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평왕眞平王
1진평왕이 즉위하다
眞平王立,諱白淨,眞興王太子銅輪之子也。母,金氏萬呼夫人,葛文王立宗之女;妃,金氏摩耶夫人,葛文王福勝之女。王生有奇相,身體長大,志識毅明達。
진평왕이 즉위하였으니 이름은 백정(白淨)이요 진흥왕의 태자 동륜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김씨 만호부인이니 갈문왕 입종의 딸이요, 왕비는 김씨 마야부인이니 갈문왕 복승의 딸이다. 왕은 나면서부터 남다른 모습이 있고 몸이 크며 뜻과 식견이 굳세고 밝게 통달하였다.
협주 1
一云萬内。
만내(萬内)라고도 한다.
2원년 — 아우들을 갈문왕으로 추증하다
元年,八月,以伊飡弩里夫爲上大等。贈母弟伯飯爲眞正葛文王,國飯爲眞安葛文王。
원년 팔월에 이찬 노리부를 상대등으로 삼았다. 어머니가 같은 아우 백반을 진정 갈문왕으로, 국반을 진안 갈문왕으로 추증하였다.
3이년 — 후직을 병부령으로 삼다
二年,春二月,親祀神宮,以伊飡后稷爲兵部令。
이년 봄 이월에 몸소 신궁에 제사하고 이찬 후직을 병부령으로 삼았다.
4삼년 — 위화부를 두다
三年,春正月,始置位和府,如今吏部。
삼년 봄 정월에 비로소 위화부(位和府)를 두었으니 지금의 이부와 같다.
5오년 — 선부서를 두다
五年,春正月,始置船府署,大監、弟監各一員。
오년 봄 정월에 비로소 선부서(船府署)를 두고 대감과 제감을 각 한 사람씩 두었다.
6육년 — 조부와 승부를 두다
六年,春二月,改元建福。三月,置調府令一員,掌貢賦,乘府令一員,掌車乘。
육년 봄 이월에 연호를 건복(建福)으로 고쳤다. 삼월에 조부령(調府令) 한 사람을 두어 공물과 조세를 맡게 하고, 승부령(乘府令) 한 사람을 두어 수레를 맡게 하였다.
7칠년 — 왕이 정전을 피하다
七年,春三月,旱,王避正殿減常饍,御南堂親録囚。秋七月,高僧智明入陳求法。
칠년 봄 삼월에 가물었다. 왕이 정전을 피하고 늘 먹던 반찬을 줄이며, 남당에 나아가 몸소 죄수를 기록하였다. 가을 칠월에 고승 지명이 진나라에 들어가 법을 구하였다.
8팔년 — 예부령을 두다
八年,春正月,置禮部令二員。夏五月,雷震,星殞如雨。
팔년 봄 정월에 예부령 두 사람을 두었다. 여름 오월에 우레와 벼락이 치고 별이 비처럼 떨어졌다.
9구년 — 대세와 구칠이 바다로 가다
九年,秋七月,大世、仇二人適海。大世,奈勿王七世孫,伊飡冬臺之子也。資俊逸,少有方外志,與交遊僧淡水曰:「在此新羅山谷之間,以終一生,則何異池魚籠鳥,不知滄海之浩大,山林之寬閑乎,吾將乘桴泛海,以至呉、越,侵尋追師,訪道於名山。若凡骨可換,神仙可學,則飄然乘風於泬寥之表,此天下之奇遊壯觀也,子能從我乎?」淡水不肯,大世退而求友。適遇仇者,耿介有奇節,遂與之遊南山之寺。忽風雨落葉,泛於庭潦。大世與仇言曰:「吾有與君西遊之志,今各取一葉,爲之舟,以觀其行之先後。」俄而大世之葉在前,大世笑曰:「吾其行乎!」仇勃然曰:「予亦男兒也,豈獨不能乎!」大世知其可與,密言其志。仇柒曰:「此吾願也。」遂相與爲友,自南海乘舟而去,後不知其所往。
구년 가을 칠월에 대세(大世)와 구칠(仇柒) 두 사람이 바다로 갔다.
대세는 내물왕의 칠대손이요 이찬 동대의 아들이다. 타고난 바탕이 빼어나고 젊어서부터 세상 밖에 뜻이 있었다. 사귀어 놀던 승려 담수에게 말하였다.
"이 신라 산골 사이에 있다가 한평생을 마친다면, 못 속의 물고기와 새장 속의 새가 넓은 바다의 크고 넓음과 산림의 너그럽고 한가함을 모르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나는 뗏목을 타고 바다에 떠서 오나라와 월나라에 이르러, 차츰 스승을 찾아 이름난 산에서 도를 물으려 한다. 만약 범상한 뼈를 바꿀 수 있고 신선을 배울 수 있다면, 훌쩍 바람을 타고 아득한 하늘 밖으로 오를 것이니 이것이 천하의 기이한 놀이요 장한 구경이다. 그대는 나를 따를 수 있겠는가."
담수가 즐겨 하지 않으므로 대세가 물러나 다른 벗을 구하였다. 마침 구칠이라는 이를 만났는데 굳세고 곧으며 남다른 절개가 있었다. 마침내 함께 남산의 절에 놀러 갔다.
문득 비바람에 잎이 떨어져 뜰에 괸 물에 떠다녔다. 대세가 구칠에게 말하였다. "나는 그대와 서쪽으로 놀러 갈 뜻이 있다. 이제 저마다 잎 하나씩을 집어 배로 삼아 그 가는 것이 앞서는지 뒤서는지 보자."
얼마 뒤 대세의 잎이 앞서므로 대세가 웃으며 말하였다. "내가 가는가 보다."
구칠이 발끈하여 말하였다. "나 또한 사내다. 어찌 나만 못하겠는가."
대세가 함께할 만한 이임을 알고 몰래 그 뜻을 말하니 구칠이 말하였다. "그것이 내 바람이다." 마침내 서로 벗이 되어 남해에서 배를 타고 떠났는데, 뒤에 그들이 간 곳을 알 수 없었다.
10십년 — 수을부를 상대등으로 삼다
十年,冬十二月,上大等弩里夫卒,以伊飡首乙夫爲上大等。
십년 겨울 십이월에 상대등 노리부가 죽으므로 이찬 수을부를 상대등으로 삼았다.
11십일년 — 원광이 진나라에 들어가다
十一年,春三月,圓光法師,入陳求法。秋七月,國西大水,漂沒人戸三萬三百六十,死者二百餘人。王發使賑恤之。
십일년 봄 삼월에 원광 법사가 진나라에 들어가 법을 구하였다. 가을 칠월에 나라 서쪽에 큰물이 나 백성의 집 삼만 삼백육십 채가 떠내려가고 잠겼으며 죽은 이가 이백여 사람이었다. 왕이 사신을 보내어 구휼하였다.
12십삼년 — 남산성을 쌓다
十三年,春二月,置領客府令二員。秋七月,築南山城,周二千八百五十四歩。
십삼년 봄 이월에 영객부령 두 사람을 두었다. 가을 칠월에 남산성을 쌓았으니 둘레가 이천팔백오십사 보였다.
13십오년 — 명활성과 서형산성을 고쳐 쌓다
十五年,秋七月,改築明活城,周三千歩,西兄山城,周二千歩。
십오년 가을 칠월에 명활성을 고쳐 쌓으니 둘레가 삼천 보요, 서형산성은 둘레가 이천 보였다.
14십육년 — 수나라가 왕을 봉하다
十六年,隋帝詔,拜王爲上開府樂浪郡公新羅王。
십육년에 수나라 황제가 조서를 내려 왕을 상개부 낙랑군공 신라왕으로 삼았다.
15십팔년 — 영흥사에 불이 나다
十八年,春三月,高僧曇育,入隋求法。遣使如隋,貢方物。冬十月,永興寺火,延燒三百五十家,王親臨救之。
십팔년 봄 삼월에 고승 담육이 수나라에 들어가 법을 구하였다. 수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그 지방 산물을 바쳤다. 겨울 시월에 영흥사에 불이 나 삼백쉰 채까지 번져 탔으므로 왕이 몸소 나아가 구하였다.
16십구년 — 삼랑사가 이루어지다
十九年三郞寺成。
십구년에 삼랑사가 이루어졌다.
17이십이년 — 원광이 돌아오다
二十二年,高僧圓光,隨朝聘使奈麻諸文、大舍橫川還。
이십이년에 고승 원광이 조빙사 나마 제문과 대사 횡천을 따라 돌아왔다.
18이십사년 — 귀산과 추항이 죽다
二十四年,遣使大奈麻上軍,入隋進方物。秋八月,百濟來攻阿莫城,王使將士逆戰,大敗之,貴山、箒項死之。九月,高僧智明,隨入朝使上軍還。王尊敬明公戒行,爲大德。
이십사년에 대나마 상군을 사신으로 보내어 수나라에 들어가 그 지방 산물을 바쳤다. 가을 팔월에 백제가 와서 아막성을 치므로 왕이 장수와 군사를 시켜 맞아 싸워 크게 무찔렀으나, 귀산(貴山)과 추항(箒項)이 죽었다. 구월에 고승 지명이 입조사 상군을 따라 돌아왔다. 왕이 지명공의 계행을 높이 여겨 대덕으로 삼았다.
19이십오년 — 고구려가 북한산성을 침노하다
二十五年,秋八月,高句麗侵北漢山城,王親率兵一萬以拒之。
이십오년 가을 팔월에 고구려가 북한산성을 침노하므로 왕이 몸소 군사 일만을 거느리고 막았다.
20이십육년 — 북한산주를 다시 두다
二十六年,秋七月,遣使大奈麻萬世、惠文等朝隋。廢南川州,還置北漢山州。
이십육년 가을 칠월에 대나마 만세와 혜문 등을 사신으로 보내어 수나라에 조회하였다. 남천주를 없애고 북한산주를 다시 두었다.
21이십칠년 — 백제를 침노하다
二十七年,春三月,高僧曇育,隨入朝使惠文還。秋八月,發兵侵百濟。
이십칠년 봄 삼월에 고승 담육이 입조사 혜문을 따라 돌아왔다. 가을 팔월에 군사를 내어 백제를 침노하였다.
22삼십년 — 원광의 걸사표
三十年,王患高句麗屢侵封場,欲請隋兵以征高句麗,命圓光修乞師表,光曰:「求自存而滅他,非沙門之行也,貧道在大王之土地,食大王之水草,敢不惟命是從!」乃述以聞。二月,高句麗侵北境,虜獲八千人。四月,高句麗拔牛鳴山城。
삼십년에 왕이 고구려가 여러 번 지경을 침노하는 것을 걱정하여, 수나라 군사를 청하여 고구려를 치고자 원광에게 명하여 군사를 비는 표를 짓게 하였다.
원광이 말하였다. "제 삶을 구하려고 남을 없애는 것은 승려의 할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빈도가 대왕의 땅에 있으면서 대왕의 물과 풀을 먹으니, 어찌 감히 명을 좇지 않겠습니까." 이에 지어 아뢰었다.
이월에 고구려가 북쪽 경계를 침노하여 팔천 사람을 사로잡아 갔다. 사월에 고구려가 우명산성을 빼앗았다.
23삼십일년 — 땅이 타다
三十一年,春正月,毛只嶽下地燒,廣四歩,長八歩,深五尺,至十月十五日滅。
삼십일년 봄 정월에 모지악 아래 땅이 탔는데 너비 네 보에 길이 여덟 보요 깊이 다섯 자였다. 시월 보름에 이르러 꺼졌다.
24삼십삼년 — 가잠성이 무너지다
三十三年,王遣使隋,奉表請師,隋煬帝許之。行兵事在《高句麗紀》。冬十月,百濟兵來圍椵岑城百日。縣令讚德固守,力竭死之,城沒。
삼십삼년에 왕이 수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표를 올려 군사를 청하니 수나라 양제가 허락하였다. 군사를 낸 일은 「고구려본기」에 있다.
겨울 시월에 백제 군사가 와서 가잠성을 백 날 동안 에워쌌다. 현령 찬덕(讚德)이 굳게 지키다가 힘이 다하여 죽고 성이 무너졌다.
25삼십오년 — 백고좌를 베풀다
三十五年春,旱。夏四月,降霜。秋七月,隋使王世儀至皇龍寺,設百高座,邀圓光等法師,説經。
삼십오년 봄에 가물었다. 여름 사월에 서리가 내렸다. 가을 칠월에 수나라 사신 왕세의가 황룡사에 이르러 백고좌를 베풀고 원광 등 법사를 맞아 경을 설하게 하였다.
26삼십육년 — 영흥사의 흙부처가 무너지다
三十六年,春二月,廢沙伐州,置一善州。以一吉飡日夫爲軍主。永興寺塑佛自壞,未幾,眞興王妃比丘尼死。
삼십육년 봄 이월에 사벌주를 없애고 일선주를 두었다. 일길찬 일부를 군주로 삼았다. 영흥사의 흙부처가 저절로 무너졌는데, 얼마 뒤 진흥왕의 왕비인 비구니가 죽었다.
27삼십칠년 — 사흘 동안 잔치를 내리다
三十七年,春二月,賜大酺三日,冬十月,地震。
삼십칠년 봄 이월에 사흘 동안 큰 잔치를 내렸다. 겨울 시월에 땅이 흔들렸다.
28삼십팔년 — 백제가 모산성을 치다
三十八年,冬十月,百濟來攻母山城。
삼십팔년 겨울 시월에 백제가 와서 모산성을 쳤다.
29사십년 — 해론이 죽다
四十年,北漢山州軍主邊品,謀復椵岑城,發兵與百濟戰,奚論從軍,赴敵力戰死之。論,讚德之子也。
사십년에 북한산주 군주 변품이 가잠성을 되찾으려 꾀하여 군사를 내어 백제와 싸웠다. 해론(奚論)이 종군하여 적에게 나아가 힘껏 싸우다 죽었다. 해론은 찬덕의 아들이다.
30사십삼년 —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다
四十三年,秋七月,王遣使大唐朝貢方物。高祖親勞問之,遣通直散騎常侍文素來聘,賜以璽書、及畫、屏風、錦綵三百段。
사십삼년 가을 칠월에 왕이 사신을 보내어 당나라에 그 지방 산물을 바쳤다. 고조가 몸소 위로하여 묻고, 통직산기상시 유문소를 보내어 오면서 옥새 찍은 글과 그림과 병풍과 비단 삼백 단을 내렸다.
31사십사년 — 내성 사신을 두다
四十四年,春正月,王親幸皇龍寺。二月,以伊飡龍樹爲内省私臣。初,王七年,大宮、梁宮、沙梁宮三所,各置私臣,至是置内省私臣一人,兼掌三宮。
사십사년 봄 정월에 왕이 몸소 황룡사에 거둥하였다. 이월에 이찬 용수를 내성 사신으로 삼았다. 처음 왕 칠년에 대궁·양궁·사량궁 세 곳에 저마다 사신을 두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내성 사신 한 사람을 두어 세 궁을 아울러 맡게 하였다.
32사십오년 — 병부 대감을 두다
四十五年,春正月,置兵部大監二員。冬十月,遣使大唐朝貢。百濟襲勒弩縣。
사십오년 봄 정월에 병부 대감 두 사람을 두었다. 겨울 시월에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조공하였다. 백제가 늑노현을 습격하였다.
33사십육년 — 눌최가 죽다
四十六年,春正月,置侍衛府大監六員,賞賜署大匠一員,大道署大正一員。三月,唐高祖降使,冊王爲柱國樂浪郡公新羅王。冬十月,百濟兵來圍我速含、櫻岑、岑、烽岑、旗懸、穴柵等六城。於是,三城或沒或降。級飡訥催,合烽岑、櫻岑、旗懸三城兵堅守,不克死之。
사십육년 봄 정월에 시위부 대감 여섯 사람과 상사서 대장 한 사람과 대도서 대정 한 사람을 두었다. 삼월에 당나라 고조가 사신을 내려 왕을 주국 낙랑군공 신라왕으로 책봉하였다.
겨울 시월에 백제 군사가 와서 신라의 속함·앵잠·잠·봉잠·기현·혈책 등 여섯 성을 에워쌌다. 이에 세 성이 더러는 무너지고 더러는 항복하였다. 급찬 눌최(訥催)가 봉잠·앵잠·기현 세 성의 군사를 합쳐 굳게 지키다가 이기지 못하고 죽었다.
34사십칠년 — 고구려가 길을 막는다고 하소연하다
四十七年,冬十一月,遣使大唐朝貢。因訟:高句麗塞路,使不得朝,且數侵入。
사십칠년 겨울 십일월에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조공하고, 이어 하소연하였다. "고구려가 길을 막아 조회하지 못하게 하고 또 자주 침노해 들어옵니다."
35사십팔년 — 당 고조가 화친을 타이르다
四十八年,秋七月,遣使大唐朝貢。唐高祖遣朱子奢來,詔諭與高句麗連和。八月,百濟攻主在城,城主東所,拒戰死之。築高墟城。
사십팔년 가을 칠월에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조공하였다. 당나라 고조가 주자사를 보내어 오면서, 고구려와 화친하라고 조서로 타일렀다. 팔월에 백제가 주재성을 치므로 성주 동소가 맞서 싸우다 죽었다. 고허성을 쌓았다.
36사십구년 — 백제가 두 성을 빼앗다
四十九年,春三月,大風雨土,過五日。夏六月,遣使大唐朝貢。秋七月,百濟將軍沙乞,拔西鄙二城,虜男女三百餘口。八月,隕霜殺穀。冬十一月,遣使大唐朝貢。
사십구년 봄 삼월에 큰바람이 불고 흙비가 닷새 넘게 내렸다. 여름 유월에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조공하였다. 가을 칠월에 백제 장군 사걸이 서쪽 변두리 두 성을 빼앗고 남녀 삼백여 사람을 사로잡아 갔다. 팔월에 서리가 내려 곡식이 죽었다. 겨울 십일월에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조공하였다.
37오십년 — 용을 그려 비를 빌다
五十年,春二月,百濟圍椵岑城。王出師撃破之。夏,大旱,移市,畫龍祈雨。秋冬民飢,賣子女。
오십년 봄 이월에 백제가 가잠성을 에워싸므로 왕이 군사를 내어 쳐서 깨뜨렸다. 여름에 크게 가물어 저자를 옮기고 용을 그려 비를 빌었다. 가을과 겨울에 백성이 굶주려 아들딸을 팔았다.
38오십일년 — 김유신이 낭비성에서 벼리가 되다
五十一年,秋八月,王遣大將軍龍春、舒玄,副將軍庾信,侵高句麗娘臂城。麗人出城列陣,軍勢甚盛,我軍望之懼,殊無鬪心。庾信曰:「吾聞:『振領而裘正,提綱而網張。』吾其爲綱領乎!」乃跨馬拔劒,向敵陣直前,三入三出,毎入或斬將或搴旗。諸軍乘勝,鼓噪進撃,斬殺五千餘級,其城乃降。九月,遣使大唐朝貢
오십일년 가을 팔월에 왕이 대장군 용춘과 서현, 부장군 유신(庾信)을 보내어 고구려 낭비성을 침노하였다. 고구려 사람이 성을 나와 진을 벌이니 군세가 매우 성하였다. 신라 군사가 바라보고 두려워하여 도무지 싸울 마음이 없었다.
유신이 말하였다. "내가 듣기로 '옷깃을 떨치면 갖옷이 바로 서고 벼리를 들면 그물이 펼쳐진다' 하였다. 내가 그 벼리와 옷깃이 되리라."
이에 말에 올라 칼을 뽑아 들고 적진을 향해 곧바로 나아가, 세 번 들어가고 세 번 나오며 들어갈 때마다 더러는 장수를 베고 더러는 깃발을 뽑았다. 여러 군사가 이긴 김에 북을 울리며 나아가 쳐서 오천여 급을 베니 그 성이 이내 항복하였다.
구월에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조공하였다.
39오십이년 — 대궁 뜰이 갈라지다
五十二年,大宮庭地裂。
오십이년에 대궁 뜰의 땅이 갈라졌다.
40오십삼년 — 칠숙과 석품의 모반
五十三年,春二月,白狗上于宮墻。夏五月,伊飡柒宿與阿飡石品謀叛,王覺之,捕捉柒宿,斬之東市,并夷九族。阿飡石品,亡至百濟國境,思見妻子,晝伏夜行,還至叢山,見一樵夫,脱衣換樵夫弊衣,衣之,負薪潛至於家。被捉伏刑,秋七月,遣使大唐,美女二人,魏徴以爲不宜受,上喜曰:「彼林邑獻鸚鵡,猶言苦寒,思歸其國,況二女遠別親戚乎!」付使者歸之,白虹飮于宮井。土星犯月。
오십삼년 봄 이월에 흰 개가 궁 담에 올랐다.
여름 오월에 이찬 칠숙(柒宿)이 아찬 석품(石品)과 함께 반역을 꾀하였다. 왕이 알아채고 칠숙을 잡아 동시에서 베고 아울러 구족을 멸하였다.
아찬 석품은 달아나 백제 국경에 이르렀으나 처자가 보고 싶어, 낮에는 숨고 밤에 걸어 총산까지 돌아왔다. 한 나무꾼을 만나 옷을 벗어 나무꾼의 헌 옷과 바꿔 입고, 나무를 지고 몰래 집에 이르렀다가 붙잡혀 형을 받았다.
가을 칠월에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미녀 둘을 바쳤다. 위징(魏徵)이 받아서는 안 된다고 하니, 황제가 기뻐하며 말하였다. "저 임읍에서 앵무를 바쳤을 때도 오히려 추위가 괴롭다며 제 나라로 돌아가고 싶어 하였는데, 하물며 두 여자가 친척과 멀리 헤어지는 일이겠는가." 사신에게 딸려 돌려보냈다.
흰 무지개가 궁 우물의 물을 마셨다. 토성이 달을 범하였다.
41오십사년 — 왕이 죽다
五十四年,春正月,王薨。諡曰眞平,葬于漢只,唐太宗詔,贈左光祿大夫,賻物段二百。
오십사년 봄 정월에 왕이 죽으니 시호를 진평(眞平)이라 하고 한지(漢只)에 장사 지냈다. 당나라 태종이 조서를 내려 좌광록대부를 추증하고 부의로 비단 이백 단을 보냈다.
협주 1
《古記》云:「貞觀六年王辰壬辰正月卒。」而《新唐書》、《資理通鑑》皆云:「貞觀五年辛卯,羅王眞平卒。」豈其誤耶?
『고기』에 이르기를 "정관 육년 임진 정월에 죽었다" 하였는데, 『신당서』와 『자치통감』에는 모두 "정관 오년 신묘에 신라 왕 진평이 죽었다" 하였으니, 어찌 그것이 잘못이 아니겠는가.
42삼국사기 권 제사
三國史記,第四卷
삼국사기 권 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