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파한집 › 권상

破閑集 卷上

파한집 破閑集 · 이인로(李仁老) · 1220년 무렵 지음 · 1260년 펴냄 · 단락 24 · 한자 4,452자 · 낭독 17.8분

「파한집」 권상 「破閑集 卷上」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고려 문인이 남긴 가장 오래된 시화집. 사서도 경전도 아니고, 사람 사는 이야기다. 시 한 구절을 얻으려 저녁이 다하도록 괴로이 읊던 일, 아내의 시새움을 피해 첩을 소로 바꾼 벗, 청학동을 찾아 지리산에 들었으나 끝내 찾지 못한 일, 부벽루에 올라 두 구절만 얻고 통곡하며 내려온 김황원 — 짧은 조목 일흔여섯이 죽 이어진다. 김유신이 말을 벤 천관사와 최치원이 가야산에서 사라진 이야기도 여기 실렸다.

左諫議大夫秘書監寶文閣學士知制誥李仁老撰

좌간의대부 비서감 보문각학사 지제고 이인로 지음.

晉陽古帝都 溪山勝致爲嶺南第一 有人作其圖獻李相國之氐 帖諸壁以觀之 軍府參謀榮陽與齡往謁 相國指之曰此圖是君桑梓鄕也 宜有一句 操筆立就云 數點靑山枕碧湖 公言此是晉陽圖 水邊艸屋知多少 中有吾廬畵也無 一座服其精敏

진양은 옛 임금의 도읍이라 시내와 산의 빼어남이 영남에서 첫째다. 어떤 이가 그 그림을 그려 이 상국의 집에 바치니 벽에 붙여 두고 보았다.

군부참모 형양 여령이 가서 뵈니 상국이 그림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이 그림은 그대의 고향이다. 마땅히 한 구절이 있어야겠다.」

붓을 잡고 그 자리에서 지었다.

두어 점 푸른 산이 푸른 호수를 베고 누웠는데 공은 이것이 진양 그림이라 하시네 물가의 초가집이 얼마인지 아시는지 그 가운데 내 집도 그려져 있는지

자리에 있던 이들이 다 그 정밀하고 재빠름에 감복하였다.

讀惠弘冷齊夜話 十七八皆其作也 淸婉有出塵之想 恨不得見本集 近有以筠溪集示之者 大率多贈答篇 玩味之 皆不及前詩遠甚 惠弘雖奇才 亦未免瓦注也 古語云 見面不如聞名信矣 因見潘大臨寄謝臨川一句 今爲補之 滿城風雨近重陽 霜葉交飛菊半黃 爲有俗雰來敗矣 惟將一句寄秋光

혜홍의 『냉재야화』를 읽으니 열에 일고여덟이 다 그가 지은 것이다. 맑고 아름다워 티끌 밖으로 벗어난 생각이 있었으므로 그 문집을 얻어 보지 못함을 한스러워하였다.

요사이 『균계집』을 보여 주는 이가 있어 보니 대체로 주고받은 시가 많은데, 음미해 보매 다 앞의 시에 훨씬 미치지 못하였다. 혜홍이 비록 남다른 재주가 있으나 또한 마음이 물건에 매여 솜씨가 흐려짐을 면하지 못하였다. 옛말에 「얼굴을 보는 것이 이름을 듣는 것만 못하다」 하였으니 참으로 그렇다.

반대림이 임천에게 부친 한 구절을 보고 이제 그 나머지를 채운다.

성에 가득한 바람과 비가 중양절에 가까운데 서리 맞은 잎이 어지러이 날고 국화는 반쯤 누렇다 속된 기운이 와서 그르쳐 놓았으므로 오직 한 구절로 가을빛에 부친다

文房四寶 皆儒者所須 唯墨成之最艱 然京師萬寶所聚 求之易得 故人人皆不以爲貴焉 及僕出守孟城 承都督府符 造供御墨五千挺 趂春月首納之 乘遽到孔巖村 驅民採松烟百斛 聚良工躬自督役 彌兩月云畢 凡面目衣裳皆有烟煤之色 移就他所 洗浴良苦然後還城 是後見墨雖一寸 重若千金不敢忽也 因念世人所受用 如剡藤蘄竹蜀錦吳綾 皆類此 古人云憫農詩 誰知盤中飡 粒粒皆辛苦 誠仁者之語也 僕始得孟城作一絶云 稚川腰綬白雲邊 手採丹砂欲學仙 自笑驚蛇餘習在 左符猶管碧松烟

문방사보는 다 선비에게 있어야 할 것인데 오직 먹만이 만들기가 가장 어렵다. 그러나 서울은 온갖 보배가 모이는 곳이라 구하면 쉽게 얻으므로 사람마다 다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내가 맹성에 나가 지키게 되어 도독부의 공문을 받았는데, 임금께 바칠 먹 오천 자루를 만들어 봄 첫달에 대어 바치라는 것이었다. 서둘러 공암촌에 이르러 백성을 몰아 소나무 그을음 백 섬을 캐고, 좋은 장인을 모아 몸소 일을 감독하여 두 달이 지나서야 마쳤다. 얼굴과 옷에 다 그을음 빛이 들어, 다른 곳으로 옮겨 몹시 괴롭게 씻은 뒤에야 성으로 돌아왔다. 이 뒤로는 먹을 보면 비록 한 치라도 천금같이 무겁게 여겨 감히 함부로 하지 못하였다.

이로 인해 생각하니 세상 사람이 받아 쓰는 것 — 섬계의 종이, 기주의 대, 촉의 비단, 오의 능라 — 이 다 이와 같다. 옛사람이 농사를 딱하게 여긴 시에 이르기를 「누가 알랴 소반 위의 밥이 낟알마다 다 괴로움인 것을」 하였으니 참으로 어진 이의 말이다.

내가 처음 맹성을 얻고 절구 한 수를 지었다.

치천이 인끈을 허리에 차고 흰 구름 가에서 손수 단사를 캐어 신선을 배우려 하였네 스스로 웃노니 놀란 뱀 같은 글씨 버릇이 남아 왼쪽 부절로 아직도 푸른 솔 그을음을 맡는구나

鷄林人金生用筆如神 非草非行 迴出五十七種諸家體勢 本朝華嚴大士景赫 樞府金公立之 以草擅名 然未免仲翼周越之俗氣 毅王末年 大金使人蓋益 筆勢奇逸 淸河崔讜購得之 常掛壁以賞之 有人借觀 留其眞迹 而影寫還之 學士誦東山詩 畵地爲餠未必似 要令癡兒出饞水 笑而不問 僕聞之戱爲絶句 子雲春蚓謾成行 醉素驚蛇去渺茫 夢覺不知誰得鹿 路多空嘆竟亡羊

계림 사람 김생은 붓 쓰기가 신과 같아 초서도 아니고 행서도 아니면서 여러 집안의 쉰일곱 가지 서체를 훌쩍 벗어났다. 본조의 화엄대사 경혁과 추부 김공 입지가 초서로 이름을 떨쳤으나 중익과 주월의 속된 기운을 면하지 못하였다.

의왕 말년에 대금의 사신 개익이 붓의 기세가 기이하고 빼어났으므로 청하 최당이 사서 얻어 늘 벽에 걸고 감상하였다. 어떤 이가 빌려 보고는 그 진적을 두고 베껴 그린 것을 돌려주었다. 학사가 동파의 시 「땅에 떡을 그려도 반드시 닮지는 않으나 어리석은 아이의 침을 흘리게는 한다」를 외우고 웃으며 묻지 않았다.

내가 이를 듣고 장난삼아 절구를 지었다.

자운의 봄 지렁이는 부질없이 줄만 이루었고 취한 회소의 놀란 뱀은 아득히 가 버렸네 꿈을 깨고도 누가 사슴을 얻었는지 알지 못하니 길이 많아 부질없이 양 잃음을 탄식하네

恒陽子眞出倅關東 夫人閔氏悍妬無比 有女隸頗姿色 勿令近之 子眞曰此甚易耳 乃與邑人換牛蓄之 僕聞之戱成一絶 湖上鶯飛杳不還 江皐佩冷欲尋難 園桃巷柳今何在 只有欄邊黑牧丹 然道阻不得附郵筒 其後二十餘年 子眞新僦屋紅桃井里 與僕連墻接巷旦夕相從 請觀僕詩藁 以一

항양 자진이 관동에 원으로 나갔는데 부인 민씨가 사납고 시새움이 견줄 데 없었다. 계집종 하나가 자못 자색이 있으므로 가까이하지 못하게 하였다. 자진이 말하였다.

「이는 몹시 쉬운 일이다.」

이에 고을 사람과 소로 바꾸어 길렀다. 내가 이를 듣고 장난삼아 절구 하나를 지었다.

호수 위의 꾀꼬리는 날아가 아득히 돌아오지 않고 강 언덕의 패옥은 차가워 찾기 어렵네 동산의 복사꽃과 거리의 버들은 이제 어디 있는가 다만 난간 가에 검은 모란이 있을 뿐

그러나 길이 막혀 우편에 부치지 못하였다. 그 뒤 스무 해 남짓 지나 자진이 홍도정 마을에 새로 집을 세내어 나와 담을 잇대고 골목을 맞대어 아침저녁으로 서로 좇았는데, 내 시고를 보기를 청하였다.

通出示之 讀之半有題云 聞友人爲郡君所迫 以妾換牛 子眞愕然 徐曰是誰耶 僕笑曰公是已 子眞曰有是哉 然閨閫間一時戱耳 雖勿嘲評可也 不如是何以助先生萬古詩名 閔氏先子眞死 鰥居八載猶不邇色 可謂篤行君子

한 통을 내어 보였다. 읽다가 반쯤에 이르러 「벗이 아내에게 몰려 첩을 소로 바꾼 일을 듣고」라는 제목이 있었다. 자진이 깜짝 놀라 천천히 말하였다.

「이는 누구인가?」

내가 웃으며 말하였다.

「공이 바로 그 사람이다.」

자진이 말하였다.

「그런 일이 있었던가. 그러나 안방 사이의 한때 장난일 뿐이니 조롱하여 논평하지 않았어도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지 않으면 무엇으로 선생의 만고에 남을 시 이름을 돕겠는가.」

민씨가 자진보다 먼저 죽었는데 홀아비로 여덟 해를 살면서도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았으니 행실이 도타운 군자라 할 만하다.

黃壯元彬然 中秋直玉堂 長空無雲 月華如晝 作詩示同局吳公世文 季孟中間朔 炎凉一樣天 春宵何闃寂

황장원 빈연이 한가위에 옥당에 숙직하였다. 긴 하늘에 구름이 없고 달빛이 낮 같으므로 시를 지어 같은 관서의 오세문 공에게 보였다.

계월과 맹월 그 사이의 달이라 덥고 서늘함이 한결같은 하늘인데 봄밤은 어찌 그리 고요하고

秋夕獨喧闐 月色應同爾 人心所使然 知君能決事此景果誰先 玩味之深有理趣 不見和篇 今用其意答之 月輪當一歲十有二回圓 底事秋將半 流天影自偏 金風收掩翳 玉露洗嬋硏故與春宵異 憑詩子細傳

가을 저녁은 홀로 시끌벅적한가 달빛은 마땅히 너와 같을 터인데 사람의 마음이 시키는 바이리라 그대가 일을 잘 결단함을 아노니 이 경치는 과연 어느 쪽이 나은가

음미해 보니 깊이 이치와 정취가 있었다. 화답한 편을 보지 못하였으므로 이제 그 뜻을 써서 답한다.

달바퀴는 한 해에 열두 번 둥그는데 무슨 일로 가을이 반에 이르면 하늘에 흐르는 그림자가 절로 치우치는가 금빛 바람이 가림을 거두고 옥 이슬이 곱고 아름다움을 씻으니 짐짓 봄밤과 다르구나 시에 부쳐 자세히 전한다

湍州北仰岩寺 距皇都不遠 山奇水異窅然有幽奇之致 僕與隴西湛之嘗讀書於此 每日暮憑欄縱目 漁火明滅 雲沆烟澹 茅茨聯屬 如在武陵源上 將還 主老挽裾請留 一字勤懇 因題壁上云 前壓滄波後翠岩 蕭蕭蘆葦半松杉 謝公遊興唯雙屐 張翰歸心滿一帆 只要緱山鞭皓鶴 不須湓浦泣靑衫 十洲三島遊遨遍 自愧飄然骨換凡 其後二十年 子眞出按 南州 倦行入憩於是寺 其詩壁半毁 塵侵苔蝕 幾不可讀字 謂傍人 雖不以杪籠護之 不加堊焉幸矣 卽設詩板親自跋之 囑三剛勿令墮失

단주 북쪽 앙암사는 서울에서 멀지 않은데 산이 기이하고 물이 남달라 그윽하고 기이한 정취가 아득하다. 내가 농서 담지와 일찍이 여기서 글을 읽었다. 날마다 저물면 난간에 기대어 눈길을 놓았는데, 고기잡이 불이 밝았다 스러지고 구름이 뜨고 연기가 담담하며 띠집이 잇달아, 마치 무릉도원 위에 있는 듯하였다.

돌아가려 하매 절 주인 노인이 옷자락을 붙들고 한 글자라도 남기기를 간곡히 청하므로 벽에 적었다.

앞으로는 푸른 물결을 누르고 뒤로는 푸른 바위라 쓸쓸한 갈대에 반은 소나무와 삼나무 사영운의 노는 흥은 오직 나막신 한 켤레요 장한의 돌아갈 마음은 돛 하나에 가득하다 다만 구산에서 흰 학을 채찍질하려 할 뿐 분포에서 푸른 적삼 적실 일은 없다 열 대륙 세 섬을 두루 노닐었으니 스스로 부끄럽구나 표연히 뼈가 범상함을 바꾼 것이

그 뒤 스무 해에 자진이 남쪽 고을을 살피러 나갔다가 다니기에 지쳐 이 절에 들어와 쉬었다. 그 시를 적은 벽이 반쯤 무너지고 먼지가 끼고 이끼가 먹어 글자를 거의 읽을 수 없었다. 곁의 사람에게 이르기를 「비록 발로 덮어 지키지는 못하였더라도 흰 흙을 바르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다」 하고, 곧 시판을 만들어 몸소 발문을 짓고 절의 세 소임에게 부탁하여 떨어뜨려 잃지 않게 하였다.

原宵黼座前 設縫紗燈籠 命翰林院製燈籠詩進呈 使工人用金薄剪字帖之 皆賦元宵景致 明王時 僕入侍玉堂 卽製進云 風細不敎金嬧落 更長漸見玉虫生 須知一片丹心在 欲助重瞳日月明 上大加稱賞 是後皆詠燈 自僕始

대보름 임금의 자리 앞에 꿰맨 사등롱을 걸고 한림원에 등롱시를 지어 올리게 하고는, 장인을 시켜 금박을 오려 글자를 붙이게 하였는데 다 대보름 경치를 읊었다.

명왕 때 내가 옥당에 들어가 모시면서 곧 지어 올렸다.

바람이 가늘어 금빛 꽃을 지지 않게 하고 밤이 길어 차츰 옥 벌레가 생김을 본다 모름지기 알라 한 조각 붉은 마음이 있어 두 눈동자의 해와 달 같은 밝음을 도우려 함을

임금께서 크게 칭찬하셨다. 이 뒤로 다 등을 읊었으니 나로부터 비롯되었다.

昔仁王初 許平章洪材 以金榜首入侍玉堂 毅王卽祚 劉公羲 黃公彬然 相繼而入 明王在宥 李公純祐先鳴 僕以不才繼之於後 近有金公君綏 亦踵僕而入焉 僕以一絶賀之 十載含毫演帝綸 多君繼入玉堂春 如今始識花磚貴 共是龍門第一人

옛날 인왕 초에 허평장 홍재가 과거의 장원으로 옥당에 들어가 모셨고, 의왕이 자리에 오르매 유공 희와 황공 빈연이 잇달아 들어갔으며, 명왕이 다스릴 때 이공 순우가 먼저 울리고 내가 재주 없이 그 뒤를 이었다. 요사이 김공 군수가 또한 내 뒤를 밟아 들어갔으므로 내가 절구 하나로 축하하였다.

열 해를 붓을 물고 임금의 말씀을 폈는데 갸륵하다 그대가 이어 옥당의 봄에 드는구나 이제야 비로소 꽃벽돌의 귀함을 아니 다 함께 용문의 첫째 사람일세

樞府金立之 詞翰外尤工墨君 嘗以湘岸兩叢 獻大宗伯崔相國 作一絶謝之 先帝當年稱活竹 幾回相憶謾含情 兩叢忽向西軒立 只恐根株發地生 金壯元君綏卽其子也 得其家法甚妙 僕往與君綏同在察院 院中有素屛一張 諸公請寫一枝使僕跋之 卽題云 雪堂居士以詩鳴 墨戱風流亦寫生 遙想江南文笑笑 應分一派寄彭城

추부 김입지는 글과 글씨 밖에 먹으로 그린 대에 더욱 뛰어났다. 일찍이 상수 언덕의 두 떨기를 대종백 최상국에게 바치며 절구 하나를 지어 사례하였다.

앞선 임금께서 그해에 살아 있는 대라 일컬으시니 몇 번이나 서로 그리워 부질없이 정을 머금었던가 두 떨기가 문득 서헌을 향해 섰으니 다만 뿌리가 땅에서 돋을까 두렵다

김장원 군수가 곧 그 아들이다. 그 집안의 법을 얻어 몹시 오묘하였다. 내가 지난날 군수와 함께 사원에 있었는데 원 안에 흰 병풍 한 벌이 있었다. 여러 공이 한 가지를 그리게 하고 내게 발문을 짓게 하므로 곧 적었다.

설당거사는 시로 울렸고 먹 장난의 풍류 또한 산 것을 그렸네 아득히 강남의 문소소를 생각하니 마땅히 한 갈래를 나누어 팽성에 부치리

碧蘿老人 嘗以睡居士所畵墨竹小屛贈僕 題白傳詩一句於後云 管領好風烟 欺凌凡草木 筆跡尤奇妙 僕嘗學之 遇紙素屛幛無不揮灑 自以謂得其髣髴 故作詩云 餘波猶及碧琅玕 自恐前身文笑笑 然僕誠不工 僅得形似耳 堂兄千林堂頭 以紙屛求之 僕伹寫一枝 橫愕四幅 而不及葉 有一畵史見之曰 此枝節非庸流所能 有東山墨戱風骨 迴安八九葉於其間 便有蕭然氣勢 昔播岳得樂廣之旨 緝成名筆 鄭國之令東里 猶潤色之 今視竹也 亦彫啄之餘盤薄之巧 相資而成 脗然若出於鐪錘之一手 可謂凝神矣 有讚之者曰 乾坤一氣 胡越同心 衆妙之極 無跡可尋 僕嘗於貴家壁上 見草書二簇 烟薰屋漏 形色頗奇古 其詩云 紅葉題詩出鳳城 淚痕和墨尙分明 御遘流水渾無賴 漏洩宮娥一片情 座客皆聚首僕手痕也 客愕然曰 殘慊敗素寒 具留痕 似非近古物 僕曰佌僕詠史詩中一篇也 僕非自作 未嘗筆作草

벽라노인이 일찍이 수거사가 그린 묵죽 작은 병풍을 내게 주면서 백낙천의 시 한 구절을 뒤에 적었다. 「좋은 바람과 연기를 거느리고 뭇 풀과 나무를 업신여긴다.」 붓 자취가 더욱 기이하고 오묘하였다.

내가 일찍이 이를 배워 종이든 흰 병풍이든 휘둘러 그리지 않은 데가 없었고 스스로 그 비슷함을 얻었다 여겼으므로 시를 지었다. 「남은 물결이 오히려 푸른 옥돌에 미치니 스스로 두렵구나 앞의 몸이 문소소였을까.」 그러나 나는 참으로 잘하지 못하여 겨우 모양이 닮았을 뿐이다.

사촌형 천림당두가 종이 병풍에 그려 주기를 청하므로 내가 다만 한 가지를 그렸는데, 넉 폭에 비스듬히 뻗었으나 잎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한 화사가 보고 말하였다.

「이 가지의 마디는 예사 무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동파의 먹 장난의 골격이 있다.」

그러고는 여덟아홉 잎을 그 사이에 안치니 문득 쓸쓸한 기세가 생겼다.

옛날 반악이 악광의 뜻을 얻어 이름난 글을 얽었고, 정나라의 사령을 동리 자산이 오히려 윤색하였다. 이제 이 대를 보니 또한 새기고 쪼는 나머지와 넓게 펴는 솜씨가 서로 도와 이루어져, 마치 한 손의 화로와 망치에서 나온 듯 감쪽같으니 정신이 엉겼다 할 만하다. 기리는 이가 있어 말하였다. 「하늘과 땅이 한 기운이요 호와 월이 마음을 같이하니, 뭇 오묘함의 지극함이라 자취를 찾을 데가 없다.」

내가 일찍이 귀한 집 벽 위에서 초서 두 폭을 보았는데 연기에 그을리고 지붕이 새어 모양과 빛이 자못 기이하고 예스러웠다. 그 시에 이르렀다.

붉은 잎에 시를 적어 봉성을 나가니 눈물 자국이 먹과 어울려 아직도 뚜렷하다 어구의 흐르는 물이 도무지 무뢰하여 궁녀의 한 조각 정을 새어 나가게 하였네

자리의 손들이 다 머리를 모았다. 내 손자취였다. 손이 놀라 말하였다.

「해진 비단이 차갑고 자취만 남았으니 요사이 물건이 아닌 듯합니다.」

내가 말하였다.

「이는 내가 역사를 읊은 시 가운데 한 편이다. 내가 스스로 지은 것이 아니요 일찍이 붓으로 초서를 쓴 적도 없다.」

天水亦樂 將梁州倅 僕與子眞 冒曉到天壽寺門輚之 亦樂爲友人所牽挽 日午尙未到 二人者緩步訪一僧舍闃然無人 僕偶以淡墨題板鼻云 待客客未到 尋僧僧亦無 唯餘林外鳥 疑曲勸提壺 其後二十餘年 於子眞家見一僧 道貌魁然不凡 緝僕曰 曾蒙寵示佳篇 姑此奉謝 僕惘然不測 僧誦此詩云 我是當時主院者也 相與大噱 遂附家集云

천수 역락이 양주의 원이 되어 가려 하매 나와 자진이 새벽을 무릅쓰고 천수사 문에 이르러 전송하려 하였다. 역락이 벗에게 끌려 한낮이 되도록 오지 않았다. 두 사람이 느린 걸음으로 한 승방을 찾으니 고요히 사람이 없었다. 내가 우연히 옅은 먹으로 판자 머리에 적었다.

손을 기다리나 손은 오지 않고 중을 찾으나 중도 없다 오직 숲 밖의 새만 남아 술병 들라 권하는 듯하구나

그 뒤 스무 해 남짓 지나 자진의 집에서 한 중을 보았는데 도인의 모습이 크고 범상치 않았다. 나를 붙들고 말하였다.

「일찍이 좋은 글을 보여 주심을 입었으므로 이에 삼가 사례합니다.」

내가 멍하니 헤아리지 못하니 중이 이 시를 외우고 말하였다.

「제가 그때의 절 주인입니다.」

서로 크게 웃었다. 마침내 집안 문집에 붙인다.

智異山或名頭留 始自北朝白頭山而起 花峯蕈谷緜緜聯聯 至帶方郡 磻結數千里 環而居者十餘州 歷旬月可窮其際畔 古老相傳云 其間有靑鶴洞 路甚狹襝通人行 俯伏經數里許 乃得虛曠之境 四隅皆良田沃壤宣播植 唯靑鶴樓息其中 故以名焉 盍古之遁世者所居 頹垣壤蹔猶在荊棘之墟 昔僕與堂兄崔相國 有拂衣長往之意 乃相約尋此洞 將以竹籠盛牛犢兩三以入 則可以與世俗不相聞矣 遂自華嚴寺至花開縣 便宿神興寺 所過無非仙境 千嚴競秀 萬壑爭流 竹籬茅舍 桃杏掩映 殆非人間世也 而所謂靑鶴洞者 卒不得尋焉 因留詩嚴石云 頭留山迴暮雲低 萬壑千巖似會稽 策杖欲尋靑鶴洞 隔林空聽白猿啼 樓臺標緲三山遠 苔蘚微茫四字題 試問仙源何處是 落花流水使人迷 昨在書樓偶閱五柳先生集有桃源記 反復視之 盖秦人厭亂 携妻子幽深險僻之境 山迴水複樵蘇不可得到者以居之 及晉太元中 漁者幸一至 鮿忘其途不得復尋耳 後世丹靑以圖之 歌詠以傳之 莫不以桃源爲仙界 羽車飇輪長生久視者所都 盖讀其記未熟耳實與靑鶴洞無異 安得有高尙之士如劉子者 一往尋焉

지리산은 두류라고도 한다. 북조의 백두산에서 비롯하여 일어나 꽃봉우리와 버섯 골짜기가 이어지고 잇달아 대방군에 이르러 서리고 맺힌 것이 수천 리다. 둘러 사는 이가 열 고을 남짓이라 열흘이나 한 달을 지나야 그 가장자리를 다할 수 있다.

옛 노인이 서로 전하여 말하였다.

「그 사이에 청학동이 있는데 길이 몹시 좁아 겨우 사람이 다닐 만하다. 엎드려 몇 리쯤 지나면 넓게 트인 지경을 얻는다. 네 모퉁이가 다 좋은 밭과 기름진 흙이라 뿌리고 심기에 마땅하다. 오직 푸른 학만이 그 가운데 깃들므로 그로써 이름하였다. 대개 옛날 세상을 등진 이가 살던 곳이라 무너진 담과 허물어진 터가 아직 가시덤불 사이에 있다.」

옛날 내가 사촌형 최상국과 옷을 떨치고 멀리 가려는 뜻이 있어 서로 약속하여 이 골짜기를 찾되, 대바구니에 송아지 두세 마리를 담아 들어가면 세속과 서로 들리지 않으리라 하였다. 마침내 화엄사에서 화개현에 이르러 신흥사에 묵었다. 지나는 곳마다 신선 지경 아닌 데가 없어 천 바위가 다투어 빼어나고 만 골짜기가 다투어 흘렀으며, 대울타리와 띠집에 복사꽃 살구꽃이 어리비쳐 거의 인간 세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른바 청학동이라는 곳은 끝내 찾지 못하였다. 이에 바위에 시를 남겼다.

두류산은 아득하고 저녁 구름은 낮은데 만 골짜기 천 바위가 회계와 같구나 지팡이를 짚고 청학동을 찾으려 하나 숲 너머로 부질없이 흰 잔나비 울음만 듣는다 누대는 아스라하고 삼신산은 먼데 이끼는 희미하여 네 글자가 적혀 있다 묻노니 신선의 근원은 어디인가 지는 꽃 흐르는 물이 사람을 헤매게 한다

어제 서루에서 우연히 오류선생집을 펴 「도원기」를 보고 되풀이하여 살폈다. 대개 진(秦)나라 사람이 어지러움을 싫어하여 처자를 이끌고 깊고 험한 지경으로 들어가, 산이 돌고 물이 겹쳐 나무꾼도 이를 수 없는 곳에 자리 잡고 산 것이다. 진(晉) 태원 연간에 이르러 고기잡이가 다행히 한 번 이르렀으나 문득 그 길을 잊어 다시 찾지 못하였을 뿐이다.

뒷세상이 그림으로 그리고 노래로 전하며 도원을 신선 세계라 하지 않는 이가 없어, 깃 수레와 회오리 바퀴로 길이 살고 늙지 않는 이들이 도읍한 곳이라 한다. 대개 그 기록을 익히 읽지 못한 것일 뿐 실은 청학동과 다르지 않다. 어찌하면 유자기 같은 높고 뜻 있는 선비를 얻어 한번 가서 찾아볼 수 있을까.

門生之於宗伯也 以文章被鑑識 特達於靑雲 古人所謂期牙相遇 是以位雖至鈞衡 猶居子阯行 不敢與之抗禮 昔後唐斐魄在同光中 三知貢擧 門生馬聣孫掌試 引新榜諸生往謁 作一絶云 三主禮闡年八十 門生門下見門生 本朝光王時 始以詩賦取士 然未嘗有宗伯得見門生掌選者 至明王初 學士韓彦國 率門生謁崔相國惟淸 亦作詩云 綴行相訪我何榮 喜見門生門下生 此雖據斐公舊例 聞者皆以謂盛集 今上踐昨八年 趙司成冲 亦引門生詣任相國濡第陳謝 而公以冡宰尙在中書 古今所未有 奇哉 作詩以記卓異 十年黃閣佐昇平 三闢春闈獨繵盟 國士從來酬國士 門生今復得門生 風雲變化混棚擊 布葛繽紛鶘魯明 金掖一盃公萬壽 玉笙宣明喜遷鶯

문생이 종백을 대함은 글로 알아봄을 입어 특별히 청운에 오른 것이니, 옛사람이 이른바 백아와 종자기가 서로 만난 것이다. 그러므로 자리가 비록 정승에 이르러도 오히려 자제의 줄에 있어 감히 맞서 예를 하지 못한다.

옛날 후당의 배호가 동광 연간에 세 번 과거를 맡았는데, 문생 마예손이 시험을 맡아 새로 뽑힌 여러 선비를 이끌고 가서 뵈니 절구 하나를 지었다.

세 번 예위를 주관하고 나이 여든에 문생의 문하에서 문생을 보는구나

본조 광왕 때 비로소 시와 부로 선비를 뽑았으나, 종백이 문생이 시험 맡은 것을 본 일은 일찍이 없었다. 명왕 초에 이르러 학사 한언국이 문생을 이끌고 최상국 유청을 뵈면서 또한 시를 지었다.

줄지어 찾아뵈니 내가 어찌 이리 영화로운가 기쁘구나 문생의 문하생을 보다니

이는 비록 배공의 옛 예를 따른 것이나 듣는 이가 다 성대한 모임이라 하였다.

지금 임금께서 자리에 오르신 여덟 해에 조사성 충이 또한 문생을 이끌고 임상국 유의 집에 나아가 사례하였는데, 공이 총재로 아직 중서에 있었으니 예나 지금이나 있지 않던 일이다. 기이하도다. 시를 지어 그 뛰어남을 적는다.

열 해를 황각에서 태평을 도우시고 세 번 봄 과거를 열어 홀로 맹세를 이으셨네 국사는 예로부터 국사에게 갚는 법 문생이 이제 다시 문생을 얻었구나 바람과 구름이 변화하여 시렁이 뒤섞여 부딪치고 베옷과 갈옷이 어지러이 노나라를 밝힌다 금액의 한 잔으로 공의 만수를 비오니 옥생이 밝게 울려 꾀꼬리 옮음을 기뻐하네

回文詩起齊梁 盖文字中戱耳 昔竇稻妻織錦之後 杼袖猶存 而宋三賢亦皆工焉 南徐集中所載盤中禮 雖連環讀之可以分四十首 其韻尙諧 然血脈不相聯 本朝學士李知深 感秋作雙酌回文詩頗工 散暑知秋旱 悠悠稍感傷 亂松靑盖倒 流水碧蘿長 岑遠凝烟皜 樓高散吹涼 半天明月好 幽室照輝光 僕亦効其體獻時宰云 早學九遊宦 詩成謾苦辛 老懷春𠡐亂 衰鬢曉霜新 倒甑朝炊斷 饑腸夜孔藩 報恩心欸欸 誰是救枯鱗 夫回文者 順讀則和易 而逆讀之亦無聲牙艱澁之態 語意俱妙 然後謂之工

회문시는 제나라와 양나라에서 일어났으니 대개 글자 가운데의 장난이다. 옛날 두도의 아내가 비단을 짠 뒤로 북과 소매가 아직 남았고, 송나라의 세 어진 이도 다 이에 뛰어났다. 남서집에 실린 반중례는 비록 고리처럼 이어 읽어 마흔 수로 나눌 수 있고 그 운도 오히려 어울리나 혈맥이 서로 이어지지 않는다.

본조 학사 이지심이 가을을 느껴 지은 쌍작 회문시가 자못 잘되었다.

더위가 흩어져 가을이 이른 줄 아니 아득히 조금 느껍고 서글프다 어지러운 솔은 푸른 일산을 거꾸로 세웠고 흐르는 물엔 푸른 넝쿨이 길다 먼 봉우리엔 연기가 엉겨 희고 높은 다락엔 서늘한 바람이 흩어진다 하늘 반쯤에 밝은 달이 좋아 그윽한 방을 비추어 빛난다

나도 그 체를 본떠 그때의 재상에게 바쳤다.

일찍 배워 아홉 해를 벼슬에 노닐었으나 시를 이루느라 부질없이 괴로웠네 늙은 회포는 봄이 저물어 어지럽고 쇠한 살쩍은 새벽 서리에 새롭다 시루를 엎어 아침 밥짓기가 끊어지고 주린 창자는 밤에 더욱 요란하다 은혜 갚을 마음은 간절하나 누가 마른 물고기를 건져 줄 것인가

무릇 회문이란 바로 읽으면 어울려 쉽고 거꾸로 읽어도 껄끄럽고 막히는 모습이 없어, 말과 뜻이 다 오묘한 뒤에야 잘되었다 이른다.

菊有品揮至多 誰不可數 須以黃爲正色 故古人云 五色中偏貴 千花後獨尊 昨詣崔齺府第 後庭黃花正盛 金色奪目 公指之曰遲公欲煩一吟 今已晩更卜他日 酒數酌而出 偶於馬上得長句 將以獻之 漢池瑞鴣禔初刷 洛妃歸去塵生襪 須知仙格老不枯 蕭蕭金風入花骨 餘姸挽得三春回 詩人喜見一枝折 泛泛金觴待後期 侯家不怕氷霜冽

국화는 품종이 지극히 많아 누구도 다 셀 수 없으나 모름지기 누런빛을 바른 빛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옛사람이 「다섯 빛깔 가운데 치우쳐 귀하고 온갖 꽃 뒤에 홀로 높다」 하였다.

어제 최추부의 집에 나아가니 뒤뜰에 누런 꽃이 한창이라 금빛이 눈을 빼앗았다. 공이 가리키며 말하였다.

「더디구나. 공에게 한 번 읊어 주기를 번거로이 청하오.」

이미 늦었으므로 다시 다른 날로 미루고 술 두어 잔을 마시고 나왔다. 우연히 말 위에서 긴 구절을 얻었으므로 장차 바치려 한다.

한나라 못의 상서로운 오리가 처음 깃을 씻고 낙수의 여신이 돌아가 버선에 티끌이 인다 모름지기 알라 신선의 격은 늙어도 마르지 않아 쓸쓸한 금빛 바람이 꽃뼈에 든다 남은 고움을 끌어 세 봄을 돌이키니 시인이 한 가지 꺾음을 기뻐 본다 넘실넘실 금잔으로 뒷 기약을 기다리니 제후의 집은 얼음 서리 매움을 두려워 않는다

睿王天性好學尊尙儒雅 特開靑宴閣 日與學士討論墳典 嘗御莏樓 前有木芍藥盛開 命禁署諸儒 刻燭賦七言六韻詩 東宮寮佐安寶麟爲之魁隨科級恩列尤厚 時康先生日用 詩名動天下 上心佇觀其作 燭垂盡欃得一聯 袖其紙伏御褠中 上命小黃門遽取之 題云 頭白醉翁看殿後 眼明儒老倚欄邊 其用事精妙如此 上歎賞不已曰此古人所謂 臼頭花鈿滿面 不若西施半粧 慰諭遣之 今擬補亡一朶桃紅直萬錢 輕陰正値養花天 仙粧不借臙脂染 春信先憑羯鼓傳 楚俗芳辰臨百五 漢宮新寵冠三千 朝因日照先廻醉 夜怕風寒不肯眠 頭白云云 燭華漸盡吟彌苦 擷得餘姸入一聯 詩之巧拙不在於遲速先後 然唱者在前 和之者 常在於後 唱者 優遊閑暇 而無所迫 和之者 未免牽强墮險 是以繼人之韻 雖名才往往有所不及 理固然矣 楚老見眉山賦雪叉字韻詩 愛其能用韻也 先作一篇和之 其心猶未快 復以五篇繼之 雖用事愈奇 吐詞愈險 欲以奇險壓之 然未免如前之累 兵法曰 寧我迫人 無人迫我 信哉 今朝登書樓雪始霽 因憶兩老詩 和成二篇 僕亦未免於牽强 觀者宜恕之 千林欲瞑己棲鴉 燦燦明珠尙照車 仙骨共驚如處子 春風無計管狂花 聲迷細雨鳴窓紙 寒引羈愁到酒家 萬里都盧銀作界 渾敎路口沒三叉 霽色稜稜欲曉鴉 雷聲陣陣逐香車 寒侵綠酒難生暈 威逼紅燈未放花 一棹去時知客興 孤烟起處認山家 閉門高臥無人到 留得銅錢任畵叉

예왕은 타고난 성품이 배우기를 좋아하고 유아함을 높여 특별히 청연각을 열고 날마다 학사와 옛 전적을 따져 논하였다.

일찍이 사루에 나아갔는데 앞에 목작약이 한창 피었으므로, 금서의 여러 선비에게 명하여 촛불에 금을 그어 놓고 칠언 여섯 운의 시를 짓게 하였다. 동궁요좌 안보린이 으뜸이 되어 등급을 따라 은혜로운 벌임이 더욱 두터웠다.

그때 강선생 일용은 시 이름이 천하를 움직였으므로 임금의 마음이 그의 지음을 보려고 기다렸다. 촛불이 다하려 할 즈음에 겨우 한 연을 얻어 그 종이를 소매에 넣고 임금의 자리 가운데 엎드렸다. 임금께서 작은 내시에게 명하여 급히 가져오게 하니 이렇게 적혀 있었다.

머리 흰 취한 늙은이가 전각 뒤를 보고 눈 밝은 선비 노인이 난간 가에 기댔다

그 일 씀의 정밀하고 오묘함이 이와 같았다. 임금께서 탄식하고 감상하기를 그치지 않으며 말씀하셨다.

「이것이 옛사람이 이른바 『절구통 머리에 꽃비녀가 얼굴에 가득한 것이 서시가 반쯤 단장한 것만 못하다』 함이다.」

위로하여 보내셨다. 이제 그 빠진 데를 채워 본다.

한 떨기 복사꽃 붉음이 만 전에 값하니 옅은 그늘이 바로 꽃 기르는 하늘을 만났다 신선의 단장은 연지를 빌려 물들이지 않고 봄소식은 먼저 갈고에 기대어 전한다 초나라 풍속의 꽃다운 때는 백닷새에 임하고 한나라 궁궐의 새 총애는 삼천에 으뜸이라 아침엔 해가 비쳐 먼저 취기가 돌고 밤엔 바람이 차가울까 두려워 잠들려 하지 않는다 (머리 흰 …… 난간 가에 기댔다) 촛불 빛이 차츰 다하매 읊기가 더욱 괴로워 남은 고움을 따서 한 연에 넣었네

시의 잘되고 못됨은 더디고 빠름, 앞서고 뒤섬에 있지 않다. 그러나 부르는 이가 앞에 있고 화답하는 이는 늘 뒤에 있다. 부르는 이는 넉넉하고 한가하여 다그침이 없고, 화답하는 이는 억지로 끌려 험한 데 떨어짐을 면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남의 운을 잇는 것은 비록 이름난 재주라도 이따금 미치지 못하는 바가 있으니 이치가 참으로 그러하다.

초로가 미산의 「눈」 차자운 시를 보고 그 운을 잘 쓴 것을 사랑하여 먼저 한 편을 지어 화답하였으나, 그 마음이 오히려 시원하지 않아 다시 다섯 편으로 이었다. 비록 일 씀이 더욱 기이하고 말을 토함이 더욱 험하여 기이하고 험함으로 누르려 하였으나 앞과 같은 누를 면하지 못하였다. 병법에 「차라리 내가 남을 다그칠지언정 남이 나를 다그치게 하지 말라」 하였으니 참으로 그렇다.

오늘 아침 서루에 오르니 눈이 비로소 개었다. 이로 인해 두 노인의 시를 생각하여 화답해 두 편을 이루었다. 나 또한 억지로 끌림을 면하지 못하였으니 보는 이는 마땅히 용서하라.

천 숲이 저물려 하매 까마귀는 이미 깃들고 찬란한 밝은 구슬이 아직 수레를 비춘다 신선의 뼈가 함께 놀라니 처자와 같고 봄바람은 미친 꽃을 다스릴 길이 없다 소리는 가랑비에 헤매어 창호지를 울리고 추위는 나그네 시름을 끌어 술집에 이른다 만 리가 온통 은으로 지경을 이루니 온통 길목마다 세 갈래를 없앴구나

갠 빛이 서슬 있어 새벽 까마귀를 부르려 하고 우렛소리 진진하여 향기로운 수레를 좇는다 추위가 푸른 술에 스며 취기 돌기 어렵고 위엄이 붉은 등을 다그쳐 꽃을 피우지 못하게 한다 노 저어 갈 때 나그네 흥을 알겠고 외로운 연기 이는 곳에 산집을 알아본다 문 닫고 높이 누워 오는 이 없으니 구리 돈을 남겨 두어 그림 갈퀴에 맡긴다

毅王初 靑郊驛吏養一靑牛 狀貌特異 獻諸朝 上命近署詞臣賦詩占韻 而韻險峭 莫不有難色 東館金孝純爲第一 玉堂愼應龍次之 金云鳳慚覽德來巢閣 馬愧儲精上應房 愼云 叩角昔嗟逢寗子 釁鍾今免過齊堂 上讀之數四曰 使事雖工 而語頗涉不恭 故以爲亞 因賜上尊酒 疋帛各有差 而西河林宗庇亦才士也 聞之歎曰 使我得預其席 當曰桃林春放踏紅房 竟未得其對今追續之 銀河水渚隨仙女 黑牧丹花到雪堂 函谷曉歸浮紫氣 桃林春放踏紅房

의왕 초에 청교역의 아전이 푸른 소 한 마리를 길렀는데 생김새가 남달랐으므로 조정에 바쳤다. 임금께서 가까운 관서의 글하는 신하에게 명하여 시를 짓게 하고 운을 매기게 하였는데, 운이 험하고 가팔라 어려운 낯빛을 짓지 않는 이가 없었다.

동관 김효순이 첫째가 되고 옥당 신응룡이 다음이었다. 김이 이르기를 「봉황은 덕을 보고 와서 누각에 깃듦을 부끄러워하고, 말은 정기를 쌓아 위로 방성에 응함을 부끄러워한다」 하였고, 신이 이르기를 「뿔을 두드리며 옛날 영자를 만남을 탄식하였고, 종에 피 바르는 일을 이제 제나라 집을 지남으로 면하였다」 하였다.

임금께서 서너 번 읽고 말씀하셨다.

「일 씀은 비록 잘되었으나 말이 자못 공손하지 않은 데 걸린다. 그러므로 버금으로 삼는다.」

이어 좋은 술과 비단을 차등 있게 내리셨다.

서하 임종비 또한 재주 있는 선비였는데 이를 듣고 탄식하여 말하였다.

「나로 하여금 그 자리에 참여하게 하였다면 마땅히 『도림에 봄이 풀려 붉은 방을 밟는다』 하였으리라.」

끝내 그 짝을 얻지 못하였으므로 이제 이어 채운다.

은하수 물가에서 선녀를 따르고 검은 모란꽃이 설당에 이른다 함곡관에 새벽에 돌아가매 자줏빛 기운이 뜨고 도림에 봄이 풀려 붉은 방을 밟는다

琢句之法 唯少陵獨盡其妙 如日月籠中鳥 乾坤水上萍 十暑眠山葛三霜楚戶점之類是已 且人之才如器皿方圓 不可以該備 而天下奇觀異賞 可以悅心目者甚夥 苟能才不逮意 則譬如駑蹄臨燕越千里之途 鞭策雖勤 不可以致遠 是以古之人 雖有逸才 不敢妄下手 必加鍊琢之工 然後足以垂光虹蜺輝央千古 至若旬鍛季鍊朝吟夜諷 撚鬚難安於一字 彌年只賦於三篇 手作敲推 直犯京尹 吟成大瘦 行過飯山 意盡西峰 鍾撞半夜 如此不可縷擧 及至蘇黃 則使事益精 逸氣橫出 琢句之妙 可以與少陵幷駕 本朝學士黃元題郡齋云 山城雨惡還成雹 澤國陰多數放虹 李紫薇純祐出鎭關東云 細柳營中新上將 紫薇花下舊中書 吾友耆之贈僕云 風急溟鵬從北徙 月明驚鵲未安枝 榮陽補闕 偶遊天磨山八尺房 竟夕苦吟未能屬思 詰旦方廻 緩轡行吟 比至都門乃得一聯云 石頭松老一片月 天末雲低千點山 策蹇而返 手撼門鈕 直入院中 奮筆題于壁還 康先生日用 欲賦鷺鷥 每冒雨至天壽寺南溪上觀之 忽得一句云 飛割碧山腰 乃謂人曰今日始得到古人所不到處 後當有奇材能續之 僕以爲此句誠未能卓越前輩 而云爾者 盖由苦吟得就耳 僕爲之補云 占巢喬木頂 飛割碧山腰 夫如是一句置全篇中 其餘粗備可也 正如珠草不枯 玉川自美 牛後敎坊花原玉小字 色藝爲一時冠 黃壯元作牛後歌 其略云 應恨蛾眉馬前死 欲敎返是名牛後 劉壯元羲云 牛心只合供羲之 吾友耆之云 只應天上隨牽牛 故以牛後爲名字 請僕同賦 君不見石崇騎牛迅若飛 綠珠艶質芝蘭秀 又不見魏公騎牛行讀書 雪兒妙唱雲霄透 自古綺羅人 例合居牛後 持此問牛後 得稱汝意否 嫣然含笑微俛首 一曲千金爲我壽

구절을 다듬는 법은 오직 두소릉만이 홀로 그 오묘함을 다하였다. 「해와 달은 새장 속의 새요 하늘과 땅은 물 위의 부평초」라거나 「열 번 더위에 민산의 칡이요 세 번 서리에 초나라 집의 다듬이」 같은 것이 그것이다.

또 사람의 재주는 그릇의 모나고 둥근 것과 같아 다 갖출 수 없는데, 천하의 기이한 볼거리와 남다른 즐길 거리로 마음과 눈을 기쁘게 할 만한 것은 몹시 많다. 진실로 재주가 뜻에 미치지 못하면, 비유컨대 둔한 말굽으로 연나라와 월나라 천 리 길에 임하는 것과 같아 채찍질이 비록 부지런해도 멀리 이를 수 없다.

그러므로 옛사람은 비록 빼어난 재주가 있어도 감히 함부로 손을 대지 않고, 반드시 다듬고 쪼는 공을 더한 뒤에야 빛을 무지개에 드리우고 천고에 빛냈다. 열흘에 두드리고 철마다 다듬으며 아침에 읊고 밤에 외우는 데 이르러서는, 수염을 꼬며 한 글자에 편안하기 어려워하고 해가 지나도록 다만 세 편을 지었으며, 손으로 「두드릴까 밀까」를 짓다가 곧바로 경조윤을 범하였고, 읊어 크게 여위었으며, 다니다 반산을 지났고, 뜻이 서쪽 봉우리에서 다하매 종이 한밤에 울렸다. 이와 같은 것은 낱낱이 들 수 없다. 소식과 황정견에 이르러서는 일 씀이 더욱 정밀하고 빼어난 기운이 가로 넘쳐, 구절 다듬는 오묘함이 두소릉과 나란히 달릴 만하다.

본조 학사 황원이 군재에 적기를 「산성엔 비가 사나워 도리어 우박이 되고, 못 고을엔 그늘이 많아 자주 무지개를 놓는다」 하였고, 이자미 순우가 관동에 나가 진을 치며 「세류영 가운데 새로 온 상장이요, 자미화 아래 옛 중서라」 하였다. 내 벗 기지가 내게 주기를 「바람이 급하니 아득한 붕새는 북에서 옮고, 달이 밝으니 놀란 까치는 가지에 편안치 못하다」 하였다.

형양 보궐이 우연히 천마산 팔척방에 노닐다가 저녁이 다하도록 괴로이 읊었으나 생각을 이을 수 없어, 아침에야 비로소 돌아오면서 고삐를 늦추고 다니며 읊었다. 도성 문에 이르러서야 한 연을 얻었으니 「돌 머리엔 솔이 늙어 한 조각 달이요, 하늘 끝엔 구름이 낮아 천 점 산이라」 하였다. 절뚝이는 말을 채찍질해 돌아와 손으로 문고리를 흔들고 곧장 원 안에 들어가 붓을 떨쳐 벽에 적고 돌아갔다.

강선생 일용은 해오라기를 읊으려 하여 비를 무릅쓰고 천수사 남쪽 시내에 이르러 보기를 거듭하다가 문득 한 구절을 얻었다. 「날아서 푸른 산허리를 가른다.」 이에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오늘에야 비로소 옛사람이 이르지 못한 곳에 이르렀다. 뒤에 마땅히 남다른 재목이 있어 이을 수 있으리라.」

나는 이 구절이 참으로 앞선 이들을 뛰어넘지는 못하였다고 여기는데, 그렇게 말한 것은 대개 괴로이 읊어 얻은 데서 말미암을 뿐이다. 내가 이를 채워 「높은 나무 꼭대기에 둥지를 차지하고, 날아서 푸른 산허리를 가른다」 하였다. 무릇 이와 같이 한 구절을 온 편 가운데 두면 그 나머지가 거칠게 갖추어져도 좋다. 바로 구슬 풀은 마르지 않고 옥천은 절로 아름다운 것과 같다.

우후는 교방 화원옥의 어릴 적 이름이다. 얼굴과 재주가 한때의 으뜸이었다. 황장원이 「우후가」를 지었는데 그 대략에 이르기를 「아마 아름다운 눈썹이 말 앞에서 죽음을 한스러워하여, 도리어 우후라는 이름을 얻게 하였으리라」 하였고, 유장원 희는 「소의 마음은 다만 왕희지에게 이바지함이 마땅하다」 하였으며, 내 벗 기지는 「다만 마땅히 하늘 위에서 견우를 따르리라」 하였다. 그러므로 우후로 이름을 삼았다.

내게도 함께 짓기를 청하므로 지었다.

그대는 보지 못하는가 석숭이 소를 타고 달림이 나는 듯하고 녹주의 고운 바탕이 지초와 난초처럼 빼어났음을 또 보지 못하는가 위공이 소를 타고 다니며 글을 읽고 설아의 오묘한 노래가 구름 하늘을 뚫었음을 예로부터 비단옷 입은 사람은 으레 소 뒤에 있기 마련이라 이를 가지고 우후에게 물으니 네 뜻에 맞다 할 수 있겠는가 방긋이 웃음을 머금고 살며시 머리를 숙이며 한 곡조 천금으로 나를 위해 축수하네

昔僕出佐桂陽 承廉使符 到龍山宿韓相國彦國書齋 峰巒盤屈狀若蒼蛇 而齋正據其額 江流至其下分爲二派 江外有遙岑 望之如山字 僕朗吟而起 信筆題于壁云 二水溶溶分燕尾 三山杳杳駕鰲頭 他年若許陪鳩杖 共向蒼波狎白鷗 天水亦樂 則韓相國門生也 謁相國酒行誦此詩 相國停杯吟諷 乃曰漢陽之遊計今已五十年矣 聞此一句 其山光水色歷歷如在眼前 此古人所爲詩中畵也

옛날 내가 계양의 보좌로 나갔을 때 염사의 공문을 받고 용산에 이르러 한상국 언국의 서재에 묵었다. 봉우리가 서리고 굽어 모양이 푸른 뱀 같은데 서재가 바로 그 이마를 차지하였고, 강물이 그 아래 이르러 두 갈래로 나뉘었으며, 강 밖에 먼 봉우리가 있어 바라보면 뫼 산 자 같았다. 내가 낭랑히 읊고 일어나 붓 가는 대로 벽에 적었다.

두 물이 넘실넘실 제비 꼬리로 갈리고 세 산이 아득아득 자라 머리를 탔구나 뒷날 만약 비둘기 지팡이를 모시게 되면 함께 푸른 물결을 향해 흰 갈매기와 벗하리

천수 역락은 한상국의 문생이다. 상국을 뵙고 술이 돌 때 이 시를 외우니 상국이 잔을 멈추고 읊조리다 말하였다.

「한양의 노닒이 헤아리니 이제 쉰 해가 되었다. 이 한 구절을 들으니 그 산빛과 물빛이 또렷이 눈앞에 있는 듯하구나. 이것이 옛사람이 이른바 시 가운데 그림이라는 것이다.」

皇統三年癸亥四月日 承宣金奉聖旨 令兩令公受命到日月寺樂聖齋學堂 與諸生講習 至閏四月初八日聯句 內侍崔山甫占溪字卽云 溪溜潺湲常學海 明宗夢魂驚越喜瞻天 金淑淸又占絲字卽云 絲直垂楊春陌上 明宗眉鮮新月暮雲端 金子稱溪水鳴林來遠洞 上令公山雲觸石藹高峰 今尙純峰巒點點森戈戟 上令公楊柳依依卦線絲 翌日入內御覽

황통 삼년 계해 사월 어느 날, 승선 김이 임금의 뜻을 받들어 두 영공에게 명을 받은 날에 일월사 낙성재 학당에 이르러 여러 선비와 강습하게 하였다. 윤사월 초여드레에 이르러 연구를 지었다.

내시 최산보가 「계(溪)」 자를 잡아 곧 「시냇물 졸졸 늘 바다를 배운다」 하니, 명종이 「꿈속의 넋이 놀라 넘어 하늘 우러름을 기뻐한다」 하였다.

김숙청이 또 「사(絲)」 자를 잡아 곧 「실처럼 곧은 수양버들이 봄 언덕 위에 있다」 하니, 명종이 「눈썹처럼 고운 초승달이 저문 구름 끝에 있다」 하였다.

김자칭이 「시냇물이 숲을 울리며 먼 골짜기에서 온다」 하니, 상영공이 「산구름이 돌에 닿아 높은 봉우리에 우거진다」 하였다.

금상순이 「봉우리마다 점점이 창과 갈래창이 빽빽하다」 하니, 상영공이 「버들이 늘어져 실을 드리운 듯 걸렸다」 하였다.

이튿날 안에 들여 임금께서 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