破閑集 卷中
智者見於未形 愚者謂之無事 泰然不以爲憂 及乎患至 然後雖焦神勞力思欲救之 奚益於存亡成敗數哉 此扁鵲所以不得救桓侯之疾也 昔漢文時 海內理安 人民殷阜 而賈誼爲之痛哭 唐文皇自創業之後 日益戒懼未嘗少怠 而爲徵猶陳十漸 故傳曰 諫者救其源 不使得開 戒氷於霜 杜玉盃於漆器 昔毅王籍數十世豊平至理之業 居位日久 事無不擧皆以謂太平之業 安於泰山 莫敢有言之者 正言文克謙 直叩天扉 上皀襄一封 而所言皆中時病 人謂之鳳鳴朝陽 天聽未允 公脫朝衣還家作詩云 朱雲折欖非干譽 袁盎當車豈爲身 一片丹誠天未照 强鞭嬴馬退逡巡 及明王踐阼 擢居喉舌地 國家安危 人民利病 士大夫之賢不肖 盡達於天聰無一毫底滯 至今隣邦結好中外晏然無患 實公之力也 公位冢宰 薦僕入侍玉堂踰年 公卒作挽云 早從閶闔排雲呌 晩向虞淵取日廻 丹鳳久從池上浴 白鷄胡奈夢中催 時人以謂 公之立朝大節終始 無出此二句 雖謂之實錄可也 昨過公舊墅 草樹蒼然 有泉出於石縫 素所遊宴處也 悵然徘徊不能去 作詩留壁上 岩下冷冷水 沿洄若有思 誰知氷雪派 尙帶鳳凰池 東閣重窺處 西門欲暮時 題詩留半壁 略遣九泉知 摳府金富儀 侍中文烈公弟也 並以文章功業顯 嘗杖節中朝 眞宗愛其才 殊以禮遇之 忽有二客到舘小飮 令曰天上有三百六十度 星有牽牛 次曰碁中有三百六十舍 有馬無牛 公卽曰年中有三百六十日 立春日用土牛 合座皆服其敏 嘗侍宴方醉 皇帝以長句六韻示之 遣中人敦促令和進 公畧不構思 援筆立就 其畧云 沉香亭畔聞新曲 立禮門前賀太平 無路小酬天地德 唯將醉筆謝生成 帝嗟賞不已 賜與尤厚 及徽宗末年金人陷汴京 虜二帝北旋 康王襲寶位 遣使人楊應誠來聘 請假途往問二帝行在所 而朝議牢執不許 命公作表以答之 天地仁 各令萬物以咸遂 帝王之德 不責衆人之所難 又云彼衆我寡 旣難可以與爭 脣亡齒寒 又焉知其非福 又云率諸侯而尊周王 非敢期齊晉之古事 任闕土而作禹貢 庶勿失靑徐之舊儀 文烈公先入中書 以故在摳府十餘年 性嗜讀書 開別室常與士大夫討論文章 雖妻妾稀見其面 及寢疾 有朝士夢馬糞自雲間而下 問云今日金樞密賓天衣 世以謂天星之精 富貴家兒非生得而性好 則罕有工文章者 金樞密闡有蕭氏之八葉之貴 棄執綺舊習 竟日危坐看書 不好爲詞章 及其有所作 則必滌筆於氷甌中然後爲之 故篇什未得多傳於世 而所傳者 必警策也 如乘軺歷鹽州客舍題一絶云 鴦衾無夢夜厭厭 凉月多情照畵簷 喚作鹽州眞大誤 一州風物摠無鹽
슬기로운 이는 모양이 이루어지기 전에 보고, 어리석은 이는 일이 없다 하여 태연히 걱정으로 삼지 않는다. 걱정이 이른 뒤에야 비록 정신을 태우고 힘을 다하여 건지려 생각한들, 살아남고 망하며 이루고 무너지는 운수에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이것이 편작이 제나라 환후(桓侯)의 병을 고치지 못한 까닭이다.
옛날 한 문제 때 나라 안이 다스려져 편안하고 백성이 넉넉하였는데도 가의가 이를 위해 통곡하였고, 당 문황은 업을 연 뒤로 날마다 더욱 경계하고 두려워하여 일찍이 조금도 게을리하지 않았는데도 위징이 오히려 열 가지 차츰 스미는 것을 아뢰었다. 그러므로 전에 이르기를 「간하는 이는 그 근원을 건져 열리지 못하게 한다」 하였으니, 서리에서 얼음을 경계하고 옻그릇에서 옥잔을 막는 것이다.
옛날 의왕은 수십 대의 넉넉하고 태평한 지극한 다스림의 업을 이어 자리에 있은 지 오래고 일이 들리지 않는 것이 없어, 다들 태평한 업이 태산처럼 편안하다 하여 감히 말하는 이가 없었다. 정언 문극겸이 곧장 하늘의 문을 두드려 봉한 글 한 통을 올렸는데 말한 바가 다 그때의 병에 들어맞았으므로 사람들이 봉황이 아침 볕에 운다 하였다. 그러나 하늘의 들으심이 미쁘게 여기지 않으니 공이 조복을 벗고 집에 돌아가 시를 지었다.
주운이 난간을 부러뜨린 것은 기림을 바란 것이 아니요 원앙이 수레를 막은 것이 어찌 제 몸을 위함이었으랴 한 조각 붉은 정성을 하늘이 아직 비추지 않으니 억지로 여윈 말에 채찍질하며 머뭇머뭇 물러난다
명왕이 자리에 오르매 뽑아 임금의 말을 맡는 자리에 두니, 나라의 편안함과 위태로움, 백성의 이로움과 병듦, 사대부의 어질고 못남이 다 임금의 들으심에 이르러 터럭만큼도 막힘이 없었다. 지금까지 이웃 나라와 좋게 맺고 안팎이 편안하여 걱정이 없는 것은 참으로 공의 힘이다.
공이 총재 자리에 있으면서 나를 천거하여 옥당에 들어가 모시게 하였는데 해를 넘겨 공이 죽었으므로 만사를 지었다.
일찍이 창합문에서 구름을 밀치며 부르짖었고 늦게는 우연을 향해 해를 잡아 돌렸네 붉은 봉황이 오래 못 위에서 목욕하더니 흰 닭이 어찌 꿈속에서 재촉하는가
그때 사람들이 「공이 조정에 서서 지킨 큰 절개의 처음과 끝이 이 두 구절을 벗어나지 않는다」 하였으니 비록 실록이라 일러도 좋다.
어제 공의 옛 별장을 지나니 풀과 나무가 푸르렀고 돌 틈에서 나오는 샘이 있었다. 본디 노닐고 잔치하던 곳이라 서글피 서성이며 떠나지 못하고 시를 지어 벽에 남겼다.
바위 아래 차디찬 물이 감돌아 흐르며 생각이 있는 듯하다 누가 알랴 얼음과 눈의 갈래가 아직도 봉황못을 띠고 있음을 동각을 거듭 엿보던 곳 서문에 날이 저물려 할 때 시를 지어 반쯤 벽에 남기니 아홉 샘에 대략 알리려 함이라
추부 김부의는 시중 문열공의 아우다. 아울러 문장과 공업으로 드러났다. 일찍이 부절을 잡고 중조에 갔는데 진종이 그 재주를 아껴 남달리 예로 대하였다.
문득 두 손이 객관에 이르러 조금 마셨다. 하나가 말하기를 「하늘 위에 삼백육십 도가 있고 별에는 견우가 있다」 하고, 다음이 「바둑 가운데 삼백육십 집이 있으나 말은 있어도 소는 없다」 하였다. 공이 곧 「한 해 가운데 삼백육십 날이 있고 입춘날에 흙소를 쓴다」 하니, 온 자리가 다 그 재빠름에 감복하였다.
일찍이 잔치를 모시다 바야흐로 취하였는데 황제가 칠언 여섯 운의 시를 보이고 내시를 보내 재촉하여 화답해 올리게 하였다. 공이 조금도 생각을 얽지 않고 붓을 당겨 그 자리에서 지었다. 그 대략은 이러하다.
침향정 가에서 새 곡조를 듣고 입례문 앞에서 태평을 하례한다 하늘과 땅의 덕을 조금이나마 갚을 길이 없어 오직 취한 붓으로 낳아 길러 주심을 사례한다
황제가 감탄하고 감상하기를 그치지 않고 내려 주기를 더욱 두터이 하였다.
휘종 말년에 이르러 금나라 사람이 변경을 함락하고 두 황제를 사로잡아 북으로 돌아갔다. 강왕이 보배 자리를 이어받고 사신 양응성을 보내 예방하여, 길을 빌려 두 황제 계신 곳에 가서 문안하기를 청하였으나 조정의 의논이 굳게 잡아 허락하지 않았다. 공에게 명하여 표를 지어 답하게 하였다.
「하늘과 땅의 어짊은 만물로 하여금 저마다 이루게 하고, 제왕의 덕은 뭇사람에게 어려운 바를 꾸짖지 않습니다.」 또 이르기를 「저들은 많고 우리는 적으니 이미 더불어 다투기 어렵고,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니 또 어찌 그것이 복이 아님을 알겠습니까.」 하였고, 또 이르기를 「제후를 거느려 주나라 왕을 높이는 일은 감히 제나라와 진나라의 옛일을 기약하지 못하고, 빠진 땅을 맡아 우공을 짓는 일은 거의 청주와 서주의 옛 거동을 잃지 않으려 합니다.」 하였다.
문열공이 먼저 중서에 들어갔으므로 공은 추부에 열 해 남짓 있었다. 성품이 책 읽기를 즐겨 딴 방을 열고 늘 사대부와 문장을 따져 논하니, 비록 아내와 첩이라도 그 얼굴을 보는 일이 드물었다. 병들어 누웠을 때 어떤 조정 선비가 꿈에 말똥이 구름 사이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고 물으니 「오늘 김추밀이 하늘로 오르는 옷이다」 하였다. 세상에서 하늘 별의 정기라 하였다.
넉넉하고 귀한 집 아이는 나면서 성품이 좋아하는 것이 아니면 문장에 뛰어난 이가 드물다. 김추밀 천은 소씨의 팔엽 같은 귀함이 있었으나 비단옷 입던 옛 버릇을 버리고 온종일 곧게 앉아 책을 보았다. 시와 글 짓기를 좋아하지 않았고 지을 것이 있으면 반드시 얼음 사발에 붓을 씻은 뒤에야 지었다. 그러므로 편장이 세상에 많이 전하지 못하였으나 전하는 것은 반드시 빼어난 구절이다. 수레를 타고 염주 객사를 지나며 절구 하나를 적은 것이 있다.
원앙 이불에 꿈이 없어 밤이 하염없고 서늘한 달이 정 많아 그림 처마를 비춘다 염주라 부른 것이 참으로 큰 잘못이니 한 고을 풍물이 온통 무염이로다
仁王幼臨大寶 元舅朝鮮公擅朝 醫官崔思全遊談平勃間 卒安漢祚 由是畵形麒麟 驟登宰輔 其時誥院金存中作誥云 莽何羅之觸寶瑟 變起蒼黃 夏毋且之抵藥囊 意存忠義 時人謂之切理 恩顧尤厚 賞賜以百萬計 有兩子曰弁曰烈 公以金罍二具與之 及公捐舘 愛姬竊其一 兄怒欲鞭之 弟曰此先公寵妾也 當傾倒家貲以賑恤之宜矣 况此物耶 吾所得金罍尙存 請以遺之 毋困此妾也 仁王聞之曰 可謂孝此仁矣 卽以御筆賜名曰孝仁 其立朝大節可見於是 嘗辭閣門祗候應擧 欲遂先公遺令而未果 常以怏怏不已 其友金尙書莘尹 作六字詩贈之 骰子選中得失 黃梁夢裡 升沉 汲汲百年能幾 如何以此傷心
인왕이 어려서 큰 자리에 임하매 외숙 조선공이 조정을 마음대로 하였다. 의관 최사전이 진평과 주발 같은 자리에서 오가며 이야기하여 마침내 한나라의 복을 편안케 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기린각에 모습이 그려지고 갑자기 재보에 올랐다.
그때 고원 김존중이 고를 지어 「망하라가 보슬을 건드리매 변고가 창황히 일어났고, 하무저가 약주머니를 던진 것은 뜻이 충의에 있었다」 하니 그때 사람들이 이치에 꼭 맞는다 하였다. 은혜로운 돌보심이 더욱 두터워 상으로 내린 것이 백만으로 셈하였다.
두 아들이 있어 변과 열이라 하였다. 공이 금술독 두 벌을 주었는데 공이 세상을 뜨자 사랑하던 첩이 그 하나를 훔쳤다. 형이 노하여 매질하려 하니 아우가 말하였다.
「이는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총애하시던 첩이다. 마땅히 집의 재산을 기울여 구휼함이 옳거늘 하물며 이 물건이겠는가. 내가 얻은 금술독이 아직 있으니 청컨대 이를 주고 이 첩을 괴롭히지 말라.」
인왕이 이를 듣고 「효도롭고 어질다 이를 만하다」 하고, 곧 임금의 붓으로 이름을 내려 「효인」이라 하였다. 그가 조정에 서서 지킨 큰 절개를 여기서 볼 수 있다.
일찍이 합문지후를 사양하고 과거에 응하여 돌아가신 아버지의 남긴 명을 이루려 하였으나 이루지 못하여 늘 서운해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그 벗 김상서 신윤이 여섯 자 시를 지어 주었다.
주사위를 골라 얻고 잃고 누런 조 꿈속에 오르고 잠기고 급급한 백 년이 얼마이랴 어찌 이로써 마음을 상하는가
自雅缺風亡 詩人皆推杜子美爲獨步 豈唯立語精硬 括盡天地菁華而已 雖在一飯 未嘗忘君 毅然忠義之節 根於中而發於外 句句無非稷契口中流出 讀之足以使懦夫有立志 玲瓏其聲其質玉乎盖是也 昨見金相國永夫 有感詩云 近聞隣國勢將危 拓地開疆在此時 素髮飄飄霜雪落 丹心耿耿鬼神知 廉頗能飯非無意 去病辭家亦有爲 黙黙此懷無處說 每逢樽酒醉如泥 其拳拳憂國之誠 老而益壯 凜然與泰華爭高 眞可仰也 公平生使酒狂氣 雖王公大人皆憚之 幼時夢遊大內出毬庭 有酒饔數百森列 而兩三甕始傾 問之云 此進士金永夫所飮酒也 張公三十六爐之錢 信矣
『시경』의 아(雅)가 이지러지고 풍(風)이 없어진 뒤로 시인이 다 두자미를 홀로 걸었다 여긴다. 어찌 오직 말 세움이 정밀하고 굳세어 하늘과 땅의 꽃다움을 다 싸안았을 뿐이겠는가. 비록 한 끼 밥 사이에도 일찍이 임금을 잊지 않아 굳센 충의의 절개가 속에 뿌리내려 밖으로 피어났으므로, 구절마다 후직과 설의 입에서 흘러나오지 않은 것이 없다. 읽으면 나약한 사내로 하여금 뜻을 세우게 하기에 넉넉하니, 영롱하구나 그 소리와 그 바탕이 옥인가 하는 것이 대개 이것이다.
어제 김상국 영부의 「느낌이 있어」라는 시를 보았다.
요사이 들으니 이웃 나라 형세가 위태로워지려 한다니 땅을 넓히고 지경을 여는 일이 이때에 있다 흰 머리는 나부껴 서리와 눈이 지고 붉은 마음은 밝고 밝아 귀신이 안다 염파가 밥을 잘 먹은 것은 뜻이 없지 않았고 곽거병이 집을 사양한 것도 까닭이 있었다 잠잠히 이 회포를 말할 데 없어 술동이를 만날 때마다 진흙처럼 취한다
그 간절히 나라를 걱정하는 정성이 늙어 갈수록 더욱 씩씩하여 늠름히 태산 화산과 높이를 다투니 참으로 우러를 만하다.
공은 평생 술기운을 부려 미친 기운이 있어 비록 왕공대인이라도 다 꺼렸다. 어릴 때 꿈에 대궐 안에 노닐다 구정에 나가니 술독 수백이 빽빽이 벌여 있는데 두세 독만 비로소 기울어 있었다. 물으니 「이는 진사 김영부가 마실 술이다」 하였다. 장공의 서른여섯 화로의 돈이라는 말이 참으로 그렇다.
仁王卜得中興大華之勢於西都 新開龍堰閣 鳳輦西巡置群臣宴 命學士李之氐作口號 其略云 帝出震以乘乾 雖曰應時之數 王在鎬而飮酒 固當與衆而同 又云 室家相慶 徯我后其來蘇 管籥初聞 曰吾王能鼔樂 又云遊豫爲諸侯度 旣符夏諺之稱 飮食盡忠臣心 允協周人之詠 對偶精切 固無斧鑿之痕 文烈公見之嘆曰非近代詞臣騈四儷六 以組織爲工者所比也 公侍中公壽之子 十八擢龍頭高選 指日躡台鼎 容貌如畵 不妄顧視 雖新學後生 相對如大賓 忠言嘉謀 足以與伊傳訓命爲表裡 眞古所謂大臣者 至今號其居爲政堂里 嘗奉使東都 戱題詩云 大醉惛惛曉夢顚 不和帳下玉人眠 傍人莫笑風情薄 解賦西江月一篇
인왕이 서도에서 중흥 대화의 형세를 점쳐 얻고 용언각을 새로 열었다. 봉황 수레로 서쪽을 돌며 뭇 신하를 두고 잔치를 베풀고 학사 이지저에게 명하여 구호를 짓게 하였다.
그 대략에 이르기를 「황제가 진에서 나와 건을 타시니 비록 때에 응한 운수라 하나, 왕이 호경에 계시며 술을 드심은 참으로 마땅히 뭇사람과 함께함이라」 하고, 또 「집집이 서로 경사로 여기며 우리 임금이 오시어 되살려 주시기를 기다렸고, 관과 피리를 처음 들으매 우리 임금이 풍류를 잘하신다 하네」 하고, 또 「노닐고 즐김이 제후의 법도가 됨은 이미 하나라 속담의 일컬음에 맞고, 마시고 먹음에 충신의 마음을 다함은 참으로 주나라 사람의 노래에 어울린다」 하였다.
짝 맞춤이 정밀하고 딱 맞아 참으로 도끼와 끌의 자취가 없었다. 문열공이 보고 감탄하여 「요사이 사신들이 넉 자 여섯 자를 짜서 얽는 것을 솜씨로 삼는 이들에게 견줄 바가 아니다」 하였다.
공은 시중 공수의 아들이다. 열여덟에 장원으로 뽑혀 날을 손꼽아 정승에 올랐다. 얼굴이 그림 같았고 함부로 돌아보지 않았으며, 비록 새로 배우는 뒷사람이라도 마주하기를 큰 손처럼 하였다. 충성된 말과 아름다운 꾀가 이윤과 부열의 훈계와 겉과 속이 될 만하였으니 참으로 옛날 이른바 대신이다. 지금까지 그가 살던 곳을 정당리라 부른다.
일찍이 명을 받들어 동도에 갔다가 장난삼아 시를 적었다.
크게 취해 어릿어릿 새벽꿈이 뒤집히니 장막 아래 옥인과 함께 잠들지 못하였네 곁의 사람은 풍정이 엷다 비웃지 말라 「서강월」 한 편은 지을 줄 안다
金侍中緣 平章上琦子也 少以文章顯 年未三十乘軺出塞 與大遼使人孟初伴行 初見年少頗易之 及幷轡出郊 雪始霽 四顧茫然無所見 惟馬蹄觸地作聲 初垂袖微吟卽唱云 馬蹄踏雪乾雷動 公卽應聲曰 旗尾飜風烈火飛 初愕然曰 眞天才也 由是情好日篤 恨相知之晩 及返轅 解所佩通天犀以贈之 公在諫垣 所陳皆經國遠猷猷 初若迂踈 利在千百載下 仁廟時權臣擅朝 聞童謠托疾引歸 及返正徵爲冢宰 其行止多神異 世莫能測 三子皆以文墨位宰相 時以比江左王謝云 嘗出鎭龍灣 作詩示門生云 十年臺閣掌絲綸 此日翻爲閫外臣 諫掖未能陳讜議 塞垣聊欲掃胡塵 鬢毛早白緣憂國 涕淚難禁爲戀親 多謝丘門諸子弟 百壺淸酒餞行人
시중 김연은 평장 상기의 아들이다. 젊어서 문장으로 드러났고 나이 서른이 되기 전에 수레를 타고 변방에 나갔다. 대요의 사신 맹초와 함께 다녔는데 맹초가 나이 어림을 보고 자못 가벼이 여겼다.
고삐를 나란히 하여 교외에 나가니 눈이 비로소 개어 사방을 돌아보아도 아득히 보이는 것이 없고 오직 말굽이 땅에 닿아 소리를 낼 뿐이었다. 맹초가 소매를 드리우고 가만히 읊다가 곧 「말굽이 눈을 밟으니 마른 우레가 움직인다」 하니, 공이 곧 소리에 응하여 「깃발 꼬리가 바람에 나부끼니 매운 불이 난다」 하였다. 맹초가 깜짝 놀라 「참으로 하늘이 낸 재주다」 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정이 날로 도타워져 서로 앎이 늦었음을 한스러워하였다. 수레를 돌릴 때 차고 있던 통천서를 풀어 주었다.
공이 간원에 있으면서 아뢴 것이 다 나라를 다스릴 먼 꾀라, 처음에는 에두르고 성긴 듯하나 이로움이 천백 년 뒤에 있었다. 인묘 때 권신이 조정을 마음대로 하매 아이들의 노래를 듣고 병을 핑계로 물러났다가, 바름을 되돌리매 불려 총재가 되었다. 그 나아가고 그침이 신이한 데가 많아 세상이 헤아리지 못하였다. 세 아들이 다 글과 먹으로 재상 자리에 올랐으므로 그때 사람들이 강좌의 왕씨와 사씨에 견주었다.
일찍이 용만에 나가 진을 치며 문생에게 보인 시가 있다.
열 해를 대각에서 실 같은 임금 말씀을 맡았는데 오늘 도리어 문지방 밖의 신하가 되었네 간관의 자리에서 곧은 의논을 펴지 못하였으니 변방 담에서나마 오랑캐 티끌을 쓸고자 한다 살쩍 털이 일찍 센 것은 나라를 걱정한 까닭이요 눈물을 금하기 어려운 것은 어버이를 그리워함이라 내 문하의 여러 자제에게 깊이 사례하노니 백 병 맑은 술로 가는 사람을 전송하네
尙書金子儀 骯髒有奇節 嘗戰藝春官 上夢見有人擢第 名曰昌 及開糊封 公在第二人 名晶 上駭異之 立朝勁諤有諍臣風 性嗜酒 醉則起舞 輒唱四海之歌 其所言皆國朝網紀也 當時語曰 寧逢虎兇 不逢金公醉 方出按江南 上臨軒戒之曰 卿文章志節不愧古人 伹飮酒多過差耳 三杯之後愼勿屬口 由是歷遍所轄州郡 嘗惺惺然不飮 行過山中精藍 訪舊知老衲 握手話懷 及別貫酒欲餞之 出門踞苔石上 乃曰頃出都有朝旨 禁臣飮酒不過三爵 宜持爾應供鐵鉢來 三酌而去 其鉢可受一斗餘 豪邁皆類此 嘗悲拓相國南遷一絶 龍虎雄姿鐵石腸 欲將忠義輔君王 只緣鳥盡弓藏耳 不是淮陰背漢皇
상서 김자의는 뼈대가 곧아 남다른 절개가 있었다. 일찍이 춘관에서 재주를 겨루었는데 임금께서 꿈에 어떤 사람이 급제하는 것을 보시니 이름이 창(昌)이었다. 풀로 봉한 것을 열매 공이 둘째 사람에 있었고 이름이 정(晶)이었으므로 임금께서 놀라 남달리 여기셨다.
조정에 서서 굳세고 곧아 간쟁하는 신하의 풍모가 있었다. 성품이 술을 즐겨 취하면 일어나 춤추며 문득 「사해가」를 불렀는데 그 말한 바가 다 나라의 벼리였다. 그때 말에 「차라리 사나운 범을 만날지언정 취한 김공은 만나지 말라」 하였다.
바야흐로 강남을 살피러 나갈 때 임금께서 마루에 나오시어 경계하셨다.
「경의 문장과 뜻과 절개는 옛사람에게 부끄럽지 않다. 다만 술을 마심에 지나침이 많을 뿐이다. 석 잔 뒤에는 삼가 입에 대지 말라.」
이로 말미암아 맡은 여러 고을을 두루 다니며 늘 또렷하게 깨어 마시지 않았다. 다니다 산속 절을 지나며 옛 아는 노승을 찾아 손을 잡고 회포를 이야기하였다. 헤어질 때 술을 사서 전송하려 하매 문을 나가 이끼 낀 돌 위에 걸터앉아 말하였다.
「지난번 서울을 나올 때 조정의 뜻이 있어 신하가 술 마시기를 석 잔에 넘지 못하게 하였다. 마땅히 그대의 공양하는 쇠바리때를 가져오라.」
석 잔을 마시고 갔다. 그 바리때는 한 말 남짓 들어갈 만하였다. 호탕함이 다 이와 같았다.
일찍이 척상국이 남쪽으로 귀양 감을 슬퍼하여 절구 하나를 지었다.
용과 범의 웅장한 자태에 쇠와 돌 같은 창자로 충의를 가지고 임금을 도우려 하였네 다만 새가 다하면 활을 감춘 까닭일 뿐 회음후가 한나라 황제를 등진 것은 아니다
眞樂公資玄 起自相門 雖寓跡簪組 常有紫霞逸想 少遊金閨 從術士殷元忠 密訪溪山勝地可以卜隱 殷公云 楊子江上有靑山一曲 眞避世之境 聞之常掛於心 年二十七仕至大樂暑令 忽致叩盆之患 拂衣長往 入淸平山葺文殊院以居之 尤嗜禪說 學者至則輒與之人幽室 竟日危坐忘言 時時擧古德宗旨商論 由是心法流布於海東 惠照大鑑兩國師 皆遊其門 乃於洞中幽絶處作息庵 團圓如鵠卵 只得盤兩膝 而黙坐其中數日猶不出 其同年友郭璵 持節出關東見訪 贈詩云 淸平山水似湘濱邂逅相逢見故人 三十年前同得第 一千里外各捷身 浮雲入洞曾無事 明月當溪不染塵 目擊無言良久處 淡然相照舊精神 公次韶云 暖逼溪山暗換春 忽紆仙杖訪幽人 夷霽遁世惟全性 稷契勤邦不爲身 奉詔此時鏘玉佩 掛冠何日拂衣塵 何當此地同棲隱 養得從來不死神 睿王渴仰眞風 累詔徵之 對使者曰 臣始出都門 有不復踐京華之誓 不敢奉詔 遂附表云 唐虞之代 堯舜之臣 虁龍陳廓廟之謨 巢許抗山林之志 以鳥養鳥 庶無鍾鼔之憂 觀魚知魚 俾遂江湖之性 上知其不可屈致 特幸南都召見 問以修身養性之要 對曰古人云 養性莫善於寡欲 惟陛下留意焉 上嗟賞不已曰言可聞 而道不可傳 身可見 而志不可屈 眞潁陽之亞流也 賜茶藥還山 及卒諡眞樂公 其餘事迹 見金相國重刱記
진락공 자현은 재상 집안에서 일어났다. 비록 벼슬에 자취를 붙였으나 늘 붉은 노을 같은 벗어난 생각이 있었다. 젊어 금규에 노닐 때 술사 은원충을 좇아 몰래 시내와 산의 좋은 땅으로 숨어 살 만한 곳을 물었다. 은공이 「양자강 위에 푸른 산 한 굽이가 있으니 참으로 세상을 피할 지경이다」 하니, 이를 듣고 늘 마음에 걸어 두었다.
나이 스물일곱에 벼슬이 대악서령에 이르렀는데 문득 동이를 두드리는 슬픔을 만나 옷을 떨치고 멀리 가, 청평산에 들어가 문수원을 손질하여 살았다. 더욱 선의 말을 즐겨 배우는 이가 이르면 문득 그와 함께 그윽한 방에 들어가 온종일 곧게 앉아 말을 잊었고, 때때로 옛 큰스님의 종지를 들어 헤아려 논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마음의 법이 해동에 퍼졌으니 혜조와 대감 두 국사가 다 그 문에 노닐었다.
이에 골짜기 가운데 그윽하고 끊어진 곳에 식암을 지었는데 둥글기가 고니 알 같아 다만 두 무릎을 서릴 만하였다. 그 가운데 잠잠히 앉아 며칠이 되어도 나오지 않았다.
그와 같은 해에 급제한 벗 곽여가 부절을 잡고 관동에 나갔다가 찾아와 시를 주었다.
청평의 산과 물이 상수 물가 같은데 우연히 서로 만나 옛사람을 보네 서른 해 앞서 함께 급제하고 천 리 밖에서 저마다 몸을 감추었네 뜬구름이 골짜기에 들어도 일찍이 일이 없고 밝은 달이 시내에 임해도 티끌에 물들지 않네 눈으로 맞대고 말없이 한참 있는 곳에 담담히 서로 비추니 옛 정신일세
공이 화답하였다.
따스함이 시내와 산에 다가와 몰래 봄을 바꾸는데 문득 신선 지팡이를 두르고 그윽한 이를 찾았네 백이와 숙제가 세상을 피한 것은 오직 성품을 온전히 함이요 후직과 설이 나라에 부지런한 것은 몸을 위함이 아니라 조서를 받든 이때에 옥패가 쟁그랑거리고 갓을 걸 날은 어느 때에 옷의 티끌을 떨칠까 어찌하면 이 땅에 함께 깃들어 숨어 예로부터 죽지 않는 정신을 길러 볼까
예왕이 참된 풍모를 목마르게 우러러 여러 번 조서로 부르셨다. 사신에게 대답하였다.
「신이 처음 도성 문을 나설 때 다시는 서울을 밟지 않겠다는 맹세가 있었으므로 감히 조서를 받들지 못합니다.」
마침내 표를 붙였다.
「요임금과 순임금의 시대에 요임금과 순임금의 신하로서, 기와 용은 조정의 꾀를 폈고 소보와 허유는 산림의 뜻을 세웠습니다. 새로써 새를 기르시면 거의 종과 북의 걱정이 없을 것이요, 고기를 보아 고기를 아시면 강과 호수의 성품을 이루게 하실 것입니다.」
임금께서 굽혀 이르게 할 수 없음을 아시고 특별히 남도에 거둥하여 불러 보시고 몸을 닦고 성품을 기르는 요긴함을 물으셨다. 대답하였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성품을 기름은 욕심을 적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 하였으니, 오직 폐하께서 마음을 두소서.」
임금께서 감탄하고 감상하기를 그치지 않으며 말씀하셨다.
「말은 들을 수 있으나 도는 전할 수 없고, 몸은 볼 수 있으나 뜻은 굽힐 수 없구나. 참으로 영양의 버금가는 무리다.」
차와 약을 내려 산으로 돌려보내셨다. 죽으매 시호를 진락공이라 하였다. 그 나머지 일의 자취는 김상국의 중창기에 보인다.
郭處士璵 睿王在春宮時寮佐也 及上踐阼 掛冠長往 詔賜城東若頭山一峯 開別墅 名曰東山齋 常以烏巾鶴氅出入宮掖間 時人謂之金門羽客 嘗於內宴 上賜戴花一枝 卽令進詩云 誰剪紅羅作牧丹 芳心未展怯春寒 六宮粉黛皆相道 何事宮花上道 何事宮花上道冠 又隨駕 長源亭 上登樓晩眺 有野叟騎牛傍溪而歸者 卽令口占 太平容貌恣騎牛 半濕殘霏過壟頭 知有水邊家近在 從他落日傍溪流 豈惟仙風道韻 足以傾動人主意 至於文章亦勁敏絶倫 上眷顧尤異 非朝臣所及 上嘗從北門出 率黃門數十人 自稱宗室列侯 訪東山齋 處士適留城中不返 上徘徊數四 製何處難忘酒一篇 以宸翰題壁而還 時皆以謂漢帝白雲之詞 唐皇舞鳳之筆 實兼而有之 古今所無也 詞曰何處難忘酒 尋眞不遇廻 書窓明返照 玉氈掩殘灰 方丈無人守 仙扉盡日開 園鶯啼老樹 庭鸛睡蒼笞 道味誰同話 先生去不來 深思生感慨 回首重徘徊 把筆留題壁 攀欄懶下臺 助吟多態度 觸處絶塵埃 暑氣蠲林下 薰風入殿隈 此時無一盞 煩慮滌何哉 公應製 何處難忘酒 虛經寶輦廻 朱門追小宴 丹竈落寒灰 鄕飮通宵罷 天門待曉開 仗還蓬鳥徑 屐惹洛城笞 樹下靑童語 雲間玉帝來 鼈宮多寂寞 龍馭久徘徊 有意仍抽筆 無人獨上臺 未能瞻日月 却恨向塵埃 搔首立階下 含愁倚石隈 此時無一盞 豈慰寸心哉
처사 곽여는 예왕이 춘궁에 계실 때의 요좌다. 임금께서 자리에 오르매 갓을 걸고 멀리 갔다. 조서로 성 동쪽 약두산 한 봉우리를 내리시니 딴 별장을 열고 이름을 동산재라 하였다. 늘 검은 두건과 학창의로 궁궐 사이를 드나드니 그때 사람들이 금문의 우객이라 하였다.
일찍이 안 잔치에서 임금께서 머리에 꽂을 꽃 한 가지를 내리시고 곧 시를 올리게 하셨다.
누가 붉은 비단을 잘라 모란을 만들었는가 꽃다운 마음이 펴지지 않아 봄추위를 겁낸다 여섯 궁궐의 분 바른 이들이 다 서로 이르기를 무슨 일로 궁중의 꽃이 도관에 올랐는가 하네
또 임금의 수레를 따라 장원정에 갔는데, 임금께서 다락에 올라 저녁을 바라보시니 들 늙은이가 소를 타고 시내를 끼고 돌아가는 이가 있었다. 곧 즉석에서 읊게 하셨다.
태평한 얼굴로 마음껏 소를 타고 반쯤 젖은 남은 안개로 언덕 머리를 지난다 물가에 집이 가까이 있는 줄 아노니 지는 해를 따라 시내를 끼고 흐르네
어찌 오직 신선의 풍모와 도인의 운치가 임금의 뜻을 기울여 움직이기에 넉넉하였을 뿐이겠는가. 문장에 이르러서도 굳세고 재빨라 무리에 뛰어났으므로 임금께서 돌보심이 더욱 남달라 조정 신하가 미칠 바가 아니었다.
임금께서 일찍이 북문으로 나가 황문 수십 사람을 거느리고 스스로 종실의 열후라 일컬으며 동산재를 찾으셨는데, 처사가 마침 성 안에 머물러 돌아오지 않았다. 임금께서 서너 번 서성이시다가 「어느 곳에서 술을 잊기 어려운가」 한 편을 지어 임금의 붓으로 벽에 적고 돌아가셨다. 그때 사람들이 다 「한나라 황제의 흰 구름 노래와 당나라 황제의 봉황 춤추는 붓을 참으로 아울러 가지셨으니 예나 지금이나 없던 일이다」 하였다. 그 말은 이러하다.
어느 곳에서 술을 잊기 어려운가 참된 이를 찾다 만나지 못하고 돌아올 때 글방 창에는 되비친 볕이 밝고 옥담요에는 남은 재가 덮였다 방장에는 지키는 이 없고 신선의 사립은 온종일 열렸다 동산 꾀꼬리는 늙은 나무에서 울고 뜰의 황새는 푸른 이끼에서 존다 도의 맛을 누구와 함께 이야기하랴 선생이 가고 오지 않으니 깊은 생각에 느꺼움이 나고 머리를 돌려 거듭 서성인다 붓을 잡아 벽에 남겨 적고 난간을 붙들고 게을리 대를 내려온다 읊음을 도움에 모습이 많고 닿는 곳마다 티끌이 끊어졌다 더운 기운은 숲 아래에서 덜리고 훈훈한 바람은 전각 모퉁이에 든다 이때 한 잔이 없으니 번거로운 생각을 무엇으로 씻으랴
공이 응하여 지었다.
어느 곳에서 술을 잊기 어려운가 보배 수레가 헛되이 지나 돌아가신 때 붉은 문에서 작은 잔치를 좇고 붉은 부엌에는 찬 재가 떨어졌다 시골 술자리는 밤을 새워 파하고 하늘 문은 새벽을 기다려 열린다 의장은 봉래섬 길로 돌아가고 나막신은 낙성의 이끼를 끌었다 나무 아래 푸른 아이가 말하기를 구름 사이로 옥황이 오셨다 하네 자라 궁궐은 자못 적막하고 용의 수레는 오래 서성였다 뜻이 있어 붓을 뽑았으나 사람이 없어 홀로 대에 오른다 해와 달을 우러르지 못하고 도리어 티끌을 향함을 한스러워한다 머리를 긁으며 섬돌 아래 서서 시름을 머금고 돌 모퉁이에 기댄다 이때 한 잔이 없으니 어찌 한 치 마음을 위로하랴
太白山人戒𢉼 大覺國師適嗣也 幼時寓僧舍讀書 大覺隔墻聞其聲曰此眞法器也 勸令視髮在門下 日夕孜孜鑽仰 優入閭奧 繼大覺弘揚大法四十餘年 爲萬乘敬仰 常不離輦轂 累請歸太白山 手刱覺華寺 大開法施 四方學者輻湊 日不减千百人 號爲法海龍門 時興王寺有智勝者 嗜學詣帳下摳衣 請益踰年將還山 作詩送之云 好學今應少 忘形古亦稀 顧余何所有 而子乃來依 窮谷三冬共 春風一日歸 去留俱世外 不用淚霑衣 夫得道者之辭 優游閑淡 而理致深遠 雖禪月之高逸 參寥之淸婉 豈是過哉 此古人所謂如風吹水自然成文
태백산인 계응은 대각국사의 정통을 이은 제자다. 어릴 때 절에 머물며 글을 읽었는데 대각이 담 너머로 그 소리를 듣고 「이는 참으로 법의 그릇이다」 하고, 머리를 깎아 문하에 두기를 권하였다. 아침저녁으로 부지런히 뚫고 우러러 넉넉히 깊은 곳에 들었다. 대각을 이어 큰 법을 널리 편 것이 마흔 해 남짓이라 만승이 공경하여 우러렀고 늘 임금의 수레 곁을 떠나지 않았다.
여러 번 태백산으로 돌아가기를 청하여 손수 각화사를 세우고 법의 베풂을 크게 여니, 사방에서 배우는 이가 바퀴살처럼 모여 날마다 천백 사람에 밑돌지 않았으므로 법해용문이라 불렀다.
그때 흥왕사에 지승이라는 이가 있어 배우기를 즐겨 장막 아래에 나아가 옷을 걷고 더 배우기를 청하였다. 해를 넘겨 산으로 돌아가려 하매 시를 지어 보냈다.
배우기를 좋아함이 이제 마땅히 적고 모양을 잊음도 옛날에 또한 드물었다 돌아보건대 내게 무엇이 있어 그대가 이에 와서 기대었는가 궁벽한 골짜기에서 세 겨울을 함께하고 봄바람에 하루 만에 돌아가네 가고 머무름이 다 세상 밖이니 눈물로 옷을 적실 것 없다
무릇 도를 얻은 이의 말은 넉넉하고 한가하고 담담하면서 이치가 깊고 멀다. 비록 선월의 높고 빼어남과 참료의 맑고 아름다움인들 어찌 이보다 지나겠는가. 이것이 옛사람이 이른바 바람이 물에 불면 절로 무늬를 이룬다는 것이다.
西湖僧惠素 該內外典 尤工於詩 筆跡亦妙 常師事大覺國師爲高弟 國師勸令赴僧選 對曰我豈天廐馬也 試其步驟哉 常隨國師所在討論文章 國師歿 撰行錄十卷 金侍中摭取之以爲碑 住西湖見佛寺方丈闃然 唯畜靑石一葉如席大 時時揮灑以遣興 侍中納政後 騎驢數相訪 竟夕談道 上素聞其名 邀置內道場 講華嚴寶典 賜白金至多 師盡用買砂糖百餠 列于所居內外 人問其故 曰 是吾平生嗜好 儻明春商舶不來 則顧何以求之 聞者皆笑其眞率
서호의 중 혜소는 안팎의 전적에 두루 밝고 시에 더욱 뛰어났으며 붓 자취 또한 오묘하였다. 늘 대각국사를 스승으로 섬겨 높은 제자가 되었다. 국사가 승과에 나아가기를 권하니 대답하였다.
「내가 어찌 하늘 마구간의 말이라고 그 걸음을 시험하겠습니까.」
늘 국사가 있는 곳을 따라 문장을 따져 논하였다. 국사가 죽으매 행록 열 권을 지었고 김시중이 이를 추려 비문으로 삼았다.
서호 견불사에 머물렀는데 방장이 고요하여 오직 자리만 한 푸른 돌 한 잎을 두고 때때로 휘둘러 흥을 풀었다. 시중이 정사를 돌려준 뒤에 나귀를 타고 여러 번 서로 찾아와 저녁이 다하도록 도를 이야기하였다.
임금께서 본디 그 이름을 들으시고 안 도량에 맞아 두어 화엄보전을 강하게 하시고 은을 몹시 많이 내리셨다. 스님이 그것을 다 써서 사탕 백 덩이를 사서 사는 곳 안팎에 벌여 놓았다. 사람들이 까닭을 물으니 말하였다.
「이는 내 평생 즐기는 것이다. 만일 이듬해 봄에 장삿배가 오지 않으면 도대체 무엇으로 구하겠는가.」
듣는 이가 다 그 참되고 꾸밈없음을 웃었다.
金蘭境有寒松亭 昔四仙所遊其徒三千各種一株 至今蒼蒼然拂雲 下有茶井 道兄戒膺國師留詩 在昔誰家子 三千種碧松 其人骨已朽 松葉尙茸容 和云 千古仙遊遠 蒼蒼獨有松 但餘泉底月 髣髴相形容 論者以爲 師組織雖工 未若前篇天趣自然
금란 지경에 한송정이 있다. 옛날 네 신선이 노닐 때 그 무리 삼천이 저마다 한 그루씩 심었는데 지금까지 푸르고 푸르러 구름을 스친다. 아래에 차 우물이 있다. 도형 계응국사가 시를 남겼다.
옛날 누구의 아들들인가 삼천이 푸른 솔을 심었네 그 사람들 뼈는 이미 썩었는데 솔잎은 아직도 무성하구나
화답하였다.
천고에 신선의 노닒은 멀고 푸르고 푸르러 홀로 솔만 있네 다만 샘 밑의 달이 남아 어렴풋이 서로 모습을 그린다
논하는 이가 「스님의 얽음이 비록 잘되었으나 앞 편의 하늘 정취가 절로 그러함만 못하다」 하였다.
碧蘿老人去非 與僕云 嘗於郵亭壁上見一絶云 秋陽融暖若春陽 竹葉芭蕉映粉墻 莫向此君誇葉大 此君應笑近經霜 又王輪光闡師 誦近詩 春慵所失與誰云 時或聞鶯謂誤聞 堪笑物情如我困 牧丹頭重牛風薰 此二篇俱無作者之名 然其語法與唐宋人無異 二師相從海東名賢遊 必有所受 故兩錄之以俊知者
벽라노인 거비가 나와 이야기하였다.
「일찍이 역참 정자 벽 위에서 절구 하나를 보았다. 『가을볕이 녹아 따뜻하기가 봄볕 같은데 / 대 잎과 파초가 흰 담에 비친다 / 이 대(此君)에게 잎이 크다 자랑하지 말라 / 이 대는 마땅히 서리 지날 날이 가까움을 웃으리라.』」
또 왕륜사 광천 스님이 요사이 시를 외웠다.
봄 게으름에 잃은 바를 누구와 말하랴 때로 혹 꾀꼬리를 들으면 잘못 들었다 하네 우습구나 사물의 정이 나처럼 곤한 것이 모란이 머리가 무거워 바람에 훈훈함을 끄네
이 두 편은 다 지은이의 이름이 없다. 그러나 그 말법이 당나라와 송나라 사람과 다르지 않다. 두 스님이 해동의 이름난 어진 이를 따라 노닐었으니 반드시 받은 바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둘 다 적어 아는 이를 기다린다.
芬皇宗光闡師夷曠 不護細行 嘗赴內道場 大醉頹然坐睡 涕淚垂胸 爲有司所紏竟斥去之 足蓭聞之乃曰 千鍾斯聖 百榼亦賢 積麴成封 猶不害於眞人 況浮圖人遊戱自在 固不可以得窮耶 乃作偈 具葉翻爲竹葉盃 天花落盡眼花開 醉鄕廣大人間窄 誰識佯狂老萬回
분황의 종 광천 스님은 트이고 넓어 잔 행실을 지키지 않았다. 일찍이 안 도량에 나아가 크게 취해 무너지듯 앉아 졸며 눈물이 가슴에 드리웠으므로 맡은 관사에 들켜 마침내 물리쳐 내쫓겼다.
족암이 이를 듣고 말하였다.
「천 종을 마시면 성인이요 백 통도 어질다 하며, 누룩을 쌓아 봉토를 이루어도 오히려 참사람에게 해롭지 않다. 하물며 부도의 사람이 놀며 스스로 자재함이야 참으로 궁하다 할 수 있겠는가.」
이에 게를 지었다.
패엽이 뒤집혀 죽엽 잔이 되고 하늘 꽃이 다 지매 눈앞에 꽃이 어른거린다 취향은 넓고 커도 인간은 좁으니 누가 알랴 거짓 미친 늙은 만회를
華嚴月師少從僕遊 自號高陽醉𩫴 作詩有賈島風骨 昨者携訪西河耆之 一見如舊識 乃謂曰師爲李公稱譽久矣 何必待握手論交 然後爲相知耶 卽於座上伸筆而贈之 昔有能詩釋惠勤 從遊長在醉翁門 如今眉叟眞奇士 誇我高陽得一𩫴 長恨聞名猶未見 相逢欲話却忘言 淸詩健筆何須問 且說相傳自狀元
화엄 월사는 젊어 나를 좇아 노닐며 스스로 고양취용이라 불렀다. 시를 지으면 가도의 풍골이 있었다.
어제 서하 기지를 데리고 찾아갔는데 한 번 보고 옛 아는 이 같았다. 이에 말하였다.
「스님은 이공에게 기림을 받은 지 오래니 어찌 반드시 손을 잡고 사귐을 논한 뒤에야 서로 안다 하겠는가.」
곧 자리에서 붓을 펴 주었다.
옛날 시 잘하는 중 혜근이 있어 좇아 노닒이 길이 취옹의 문에 있었네 이제 미수는 참으로 남다른 선비라 내가 고양에서 한 용을 얻었다 자랑하네 이름을 들은 지 오래되 아직 보지 못함을 늘 한하였는데 서로 만나 말하려 하니 도리어 말을 잊는다 맑은 시와 굳센 붓을 무엇하러 묻겠는가 다만 서로 전하기를 장원에게서 왔다 하리
江夏黃彬然未第時 與兩三友讀書湍州紺岳寺 時金東閣莘尹名士也 醉發狂言忤當時貴倖 徒步出城歸紺岳 自云老兵將還鄕 請寄宿 彬然憫其老且困許焉 終日在床下無一言 偶取火筋晝灰成字 勢座皆指目 這老漢頗解文字也 詰朝公之子蘊琦 已登第也 率蒼頭兩三人 負酒壺往尋及門 問於人曰昨者 家公出都門抵此 今在否 答曰但有一老兵來宿 安有金東閣耶 蘊琦突入拜庭下 彬然伏地愧謝 公笑曰措大爾安得知范睢之已相秦耶 相與登北峯坐松下石 共飮極歡 命座客賦松風各一韻 斷送玄猿嘯 掀揚白鶴沖彬然厭喧欹枕客 怕冷拾枯童 宗昤冷然姑射吸 颯爾楚臺雄 無名鶴寒難得睡 僧定獨如聾 東閣也是夕劇飮而罷 彬然叩頭願受業 留數月讀前漢書畢 方還 士林至今以爲口實
강하 황빈연이 급제하기 전에 두세 벗과 단주 감악사에서 글을 읽었다. 그때 김동각 신윤은 이름난 선비였는데, 취하여 미친 말을 내어 그때의 귀하고 총애받는 이들의 뜻을 거슬렀으므로 걸어서 성을 나가 감악으로 돌아갔다. 스스로 「늙은 병졸이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니 묵어 가기를 청한다」 하니, 빈연이 그 늙고 또 곤함을 딱하게 여겨 허락하였다.
온종일 평상 아래에 있으면서 한마디도 없다가, 우연히 부젓가락을 잡고 재에 글자를 그리매 그 기세가 온 자리의 눈길을 끌었다. 「이 늙은이가 자못 글자를 아는구나.」
이튿날 아침 공의 아들 온기는 이미 급제한 사람인데, 종 두세 사람을 거느리고 술병을 지고 찾아와 문에 이르러 사람들에게 물었다.
「어제 저희 아버님께서 도성 문을 나와 여기에 이르셨는데 지금 계십니까?」
대답하였다.
「다만 늙은 병졸 하나가 와서 묵었을 뿐이니 어찌 김동각이 있겠는가.」
온기가 뛰어들어 뜰 아래에서 절하니 빈연이 땅에 엎드려 부끄러워 사죄하였다. 공이 웃으며 말하였다.
「서생이 어찌 범저가 이미 진나라 재상이 된 줄을 알았겠는가.」
서로 함께 북쪽 봉우리에 올라 소나무 아래 돌에 앉아 함께 마시며 몹시 즐거워하였다. 자리의 손에게 명하여 「솔바람」을 저마다 한 운씩 짓게 하였다.
검은 잔나비 휘파람을 끊어 보내고 흰 학의 치솟음을 흔들어 올린다
빈연이 이었다.
시끄러움을 싫어해 베개에 기댄 손이요 추위를 겁내 마른 아이를 줍는다
종령이 이었다.
서늘하게 고야산이 숨을 들이쉬고 우수수 초나라 대가 웅장하다
이름 없는 이가 이었다.
학은 추워 잠들기 어렵고 중은 선정에 들어 홀로 귀먹은 듯하다
동각도 이 저녁에 몹시 마시고 파하였다. 빈연이 머리를 조아려 배우기를 원하니, 몇 달을 머물러 『전한서』를 다 읽고서야 돌아갔다. 사림이 지금까지 이야깃거리로 삼는다.
金學士黃元 李左司仲若 郭處士璵皆奇士 少以文章相友 號神交 二公嘗訪左司第 淸談亹亹 不覺日暮 須臾月出雲開碧天如水 相與登南樓小飮 點韻各成一聯 李率然曰 壯氣暗生天外劒 雄謀潛轉幄中籌 郭云座中氷雪三山客 稱上錙銖萬戶侯 次至於黃元曰異於三子者之撰 遂引滿朗吟曰 日暮鳥聲藏碧樹 月明人語上高樓 二公不覺屈膝曰雖古人何遠 遂罷 吾友湛之卽左司內孫 僕嘗見其眞跡 醉墨宛然 眞家寶也 昌華公李子淵 杖節南朝登潤州甘露寺 愛湖山勝致 謂從行三老曰爾宜審視山川樓觀形勢 具載胸臆間 毋失豪毛 舟師曰謹聞命矣 及還朝與三老約曰夫天地間凡有形者 無不相似 是以湘濱有九山相似 行者疑焉 河流九曲 而南海亦有九折灣 由是觀之 山形水勢之相賦也 如人面目 雖千殊萬異 其中必有相髣髴者 況我東國去蓬萊山不遠 山川淸秀甲於中朝萬萬 則其形勝豈無與京口相近者乎 汝宜以扁舟短棹 泛泛然與鳧雁相浮沉 無幽不至無遠不尋 爲我相收當以十年爲期 愼無欲速焉 三老曰唯 凡六涉寒暑 始得之於京城西湖邊 走報公曰旣得之矣 三飱可返 糞煩王趾一往觀焉 遂相與登臨之 喜見眉鬚曰且南朝甘露寺 雖奇麗無比 然但營構繪飾之工 特勝耳 至於天生地作自然之勢 與此相去眞九牛之一毛也 卽捐金帛庀材瓦 凡樓閣池臺之制度 一倣 中朝甘靈寺 及斷手 用題其額亦曰甘露 指晝經營旣得宜 萬像不鞭而自至 後詩僧惠素唱之 而金侍中富軾斷之 聞者皆和幾千餘篇 遂成鉅集
학사 김황원과 좌사 이중약과 처사 곽여는 다 남다른 선비였다. 젊어 문장으로 서로 벗하여 신교라 불렸다.
두 공이 일찍이 좌사의 집을 찾아 맑은 이야기가 이어져 날이 저무는 줄도 깨닫지 못하였다. 잠깐 사이에 달이 뜨고 구름이 걷혀 푸른 하늘이 물 같으므로 서로 함께 남루에 올라 조금 마시고 운을 매겨 저마다 한 연을 이루었다.
이가 선뜻 말하였다. 「씩씩한 기운은 하늘 밖 칼에서 몰래 나고 / 웅장한 꾀는 장막 가운데 산가지에서 가만히 구른다.」
곽이 말하였다. 「자리 가운데는 얼음과 눈 같은 삼산의 손이요 / 저울 위에는 실낱같은 만호후라.」
황원의 차례에 이르매 「세 사람의 지음과는 다르다」 하고, 마침내 잔을 가득히 하고 낭랑히 읊었다. 「해가 저무니 새소리가 푸른 나무에 감추이고 / 달이 밝으니 사람 말소리가 높은 다락에 오른다.」
두 공이 저도 모르게 무릎을 꿇으며 「비록 옛사람인들 어찌 멀겠는가」 하고 마침내 파하였다. 내 벗 담지가 곧 좌사의 외손이다. 내가 일찍이 그 진적을 보았는데 취한 먹이 완연하니 참으로 집안의 보배다.
창화공 이자연이 부절을 잡고 남조에 가서 윤주 감로사에 올랐다. 호수와 산의 빼어남을 사랑하여 따라간 뱃사공에게 말하였다.
「너는 마땅히 산천과 누각의 형세를 자세히 보아 가슴속에 갖추어 담고 터럭만큼도 잃지 말라.」
뱃사공이 「삼가 명을 듣겠습니다」 하였다. 조정에 돌아와 뱃사공과 약속하였다.
「무릇 하늘과 땅 사이에 모양 있는 것은 서로 닮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므로 상수 물가에 아홉 산이 서로 닮아 가는 이가 헷갈리고, 하수가 아홉 굽이인데 남해에도 또한 아홉 굽이 물굽이가 있다. 이로 보건대 산의 모양과 물의 기세가 서로 닮음이 사람의 얼굴 같아, 비록 천 가지로 다르고 만 가지로 남달라도 그 가운데 반드시 서로 비슷한 것이 있다. 하물며 우리 동국은 봉래산에서 멀지 않고 산천이 맑고 빼어남이 중조보다 만만 배 나으니, 그 빼어난 형세에 어찌 경구와 서로 가까운 것이 없겠는가. 너는 마땅히 조각배와 짧은 노로 넘실넘실 오리와 기러기와 함께 뜨고 잠기며, 그윽한 데는 이르지 않는 곳이 없고 먼 데는 찾지 않는 곳이 없이 나를 위해 살펴 거두되, 마땅히 열 해를 기약하고 삼가 빨리 하려 하지 말라.」
뱃사공이 「예」 하였다. 무릇 여섯 번 추위와 더위를 지나 비로소 서울 서호 가에서 얻고 달려와 공에게 알렸다.
「이미 얻었습니다. 세 끼면 돌아올 수 있으니 번거로우시나 임금의 발걸음으로 한번 가서 보십시오.」
마침내 서로 함께 올라 임하니 기쁨이 눈썹과 수염에 드러났다.
「또 남조의 감로사가 비록 기이하고 고움이 견줄 데 없으나 다만 얽어 짓고 그려 꾸민 솜씨가 특히 나을 뿐이다. 하늘이 내고 땅이 지은 절로 그러한 형세에 이르러서는 이와 서로 거리가 참으로 아홉 소의 터럭 하나다.」
곧 금과 비단을 내어 재목과 기와를 갖추어, 무릇 누각과 못과 대의 제도를 하나같이 중조의 감로사를 본떴다. 손을 뗀 뒤에 그 현판을 쓰되 또한 감로라 하였다. 손가락으로 그으며 경영함이 이미 마땅함을 얻으니 온갖 모습이 채찍질하지 않아도 절로 이르렀다. 뒤에 시승 혜소가 먼저 부르고 김시중 부식이 끊으니, 듣는 이가 화답한 것이 거의 천여 편이라 마침내 큰 문집을 이루었다.
鳳城北洞安和寺 本睿王所創也 盖睿王以神聖至德 事大宋無違禮 顯孝皇帝優加褒賞 別賜法書名畵珍奇異物不可勝計 聞其刱是寺 特遣使人以殿財像設送之 宸翰親題殿額 命蔡京榜於門 其丹靑營構之巧 甲於海東 出寺門至御花園 幾六七里 丹崖碧領橫張側展 有溪沿石徑而流 如環珮之鳴 四畔唯松栢叅天 雖盛夏常若早秋 往來者如在畵屛中 世以謂烟霞洞仙眞所居 昔相國彦頤齋宿於是 夢見學士胡宗旦 乘一葉泛泛而來 會紫翠門作一絶云 五雲深處是吾鄕 烟鏁樓臺日月長 回首昔年交伴者 如今役役夢魂場 寺有紫翠門
봉성 북동 안화사는 본디 예왕이 세운 것이다. 대개 예왕이 신성하고 지극한 덕으로 대송을 섬김에 예를 어김이 없었으므로, 현효황제가 넉넉히 기려 상 주기를 더하여 따로 법서와 이름난 그림과 진기하고 남다른 물건을 내린 것이 이루 셀 수 없었다.
이 절을 세운다는 말을 듣고 특별히 사신을 보내 전각의 재물과 불상을 만들어 보내고, 임금의 붓으로 몸소 전각의 현판을 적고 채경에게 명하여 문에 방을 붙이게 하였다. 그 단청과 얽어 지은 솜씨가 해동에서 으뜸이다.
절 문을 나서 어화원에 이르기까지 거의 예닐곱 리인데, 붉은 벼랑과 푸른 재가 가로 펼쳐지고 옆으로 벌어졌으며, 돌길을 따라 흐르는 시내가 있어 패옥이 울리는 듯하다. 네 둘레에는 오직 소나무와 잣나무가 하늘을 찔러 비록 한여름이라도 늘 이른 가을 같으므로, 오가는 이가 그림 병풍 속에 있는 듯하다. 세상에서 연하동의 신선이 사는 곳이라 한다.
옛날 상국 언이가 여기서 재계하고 묵다가 꿈에 학사 호종단이 조각배를 타고 넘실넘실 오는 것을 보았다. 자취문에 모여 절구 하나를 지었다.
오색구름 깊은 곳이 내 고향이라 안개가 다락을 감싸 해와 달이 길다 머리를 돌려 지난해 사귀던 벗들을 보니 이제 부산히 꿈속 마당이로다
절에 자취문이 있다.
京城東天壽寺 去都門一百步 連峯起於後 平川瀉於前 野桂數百株夾道成陰 自江南赴皇都者 必憩於其下 輪蹄闐咽 漁歌樵笛之聲不絶 而丹樓碧閣半出松杉烟靄之間 王孫公子携珠翠引笙歌 迎餞必寄於寺門 昔睿王時 畵局李寧尤工山水 爲其圖附宋商 久之上求名畵於宋商 以其圖獻焉 上召衆史示之 李寧進曰此臣所畵天壽寺南門圖也 折背觀之 題誌甚詳 然後知其爲名筆 神王七年 僕出守孟城 兒子阿大赴官珍洞 吾友湛之謂咸子眞曰李玉堂之子剖竹南州 而其儀遠在孟城 宜吾二人往餞焉 各携己子到天壽寺西峰 班荊語離酒八九巡 子眞呼兒梵郞 宜以一句贐行 卽云 歸程紅樹童童立 阿大續之曰 故國靑山點點遙 及日斜黯然而罷 阿大到官 叙始末甚詳 千里寄孟城 發書不覺失笑 雖家儅州吏無不忭聳爲怏 其京洛山川之態 故人親友之笑語 祖席盃觴之交錯 歷歷然無不在吾目前 羈愁旅況如湯沃雪 須鬢間有一莖還黑者 遂書日月以志喜
서울 동쪽 천수사는 도성 문에서 백 걸음 떨어져 있다. 이어진 봉우리가 뒤에서 일어나고 평평한 내가 앞으로 쏟아진다. 들 계수 수백 그루가 길을 끼고 그늘을 이루었으므로 강남에서 서울로 가는 이가 반드시 그 아래에서 쉰다. 바퀴와 발굽이 가득 차고 고기잡이 노래와 나무꾼 피리 소리가 끊이지 않으며, 붉은 다락과 푸른 누각이 소나무 삼나무와 안개 사이에 반쯤 드러난다. 왕손과 공자가 구슬과 비취를 데리고 생황과 노래를 이끌어 맞고 보냄을 반드시 절 문에 부친다.
옛날 예왕 때 화국의 이녕이 산수에 더욱 뛰어나 그 그림을 그려 송나라 장사꾼에게 부쳤다. 오래 뒤에 임금께서 송나라 장사꾼에게 이름난 그림을 구하시니 그 그림을 바쳤다. 임금께서 여러 화사를 불러 보이시니 이녕이 나아가 「이는 신이 그린 천수사 남문도입니다」 하였다. 뒷면을 젖혀 보니 적어 둔 것이 몹시 자세하였다. 그런 뒤에야 이름난 붓임을 알았다.
신왕 칠 년에 내가 맹성에 나가 지키게 되고 아들 아대가 진동에 벼슬살이하러 갔다. 내 벗 담지가 함자진에게 말하였다.
「이옥당의 아들이 남쪽 고을 수령으로 나가는데 그 아버지는 멀리 맹성에 있으니, 마땅히 우리 두 사람이 가서 전송하자.」
저마다 제 아들을 데리고 천수사 서쪽 봉우리에 이르러 가시나무를 깔고 헤어짐을 이야기하며 술이 여덟아홉 순배 돌았다. 자진이 아들 범랑을 불러 「한 구절로 가는 길을 전송함이 마땅하다」 하니 곧 「돌아가는 길에 붉은 나무가 우뚝우뚝 섰다」 하였고, 아대가 이어 「고국의 푸른 산이 점점이 멀다」 하였다. 해가 기울매 서글피 파하였다.
아대가 벼슬에 이르러 처음과 끝을 몹시 자세히 적어 천 리 밖 맹성에 부쳤다. 글을 펴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비록 집안 사람과 고을 아전까지도 기뻐 뛰지 않는 이가 없었다. 서울의 산천의 모습과 옛 벗의 웃음과 말과 전별 자리의 잔이 오가는 것이 또렷하여 눈앞에 있지 않은 것이 없었다. 나그네 시름과 나그네 사정이 끓는 물에 눈 녹듯 하였고 살쩍 사이에 한 오리가 도로 검어진 것이 있었다. 마침내 날짜를 적어 기쁨을 남긴다.
西都永明寺南軒 天下絶景 本興上人所刱 南臨大江 江外曠野茫然不見際畔 惟東極一涯 遙岑出沒有無中 昔睿王西巡 與群臣宴飮唱酬 篇什尤多 無不鏤金石播絲竹 以傳樂府 吾祖平章李䫨 適在玉堂 扈從登臨 命名浮碧寮 作詩敍其始末甚備 山川氣勢 與中朝滌暑亭相甲乙 而秀麗過之 學士金黃元弭節西都 登其上 命吏悉取右今郡賢所留書板焚之 憑欄縱吟 至日斜其聲正苦 如叫月之猿 只得一聯 長城一面溶溶水 大野東頭點點山 意涸不復措辭痛哭而下 後數日足成一篇 至今以爲絶唱 時人語曰昔聞宋玉悲秋氣 今見黃元哭夕陽
서도 영명사 남헌은 천하의 빼어난 경치다. 본디 흥상인이 세운 것인데 남으로 큰 강에 임하고, 강 밖은 넓은 들이 아득하여 가장자리가 보이지 않으며, 오직 동쪽 끝 한 가장자리에 먼 봉우리가 있는 듯 없는 듯 드나든다.
옛날 예왕이 서쪽을 돌 때 뭇 신하와 잔치하며 주고받은 시가 더욱 많아, 쇠와 돌에 새기고 실과 대에 실어 악부로 전하지 않은 것이 없다. 내 할아버지 평장 이오가 마침 옥당에 있어 임금을 모시고 올랐다가 부벽료라 이름 짓고, 시를 지어 그 처음과 끝을 몹시 갖추어 적었다. 산천의 기세가 중조의 척서정과 서로 우열을 다투되 빼어나고 고움은 그보다 낫다.
학사 김황원이 서도에 부절을 멈추고 그 위에 올라, 아전에게 명하여 예나 지금이나 여러 어진 이가 남긴 서판을 다 가져다 태우게 하였다. 난간에 기대어 마음껏 읊어 해가 기울도록 그 소리가 몹시 괴로워 달을 보고 우는 잔나비 같았다. 겨우 한 연을 얻었다.
긴 성 한 면에는 넘실넘실 물이요 큰 들 동쪽 머리에는 점점이 산이라
뜻이 마르고 다시 말을 놓지 못하여 통곡하고 내려왔다. 며칠 뒤에 한 편을 다 이루니 지금까지 절창이라 한다. 그때 사람들이 말하였다.
「옛날에는 송옥이 가을 기운을 슬퍼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제는 황원이 저녁 볕에 우는 것을 보았다.」
文昌公崔致遠字孤雲 以賓貢入中朝擢第 遊高騈幕府 時天下雲擾 簡檄皆出其手 及還鄕 同年顧雲賦孤雲篇以送之云 因風離海上 伴月到人間 徘徊不可住 寞寞又東還 公亦自敍云 巫峽重峯之歲 絲入中華 銀河列宿之年 錦還故國 豫知我太祖龍興 獻書自達 然灰心仕宦 卜隱伽倻山 一旦早起出戶 莫知其所歸 遺冠屨於林間 盖上賓也 寺僧以其日薦冥禧 公雲髥玉脥 常有白雲蔭其上 寫眞留讀書堂至今尙存 自讀書堂至洞口武陵樓 幾十里 丹崖碧嶺 松檜蒼蒼 風水相激 自然有金石之聲 公嘗題一絶 醉墨超逸 過者皆指之曰崔公題詩石 其詩曰狂噴疊石吼重巒 人語難分咫尺間 常恐是非聲到耳 故敎流水盡籠山
문창공 최치원은 자가 고운이다. 빈공으로 중조에 들어가 급제하고 고변의 막부에 노닐었다. 그때 천하가 구름처럼 어지러워 격문이 다 그 손에서 나왔다. 고향에 돌아올 때 같은 해에 급제한 고운(顧雲)이 「고운편(孤雲篇)」을 지어 보냈다.
바람을 따라 바다 위를 떠나 달을 짝하여 인간에 이르렀네 서성이며 머무를 수 없어 쓸쓸히 또 동쪽으로 돌아가네
공도 스스로 적었다. 「무협 겹봉우리의 해에 실이 중화에 들었고, 은하 벌인 별의 해에 비단으로 고국에 돌아왔다.」
우리 태조께서 용처럼 일어나실 것을 미리 알고 글을 올려 스스로 이르렀다. 그러나 벼슬에 마음이 재가 되어 가야산에 숨어 살기를 점쳤다. 하루아침에 일찍 일어나 문을 나갔는데 그 돌아간 곳을 알지 못하였고 갓과 신을 숲 사이에 남겼으니, 대개 신선이 된 것이다. 절의 중이 그날로 명복을 빌었다.
공은 구름 같은 구레나룻에 옥 같은 뺨이라 늘 흰 구름이 그 위에 그늘졌다. 참모습을 그려 독서당에 남겨 지금까지 있다. 독서당에서 골짜기 어귀 무릉루까지 거의 십 리인데, 붉은 벼랑과 푸른 재에 소나무 노송이 푸르고 푸르며 바람과 물이 서로 부딪쳐 절로 쇠와 돌의 소리가 있다.
공이 일찍이 절구 하나를 적었는데 취한 먹이 빼어나고 벗어나 지나는 이가 다 가리키며 「최공이 시를 적은 돌」이라 한다. 그 시는 이러하다.
미친 듯 겹바위에 뿜어 겹멧부리를 울리니 사람의 말소리를 지척 사이에도 가리기 어렵다 늘 옳고 그름 다투는 소리가 귀에 이를까 두려워 짐짓 흐르는 물로 하여금 온 산을 감싸게 하였네
金庾信鷄林人 事業赫赫布在國史中 爲兒時母夫人日加嚴訓 不妄交遊 一日偶宿女隸家 其母面數之曰我已老 日夜望汝成長 立功名爲君親榮 今乃爾與屠沽小兒 遊戱淫 房酒肆耶 號泣不已 卽於母前自誓不復過其門 一日被酒還家 馬遵舊路 誤至倡家 且欣且怨 垂泣出迎 公旣悟 斬所乘馬棄鞍而返 女作怨詞一曲傳之 東都有天官寺 卽其家也 李相國公升嘗赴東都 管記作詩云 寺號天官昔有緣 忽聞經始一悽然 多情公子遊花下 含怨佳人泣馬前 紅鬣有情還識路 蒼頭何罪謾加鞭 惟餘一曲歌詞妙 蟾兎同眠萬古傳 天官卽其女號
김유신은 계림 사람이다. 사업이 빛나고 빛나 국사에 실려 있다. 아이 때 어머니 부인이 날마다 엄한 가르침을 더하여 함부로 사귀어 놀지 못하게 하였다.
하루는 우연히 계집종의 집에서 묵었다. 그 어머니가 낯을 대고 꾸짖었다.
「나는 이미 늙어 밤낮으로 네가 자라 공과 이름을 세워 임금과 어버이를 영화롭게 하기를 바랐다. 그런데 이제 백정과 술장수의 아이들과 어울려 음란한 방과 술집에서 놀며 희롱하느냐.」
소리 내어 울기를 그치지 않았다. 곧 어머니 앞에서 다시는 그 문을 지나지 않겠다고 스스로 맹세하였다.
하루는 술에 취해 집에 돌아오는데 말이 옛 길을 따라 잘못 기생집에 이르렀다. 여자가 기뻐하기도 하고 원망하기도 하며 눈물을 흘리며 나와 맞았다. 공이 깨닫고 타던 말을 베고 안장을 버리고 돌아왔다. 여자가 원망하는 노래 한 곡조를 지어 전하였다.
동도에 천관사가 있으니 곧 그 집이다. 이상국 공승이 일찍이 동도에 갔을 때 글 맡은 서기가 시를 지었다.
절 이름이 천관이라 옛날에 인연이 있었으니 문득 처음 세운 일을 듣고 한바탕 처연하다 정 많은 공자는 꽃 아래 노닐고 원망을 머금은 아름다운 이는 말 앞에서 울었네 붉은 갈기는 정이 있어 도리어 길을 알았거늘 푸른 머리 종은 무슨 죄로 부질없이 채찍을 맞았나 오직 한 곡조 노랫말의 오묘함만 남아 두꺼비와 토끼가 함께 잠들어 만고에 전한다
천관은 곧 그 여자의 이름이다.
明皇時 大叔僧統寥一 出入禁宇間 不問左右二十餘年 常作乞退詩進呈云 五更殘夢寄松關 十載低徊紫禁間 早茗細含鶯鳳影 異香新屑鷓鴣斑 自憐瘦鶴翔丹漢 久使寒猿怨碧山 願把殘陽還舊隱 不敎嚴畔白雲閒 上大加稱賞 謂師曰昔人雲 莫訝杖藜歸去早 故山閒却一溪雲可謂先得師之奇趣 因和其詩以賜之曰 祖師心印製機關 卽悟眞空一瞬間 宴坐爐添沈水瓣 迎賓筑破紫苔班 好將經論傳緇侶 莫以行藏憶舊山 夕磬晨香勤禮念 願令愚俗得安閒 歷觀古今名緇秀衲 得被君王寵賜以篇章者多矣 未有特次其韻 叙其意如此款密 昨詣大叔丈室 示以御製此篇 宸翰飛動 蘭麝郁然 正冠肅容跪而讀之 若瞻天日於雲表 祥光瑞色爛溢目 誠可仰也
명황 때 대숙 승통 요일이 궁궐 사이를 드나들며 좌우를 묻지 않은 지 스무 해 남짓이었다. 늘 물러나기를 비는 시를 지어 올렸다.
오경 남은 꿈을 솔문에 부치고 열 해를 자줏빛 궁궐 사이에 낮게 서성였네 이른 차에는 꾀꼬리와 봉황의 그림자를 가늘게 머금고 남다른 향에는 자고새 얼룩을 새로 부수네 스스로 가엾다 여윈 학이 붉은 하늘을 날고 오래 차가운 잔나비로 하여금 푸른 산을 원망하게 하였네 원컨대 남은 볕을 잡아 옛 숨은 곳으로 돌아가 바위 가의 흰 구름을 한가하게 버려두지 않으려 하네
임금께서 크게 칭찬하시고 스님에게 말씀하셨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명아주 지팡이로 일찍 돌아감을 괴이하게 여기지 말라, 옛 산이 한가로이 한 시내 구름을 물리쳤다』 하였으니, 먼저 스님의 남다른 정취를 얻었다 할 만하다.」
이어 그 시에 화답하여 내리셨다.
조사의 마음 도장이 낌새를 지으니 곧 참된 공을 한 순간에 깨닫는다 고요히 앉아 화로에 침향 조각을 더하고 손을 맞아 자줏빛 이끼 얼룩을 밟아 부순다 경과 논을 가져다 스님들에게 전함이 좋으니 나아가고 물러남으로 옛 산을 생각하지 말라 저녁 경쇠와 새벽 향에 부지런히 예로 생각하여 어리석은 세속으로 하여금 편안하고 한가함을 얻게 하라
예나 지금이나 이름난 스님과 빼어난 납자를 두루 보건대 임금의 총애로 글월을 받은 이가 많았으나, 특별히 그 운을 차례하여 그 뜻을 펴기를 이처럼 도탑고 은근히 한 일은 있지 않았다.
어제 대숙의 방장에 나아가니 임금께서 지으신 이 편을 보여 주셨다. 임금의 붓이 날아 움직이고 난초와 사향이 물씬하므로, 갓을 바르게 하고 낯빛을 엄숙히 하여 꿇어앉아 읽으니 구름 밖에서 하늘의 해를 우러르는 듯 상서로운 빛과 빛깔이 눈에 넘쳤다. 참으로 우러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