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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차차웅南解次次雄

삼국사기 三國史記 · 김부식(金富軾) 등 · 1145년 (고려 인종 23) · 단락 13 · 한자 556자 · 낭독 2.2분

「삼국사기」 신라본기 「남해 차차웅」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역사서. 신라·고구려·백제 본기와 지·표·열전으로 이루어졌다. 김부식이 곳곳에 「論曰」로 자기 평을 달아 두어, 편찬자가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나무랐는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1남해 차차웅이 즉위하다

南解次次雄立,赫居世嫡子也。身長大,性沉厚,多智略。母閼英夫人。妃雲帝夫人。繼父即位稱元。

남해 차차웅(次次雄)이 즉위하였으니 혁거세의 맏아들이다. 키가 크고 성품이 침착하고 두터우며 지략이 많았다. 어머니는 알영부인이요 왕비는 운제부인이다. 아버지를 이어 즉위하고 원년이라 일컬었다.

협주 2

次次雄,或云慈充。金大問云:方言謂巫也。世人以巫事鬼神,尙祭祀,故畏敬之,遂稱尊長者爲慈充。

차차웅은 자충(慈充)이라고도 한다. 김대문이 말하기를, 우리말로 무당을 이른다고 하였다. 세상 사람들이 무당으로 귀신을 섬기고 제사를 높였으므로 두려워하고 공경하여, 마침내 어른을 자충이라 일컫게 되었다.

一云阿婁夫人。

아루부인(阿婁夫人)이라고도 한다.

2사론 — 원년을 언제부터 세는가

論曰:人君即位,踰年稱元,其法詳於《春秋》,此先王不刊之典也。《伊訓》曰:「成湯旣沒,太甲元年。」《正義》曰:「成湯旣沒,其歲即太甲元年。」然《孟子》曰:「湯崩,太丁未立,外丙二年,仲壬四年。」則疑若《尙書》之脫簡,而《正義》之誤說也。或曰:「古者人君即位,或踰月稱元年,或踰年而稱元年。踰月而稱元年者,成湯旣沒,太甲元年是也。《孟子》云:「太丁未立」者,謂太丁未立而死也。外丙二年、仲壬四年

김부식이 논한다.

임금이 즉위하면 해를 넘겨 원년이라 일컫는데, 그 법이 『춘추』에 자세하니 이는 옛 임금들이 고칠 수 없게 세운 법이다. 『이훈(伊訓)』에 "성탕이 이미 죽으니 태갑 원년이라" 하였고, 『정의(正義)』에 "성탕이 이미 죽으니 그해가 곧 태갑 원년이다" 하였다.

그런데 『맹자』에는 "탕이 죽고 태정이 즉위하지 못하였으며 외병이 이 년, 중임이 사 년"이라 하였으니, 『상서』의 죽간이 빠졌거나 『정의』의 설이 그릇된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옛날에 임금이 즉위하면 더러는 달을 넘겨 원년이라 일컫고 더러는 해를 넘겨 원년이라 일컬었다. 달을 넘겨 원년이라 일컬은 것이 성탕이 죽고 태갑 원년이라 한 경우다. 『맹자』에 '태정이 즉위하지 못하였다' 한 것은 태정이 즉위하지 못하고 죽었다는 말이다. 외병 이 년, 중임 사 년이라 한 것은,

3사론 — 이어서

者,皆謂太丁之子太甲二兄,或生二年,或生四年而死,太甲所以得繼湯耳。《史記》便謂此仲壬、外丙爲二君,誤也。由前則以先君終年卽位稱元,非是,由後則可謂得商人之禮者矣。」

모두 태정의 아들이요 태갑의 두 형인데, 더러는 난 지 두 해에 더러는 난 지 네 해에 죽었으므로 태갑이 탕을 이을 수 있었다는 말이다. 『사기』가 곧바로 이 중임과 외병을 두 임금이라 한 것은 잘못이다.

앞의 것을 따르면 먼저 임금이 죽은 해로 즉위하여 원년이라 일컫는 것이니 옳지 않고, 뒤의 것을 따르면 상나라 사람의 예를 얻었다 할 만하다."

4원년 — 낙랑이 금성을 에워싸다

元年秋七月,樂浪兵至,圍金城數重。王謂左右曰:「二聖弃國,孤以國人推戴,謬居於位,危懼若涉川水。今鄰國來侵,是孤之不德也,爲之若何?」左右對曰:「賊幸我有喪,妄以兵來,天必不祐,不足畏也。」賊俄而果退。三年春正月,立始祖廟。冬十月丙辰朔,日有食之。

원년 가을 칠월에 낙랑 군사가 이르러 금성을 여러 겹으로 에워쌌다. 왕이 좌우에게 말하였다. "두 성인이 나라를 버리시고 내가 나라 사람들의 추대로 그릇되게 자리에 있으니, 위태롭고 두렵기가 냇물을 건너는 듯하다. 이제 이웃 나라가 침노하니 이는 내가 덕이 없는 탓이다. 어찌하면 좋겠는가." 좌우가 답하였다. "적이 우리에게 상이 있음을 다행으로 여겨 함부로 군사를 냈으니 하늘이 반드시 돕지 않을 것입니다. 두려워할 것 없습니다." 적이 얼마 뒤 과연 물러갔다.

삼년 봄 정월에 시조의 사당을 세웠다. 겨울 시월 초하루 병진에 일식이 있었다.

5오년 — 탈해에게 딸을 주다

五年春正月,王聞脫解之賢,以長女妻之。

오년 봄 정월에 왕이 탈해가 어질다는 말을 듣고 맏딸을 시집보냈다.

6칠년 — 탈해에게 정사를 맡기다

七年秋七月,以脫解爲大輔,委以軍國政事。

칠년 가을 칠월에 탈해를 대보(大輔)로 삼아 군사와 나라의 정사를 맡겼다.

7팔년 — 가뭄

八年,春夏旱。

팔년 봄과 여름에 가물었다.

8십일년 — 왜인의 배 백여 척

十一年,倭人遣兵船百餘艘掠海邊民戶,發六部勁兵以禦之。樂浪謂內虛,來攻金城,甚急。夜有流星墜於賊營,衆懼而退,屯於閼川之上,造石堆二十而去。六部兵一千人追之,自吐含山東至閼川,見石堆,知賊衆乃止。十三年秋七月戊子晦,日有食之。

십일년에 왜인이 병선 백여 척을 보내어 바닷가 백성의 집을 노략질하므로, 여섯 부의 굳센 군사를 내어 막았다. 낙랑이 안이 비었다 여겨 금성을 치니 매우 급하였다. 밤에 별똥이 적의 진영에 떨어지자 무리가 두려워하여 물러가 알천 가에 주둔하였다가, 돌무더기 스무 개를 만들어 놓고 떠났다. 여섯 부의 군사 일천 명이 뒤쫓아 토함산 동쪽에서 알천에 이르렀다가, 돌무더기를 보고 적이 많은 줄 알고 이내 그쳤다.

십삼년 가을 칠월 그믐 무자에 일식이 있었다.

9십오년 — 창고를 열어 굶주린 이를 구하다

十五年京城旱。秋七月,蝗。民饑,發倉廩救之。

십오년에 서울이 가물었다. 가을 칠월에 메뚜기가 들끓었다. 백성이 굶주리므로 창고를 열어 구제하였다.

10십육년 — 예왕의 도장

十六年春二月,北溟人耕田,得濊王印獻之。

십육년 봄 이월에 북명(北溟) 사람이 밭을 갈다가 예왕(濊王)의 도장을 얻어 바쳤다.

11십구년 — 큰 돌림병

十九年,大疫,人多死。冬十一月,無氷。

십구년에 큰 돌림병이 돌아 사람이 많이 죽었다. 겨울 십일월에 얼음이 얼지 않았다.

12이십년 — 태백이 태미에 들다

二十年秋,太白入太微。

이십년 가을에 태백(太白)이 태미(太微)에 들었다.

13이십일년 — 왕이 죽다

二十一年秋九月,蝗。王薨,葬虵陵園內。

이십일년 가을 구월에 메뚜기가 들끓었다. 왕이 죽으니 사릉원 안에 장사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