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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 팽소·표연말表沿沫序

필원잡기 筆苑雜記 · 서거정(徐居正) · 1487년 (조선 성종 18) · 단락 2 · 한자 613자 · 낭독 2.5분

「필원잡기」 서 「서 — 팽소·표연말」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서거정이 한가한 틈에 붓 가는 대로 적어 1487년 의성에서 판에 새긴 잡기. 조선 개국부터 성종 때까지 백 년 사이의 조정과 재야 이야기 177단락이 실려 있다. 우산으로 새는 지붕을 가리던 유관, 아이 종이 문서에 오줌을 누어도 노하지 않은 황희, 호랑이를 쏘고도 무슨 짐승인지 몰랐던 최윤덕, 밤새 장서각 책을 다 읽은 성간처럼 사람의 모습이 그대로 남았고, 세조 앞에서 사주의 수가 오십일만 팔천사백뿐이라며 녹명의 책을 믿을 수 없다고 아뢴 대목, 산수의 설과 시호의 법을 따진 대목처럼 지은이 자신의 생각을 밝힌 글도 함께 있다. 중국 사신의 사람됨을 하나하나 매기고, 『삼국사기』를 두고 「미더이 전하는 책이 아니다」라 한 자리도 여기 있다. 팽소·표연말·조위의 서문 셋과 이세좌의 발문을 함께 옮겼다.

1팽소의 서 — 우리 집안 자손이 대대로 지킬 푸른 담요

筆苑雜記吾仲父四佳先生所著也。先生以文章大手。平生著述甚多。三國史節要。東國通鑑。東文選。輿地勝覽。皆受命與諸公同撰。而大抵皆出於公手。五行摠括。歷代年表。東人詩話。勝覽續集。滑稽傳。皆平居所著。而筆苑雜記亦其一也。蓋法歐陽文忠公歸田錄。又取國老閑談東軒雜錄而爲之。欲記史官之所不錄朝野之所閑談。以備觀覽。其有補於來世。夫豈小哉。用是見先生用心之勤學文之精。而凡所著述。我一家子孫世守之靑氈也。今請義城縣令兪侯好仁。鋟諸梓。欲與好事者共之。龍集丙午仲冬日南至。猶子奉直郞行吏曹佐郞彭召序。

『필원잡기』는 나의 중부(仲父) 사가(四佳) 선생께서 지으신 것이다. 선생은 문장의 큰 솜씨로 평생 지은 것이 매우 많다. 『삼국사절요』·『동국통감』·『동문선』·『여지승람』은 다 명을 받아 여러 공과 함께 엮었으나 대개 다 공의 손에서 나왔다. 『오행총괄』·『역대연표』·『동인시화』·『승람속집』·『골계전』은 다 한가히 지내며 지은 것인데 『필원잡기』도 그 하나다. 대개 구양수의 『귀전록』을 본받고 또 『국로한담』과 『동헌잡록』을 취하여 지은 것이니, 사관이 적지 않은 것과 조야에서 한가히 이야기하는 것을 적어 보아 두고자 한 것이다. 그것이 뒷세상에 보탬이 됨이 어찌 작겠는가. 이로써 선생이 마음 쓰신 부지런함과 글 배우신 정밀함을 보겠으니, 무릇 지으신 것은 우리 한 집안 자손이 대대로 지킬 푸른 담요다. 이제 의성현령 유호인 후에게 청하여 판에 새겨 좋아하는 이들과 함께하려 한다. 병오년 한겨울 동짓날, 조카 봉직랑 행 이조좌랑 팽소가 서문을 쓴다.

2표연말의 서 — 사서에 실리지 않은 것을 빠짐없이 적었다

一日沿沫謁達城徐相公於四佳亭。出示所著筆苑雜記。仍命序引。沿沫公門人。又公之撰東國通鑑。承乏僚屬。功參編摩。公之奬與實深。義不可以文拙辭。謹奉以還。第簿書溷我。未遑披閱。暇日靜坐。讀過二三遍。其所著述。皆博採吾東之事。上述祖宗神思睿智創垂之大德。下及公卿賢大夫道德言行文章政事之可爲模範者。以至國家之典故閭巷風俗。有關於世敎者。國乘所不載者。備錄無遺。譬如塚發驪山珍貝盡獻。犀燃牛渚光怪難逃。讀之令人亹亹忘倦。蓋筆談談林下之聞見。言行錄錄名臣之實跡。而是篇殆兼之。豈若搜神雜俎等編。摘奇抉怪。誇涉獵之廣博。供談者之戱劇而止耶。余觀古之著書立言者。皆其所爲不行乎今。而欲行乎後世也。若得時行道。則不必事乎著書。惟公以文章道德。遭遇聖明。大鳴國家之盛。一時辭命。皆出其手。納誨啓沃。輝映簡策。行乎今者。旣已彪炳斑蔚。而又留神於著述。下筆成章。所著若通鑑勝覽年表詩話及時篇無非扶世道垂名敎爲重。一一可以行乎後。古人云。太上立德。其次立功。其次立言。此之謂不朽。非公之謂乎。成化丙午仲冬有日。門人通善郞掌隷院司議表沿沫序

어느 날 연말이 사가정으로 달성 서 상공을 뵈러 갔더니 지으신 『필원잡기』를 내어 보이며 서문을 쓰라 하셨다. 연말은 공의 문인이요 또 공이 『동국통감』을 엮으실 때 빈자리를 이어 요속이 되어 편찬에 공을 보탰으니 공이 장려해 주심이 실로 깊었다. 의리상 글이 졸렬하다고 사양할 수 없어 삼가 받들고 돌아왔다. 다만 문서가 나를 어지럽혀 펴 볼 겨를이 없다가 한가한 날 고요히 앉아 두세 번 읽어 보았다. 그 지으신 것은 다 우리 동방의 일을 널리 캔 것이니, 위로는 조종께서 신묘한 생각과 밝은 지혜로 창업하여 물려주신 큰 덕을 서술하고 아래로는 공경과 어진 대부의 도덕·언행·문장·정사로 본보기가 될 만한 것에 미치며, 나라의 전고와 여염의 풍속으로 세상 가르침에 관계된 것과 나라 사서에 실리지 않은 것까지 빠짐없이 갖추어 적었다. 비유하자면 여산의 무덤을 파매 진귀한 보배가 다 나오고 우저에서 무소뿔을 태우매 괴이한 빛이 도망하기 어려운 것과 같아, 읽는 이로 하여금 끊임없이 읽어 싫증을 잊게 한다. 대개 『필담』은 임하의 견문을 이야기하고 『언행록』은 이름난 신하의 실제 자취를 적었는데 이 책은 거의 그 둘을 겸하였다. 어찌 『수신기』나 『유양잡조』 같은 책이 기이한 것을 따고 괴이한 것을 후벼 널리 섭렵한 것을 자랑하며 이야기꾼의 놀잇거리를 대는 데 그치는 것과 같겠는가. 내가 보건대 옛날 책을 지어 말을 세운 이는 다 그 하려던 바가 지금 행해지지 않아 뒷세상에 행해지기를 바란 것이다. 만약 때를 얻어 도를 행하였다면 굳이 책 짓는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직 공은 문장과 도덕으로 밝은 임금을 만나 나라의 성대함을 크게 울렸으니 한때의 사명(辭命)이 다 그 손에서 나왔고, 가르침을 바치고 임금의 마음을 적셔 간책에 빛나게 비쳤다. 지금 행해지는 것이 이미 이처럼 빛나고 성한데 또 저술에 마음을 두어 붓을 내리면 글을 이루니, 지으신 『통감』·『승람』·『연표』·『시화』와 때때로 지은 편들이 세도를 붙들고 명교를 드리우는 것을 무겁게 여기지 않음이 없어 하나하나 뒷세상에 행해질 만하다. 옛사람이 「가장 높은 것은 덕을 세우는 것이요 그다음은 공을 세우는 것이요 그다음은 말을 세우는 것이니 이를 썩지 않는다 한다」 하였으니 공을 두고 이른 것이 아니겠는가. 성화 병오년 한겨울 어느 날, 문인 통선랑 장예원사의 표연말이 서문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