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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흥왕法興王

삼국사기 三國史記 · 김부식(金富軾) 등 · 1145년 (고려 인종 23) · 단락 18 · 한자 746자 · 낭독 3.0분

「삼국사기」 신라본기 「법흥왕」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역사서. 신라·고구려·백제 본기와 지·표·열전으로 이루어졌다. 김부식이 곳곳에 「論曰」로 자기 평을 달아 두어, 편찬자가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나무랐는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1법흥왕이 즉위하다

法興王立,諱原宗,智證王元子。母,延帝夫人;妃,朴氏保刀夫人。王身長七尺,寬厚愛人。

법흥왕이 즉위하였으니 이름은 원종(原宗)이요 지증왕의 맏아들이다. 어머니는 연제부인이요 왕비는 박씨 보도부인이다. 왕은 키가 일곱 자요 너그럽고 두터우며 사람을 사랑하였다.

협주 1

《冊府元龜》姓募,名秦。

『책부원귀(冊府元龜)』에는 성이 모(募)요 이름이 진(秦)이라 하였다.

2삼년 — 용이 양산 우물에 나타나다

三年,春正月,親祀神宮。龍見楊山井中。

삼년 봄 정월에 몸소 신궁에 제사하였다. 용이 양산 우물 가운데 나타났다.

3사년 — 병부를 두다

四年,夏四月,始置兵部。

사년 여름 사월에 비로소 병부(兵部)를 두었다.

4오년 — 주산성을 쌓다

五年,春二月,築株山城。

오년 봄 이월에 주산성을 쌓았다.

5칠년 — 율령을 반포하다

七年,春正月,頒示律令,始制百官公服,朱紫之秩。

칠년 봄 정월에 율령(律令)을 반포하고, 비로소 모든 벼슬아치의 공복(公服)과 붉은빛·자줏빛의 차례를 정하였다.

6팔년 — 양나라에 사신을 보내다

八年,遣使於梁貢方物。

팔년에 양(梁)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그 지방 산물을 바쳤다.

7구년 — 가야국이 혼인을 청하다

九年,春三月,加耶國王遣使請婚,王以伊飡比助夫之妹送之。

구년 봄 삼월에 가야국 왕이 사신을 보내어 혼인을 청하므로, 왕이 이찬 비조부의 누이를 보냈다.

8십일년 — 가야국 왕이 와서 만나다

十一年,秋九月,王出巡南境拓地,加耶國王來會。

십일년 가을 구월에 왕이 남쪽 경계로 나가 땅을 넓히는데 가야국 왕이 와서 만났다.

9십이년 — 이등을 사벌주 군주로 삼다

十二年,春二月,以大阿飡伊登爲沙伐州軍主。

십이년 봄 이월에 대아찬 이등을 사벌주 군주로 삼았다.

10십오년 — 이차돈이 죽고 불법이 열리다

十五年,肇行佛法。初訥祗王時,沙門墨胡子,自高句麗至一善郡,郡人毛禮,於家中作窟室安置。於時,梁遣使,賜衣着香物,君臣不知其香名與其所用。遣人䝴香徧問。墨胡子見之,稱其名目曰:「此焚之則香氣芬馥,所以達誠於神聖,所謂神聖未有過於三寶,一曰佛陁,二曰達摩,三曰僧伽。若燒此發願,則必有靈應。」時王女病革,王使胡子焚香表誓,王女之病尋愈。王甚喜,墩贈尤厚。胡子出見毛禮,以所得物贈之,因語曰:「吾今有所歸,請辭。」俄而不知所歸,至毗處王時,有阿道和尙,與侍者三人,亦來毛禮家。儀表似墨胡子,住數年,無病而死。其侍者三人留住,講讀經律,往往有信奉者。至是,王亦欲興佛敎,羣臣不信,疂疂騰口舌,王難之。

십오년에 비로소 불법(佛法)을 행하였다.

처음 눌지왕 때에 승려 묵호자(墨胡子)가 고구려에서 일선군에 이르렀는데, 고을 사람 모례(毛禮)가 집 안에 굴방을 만들어 있게 하였다. 그때 양나라가 사신을 보내어 옷과 향을 내렸는데, 임금과 신하가 그 향의 이름과 쓰임을 알지 못하였다. 사람을 보내어 향을 가지고 두루 묻게 하였다.

묵호자가 보고 그 이름을 일러 말하였다. "이것을 사르면 향기가 그윽하니, 정성을 신성한 이에게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이른바 신성한 이로 삼보(三寶)를 넘는 것이 없으니, 첫째는 부처요 둘째는 달마요 셋째는 승가입니다. 만약 이것을 사르며 발원하면 반드시 신령한 응답이 있을 것입니다."

그때 왕의 딸이 병이 위중하므로 왕이 묵호자에게 향을 사르고 맹세하게 하니, 왕의 딸의 병이 이내 나았다. 왕이 매우 기뻐하여 물건을 더욱 두터이 주었다. 묵호자가 나와 모례를 보고 얻은 물건을 주며 말하였다. "내 이제 갈 곳이 있어 하직을 청합니다." 얼마 뒤 간 곳을 알 수 없었다.

비처왕 때에 이르러 아도(阿道) 화상이 시자 셋과 함께 또 모례의 집에 왔다. 모습이 묵호자와 비슷하였는데, 몇 해를 머물다가 병 없이 죽었다. 그 시자 셋이 남아 머물며 경과 율을 강하여 읽으니 이따금 믿고 받드는 이가 있었다.

이때에 이르러 왕도 불교를 일으키고자 하였으나 여러 신하가 믿지 않고 입을 모아 떠들므로 왕이 어려워하였다.

협주 1

一作我道。

아도(阿道)는 아도(我道)로도 쓴다.

11이차돈이 목을 내놓다

近臣異次頓奏曰:「請斬小臣,以定衆議。」王曰:「本欲興道,而殺不辜,非也。」答曰:「若道之得行,臣雖死無憾。」王於是,召臣問之。僉曰:「今見僧徒,童頭異服,議論奇詭,而非常道。今若縱之,恐有後悔,臣等雖卽重罪,不敢奉詔。」異次頓獨曰:「今羣臣之言,非也。夫有非常之人,然後有非常之事。今聞佛敎淵奧,恐不可不信。」王曰:「衆人之言,牢不可破,汝獨異言,不能兩從。」遂下吏將誅之,異次頓臨死曰:「我爲法就刑,佛若有神,吾死必有異事。」及斬之,血從斷處湧,色白如乳。衆怪之,不復非毁佛事。

가까운 신하 이차돈(異次頓)이 아뢰었다. "청컨대 소신을 베어 뭇 의논을 정하소서."

왕이 말하였다. "본디 도를 일으키려는 것인데 죄 없는 이를 죽이는 것은 옳지 않다."

답하였다. "만약 도가 행해질 수 있다면 신은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

왕이 이에 신하들을 불러 물으니 모두 말하였다. "이제 중들을 보니 머리를 깎고 이상한 옷을 입었으며 논의가 기이하고 괴상하여 예사로운 도가 아닙니다. 이제 만약 이를 놓아두면 뒷날 뉘우침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신들은 비록 무거운 죄를 받더라도 감히 명을 받들지 못하겠습니다."

이차돈만이 홀로 말하였다. "이제 여러 신하의 말이 그릅니다. 무릇 예사롭지 않은 사람이 있은 뒤에야 예사롭지 않은 일이 있습니다. 이제 들으니 불교가 깊고 오묘하다 하니 믿지 않을 수 없을까 두렵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여러 사람의 말이 굳어 깨뜨릴 수 없는데 너 혼자 다른 말을 하니 둘 다 좇을 수는 없다." 마침내 관리에게 내려 베려 하였다.

이차돈이 죽음에 임하여 말하였다. "내가 법을 위하여 형을 받는다. 부처에게 만약 신령함이 있다면 내가 죽은 뒤 반드시 남다른 일이 있으리라."

베자 피가 잘린 곳에서 솟았는데 빛이 젖처럼 희었다. 여럿이 괴이하게 여겨 다시는 부처의 일을 헐뜯지 않았다.

협주 2

或云處道。

이차돈은 처도(處道)라고도 한다.

此據金大問《鷄林雜傳》所記書之。與韓奈麻金用行所撰《我道和尙碑》所錄,殊異。

이는 김대문의 『계림잡전(鷄林雜傳)』에 적힌 바를 따라 쓴 것이다. 한나마 김용행이 지은 『아도화상비』에 실린 것과는 사뭇 다르다.

12십육년 — 살생을 금하다

十六年,下令禁殺生。

십육년에 영을 내려 살생을 금하였다.

13십팔년 — 상대등을 두다

十八年,春三月,命有司修理隄防。夏四月,拜伊飡哲夫爲上大等,摠知國事。上大等官,始於此,如今之宰相。

십팔년 봄 삼월에 담당 관리에게 명하여 둑을 고쳐 손질하게 하였다. 여름 사월에 이찬 철부를 상대등(上大等)으로 삼아 나라 일을 모두 맡게 하였다. 상대등이라는 벼슬이 여기서 비롯하였으니 지금의 재상과 같다.

14십구년 — 금관국이 항복하다

十九年,金官國主金仇亥,與妃及三子,長曰奴宗,仲曰武德,季曰武力,以國帑寶物來降。王禮待之,授位上等,以本國爲食邑。子武力仕至角干。

십구년에 금관국 임금 김구해(金仇亥)가 왕비와 세 아들 — 맏이는 노종, 둘째는 무덕, 막내는 무력(武力) — 과 함께 나라의 보물을 가지고 와서 항복하였다. 왕이 예로 대접하여 상등의 자리를 주고 본국을 식읍으로 삼게 하였다. 아들 무력은 벼슬이 각간에 이르렀다.

15이십일년 — 철부가 죽다

二十一年,上大等哲夫卒。

이십일년에 상대등 철부가 죽었다.

16이십삼년 — 연호를 처음 쓰다

二十三年,始稱年號,云建元元年。

이십삼년에 비로소 연호를 일컬어 건원(建元) 원년이라 하였다.

17이십오년 — 지방관이 가족을 데려가게 하다

二十五年,春正月,敎:許外官携家之任。

이십오년 봄 정월에 가르침을 내려, 지방 벼슬아치가 가족을 데리고 부임하는 것을 허락하였다.

18이십칠년 — 왕이 죽다

二十七年,秋七月,王薨,諡曰法興,葬於哀公寺北峯。

이십칠년 가을 칠월에 왕이 죽으니 시호를 법흥(法興)이라 하고 애공사 북쪽 봉우리에 장사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