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 조위曹偉序
1조위의 서 — 익재의 『역옹패설』과 부절을 합한 듯
東方自箕子受封以來。世稱文獻。侔擬中華。而前朝五百年間文學之士。彬彬輩出。以遺稿傳于世者。無慮數十餘家。可謂人才之盛也。然記述當世朝野之事名臣賢士之所言若行。以傳於後者。罕有其人。獨李學士破閒集。崔大尉補閑集。至今資詩人之談論。爲縉紳之所玩。然所論者。皆雕篆章句。其於國家經世之典。槩乎其無所取也。厥後益齋李文忠公著櫟翁稗說。雖間有滑稽之言。而祖宗世系朝廷典故。多所記載而卞證焉。實當世之遺史也。今觀座主達城相公所撰筆苑雜記。其規模大略與櫟翁稗說。若合符契。至哉大儒之立言傳後也。生雖先後之異時。而其言之若出一人何耶。豈非人有先後而道無不同故耶。余惟益齋生於衰亂之世。間關奔走於式微之際。念君憂國之誠。出於至情。所以能保功名。終始一節。卓卓乎不可尙已。今公生於太平之朝。遭遇聖明。從容帷幄。黼黻至治。冠冕儒林。師範一世。其心其學其事業之盛。固將無讓於益齋。而其所纂錄。聖君賢相制作行事之迹。有非高麗君臣所可彷彿其萬一也。則是書之傳。又非稗說之比也審矣。或曰公之所錄。皆可爲訓於後世。而一二事未免襲稗說之滑稽何耶。曰公之博聞强記。出於天性。時於讌閑戲用翰墨。書其平日所見聞者耳。初非有意於著書也。優旃方朔之言。遷固書而不削。此亦紀事之體也。噫自箕子至于今。幾三千年。秉筆之士世不乏人。而立言傳後者。蓋無幾焉。非著之無其人。實不能久於傳也。其人不足爲師。其言不足爲法。則雖罄南山之竹。禿千兔之毫。日綴數萬言。不能傳於一時。況敢望於後世乎。夫然則公之是編也。人可爲師。言可爲法。其傳於無窮也固也。他日太史氏紬蘭臺蓬觀之藏。其將無取於是也乎。成化紀元之二十三年季秋日。門生奉列大夫咸陽郡守夏山曹偉敍。
동방은 기자가 봉함을 받은 뒤로 대대로 문헌의 나라라 일컬어 중화에 견주었고, 전조 오백 년 사이에 문학하는 선비가 성하게 잇달아 나와 남긴 원고를 세상에 전한 이가 수십여 집안을 헤아리니 인재의 성함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당세 조야의 일과 이름난 신하, 어진 선비의 말과 행실을 적어 뒤에 전한 이는 드물었다. 오직 이 학사의 『파한집』과 최 대위의 『보한집』이 지금까지 시인의 담론에 밑천이 되고 진신들이 즐겨 보는 바이나, 논한 것이 다 문장의 자구를 새긴 것이라 나라를 경영하는 법에 대해서는 대개 취할 것이 없다. 그 뒤 익재 이 문충공이 『역옹패설』을 지으니 비록 사이사이 골계의 말이 있으나 조종의 세계와 조정의 전고를 많이 적고 변증하였으니 실로 당세의 남은 역사다. 이제 좌주이신 달성 상공이 엮으신 『필원잡기』를 보니 그 규모와 대략이 『역옹패설』과 부절을 합한 듯하다. 지극하도다, 큰 선비가 말을 세워 뒤에 전함이여. 나신 때가 앞뒤로 다른데 그 말이 한 사람에게서 나온 듯함은 어째서인가. 어찌 사람에게는 앞뒤가 있어도 도에는 다름이 없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내가 생각하건대 익재는 쇠하고 어지러운 세상에 나서 나라가 기울어 가는 즈음에 애써 분주하였으나 임금을 생각하고 나라를 근심하는 정성이 지극한 정에서 나왔으므로 공명을 보전하여 처음과 끝이 한 절개일 수 있었으니 우뚝하여 더할 수 없다. 이제 공은 태평한 조정에 나서 밝은 임금을 만나 조용히 유악에 있으며 지극한 다스림을 수놓고 유림의 으뜸이 되어 한 세상의 사범이 되었으니, 그 마음과 그 학문과 그 사업의 성함이 참으로 익재에게 뒤지지 않을 것이요, 그 엮은 바 거룩한 임금과 어진 재상의 제작과 행사의 자취는 고려의 군신이 그 만분의 일도 비슷하게 할 바가 아니니, 이 책이 전함이 또 『패설』에 견줄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어떤 이는 「공이 적은 것은 다 뒷세상에 가르침이 될 만한데 한두 가지 일은 『패설』의 골계를 답습함을 면하지 못하였으니 어째서인가」 한다. 이르기를, 공의 넓은 견문과 굳센 기억은 천성에서 나온 것이라 때로 한가한 잔치에서 붓과 먹을 놀려 평소 보고 들은 것을 적었을 뿐 처음부터 책을 지으려는 뜻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우전과 동방삭의 말을 사마천과 반고가 적고 깎지 않았으니 이 또한 일을 적는 체다. 아, 기자로부터 지금까지 거의 삼천 년인데 붓을 잡은 선비가 세상에 모자란 적이 없으나 말을 세워 뒤에 전한 이는 대개 몇 되지 않는다. 지은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실로 오래 전할 수 없어서다. 그 사람이 스승 삼기에 모자라고 그 말이 법 삼기에 모자라면 비록 남산의 대나무를 다하고 천 마리 토끼의 털을 다 닳게 하여 날마다 수만 마디를 엮어도 한때에 전할 수 없는데 하물며 감히 뒷세상을 바라겠는가. 그렇다면 공의 이 책은 사람이 스승 삼을 만하고 말이 법 삼을 만하니 그 끝없이 전함이 참으로 마땅하다. 뒷날 태사씨가 난대와 봉관의 간직한 것을 뽑을 때 장차 여기서 취함이 없겠는가. 성화 기원 이십삼년 늦가을 어느 날, 문생 봉렬대부 함양군수 하산 조위가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