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덕왕善德王
1선덕왕이 서다 — 나비 없는 모란
善德王立。諱德曼,眞平王長女也,母,金氏摩耶夫人。德曼性寬仁明敏,王薨,無子,國人立德曼,上號聖祖皇姑。前王時,得自唐來牡丹花圖并花子,以示德曼。德曼曰:「此花雖絶艶,必是無香氣。」王笑曰:「爾何以知之?」對曰:「畫花而無蝶,故知之,大抵女有國色,男隨之,花有香氣,蜂蝶隨之故也,此花絶艶,而圖畫又無蜂蝶,是必無香花。」種植之,果如所言,其先識如此。
선덕왕이 즉위하였다. 이름은 덕만(德曼)이요 진평왕의 맏딸이며 어머니는 김씨 마야부인이다. 덕만은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며 밝고 재빨랐다. 왕이 죽고 아들이 없으므로 나라 사람들이 덕만을 세우고 성조황고(聖祖皇姑)라는 칭호를 올렸다.
앞선 왕 때에 당나라에서 온 모란 그림과 꽃씨를 얻어 덕만에게 보였다. 덕만이 말하였다. "이 꽃이 비록 몹시 곱기는 하나 반드시 향기가 없을 것입니다."
왕이 웃으며 말하였다. "네가 어찌 그것을 아느냐."
답하였다. "꽃을 그렸는데 나비가 없으므로 압니다. 무릇 여자가 나라의 미인이면 사내가 따르고, 꽃에 향기가 있으면 벌과 나비가 따르는 법입니다. 이 꽃이 몹시 고운데도 그림에 벌과 나비가 없으니, 이는 반드시 향기 없는 꽃입니다."
심어 보니 과연 말한 대로였다. 그 앞서 아는 것이 이와 같았다.
2원년 — 을제에게 나라 정사를 맡기다
元年,二月,以大臣乙祭摠持國政。夏五月,旱,至六月,乃雨。冬十月,遣使撫問國内。鰥寡孤獨不能自存者,賑恤之。十二月,遣使入唐朝貢。
원년 이월에 대신 을제에게 나라 정사를 모두 맡겼다. 여름 오월에 가물다가 유월에 이르러 비가 왔다. 겨울 시월에 사신을 보내어 나라 안을 위문하고, 홀아비와 과부와 고아와 자식 없는 늙은이로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이를 구휼하였다. 십이월에 사신을 보내어 당나라에 들어가 조공하였다.
3이년 — 조세를 면하다
二年,春正月,親祀神宮,大赦。復諸州郡一年租調。二月,京都地震。秋七月,遣使大唐朝貢。八月,百濟侵西邊。
이년 봄 정월에 몸소 신궁에 제사하고 크게 사면하였다. 여러 주와 군의 한 해 조세를 면하였다. 이월에 서울에 땅이 흔들렸다. 가을 칠월에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조공하였다. 팔월에 백제가 서쪽 변경을 침노하였다.
4삼년 — 분황사가 이루어지다
三年,春正月,改元仁平。芬皇寺成。三月,雹,大如栗。
삼년 봄 정월에 연호를 인평(仁平)으로 고쳤다. 분황사가 이루어졌다. 삼월에 우박이 내렸는데 크기가 밤톨만 하였다.
5사년 — 당나라가 왕을 책봉하다
四年,唐遣使持節,冊命王爲柱國樂浪郡公新羅王,以襲父封。靈廟寺成。冬十月,遣伊飡水品、龍樹,巡撫州縣。
사년에 당나라가 사신에게 부절을 들려 보내어 왕을 주국 낙랑군공 신라왕으로 책봉하니, 아버지의 봉작을 이은 것이다. 영묘사가 이루어졌다. 겨울 시월에 이찬 수품과 용수를 보내어 주와 현을 돌며 어루만지게 하였다.
협주 1
一云龍春。
용춘(龍春)이라고도 한다.
6오년 — 옥문지의 개구리
五年,春正月,拜伊飡水品爲上大等。三月,王疾,醫禱無效,於皇龍寺設百高座,集僧講《仁王經》,許度僧一百人。夏五月,蝦蟇大集宮西玉門池。王聞之,謂左右曰:「蝦蟇怒目,兵士之相也。吾嘗聞,西南邊亦有地名玉門谷者,其或有隣國兵潛入其中乎?」乃命將軍閼川、弼呑,率兵,往搜之,果百濟將軍于召,欲襲獨山城,率甲士五百人,來伏其處。閼川掩撃盡殺之,慈藏法師,入唐求法。
오년 봄 정월에 이찬 수품을 상대등으로 삼았다.
삼월에 왕이 병들어 의원의 약과 기도가 효험이 없으므로, 황룡사에 백고좌를 베풀고 승려를 모아 『인왕경』을 강하게 하며 승려 백 사람을 두는 것을 허락하였다.
여름 오월에 두꺼비가 궁 서쪽 옥문지(玉門池)에 크게 모였다. 왕이 듣고 좌우에게 말하였다. "두꺼비가 성난 눈을 하는 것은 군사의 모습이다. 내가 일찍이 듣기로 서남쪽 변경에도 옥문곡(玉門谷)이라는 곳이 있다 하니, 혹 이웃 나라 군사가 그 안에 몰래 들어온 것이 아니겠는가."
이에 장군 알천과 필탄에게 명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뒤지게 하니, 과연 백제 장군 우소가 독산성을 습격하려고 갑사 오백을 거느리고 와서 그곳에 숨어 있었다. 알천이 덮쳐 다 죽였다.
자장 법사가 당나라에 들어가 법을 구하였다.
7육년 — 알천을 대장군으로 삼다
六年,春正月,拜伊飡思眞爲舒弗邯。秋七月,拜閼川爲大將軍。
육년 봄 정월에 이찬 사진을 서불한으로 삼았다. 가을 칠월에 알천을 대장군으로 삼았다.
8칠년 — 알천이 칠중성 밖에서 이기다
七年,春三月,七重城南大石,自移三十五歩。秋九月,雨黄花。冬十月,高句麗侵北邊七重城,百姓驚擾入山谷。王命大將軍閼川,安集之。十一月,閼川與高句麗兵,戰於七重城外,克之,殺虜甚衆。
칠년 봄 삼월에 칠중성 남쪽 큰 돌이 저절로 서른다섯 보를 옮겨 갔다. 가을 구월에 누런 꽃비가 내렸다. 겨울 시월에 고구려가 북쪽 변경 칠중성을 침노하므로 백성이 놀라 어지러이 산골로 들어갔다. 왕이 대장군 알천에게 명하여 편안히 모이게 하였다. 십일월에 알천이 고구려 군사와 칠중성 밖에서 싸워 이기고 죽이고 사로잡은 것이 매우 많았다.
9팔년 — 북소경을 두다
八年,春二月,以何瑟羅州爲北小京,命沙飡眞珠鎭之。秋七月,東海水赤且熱,魚鼈死。
팔년 봄 이월에 하슬라주를 북소경으로 삼고 사찬 진주에게 명하여 지키게 하였다. 가을 칠월에 동해 물이 붉고 또 뜨거워 물고기와 자라가 죽었다.
10구년 — 자제를 당나라 국학에 보내다
九年,夏五月,王遣子弟於唐,請入國學。是時,太宗大徴天下名儒爲學官,數幸國子監,使之講論,學生能明一大經已上,皆得補官。增築學舍千二百間,增學生滿三千二百六十員。於是四方學者,雲集京師。於是,高句麗、百濟、高昌、吐蕃,亦遣子弟入學。
구년 여름 오월에 왕이 자제를 당나라에 보내어 국학에 들기를 청하였다.
이때 태종이 천하의 이름난 선비를 크게 불러 학관으로 삼고 자주 국자감에 나아가 강론하게 하였는데, 학생이 큰 경서 하나 이상에 밝으면 모두 벼슬에 보임될 수 있었다. 학사 일천이백 칸을 더 짓고 학생을 늘려 삼천이백육십 사람을 채웠다. 이에 사방의 배우는 이가 서울에 구름처럼 모였다. 이에 고구려·백제·고창·토번도 자제를 보내어 배우게 하였다.
11십일년 — 대야성이 무너지고 김춘추가 고구려에 가다
十一年,春正月,遣使大唐獻方物。秋七月,百濟王義慈大擧兵,攻取國西四十餘城。八月,又與高句麗謀,欲取党項城,以絶歸唐之路。王遣使告急於太宗。是月,百濟將軍允忠,領兵攻拔大耶城,都督伊飡品釋、舍知竹竹、龍石等死之。冬,王將伐百濟,以報大耶之役,乃遣伊飡金春秋於高句麗,以請師。初,大耶之敗也,都督品釋之妻死焉,是春秋之女也。春秋聞之,倚柱而立,終日不瞬,人物過前而不之省。既而言曰:「嗟乎!大丈夫豈不能呑百濟乎!」便詣王曰:「臣願奉使高句麗,請兵以報怨於百濟。」王許之,高句麗王高臧,素聞春秋之名,嚴兵衛而後見之。春秋進言曰:「今百濟無道,爲長蛇封豕,以侵軼我封疆。寡君願得大國兵馬,以洗其恥,乃使下臣致命於下執事。
십일년 봄 정월에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그 지방 산물을 바쳤다.
가을 칠월에 백제 왕 의자가 크게 군사를 일으켜 나라 서쪽 사십여 성을 쳐서 빼앗았다. 팔월에 또 고구려와 꾀하여 당항성을 빼앗아 당나라로 가는 길을 끊고자 하므로, 왕이 사신을 보내어 태종에게 급함을 알렸다.
이달에 백제 장군 윤충이 군사를 거느리고 대야성을 쳐서 함락하니 도독 이찬 품석(品釋)과 사지 죽죽·용석 등이 죽었다.
겨울에 왕이 백제를 쳐서 대야의 싸움을 갚고자, 이찬 김춘추(金春秋)를 고구려에 보내어 군사를 청하게 하였다.
처음 대야가 무너질 때 도독 품석의 아내가 죽었는데 그가 춘추의 딸이었다. 춘추가 듣고 기둥에 기대어 서서 온종일 눈을 깜박이지 않았고, 사람이나 물건이 앞을 지나도 알아보지 못하였다. 이윽고 말하였다. "아아, 대장부가 어찌 백제를 삼키지 못하겠는가."
곧 왕에게 나아가 말하였다. "신이 고구려에 사신으로 가서 군사를 청하여 백제에 원수를 갚기를 바랍니다." 왕이 허락하였다.
고구려 왕 고장(高臧)이 본디 춘추의 이름을 들었으므로 군사를 엄히 세워 호위한 뒤에 만났다. 춘추가 나아가 말하였다. "이제 백제가 도가 없어 긴 뱀과 큰 돼지가 되어 우리 지경을 침노합니다. 저희 임금이 큰 나라의 군마를 얻어 그 부끄러움을 씻고자 하여, 이에 아랫사람을 시켜 아래 집사에게 명을 전하게 하였습니다."
12십일년 — 죽령을 내놓으라 하다
」麗王謂曰:「竹嶺本是我地分,汝若還竹嶺西北之地,兵可出焉。」春秋對曰:「臣奉君命乞師,大王無意救患以善鄰,但威劫行人,以要歸地,臣有死而已,不知其他。」臧怒其言之不遜,囚之別館,春秋潛使人告本國王。王命大將軍金信,領死士一萬人赴之。信行軍過漢江,入高句麗南境,麗王聞之,放春秋以還。拜信爲押梁州軍主。
고구려 왕이 말하였다. "죽령은 본디 우리 땅이다. 너희가 죽령 서북쪽 땅을 돌려준다면 군사를 낼 수 있다."
춘추가 답하였다. "신은 임금의 명을 받들어 군사를 빌러 왔습니다. 대왕은 어려움을 구하여 이웃과 잘 지낼 뜻은 없고, 다만 사신을 위협하여 땅을 돌려 달라 요구하십니다. 신은 죽음이 있을 뿐 다른 것은 알지 못합니다."
고장이 그 말이 공손하지 않음에 노하여 별관에 가두었다. 춘추가 몰래 사람을 시켜 본국 왕에게 알렸다. 왕이 대장군 김유신에게 명하여 결사대 일만을 거느리고 나아가게 하였다. 유신이 군사를 이끌고 한강을 지나 고구려 남쪽 경계에 들어가니, 고구려 왕이 듣고 춘추를 놓아 돌려보냈다. 유신을 압량주 군주로 삼았다.
13십이년 — 당 태종의 세 가지 계책
十二年,春正月,遣使大唐獻方物。三月,入唐求法高僧慈藏還。秋九月,遣使大唐上言:「高句麗、百濟侵凌臣國,累遭攻襲數十城。兩國連兵,期之必取,將以今茲九月大擧,下臣社稷必不獲全,謹遣陪臣歸命大國,願乞偏師,以存救援。」帝謂使人曰:「我實哀爾爲二國所侵,所以頻遣使人和爾三國。高句麗、百濟旋踵翻悔,意在呑滅,而分爾土宇。爾國設何奇謀,以免顚越?」使人曰:「吾王事窮計盡,唯告急大國,冀以全之。」帝曰:「我少發邊兵,摠契丹、靺鞨直入遼東,爾國自解,可緩爾一年之圍。此後知無繼兵,還肆侵侮四國倶擾,於爾未安,此爲一策。我又能給爾數千朱袍丹幟,二國兵至,建而陳之,彼見者以爲我兵,必皆奔走,此爲二策。百濟國恃海之嶮,不修機械,男女紛雜,互相燕聚。
십이년 봄 정월에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그 지방 산물을 바쳤다. 삼월에 당나라에 들어가 법을 구하던 고승 자장이 돌아왔다.
가을 구월에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아뢰었다. "고구려와 백제가 신의 나라를 침노하여 여러 차례 수십 성을 쳐서 습격하였습니다. 두 나라가 군사를 이어 기어이 빼앗으려 하며, 올 구월에 크게 일으키려 합니다. 저희 사직이 반드시 온전하지 못할 것이므로, 삼가 배신을 보내어 큰 나라에 목숨을 맡기고 한쪽 군사라도 빌려 구원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황제가 사신에게 말하였다. "내 참으로 너희가 두 나라에게 침노당하는 것을 가엾이 여겨, 자주 사신을 보내어 너희 세 나라를 화해시켰다. 그런데 고구려와 백제는 돌아서자마자 뉘우침을 뒤집어 뜻이 삼켜 없애고 너희 땅을 나누는 데 있다. 너희 나라는 어떤 기이한 꾀를 세워 넘어짐을 면하려 하느냐."
사신이 말하였다. "우리 임금은 일이 궁하고 계책이 다하여, 오직 큰 나라에 급함을 알려 온전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황제가 말하였다.
"내가 변경의 군사를 조금 내어 거란과 말갈을 거느리고 곧바로 요동으로 들어가면 너희 나라는 저절로 풀려 한 해쯤 에움을 늦출 수 있다. 그러나 그 뒤에 이어질 군사가 없음을 알면 도리어 함부로 침노하고 업신여겨 네 나라가 다 어지러워질 것이니 너희에게 편안하지 못하다. 이것이 첫째 계책이다.
내가 또 너희에게 붉은 도포와 붉은 깃발 수천을 줄 수 있으니, 두 나라 군사가 이르거든 세워 벌여 두어라. 저들이 보고 우리 군사라 여겨 반드시 다 달아날 것이다. 이것이 둘째 계책이다.
백제국은 바다의 험함을 믿고 병기를 손질하지 않으며 남녀가 어지러이 섞여 서로 잔치하며 모인다.
14십이년 — 셋째 계책과 황제의 탄식
我以數十百船,載以甲卒,銜枚泛海,直襲其地。爾國以婦人爲主,爲鄰國輕侮,失主延寇,靡歳休寧。我遣一宗支,以爲爾國主。而自不可獨往,當遣兵營護,待爾國安,任爾自守,此爲三策。爾宜思之,將從何事?」使人但唯而無對,帝嘆其庸鄙,非乞師告急之才也。
내가 수십 수백 척 배에 갑사를 싣고 소리 없이 바다를 건너 곧바로 그 땅을 습격하겠다. 그런데 너희 나라는 여자를 임금으로 삼아 이웃 나라에게 업신여김을 받고, 임금을 잃고 도둑을 끌어들여 해마다 편안할 날이 없다. 내가 종친 한 사람을 보내어 너희 나라 임금으로 삼되, 혼자 갈 수는 없으니 마땅히 군사를 보내어 지키게 하고, 너희 나라가 편안해지기를 기다려 너희 스스로 지키게 맡기겠다. 이것이 셋째 계책이다.
너희는 마땅히 생각해 보라. 장차 어느 것을 좇겠느냐."
사신이 다만 "예예" 할 뿐 답이 없으니, 황제가 그 용렬하고 비루함을 탄식하며 군사를 빌고 급함을 알릴 만한 재목이 아니라 하였다.
15십삼년 — 연개소문이 오백 리를 말하다
十三年,春正月,遣使大唐獻方物。太宗遣司農丞相里玄奬,齎璽書,賜高句麗曰:「新羅委命國家,朝貢不闕,爾與百濟,宜即戢兵。若更攻之,明年當出師,撃爾國矣。」蓋蘇文謂玄奬曰:「高句麗、新羅,怨隙已久。往者隋室相侵,新羅乘釁,奪高句麗五百里之地,城邑皆據有之,非返地還城,此兵恐未能已。」玄奬曰:「已往之事,焉可追論?」蘇文竟不從。秋九月,王命信爲上將軍,領兵伐百濟,大克之,取城七。
십삼년 봄 정월에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그 지방 산물을 바쳤다.
태종이 사농승 상리현장을 보내어 옥새 찍은 글을 가지고 가서 고구려에 내렸다. "신라는 우리나라에 목숨을 맡겨 조공을 거르지 않는다. 너희와 백제는 마땅히 곧 군사를 거두라. 만약 다시 친다면 이듬해에 마땅히 군사를 내어 너희 나라를 치겠다."
개소문이 현장에게 말하였다. "고구려와 신라는 원한과 틈이 이미 오래되었소. 지난날 수나라가 서로 침노할 때 신라가 그 틈을 타 고구려의 오백 리 땅을 빼앗아 성과 고을을 다 차지하였소. 땅을 돌려주고 성을 되돌리지 않는 한 이 군사는 아마 그칠 수 없을 것이오."
현장이 말하였다. "이미 지난 일을 어찌 따져 논하겠소." 소문이 끝내 따르지 않았다.
가을 구월에 왕이 유신에게 명하여 상장군으로 삼아 군사를 거느리고 백제를 치게 하니 크게 이겨 성 일곱을 빼앗았다.
16십사년 — 유신이 집 앞을 지나며 돌아보지 않다
十四年,春正月,遣使大唐貢獻方物。庾信自伐百濟還,未見王,百濟大軍復來寇邊。王命拒之,遂不至家,往伐破之,斬首二千級。三月,報命於王,未得歸家,又急報百濟復來侵。王以事急,乃曰:「國之存亡,繋公一身,庶不憚勞,往其圖之!」庾信又不歸家,晝夜鍊兵。西行道,過宅門一家男女,瞻望涕泣,公不顧而歸。三月,創造皇龍寺塔,從慈藏之請也。夏五月,太宗親征高句麗,王發兵三萬以助之。百濟乘虚,襲取國西七城。冬十一月,拜伊飡毗曇爲上大等。
십사년 봄 정월에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그 지방 산물을 바쳤다.
유신이 백제를 치고 돌아와 아직 왕을 뵙지 못하였는데, 백제 대군이 다시 와서 변경을 노략질하였다. 왕이 명하여 막게 하니, 마침내 집에 이르지 않고 가서 쳐서 깨뜨리고 이천 급을 베었다.
삼월에 왕에게 아뢰고 아직 집에 돌아가지 못하였는데, 또 백제가 다시 침노해 온다는 급한 알림이 왔다. 왕이 일이 급하므로 말하였다. "나라의 살고 죽음이 공의 한 몸에 매였으니 수고로움을 꺼리지 말고 가서 도모하라."
유신이 또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밤낮으로 군사를 훈련하였다. 서쪽으로 가는 길에 제 집 문 앞을 지나는데 온 집안 남녀가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으나, 공이 돌아보지 않고 갔다.
삼월에 황룡사 탑을 세우기 시작하였으니 자장의 청을 따른 것이다.
여름 오월에 태종이 몸소 고구려를 치므로 왕이 군사 삼만을 내어 도왔다. 백제가 빈틈을 타 나라 서쪽 일곱 성을 습격하여 빼앗았다.
겨울 십일월에 이찬 비담(毗曇)을 상대등으로 삼았다.
17십육년 — 비담의 난과 왕의 죽음
十六年,春正月,毗曇、廉宗等謂,謂女主不能善理,因謀叛擧兵,不克。八日,王薨。諡曰善德,葬于狼山。
십육년 봄 정월에 비담과 염종 등이 이르기를 "여자 임금은 잘 다스리지 못한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반역을 꾀하여 군사를 일으켰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여드레에 왕이 죽으니 시호를 선덕(善德)이라 하고 낭산에 장사 지냈다.
협주 1
《唐書》云:「貞觀二十一年卒。」《通鑑》云:「二十二年卒。」以本史考之,《通鑑》,誤也。
『당서』에는 "정관 이십일년에 죽었다" 하고 『통감』에는 "이십이년에 죽었다" 하였는데, 본사로 상고하면 『통감』이 잘못이다.
18사론 — 여자를 왕위에 앉힌 일
論曰:臣聞之,古有女媧氏,非正是天子,佐伏羲理九州耳,至若呂雉、武曌,値幼弱之主,臨朝稱制,史書不得公然稱王,但書高皇后呂氏,則天皇后武氏者。以天言之,則陽剛而陰柔,以人言之,則男尊而女卑。豈可許姥嫗出閨房,斷國家之政事乎?新羅扶起女子,處之王位,誠亂世之事。國之不亡,幸也。《書》云:「牝鷄之晨。」《易》云:「羸豕孚蹢躅。」其可不爲之戒哉?
김부식이 논한다.
신이 듣기로 옛날에 여와씨가 있었으나 바른 천자가 아니라 복희를 도와 아홉 고을을 다스렸을 뿐이다. 여치(呂雉)와 무조(武曌) 같은 이에 이르러서는, 어리고 약한 임금을 만나 조정에 임하여 정사를 대신하였으나, 사서에서 드러내 놓고 왕이라 일컫지 못하고 다만 고황후 여씨, 측천황후 무씨라 적었을 뿐이다.
하늘로 말하면 양은 굳세고 음은 부드러우며, 사람으로 말하면 남자는 높고 여자는 낮다. 어찌 늙은 아낙이 규방에서 나와 나라의 정사를 결단하는 것을 허락할 수 있겠는가. 신라가 여자를 붙들어 세워 왕위에 앉혔으니 참으로 어지러운 세상의 일이다.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서경』에 「암탉이 새벽을 알린다」 하였고, 『주역』에 「여윈 돼지가 껑충거린다」 하였으니, 어찌 이를 경계로 삼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