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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증 마립간智證麻立干

삼국사기 三國史記 · 김부식(金富軾) 등 · 1145년 (고려 인종 23) · 단락 11 · 한자 602자 · 낭독 2.4분

「삼국사기」 신라본기 「지증 마립간」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역사서. 신라·고구려·백제 본기와 지·표·열전으로 이루어졌다. 김부식이 곳곳에 「論曰」로 자기 평을 달아 두어, 편찬자가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나무랐는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1지증 마립간이 즉위하다

智證麻立干立,姓金氏,諱智大路,奈勿王之曾孫,習寶葛文王之子,照知麻立干之再從弟也。母,金氏鳥生夫人,訥祇王之女;妃,朴氏延帝夫人,登欣伊飡女。王體鴻大,膽力過人。前王薨,無子,故繼位,時年六十四歲。

지증 마립간이 즉위하였다. 성은 김씨요 이름은 지대로(智大路)이며, 내물왕의 증손이요 습보 갈문왕의 아들이며 소지 마립간의 재종 아우다. 어머니는 김씨 조생부인이니 눌지왕의 딸이요, 왕비는 박씨 연제부인이니 등흔 이찬의 딸이다. 왕은 몸이 크고 담력이 남보다 뛰어났다. 앞선 왕이 죽고 아들이 없었으므로 자리를 이었으니 그때 나이 예순넷이었다.

협주 1

或云智度路,又云智哲老。

지도로(智度路)라고도 하고 지철로(智哲老)라고도 한다.

2사론 — 우리말을 남겨 두는 것이 마땅하다

論曰:新羅王稱居西干者一,次次雄者一,尼師今者十六,麻立干者四。羅末名儒崔致遠,作《帝王年代曆》,皆稱某王,不言居西干等,豈以其言鄙野不足稱也。曰:「《左》、《漢》,中國史書也,猶存楚語『穀於菟』,匈奴語『撑犁孤塗』等。今記新羅事,其存方言,亦宜矣。」

김부식이 논한다.

신라 왕으로 거서간이라 일컬은 이가 하나요, 차차웅이라 일컬은 이가 하나요, 이사금이라 일컬은 이가 열여섯이요, 마립간이라 일컬은 이가 넷이다.

신라 말의 이름난 선비 최치원이 『제왕연대력(帝王年代曆)』을 지으면서 모두 아무 왕이라 일컫고 거서간 따위를 말하지 않았으니, 어찌 그 말이 촌스러워 일컫기에 모자란다 여긴 것이 아니겠는가.

말하건대, 『좌전』과 『한서』는 중국의 사서인데도 오히려 초나라 말 「곡어토(穀於菟)」와 흉노 말 「탱리고도(撑犁孤塗)」 따위를 남겨 두었다. 이제 신라의 일을 적으면서 그 우리말을 남겨 두는 것 또한 마땅하다.

3삼년 — 순장을 금하고 소로 밭을 갈다

三年,春二月,下令禁殉葬。前國王薨,則殉以男女各五人,至是禁焉。親祀神宮。三月,分命州郡主勸農,始用牛耕。

삼년 봄 이월에 영을 내려 순장(殉葬)을 금하였다. 앞서 나라 임금이 죽으면 남녀 다섯씩을 순장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금하였다. 몸소 신궁에 제사하였다. 삼월에 주와 군의 수령에게 나누어 명하여 농사를 권하게 하고, 비로소 소로 밭 가는 법을 썼다.

4사년 — 나라 이름을 신라로 정하다

四年,冬十月,羣臣上言:「始祖創業已來,國名未定,或稱斯羅,或稱斯盧,或言新羅。臣等以爲,新者德業日新,羅者網羅四方之義,則其爲國號,宜矣。又觀自古有國家者,皆稱帝稱王,自我始祖立國,至今二十二世,但稱方言,未正尊號,今羣臣一意,謹上號新羅國王。」王從之。

사년 겨울 시월에 여러 신하가 아뢰었다. "시조께서 나라를 여신 이래 나라 이름이 정해지지 않아, 더러 사라(斯羅)라 하고 더러 사로(斯盧)라 하고 더러 신라(新羅)라 합니다. 신들이 생각건대 신(新)은 덕업이 날로 새롭다는 뜻이요 라(羅)는 사방을 그물처럼 아우른다는 뜻이니, 나라 이름으로 삼기에 마땅합니다.

또 예로부터 나라를 가진 이는 모두 제(帝)라 일컫거나 왕(王)이라 일컬었습니다. 우리 시조께서 나라를 세우신 뒤 지금까지 스물두 대에 이르도록 다만 우리말로만 일컫고 높은 칭호를 바로잡지 못하였습니다. 이제 여러 신하가 한뜻으로 삼가 신라국왕(新羅國王)이라는 칭호를 올립니다."

왕이 그 말을 따랐다.

5오년 — 상복법을 만들다

五年,夏四月,制喪服法頒行。秋九月,徵役夫,築波里、彌實、珍德、骨火等十二城。

오년 여름 사월에 상복법(喪服法)을 만들어 반포하였다. 가을 구월에 역부를 불러 파리·미실·진덕·골화 등 열두 성을 쌓았다.

6육년 — 이사부를 군주로 삼다

六年,春二月,王親定國内州郡縣。置悉直州,以異斯夫爲軍主,軍主之名,始於此,冬十一月,始命所司藏氷,又制舟楫之利。

육년 봄 이월에 왕이 몸소 나라 안의 주·군·현을 정하였다. 실직주(悉直州)를 두고 이사부(異斯夫)를 군주(軍主)로 삼았으니, 군주라는 이름이 여기서 비롯하였다. 겨울 십일월에 비로소 담당 관청에 명하여 얼음을 갈무리하게 하고, 또 배와 노의 이로움을 갖추게 하였다.

7칠년 — 창고를 열어 나누어 주다

七年,春夏旱,民饑,發倉賑之。

칠년 봄과 여름에 가물어 백성이 굶주리므로 창고를 열어 나누어 주었다.

8십년 — 동시를 두다

十年,春正月,置京都東市。三月,設檻穽,以除猛獸之害。秋七月,隕霜殺菽。

십년 봄 정월에 서울에 동시(東市)를 두었다. 삼월에 함정을 만들어 사나운 짐승의 해를 없앴다. 가을 칠월에 서리가 내려 콩이 죽었다.

9십일년 — 지진

十一年,夏五月,地震,壞人屋,有死者。冬十月,雷。

십일년 여름 오월에 땅이 흔들려 사람의 집이 무너지고 죽은 이가 있었다. 겨울 시월에 우레가 쳤다.

10십삼년 — 나무 사자로 우산국을 복속시키다

十三年,夏六月,于山國歸服,歲以土宜爲貢。于山國在溟州正東海島,或名鬱陵島。地方一百里,恃嶮不服。伊飡異斯夫爲何瑟羅州軍主,謂于山人愚悍,難以威來,可以計服,乃多造木偶獅子,分載戰船,抵其國海岸,誑告曰:「汝若不服,則放此猛獸踏殺之。」國人恐懼,則降。

십삼년 여름 유월에 우산국(于山國)이 항복해 와 해마다 그 땅 산물을 바치게 되었다. 우산국은 명주 정동쪽 바다 섬에 있는데 울릉도(鬱陵島)라고도 한다. 땅이 사방 백 리인데 험한 것을 믿고 복종하지 않았다.

이찬 이사부가 하슬라주 군주가 되어, 우산 사람이 어리석고 사나워 위엄으로는 오게 하기 어렵고 꾀로 복종시킬 수 있다 여겼다. 이에 나무 사자를 많이 만들어 전함에 나누어 싣고 그 나라 바닷가에 이르러 거짓으로 알렸다. "너희가 복종하지 않으면 이 사나운 짐승을 풀어 밟아 죽이겠다." 나라 사람들이 두려워하여 곧 항복하였다.

11십오년 — 시호법이 여기서 비롯하다

十五年,春正月,置小京於阿尸村。秋七月,徙六部及南地人戶,充實之。王薨,諡曰智證。新羅諡法,始於此。

십오년 봄 정월에 아시촌에 소경(小京)을 두었다. 가을 칠월에 여섯 부와 남쪽 땅의 백성을 옮겨 채웠다. 왕이 죽으니 시호를 지증(智證)이라 하였다. 신라의 시호법이 여기서 비롯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