也,以薄為其道也。夷子思以易天下,豈以為非是而不貴也?然而夷子葬其親厚,則是以所賤事親也。」 徐子以告夷子。 夷子曰:「儒者之道,古之人『若保赤子』,此言何謂也?之則以為愛無差等,施由親始。」 徐子以告孟子。 孟子曰:「夫夷子信以為人之親其兄之子為若親其鄰之赤子乎?彼有取爾也。赤子匍匐將入井,非赤子之罪也。且天之生物也使之一本,而夷子二本故也。蓋上世嘗有不葬其親者,其親死則舉而委之於壑。他日過之,狐貍食之,蠅蚋姑嘬之。其顙有泚,睨而不視。夫泚也,非為人泚,中心達於面目。蓋歸反虆梩而掩之,掩之誠是也。則孝子仁人之掩其親,亦必有道矣。」 徐子以告夷子。夷子憮然為間曰:「命之矣!」 上一篇回目录下一篇
묵가의 이지가 서벽을 통해 맹자 뵙기를 청했다. 맹자가 말했다. "내가 본디 뵙고자 하나 지금은 아직 병중이다. 병이 나으면 내가 가서 보겠다." 이자는 오지 않았다.
뒷날 또 맹자 뵙기를 청했다. 맹자가 말했다. "내가 이제는 볼 수 있다. 곧게 하지 않으면 도가 드러나지 않으니 내가 곧게 하겠다.
내 들으니 이자는 묵가라 한다. 묵가가 상(喪)을 치르는 데는 박하게 함을 도로 삼는다. 이자는 그것으로 천하를 바꾸려 생각하니, 어찌 그것을 그르다 여겨 귀히 여기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자가 제 어버이를 두터이 장사 지냈으니, 이는 천하게 여기는 것으로 어버이를 섬긴 것이다."
서자가 이를 이자에게 알렸다.
이자가 말했다. "유가의 도에 옛사람이 '갓난아이를 보호하듯 한다' 하였으니, 이 말은 무엇을 이르는 것입니까? 저는 사랑에 차등이 없되 베풂은 어버이에게서 시작한다고 여깁니다."
서자가 이를 맹자께 알렸다.
맹자가 말했다. "무릇 이자는 참으로 사람이 제 형의 자식을 친애하는 것이 이웃의 갓난아이를 친애하는 것과 같다고 여기는가? 저 말에는 취할 데가 있다. 갓난아이가 기어서 우물에 들어가려 하는 것은 갓난아이의 죄가 아니다.
또 하늘이 만물을 낼 때 그 근본을 하나로 하였는데, 이자는 근본을 둘로 하기 때문이다.
옛 세상에 제 어버이를 장사 지내지 않은 이가 있었다. 그 어버이가 죽자 들어다 골짜기에 버렸다. 뒷날 그곳을 지나는데 여우와 살쾡이가 뜯어 먹고 파리와 등에가 모여 빨고 있었다. 그 이마에 땀이 배어 곁눈으로 보고 바로 보지 못했다. 무릇 그 땀은 남을 위해 밴 것이 아니라 속마음이 얼굴에 이른 것이다. 아마 돌아가 삼태기와 가래를 가져다 덮었으리라. 덮은 것이 참으로 옳다면, 효자와 어진 사람이 제 어버이를 덮는 데도 반드시 도리가 있는 것이다."
서자가 이를 이자에게 알렸다. 이자가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말했다. "나를 가르치셨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