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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해 이사금訖解尼師今

삼국사기 三國史記 · 김부식(金富軾) 등 · 1145년 (고려 인종 23) · 단락 18 · 한자 438자 · 낭독 1.8분

「삼국사기」 신라본기 「흘해 이사금」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역사서. 신라·고구려·백제 본기와 지·표·열전으로 이루어졌다. 김부식이 곳곳에 「論曰」로 자기 평을 달아 두어, 편찬자가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나무랐는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1흘해 이사금이 즉위하다

訖解尼師今立,奈解王孫也。父,于老角干;母,命

흘해 이사금이 즉위하였으니 내해왕의 손자다. 아버지는 우로 각간이요 어머니는 명

2우로가 흘해를 알아보다

元夫人,助賁王女也。于老事君有功,累爲舒弗邯。見訖解狀貌俊異,心膽明敏,爲事異於常流,乃謂諸侯曰:「興吾家者,必此兒也。」至是,基臨薨,無子,群臣議曰:「訖解幼有老成之德。」乃奉立之。

원부인이니 조분왕의 딸이다. 우로는 임금을 섬겨 공이 있어 여러 차례 서불한이 되었다. 흘해의 모습이 빼어나고 남다르며 마음과 담이 밝고 재빨라 하는 일이 예사 사람과 다른 것을 보고, 여러 제후에게 말하였다. "우리 집을 일으킬 이는 반드시 이 아이다."

이때에 이르러 기림이 죽고 아들이 없으므로 여러 신하가 의논하였다. "흘해는 어리지만 어른스럽게 무르익은 덕이 있다." 이에 받들어 세웠다.

3이년 — 급리에게 정사의 요체를 맡기다

二年,春正月,以急利爲阿飡,委以政要,兼知內外兵馬事。二月,親祀始祖廟。

이년 봄 정월에 급리를 아찬으로 삼아 정사의 요체를 맡기고 안팎의 병마사를 겸하여 맡게 하였다. 이월에 몸소 시조 사당에 제사하였다.

4삼년 — 왜국 왕이 아들의 혼인을 구하다

三年,春三月,倭國王遣使,爲子求婚,以阿飡急利女送之。

삼년 봄 삼월에 왜국(倭國) 왕이 사신을 보내어 아들의 혼인을 구하므로, 아찬 급리의 딸을 보냈다.

5사년 — 굶주린 백성을 구휼하다

四年,秋七月,旱、蝗。民飢,發使救恤之。

사년 가을 칠월에 가물고 메뚜기가 들끓었다. 백성이 굶주리므로 사신을 보내어 구휼하였다.

6오년 — 궁궐 고치기를 그치다

五年,春正月,拜阿飡急利爲伊飡。二月,重修宮闕,不雨,乃止。

오년 봄 정월에 아찬 급리를 이찬으로 삼았다. 이월에 궁궐을 고쳐 지으려 하였으나 비가 오지 않으므로 이내 그쳤다.

7팔년 — 몸소 죄수를 기록하다

八年,春夏旱,王親錄囚,多原之。

팔년 봄과 여름에 가물었다. 왕이 몸소 죄수를 기록하여 많이 풀어 주었다.

8구년 — 백성을 수고롭게 하는 일을 멈추다

九年,春二月,下令:向以旱災,年不順成,今則土膏脉起,農事方始,凡所勞民之事,皆停之。

구년 봄 이월에 영을 내렸다. "지난번 가뭄으로 그해가 제대로 여물지 못하였다. 이제 땅의 기름진 기운이 일고 농사가 막 시작되니, 무릇 백성을 수고롭게 하는 일은 모두 멈추라."

9이십일년 — 벽골지를 열다

二十一年,始開碧骨池,岸長一千八百步。

이십일년에 비로소 벽골지(碧骨池)를 열었으니 둑 길이가 일천팔백 보였다.

10이십팔년 — 백제에 사신을 보내다

二十八年,春二月,遣使聘百濟。三月,雨雹。夏四月,隕霜。

이십팔년 봄 이월에 사신을 보내어 백제에 다녀오게 하였다. 삼월에 우박이 내렸다. 여름 사월에 서리가 내렸다.

11삼십오년 — 왜국의 혼인 청을 사절하다

三十五年,春二月,倭國遣使請婚,辭以女旣出

삼십오년 봄 이월에 왜국(倭國)이 사신을 보내어 혼인을 청하였으나, 딸이 이미 시집갔다고

12삼십오년 — 이어서

嫁。夏四月,暴風拔宮南大樹。

사양하였다. 여름 사월에 사나운 바람이 불어 궁 남쪽 큰 나무가 뽑혔다.

13삼십육년 — 왜왕이 글을 보내 국교를 끊다

三十六年,春正月,拜康世爲伊伐飡。二月,倭王移書絶交。

삼십육년 봄 정월에 강세를 이벌찬으로 삼았다. 이월에 왜왕(倭王)이 글을 보내어 국교를 끊었다.

14삼십칠년 — 왜병이 금성을 급히 치다

三十七年,倭兵猝至風島,抄掠邊戶,又進圍金城急攻。王欲出兵相戰,伊伐飡康世曰:「賊遠至,其鋒不可當,不若緩之,待其師老。」王然之。閉門不出。賊食盡將退,命康世率勁騎追擊,走之。

삼십칠년에 왜병(倭兵)이 갑자기 풍도에 이르러 변경의 집을 노략질하고, 또 나아가 금성을 에워싸고 급히 쳤다. 왕이 군사를 내어 맞서 싸우려 하니 이벌찬 강세가 말하였다. "적이 멀리서 왔으니 그 날카로움을 당할 수 없습니다. 늦추어 그 군사가 지치기를 기다리느니만 못합니다." 왕이 옳게 여겨 문을 닫고 나가지 않았다.

적이 양식이 떨어져 물러가려 하므로, 강세에게 명하여 굳센 기병을 거느리고 뒤쫓아 치게 하여 쫓아냈다.

15삼십구년 — 궁 우물이 넘치다

三十九年,宮井水暴溢。

삼십구년에 궁 안 우물물이 갑자기 넘쳤다.

16사십일년 — 황새가 월성 모퉁이에 둥지를 틀다

四十一年,春三月,鸛巢月城隅。夏四月,大雨浹

사십일년 봄 삼월에 황새가 월성 모퉁이에 둥지를 틀었다. 여름 사월에 열흘 동안 큰비가 내려

17사십일년 — 이어서

旬,平地水深三四尺,漂沒官私屋舍,山崩十三所。

평지에 물이 서너 자나 깊었다. 관가와 민가의 집이 떠내려가고 잠겼으며 산이 열세 곳 무너졌다.

18사십칠년 — 왕이 죽다

四十七年,夏四月,王薨。

사십칠년 여름 사월에 왕이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