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이사금儒理尼師今
1유리 이사금이 즉위하다
儒理尼師今立,南解太子也,母雲帝夫人。妃日知葛文王之女也。初,南解薨,儒理當立,以大輔脫解素有德望,推讓其位。脫解曰:「神器大寶,非庸人所堪。吾聞聖智人多齒,試以餅噬三之。」儒理齒理多,乃與左右奉立之,號尼師今。古傳如此,金大問則云:「尼師今,方言也,謂齒理。昔南解將死,謂男儒理壻、脫解曰:『吾死後,汝朴昔二姓,以年長而嗣位焉。』其後金姓亦興,三姓以齒長相嗣,故稱尼師今。」
유리 이사금(尼師今)이 즉위하였으니 남해의 태자요 어머니는 운제부인이다. 왕비는 일지 갈문왕의 딸이다.
처음에 남해가 죽자 유리가 마땅히 즉위해야 했으나, 대보 탈해가 본디 덕망이 있었으므로 그 자리를 사양하여 미루었다. 탈해가 말하였다. "신령한 그릇과 큰 보배는 못난 사람이 감당할 바가 아닙니다. 제가 듣기로 성스럽고 지혜로운 사람은 이가 많다 하니, 떡을 물어 시험해 봅시다." 유리의 잇금이 많으므로 좌우와 더불어 받들어 세우고 이사금이라 불렀다.
옛 전함이 이와 같다. 김대문은 이렇게 말하였다. "이사금은 우리말이니 잇금을 이른다. 옛날 남해가 죽으려 할 때 아들 유리와 사위 탈해에게 말하기를 '내가 죽은 뒤에 너희 박·석 두 성은 나이 많은 이로 자리를 이으라' 하였다. 그 뒤 김씨 성도 일어나 세 성이 나이 많은 순으로 서로 이었으므로 이사금이라 일컬었다."
협주 1
或云妃姓朴,許婁王之女。
왕비의 성은 박씨요 허루왕의 딸이라고도 한다.
2이년 — 시조 사당에 제사하다
二年春二月,親祀始祖廟。大赦。
이년 봄 이월에 몸소 시조 사당에 제사하고 크게 사면하였다.
3오년 — 늙은 할미에게 옷을 벗어 덮어 주다
五年冬十一月,王巡行國內,見一老嫗,飢凍將死,曰:「予以眇躬居上,不能養民,使老幼至於此極,是予之罪也。」解衣以覆之,推食以食之,仍命有司在處存問,鰥寡孤獨老病不能自活者,給養之。於是鄰國百姓聞而來者衆矣。是年,民俗歡康,始製兜率歌。此歌樂之始也。
오년 겨울 십일월에 왕이 나라 안을 돌다가 한 늙은 할미가 굶주리고 얼어 죽어 가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내가 보잘것없는 몸으로 위에 있으면서 백성을 기르지 못하여 늙은이와 어린이를 이 지경에 이르게 하였으니 이는 내 죄다." 옷을 벗어 덮어 주고 밥을 밀어 먹였다. 이어 담당 관리에게 명하여 곳곳에서 위문하게 하고, 홀아비와 과부와 고아와 자식 없는 늙은이, 병들어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이에게 먹을 것을 대어 기르게 하였다. 이에 이웃 나라 백성으로 소문을 듣고 오는 이가 많았다.
이해에 백성의 풍속이 즐겁고 편안하여 비로소 도솔가(兜率歌)를 지었다. 이것이 노래와 풍류의 처음이다.
4구년 — 여섯 부에 성을 내리고 열일곱 관등을 두다
九年春,改六部之名。仍賜姓,楊山部爲梁部,姓李;高墟部爲沙梁部,姓崔;大樹部爲漸梁部,姓孫;干珍部爲本彼部,姓鄭;加利部爲漢祇部,姓裴;明活部爲習比部,姓薛。又設官有十七等:一曰伊伐飡,二曰伊尺飡,三曰迊飡,四曰波珍飡,五曰大阿飡,六曰阿飡,七曰一吉飡,八曰沙飡,九曰級伐飡,十曰大奈麻,十一曰奈麻,十二曰大舍,十三曰小舍,十四曰吉士,十五曰大烏,十六曰小烏,十七曰造位。王旣定六部,中分爲二,使王女二人各率部內女子,分朋造黨,自秋七月旣望,每日早集大部之庭績麻,乙夜而罷。至八月十五日,考其功之多小,負者置酒食以謝勝者。於是歌舞百戱皆作,謂之嘉俳。是時,負家一女子起舞嘆曰:「會蘇、會蘇。」其音哀雅,後人因其聲而作歌,名《會蘇曲》。十一年,京都地裂泉湧。夏六月,大水。
구년 봄에 여섯 부의 이름을 고치고 이어 성을 내렸다. 양산부를 양부(梁部)라 하고 성을 이(李)라 하였다. 고허부를 사량부(沙梁部)라 하고 성을 최(崔)라 하였다. 대수부를 점량부(漸梁部)라 하고 성을 손(孫)이라 하였다. 간진부를 본피부(本彼部)라 하고 성을 정(鄭)이라 하였다. 가리부를 한기부(漢祇部)라 하고 성을 배(裴)라 하였다. 명활부를 습비부(習比部)라 하고 성을 설(薛)이라 하였다.
또 벼슬을 두어 열일곱 등급으로 하였다. 첫째는 이벌찬, 둘째는 이척찬, 셋째는 잡찬, 넷째는 파진찬, 다섯째는 대아찬, 여섯째는 아찬, 일곱째는 일길찬, 여덟째는 사찬, 아홉째는 급벌찬, 열째는 대나마, 열한째는 나마, 열두째는 대사, 열셋째는 소사, 열넷째는 길사, 열다섯째는 대오, 열여섯째는 소오, 열일곱째는 조위다.
왕이 여섯 부를 정한 뒤 가운데를 갈라 둘로 나누고, 왕의 두 딸에게 저마다 부 안의 여자들을 거느리게 하여 패를 지어 무리를 이루게 하였다. 가을 칠월 열엿새부터 날마다 일찍 큰 부의 뜰에 모여 삼을 삼고 밤 이경에 파하였다. 팔월 보름에 이르러 그 일한 것의 많고 적음을 따져, 진 쪽이 술과 음식을 차려 이긴 쪽에 사례하였다. 이에 노래와 춤과 온갖 놀이가 다 벌어졌으니 이를 가배(嘉俳)라 하였다.
이때 진 집의 한 여자가 일어나 춤추며 탄식하기를 "회소, 회소" 하였는데, 그 소리가 슬프고도 우아하였다. 뒷사람이 그 소리를 따라 노래를 지어 「회소곡(會蘇曲)」이라 이름하였다.
십일년에 서울 땅이 갈라지고 샘이 솟았다. 여름 유월에 큰물이 났다.
협주 1
一云牟梁。
모량(牟梁)이라고도 한다.
5십삼년 — 낙랑이 타산성을 함락하다
十三年秋八月,樂浪犯北邊,攻陷朶山城。
십삼년 가을 팔월에 낙랑이 북쪽 변경을 침범하여 타산성(朶山城)을 쳐서 함락하였다.
6십사년 — 낙랑 사람 오천이 오다
十四年,高句麗王無恤襲樂浪滅之,其國人五千來投,分居六部。
십사년에 고구려 왕 무휼(無恤)이 낙랑을 습격하여 멸하니, 그 나라 사람 오천이 와서 의탁하므로 여섯 부에 나누어 살게 하였다.
7십칠년 — 맥국과 좋게 지내다
十七年秋九月,華麗、不耐二縣人連謀,率騎兵犯北境。貊國渠帥以兵要曲河西,敗之。王喜,與貊國結好。
십칠년 가을 구월에 화려(華麗)와 불내(不耐) 두 현 사람이 함께 꾀하여 기병을 거느리고 북쪽 경계를 침범하였다. 맥국(貊國)의 우두머리가 군사로 곡하(曲河) 서쪽에서 막아 무찔렀다. 왕이 기뻐하여 맥국과 좋게 지내기로 하였다.
8십구년 — 맥국이 짐승을 바치다
十九年秋八月,貊帥獵得禽獸,獻之。
십구년 가을 팔월에 맥국 우두머리가 사냥하여 잡은 새와 짐승을 바쳤다.
9삼십일년 — 살별
三十一年春二月,星孛于紫宮。
삼십일년 봄 이월에 자궁(紫宮)에 살별이 나타났다.
10삼십삼년 — 용과 큰바람
三十三年夏四月,龍見金城井。有頃,暴雨自西北來。五月,大風拔木。
삼십삼년 여름 사월에 용이 금성 우물에 나타났다. 얼마 뒤 서북쪽에서 폭우가 몰려왔다. 오월에 큰바람이 불어 나무가 뽑혔다.
11삼십사년 — 탈해에게 자리를 물리다
三十四年秋九月,王不豫,謂臣寮曰:「脫解身聯國戚,位處輔臣,屢著功名。朕之二子,其才不及遠矣。吾死之後,俾卽大位,以無忘我遺訓。」冬十月,王薨,葬虵陵園內。
삼십사년 가을 구월에 왕이 편찮아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탈해는 몸이 나라의 인척에 이어졌고 자리는 보필하는 신하에 있으면서 여러 번 공과 이름을 드러냈다. 내 두 아들은 그 재주가 멀리 미치지 못한다. 내가 죽은 뒤에 큰 자리에 오르게 하여 내 남긴 가르침을 잊지 말라."
겨울 시월에 왕이 죽으니 사릉원 안에 장사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