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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마 이사금祇摩尼師今

삼국사기 三國史記 · 김부식(金富軾) 등 · 1145년 (고려 인종 23) · 단락 16 · 한자 577자 · 낭독 2.3분

「삼국사기」 신라본기 「지마 이사금」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역사서. 신라·고구려·백제 본기와 지·표·열전으로 이루어졌다. 김부식이 곳곳에 「論曰」로 자기 평을 달아 두어, 편찬자가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나무랐는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1지마 이사금이 즉위하다

祇摩尼師今立,婆娑王嫡子,母史省夫人。妃金氏愛禮夫人,葛文王摩帝之女也。初,婆娑王獵於楡飡之澤,太子從焉。獵後,過韓歧部,伊飡許婁饗之。酒酣,許婁之妻携少女子出舞,摩帝伊飡之妻亦引出其女。太子見而悅之,許婁不悅。王謂許婁曰:「此地名大庖,公於此置盛饌美醞以宴衎之,宜位酒多,在伊飡之上。」以摩帝之女配太子焉。酒多,後云角干。

지마 이사금이 즉위하였으니 파사왕의 맏아들이요 어머니는 사성부인이다. 왕비는 김씨 애례부인이니 갈문왕 마제(摩帝)의 딸이다.

처음에 파사왕이 유찬의 못에서 사냥할 때 태자가 따랐다. 사냥을 마치고 한기부를 지나는데 이찬 허루(許婁)가 대접하였다. 술이 무르익자 허루의 아내가 어린 딸을 데리고 나와 춤추었고, 마제 이찬의 아내도 그 딸을 이끌어 내었다. 태자가 보고 기뻐하니 허루가 언짢아하였다.

왕이 허루에게 말하였다. "이 땅 이름이 대포(大庖)다. 공이 여기서 성한 음식과 좋은 술을 차려 잔치를 베풀었으니, 마땅히 자리를 주다(酒多)로 하여 이찬 위에 두어야겠다." 그러고는 마제의 딸을 태자에게 짝지었다. 주다는 뒤에 각간이라 하였다.

협주 1

或云祇味。

지미(祇味)라고도 한다.

2이년 — 벼슬을 내리다

二年春二月,親祀始祖廟。拜昌永爲伊飡,以參政事。玉權爲波珍飡,申權爲一吉飡,順宣爲級飡。三月,百濟遣使來聘。

이년 봄 이월에 몸소 시조 사당에 제사하였다. 창영을 이찬으로 삼아 정사에 참여하게 하고, 옥권을 파진찬, 신권을 일길찬, 순선을 급찬으로 삼았다. 삼월에 백제가 사신을 보내 왔다.

3삼년 — 우박과 큰물

三年春三月,雨雹,麥苗傷。夏四月,大水。慮囚,除死罪,餘悉原之。

삼년 봄 삼월에 우박이 내려 보리 싹이 상하였다. 여름 사월에 큰물이 났다. 죄수를 살펴 죽을 죄를 뺀 나머지는 모두 풀어 주었다.

4사년 — 가야를 몸소 치다

四年春二月,加耶寇南邊。秋七月,親征加耶,帥步騎度黃山河,加耶人伏兵林薄以待之。王不覺,直前,伏發,圍數重。王揮軍奮擊,決圍而退。

사년 봄 이월에 가야가 남쪽 변경을 노략질하였다. 가을 칠월에 몸소 가야를 쳐서 보병과 기병을 거느리고 황산하를 건넜다. 가야 사람이 숲에 군사를 숨겨 두고 기다렸는데, 왕이 깨닫지 못하고 곧바로 나아가자 복병이 일어나 여러 겹으로 에워쌌다. 왕이 군사를 지휘하여 떨쳐 쳐서 에움을 뚫고 물러났다.

5오년 — 다시 가야를 치다

五年秋八月,遣將侵加耶,王帥精兵一萬以繼之。加耶嬰城固守,會久雨,乃還。

오년 가을 팔월에 장수를 보내어 가야를 침노하고, 왕이 정예 일만을 거느려 뒤를 이었다. 가야가 성에 의지하여 굳게 지키는데 마침 비가 오래 내리므로 이내 돌아왔다.

6십년 — 왜인이 동쪽 변경을 침노하다

九年春二月,大星墜月城西,聲如雷。三月,京都大疫。十年春正月,以翌宗爲伊飡,昕連爲波珍飡,林權爲阿飡。二月,築大甑山城。夏四月,倭人侵東邊。

구년 봄 이월에 큰 별이 월성 서쪽에 떨어졌는데 소리가 우레 같았다. 삼월에 서울에 큰 돌림병이 돌았다.

십년 봄 정월에 익종을 이찬으로, 흔련을 파진찬으로, 임권을 아찬으로 삼았다. 이월에 대증산성을 쌓았다. 여름 사월에 왜인(倭人)이 동쪽 변경을 침노하였다.

7십일년 — 왜병이 온다는 헛소문

十一年夏四月,大風東來,折木飛瓦,至夕而止。都人訛言倭兵大來,爭遁山谷,王命伊飡翌宗等諭止之。秋七月,飛蝗害穀,年饑多盜。

십일년 여름 사월에 동쪽에서 큰바람이 불어 나무가 꺾이고 기와가 날리다가 저녁에야 그쳤다. 서울 사람들이 왜병(倭兵)이 크게 몰려온다는 헛소문을 퍼뜨려 다투어 산골로 달아나므로, 왕이 이찬 익종 등에게 명하여 타일러 그치게 하였다. 가을 칠월에 메뚜기가 날아 곡식을 해쳐 흉년이 들고 도둑이 많았다.

8십이년 — 왜국과 화친하다

十二年春三月,與倭國講和。夏四月,隕霜。五月,金城東民屋陷爲池,芙蕖生。

십이년 봄 삼월에 왜국(倭國)과 화친을 맺었다. 여름 사월에 서리가 내렸다. 오월에 금성 동쪽 백성의 집이 꺼져 못이 되고 연꽃이 났다.

9십삼년 — 일식

十三年秋九月庚申晦,日有食之。

십삼년 가을 구월 그믐 경신에 일식이 있었다.

10십사년 — 백제가 구원병을 보내다

十四年春正月,靺鞨大入北境,殺掠吏民。秋七月,又襲大嶺柵,過於泥河。王移書百濟請救,百濟遣五將軍助之,賊聞而退。

십사년 봄 정월에 말갈이 크게 북쪽 경계로 들어와 벼슬아치와 백성을 죽이고 노략질하였다. 가을 칠월에 또 대령의 목책을 습격하고 이하(泥河)를 건넜다. 왕이 백제에 글을 보내어 구원을 청하니 백제가 다섯 장군을 보내어 도왔다. 적이 듣고 물러갔다.

11십육년 — 일식

十六年秋七月甲戌朔,日有食之。

십육년 가을 칠월 초하루 갑술에 일식이 있었다.

12십칠년 — 긴 별과 지진

十七年秋八月,長星竟天。冬十月,國東地震。十一月,雷。

십칠년 가을 팔월에 긴 별이 하늘에 뻗쳤다. 겨울 시월에 나라 동쪽에 땅이 흔들렸다. 십일월에 우레가 쳤다.

13십팔년 — 창영이 죽다

十八年,伊飡昌永卒,以波珍飡玉權爲伊飡,以參政事。

십팔년에 이찬 창영이 죽으므로 파진찬 옥권을 이찬으로 삼아 정사에 참여하게 하였다.

14이십년 — 큰비

二十年夏五月,大雨,漂沒民戶。

이십년 여름 오월에 큰비가 내려 백성의 집이 떠내려가고 잠겼다.

15이십일년 — 궁 남문에 불이 나다

二十一年春二月,宮南門災。

이십일년 봄 이월에 궁 남문에 불이 났다.

16이십삼년 — 왕이 죽다

二十三年,春夏旱。秋八月,王薨。無子。

이십삼년 봄과 여름에 가물었다. 가을 팔월에 왕이 죽었다. 아들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