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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례 이사금儒禮尼師今

삼국사기 三國史記 · 김부식(金富軾) 등 · 1145년 (고려 인종 23) · 단락 14 · 한자 420자 · 낭독 1.7분

「삼국사기」 신라본기 「유례 이사금」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역사서. 신라·고구려·백제 본기와 지·표·열전으로 이루어졌다. 김부식이 곳곳에 「論曰」로 자기 평을 달아 두어, 편찬자가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나무랐는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1유례 이사금이 즉위하다

儒禮尼師今立,助賁王長子。母,朴氏,葛文王奈音之女。嘗夜行,星光入口,因有娠,載誕之夕,異香滿室。

유례 이사금이 즉위하였으니 조분왕의 맏아들이다. 어머니는 박씨로 갈문왕 내음의 딸이다. 일찍이 밤길을 가는데 별빛이 입으로 들어와 아이를 배었고, 낳던 날 저녁에 남다른 향기가 방에 가득하였다.

협주 1

《古記》第三,第十四,二王同諱儒理,或云儒禮,未知孰是。

『고기(古記)』에 셋째와 열넷째 두 왕의 이름이 다 같이 유리(儒理)라 하고 더러는 유례(儒禮)라 하니, 어느 것이 옳은지 알 수 없다.

2이년 — 홍권에게 중요한 일을 맡기다

二年,春正月,謁始祖廟。二月,拜伊飡弘權爲舒弗邯,委以機務。

이년 봄 정월에 시조 사당에 뵈었다. 이월에 이찬 홍권을 서불한으로 삼아 중요한 일을 맡겼다.

3삼년 — 백제가 화친을 청하다

三年,春正月,百濟遣使請和。三月,旱。

삼년 봄 정월에 백제가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하였다. 삼월에 가물었다.

4사년 — 왜인이 일례부를 불태우다

四年,夏四月,倭人襲一禮部縱火燒之,虜人一千而去。

사년 여름 사월에 왜인(倭人)이 일례부를 습격하여 불을 놓아 태우고 사람 일천을 사로잡아 갔다.

5육년 — 왜병이 온다는 말에 배와 병기를 갖추다

六年,夏五月,聞倭兵至,理舟楫,繕甲兵。

육년 여름 오월에 왜병(倭兵)이 온다는 말을 듣고 배와 노를 손질하고 갑옷과 병기를 갖추었다.

6칠년 — 월성이 무너지다

七年,夏五月,大水。月城頹毁。

칠년 여름 오월에 큰물이 났다. 월성이 무너졌다.

7팔년 — 말구에게 정사의 요체를 묻다

八年,春正月,拜末仇爲伊伐飡,末仇忠貞,有智略,王常訪問政要。

팔년 봄 정월에 말구를 이벌찬으로 삼았다. 말구는 충직하고 곧으며 지략이 있어, 왕이 늘 정사의 요체를 물었다.

8구년 — 왜병이 사도성을 함락하다

九年,夏六月,倭兵攻陷沙道城,命一吉飡大谷,領兵救完之。秋七月,旱、蝗。

구년 여름 유월에 왜병(倭兵)이 사도성을 쳐서 함락하므로, 일길찬 대곡에게 명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구하여 온전케 하였다. 가을 칠월에 가물고 메뚜기가 들끓었다.

9십년 — 사도성을 고쳐 쌓다

十年,春二月,改築沙道城,移沙伐州豪民八十餘家。

십년 봄 이월에 사도성을 고쳐 쌓고 사벌주의 넉넉한 백성 여든여 집을 옮겼다.

10십일년 — 왜병이 장봉성을 치다

十一年,夏,倭兵來攻長峯城,不克。秋七月,多沙郡進嘉禾。

십일년 여름에 왜병(倭兵)이 와서 장봉성을 쳤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가을 칠월에 다사군에서 상서로운 벼를 바쳤다.

11십이년 — 왜를 치자는 논의

十二年春,王謂臣下曰:「倭人屢犯我城邑,百姓不得安居。吾欲與百濟謀,一時浮海,入擊其國,如何?」舒弗邯弘權對曰:「吾人不習水戰。冒險遠征,恐有不測之危。況百濟多詐,常有呑噬我國之心。亦恐難與同謀。」王曰:「善。」

십이년 봄에 왕이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왜인(倭人)이 여러 번 우리 성과 고을을 침범하여 백성이 편안히 살지 못한다. 내가 백제와 꾀하여 한꺼번에 바다를 건너 그 나라로 들어가 치고자 하는데 어떠한가."

서불한 홍권이 답하였다. "우리 사람은 물에서 싸우는 데 익숙하지 못합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멀리 치는 것은 헤아리지 못할 위태로움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하물며 백제는 속임이 많고 늘 우리나라를 삼키려는 마음이 있으니, 또한 함께 꾀하기 어려울까 두렵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옳다."

12십사년 — 대나무 잎을 꽂은 군사

十四年,春正月,以智良爲伊飡,長昕爲一吉飡,順宣爲沙飡。伊西古國,來攻金城,我大擧兵防禦,不能攘。忽有異兵來,其數不可勝紀。人皆珥竹葉,與我軍同擊賊破之,後不知其所歸。人或

십사년 봄 정월에 지량을 이찬으로, 장흔을 일길찬으로, 순선을 사찬으로 삼았다.

이서고국이 와서 금성을 쳤다. 신라가 크게 군사를 일으켜 막았으나 물리치지 못하였다. 문득 남다른 군사가 왔는데 그 수를 다 헤아릴 수 없었다. 사람마다 대나무 잎을 귀에 꽂고 신라 군사와 함께 적을 쳐서 깨뜨렸는데, 뒤에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어떤 이가

13십사년 — 이어서

見竹葉數萬積於竹長陵。由是,國人謂:先王以陰兵助戰也。

죽장릉에 대나무 잎 수만 장이 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이로 말미암아 나라 사람들이 이르기를, 앞선 임금이 저승의 군사로 싸움을 도왔다고 하였다.

14십오년 — 왕이 죽다

十五年,春二月,京都大霧,不辨人,五日而霽。冬十二月,王薨。

십오년 봄 이월에 서울에 큰 안개가 끼어 사람을 알아볼 수 없다가 닷새 만에 걷혔다. 겨울 십이월에 왕이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