破閑集 卷下
林舊俗 擇男子美風姿者 以珠翠飾之 名曰花郞 國人皆奉之 其徒至三千餘人 若原嘗春陵之養士 取其潁脫不羣者 爵之朝 惟四仙門徒最盛 得立碑 我太祖龍興 以爲古國遺風尙不贊矣 冬月設八關盛會 選良家子四人 被霓衣列舞于庭 郭待制東珣 代作賀表云 自伏羲氏之王天下 莫高太祖之三韓 邈姑射山之有神人 苑是月城之四子 又云 桃花流水杳然去 誰眞跡之難尋 古家遺俗猶有存 信皇天之未喪 又云 匪高之庭 得詣百獸率舞之列 凡周之士 皆歌小子有造之章 東珣卽郭處士猶子也 少有才名 時處士入處大內山呼亭 東珣往謁淸談從容 會日晩留宿焉 苔夜半月色如練 上步至山呼亭 處士命東珣出拜 上曰是何人耶 對曰臣兄子某 久不得面 今幸得叙契闊 及將還 而金鑰已下 死罪死罪 上曰朕亦聞之久矣 處士獻壽口占云 月影偏尋天子座 命東珣續之 卽跪奏云 露花還濕侍臣衣 上大加稱賞曰有才如是 雖明皇豈忍放耶 是夕入直金門
계림의 옛 풍속에 남자로 풍채가 아름다운 이를 골라 구슬과 비취로 꾸미고 화랑이라 이름하니, 나라 사람이 다 받들어 그 무리가 삼천여 사람에 이르렀다. 마치 평원군과 맹상군과 춘신군과 신릉군이 선비를 기른 것과 같아, 그 가운데 빼어나 무리와 다른 이를 뽑아 조정에 벼슬을 주었다. 오직 네 신선의 문도가 가장 성하여 비를 세울 수 있었다.
우리 태조께서 용처럼 일어나시매 옛 나라의 남은 풍속이 아직 아름답다 여기시어, 겨울달에 팔관의 성대한 모임을 베풀고 좋은 집안의 아들 넷을 뽑아 무지개옷을 입혀 뜰에서 줄지어 춤추게 하셨다.
곽대제 동순이 대신 하례하는 표를 지었다. 「복희씨가 천하에 왕 노릇 한 뒤로 우리 태조의 삼한보다 높은 이가 없고, 아득한 고야산에 신인이 있다 하나 이 월성의 네 아들이 참으로 그것입니다.」 또 「복사꽃 흐르는 물이 아득히 가 버렸으니 누가 참된 자취를 찾기 어렵다 하겠으며, 옛집의 남은 풍속이 아직 있으니 참으로 하늘이 아직 버리지 않으심입니다」 하고, 또 「높지 않은 뜰에서 온갖 짐승이 이끌려 춤추는 줄에 나아감을 얻었고, 무릇 주나라의 선비가 다 「소자유조」의 장을 노래합니다」 하였다.
동순은 곧 곽처사의 조카다. 젊어 재주 있다는 이름이 있었다. 그때 처사가 대내 산호정에 들어가 있었는데 동순이 가서 뵙고 맑은 이야기가 조용히 이어지다, 마침 날이 저물어 묵게 되었다. 밤중에 달빛이 명주 같으므로 임금께서 걸어 산호정에 이르셨다. 처사가 동순에게 나와 절하게 하니 임금께서 「이는 어떤 사람인가」 하셨다. 대답하였다.
「신의 조카 아무개입니다. 오래 낯을 보지 못하다가 이제 다행히 헤어졌던 회포를 폈습니다. 돌아가려 할 때 이미 쇠 자물쇠가 내려졌으니 죽을죄입니다, 죽을죄입니다.」
임금께서 「짐도 또한 그를 들은 지 오래다」 하셨다. 처사가 축수하며 즉석에서 읊었다. 「달 그림자가 치우쳐 천자의 자리를 찾는다.」 동순에게 이으라 명하시니 곧 꿇어앉아 아뢰었다. 「이슬꽃이 도리어 모시는 신하의 옷을 적신다.」
임금께서 크게 칭찬하시며 「재주가 이 같으니 비록 명황인들 어찌 차마 놓아 보내겠는가」 하셨다. 이 저녁에 금문에 들어가 숙직하였다.
睿王尤重儒生 每間歲親策賢良 先閱所納卷子 以知其才 擧子高孝冲名士也 作四無益詩 以斥君非 雖聖主不能虛懷 及闢春闈 命侍臣林敬淸就試席 黜高孝冲然後放題 而學士胡宗旦詣闕上箚子 得叙其罪 後復應擧納卷子春官 其首題曰 寄語卷中詩部論 與君相別在明春 汝爲秘閣千年寶 我作靑雲第一人 果擢龍頭翶翔省闥 諤諤有諍臣風 所至人皆指之曰是嘗作四無益詩者
예왕은 유생을 더욱 무겁게 여겨 해를 걸러 몸소 현량을 시험하고, 먼저 바친 시권을 살펴 그 재주를 아셨다. 거자 고효충은 이름난 선비였는데 「사무익시」를 지어 임금의 그름을 배척하였다. 비록 성스러운 임금이라도 마음을 비우지 못하여, 봄 과거를 열 때 모시는 신하 임경청에게 명하여 시험 자리에 나아가 고효충을 물리친 뒤에 제목을 내게 하셨다. 그런데 학사 호종단이 대궐에 나아가 차자를 올려 그 죄를 폈다.
뒤에 다시 과거에 응하여 시권을 춘관에 바쳤는데 그 첫 제목이 이러하였다.
시권 가운데 시부론에 말을 부치노니 그대와 서로 헤어짐이 내년 봄에 있으리 너는 비각의 천년 보배가 되고 나는 청운의 첫째 사람이 되리라
과연 장원에 뽑혀 조정 관서를 드나들었고 곧고 곧아 간쟁하는 신하의 풍모가 있었다. 이르는 곳마다 사람들이 다 가리키며 「저이가 일찍이 사무익시를 지은 이다」 하였다.
士子朴元凱 少潁悟不群 年甫十一作啓事 上塚宰崔允儀 乞叙父官云 有一夫不被其澤 惟我父兮 使萬物咸得其宜 實惟公耳 相國讀之疑其倩人 欲面試之 今我欲飮茶一椀 飮未及盡 兒宜賦庭中芍藥 沈韻香王 卽應聲曰 芍藥留春色 軒前吐異香 牡丹如在側 應愧百花王 相國驚嘆不已曰 必爲後生袖領 及長赴司馬試 放題 國者至公之器詩 乃曰 高舜難傳子 商周得以功 使事精妙如此 果擢第 爲一時聞人 詩家作詩多使事 謂之點鬼薄 李商隱用事險僻 號西崑軆 此皆文章一病 近者蘇黃崛起 雖追尙其法 而造語益工 了無斧鑿之痕 可謂靑於藍矣 如東坡見設驥鯨遊汗漫 憶曾捫虱話悲辛 永夜思家在何處 殘年知爾爾來情 句法如造化生成 讀之者莫知用何事 山谷云 語言少味無阿堵 氷雪相看只此君 眼看人情如格五 心知世事等朝三 類多如此 吾友鱀之亦得其妙 如歲月屢驚羊胛熟 風騷重會鶴天寒 腹中早識精神滿 胸次都無鄙吝生 皆播在人口 眞不愧於古人
선비 박원개는 젊어 총명하고 무리와 달랐다. 나이 겨우 열하나에 계사를 지어 총재 최윤의에게 올려 아버지의 벼슬을 펴 주기를 빌었다. 「한 사내라도 그 은택을 입지 못한 이가 있으니 오직 제 아버지요, 만물로 하여금 다 그 마땅함을 얻게 하는 이는 참으로 공이십니다.」
상국이 읽고 남에게 빌린 것이 아닌가 의심하여 낯을 대고 시험하려 하였다.
「이제 내가 차 한 사발을 마시려 하니 다 마시기 전에 아이는 마땅히 뜰 가운데 작약을 읊되 운은 향과 왕으로 하라.」
곧 소리에 응하였다.
작약이 봄빛을 머물러 두고 마루 앞에서 남다른 향을 토한다 모란이 만약 곁에 있다면 마땅히 온갖 꽃의 왕임을 부끄러워하리라
상국이 놀라 감탄하기를 그치지 않으며 「반드시 뒷사람의 우두머리가 되리라」 하였다.
자라서 사마시에 나아갔는데 「나라는 지극히 공정한 그릇이다」라는 제목이 나오매 「요임금과 순임금도 아들에게 전하기 어려웠고, 상나라와 주나라는 공으로 얻었다」 하였다. 일 씀의 정밀하고 오묘함이 이와 같았다. 과연 급제하여 한때의 이름난 사람이 되었다.
시인이 시를 지을 때 일을 많이 쓰는 것을 「귀신 장부를 점찍는다」 한다. 이상은은 일 씀이 험하고 궁벽하여 서곤체라 불렸으니 이는 다 문장의 한 병이다. 요사이 소식과 황정견이 우뚝 일어나 비록 그 법을 좇아 높였으나 말 지음이 더욱 잘되어 도끼와 끌의 자취가 조금도 없으니, 쪽에서 나와 쪽보다 푸르다 이를 만하다.
동파의 「기린과 고래가 아득한 데 노니는 것을 보다가 일찍이 이를 잡으며 슬프고 쓰림을 이야기하던 일이 생각난다」와 「긴 밤 집을 생각하나 어디에 있는가, 남은 해에 너의 정을 알겠다」 같은 구절은 법이 조화가 낳아 이룬 듯하여 읽는 이가 무슨 일을 썼는지 알지 못한다.
산곡은 「말에 맛이 적으니 아도가 없고, 얼음과 눈 속에 마주 보는 것은 다만 이 대뿐」 하고, 「눈으로 사람의 정을 보니 격오와 같고, 마음으로 세상일을 아니 아침에 셋과 같다」 하였으니 이런 것이 많다.
내 벗 기지 또한 그 오묘함을 얻었다. 「세월이 여러 번 놀라 양의 어깻죽지가 익고, 풍소가 거듭 모이니 학의 하늘이 차다」와 「배 속에는 일찍이 정신이 가득함을 알았고, 가슴속에는 도무지 인색함이 나지 않는다」 같은 것이 다 사람의 입에 퍼졌으니 참으로 옛사람에게 부끄럽지 않다.
僕爲兒時 登京城北天磨山 探奇摘異無遺 見一蕭寺壁上留詩云 誰號天磨嶺 凌空積翠浮 去天纔一握 掛月幾多秋 路險垂猿臂 詩偏側鶴頭 下一句漫滅不可讀 無作者之名 然此必巖谷間避世養道者所題其語淸而若
내가 아이 때 서울 북쪽 천마산에 올라 기이한 것을 더듬고 남다른 것을 따며 남김이 없었다. 한 쓸쓸한 절 벽 위에 남은 시를 보았다.
누가 천마령이라 불렀는가 하늘을 능멸하여 쌓인 푸름이 뜬다 하늘과 거리가 겨우 한 줌 달을 걸어 둔 지 몇 해던가 길이 험하여 잔나비 팔을 드리우고 시는 치우쳐 학 머리를 기울인다
아래 한 구절은 지워져 읽을 수 없었고 지은이의 이름도 없었다. 그러나 이는 반드시 바위 골짜기 사이에서 세상을 피해 도를 기르던 이가 적은 것이니, 그 말이 맑고도 그러하였다.
南州樂籍有倡 色藝俱絶 有一郡守忘其名 屬意甚厚 及爪將返愋 忽大醉謂傍人曰 若我去郡數步 輒爲他人所有 卽以蠟炬燒灼其兩脥 無完肌 後榮陽襲明杖節來過 見其妓悵怏不已 出二幅雲藍 手寫一絶贈之 百花叢裏淡丰容 忽被狂風减却紅 獺髓未能醫玉狹 五陵公子恨無窮 因囑云 若有使華來過 宜出此詩示之 妓謹依其敎 凡見者 輒加賙恤 欲使榮陽公聞之 因得其利 富倍於初
남주의 악적에 창기가 있어 얼굴과 재주가 다 빼어났다. 한 군수가 있어 그 이름은 잊었는데 뜻을 붙임이 몹시 두터웠다. 임기가 다해 돌아가려 할 때 문득 크게 취해 곁의 사람에게 말하였다.
「만약 내가 고을을 몇 걸음만 떠나면 문득 다른 사람의 것이 되리라.」
곧 밀랍 횃불로 그 두 뺨을 지져 성한 살이 없게 하였다.
뒤에 형양 습명이 부절을 잡고 지나다 그 기생을 보고 서글퍼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구름빛 남빛 종이 두 폭을 내어 손수 절구 하나를 써서 주었다.
온갖 꽃 떨기 속에 담담한 고운 모습이 문득 미친 바람을 입어 붉음이 덜렸네 수달의 골수로도 옥 뺨을 고치지 못하니 오릉의 공자들 한이 끝없으리
이어 부탁하였다.
「만약 사신이 지나가거든 마땅히 이 시를 내어 보이라.」
기생이 삼가 그 가르침을 따르니 무릇 보는 이가 문득 도와주기를 더하였다. 형양공이 이를 듣게 하려던 것인데, 그로 인해 그 이로움을 얻어 넉넉함이 처음보다 곱절이 되었다.
黃公純益有奇才 少遊太學讀書 患口焦 從人求建茶 以啓事謝之云 孟諫議之寄盧同 習習淸風生兩腋 王相國之贈平甫 團團碧月墮九天 又和人鶴詩 踏破逕苔松脚健 舞翻庭月雪衣凉 其俊逸如是 士林皆敬畏之 常謁樞府金存中 適有獻松芝者 相國請賦之 立書云 昨夜食指動 今朝異味嘗 元非培塿質 尙有伏岺香 嗜酒少檢東 低佪薄宦久不得遷轉 忽一夕天寒痛飮 憑机而睡 其隣人夢見先生張素盖 將返白頭山舊居及曉訪之 已寂矣 世號白頭精
황공 순익은 남다른 재주가 있었다. 젊어 태학에 노닐며 글을 읽다가 입이 타는 병을 앓아 남에게 건차를 구하고 계사로 사례하였다.
「맹간의가 노동에게 부치매 산들산들 맑은 바람이 두 겨드랑이에 나고, 왕상국이 평보에게 주매 둥글둥글 푸른 달이 아홉 하늘에서 떨어집니다.」
또 남의 학 시에 화답하였다. 「이끼 낀 길을 밟아 부수니 솔 다리가 굳세고, 뜰의 달을 춤추어 뒤집으니 눈옷이 서늘하다.」 그 빼어나고 벗어남이 이와 같아 사림이 다 공경하고 두려워하였다.
늘 추부 김존중을 뵈었는데 마침 솔 지초를 바치는 이가 있어 상국이 읊기를 청하였다. 그 자리에서 썼다.
어젯밤 집게손가락이 움직이더니 오늘 아침 남다른 맛을 맛본다 본디 흙무더기의 바탕이 아니라 아직도 엎드린 재의 향이 있다
술을 즐기고 몸가짐이 적어 벼슬길에 낮게 서성이며 오래 옮기지 못하였다. 문득 하루 저녁 날이 차서 몹시 마시고 안석에 기대어 잠들었는데, 그 이웃 사람이 꿈에 선생이 흰 일산을 펴고 백두산 옛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았다. 새벽에 찾아가니 이미 고요하였다. 세상에서 백두정이라 불렀다.
西河耆之倦遊 僑泊星山郡 郡倅飽聞其名 送一妓薦枕 及晩逃歸 耆之悵然作詩曰 登樓未作吹簫伴 弄月空爲節藥仙 不把長官嚴號令 謾嗔生客惡因緣 其用事益精 此古人所謂戚金結雟 而無痕隲
서하 기지가 노닒에 지쳐 성산군에 붙어 살았다. 고을 원이 그 이름을 익히 듣고 기생 하나를 보내 잠자리를 모시게 하였는데 늦게 달아나 돌아갔다. 기지가 서글퍼 시를 지었다.
다락에 올라 퉁소 부는 짝이 되지 못하고 달을 희롱하며 부질없이 약 찧는 신선이 되었네 장관의 엄한 호령을 잡지 못하고 부질없이 낯선 손의 나쁜 인연을 성낸다
그 일 씀이 더욱 정밀하니, 이것이 옛사람이 이른바 쇠를 쳐서 이음매를 맺되 자취가 없다는 것이다.
白雲子神駿掛冠 神虎歸隱公州山莊 郡守遣其子受業有年 應擧京師 以一絶送之 信陵公子統精兵 遠赴邯鄲立大名 天下英雄皆法從 可憐揮涕老侯嬴
백운자 신준이 갓을 걸고 신호에서 공주 산장으로 돌아가 숨었다. 군수가 그 아들을 보내 배우게 한 지 여러 해였는데, 서울에 과거 보러 가매 절구 하나로 보냈다.
신릉공자가 정예한 군사를 거느리고 멀리 한단에 나아가 큰 이름을 세웠네 천하의 영웅이 다 법으로 따랐으나 가엾구나 눈물 뿌리던 늙은 후영이여
僕先祖 世以文章相繼 紅紙相傳今已八葉矣 僕以不才偶居多士之先 而長子裎第四人 次讓第三 次榲第二 雖嶄然露頭角 科級魏 而未有能卓然處狀頭 得與父同科者 高陽月師作詩賀曰 三子聯」珠繼父風 四枝仙桂一家中 連年雖占黃金榜 尙避龍頭讓老翁
우리 선조는 대대로 문장으로 서로 이어 급제 증서를 서로 전한 것이 이제 이미 여덟 대째다. 내가 재주 없이 우연히 여러 선비의 앞에 있게 되었고, 맏아들 정이 넷째 사람이요 다음 양이 셋째요 다음 온이 둘째다. 비록 우뚝이 머리와 뿔을 드러내어 과거의 등급이 높았으나, 뛰어나게 장원 자리에 처하여 아버지와 같은 등급을 얻은 이는 아직 없다. 고양 월사가 시를 지어 하례하였다.
세 아들이 구슬을 이어 아버지의 풍모를 이었고 네 가지 신선 계수가 한 집 안에 있네 해마다 잇달아 황금 방을 차지하였으나 아직도 장원 자리를 피하여 늙은이에게 사양하네
京城西十里許 有安流慢波 澄碧澈底 遙岑遠岫相與際天 實與蘇黃集中所說西興秀氣無異 士子盧永綏有才調 嘗日暮泛一葉 泝流而行 欲抵宿湖邊寺 中流長嘯 怳若有得云 風蕭蕭兮易水寒 孤舟獨往 放聲吟諷 恨未有續之者 忽於蘆葦間 烟霏掩昧中 卽應聲曰 靄沉沉兮楚天濶 遊子何之 盧公聞之驚愕不自定 乃曰此 間無人居 是必仙眞也 停棹不得去 夜將午四顧無人聲 惟殘星缺月倒影霜濤間 遂還 明日都下喧傳 有天仙降西湖 後踰月聞之 乃及第柳脩 寄宿於漁舟
서울 서쪽 십 리쯤에 잔잔히 흐르는 느린 물결이 있어 맑고 푸르러 바닥까지 비친다. 먼 봉우리와 먼 멧부리가 서로 더불어 하늘에 닿으니, 참으로 소식과 황정견의 문집에서 말한 서흥의 빼어난 기운과 다르지 않다.
선비 노영수가 재주와 가락이 있었다. 일찍이 날이 저물어 조각배를 띄우고 물을 거슬러 가며 호숫가 절에 묵으려 하였다. 물 가운데서 길게 휘파람 불며 아득히 얻은 바가 있는 듯이 「바람이 쓸쓸함이여 역수가 차다, 외로운 배로 홀로 간다」 하고 소리를 놓아 읊조리며, 이어 줄 이가 없음을 한스러워하였다.
문득 갈대 사이 안개가 자욱한 가운데서 곧 소리에 응하였다. 「아지랑이 잠기고 잠김이여 초나라 하늘이 넓다, 나그네여 어디로 가는가.」
노공이 듣고 놀라 스스로 안정하지 못하며 말하였다. 「이 사이에 사람 사는 데가 없으니 이는 반드시 신선이다.」 노를 멈추고 갈 수 없었다. 밤이 한밤에 가까워 사방을 돌아보아도 사람 소리가 없고, 오직 남은 별과 이지러진 달이 서리 낀 물결 사이에 그림자를 거꾸로 드리울 뿐이므로 마침내 돌아왔다.
이튿날 서울에 「하늘 신선이 서호에 내렸다」는 소문이 떠들썩하게 퍼졌다. 뒤에 달을 넘겨 들으니 곧 급제한 유수가 고깃배에 묵고 있었던 것이다.
朴君公襲居貧嗜酒 客至無以飮 求酒於靈通寺僧 用皤腹山罇 盛以泉水 封纏甚牢固送之 朴公初見喜曰 此器可受二斗許昔陳王 斗酒十千宴於平樂 杜子美亦曰還須相就飮一斗 恰有三百靑銅錢 今吾二人不費一錢 而得美酒 各飮一斗 則酣適之興不减於古人 開視之乃水也 恨眼目不長 落老胡計中 作詩寄之曰 有客來相過 囊中欠一錢 分爲廬岳酒 浪得惠山泉 似虎林中石 如蛇壁上弦 屠門猶大嚼 何况對樽前 僧見詩 更以美酒酬之
박군 공습은 가난하게 살면서 술을 즐겼다. 손이 이르러도 마시게 할 것이 없어 영통사 중에게 술을 구하였다. 중이 배가 불룩한 산 술독에 샘물을 담아 몹시 단단히 봉하고 묶어 보냈다.
박공이 처음 보고 기뻐하며 말하였다.
「이 그릇은 두 말쯤 들어가겠다. 옛날 진왕은 말술 만 냥으로 평락에서 잔치하였고, 두자미도 『모름지기 서로 나아가 한 말을 마셔야 하니 마침 삼백 푸른 동전이 있다』 하였다. 이제 우리 두 사람이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좋은 술을 얻어 저마다 한 말을 마시면 흥겨움이 옛사람에 밑돌지 않으리라.」
열어 보니 물이었다. 눈이 밝지 못하여 그 늙은 중의 꾀에 떨어진 것을 한스러워하며 시를 지어 부쳤다.
손이 있어 서로 들렀는데 주머니에 한 푼이 모자란다 여산의 술이 될까 했더니 부질없이 혜산의 샘을 얻었네 범 같은 숲 속의 돌이요 뱀 같은 벽 위의 활이라 푸줏간 문에서도 오히려 크게 씹거늘 하물며 술동이 앞에 마주함이랴
중이 시를 보고 다시 좋은 술로 갚았다.
學士彭祖逖有貪書之癖 茅茨數椽風雨四至 買桂炊玉常晏如也 爲文章必有根柢 讀書者至於難句 毅王末年相國李光縉 謙恭謹愼不及於難 公在綸菀作誥云 險阻艱難備嘗矣 亦曰殆哉 溫良恭儉以得之 終無咎也 明王初 宗伯韓彦國 引新榜諸生謁恩門崔相國作詩謝之 公和其詩引云 君子人君子 繼得英才 門生下門生 共陳謝禮 又云 師子窟中師子 同一吼音 桂枝林下桂枝 無二熏氣 其奇險如是 晩年尤嗜內典與華嚴 師壯觀學法界觀 作百韻謝之 世號祖逖菩薩頌
학사 팽조적은 책을 탐하는 버릇이 있었다. 띠집 두어 서까래에 비바람이 사방에서 닥쳐도 계수를 사서 옥을 때면서 늘 편안하였다. 글을 지으면 반드시 뿌리와 밑동이 있어 글 읽는 이가 어려운 구절에 이르게 하였다.
의왕 말년에 상국 이광진이 겸손하고 공손하고 삼가 어려움에 미치지 않았다. 공이 윤원에 있으며 고를 지었다. 「험하고 막히고 어렵고 힘든 것을 두루 겪었으나 또한 위태롭도다 하였고, 따뜻하고 어질고 공손하고 검소함으로 얻었으니 끝내 허물이 없다.」
명왕 초에 종백 한언국이 새 방의 여러 선비를 이끌고 은문 최상국을 뵙고 시를 지어 사례하였다. 공이 그 시에 화답하며 이끌어 말하였다. 「군자 사람이 군자를 이어 뛰어난 재주를 얻었고, 문생 아래 문생이 함께 사례하는 예를 폈다.」 또 「사자 굴 가운데 사자라 한가지 울음소리요, 계수 가지 아래 계수 가지라 두 가지 향기가 없다」 하였다. 그 기이하고 험함이 이와 같았다.
늘그막에 안 전적을 더욱 즐겨 화엄사 장관과 함께 법계관을 배우고 백 운을 지어 사례하였다. 세상에서 「조적보살송」이라 부른다.
學士金黃元拜大諫 屢陳藥石 未得回天之力 出守星山 路出分行驛 適會天院李載 自南國還朝 邂逅於是驛 以詩贈之 分行樓上豈無詩 留與皇華寄所思 蘆葦蕭蕭秋水國 江山杳杳夕陽時 古人不見今空歎 往事難追只自悲 誰信長沙左遷客 職卑年老鬂毛衰 縉紳皆屬和幾一百首 目之曰分行集 學士朴昇冲爲序 皇大弟大原公鏤板以傳之 公平生作詩必使夕陽二字 金相國富儀 誌於墓 以爲晩登淸要之讖
학사 김황원이 대간에 임명되어 여러 번 약과 돌 같은 말을 아뢰었으나 하늘을 돌이키는 힘을 얻지 못하고 성산에 나가 지키게 되었다. 길이 분행역으로 났는데, 마침 천원 이재가 남국에서 조정으로 돌아오다 이 역에서 우연히 만나므로 시를 주었다.
분행루 위에 어찌 시가 없으랴 황화에게 남겨 그리는 바를 부친다 갈대는 쓸쓸한 가을 물의 나라요 강산은 아득한 저녁 볕의 때라 옛사람을 보지 못해 이제 부질없이 탄식하고 지난 일은 따르기 어려워 다만 스스로 슬프다 누가 믿으랴 장사로 좌천된 나그네가 벼슬은 낮고 나이는 늙어 살쩍 털이 쇠함을
벼슬아치들이 다 이어 화답한 것이 거의 백 수라 이름 붙여 『분행집』이라 하였다. 학사 박승충이 서문을 짓고 황태제 대원공이 판에 새겨 전하였다.
공이 평생 시를 지으면 반드시 「석양」 두 글자를 썼다. 김상국 부의가 묘지를 지으며 늘그막에 청요에 오를 조짐이라 하였다.
草堂秋七月 桐雨夜三更 欹枕客無夢 隔窓虫有聲 淺莎翻亂滴 寒葉洒餘淸 自我有幽趣 知君今夜情 此學士印份作也 學士之名雷震海東者 實由此篇 僕昔佐桂陽府 一日棹舟 自孔巖縣至幸州南湖 見斷岸如苽 松衫八九株森立於側 而遺垣壞堵猶在 過者皆指之曰此印公草堂舊墟也 僕艤舟不能去 徘徊長嘯想見其人 便尋小徑登小華寺南樓 見壁上有詩 莓苔暗淡墨痕僅存 迫而視之 乃印公所題也 蕉鳴箔外知山雨 帆出峰頭見海風 可謂名下無虛士矣
초당의 가을 칠월이라 오동에 비 내리는 밤 삼경 베개에 기댄 나그네는 꿈이 없고 창 너머 벌레는 소리가 있다 얕은 사초에 어지러운 방울이 뒤집히고 찬 잎에 남은 맑음이 뿌린다 내게 그윽한 정취가 있으므로 그대의 오늘 밤 마음을 안다
이는 학사 인분이 지은 것이다. 학사의 이름이 해동에 우레처럼 떨친 것이 참으로 이 편에서 말미암았다.
내가 옛날 계양부의 보좌로 있을 때 하루는 배를 저어 공암현에서 행주 남호에 이르렀다. 끊어진 언덕이 오이 같고 소나무 삼나무 여덟아홉 그루가 옆에 빽빽이 섰는데 남은 담과 무너진 둑이 아직 있었다. 지나는 이가 다 가리키며 「이는 인공의 초당 옛터다」 하였다.
내가 배를 대고 떠나지 못하여 서성이며 길게 휘파람 불고 그 사람을 생각하였다. 곧 작은 길을 찾아 소화사 남루에 올라 벽 위에 시가 있는 것을 보았는데, 이끼가 어둡고 흐려 먹 자취가 겨우 남아 있었다. 다가가 보니 곧 인공이 적은 것이었다.
파초가 발 밖에서 울매 산비를 알고 돛이 봉우리 머리에 나매 바닷바람을 본다
이름 아래 헛된 선비가 없다 이를 만하다.
皆骨關東名山也 峰巒洞壑無非石 望之如潑墨 岩棲者 皆以客土塡罅隙然後得種蒔苽菓以食之 玉堂田致儒 杖節經是山 卽題云 草木微生禿首髮 烟霞半卷袒肩衣 兀然皆骨獨孤潔 應笑肉山都大肥
개골은 관동의 이름난 산이다. 봉우리와 골짜기가 돌 아닌 것이 없어 바라보면 먹을 뿌린 듯하다. 바위에 깃든 이는 다 다른 흙으로 틈을 메운 뒤에야 오이와 과일을 심어 먹을 수 있다.
옥당 전치유가 부절을 잡고 이 산을 지나며 곧 적었다.
풀과 나무는 잔 것이 나 대머리에 터럭 같고 안개와 노을은 반쯤 걷혀 어깨를 드러낸 옷 같다 우뚝하니 개골은 홀로 외롭고 깨끗하여 마땅히 살진 산이 온통 크게 살찜을 비웃으리라
東館是蓬萊山 玉堂號虌頂 皆神仙之職 本朝舊制 雖天子莫得擅其升黜 苟有缺 必須禁署諸儒薦引 然後用之 非有三多之譽 七步之才 則世皆謂之處 必未免血指汗顔之誚 睿王時 江南措大鄭襲明 抱奇才偉量涉世無津 嘗賦石竹花 世愛牡丹紅 栽培滿院中 誰知荒草也 亦有好花叢 色透村塘月 香傳隴樹風 地偏公子少 嬌態屬田翁 時有大閽 誦此詩達宸聰 上曰 非狗監何以知相如之尙在耶 卽令補玉堂 毅王初 賢良皇甫倬十擧擢上第 會上遊上林賞樂藥 遂成一什 侍臣莫賡載 賢良亦進一篇 誰導花無主 龍顔日賜親也應迎早夏 獨自殿餘春 午睡風吹覺 晨粧雨洗新 宮娥莫相妬 雖似竟非眞 上大加稱賞 其後選部進擬補館職老 上觀姓名曰莫是嘗進應制芍藥者耶 卽以黰翰點之 直東館 鄭公後入樞掖居喉舌 受遺輔主謇蹇有王臣風 皇甫公亦掌綸誥 出入臺閣十餘年 噫風雲際會 古人謂之千載 今觀二公 唯以一篇見知 不煩夢卜 自然而合 明良相値豈偶然哉
동관은 봉래산이요 옥당은 자라 머리라 하니 다 신선의 벼슬이다. 본조의 옛 제도에 비록 천자라도 그 오르내림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진실로 빈자리가 있으면 반드시 금서의 여러 선비가 천거하여 이끈 뒤에야 썼다. 세 가지 많다는 기림과 일곱 걸음의 재주가 있지 않으면 세상이 다 이를 처하다 하여, 반드시 손가락에 피 내고 낯에 땀 흘린다는 비웃음을 면하지 못하였다.
예왕 때 강남의 가난한 선비 정습명이 남다른 재주와 큰 도량을 품었으나 세상을 건널 나루가 없었다. 일찍이 석죽화를 읊었다.
세상은 모란의 붉음을 사랑하여 뜰 안 가득 심고 기른다 누가 알랴 거친 풀에도 또한 좋은 꽃떨기가 있음을 빛깔은 마을 못의 달에 스미고 향기는 언덕 나무의 바람에 전한다 땅이 궁벽하여 공자가 적으니 고운 자태가 밭 늙은이에게 속하네
그때 큰 문지기가 있어 이 시를 외워 임금의 들으심에 이르게 하였다. 임금께서 「구감이 아니었으면 무엇으로 상여가 아직 있음을 알았겠는가」 하시고 곧 옥당에 채우게 하셨다.
의왕 초에 현량 황보탁이 열 번 과거에 나아가 높은 등급에 뽑혔다. 마침 임금께서 상림에 노닐며 작약을 감상하시다 마침내 한 편을 이루셨는데 모시는 신하가 이어 짓지 못하였다. 현량이 또한 한 편을 올렸다.
누가 꽃에 주인이 없다 이르는가 용의 얼굴이 날마다 가까이 내리신다 또한 마땅히 이른 여름을 맞아 홀로 남은 봄을 배웅하리라 낮잠은 바람이 불어 깨우고 새벽 단장은 비가 씻어 새롭다 궁녀들아 서로 시새우지 말라 비록 닮았으나 마침내 참이 아니다
임금께서 크게 칭찬하셨다. 그 뒤 선부가 관직에 채울 이를 헤아려 올리매 임금께서 성과 이름을 보시고 「이가 일찍이 작약을 지어 올린 이가 아닌가」 하시고, 곧 검은 붓으로 점찍어 동관에 두셨다.
정공은 뒤에 추액에 들어가 임금의 말을 맡는 자리에 있으면서 유명을 받아 임금을 도와, 곧고 곧아 왕의 신하다운 풍모가 있었다. 황보공 또한 윤고를 맡아 대각을 드나든 것이 열 해 남짓이다.
아, 바람과 구름이 만나는 것을 옛사람은 천 년이라 하였다. 이제 두 공을 보건대 오직 한 편으로 알아줌을 얻어 꿈과 점을 번거로이 하지 않고 절로 그러히 합하였으니, 밝은 임금과 좋은 신하가 서로 만남이 어찌 우연이겠는가.
白雲子葉儒冠學浮屠氏敎 包腰遍遊名山 途中聞鶯感成一絶 自矜降觜黃衣麗 宜向紅檣緣樹鳴 何事荒村寥落地 隔林時送兩三腥 吾友耆之失意遊江南 聞鶯亦作詩云 田家闞熟麥將鐰 緣樹初聞黃粟留 似識洛陽花下客 殷勤百轉未曾休 古今詩人托物寓意 多類此 二公之作初物與之相期 吐縰悽惋若出一人之口 其有才不見用 流落全涯羈遊旅迫之狀 了了然皆見於數字間 則所謂詩源乎心者信哉
백운자가 선비의 갓을 버리고 부도씨의 가르침을 배워 허리에 걸망을 지고 이름난 산을 두루 노닐었다. 길에서 꾀꼬리를 듣고 느껴 절구 하나를 이루었다.
스스로 뽐내는 노란 부리에 누런 옷이 고우니 마땅히 붉은 담 푸른 나무를 향해 울어야 하리 무슨 일로 거친 마을 쓸쓸한 땅에서 숲 너머로 때때로 두어 소리를 보내는가
내 벗 기지가 뜻을 잃고 강남에 노닐 때 꾀꼬리를 듣고 또한 시를 지었다.
농가의 볕이 익어 보리를 베려 하는데 푸른 나무에서 처음 꾀꼬리 소리를 듣네 낙양 꽃 아래의 나그네를 아는 듯이 은근히 백 번 굴려 일찍이 그치지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시인이 물건에 부쳐 뜻을 붙임이 흔히 이와 같다. 두 공의 지음은 처음에 물건과 서로 기약한 것인데 실을 토하듯 처량하고 애달파 마치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듯하다. 재주가 있어도 쓰이지 못하고 물결에 떠돌아 평생을 나그네로 다니며 다그침을 받는 모습이 또렷이 다 몇 글자 사이에 드러나니, 이른바 시가 마음에서 근원한다는 말이 참으로 그렇다.
雞林人金生筆法奇妙 非晉魏時人所跂望 至本朝 唯大鑑國師 學士洪灌擅其名 凡寶殿花樓額題 及屛障銘戒 皆二公筆也 淸平眞樂公卒 西湖僧惠素撰祭文 而國士書之 尤盡力刻石以傳 世謂之三絶 固非崔楊輩 豐肌脆骨者之所及 當有評者曰 引鐵爲筯 摧山作骨 力可伏輈 利堪穿札 宋人有以精嬚妙墨 求國師筆跡者 請學士權廸作二絶 寫以附之 蘇子文章海外聞 宋朝天子火其文 文章可使爲灰燼 落落雄名安可焚 亡其一篇
계림 사람 김생의 필법은 기이하고 오묘하여 진나라 위나라 때 사람도 바라볼 바가 아니다. 본조에 이르러서는 오직 대감국사와 학사 홍관이 그 이름을 떨쳤다. 무릇 보전과 화루의 현판 글씨와 병풍과 휘장의 명과 계가 다 두 공의 붓이다.
청평 진락공이 죽으매 서호의 중 혜소가 제문을 짓고 국사가 이를 썼는데, 더욱 힘을 다해 돌에 새겨 전하니 세상에서 삼절이라 한다. 참으로 최씨와 양씨의 무리처럼 살은 넉넉하나 뼈가 무른 이들이 미칠 바가 아니다. 마땅히 평하는 이가 있어 「쇠를 당겨 젓가락을 삼고 산을 꺾어 뼈를 지었으니, 힘은 끌채를 엎을 만하고 날카로움은 문서를 뚫을 만하다」 하였다.
송나라 사람이 정한 종이와 오묘한 먹으로 국사의 필적을 구하는 이가 있어, 학사 권적에게 절구 두 수를 짓게 하고 써서 붙였다.
소식의 문장이 바다 밖에 들렸는데 송나라 조정의 천자가 그 글을 불살랐네 문장은 재가 되게 할 수 있으나 우뚝한 웅장한 이름을 어찌 태우랴
그 한 편은 잃어버렸다.
堂弟尙書惟卿 相門子 少以風流自命 與之遊者 若近玉山行 嘗中酒入賞春亭 吟賞木芍藥 樞府李陽實從傍見之 愛其風韻贈詩云 一片隴西月 飛來照洛城 別時如久雨 逢處若新晴 韻多不載 昔山谷論詩 以謂不易古人之意 而造其語 謂之換骨 規模古人之意 而形容之 謂之奪胎 此雖與夫活剝生呑者 相去如天淵 然未免剽掠潛窃以爲之工 豈所謂出新意於古人所不到者之爲妙哉 僕得是詩 以謂此古人得意句 昨雙明齋見李樞密論詩 語及此詩 李相俊昌愀然變容曰此先公贈某詩也 僕驚嘆不已 謂座客曰若以此詩編小杜集中 孰知其非
사촌아우 상서 유경은 재상 집안의 아들이다. 젊어 풍류로 스스로 이름하여 그와 함께 노니는 이는 옥산에 가는 듯하였다. 일찍이 술에 취해 상춘정에 들어가 목작약을 읊고 감상하였다. 추부 이양실이 곁에서 보고 그 운치를 사랑하여 시를 주었다.
한 조각 농서의 달이 날아와 낙성을 비춘다 헤어질 때는 오랜 비 같더니 만나는 곳은 새로 갠 듯하다
운이 많아 다 싣지 않는다.
옛날 산곡이 시를 논하며 「옛사람의 뜻을 바꾸지 않고 그 말을 지음을 환골이라 하고, 옛사람의 뜻을 본떠 그려 냄을 탈태라 한다」 하였다. 이것이 비록 산 채로 벗기고 통째로 삼키는 이들과 하늘과 못만큼 거리가 있으나, 그래도 훔치고 몰래 가져다 솜씨로 삼음을 면하지 못하니, 어찌 이른바 옛사람이 이르지 못한 곳에서 새 뜻을 내는 것의 오묘함이겠는가.
내가 이 시를 얻고 「이는 옛사람이 뜻을 얻은 구절이다」 하였다. 어제 쌍명재에서 이추밀이 시를 논하는 것을 보다가 말이 이 시에 미쳤다. 이상 준창이 서글피 낯빛을 바꾸며 「이는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아무개에게 주신 시입니다」 하였다. 내가 놀라 감탄하기를 그치지 않고 자리의 손에게 말하였다.
「만약 이 시를 소두의 문집 가운데 엮어 넣는다면 누가 그것이 아님을 알겠는가.」
石鼓在岐陽孔子廟中 自周至唐幾二千載 詩書所傳 及諸史百子中固無所傳 且韋韓二公皆博古者 何以卽謂周宣王鼓 著於歌詞剖析無遺 歐陽子亦以爲有三疑焉 昨在書樓 偶讀其文 有會於余心者 吟成二十韻 以待後世君子云 木履傳爲萬世珍 壁經亦鼓諸儒舌 窮隆石鼓古稱奇 況是夫子玄宮物 周宣昔日啓中興 方召聯翩揮將鉞 戎車三千若準飛 北征玁狁南羈越 拓境已復文虎基 盛業宜將播琴瑟 振旅闐闐歌來芑 愼微亦得陳吉日 應念當時將帥勤 幾年刀韣生蟣虱 山河作誓可無亡 粉壁圖形亦不滅 豈如月斧墜雲根 科斗奇文勒勳伐 其辭渾芳簡而淳 奧理宜當載風什 胡奈詩官見不收 滄海側畔遺明月 嗟哉去周千載餘 雨打風催多壞缺 所留一行十數字 蛇龍片甲誰復惜 我車旣攻馬亦同 此語乃與詩相涉 韓公固亦深於詩 一讀卽認周宣烈 風雲入筆騁雄詞 剖析不肯遺毫髮 不然斯文成寒灰 豈與崇高得幷列 有如夢中遊帝所 暫聽鈞天悉淸越 我今吟哦欲補之 毛錐已鈍難緝綴 染指雖知九鼎味 飛鳥豈補一字脫
석고는 기양 공자의 사당 안에 있다. 주나라에서 당나라까지 거의 이천 해인데, 시와 서가 전한 바와 여러 사서와 백가 가운데 참으로 전하는 바가 없다. 또 위응물과 한유 두 공은 다 옛것에 넓은 이들인데 무엇으로 곧 주 선왕의 북이라 하여 가사에 드러내고 쪼개어 밝히기를 남김없이 하였는가. 구양자 또한 세 가지 의심이 있다 하였다.
어제 서루에서 우연히 그 글을 읽다가 내 마음에 맞는 바가 있어 스무 운을 읊어 이루고 뒷세상의 군자를 기다린다.
나막신이 전하여 만세의 보배가 되고 벽 속 경전이 또한 여러 선비의 혀를 두드렸네 우뚝한 석고를 옛날부터 기이하다 일컫는데 하물며 이것이 부자의 그윽한 집 물건임에랴 주 선왕이 옛날 중흥을 열매 방숙과 소호가 잇달아 도끼를 휘둘렀네 병거 삼천이 나는 듯 가지런하여 북으로 험윤을 치고 남으로 월을 굴레 씌웠다 지경을 넓혀 이미 문왕과 무왕의 터를 회복하니 성한 업을 마땅히 거문고와 비파에 펴야 하리 군사를 거두어 진진히 「내기」를 노래하고 작음을 삼가 또한 「길일」을 펴게 되었네 마땅히 그때 장수의 부지런함을 생각하니 몇 해를 칼집에 서캐와 이가 났던가 산과 하수로 맹세하니 없어짐이 없을 만하고 흰 벽에 모습을 그린 것 또한 스러지지 않네 어찌 달 도끼가 구름 뿌리에 떨어져 올챙이 같은 기이한 글로 공적을 새김만 하랴 그 말이 어수룩하고 간결하고 순박하여 깊은 이치가 마땅히 국풍과 아송에 실려야 하리 어찌하여 시를 맡은 이가 보고도 거두지 않아 푸른 바다 곁에 밝은 달을 버렸는가 슬프다 주나라를 떠난 지 천여 해라 비가 치고 바람이 재촉하여 무너지고 이지러짐이 많다 남은 한 줄 열몇 글자가 뱀과 용의 조각 비늘이니 누가 다시 아끼랴 「내 수레가 이미 다스려지고 말도 함께한다」 이 말이 곧 시와 서로 걸린다 한공은 참으로 또한 시에 깊었으므로 한 번 읽고 곧 주 선왕의 공렬임을 알아보았네 바람과 구름을 붓에 들여 웅장한 말을 달리며 쪼개어 밝히기를 터럭 하나도 남기려 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글이 찬 재가 되었으리니 어찌 높고 높은 것과 나란히 벌여질 수 있었으랴 마치 꿈속에 하늘 궁궐에 노닐며 잠시 균천의 맑고 높은 소리를 다 들은 듯하다 내가 이제 읊조려 이를 채우려 하나 붓끝이 이미 무디어 얽기 어렵다 손가락을 적셔 비록 아홉 솥의 맛을 안다 해도 나는 새가 어찌 빠진 한 글자를 채우랴
天下之事 不以貴賤貧富爲之高下者 惟文章耳 盖文章之作 如日月之麗天也 雲烟聚散於大虛也 有目者無不得覩 不可以掩蔽 是以布葛之士 有足以垂光虹霓 而趙孟之貴 其勢豈不足以富國豊家 至於文章 則蔑稱焉 由是言之 文章自有一定之價 富不爲之減 故歐陽永叔云 後世苟不公 至今無聖賢 濮陽世材才士也 累擧不得第 忽病目作詩 老與病相隨 窮年一布衣 玄華多掩映 紫石少光輝 怯照燈前字 羞看雪後暉 待看金榜罷 閉目坐忘機 三娶輒棄去 無兒息托錐之地 簞瓢不繼 年至五十得一第 客有東都以歿 至其文章 豈以窮躓而廢之
천하의 일에 귀하고 천하고 가난하고 넉넉함으로 높낮이를 삼지 않는 것은 오직 문장뿐이다. 대개 문장의 지음은 해와 달이 하늘에 걸린 것 같고 구름과 안개가 큰 허공에 모였다 흩어지는 것 같아, 눈 있는 이는 보지 못하는 이가 없어 가려 덮을 수 없다. 그러므로 베옷 갈옷 입은 선비도 무지개에 빛을 드리우기에 넉넉하고, 조맹의 귀함으로 그 세력이 어찌 나라를 넉넉하게 하고 집을 풍족하게 하기에 모자라겠는가마는 문장에 이르러서는 일컬을 것이 없다.
이로 말하면 문장에는 절로 일정한 값이 있어 넉넉함으로도 덜 수 없다. 그러므로 구양영숙이 「뒷세상이 진실로 공정하지 않다면 지금까지 성현이 없었으리라」 하였다.
복양 세재는 재주 있는 선비다. 여러 번 과거에 나아갔으나 급제하지 못하였다. 문득 눈을 앓아 시를 지었다.
늙음과 병이 서로 따르니 해가 다하도록 한 벌 베옷이라 검은 꽃이 많이 가리고 자줏빛 돌은 빛이 적다 등불 앞 글자를 비추기 겁나고 눈 뒤의 빛을 보기 부끄럽다 금방이 파하기를 기다려 보고 눈을 감고 앉아 기틀을 잊으리라
세 번 장가들었으나 문득 버리고 갔고, 아들이 없고 송곳 꽂을 땅도 없어 밥그릇과 표주박이 잇지 못하였다. 나이 쉰에 이르러 한 번 급제하고 나그네로 동도에서 죽었다. 그 문장에 이르러서는 어찌 궁하고 넘어졌다 하여 버리겠는가.
世以科第取士尙矣 自漢魏而下 緜歷六朝至唐宋最盛 本朝亦遵其法三年一比 上下數千載以文拾靑紫者 不可勝紀 然先多士而後大拜者甚鮮 盖文章得於天性 而爵祿人之所有也 苟求之以道 則可謂易矣 然天地之於萬物也 使不得專其美 故角者去齒 翼則兩其足 名花無實 彩雲易山 至於人亦然 畀之以奇才茂藝 則革功名而不與 理則然矣 是以自孔孟荀楊 以至韓柳李杜 雖文章德譽足以聳動千古 而位不登於卿相矣 能以龍頭之高選 得躡台衡者 實古人所謂楊州駕鶴也 豈可以多得哉 本朝以狀頭入相者 十有八人 今崔洪胤琴克儀 相繼已到黃扉 而僕與金侍郞君綏 幷遊誥苑 其餘得列於淸華亦十五人 何其盛也 今上卽阼六年己巳 金公出守南州 諸公會于檜里以餞之 世謂之龍頭會 望之若登仙 僕作一篇記之 龍飛位九五 下有羣龍聚 呑土明月珠 騰躍靑雲路 旣登李膺門 當霈殷相雨 但貴華歆頭 腰尾奚足數 詞語雖蕪拙 庶幾使後世 皆得知本朝得人之盛 雖唐虞莫能及也
세상에서 과거로 선비를 뽑음이 오래되었다. 한나라와 위나라 아래로 육조를 지나 당나라와 송나라에 이르러 가장 성하였고, 본조 또한 그 법을 좇아 세 해에 한 번 견주었다. 위아래 수천 해에 글로 푸른 인끈과 자줏빛 인끈을 주운 이를 이루 다 적을 수 없다. 그러나 여러 선비의 앞에 서고 뒤에 정승에 오른 이는 몹시 드물다.
대개 문장은 하늘의 성품에서 얻고 벼슬과 녹은 사람이 가진 바다. 진실로 도로 구하면 쉽다 이를 만하다. 그러나 하늘과 땅이 만물에 대하여 그 아름다움을 오로지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므로 뿔이 있는 것은 이를 없애고, 날개가 있으면 발을 둘로 하며, 이름난 꽃은 열매가 없고 고운 구름은 흩어지기 쉽다. 사람에 이르러서도 또한 그러하여, 남다른 재주와 무성한 재예를 주면 공과 이름을 바꾸어 주지 않으니 이치가 곧 그러하다.
그래서 공자와 맹자와 순자와 양웅에서 한유와 유종원과 이백과 두보에 이르기까지, 비록 문장과 덕의 기림이 천고를 놀라 움직이기에 넉넉하였으나 자리는 경상에 오르지 못하였다. 장원의 높은 뽑힘으로 정승 자리를 밟을 수 있는 것은 참으로 옛사람이 이른바 양주에서 학을 타는 일이니 어찌 많이 얻을 수 있겠는가.
본조에서 장원으로 정승에 든 이가 열여덟 사람이다. 이제 최홍윤과 금극의가 잇달아 이미 황비에 이르렀고, 나와 김시랑 군수가 아울러 고원에 노닐며, 그 나머지 청화한 자리에 벌여 선 이가 또한 열다섯 사람이니 어찌 그리 성한가.
지금 임금께서 자리에 오르신 여섯 해 기사년에 김공이 남주에 나가 지키게 되매 여러 공이 회리에 모여 전송하니, 세상에서 용두회라 하여 바라보기를 신선에 오르는 듯하였다. 내가 한 편을 지어 적는다.
용이 구오의 자리에 날매 아래에 뭇 용이 모였네 흙을 삼키고 밝은 달구슬을 물고 푸른 구름 길에 뛰어올랐네 이미 이응의 문에 올랐으니 마땅히 은나라 재상의 비를 쏟으리라 다만 화흠의 머리를 귀히 여길 뿐 허리와 꼬리를 어찌 셀 것이랴
말이 비록 거칠고 서투르나, 거의 뒷세상으로 하여금 다 본조가 사람 얻음의 성함을 알게 하려 함이다. 비록 요임금과 순임금의 때인들 미칠 수 없으리라.
傳曰在南爲橘 在北爲棖 盖草木非其土莫遂其性 昨出金閨至御花苑 見橘樹高一丈 結實甚多 問苑吏云 南州人所獻 旦旦以鹽水沃其根 故得盛茂 噫草樹固無知物也 猶資灌漑栽培之力 得致於斯 況人主之用人 毋論遠近踈戚 結之以恩愛 養之以祿秩 則安有不盡忠竭誠 以補國家哉 因書十二韻 庶幾採詩者 用塵乙覽 誰把炎州種 移栽禁御傍 脫身辭瘴海 托地近宮墻 玉瘦叢多刺 雲繁葉有芒 春葩渾帶白 秋實漸含黃 浩露凝爲腦 生綃用隔瓢 摘宜煩素手 熟必待淸霜 噀霧沾衣袖 飛泉沃肺膓 縱經淮水遠 不減洞庭香 氣味含仙界 音塵隔古鄕 雖云非土性 只爲被恩光 耻與千奴幷 惟容四皓藏 君看圯上老 去楚佐高皇
전에 이르기를 「남쪽에 있으면 귤이 되고 북쪽에 있으면 탱자가 된다」 하였으니, 대개 풀과 나무는 그 흙이 아니면 그 성품을 이루지 못한다.
어제 금규를 나와 어화원에 이르니 귤나무가 높이 한 길에 열매 맺음이 몹시 많았다. 동산 아전에게 물으니 「남주 사람이 바친 것인데, 날마다 소금물로 그 뿌리를 적시므로 성하고 무성함을 얻었습니다」 하였다.
아, 풀과 나무는 참으로 앎이 없는 물건인데도 오히려 물 대고 북돋는 힘에 힘입어 이에 이를 수 있었다. 하물며 임금이 사람을 씀에 멀고 가깝고 성글고 친함을 논하지 말고, 은혜와 사랑으로 맺고 녹과 벼슬로 기르면 어찌 충성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나라를 돕지 않는 이가 있겠는가. 이로 인해 열두 운을 적으니, 거의 시를 캐는 이가 임금의 보심에 티끌이나마 올렸으면 한다.
누가 더운 고을의 씨를 가져다 궁궐 곁에 옮겨 심었는가 몸을 벗어 장기 서린 바다를 떠나 땅을 붙여 궁궐 담에 가까이 있네 옥이 여위어 떨기에 가시가 많고 구름이 번성하여 잎에 까끄라기가 있다 봄꽃은 온통 흰빛을 띠고 가을 열매는 차츰 누름을 머금는다 넓은 이슬이 엉겨 골이 되고 생사로 짜서 바가지를 가른다 따기는 마땅히 흰 손을 번거롭게 하고 익기는 반드시 맑은 서리를 기다린다 안개를 뿜어 옷소매를 적시고 나는 샘이 허파와 창자를 적신다 비록 회수의 멂을 지났으나 동정의 향기가 덜하지 않다 기미는 신선 세계를 머금었고 소식은 옛 고향과 막혔다 비록 흙의 성품이 아니라 하나 다만 은혜의 빛을 입은 까닭이다 천 종과 나란함을 부끄러워하고 오직 네 늙은이의 감춤을 용납한다 그대는 보라 다리 위의 늙은이가 초나라를 떠나 고황을 도운 것을
耆之避地江南幾十餘載 携病妻還京師 無托錐之地 偶遊一蕭寺 岸幅巾兀坐長嘯 僧問君是何人放傲如是 卽書二十八字 早把文章動帝京 乾坤一介老書生 如今始覺空門味 滿院無人識姓名
기지가 강남에 땅을 피해 산 지 거의 십여 해였다. 병든 아내를 데리고 서울에 돌아왔으나 송곳 꽂을 땅이 없었다. 우연히 한 쓸쓸한 절에 노닐며 폭건을 쓰고 우뚝 앉아 길게 휘파람 불었다. 중이 물었다.
「그대는 어떤 사람이기에 오만함을 놓음이 이 같은가.」
곧 스물여덟 자를 썼다.
일찍이 문장으로 제경을 움직였는데 하늘과 땅에 한낱 늙은 서생이라 이제야 비로소 공문의 맛을 깨달으니 온 절에 성과 이름을 아는 이가 없구나
白學士光臣 掌貢籍 及解鏁 新牓諸生共設齋筳 祝壽祺 便謁學士於玉筍亭 設小飮 以一絶示之 壽夭由來稟自天 不因祈禱更延年 醉眠昨夜有奇夢 知是叢誠所感然
백학사 광신이 과거를 맡았다. 시험이 끝나매 새로 급제한 여러 선비가 함께 재를 베풀고 오래 살고 복되기를 빌었다. 곧 옥순정에서 학사를 뵙고 작은 술자리를 베푸니 절구 하나를 보였다.
오래 살고 일찍 죽음은 본디 하늘에서 받는 것이니 빎으로 인해 다시 해를 늘이지 못한다 어젯밤 취해 자다 남다른 꿈이 있었으니 이는 모인 정성이 느끼게 한 바인 줄 안다
昔元曉大聖 混迹屠沽中 嘗撫玩曲項葫蘆 歌舞於市 名之曰無㝵 是後好事者 綴金鈴於上 垂彩帛於下以爲飾 拊擊進退皆中音節 乃摘取經論偈頌 號曰無㝵歌 至於田翁亦效之以爲戱 無㝵智國嘗題云 此物久將無用用 昔人還以不名名 近有山人貫休作偈云 揮雙袖所以斷二障 三擧足所以越三界 皆以眞理比之 僕亦見其舞作讚 復若秋蟬 頸如夏鼈 其曲可以從人 其虛可以容物 不見窒於密石 勿見笑於葵壺 韓湘以之藏世界 莊叟以之泛江湖 孰爲之名 小性居士 孰爲之讚 隴西駝李
옛날 원효대성이 백정과 술장수 사이에 자취를 섞었다. 일찍이 목이 굽은 조롱박을 어루만지고 놀며 저자에서 노래하고 춤추면서 이름을 「무애」라 하였다. 이 뒤로 일 좋아하는 이가 위에 금방울을 달고 아래에 채색 비단을 드리워 꾸미고, 두드리며 나아가고 물러남이 다 가락에 맞았다. 이에 경과 논의 게송을 따서 「무애가」라 이름하였다. 밭 늙은이에 이르러서도 또한 이를 본떠 놀이로 삼았다.
무애지국이 일찍이 적었다. 「이 물건은 오래도록 쓸모없음으로 쓰이고, 옛사람은 도리어 이름 없음으로 이름하였다.」
요사이 산인 관휴가 게를 지었다. 「두 소매를 휘두름은 두 가지 막힘을 끊는 까닭이요, 세 번 발을 듦은 세 세계를 넘는 까닭이다.」 다 참된 이치로 이에 견주었다.
나도 또한 그 춤을 보고 기림을 지었다. 「배는 가을 매미 같고 목은 여름 자라 같다. 그 굽음은 사람을 따를 만하고 그 빔은 물건을 담을 만하다. 빽빽한 돌에 막힘을 보이지 않고 아욱과 병에 비웃음을 보이지 말라. 한상자는 이로써 세계를 감추었고 장수는 이로써 강과 호수에 띄웠다. 누가 이름을 지었는가, 소성거사다. 누가 기림을 지었는가, 농서의 타다.」
僕八九歲 隨一老儒習讀書 嘗敎讀古人警句云 花笑檻前聲未聽 鳥啼林下淚難看 僕曰終不若柳嚬門外意難知 詞甚的語意俱妙 老儒愕然 毅王詔五道及東西兩界 分遣吏 悉錄諸院字郵置所題詩 悉納御府 察其風謠 及民物利病 因擇名章俊語編上 以爲詩選 有措大題驛壁云 終日曝背耕 而無一斗粟 換使坐廟堂 食穀至萬斛 金尙書莘尹出鎭龍灣幕 亦作詩 割民媚上成風久 擧國滔滔盡詭隨 厚祿高官雖可戀 靑天白日固難欺 齊王疾病如能瘳 摯烹醢豈敢辭 寄語友朋莫相笑 正而不足是男兒 及是吏錄此兩篇進呈 上閱詩 悵讀至此黙然久之 左右咸懼不測 及秋命公移鎭東藩 又明年還赴龍灣幕 三受擁旄之命 朝紳罕比 西都古高句麗所都也 控帶山河 氣像秀異 自古奇人異士多出焉 睿王時 有俊才姓鄭者 忘其名 垂髫時 送友人詩云 雨歇長堤草色多 送君千里動悲歌 大同江水何時盡 別淚年年添作波 又作詩云 桃李無言兮 蝶自徘徊 梧桐蕭洒兮 鳳凰來儀 無情物引有情物 况是人不交相親 君自遠方來此邑 不期相會是良因 七月八月天氣凉 同衾共枕未盈旬 我若陳雷膠漆信 君今棄我如敗茵 父母在兮不遠遊 欲從不得心悠悠 簷前巢燕有雌雄 池上鴛鴦成雙浮 何人驅此鳥 使我解離愁 其後赴上都擢高第 出入省闥 謇謇有古諍臣風 嘗扈從長源亭題詩云 風送客帆雲片片 露凝宮瓦玉鱗鱗 綠楊閉戶八九屋 明月倚樓三兩人 其語飄逸出塵皆類此 及作東山齋眞靜先生祭文 上亦命作東山齋記 作表云 鶴背登眞 乘白雲於杳漠 螭頭紀事 披紫詔之丁寧 又云 年踰七十 不離中壽之徒 功滿三千 必被上淸之召 又云 而出入先生之門 其來久矣 况對揚天子之命 無所辭焉 至今皆膾炙不已焉
내가 여덟아홉 살에 한 늙은 선비를 따라 글 읽기를 익혔다. 일찍이 옛사람의 빼어난 구절을 가르쳐 읽게 하였다. 「꽃이 난간 앞에서 웃어도 소리를 듣지 못하고, 새가 숲 아래에서 울어도 눈물을 보기 어렵다.」 내가 「끝내 『버들이 문밖에서 찡그리니 뜻을 알기 어렵다』만 못합니다」 하니, 말이 몹시 딱 들어맞고 말과 뜻이 다 오묘하므로 늙은 선비가 깜짝 놀랐다.
의왕이 다섯 도와 동서 두 지경에 조서하여 아전을 나누어 보내, 여러 원과 역참에 적힌 시를 다 적어 어부에 바치게 하고 그 풍요와 백성과 물산의 이롭고 병듦을 살피게 하였다. 이로 인해 이름난 글과 빼어난 말을 가려 엮어 올려 『시선』으로 삼았다.
어떤 가난한 선비가 역참 벽에 적었다.
온종일 등을 볕에 쬐며 밭 갈아도 한 말 조도 없다 바꾸어 저 조정에 앉은 이는 곡식 먹는 것이 만 섬에 이른다
김상서 신윤이 용만 막에 나가 진을 치며 또한 시를 지었다.
백성을 깎아 위에 잘 보임이 풍속을 이룬 지 오래되어 온 나라가 도도히 다 속여 따른다 두터운 녹과 높은 벼슬이 비록 그리울 만하나 푸른 하늘 흰 해는 참으로 속이기 어렵다 제나라 왕의 병을 만약 낫게 할 수 있다면 삶기고 젓 담기는 일인들 어찌 감히 사양하랴 벗들에게 말을 부치노니 서로 비웃지 말라 바르되 넉넉하지 못한 것이 사내다
이때에 이르러 아전이 이 두 편을 적어 올렸다. 임금께서 시를 보시다 서글피 여기에 이르러 잠잠히 오래 계시니 좌우가 다 헤아릴 수 없어 두려워하였다. 가을에 이르러 공에게 명하여 동번으로 진을 옮기게 하시고 또 이듬해에 용만 막으로 돌아가게 하시니, 세 번 깃발 잡는 명을 받은 것이라 조정 신하에 견줄 이가 드물었다.
서도는 옛 고구려가 도읍한 곳이다. 산과 하수를 당기고 띠 둘러 기상이 빼어나고 남다르므로 예로부터 기이한 사람과 남다른 선비가 많이 나왔다.
예왕 때 재주가 빼어난 정씨 성을 가진 이가 있었으나 그 이름은 잊었다. 더벅머리 때 벗을 보내는 시를 지었다.
비 갠 긴 둑에 풀빛이 짙은데 그대를 천 리에 보내며 슬픈 노래가 움직인다 대동강 물이 어느 때에 다하랴 헤어지는 눈물이 해마다 물결에 더해지는 것을
또 시를 지었다.
복사와 오얏은 말이 없어도 나비가 절로 서성이고 오동이 쓸쓸히 시원하매 봉황이 와서 거동한다 정 없는 물건도 정 있는 물건을 이끄는데 하물며 사람이 서로 친하지 않으랴 그대가 먼 데서 이 고을에 왔으니 서로 만남을 기약하지 않았음이 좋은 인연이라 칠월 팔월 날씨가 서늘한데 이불을 같이하고 베개를 함께한 것이 열흘도 차지 않았네 내가 만약 진중과 뇌의처럼 아교와 옻의 믿음을 지녔는데 그대는 이제 나를 해진 자리처럼 버리는가 부모가 계시매 멀리 노닐지 못하니 좇고자 하여도 얻지 못해 마음이 아득하다 처마 앞 제비 둥지에는 암수가 있고 못 위 원앙은 쌍을 이루어 뜬다 누가 이 새들을 몰아다가 나로 하여금 헤어지는 시름을 풀게 하는가
그 뒤 서울에 나아가 높은 등급에 뽑혀 성문을 드나들었고 곧고 곧아 옛 간쟁하는 신하의 풍모가 있었다. 일찍이 임금을 모시고 장원정에 가서 시를 적었다.
바람이 나그네 돛을 보내니 구름이 조각조각이요 이슬이 궁궐 기와에 엉기니 옥 비늘이 반짝인다 푸른 버들에 문을 닫은 것이 여덟아홉 집이요 밝은 달에 다락에 기댄 이가 두세 사람이라
그 말이 나부껴 티끌을 벗어남이 다 이와 같다.
동산재 진정선생의 제문을 짓고 임금께서 또한 「동산재기」를 짓게 하셨다. 표를 지어 「학의 등으로 참됨에 올라 흰 구름을 아득한 데 타고, 이수로 일을 적어 자줏빛 조서의 간곡함을 폈습니다」 하고, 또 「나이가 일흔을 넘어 중수의 무리를 떠나지 않고, 공이 삼천을 채워 반드시 상청의 부르심을 입으리라」 하고, 또 「선생의 문을 드나든 지 그 온 것이 오래며, 하물며 천자의 명을 대하여 드날림에 사양할 바가 없습니다」 하였다. 지금까지 다 회자되기를 그치지 않는다.
紫薇雞林壽翁 文章峻秀獨步一時 素有人倫鑑識 常出按南州到完山 見一小吏名崔鉤 鐵面嚴冷 爲人沉黙木訥 有遠到器局 携至京師養之如己子 訓以書史及綴述之規 斐然有成 詞與筆俱遒勁 及冠應擧中丙第 遊石渠入金馬 嘗謇謇匪躬 欲以循國家之急 嘗和友人詠柳詩云 西子眉長工作黛 小蠻腰細不勝嬌 又未開牡丹倚墻窺 宋玉隔壁挑相如 詞語流麗皆此類
자미 계림 수옹은 문장이 높고 빼어나 한때에 홀로 걸었다. 본디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이 있었다.
일찍이 남주를 살피러 나가 완산에 이르러 최구라는 작은 아전 하나를 보았는데, 쇠 같은 낯에 엄하고 차가우며 사람됨이 잠잠하고 어눌하였으나 멀리 이를 그릇과 국량이 있었다. 서울로 데려와 제 아들같이 기르고 글과 역사와 글 짓는 법도로 가르치니, 빛나게 이룸이 있어 글과 붓이 다 굳세었다. 갓을 쓰고 과거에 응하여 병과에 들었고 석거에 노닐며 금마에 들었다. 일찍이 곧고 곧아 제 몸을 돌보지 않고 나라의 급함을 좇으려 하였다.
일찍이 벗의 「버들을 읊다」에 화답하였다. 「서시의 눈썹이 길어 눈썹먹으로 그린 듯하고, 소만의 허리가 가늘어 아리따움을 이기지 못한다.」 또 「피지 않은 모란이 담에 기대어 엿보고, 송옥이 벽을 사이에 두고 상여를 돋운다」 하였다. 말이 흐르듯 고움이 다 이런 무리다.
士子徐文遠 與檀公惇惇禮自小相友愛 俱儒門子弟也 才與年相去伯仲間爾 屢以篇什相贈答 徐子作詩云 權子和我篇脫略三四聯中有何等語 思之空悵然 比如中秋十六夜 十分明月一分虧 光彩最可憐 又如太眞初罷溫泉浴 鬢亂釵橫 濃抹小損態度有餘娟 句句鏘鏘紙上動 却恐飛去爲雲烟 不然謂我久客易感傷 故令危辭苦語不盡傳云云 夫鍾天所賦生而有之 不可以因物而遷 故仲尼之生 戱以俎豆 文王之生 在師不勞 是皆因自然 本不待於韋弦 故曰非義襲而取之是也
선비 서문원과 단공 돈돈례는 어릴 때부터 서로 우애하였으니 다 유가의 자제다. 재주와 나이가 서로 백중 사이일 뿐이었다. 여러 번 글월로 서로 주고받았다. 서자가 시를 지었다.
「권자가 내 편에 화답하되 서너 연을 벗겨 빠뜨렸으니 그 가운데 무슨 말이 있었던가. 생각하면 부질없이 서글프다. 비유하면 한가위 열엿새 밤에 열 푼 밝은 달이 한 푼 이지러진 것이 빛깔이 가장 가엾은 것과 같고, 또 양귀비가 처음 온천 목욕을 마쳐 살쩍이 흐트러지고 비녀가 기울어 짙은 화장이 조금 덜렸어도 자태가 넉넉히 고운 것과 같다. 구절마다 쟁쟁하여 종이 위에서 움직이니 도리어 날아가 구름 안개가 될까 두렵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오래 나그네가 되어 쉽게 느껴 상함을 알고, 짐짓 위태로운 말과 괴로운 말을 다 전하지 않게 한 것이리라.」
무릇 하늘이 준 바를 받아 나면서 가진 것은 물건으로 인해 옮길 수 없다. 그러므로 중니가 나면서 제기로 장난하였고 문왕이 나면서 스승이 수고롭지 않았으니, 이는 다 절로 그러함에서 말미암은 것이요 본디 가죽과 활시위를 기다리지 않았다. 그러므로 「의로움이 엄습하여 취한 것이 아니다」 함이 이것이다.
今司空某 皇大弟襄陽公之冑子也 自離乳臭 翩翩然嘗以書史爲樂 行吟坐諷 目不掛於餘事 及於壯 學無不窺 理無不通 浩浩乎若望江湖佛可涯涘 至於詞賦亦工 用筆精妙 若翹然而望場屋 爭甲乙之名者 世以爲宗室標的也 惜也 天不興年 奄然赴玉樓之召 山人觀悟嘗遊其邸 搜遺稿得近軆詩八九篇 嘉其有二美也 以示之 飄飄然有凌雲氣格 將鏤板以傳於後 故畧爲序云云 自古宗室之親 襲茅土於襁褓中 目耽珠翠 耳悅絲竹 罕有留意於文章者 今司空某 天性好學 自年未七八 尤嗜書史 雖臨飮食 諷詠之聲不絶於外云
이제 사공 아무개는 황태제 양양공의 맏아들이다. 젖내를 떠난 뒤로 훨훨 늘 글과 역사를 즐거움으로 삼아, 다니며 읊고 앉아 외우며 눈을 다른 일에 걸지 않았다. 장성함에 이르러 배움에 엿보지 않은 것이 없고 이치에 통하지 않은 것이 없어, 넓고 넓기가 강과 호수를 바라보는 듯 가장자리를 알 수 없었다. 사와 부에 이르러서도 또한 뛰어났고 붓 씀이 정밀하고 오묘하여, 만약 우뚝이 과거 마당을 바라보아 갑을의 이름을 다투었다면 세상이 종실의 표적이라 하였을 것이다.
아깝다. 하늘이 나이를 주지 않아 문득 옥루의 부르심에 나아갔다.
산인 관오가 일찍이 그 집에 노닐다 남긴 글을 뒤져 근체시 여덟아홉 편을 얻고, 그 두 가지 아름다움이 있음을 아름답게 여겨 보여 주었다. 나부껴 구름을 넘는 기품과 격조가 있었다. 장차 판에 새겨 뒤에 전하려 하므로 대략 서문을 짓는다.
예로부터 종실의 친척은 강보 가운데서 띠와 흙을 물려받아 눈은 구슬과 비취를 즐기고 귀는 실과 대를 기뻐하여 문장에 마음을 두는 이가 드물었다. 이제 사공 아무개는 타고난 성품이 배우기를 좋아하여 나이 일고여덟도 되기 전부터 글과 역사를 더욱 즐겨, 비록 마시고 먹는 자리에 임하여도 외고 읊는 소리가 밖에 끊이지 않았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