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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문공 하滕文公下

맹자 孟子 · 맹가(孟軻)와 그 문인 · 기원전 4세기~3세기 · 단락 10 · 한자 2,900자 · 낭독 11.6분

「맹자」 한 권 「등문공 하」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하필 이익을 말씀하십니까」로 시작해 「백성이 귀하고 임금은 가볍다」에 이르는 책. 논어가 조용히 이르는 자리에서 맹자는 임금 앞에서 따지고 되묻는다. 오십 보 백 보, 호연지기,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를 보면 누구나 철렁하는 사단(四端), 삶을 버리고 의를 취함, 하늘이 큰 임무를 내리려 할 때 먼저 그 마음을 괴롭힌다는 말이 다 여기서 나왔다. 서재에 먼저 실린 논어와 나란히 두고 읽을 짝이다.

1한 자를 굽혀 여덟 자를 편다는 말

陳代曰:「不見諸侯,宜若小然。今一見之,大則以王,小則以霸。且《志》曰:『枉尺而直尋。』宜若可為也。」 孟子曰:「昔齊景公田,招虞人以旌,不至,將殺之。『志士不忘在溝壑,勇士不忘喪其元。』孔子奚取焉?取非其招不往也。如不待其招而往,何哉?且夫枉尺而直尋者,以利言也。如以利,則枉尋直尺而利,亦可為與?昔者趙簡子使王良與嬖奚乘,終日而不獲一禽。嬖奚反命曰:『天下之賤工也。』或以告王良,良曰:『請復之。』強而後可,一朝而獲十禽。嬖奚反命曰:『天下之良工也。』簡子曰:『我使掌與女乘。』謂王良。良不可,曰:『吾為之范,我馳驅,終日不獲一;為之詭遇,一朝而獲十。《詩》云:「不失其馳,舍矢如破。」我不貫與小人乘,請辭。』御者且羞與射者比。比而得禽獸,雖若丘陵,弗為也。如枉道而從彼,何也?且子過矣,枉己者,未有能直人者也。」

진대가 말했다. "제후를 만나지 않으시는 것은 작은 일에 매이신 듯합니다. 이제 한 번 만나시면 크게는 왕 노릇을 하게 하고 작게는 패자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또 《지(志)》에 '한 자를 굽혀 여덟 자를 편다' 하였으니 해 볼 만한 일인 듯합니다."

맹자가 말했다. "옛날 제경공이 사냥할 때 사냥터지기를 깃발로 불렀는데 오지 않자 죽이려 했다. '뜻있는 선비는 도랑과 골짜기에 버려질 것을 잊지 않고, 용감한 선비는 제 머리를 잃을 것을 잊지 않는다' 하였는데, 공자께서 무엇을 취하셨겠는가? 제게 맞는 부름이 아니면 가지 않은 것을 취하신 것이다. 만약 그 부름을 기다리지 않고 간다면 무엇이 되겠는가?

또 무릇 한 자를 굽혀 여덟 자를 편다는 것은 이익으로 말한 것이다. 만약 이익으로 한다면 여덟 자를 굽혀 한 자를 펴도 이익이 된다면 그것도 하겠는가?

옛날 조간자가 왕량에게 총신 해(奚)와 함께 수레를 타게 했는데, 하루 종일 새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총신 해가 돌아와 아뢰기를 '천하에 못난 마부입니다' 했다. 어떤 이가 왕량에게 알리니 왕량이 '다시 하기를 청합니다' 했다. 억지로 청한 뒤에야 허락받았는데, 하루아침에 열 마리를 잡았다. 총신 해가 돌아와 아뢰기를 '천하에 좋은 마부입니다' 했다. 간자가 '내 그를 시켜 너와 함께 타게 하겠다' 하고 왕량에게 일렀다.

왕량이 안 된다며 말했다. '내가 그를 위해 법대로 몰았더니 하루 종일 하나도 잡지 못했고, 그를 위해 규칙을 어겨 만나게 했더니 하루아침에 열을 잡았습니다. 《시》에 「그 달림을 잃지 않으니 쏜 화살이 쪼개듯 맞는다」 하였습니다. 나는 소인과 함께 타는 데 익숙하지 않으니 사양하겠습니다.'

마부조차 활 쏘는 이에게 빌붙는 것을 부끄러워했다. 빌붙어 짐승을 잡는 것이 언덕만큼 쌓인들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도를 굽혀 저들을 따른다면 무엇이 되겠는가?

또 그대가 잘못 알았다. 제 몸을 굽힌 이가 남을 곧게 한 일은 아직 없었다."

2대장부란 무엇인가

景春曰:「公孫衍、張儀豈不誠大丈夫哉?一怒而諸侯懼,安居而天下熄。」 孟子曰:「是焉得為大丈夫乎?子未學禮乎?丈夫之冠也,父命之;女子之嫁也,母命之,往送之門,戒之曰:『往之女家,必敬必戒,無違夫子。』以順為正者,妾婦之道也。居天下之廣居,立天下之正位,行天下之大道;得志與民由之,不得志,獨行其道;富貴不能淫,貧賤不能移,威武不能屈──此之謂大丈夫。」

경춘이 말했다. "공손연과 장의야말로 참으로 대장부가 아니겠습니까? 한 번 노하면 제후가 두려워하고, 가만히 있으면 천하가 조용해집니다."

맹자가 말했다. "이것이 어찌 대장부가 되겠는가. 그대는 예를 배우지 않았는가? 사내가 관례를 올릴 때는 아비가 명하고, 여자가 시집갈 때는 어미가 명하여 문까지 가서 보내며 경계하기를 '네 집에 가서 반드시 공경하고 반드시 삼가 지아비를 어기지 말라' 한다. 순종을 바름으로 삼는 것은 첩과 아녀자의 도리다.

천하의 넓은 집에 살고, 천하의 바른 자리에 서며, 천하의 큰길을 간다. 뜻을 얻으면 백성과 함께 그 길을 가고, 뜻을 얻지 못하면 홀로 그 도를 행한다. 부귀도 그를 흐리게 하지 못하고, 빈천도 그를 옮기지 못하며, 위엄과 무력도 그를 굽히지 못한다 — 이것을 대장부라 한다."

3벼슬은 농부가 밭 가는 것과 같다

周霄問曰:「古之君子仕乎?」 孟子曰:「仕。傳曰:『孔子三月無君,則皇皇如也。出疆必載質。』公明儀曰:『古之人三月無君則弔。』」 「三月無君則弔,不以急乎?」 曰:「士之失位也,猶諸侯之失國家也。《禮》曰:『諸侯耕助,以供粢盛。夫人蠶繅,以為衣服。犧牲不成,粢盛不潔,衣服不備,不敢以祭。惟士無田,則亦不祭。』牲殺器皿衣服不備,不敢以祭,則不敢以宴,亦不足弔乎?」 「出疆必載質,何也?」 曰:「士之仕也,猶農夫之耕也。農夫豈為出疆舍其耒耜哉?」 曰:「晉國亦仕國也,未嘗聞仕如此其急。仕如此其急也,君子之難仕,何也?」 曰:「丈夫生而愿為之有室,女子生而愿為之有家。父母之心,人皆有之。不待父母之命、媒妁之言,鉆穴隙相窺,逾墻相從,則父母、國人皆賤之。古之人未嘗不欲仕也,又惡不由其道。不由其道而往者,與鉆穴隙之類也。」

주소가 물었다. "옛 군자는 벼슬했습니까?"

맹자가 말했다. "벼슬했다. 전하는 기록에 '공자께서는 석 달 동안 섬길 임금이 없으면 허둥지둥하셨고, 국경을 나설 때는 반드시 폐백을 실으셨다' 하였다. 공명의는 '옛사람은 석 달 동안 섬길 임금이 없으면 위로했다' 했다."

"석 달 동안 임금이 없다고 위로하는 것은 너무 급하지 않습니까?"

"선비가 자리를 잃는 것은 제후가 나라를 잃는 것과 같다. 《예》에 '제후는 밭 갈아 도와 제삿밥을 마련하고, 부인은 누에 쳐서 실을 뽑아 옷을 짓는다. 희생이 여물지 않고 제삿밥이 깨끗하지 않고 옷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감히 제사하지 못한다. 오직 선비는 밭이 없으면 또한 제사하지 못한다' 하였다. 희생과 그릇과 옷이 갖추어지지 않아 감히 제사하지 못하면 감히 잔치도 못 하니, 또한 위로할 만하지 않은가?"

"국경을 나설 때 반드시 폐백을 싣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선비가 벼슬하는 것은 농부가 밭 가는 것과 같다. 농부가 어찌 국경을 나선다고 제 쟁기와 보습을 버리겠는가?"

"진(晉)나라도 벼슬하는 나라인데, 벼슬을 이토록 급하게 여긴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습니다. 벼슬이 이토록 급한 것이라면, 군자가 벼슬하기를 어려워함은 어째서입니까?"

"사내가 나면 그를 위해 아내 있기를 바라고, 여자가 나면 그를 위해 시집갈 집 있기를 바란다. 부모의 마음은 사람이 다 지닌 것이다. 그러나 부모의 명과 중매의 말을 기다리지 않고, 구멍을 뚫어 서로 엿보고 담을 넘어 서로 따른다면, 부모와 나라 사람이 다 천하게 여긴다.

옛사람이 벼슬하고자 하지 않은 적이 없으나 또한 그 도리를 말미암지 않는 것을 미워했다. 도리를 말미암지 않고 가는 것은 구멍을 뚫는 것과 같은 무리다."

4뜻을 먹이는가, 공을 먹이는가

彭更問曰:「後車數十乘,從者數百人,以傳食於諸侯,不以泰乎?」 孟子曰:「非其道,則一簞食不可受於人。如其道,則舜受堯之天下,不以為泰,子以為泰乎?」 曰:「否。士無事而食,不可也。」 曰:「子不通功易事,以羨補不足,則農有餘粟,女有餘布。子如通之,則梓匠輪輿皆得食於子。於此有人焉;入則孝,出則悌,守先王之道,以待後之學者,而不得食於子。子何尊梓匠輪輿而輕為仁義者哉?」 曰:「梓匠輪輿,其志將以求食也。君子之為道也,其志亦將以求食與?」 曰:「子何以其志為哉?其有功於子,可食而食之矣。且子食志乎?食功乎?」 曰:「食志。」 曰:「有人於此,毀瓦畫墁,其志將以求食也,則子食之乎?」 曰:「否。」 曰:「然則子非食志也,食功也。」

팽경이 물었다. "뒤따르는 수레 수십 대와 따르는 이 수백 명으로 제후에게 얹혀 먹는 것은 너무 지나치지 않습니까?"

맹자가 말했다. "그 도리가 아니면 한 대바구니 밥도 남에게 받을 수 없다. 그 도리라면 순임금이 요임금의 천하를 받으신 것도 지나치다 여기지 않는데, 그대는 지나치다 여기는가?"

"아닙니다. 선비가 하는 일 없이 먹는 것이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대가 공을 통하게 하고 일을 바꾸어 남는 것으로 모자란 것을 채우지 않는다면, 농부에게는 남는 곡식이 있고 여자에게는 남는 베가 있게 된다. 그대가 그것을 통하게 한다면 목수와 수레장이가 다 그대에게서 먹을 수 있다.

여기 어떤 사람이 있어 들어가서는 효도하고 나가서는 공손하며 선왕의 도를 지켜 뒤에 올 배우는 이를 기다리는데도 그대에게서 먹지 못한다면, 그대는 어찌 목수와 수레장이는 높이고 인의를 행하는 이는 가벼이 여기는가?"

"목수와 수레장이는 그 뜻이 장차 먹을 것을 구하려는 데 있습니다. 군자가 도를 행하는 것도 그 뜻이 장차 먹을 것을 구하려는 데 있습니까?"

"그대가 어찌 그 뜻을 따지는가? 그가 그대에게 공이 있어 먹일 만하면 먹이는 것이다. 또 그대는 뜻을 먹이는가, 공을 먹이는가?"

"뜻을 먹입니다."

"여기 어떤 사람이 기와를 부수고 담벼락에 낙서를 하는데 그 뜻이 장차 먹을 것을 구하려는 데 있다면, 그대는 그를 먹이겠는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뜻을 먹이는 것이 아니라 공을 먹이는 것이다."

5탕왕의 첫 정벌은 갈나라에서

萬章問曰:「宋,小國也,今將行王政,齊、楚惡而伐之,則如之何?」 孟子曰:「湯居亳,與葛為鄰。葛伯放而不祀,湯使人問之曰:『何為不祀?』曰:『無以供犧牲也。』湯使遺之牛羊,葛伯食之,又不以祀。湯又使人問之曰:『何為不祀?』曰:『無以供粢盛也。』湯使亳眾往為之耕,老弱饋食。葛伯率其民,要其有酒食黍稻者奪之,不授者殺之。有童子以黍肉餉,殺而奪之。《書》曰:『葛伯仇餉』,此之謂也。為其殺是童子而征之,四海之內皆曰:『非富天下也,為匹夫匹婦復讎也。』湯始征,自葛載。十一征而無敵於天下。東面而征,西夷怨;南面而征,北狄怨,曰:『奚為後我?』民之望之若大旱之望雨也。歸市者弗止,蕓者不變。誅其君,弔其民,如時雨降,民大悅。《書》曰:『徯我后,后來其無罰。』『有攸不惟臣,東征,綏厥士女。篚厥玄黃,紹我周王見休,惟臣附于大邑周。』其君子實玄黃于篚以迎其君子,其小人簞食壺漿以迎其小人。救民於水火之中,取其殘而已矣。《太誓》曰:『我武惟揚,侵于之疆。則取于殘,殺伐用張,于湯有光。』不行王政云爾;苟行王政,四海之內皆舉首而望之,欲以為君。齊楚雖大,何畏焉?」

만장이 물었다. "송나라는 작은 나라입니다. 이제 왕도의 정치를 행하려 하는데 제나라와 초나라가 미워하여 친다면 어찌합니까?"

맹자가 말했다. "탕왕이 박(亳)에 사실 때 갈나라와 이웃했다. 갈백이 방자하여 제사를 지내지 않으니, 탕왕이 사람을 보내 '어찌하여 제사하지 않는가' 물었다. '희생으로 바칠 것이 없습니다' 하기에 탕왕이 소와 양을 보내 주었으나, 갈백이 그것을 먹고 또 제사하지 않았다.

탕왕이 다시 사람을 보내 '어찌하여 제사하지 않는가' 물었다. '제삿밥으로 바칠 것이 없습니다' 하기에, 탕왕이 박의 사람들을 보내 대신 밭 갈게 하고 늙은이와 아이가 밥을 날랐다. 갈백이 제 백성을 이끌고 술과 밥과 기장과 쌀을 가진 이를 막아 빼앗고, 내주지 않는 이를 죽였다. 어떤 아이가 기장과 고기를 나르는데 죽이고 빼앗았다. 《서》에 '갈백이 밥 나르는 이를 원수로 삼았다' 하였으니 이를 이른 것이다.

그 아이를 죽였다 하여 정벌하시니, 온 천하가 다 '천하를 탐한 것이 아니라 한 사내와 한 아녀자를 위해 원수를 갚은 것이다' 했다.

탕왕의 첫 정벌은 갈나라에서 비롯되었다. 열한 번 정벌하되 천하에 적이 없었다. 동쪽을 향해 치면 서쪽 오랑캐가 원망하고, 남쪽을 향해 치면 북쪽 오랑캐가 원망하며 '어찌 우리를 뒤로 미루는가' 했다. 백성이 그를 바라기를 큰 가뭄에 비를 바라듯 했다. 저자에 가는 이가 멈추지 않고 김매는 이가 달라지지 않았다. 그 임금을 베고 그 백성을 위로하니 때맞은 비가 내리는 것 같아 백성이 크게 기뻐했다.

《서》에 '우리 임금을 기다린다, 임금이 오시면 벌이 없으리라' 하였고, 또 '신하 되지 않는 이가 있어 동쪽으로 치시고 그 남녀를 편안케 하시니, 검고 누런 비단을 광주리에 담아 우리 주나라 왕을 뵙고 아름다움을 이어, 오직 큰 고을 주나라에 신하로 붙었다' 하였다.

그 나라의 군자들은 검고 누런 비단을 광주리에 담아 그 군자를 맞이했고, 그 소인들은 대바구니에 밥을 담고 병에 마실 것을 담아 그 소인을 맞이했다. 백성을 물과 불 속에서 건지고 그 잔악한 자를 없앴을 뿐이다.

《태서》에 '우리 무위를 떨쳐 그 지경을 침노하여, 그 잔악한 자를 없애고 죽이고 침을 크게 베푸니 탕왕보다 빛난다' 하였다.

왕도의 정치를 행하지 않아서 그럴 뿐이다. 진실로 왕도의 정치를 행하면 온 천하가 다 머리를 들고 그를 바라보며 임금 삼고자 할 것이다. 제나라와 초나라가 비록 크다 한들 무엇이 두렵겠는가?"

6제나라 말 하나에 초나라 사람 여럿

孟子謂戴不勝曰:「子欲子之王之善與?我明告子:有楚大夫於此,欲其子之齊語也,則使齊人傅諸?使楚人傅諸?」 曰:「使齊人傅之。」 曰:「一齊人傅之,眾楚人咻之,雖日撻而求其齊也,不可得矣。引而置之莊岳之間數年,雖日撻而求其楚,亦不可得矣。子謂薛居州,善士也,使之居於王所。在於王所者,長幼卑尊皆薛居州也,王誰與為不善?在王所者,長幼卑尊皆非薛居州也,王誰與為善?一薛居州,獨如宋王何?」

맹자가 대불승에게 말했다. "그대는 그대의 왕이 선해지기를 바라는가? 내 그대에게 밝히 말하겠다. 여기 초나라 대부가 있어 제 아들이 제나라 말을 하기를 바란다면, 제나라 사람을 시켜 가르치겠는가, 초나라 사람을 시켜 가르치겠는가?"

"제나라 사람을 시켜 가르치겠습니다."

"제나라 사람 하나가 가르치는데 초나라 사람 여럿이 떠들어 댄다면, 비록 날마다 매질하며 제나라 말을 구해도 얻을 수 없다. 그를 이끌어 장악(莊嶽) 사이에 몇 해를 두면, 비록 날마다 매질하며 초나라 말을 구해도 또한 얻을 수 없다.

그대가 설거주를 착한 선비라 하여 왕이 계신 곳에 살게 했는데, 왕이 계신 곳에 있는 이들이 어른이든 아이든 낮은 이든 높은 이든 다 설거주 같다면 왕이 누구와 더불어 착하지 않은 일을 하겠는가. 왕이 계신 곳에 있는 이들이 어른이든 아이든 낮은 이든 높은 이든 다 설거주가 아니라면 왕이 누구와 더불어 착한 일을 하겠는가. 설거주 하나가 홀로 송나라 왕을 어찌하겠는가?"

7어깨를 옹송그리고 아첨하여 웃는 것

公孫丑問曰:「不見諸侯,何義?」 孟子曰:「古者不為臣不見。段干木逾垣而辟之,泄柳閉門而不納。是皆已甚;迫,斯可以見矣。陽貨欲見孔子,而惡無禮。大夫有賜於士,不得受於其家,則往拜其門。陽貨矙孔子之亡也,而饋孔子蒸豚,孔子亦矙其亡也而往拜之。當是時,陽貨先,豈得不見?曾子曰:『脅肩諂笑,病于夏畦。』子路曰:『未同而言,觀其色,赧赧然,非由之所知也。』由是觀之,則君子之所養,可知已矣。」

공손추가 물었다. "제후를 만나지 않으시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맹자가 말했다. "옛날에는 신하가 되지 않으면 만나지 않았다. 단간목은 담을 넘어 피했고 설류는 문을 닫고 들이지 않았다. 이는 다 지나치다. 다가오면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양화가 공자를 만나고자 했으나 예 없음을 꺼렸다. 대부가 선비에게 선물을 주었는데 선비가 제 집에서 받지 못하면 그 문에 가서 절하는 법이다. 양화는 공자가 안 계신 틈을 엿보아 공자께 삶은 돼지를 보냈고, 공자도 그가 없는 틈을 엿보아 가서 절하셨다. 그때 양화가 먼저 했으니 어찌 만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증자께서 '어깨를 옹송그리고 아첨하여 웃는 것은 여름 밭에서 김매기보다 고달프다' 하셨다. 자로는 '뜻이 같지 않은데도 말하며 그 낯빛을 보면 부끄러워 붉어지니, 이는 유(由)가 알 바가 아니다' 했다. 이로 보건대 군자가 기르는 바를 알 만하다."

8날마다 훔치던 닭을 달마다 하나씩

戴盈之曰:「什一,去關市之征,今茲未能。請輕之,以待來年,然後已,何如?」 孟子曰:「今有人日攘其鄰之雞者,或告之曰:『是非君子之道。』曰:『請損之,月攘一雞;以待來年,然後已。』如知其非義,斯速已矣,何待來年?」

대영지가 말했다. "십분의 일로 하고 관문과 저자의 세를 없애는 일을 올해는 아직 못 하겠습니다. 청컨대 조금 가볍게 하여 내년을 기다린 뒤에 그만두려 하는데 어떻겠습니까?"

맹자가 말했다. "지금 어떤 사람이 날마다 이웃의 닭을 훔치는데, 어떤 이가 '이는 군자의 도가 아니다' 하니, '청컨대 줄여서 달마다 닭 하나씩 훔치다가 내년을 기다린 뒤에 그만두겠다' 한다고 합시다. 만약 그것이 의롭지 않음을 안다면 어서 그만둘 일이지 어찌 내년을 기다리겠습니까?"

9내가 어찌 변론을 좋아하랴 — 마지못해서다

公都子曰:「外人皆稱夫子好辯,敢問何也?」 孟子曰:「予豈好辯哉?予不得已也。天下之生久矣,一治一亂。當堯之時,水逆行,泛濫於中國。蛇龍居之,民無所定。下者為巢,上者為營窟。《書》曰:『洚水警餘。』洚水者,洪水也。使禹治之。禹掘地而注之海,驅蛇龍而放之菹,水由地中行,江、淮、河、漢是也。險阻既遠,鳥獸之害人者消,然後人得平土而居之。」 「堯、舜既沒,聖人之道衰。暴君代作,壤宮室以為污池,民無所安息;棄田以為園囿,使民不得衣食。邪說暴行又作。園囿污地沛澤多,而禽獸至。及紂之身,天下又大亂。周公相武王,誅紂、伐奄,三年討其君;驅飛廉於海隅而戮之;滅國者五十;驅虎豹犀象而遠之。天下大悅。《書》曰:『丕顯哉文王謨!丕承哉武王烈!佑啟我後人,咸以正無缺。』」 「世衰道微,邪說暴行有作。臣弒其君者有之,子弒其父者有之。孔子懼,作《春秋》。《春秋》,天子之事也。是故孔子曰:『知我者,其惟《春秋》乎!罪我者,其惟《春秋》乎!』」 「聖王不作,諸侯放恣,處士橫議。楊朱、墨翟之言盈天下。天下之言,不歸楊則歸墨。楊氏為我,是無君也。墨氏兼愛,是無父也。無父無君,是禽獸也。公明儀曰:『庖有肥肉,廄有肥馬,民有饑色,野有餓莩,此率獸而食人也。』楊墨之道不息,孔子之道不著,是邪說誣民、充塞仁義也。仁義充塞,則率獸食人,人將相食。吾為此懼,閑先聖之道,距楊墨、放淫辭,邪說者不得作。作於其心,害於其事;作於其事,害於其政。聖人復起,不易吾言矣。」 「昔者禹抑洪水而天下平,周公兼夷狄、驅猛獸而百姓寧,孔子成《春秋》而亂臣賊子懼。《詩》云:『戎狄是膺,荊舒是懲;則莫我敢承。』無父無君,是周公所膺也。我亦欲正人心、息邪說、距詖行、放淫辭,以承三聖者。豈好辯哉?予不得已也。能言距楊墨者,聖人之徒也。」

공도자가 말했다. "바깥 사람들이 다 선생님을 변론 좋아한다 일컫는데, 감히 여쭙건대 어째서입니까?"

맹자가 말했다. "내가 어찌 변론을 좋아하겠는가. 나는 마지못해서다. 천하에 사람이 산 지 오래인데, 한 번 다스려지고 한 번 어지러웠다.

요임금 때에 물이 거슬러 흘러 나라 안에 넘쳤다. 뱀과 용이 거기 살아 백성이 자리 잡을 데가 없었다. 낮은 데 사는 이는 둥지를 틀고 높은 데 사는 이는 굴을 팠다. 《서》에 '강수(洚水)가 나를 깨우쳤다' 하였으니, 강수란 홍수다. 우임금에게 다스리게 하시니, 우임금이 땅을 파서 바다로 대고 뱀과 용을 몰아 늪에 놓으셨다. 물이 땅 가운데로 흐르게 되었으니 양자강·회수·황하·한수가 그것이다. 험하고 막힘이 이미 멀어지고 새와 짐승이 사람을 해치는 일이 사라진 뒤에야 사람이 평지를 얻어 살게 되었다.

요와 순이 돌아가시자 성인의 도가 쇠했다. 포악한 임금이 대를 이어 나와 궁실을 헐어 못을 만드니 백성이 편히 쉴 데가 없었고, 밭을 버려 동산을 만드니 백성이 입고 먹을 것을 얻지 못했다. 삿된 말과 포악한 행실이 또 일어났다. 동산과 못과 늪이 많아지자 새와 짐승이 몰려왔다. 주(紂)의 대에 이르러 천하가 또 크게 어지러웠다.

주공이 무왕을 도와 주를 베고 엄나라를 쳐서 삼 년 만에 그 임금을 토벌하고, 비렴을 바닷가로 몰아 죽이며, 나라 쉰을 없애고, 범과 표범과 무소와 코끼리를 몰아 멀리하시니 천하가 크게 기뻐했다. 《서》에 '크게 빛나도다, 문왕의 꾀여! 크게 이었도다, 무왕의 공렬이여! 우리 뒷사람을 도와 열어 주시니 다 바르고 이지러짐이 없다' 하였다.

세상이 쇠하고 도가 미미해져 삿된 말과 포악한 행실이 또 일어났다. 신하가 제 임금을 죽이는 일이 있고 자식이 제 아비를 죽이는 일이 있었다. 공자께서 두려워하시어 《춘추》를 지으셨다. 《춘추》는 천자의 일이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나를 아는 것도 오직 《춘추》요, 나를 죄주는 것도 오직 《춘추》리라' 하셨다.

성왕이 나오지 않아 제후가 방자하고 벼슬 없는 선비들이 함부로 논한다. 양주와 묵적의 말이 천하에 가득하여, 천하의 말이 양주에게 돌아가지 않으면 묵적에게 돌아간다. 양씨는 나를 위하니 이는 임금이 없는 것이요, 묵씨는 두루 사랑하니 이는 아비가 없는 것이다. 아비가 없고 임금이 없으면 이는 새와 짐승이다.

공명의가 '푸줏간에 살진 고기가 있고 마구간에 살진 말이 있는데 백성에게 굶주린 빛이 있고 들에 굶어 죽은 이가 있다면, 이는 짐승을 몰아 사람을 잡아먹게 하는 것이다' 했다. 양주와 묵적의 도가 그치지 않으면 공자의 도가 드러나지 않으니, 이는 삿된 말이 백성을 속여 인의를 꽉 막는 것이다. 인의가 막히면 짐승을 몰아 사람을 잡아먹게 하고, 사람이 장차 서로 잡아먹게 된다.

내가 이를 두려워하여 앞선 성인의 도를 지키고 양주와 묵적을 막으며 음란한 말을 물리쳐, 삿된 말 하는 이가 일어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 마음에서 일어나면 그 일을 해치고, 그 일에서 일어나면 그 정치를 해친다. 성인이 다시 나오셔도 내 말을 바꾸지 않으시리라.

옛날 우임금이 홍수를 누르시어 천하가 고르게 되었고, 주공이 오랑캐를 아우르고 사나운 짐승을 몰아내시어 백성이 편안해졌으며, 공자께서 《춘추》를 이루시어 어지러운 신하와 도적 같은 자식이 두려워했다. 《시》에 '융과 적을 치고 형과 서를 징계하니 아무도 나를 감히 당하지 못한다' 하였다. 아비가 없고 임금이 없는 것은 주공이 치신 바다.

나 또한 사람의 마음을 바로잡고 삿된 말을 그치게 하며 치우친 행실을 막고 음란한 말을 물리쳐 세 성인을 잇고자 한다. 어찌 변론을 좋아하겠는가. 나는 마지못해서다. 양주와 묵적을 막을 줄 아는 이는 성인의 무리다."

10진중자의 청렴 — 지렁이가 된 뒤에야

匡章曰:「陳仲子豈不誠廉士哉?居於於陵,三日不食,耳無聞,目無見也。井上有李,螬食實者過半矣,匍匐往將食之,三咽,然後耳有聞、目有見。」 孟子曰:「於齊國之士,吾必以仲子為巨擘焉。雖然,仲子惡能廉?充仲子之操,則蚓而後可者也。夫蚓上食槁壤,下飲黃泉。仲子所居之室,伯夷之所筑與?抑亦盜跖之所筑與?所食之粟,伯夷之所樹與?抑亦盜跖之所樹與?是未可知也。」 曰:「是何傷哉?彼身織屨、妻辟纑,以易之也。」 曰:「仲子,齊之世家也。兄戴,蓋祿萬鍾。以兄之祿為不義之祿而不食也,以兄之室為不義之室而不居也,避兄、離母,處於於陵。他日歸,則有饋其兄生鵝者,己頻戚曰:『惡用是鶃鶃者為哉?』他日其母殺是鵝也,與之食之。其兄自外至,曰:『是鶃鶃之肉也。』出而哇之。以母則不食,以妻則食之;以兄之室則弗居,以於陵則居之。是尚為能充其類也乎?若仲子者,蚓而後充其操者也。」 上一篇回目录下一篇

광장이 말했다. "진중자야말로 참으로 청렴한 선비가 아니겠습니까? 오릉에 살면서 사흘을 먹지 못해 귀에 들리는 것이 없고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습니다. 우물가에 자두가 있었는데 굼벵이가 반 넘게 파먹은 것을, 기어가서 집어 먹고 세 번 삼킨 뒤에야 귀에 들리고 눈에 보였습니다."

맹자가 말했다. "제나라 선비 가운데 나는 반드시 중자를 엄지로 꼽는다. 그러나 중자가 어찌 청렴할 수 있으랴. 중자의 지조를 채우자면 지렁이가 된 뒤에야 될 것이다. 무릇 지렁이는 위로는 마른 흙을 먹고 아래로는 누런 샘물을 마신다.

중자가 사는 집은 백이가 지은 것인가, 아니면 도척이 지은 것인가? 먹는 곡식은 백이가 심은 것인가, 아니면 도척이 심은 것인가? 이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이 무슨 흠이 되겠습니까? 그는 손수 신을 삼고 아내는 삼실을 자아 그것으로 바꿉니다."

"중자는 제나라의 세족이다. 형 대(戴)는 개(蓋) 땅의 녹이 만 종이었다. 형의 녹을 의롭지 못한 녹이라 하여 먹지 않고, 형의 집을 의롭지 못한 집이라 하여 살지 않으며, 형을 피하고 어미를 떠나 오릉에 살았다.

뒷날 돌아가니 어떤 이가 그 형에게 산 거위를 보낸 일이 있었다. 그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이 꽥꽥거리는 것을 어디에 쓰려는가' 했다. 뒷날 그 어미가 이 거위를 잡아 함께 먹였다. 그 형이 밖에서 와서 '이것이 그 꽥꽥거리던 것의 고기다' 하니, 나가서 토했다.

어미가 주면 먹지 않고 아내가 주면 먹으며, 형의 집에는 살지 않고 오릉에는 산다. 이러고도 오히려 그 무리를 채울 수 있겠는가? 중자 같은 이는 지렁이가 된 뒤에야 그 지조를 채울 수 있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