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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왕 하文武王下

삼국사기 三國史記 · 김부식(金富軾) 등 · 1145년 (고려 인종 23) · 단락 33 · 한자 6,291자 · 낭독 25.2분

「삼국사기」 신라본기 「문무왕 하」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역사서. 신라·고구려·백제 본기와 지·표·열전으로 이루어졌다. 김부식이 곳곳에 「論曰」로 자기 평을 달아 두어, 편찬자가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나무랐는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1십일년 — 석성에서 이기고 설인귀의 글을 받다

十一年,春正月,拜伊飡禮元爲中侍。發兵侵百濟,戰於熊津南。幢主夫果死之。靺鞨兵來圍舌口城,不克將退,出兵撃之,斬殺三百餘人。王聞唐兵欲來捄百濟,遣大阿飡眞功、阿飡■■、■■兵守甕浦。白魚躍入■■■■■■■■■■一寸。夏四月,震興輪寺南門。六月,遣將軍竹旨等,領兵踐百濟加林城禾,遂與唐兵戰於石城,斬首五千三百級,獲百濟將軍二人、唐果毅六人。秋七月二十六日,大唐摠管薛仁貴使琳潤法師寄書曰:

십일년 봄 정월에 이찬 예원을 중시로 삼았다. 군사를 내어 백제를 침노하여 웅진 남쪽에서 싸웠는데 당주 부과가 죽었다.

말갈 군사가 와서 설구성을 에웠다가 이기지 못하고 물러나려 하므로, 군사를 내어 치고 삼백여 사람을 베어 죽였다. 왕이 당나라 군사가 백제를 구하러 오려 한다는 말을 듣고, 대아찬 진공과 아찬 (글자 빠짐)을 보내어 (글자 빠짐) 군사로 옹포를 지키게 하였다. 흰 물고기가 뛰어들어 (글자 빠짐) 한 치였다.

여름 사월에 흥륜사 남문에 벼락이 쳤다.

유월에 장군 죽지 등을 보내어 군사를 거느리고 백제 가림성의 벼를 짓밟게 하고, 마침내 당나라 군사와 석성에서 싸워 오천삼백 급을 베고 백제 장군 두 사람과 당나라 과의 여섯 사람을 사로잡았다.

가을 칠월 스무엿새에 당나라 총관 설인귀가 임윤 법사를 시켜 글을 부쳐 말하였다.

2설인귀의 글 — 형은 역적이 되고 아우는 충신이 되었다

「行軍摠管薛仁貴致書新羅王。淸風萬里,大海三千,天命有期,行遵此境。奉承機心稍動,窮武邊城,去由也之片言,失侯生之一諾。兄爲逆首,弟作忠臣,遠分花蕚之陰,空照相思之月。興言彼此,良增歎詠。先王開府,謀猷一國,展轉百城,西畏百濟之侵,北警高麗之寇。地方千里,數處爭鋒,蠶女不及桑時,耘人失其疇序。年將耳順,楡景日侵,不懼船海之危,遠渉陽侯之險,瀝心華境,頓䫙天門,具陳孤弱,明論侵擾,情之所露,聽不勝悲。太宗文皇帝,氣雄天下,神王宇宙,若盤古之九變,同巨靈之一掌,扶傾救弱,日不暇給。哀納先君,矜收所請,輕車駿馬,美衣上藥,一日之内,頻遇殊私。亦既承恩,對揚軍事,契同魚水,明於金石。鳳鑰千重,鶴關萬戸,留連酒德,讌笑金除,叅論兵馬。

"행군총관 설인귀가 신라 왕에게 글을 보낸다.

맑은 바람이 만 리요 큰 바다가 삼천이니, 하늘의 명에 기약이 있어 이 지경을 밟아 좇았다. 삼가 듣건대 꾀하는 마음이 차츰 움직여 변방 성에 무력을 다한다 하니, 자로의 한마디 말을 저버리고 후생의 한 번 승낙을 잃은 것이다. 형은 거스름의 우두머리가 되고 아우는 충신이 되어, 꽃받침의 그늘이 멀리 나뉘고 서로 그리는 달만 헛되이 비춘다. 이쪽저쪽을 말하려 하니 참으로 탄식이 더한다.

선왕께서 부를 열어 한 나라를 꾀하시고 백 성을 옮겨 다니시며, 서쪽으로는 백제의 침노를 두려워하고 북쪽으로는 고구려의 도둑질을 경계하셨다. 땅이 사방 천 리인데 여러 곳에서 칼끝을 다투니, 누에 치는 여인은 뽕 딸 때에 미치지 못하고 김매는 사람은 그 밭의 차례를 잃었다.

나이 예순에 가까워 저무는 볕이 날로 스며드는데도 배로 바다 건너는 위태로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멀리 큰 물결의 험함을 건너, 중국 땅에 마음을 쏟고 천자의 문에 머리를 조아려, 외롭고 약함을 갖추어 아뢰고 침노와 어지럽힘을 밝혀 논하셨으니, 그 정이 드러난 바를 들으면 슬픔을 이길 수 없다.

태종문황제는 기개가 천하에 웅장하고 신령함이 우주에 왕성하여, 반고가 아홉 번 변한 것 같고 거령이 손바닥 한 번 쓴 것과 같았다. 기울어진 것을 붙들고 약한 것을 구하시느라 날이 모자랐다. 선군을 슬피 여겨 받아들이고 청한 바를 가엾이 여겨 거두시니, 가벼운 수레와 좋은 말과 아름다운 옷과 좋은 약을 하루 안에 자주 남다른 사사로움으로 내리셨다.

이미 은혜를 받고 군사 일을 마주 들어 밝히니, 맺음이 물고기와 물 같고 밝기가 쇠와 돌 같았다. 봉황 자물쇠 천 겹과 학의 문 만 집에서 술의 덕에 머물러 이어지고 금빛 섬돌에서 잔치하고 웃으며 군마를 함께 논하였다.

3설인귀의 글 — 왕은 헤아릴 줄을 모른다

分期聲援,一朝大擧,水陸交鋒。于時,塞草分花,楡星上莢。駐蹕之戰,文帝親行,吊人恤隱,義之深也。既而,山海異形,日月廻薄,聖人下武,王亦承家。巖葛因依,聲塵共擧,洗兵刷馬,咸遵先志。數十年外,中國疲勞,帑藏時開,飛蒭日給。以蒼島之地,起黄圖之兵,貴於有益,貪於無用。豈不知止,恐失先君之信也。今強寇已淸,讎人喪國,士馬玉帛,王亦有之。當應心膂不移,中外相輔,銷鏑而化,虚室爲情,自然貽厥孫謀,以燕翼子。良史之讚,豈不休哉?今王去安然之基,厭守常之策,遠乖天命,近棄父言,侮暴天時,侵欺鄰好,一隅之地,僻左之陬,率戸徴兵,連年擧斧,孀姫輓粟,稚子屯田。守無所支,進不能拒。以得裨喪,以存補亡,大小不侔,逆順乖敍,亦由持彈而往,暗於枯井之危,捕蟬而前,不知黄雀之難,此王之不知量也。

때를 나누어 소리로 도우니 하루아침에 크게 일으켜 물과 뭍이 칼끝을 맞대었다. 그때 변방 풀이 꽃을 나누고 느릅나무 별이 꼬투리를 올렸다. 주필의 싸움에는 문황제가 몸소 나아가 사람을 조문하고 숨은 이를 돌보셨으니 의로움이 깊었다.

이윽고 산과 바다가 모습을 달리하고 해와 달이 돌아 다가와, 성인이 무를 내리시고 왕 또한 집을 이었다. 바위와 칡이 서로 의지하듯 소리와 티끌을 함께 들어, 병기를 씻고 말을 손질하며 모두 앞선 뜻을 좇았다.

수십 년 동안 중국이 지치고 곳간을 때때로 열어 꼴을 날마다 날라 대었다. 푸른 섬의 땅을 위하여 누런 도읍의 군사를 일으켰으니, 유익함을 귀히 여긴 것이지 쓸데없는 것을 탐한 것이 아니다. 어찌 그칠 줄을 몰랐겠는가, 선군의 믿음을 잃을까 두려워한 것이다.

이제 강한 도둑이 이미 맑아지고 원수 된 사람이 나라를 잃었으니, 군사와 말과 옥과 비단을 왕 또한 가졌다. 마땅히 심장과 등뼈가 옮기지 않고 안과 밖이 서로 도와, 화살촉을 녹여 교화하고 빈방으로 마음을 삼아, 저절로 그 손자에게 꾀를 물려주고 자손을 편안히 감싸야 할 것이다. 좋은 사관의 기림이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이제 왕은 편안한 터를 버리고 늘 지키던 계책을 싫어하여, 멀리는 하늘의 명을 어기고 가까이는 아버지의 말을 버리며, 하늘의 때를 업신여기고 이웃의 좋음을 침노하여 속인다. 한 모퉁이 땅, 치우친 구석에서 집집이 군사를 거두어 해마다 도끼를 들어, 홀로 된 여인이 곡식을 나르고 어린아이가 둔전을 한다. 지켜도 버틸 바가 없고 나아가도 막을 수 없다.

도움을 얻으려다 잃음을 얻고 있음을 보전하려다 없어짐을 더하니, 크고 작음이 같지 않고 거스름과 따름의 차례가 어그러졌다. 또한 탄환을 들고 가면서 마른 우물의 위태로움에 어둡고, 매미를 잡으려 나아가면서 참새의 어려움을 모르는 것과 같다. 이것이 왕이 헤아릴 줄 모르는 것이다.

4설인귀의 글 — 안승을 믿는 것은 그릇된 일이다

先王在日,早蒙天睠,審懷險詖之心,假以披誠之禮,從己私欲,貪天至功,苟希前惠,圖爲後逆,此先君之不長者也。必其誓河若帶,義分如霜,違君之命不忠,背父之心非孝,一身二名,何以自寧?王之父子,一朝振立,此並天情遠及,威力相持,方州連郡,遂爲盤錯。從此,遽蒙冊命,拜以稱臣。坐治經書,備詳詩禮,聞義不從,見善而輕,聽縱橫之説,煩耳目之神,忽高門之基,延鬼瞰之責。先君盛業,奉而異圖,内潰疑臣,外招強陣,豈爲智也?又高麗安勝,年尚幼冲,遺壑殘郛,生人減半,自懷去就之疑,匪堪襟帶之重。仁貴樓船,竟翼風帆,連旗巡於北岸,矜其舊日傷弓之羽,未忍加兵,恃爲外援,斯何謬也!皇帝德澤無涯,仁風遠洎,愛同日景,炤若春華。

선왕이 계실 적에 일찍 하늘의 돌보심을 입었으나, 살피건대 험하고 치우친 마음을 품고 정성을 헤치는 예를 빌려, 제 사사로운 욕심을 좇고 하늘의 지극한 공을 탐하며, 구차히 앞선 은혜를 바라면서 뒷날의 거스름을 꾀하였으니, 이는 선군이 어른답지 못한 바이다.

반드시 그 황하가 띠만 해지도록 하는 맹세와 의로움의 나뉨이 서릿발 같거늘, 임금의 명을 어김은 충성이 아니요 아비의 마음을 등짐은 효도가 아니다. 한 몸에 두 이름을 지니고 어찌 스스로 편안하겠는가.

왕의 아비와 아들이 하루아침에 떨쳐 선 것은, 모두 하늘의 정이 멀리 미치고 위엄과 힘이 서로 붙들어, 여러 주와 이어진 군이 마침내 뒤얽힌 뿌리처럼 굳어진 것이다. 이로부터 곧 책명을 입어 절하며 신하라 일컬었다.

앉아서 경서를 다스리고 시와 예를 갖추어 자세히 알면서도, 의로움을 듣고 따르지 않고 착함을 보고도 가벼이 여기며, 종횡가의 말을 들어 귀와 눈의 신령함을 번거롭게 하고, 높은 문의 터를 소홀히 하여 귀신이 엿보는 꾸짖음을 부른다. 선군의 성한 업을 받들면서 다른 것을 꾀하여, 안으로는 의심하는 신하를 무너뜨리고 밖으로는 강한 진을 부르니 어찌 슬기롭다 하겠는가.

또 고구려 안승은 나이가 아직 어리고, 남은 골짜기와 부서진 성곽에 산 사람이 반으로 줄어, 스스로 가고 머묾의 의심을 품고 있어 옷깃과 띠의 무거움을 감당하지 못한다. 인귀의 다락배가 마침내 바람 돛을 펴 깃발을 이어 북쪽 언덕을 돌면서도, 지난날 화살에 상한 새의 깃을 가엾이 여겨 차마 군사를 더하지 못하였는데, 그를 믿어 바깥의 도움으로 삼으니 이 어찌 그릇된 일이 아니겠는가.

황제의 은덕은 가없고 어진 바람이 멀리 미쳐, 사랑함이 햇빛과 같고 비춤이 봄꽃과 같다.

5설인귀의 글 — 이것이 왕의 고칠 수 없는 병이다

遠聞消息,悄然不信,爰命下臣,來觀由委。而王不能行人相問,牛酒犒師,遂便隱甲雀陂,藏兵江口,蚑行林薄,喘息萊丘。潛生自㭀之鋒,而無相持之氣。大軍未出,游兵具行,望海浮江,魚驚鳥竄。以此形況,人事可求,沉迷猖惑,幸而知止。夫擧大事者,不貪小利,杖高節者,寄以英奇。必其鸞鳳不馴,豺狼有顧,高將軍之漢騎,李謹行之蕃兵,呉、楚棹歌,幽并惡少,四面雲合,方舟而下,依險築戍,闢地耕田,此王之膏肓也。王若勞者歌,事屈而頓申,具論所由,明陳彼此。仁貴夙陪大駕,親承委寄,録狀聞奏,事必昭蘇,何苦怱怱,自相縈擾。嗚呼,昔爲忠義,今乃逆臣,恨始吉而終凶,怨本同而末異。風高氣切,葉落年悲,憑山遠望,有傷懷抱。王以機䎸淸明,風神爽秀,歸以流謙之義,存於順迪之心,血食依時,茅苴不易,占休納祐,王之策也。嚴鋒之間,行人來往,今遣王所部僧琳潤書,佇布一二。」

멀리 소식을 듣고도 걱정스러워 믿지 않으시고, 이에 아랫사람에게 명하여 그 까닭을 와서 보게 하셨다. 그런데 왕은 사람을 보내어 서로 묻지도 않고 소와 술로 군사를 위로하지도 않은 채, 마침내 참새 못에 갑옷을 감추고 강 어귀에 군사를 숨겨, 숲과 덤불에서 기어 다니고 풀 언덕에서 숨을 몰아쉰다. 몰래 스스로 죽이는 칼끝을 내면서도 서로 버틸 기운은 없다.

큰 군사가 아직 나오지도 않았는데 노는 군사가 다 다니고, 바다를 바라보고 강에 뜨매 물고기가 놀라고 새가 숨는다. 이러한 형편으로 사람의 일을 헤아릴 만하니, 어지러움에 빠지고 미쳐 헤매다가도 요행히 그칠 줄 알아야 한다.

무릇 큰일을 하는 이는 작은 이익을 탐하지 않고, 높은 절개를 짚은 이는 뛰어나고 기이한 데에 기댄다. 반드시 그 난새와 봉황이 길들지 않고 승냥이와 이리가 돌아보는 마음이 있다면, 고 장군의 한나라 기병과 이근행의 번병과 오나라·초나라의 뱃노래하는 이들과 유주·병주의 사나운 젊은이들이 사면에서 구름처럼 모여, 배를 나란히 하여 내려와 험한 곳에 기대어 수자리를 쌓고 땅을 열어 밭을 갈 것이다. 이것이 왕의 고칠 수 없는 병이다.

왕이 만약 수고로운 이가 노래하듯 일이 굽혀지고서야 문득 펴려 한다면, 까닭을 갖추어 논하고 이쪽저쪽을 밝히 아뢰라. 인귀는 일찍이 큰 수레를 모시어 몸소 맡김을 받았으니, 사정을 적어 아뢰면 일이 반드시 밝게 되살아날 것이다. 어찌 괴로이 서둘러 스스로 서로 얽히고 어지럽히는가.

아아, 옛날에는 충성되고 의로웠는데 이제는 거스르는 신하가 되었으니, 처음은 길하고 끝은 흉함이 한스럽고, 본디는 같았는데 끝이 다름이 원망스럽다. 바람이 높고 기운이 매서우며 잎이 지고 해가 슬픈데, 산에 기대어 멀리 바라보니 마음이 상한다.

왕은 기틀과 슬기가 맑고 밝으며 풍채와 정신이 시원하고 빼어나니, 겸손함을 흐르게 하는 의로움으로 돌아가고 따라 나아가는 마음에 머물러, 피의 제사가 때를 따르고 띠풀 자리가 바뀌지 않게 하며, 아름다움을 차지하고 복을 받는 것이 왕의 계책이다. 엄한 칼끝 사이에도 사신은 오가는 법이니, 이제 왕이 거느린 승려 임윤을 보내어 글을 부치니 한두 가지를 펴기를 기다린다."

6대왕이 답서를 보내다

大王報書云:

대왕이 답서를 보내어 말하였다.

7답서 — 태종의 약속과 백제 평정

「先王貞觀二十二年,入朝,面奉太宗文皇帝恩勅。『朕今伐高麗,非有他故,憐伱新羅,攝乎兩國,毎被侵陵,靡有寧歳。山川土地,非我所貪,玉帛子女,是我所有。我平定兩國,平壤已南百濟土地、並乞伱新羅,永爲安逸。』垂以計會,賜以軍期。新羅百姓,具聞恩勅,人人畜力,家家待用。大事未終,文帝先崩,今帝踐祚,復繼前恩,頻蒙慈造,有踰往日。兄弟及兒,懷金拖紫,榮寵之極,夐古未有。粉身碎骨,望盡驅馳之用,肝腦塗原,仰報萬分之一。至顯慶五年,聖上感先志之未終,成曩日之遺緖,泛舟命將,大發船兵。先王年衰力弱,不堪行軍,追感前恩,勉強至於界首,遣某領兵,應接大軍。東西唱和,水陸倶進,船兵纔入江口,陸軍已破大賊。兩軍倶到王都,共平一國。

"선왕께서 정관 이십이년에 조정에 들어가 태종문황제의 은혜로운 칙명을 몸소 받으셨습니다.

'짐이 이제 고구려를 치는 것은 다른 까닭이 있어서가 아니다. 너희 신라가 두 나라 사이에 끼어 늘 침노와 업신여김을 입어 편안한 해가 없음을 가엾이 여겨서다. 산천과 토지는 내가 탐하는 바가 아니요, 옥과 비단과 아들딸은 내가 이미 가진 것이다. 내가 두 나라를 평정하면 평양 이남 백제 땅을 아울러 너희 신라에 주어 길이 편안하게 하겠다.'

이렇게 계책을 내려 주시고 군사 낼 때를 정해 주셨습니다. 신라 백성이 은혜로운 칙명을 갖추어 듣고 사람마다 힘을 쌓고 집집마다 쓰이기를 기다렸습니다.

큰일이 끝나기 전에 문황제가 먼저 돌아가시고 지금 황제가 자리에 오르시어 다시 앞의 은혜를 이으시니, 자주 어지신 베푸심을 입은 것이 지난날보다 더하였습니다. 형제와 아들이 금인을 품고 자줏빛 인끈을 드리우니, 영광과 사랑의 지극함이 예로부터 있지 않았습니다. 몸이 가루가 되고 뼈가 부서져도 달려가 쓰이기를 다하기 바라며, 간과 뇌가 들에 발리더라도 만분의 하나를 우러러 갚고자 하였습니다.

현경 오년에 이르러 성상께서 선왕의 뜻이 끝나지 못함을 느끼시고 지난날의 남은 실마리를 이루시려, 배를 띄우고 장수에게 명하여 크게 수군을 일으키셨습니다. 선왕은 나이 늙고 힘이 약하여 행군을 견디지 못하였으나, 앞의 은혜를 좇아 느끼고 애써 지경 어귀까지 이르러 저를 보내어 군사를 거느리고 큰 군사를 맞아 잇게 하였습니다. 동과 서가 서로 부르고 물과 뭍이 함께 나아가, 수군이 겨우 강 어귀에 들 때 육군은 이미 큰 도둑을 깨뜨렸습니다. 두 군사가 함께 왕도에 이르러 한 나라를 함께 평정하였습니다.

8답서 — 복신의 난과 웅진의 위태로움

平定已後,先王遂共蘇大摠管平章,留漢兵一萬,新羅亦遣弟仁泰,領兵七千,同鎭熊津。大軍廻後,賊臣福信,起於江西,取集餘燼,圍逼府城,先破外柵,摠奪軍資,復攻府城,幾將陷沒。又於府城側近四處,作城圍守,於此,府城不得出入。某領兵往赴解圍,四面賊城,並皆打破,先救其危,復運粮食,遂使一萬漢兵,免虎吻之危難,留鎭餓軍,無易子而相食。至六年,福信徒黨漸多,侵取江東之地,熊津漢兵一千,往打賊徒,被賊摧破,一人不歸。自敗已來,熊津請兵,日夕相繼。新羅多有疫病,不可徴發兵馬,苦請難違,遂發兵衆,往圍周留城。賊知兵小,遂即來打,大損兵馬,失利而歸。南方諸城,一時摠叛,並屬福信,福信乘勝,復圍府城。因即熊津道斷,絶於鹽豉,即募健兒,偸道送鹽,救其乏困。

평정한 뒤에 선왕이 마침내 소 대총관과 함께 의논하여, 한나라 군사 일만을 남기고 신라도 아우 인태를 보내어 군사 칠천을 거느리고 함께 웅진을 지키게 하였습니다.

큰 군사가 돌아간 뒤에 도둑 신하 복신이 강 서쪽에서 일어나 남은 무리를 거두어 모아 부성을 에워싸고 다그쳤습니다. 먼저 바깥 목책을 깨뜨려 군수품을 모두 빼앗고 다시 부성을 치니 거의 함몰될 지경이었습니다. 또 부성 가까운 네 곳에 성을 지어 에워싸고 지키니, 이로써 부성은 드나들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제가 군사를 거느리고 나아가 에움을 풀고 사방의 도둑 성을 아울러 다 쳐부수어, 먼저 그 위태로움을 구하고 다시 양식을 날라, 마침내 한나라 군사 일만으로 하여금 범 아가리의 어려움을 면하게 하고, 남아 지키던 주린 군사가 자식을 바꾸어 서로 먹는 일이 없게 하였습니다.

육년에 이르러 복신의 무리가 차츰 많아져 강 동쪽 땅을 침노하여 빼앗으므로, 웅진의 한나라 군사 일천이 도둑 무리를 치러 갔다가 도둑에게 꺾여 한 사람도 돌아오지 못하였습니다. 진 뒤로 웅진에서 군사를 청하는 것이 밤낮으로 서로 이어졌습니다. 신라에 돌림병이 많아 군마를 징발할 수 없었으나, 괴로이 청하는 것을 어기기 어려워 마침내 군사를 내어 주류성을 에웠습니다. 도둑이 군사가 적음을 알고 마침내 곧 나와 치니 군마를 크게 잃고 이롭지 못하여 돌아왔습니다.

남쪽의 여러 성이 한꺼번에 모두 배반하여 아울러 복신에게 붙으니, 복신이 이긴 기세를 타고 다시 부성을 에웠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웅진 길이 끊겨 소금과 된장이 떨어지므로, 곧 굳센 사내를 모아 몰래 길을 뚫어 소금을 보내어 그 모자람과 괴로움을 구하였습니다.

9답서 — 옹산성을 깨뜨리고 눈길에 군량을 나르다

至六月,先王薨,送葬纔訖,喪服未除,不能應赴,勅旨發兵北歸。含資道摠管劉德敏等至,奉勅遣新羅供運平壤軍粮。此時,熊津使人來,具陳府城孤危。劉摠管與某平章自云:『若先送平壤軍粮,即恐熊津道斷,熊津若其道斷,留鎭漢兵,即入賊手。』劉摠管遂共某相隨,先打甕山城。既拔甕山,仍於熊津造城,開通熊津道路。至十二月,熊津粮盡。先運熊津,恐違勅旨,若送平壤,即恐熊津絶粮。所以差遣老弱,運送熊津,強健精兵,擬向平壤。熊津送粮,路上逢雪,人馬死盡,百不一歸。至龍朔二年正月,劉摠管共新羅兩河道摠管金庾信等,同送平壤軍粮。當時陰雨連月,風雪極寒,人馬凍死,所將兵粮,不能勝致。平壤大軍,又欲歸還。

유월에 이르러 선왕이 죽으니, 장사를 마치자마자 상복도 벗지 못한 채 달려가 응할 수 없었는데, 칙지가 군사를 내어 북쪽으로 가라 하였습니다. 함자도총관 유덕민 등이 이르러 칙명을 받들어, 신라로 하여금 평양에 군량을 대어 나르게 하였습니다.

이때 웅진에서 사람이 와 부성이 외롭고 위태로움을 갖추어 아뢰었습니다. 유 총관이 저와 의논하여 스스로 말하였습니다. '만약 평양 군량을 먼저 보내면 웅진 길이 끊길까 두렵고, 웅진이 만약 그 길이 끊기면 남아 지키는 한나라 군사가 곧 도둑의 손에 들어갈 것이오.' 유 총관이 마침내 저와 서로 따라 먼저 옹산성을 쳤습니다. 옹산을 빼앗고 나서 이어 웅진에 성을 쌓아 웅진 길을 열어 통하게 하였습니다.

십이월에 이르러 웅진의 양식이 다하였습니다. 웅진에 먼저 나르자니 칙지를 어길까 두렵고, 평양으로 보내자니 웅진의 양식이 끊길까 두려웠습니다. 그러므로 늙고 약한 이를 가려 보내어 웅진으로 날라 보내고, 굳세고 정예한 군사는 평양으로 향하게 하였습니다. 웅진으로 양식을 보내는 이들이 길에서 눈을 만나 사람과 말이 다 죽어 백에 하나도 돌아오지 못하였습니다.

용삭 이년 정월에 이르러 유 총관이 신라 양하도총관 김유신 등과 함께 평양에 군량을 보냈습니다. 그때 흐리고 비 오는 날이 달을 이었고 바람과 눈이 몹시 추워 사람과 말이 얼어 죽으니, 가지고 간 군량을 이겨 낼 수 없었습니다. 평양의 큰 군사도 또한 돌아가려 하였습니다.

협주 1

一云瓮山城。

옹산성(甕山城)은 옹산성(瓮山城)이라고도 한다.

10답서 — 한나라 군사 일만을 사 년 동안 먹이고 입혔다

新羅兵馬,粮盡亦廻。兵士饑寒,手足凍瘃,路上死者,不可勝數。行至瓠瀘河,高麗兵馬,尋後來趂,岸上列陣。新羅兵士,疲乏日久,恐賊遠趂,賊未渡河,先渡交刃,前鋒暫交,賊徒瓦解,遂收兵歸來。此兵到家,未經一月,熊津府城,頻索種子,前後所送,數萬餘斛。南運熊津,北供平壤,蕞小新羅,分供兩所,人力疲極,牛馬死盡,田作失時,年穀不熟,所貯倉粮,漕運並盡,新羅百姓,草根猶自不足,熊津漢兵,粮食有餘。又留鎭漢兵,離家日久,衣裳破壞,身無全褐。新羅勸課百姓,送給時服。都護劉仁願,遠鎭孤城,四面皆賊,恒被百濟侵圍,常蒙新羅解救。一萬漢兵,四年衣食新羅,仁願已下,兵士已上,皮骨雖生漢地,血肉倶是新羅。國家恩澤,雖復無涯,新羅效忠,亦足矜憫。

신라 군마도 양식이 다하여 또한 돌아왔습니다. 군사들이 주리고 추워 손발에 동상이 나고 길에서 죽은 이를 이루 셀 수 없었습니다. 가다가 호로하에 이르니 고구려 군마가 뒤를 밟아 쫓아와 언덕 위에 진을 벌였습니다. 신라 군사가 지치고 고달픈 지 오래되었으나, 도둑이 멀리 쫓아올까 두려워 도둑이 강을 건너기 전에 먼저 건너 칼을 맞대니, 앞선 칼끝이 잠깐 맞부딪치자 도둑 무리가 기와처럼 무너졌습니다. 마침내 군사를 거두어 돌아왔습니다.

이 군사가 집에 이른 지 한 달이 지나지 않아 웅진 부성에서 자주 씨앗을 찾으니, 앞뒤로 보낸 것이 수만여 섬입니다. 남으로 웅진에 나르고 북으로 평양에 대니, 자그마한 신라가 두 곳에 나누어 대느라 사람의 힘이 다하고 소와 말이 다 죽었습니다. 밭갈이가 때를 잃고 그해 곡식이 익지 않아 쌓아 둔 창고의 양식마저 배로 실어 내어 다 없어졌습니다. 신라 백성은 풀뿌리도 오히려 넉넉하지 못한데 웅진의 한나라 군사는 먹을 것이 남았습니다.

또 남아 지키는 한나라 군사가 집을 떠난 지 오래되어 옷이 해어져 몸에 온전한 베옷이 없으므로, 신라가 백성에게 권하고 매겨 철에 맞는 옷을 보내 주었습니다. 도호 유인원이 멀리 외로운 성을 지키는데 사방이 모두 도둑이라, 늘 백제의 침노와 에움을 입고 늘 신라의 구원을 입었습니다. 한나라 군사 일만이 사 년 동안 신라에게서 입고 먹었으니, 인원 이하 군사에 이르기까지 가죽과 뼈는 비록 한나라 땅에서 났으나 피와 살은 모두 신라의 것입니다. 나라의 은택이 비록 다시 가없다 하나, 신라가 충성을 바친 것 또한 가엾이 여길 만합니다.

11답서 — 주류성을 깨뜨리고 웅령에서 맹세하다

至龍朔三年,摠管孫仁師領兵來救府城,新羅兵馬,亦發同征,行至周留城下。此時,倭國船兵,來助百濟,倭船千艘,停在白沙,百濟精騎,岸上守船。新羅驍騎,爲漢前鋒,先破岸陣,周留失膽,遂即降下。南方已定,廻軍北伐,任存一城,執迷不降。兩軍併力,共打一城,固守拒捍,不能打得。新羅即欲廻還,杜大夫云:『準勅,既平已後,共相盟會,任存一城,雖未降下,即可共相盟誓。』新羅以爲。準勅,『旣平。』已後,共相盟會,任存未降,不可以爲『旣平。』又且百濟,姦詐百端,反覆不恒,今雖共相盟會,於後恐有噬臍之患,奏請停盟。至麟德元年,復降嚴勅,責不盟誓,即遣人於熊嶺,築壇共相盟會。仍於盟處,遂爲兩界。盟會之事,雖非所願,不敢違勅。

용삭 삼년에 이르러 총관 손인사가 군사를 거느리고 부성을 구하러 오므로, 신라 군마도 또한 일어나 함께 나아가 주류성 아래에 이르렀습니다. 이때 왜국의 수군이 백제를 도우러 와 왜의 배 일천 척이 백사에 머물고, 백제의 정예 기병이 언덕 위에서 배를 지켰습니다. 신라의 날랜 기병이 한나라 군사의 앞장이 되어 먼저 언덕의 진을 깨뜨리니, 주류성이 담을 잃고 마침내 곧 항복하였습니다.

남쪽이 이미 평정되매 군사를 돌려 북쪽을 치는데, 임존 한 성만이 미혹함을 붙잡고 항복하지 않았습니다. 두 군사가 힘을 아울러 한 성을 함께 쳤으나 굳게 지키고 막아 얻지 못하였습니다. 신라가 곧 돌아가려 하니 두 대부가 말하였습니다. '칙명에 따라 이미 평정한 뒤에는 함께 서로 모여 맹세하라 하였으니, 임존 한 성이 비록 항복하지 않았어도 곧 함께 서로 맹세할 만하오.'

신라는 이렇게 여겼습니다. 칙명에 '이미 평정한' 뒤에 함께 서로 모여 맹세하라 하였는데, 임존이 항복하지 않았으니 '이미 평정하였다' 할 수 없습니다. 또 백제는 간사하고 속임이 백 가지라 이랬다저랬다 하여 한결같지 않으니, 이제 비록 함께 모여 맹세하더라도 뒷날 배꼽을 물어뜯는 근심이 있을까 두렵다 하여, 맹세를 멈추기를 아뢰어 청하였습니다.

인덕 원년에 이르러 다시 엄한 칙명을 내려 맹세하지 않음을 꾸짖으므로, 곧 사람을 웅령에 보내어 제단을 쌓고 함께 서로 모여 맹세하였습니다. 이어 맹세한 곳을 마침내 두 나라의 지경으로 삼았습니다. 맹세하여 모이는 일은 비록 바라던 바가 아니나 감히 칙명을 어기지 못하였습니다.

12답서 — 취리산의 맹세와 평양의 싸움

又於就利山築壇,對勅使劉仁願,歃血相盟,山河爲誓,畫界立封,永爲疆界,百姓居住,各營産業。至乾封二年,聞大摠管英國公征遼,某往漢城州,遣兵集於界首。新羅兵馬,不可獨入,先遣細作三度,船相次發遣,覘候大軍。細作廻來,並云:『大軍未到平壤。』且打高麗七重城,開通道路,佇待大軍來至。其城垂垂欲破,英公使人江深來云。『奉大摠管處分,新羅兵馬不須打城,早赴平壤,即給兵粮。』遣令赴會,行至水谷城,聞大軍已廻,新羅兵馬,遂即抽來。至乾封三年,遣大監金寶嘉入海,取英公進止。奉處分,新羅兵馬,赴集平壤。至五月,劉右相來,發新羅兵馬,同赴平壤。某亦往漢城州,檢校兵馬。此時,蕃、漢諸軍,摠集虵水,男建出兵,欲決一戰。

또 취리산에 제단을 쌓고 칙사 유인원을 마주하여 피를 마시고 서로 맹세하되, 산과 내를 두고 다짐하며 지경을 그어 봉토를 세워 길이 강토의 경계로 삼으니, 백성이 살면서 각각 생업을 경영하였습니다.

건봉 이년에 이르러 대총관 영국공이 요동을 친다는 말을 듣고, 제가 한성주로 가서 군사를 보내어 지경 어귀에 모았습니다. 신라 군마가 홀로 들어갈 수 없으므로 먼저 세작을 세 차례 보내고 배를 잇달아 띄워 보내어 큰 군사를 엿보게 하였습니다. 세작이 돌아와 아울러 말하였습니다. '큰 군사가 아직 평양에 이르지 않았습니다.'

또 고구려 칠중성을 쳐서 길을 열고 큰 군사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 성이 곧 무너지려 할 때 영공이 사람 강심을 보내어 말하였습니다. '대총관의 처분을 받드니, 신라 군마는 성을 칠 것 없이 일찍 평양으로 나아가면 곧 군량을 대라 하셨소.' 가서 모이라 하므로 가다가 수곡성에 이르러 큰 군사가 이미 돌아갔다는 말을 듣고, 신라 군마도 마침내 곧 빼어 돌아왔습니다.

건봉 삼년에 이르러 대감 김보가를 바다에 보내어 영공의 나아가고 멈춤을 받아 오게 하였습니다. 처분을 받드니 신라 군마는 평양으로 나아가 모이라 하였습니다. 오월에 이르러 유 우상이 와서 신라 군마를 일으켜 함께 평양으로 나아갔습니다. 저도 한성주로 가서 군마를 살펴 점검하였습니다. 이때 번병과 한나라의 여러 군사가 모두 사수에 모이니, 남건이 군사를 내어 한 번 싸워 결판을 내려 하였습니다.

13답서 — 큰 공을 세우고도 공이 없다는 말을 듣다

新羅兵馬,獨爲前鋒,先破大陣,平壤城中,挫鋒縮氣。於後,英公更取新羅驍騎五百人,先入城門,遂破平壤,克成大功。於此新羅兵士並云:『自征伐已經九年,人力殫盡,終始平兩國,累代長望,今日乃成,必當國蒙盡忠之恩,人受効力之賞。』英公漏云:『新羅前失軍期,亦須計定。』新羅兵士得聞此語,更增怕懼。又立功軍將,並録入朝,已到京下,即云:『今新羅並無功。』夫軍將歸來,百姓更加怕懼。又卑列之城,本是新羅,高麗打得三十餘年,新羅還得此城,移配百姓,置官守捉,又取此城,還與高麗。且新羅自平百濟,迄定高麗,盡忠効力,不負國家,未知何罪,一朝遺棄。雖有如此寃枉,終無反叛之心。至總章元年,百濟於盟會處,移封易標,侵取田地,詃我奴婢,誘我百姓,隱藏内地,頻從索取,至竟不還。

신라 군마가 홀로 앞장이 되어 먼저 큰 진을 깨뜨리니, 평양성 안이 칼끝이 꺾이고 기운이 움츠러들었습니다. 뒤에 영공이 다시 신라의 날랜 기병 오백 사람을 뽑아 먼저 성문에 들게 하여, 마침내 평양을 깨뜨리고 큰 공을 이루었습니다.

이에 신라 군사가 모두 말하였습니다. '싸움을 나선 지 아홉 해가 지나 사람의 힘이 다하였으나 마침내 두 나라를 평정하였다. 여러 대의 오랜 바람이 오늘에야 이루어졌으니, 반드시 나라는 충성을 다한 은혜를 입고 사람은 힘을 바친 상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 영공이 흘려 말하였습니다. '신라가 앞서 군사 낼 때를 어겼으니 또한 헤아려 정해야 한다.' 신라 군사가 이 말을 듣고 두려움이 더하였습니다. 또 공을 세운 군장을 아울러 적어 조정에 들이게 하여 이미 서울에 이르렀는데, 곧 말하기를 '이제 신라는 아울러 공이 없다' 하였습니다. 무릇 군장이 돌아오매 백성이 더욱 두려워하였습니다.

또 비열성은 본디 신라의 것인데 고구려가 쳐서 얻은 지 서른여 해 만에 신라가 이 성을 도로 얻어, 백성을 옮겨 배치하고 관리를 두어 지키게 하였는데, 또 이 성을 가져다 도로 고구려에 주었습니다. 또 신라는 백제를 평정한 때부터 고구려를 평정하기까지 충성을 다하고 힘을 바쳐 나라를 저버리지 않았는데, 무슨 죄인지 알지 못한 채 하루아침에 버림을 받았습니다. 비록 이러한 원통하고 억울함이 있어도 끝내 배반할 마음은 없었습니다.

총장 원년에 이르러 백제가 맹세하여 모인 곳에서 봉토를 옮기고 표를 바꾸어 밭과 땅을 침노하여 빼앗고, 우리 노비를 꾀어내고 우리 백성을 꾀어 안쪽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자주 찾아 달라 하였으나 끝내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14답서 — 백제가 신라를 치려 한다는 소문

又通消息云:『國家修理船艘,外託征伐倭國,其實欲打新羅。』百姓聞之,驚懼不安。又將百濟婦女,嫁與新羅漢城都督朴都儒,同謀合計,偸取新羅兵器,襲打一州之地,賴得事覺,即斬都儒,所謀不成。至咸亨元年六月,高麗謀叛,摠殺漢官。新羅即欲發兵,先報熊津云:『高麗既叛,不可不伐,彼此倶是帝臣,理須同討凶賊,發兵之事,須有平章,請遣官人來此,共相計會。』百濟司馬禰軍來此,遂共平章云:『發兵已後,即恐彼此相疑,宜令兩處官人,互相交質。』即遣金儒敦及府城百濟主簿首彌、長貴等,向府平論交質之事。百濟雖許交質,城中仍集兵馬,到彼城下,夜即來打。至七月,入朝使金欽純等至,將畫界地,案圖披檢百濟舊地,摠令割還。黄河未帶,太山未礪,三四年間,一與一奪,新羅百姓,皆失本望,並云:『新羅、百濟累代深讎,今見百濟形況,別當自立一國,百年已後,子孫必見呑滅。

또 소식을 전하여 말하기를 '나라에서 배를 손질하는 것은 겉으로는 왜국을 친다 하나 실은 신라를 치려는 것이다' 하니, 백성이 듣고 놀라고 두려워 편안하지 못하였습니다.

또 백제의 부녀를 신라 한성도독 박도유에게 시집보내어, 함께 꾀하고 계책을 맞추어 신라의 병기를 몰래 훔쳐 한 주의 땅을 습격하려 하였는데, 다행히 일이 드러나 곧 도유를 베어 꾀한 바가 이루어지지 못하였습니다.

함형 원년 유월에 이르러 고구려가 배반을 꾀하여 한나라 관리를 모두 죽였습니다. 신라가 곧 군사를 내려 하면서 먼저 웅진에 알렸습니다. '고구려가 이미 배반하였으니 치지 않을 수 없다. 이쪽저쪽이 모두 황제의 신하이니 이치로 마땅히 함께 흉악한 도둑을 쳐야 한다. 군사 내는 일은 모름지기 의논이 있어야 하니, 관인을 이리로 보내어 함께 서로 헤아려 모으기를 청한다.'

백제의 사마 예군이 이리로 와서 마침내 함께 의논하여 말하였습니다. '군사를 낸 뒤에는 곧 이쪽저쪽이 서로 의심할까 두려우니, 마땅히 두 곳의 관인이 서로 볼모를 주고받게 하시오.' 곧 김유돈과 부성의 백제 주부 수미·장귀 등을 보내어 부성으로 가서 볼모를 주고받는 일을 평하여 논하게 하였습니다. 백제가 비록 볼모를 허락하였으나 성 안에는 그대로 군마를 모아, 그 성 아래에 이르자 밤에 곧 와서 쳤습니다.

칠월에 이르러 조정에 들어갔던 사신 김흠순 등이 이르러 장차 지경 땅을 그으려고, 그림을 살펴 백제의 옛 땅을 헤쳐 보고 모두 갈라 돌려주게 하였습니다. 황하가 아직 띠가 되지 않고 태산이 아직 숫돌이 되지 않았는데 서너 해 사이에 한 번 주고 한 번 빼앗으니, 신라 백성이 모두 본디 바라던 것을 잃고 아울러 말하였습니다. '신라와 백제는 여러 대의 깊은 원수다. 이제 백제의 형편을 보니 따로 스스로 한 나라를 세울 것이니, 백 년 뒤에는 자손이 반드시 삼켜 없어짐을 볼 것이다.

15답서 — 참소를 입고 원통함을 아뢰다

新羅既是國家之州,不可分爲兩國。願爲一家,長無後患。』去年九月,具録事狀,發使奏聞,被漂却來。更發遣使,亦不能達。於後,風寒浪急,未及聞奏。百濟構架奏云:『新羅反叛。』新羅前失貴臣之志,後被百濟之譖,進退見咎,未申忠欵。似是之讒,日經聖聽,不貳之忠,曾無一達。使人琳潤至辱書,仰承摠管,犯冒風波,遠來海外,理須發使郊迎,致其牛酒,遠居異城,未獲致禮,時闕迎接,請不爲怪。披讀摠管來書,專以新羅已爲叛逆,既非本心,惕然驚懼。數自功夫,恐被斯辱之譏,緘口受責,亦入不弔之數,今略陳寃枉,具録無叛。國家不降一介之使,垂問元由。即遣數萬之衆,傾覆巢穴,樓船滿於滄海,艫舳連於江口,數彼熊津,伐此新羅。嗚呼。兩國未定平,蒙指蹤之驅馳,野獸今盡,反見烹宰之侵逼。

신라는 이미 나라의 한 주이니 나뉘어 두 나라가 될 수 없다. 바라건대 한집이 되어 길이 뒷걱정이 없게 하라.'

지난해 구월에 일의 사정을 갖추어 적어 사신을 보내어 아뢰려 하였으나 바람에 떠밀려 돌아왔습니다. 다시 사신을 보냈으나 또한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그 뒤로는 바람이 차고 물결이 급하여 아뢰기에 미치지 못하였습니다. 백제가 얽어 아뢰기를 '신라가 배반하였다' 하였습니다.

신라가 앞서는 귀한 신하의 뜻을 잃고 뒤에는 백제의 참소를 입어, 나아가도 물러나도 허물을 보아 충성스러운 정성을 펴지 못하였습니다. 그럴듯한 참소는 날마다 성상의 귀를 거치는데, 두 마음 없는 충성은 일찍이 하나도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사신 임윤이 이르러 글을 욕되이 받으니, 우러러 총관께서 바람과 물결을 무릅쓰고 멀리 바다 밖에 오심을 받들었습니다. 이치로는 모름지기 사신을 보내어 교외에서 맞고 소와 술을 드려야 하나, 멀리 다른 성에 살아 예를 드리지 못하고 때로 맞아들이는 것을 빠뜨렸으니, 괴이하게 여기지 마시기를 청합니다.

총관이 보낸 글을 헤쳐 읽으니, 오로지 신라를 이미 배반한 역적으로 삼으셨습니다. 이는 본디 마음이 아니므로 두렵고 놀랐습니다. 스스로 공들인 바를 세자니 이러한 욕됨의 나무람을 입을까 두렵고, 입을 다물고 꾸짖음을 받자니 또한 조문하지 못할 수에 드는지라, 이제 원통함과 억울함을 대강 펴고 배반함이 없음을 갖추어 적습니다.

나라에서 한 사람의 사신도 내려보내어 그 까닭을 물으시지 않고, 곧 수만의 무리를 보내어 둥지와 굴을 뒤엎으려 하십니다. 다락배가 푸른 바다에 가득하고 배의 고물과 이물이 강 어귀에 이어져, 저 웅진을 헤아려 이 신라를 치려 하십니다.

아아. 두 나라가 평정되지 못하였을 때에는 자취를 가리키는 대로 달려가 쓰였는데, 들짐승이 이제 다하니 도리어 삶기고 잡히는 다그침을 봅니다.

16답서 — 살펴 헤아려 아뢰어 주기를 청하다

賊殘百濟,反蒙雍齒之賞,殉漢新羅,已見丁公之誅。大陽之曜,雖不廻光,葵藿本心,猶懷向日。摠管禀英雄之秀氣,抱將相之高材,七德兼備,九流渉獵,恭行天罰,濫加非罪。天兵未出,先問元由。縁此來書,敢陳不叛,請摠管審自商量,具狀申奏。林州大都督左衛大將軍開府儀同三司上柱國新羅王金法敏白。」

도둑으로 남은 백제는 도리어 옹치의 상을 입고, 한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신라는 이미 정공의 베임을 봅니다. 큰 볕의 빛남이 비록 빛을 돌리지 않더라도 해바라기의 본마음은 오히려 해를 향함을 품습니다.

총관은 영웅의 빼어난 기운을 타고나고 장수와 재상의 높은 재목을 품어, 일곱 덕을 아울러 갖추고 아홉 갈래 학문을 두루 건너셨습니다. 하늘의 벌을 삼가 행하시되 죄 아닌 것에 함부로 더하지 마십시오. 하늘의 군사가 나오기 전에 먼저 그 까닭을 물으십시오.

이 글로 말미암아 감히 배반하지 않았음을 펴니, 총관께서는 살펴 스스로 헤아리시어 사정을 갖추어 아뢰어 주시기를 청합니다.

계림주대도독 좌위대장군 개부의동삼사 상주국 신라왕 김법민 아룀."

17십일년 — 당나라 조운선을 치다

置所夫里州,以阿飡眞王爲都督。九月,唐將軍高侃等,率蕃兵四萬到平壤,深溝高壘侵帶方。冬十月六日,撃唐漕船七十餘艘,捉郞將鉗耳大侯、士卒百餘人。其淪沒死者,不可勝數。級飡當千功第一,授位沙飡。

소부리주를 두고 아찬 진왕을 도독으로 삼았다.

구월에 당나라 장군 고간 등이 번병 사만을 거느리고 평양에 이르러 도랑을 깊이 파고 보루를 높이 쌓고 대방을 침노하였다.

겨울 시월 엿새에 당나라 조운선 칠십여 척을 쳐서 낭장 겸이대후와 군사 백여 사람을 사로잡았다. 물에 빠져 죽은 자는 이루 셀 수 없었다. 급찬 당천의 공이 첫째이므로 사찬 벼슬을 주었다.

18십이년 — 석문에서 지고 당나라에 죄를 빌다

十二年,春正月,王遣將攻百濟古省城,克之。二月,攻百濟加林城,不克。秋七月,唐將高侃率兵一萬,李謹行率兵三萬,一時至平壤,作八營留屯。八月,攻韓始城、馬邑城,克之,進兵距白水城五百許歩作營,我兵與高句麗兵逆戰,斬首數千級。高侃等退,追至石門戰之,我兵敗績,大阿飡曉川、沙飡義文、山世、阿飡能申、豆善、一吉飡安那含、良臣等死之。築漢山州晝長城,周四千三百六十歩。九月,彗星七出北方。王以向者百濟往訴於唐,請兵侵我,事勢急迫,不獲申奏,出兵討之。由是,獲罪大朝,遂遣級飡原川,奈麻邊山,及所留兵船郞將鉗耳大侯、萊州司馬王藝、本烈州長史王益、熊州都督府司馬禰軍、曾山司馬法聰、軍士一百七十人,上表乞罪曰:「臣某死罪謹言,昔臣危急,事若倒懸,遠蒙拯救,得免屠滅。

십이년 봄 정월에 왕이 장수를 보내어 백제 고성성을 쳐서 이겼다. 이월에 백제 가림성을 쳤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가을 칠월에 당나라 장수 고간이 군사 일만을, 이근행이 군사 삼만을 거느리고 한꺼번에 평양에 이르러 여덟 진영을 짓고 머물러 진 쳤다. 팔월에 한시성과 마읍성을 쳐서 이기고, 군사를 밀고 나아가 백수성에서 오백 보쯤 되는 곳에 진영을 지었다. 신라 군사가 고구려 군사와 함께 맞아 싸워 수천 급을 베었다. 고간 등이 물러나므로 뒤쫓아 석문에 이르러 싸웠는데 신라 군사가 크게 졌다. 대아찬 효천, 사찬 의문·산세, 아찬 능신·두선, 일길찬 안나함·양신 등이 죽었다.

한산주에 주장성을 쌓으니 둘레가 사천삼백육십 보였다. 구월에 살별이 북쪽에 일곱 번 나타났다.

왕이 지난번에 백제가 당나라에 가서 하소연하여 군사를 청해 신라를 침노하므로, 일의 형세가 급박하여 아뢰지 못하고 군사를 내어 쳤다. 이로 말미암아 큰 조정에 죄를 얻었으므로, 마침내 급찬 원천과 나마 변산 및 붙들어 두었던 병선 낭장 겸이대후, 내주사마 왕예, 본열주장사 왕익, 웅주도독부사마 예군, 증산사마 법총과 군사 일백일흔 사람을 보내며 표를 올려 죄를 빌었다.

"신 아무개가 죽을죄를 짓고 삼가 아룁니다. 옛적에 신이 위급하여 일이 거꾸로 매달린 듯하였을 때, 멀리 건져 주심을 입어 무찔려 없어짐을 면하였습니다.

19십이년 — 죄를 비는 표문

粉身糜骨,未足上報鴻恩,碎首灰塵,何能仰酬慈造。然深讐百濟,逼近臣蕃,告引天兵,滅臣雪恥。臣忙破滅,自欲求存,枉被凶逆之名,遂入難赦之罪。臣恐事意未申,先從刑戮,生爲逆命之臣,死爲背恩之鬼,謹録事狀,冒死奏聞,伏願少垂神聽,炤審元由。臣前代已來,朝貢不絶,近爲百濟,再虧職貢,遂使聖朝出言,命將討臣之罪,死有餘刑。南山之竹,不足書臣之罪,褒斜之林,未足作臣之械。瀦池宗社,屠裂臣身,事聽勅裁,甘心受戮。臣櫬轝在側,泥首未乾,泣血待朝,伏聽刑命。伏惟,皇帝陛下,明同日月,容光並蒙曲炤,德合乾坤,動植咸被亭毒,好生之德,遠被昆蟲,惡殺之仁,爰流翔泳。儻降服捨之宥,賜全腰領之恩,雖死之年,猶生之日。非所希冀,敢陳所懷,不勝伏劒之志。

몸이 가루가 되고 뼈가 부서져도 큰 은혜를 위로 갚기에 넉넉하지 못하고, 머리가 부서져 재와 티끌이 되어도 어찌 어지신 베푸심을 우러러 갚겠습니까.

그러나 깊은 원수 백제가 신의 울타리에 바싹 다가와 하늘의 군사를 끌어들여 신을 없애고 부끄러움을 씻으려 하였습니다. 신은 무너지고 없어질까 바빠 스스로 살아남기를 구하다가, 흉악하고 거스른다는 이름을 억울하게 입고 마침내 용서받기 어려운 죄에 들었습니다.

신은 일의 뜻을 아뢰기 전에 먼저 형벌을 좇아, 살아서는 명을 거스른 신하가 되고 죽어서는 은혜를 등진 귀신이 될까 두렵습니다. 삼가 일의 사정을 적어 죽음을 무릅쓰고 아뢰오니, 엎드려 바라건대 신령한 들으심을 조금 드리우시어 그 까닭을 밝게 살펴 주소서.

신은 앞선 대 이래로 조공을 끊지 않았는데, 근래에 백제 때문에 두 번 직분의 공물을 이지러뜨려 마침내 거룩한 조정으로 하여금 말씀을 내어 장수에게 신의 죄를 치게 하셨으니, 죽어도 남는 형벌이 있습니다. 남산의 대나무로도 신의 죄를 다 쓰기에 넉넉하지 않고, 포야의 숲으로도 신의 형틀을 만들기에 넉넉하지 않습니다. 종묘와 사직을 웅덩이로 만들고 신의 몸을 찢더라도, 일은 칙명의 재단을 좇아 달게 베임을 받겠습니다.

신은 널을 실은 수레를 곁에 두고 이마에 진흙이 마르지 않은 채 피눈물을 흘리며 조정을 기다리고, 엎드려 형벌의 명을 듣겠습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황제 폐하는 밝음이 해와 달과 같아 빛을 받는 것이 아울러 굽어 비춤을 입고, 덕이 하늘과 땅에 맞아 움직이는 것과 심어진 것이 모두 기르심을 입습니다. 살리기를 좋아하는 덕이 멀리 벌레에까지 미치고, 죽이기를 미워하는 어짊이 이에 나는 것과 헤엄치는 것에까지 흐릅니다. 만일 옷을 벗기고 놓아주시는 용서를 내리시어 허리와 목을 온전히 하는 은혜를 주신다면, 비록 죽는 해라도 오히려 사는 날과 같겠습니다.

바랄 바가 아니오나 감히 품은 바를 펴며, 칼에 엎드리려는 뜻을 이기지 못합니다.

20십이년 — 원천을 보내어 표를 올리다

謹遣原川等,拜表謝罪,伏聽勅旨。某頓首頓首,死罪死罪。」兼進貢銀三萬三千五百分,銅三萬三千分,針四百枚,牛黄百二十分,金百二十分,四十升綜布六匹,三十升布六十匹。是歳,穀貴,人飢。

삼가 원천 등을 보내어 표를 올려 죄를 빌며 엎드려 칙지를 듣겠습니다. 아무개가 머리를 조아리고 머리를 조아리며, 죽을죄를 짓고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아울러 은 삼만 삼천오백 푼, 구리 삼만 삼천 푼, 바늘 사백 개, 우황 백스무 푼, 금 백스무 푼, 마흔 새 종포 여섯 필, 서른 새 베 예순 필을 바쳤다. 이해에 곡식이 귀하여 사람들이 주렸다.

21십삼년 — 김유신이 죽다

十三年,春正月,大星隕皇龍寺,在城中間。拜強首爲沙飡,歳賜租二百石。二月,增築西兄山城。夏六月,虎入大宮庭,殺之。秋七月一日,庾信卒。阿飡大吐謀叛付唐,事泄伏誅,妻孥充賤。八月,以波珍飡天光爲中侍。增築沙熱山城。九月,築國原城、北兄山城、召文城、耳山城、首若州走壤城、達含郡主岑城、居烈州萬興寺山城、歃良州骨爭峴城。王遣大阿飡徹川等,領兵船一百艘,鎭西海。唐兵與靺鞨、契丹兵來侵北邊,凡九戰,我兵克之,斬首二千餘級。唐兵溺瓠瀘、王逢二河,死者不可勝計。冬,唐兵攻高句麗牛岑城,降之。契丹、靺鞨兵攻大楊城、童子城,滅之。始置外司正,州二人、郡一人。初,太宗王滅百濟,罷戍兵,至是復置。

십삼년 봄 정월에 큰 별이 황룡사와 왕성 사이에 떨어졌다. 강수를 사찬으로 삼고 해마다 조 이백 섬을 내렸다. 이월에 서형산성을 더 쌓았다.

여름 유월에 범이 큰 궁궐 뜰에 들어오므로 죽였다.

가을 칠월 초하루에 유신이 죽었다. 아찬 대토가 배반을 꾀하여 당나라에 붙으려 하다가 일이 새어 베임을 당하고 처자는 천민으로 삼았다.

팔월에 파진찬 천광을 중시로 삼았다. 사열산성을 더 쌓았다.

구월에 국원성·북형산성·소문성·이산성과 수약주 주양성, 달함군 주잠성, 거열주 만흥사산성, 삽량주 골쟁현성을 쌓았다. 왕이 대아찬 철천 등을 보내어 병선 일백 척을 거느리고 서해를 지키게 하였다.

당나라 군사가 말갈·거란 군사와 함께 북쪽 변경을 침노하여 모두 아홉 번 싸웠는데 신라 군사가 이겨 이천여 급을 베었다. 당나라 군사가 호로하와 왕봉하 두 강에 빠져 죽은 자를 이루 셀 수 없었다.

겨울에 당나라 군사가 고구려 우잠성을 쳐서 항복시켰다. 거란과 말갈 군사가 대양성과 동자성을 쳐서 없앴다.

처음으로 외사정을 두어 주에 두 사람, 군에 한 사람을 두었다. 처음에 태종왕이 백제를 없애고 수자리 군사를 파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다시 두었다.

협주 2

古薍長城

국원성은 옛 완장성(薍長城)이다.

一名迭巖城。

일명 질암성(迭巖城)이라 한다.

22십사년 — 안승을 보덕왕으로 봉하다

十四年,春正月,入唐宿衛大奈麻德福傳,學曆術還,改用新曆法。王納高句麗叛衆。又據百濟故地,使人守之。唐高宗大怒,詔削王官爵,王弟右驍衛員外大將軍臨海郡公仁問在京師,立以爲新羅王,使歸國,以左庶子同中書門下三品劉仁軌,爲雞林道大摠管,衛尉卿李弼、右領軍大將軍李謹行副之,發兵來討。二月,宮内穿池造山,種花草,養珍禽奇獸。秋七月,大風毀皇龍寺佛殿。八月,大閲於西兄山下。九月,命義安法師爲大書省,封安勝爲報德王。十年,封安勝高句麗王,今再封,不知報德之言,若歸命等耶,或地名耶。幸靈廟寺前路閲兵,觀阿飡薛秀眞六陣兵法。

십사년 봄 정월에 당나라에 들어가 숙위하던 대나마 덕복이 역법을 배워 전하고 돌아오므로 새 역법으로 고쳐 썼다.

왕이 고구려의 배반한 무리를 받아들이고 또 백제의 옛 땅을 차지하여 사람을 시켜 지키게 하였다. 당나라 고종이 크게 노하여 조서로 왕의 관작을 깎고, 서울에 있던 왕의 아우 우효위원외대장군 임해군공 인문을 세워 신라 왕으로 삼아 나라로 돌아가게 하였다. 좌서자 동중서문하삼품 유인궤를 계림도대총관으로 삼고, 위위경 이필과 우령군대장군 이근행을 부장으로 삼아 군사를 내어 치게 하였다.

이월에 궁궐 안에 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꽃과 풀을 심고 진기한 새와 기이한 짐승을 길렀다.

가을 칠월에 큰 바람이 불어 황룡사 불전을 헐었다. 팔월에 서형산 아래에서 크게 사열하였다.

구월에 의안 법사를 대서성으로 삼고 안승을 보덕왕(報德王)으로 봉하였다. 십년에 안승을 고구려 왕으로 봉하였는데 이제 다시 봉하였으니, '보덕'이라는 말이 귀명(歸命)과 같은 것인지 혹은 땅 이름인지 알 수 없다. 영묘사 앞길에 거둥하여 군사를 사열하고 아찬 설수진의 육진병법을 보았다.

23십오년 — 매초성에서 이십만을 물리치다

十五年,春正月,以銅鑄百司及州郡印,頒之。二月,劉仁軌破我兵於七重城。仁軌引兵還,詔以李謹行爲安東鎭撫大使,以經略之。王乃遣使,入貢且謝罪,帝赦之,復王官爵。金仁問中路而還,改封臨海郡公。然多取百濟地,遂抵高句麗南境爲州郡。聞唐兵與契丹、靺鞨兵來侵,出九軍,待之。秋九月,薛仁貴以宿衛學生風訓之父金眞珠,伏誅於本國,引風訓爲鄕導,來攻泉城。我將軍文訓等,逆戰勝之,斬首一千四百級,取兵船四十艘。仁貴解圍退走,得戰馬一千匹。二十九日,李謹行率兵二十萬,屯買肖城,我軍撃走之,得戰馬三萬三百八十匹,其餘兵仗,稱是。遣使入唐貢方物。縁安北河設關城,又築鐵關城。靺鞨入阿達城劫掠,城主素那逆戰死之。唐兵與契丹、靺鞨兵來,圍七重城,不克。

십오년 봄 정월에 구리로 여러 관청과 주군의 도장을 부어 만들어 나누어 주었다.

이월에 유인궤가 신라 군사를 칠중성에서 깨뜨렸다. 인궤가 군사를 이끌고 돌아가니, 조서로 이근행을 안동진무대사로 삼아 경략하게 하였다. 왕이 이에 사신을 보내어 조공하고 또 죄를 비니, 황제가 용서하고 왕의 관작을 돌려주었다. 김인문은 도중에 돌아가 임해군공으로 고쳐 봉하였다. 그러나 백제 땅을 많이 차지하여 마침내 고구려 남쪽 지경에 이르기까지 주와 군으로 삼았다.

당나라 군사가 거란·말갈 군사와 함께 와서 침노한다는 말을 듣고 아홉 군을 내어 기다렸다.

가을 구월에 설인귀가 숙위학생 풍훈의 아비 김진주가 본국에서 베임을 당하였다 하여 풍훈을 길잡이로 끌어들여 천성을 치러 왔다. 신라 장군 문훈 등이 맞아 싸워 이기고 일천사백 급을 베었으며 병선 마흔 척을 빼앗았다. 인귀가 에움을 풀고 물러나 달아나므로 싸움말 일천 필을 얻었다.

스무아흐레에 이근행이 군사 이십만을 거느리고 매초성에 진 쳤는데, 신라 군사가 쳐서 쫓고 싸움말 삼만 삼백여든 필을 얻었으며 그 밖의 병기도 이만하였다.

사신을 보내어 당나라에 들어가 그 지방 산물을 바쳤다. 안북하를 따라 관성을 베풀고 또 철관성을 쌓았다.

말갈이 아달성에 들어와 노략질하므로 성주 소나가 맞아 싸우다 죽었다. 당나라 군사가 거란·말갈 군사와 함께 와서 칠중성을 에웠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24십오년 — 열여덟 번 싸워 모두 이기다

小守儒冬死之。靺鞨又圍赤木城,滅之,縣令脱起率百姓,拒之,力竭倶死。唐兵又圍石峴城,拔之,縣令仙伯、悉毛等,力戰死之。又我兵與唐兵大小十八戰,皆勝之,斬首六千四十七級,得戰馬二百匹。

소수 유동이 죽었다. 말갈이 또 적목성을 에워싸 없애니, 현령 탈기가 백성을 거느리고 막다가 힘이 다하여 함께 죽었다. 당나라 군사가 또 석현성을 에워싸 빼앗으니, 현령 선백과 실모 등이 힘껏 싸우다 죽었다. 또 신라 군사가 당나라 군사와 크고 작게 열여덟 번 싸워 모두 이기고 육천사십칠 급을 베었으며 싸움말 이백 필을 얻었다.

25십육년 — 기벌포에서 이기다

十六年,春二月,高僧義相奉旨,創浮石寺。秋七月,彗星出北河、積水之間,長六七許歩。唐兵來攻道臨城,拔之,縣令居尸知死之,作壤宮。冬十一月,沙飡施得領船兵,與薛仁貴戰於所夫里州伎伐浦,敗績,又進大小二十二戰,克之,斬首四千餘級。宰相陳純乞致仕,不允,賜几杖。

십육년 봄 이월에 고승 의상이 뜻을 받들어 부석사를 세웠다.

가을 칠월에 살별이 북하와 적수 사이에 나타났는데 길이가 예닐곱 보쯤이었다. 당나라 군사가 도림성을 치러 와서 빼앗으니 현령 거시지가 죽었다. 작양궁을 지었다.

겨울 십일월에 사찬 시득이 수군을 거느리고 설인귀와 소부리주 기벌포에서 싸워 졌으나, 다시 나아가 크고 작게 스물두 번 싸워 이기고 사천여 급을 베었다.

재상 진순이 벼슬에서 물러나기를 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않고 안석과 지팡이를 내렸다.

26십칠년 — 좌사록관을 두다

十七年,春三月,觀射於講武殿南門。始置左司祿館。所夫里州獻白鷹。

십칠년 봄 삼월에 강무전 남문에서 활쏘기를 보았다. 처음으로 좌사록관을 두었다. 소부리주에서 흰 매를 바쳤다.

27십팔년 — 선부령을 두고 북원소경을 두다

十八年,春正月,置船府令一員,掌船楫事。加左右理方府卿各一員。置北原小京,以大阿飡呉起守之。三月,拜大阿飡春長爲中侍。夏四月,阿天訓爲武珍州都督。五月,北原獻異鳥,羽翮有文,脛有毛。

십팔년 봄 정월에 선부령 한 사람을 두어 배와 노 젓는 일을 맡게 하였다. 좌우이방부경을 각각 한 사람씩 더하였다. 북원소경을 두고 대아찬 오기로 지키게 하였다.

삼월에 대아찬 춘장을 중시로 삼았다.

여름 사월에 아찬 천훈을 무진주 도독으로 삼았다.

오월에 북원에서 기이한 새를 바쳤는데 깃에 무늬가 있고 정강이에 털이 있었다.

28십구년 — 사천왕사가 이루어지다

十九年,春正月,中侍春長病免,舒弗邯天存爲中侍。二月,發使略耽羅國。重修宮闕,頗極壯麗。夏四月,熒惑守羽林。六月,太白入月,流星犯參大星。秋八月,太白入月。角干天存卒。創造東宮,始定内外諸門額號。四天王寺成。增築南山城。

십구년 봄 정월에 중시 춘장이 병으로 면직되므로 서불한 천존을 중시로 삼았다. 이월에 사신을 보내어 탐라국을 침략하였다. 궁궐을 크게 고치니 자못 장하고 고움이 지극하였다.

여름 사월에 형혹성이 우림 별자리를 지켰다. 유월에 태백이 달에 들어가고 유성이 삼성의 큰 별을 범하였다.

가을 팔월에 태백이 달에 들어갔다. 각간 천존이 죽었다. 동궁을 지어 만들고 처음으로 안팎 여러 문의 이름을 정하였다. 사천왕사가 이루어졌다. 남산성을 더 쌓았다.

29이십년 — 안승에게 누이를 시집보내다

二十年,春二月,拜伊飡金軍官爲上大等。三月,以金銀器及雜綵百段,賜報德王安勝,遂以王妹妻之。下敎書曰:「人倫之本,夫婦攸先。王化之基,繼嗣爲主。王鵲巢位曠,雞鳴在心。不可久空内輔之儀,永闕起家之業。今良辰吉日,率順舊章,以寡人妹女爲伉儷,王宜共敦心義,式奉宗祧,克茂子孫,永豐盤石,豈不盛歟,豈不美歟?」夏五月,高句麗王使大將軍延武等,上表曰:「臣安勝言,大阿飡金官長至,奉宣敎旨,并賜敎書,以外生公,爲下邑内主,仍以四月十五日至此,喜懼交懷,罔知攸寘。竊以帝女降嬀,王姫適齊,本揚聖德,匪關凡才。臣本庸流,行能無算,幸逢昌運,沐浴聖化,毎荷殊澤,欲報無堦。重蒙天寵,降此姻親,遂即穠華表慶,肅雝成德。

이십년 봄 이월에 이찬 김군관을 상대등으로 삼았다.

삼월에 금과 은 그릇과 여러 빛깔 비단 백 단을 보덕왕 안승에게 내리고, 마침내 왕의 누이를 시집보냈다. 교서를 내려 말하였다.

"사람의 도리의 근본은 부부가 먼저요, 왕의 교화의 터전은 대를 잇는 것이 으뜸이다. 왕은 까치 둥지의 자리가 비고 닭 울음이 마음에 있으니, 안에서 돕는 예를 오래 비워 두고 집을 일으키는 업을 길이 빠뜨릴 수 없다. 이제 좋은 때 좋은 날에 옛 법을 좇아 과인의 누이를 짝으로 삼으니, 왕은 마땅히 함께 마음과 의로움을 두터이 하여 종묘를 받들고, 자손을 무성하게 하여 길이 반석처럼 넉넉하게 하라. 어찌 성하지 않으며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여름 오월에 고구려 왕이 대장군 연무 등을 보내어 표를 올려 말하였다.

"신 안승이 아룁니다. 대아찬 김관장이 이르러 교지를 펴 받들고 아울러 교서를 내리시어, 외생공으로 하여금 저희 고을의 안주인이 되게 하시니, 이어 사월 열닷새에 이곳에 이르렀습니다. 기쁨과 두려움이 함께 품어져 둘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가만히 생각하건대 임금의 딸이 규수로 내려가고 왕의 아씨가 제나라로 시집간 것은 본디 거룩한 덕을 드러낸 것이지 예사로운 재주와 관계된 것이 아닙니다. 신은 본디 용렬한 무리로 행실과 재능이 셀 것이 없는데, 다행히 창성한 운을 만나 거룩한 교화에 목욕하며 늘 남다른 은택을 입었으나 갚을 길이 없었습니다. 거듭 하늘의 사랑을 입어 이 혼인을 내리시니, 마침내 곧 무성한 꽃이 경사를 드러내고 엄숙하고 화락함이 덕을 이루었습니다.

협주 1

一云迎湌金義官之女也。

잡찬 김의관의 딸이라고도 한다.

30이십년 — 금관소경을 두다

吉月令辰,言歸弊館,億載難遇,一朝獲申,事非望始,喜出意表。豈惟一二父兄,實受其賜。其自先祖已下,寔寵喜之。臣未蒙敎旨,不敢直朝,無任悅豫之至,謹遣臣大將軍太大兄延武,奉表以聞。」加耶郡置金官小京。

좋은 달 좋은 때에 낡은 집으로 돌아오시니, 억만 해에 만나기 어려운 일을 하루아침에 펴게 되었습니다. 일이 처음부터 바라던 바가 아니었고 기쁨이 뜻밖에서 나왔습니다. 어찌 한둘 아비와 형만이겠습니까, 실로 그 내리심을 받았습니다. 선조 이하로부터 진실로 이를 사랑하고 기뻐할 것입니다.

신이 교지를 받지 못하여 감히 곧바로 조회하지 못하니, 기쁘고 즐거운 지극함을 이기지 못합니다. 삼가 신의 대장군 태대형 연무를 보내어 표를 올려 아룁니다."

가야군에 금관소경을 두었다.

31이십일년 — 문무왕이 죽고 유조를 남기다

二十一年,春正月朔,終日黑暗如夜。沙飡武仙率精兵三千,以戍比列忽。置右司祿館。夏五月,地震。流星犯參大星。六月,天狗落坤方。王欲新京城,問浮屠義相,對曰:「雖在草野茅屋,行正道,則福業長,苟爲不然,雖勞人作城,亦無所益。」王乃止役。秋七月一日,王薨,諡曰文武。羣臣以遺言葬東海口大石上,俗傳,王化爲龍,仍指其石爲大王石。遺詔曰:「寡人運屬紛紜,時當爭戰。西征北討,克定疆封,伐叛招携,聿寧遐邇。上慰宗祧之遺顧,下報父子之宿寃,追賞遍於存亡,䟽爵均於内外。鑄兵戈爲農器,驅黎元於仁壽,薄賦省徭,家給人足,民間安堵,域内無虞。倉廩積於丘山,囹圄成於茂草,可謂無愧於幽顯,無負於士人。自犯冒風霜,遂成痼疾,憂勞政敎,更結沉痾。

이십일년 봄 정월 초하루에 온종일 캄캄하여 밤과 같았다. 사찬 무선이 정예 군사 삼천을 거느리고 비열홀을 지켰다. 우사록관을 두었다.

여름 오월에 땅이 흔들렸다. 유성이 삼성의 큰 별을 범하였다. 유월에 천구성이 서남쪽에 떨어졌다.

왕이 서울의 성을 새로 하려 하여 승려 의상에게 물으니 답하였다. "비록 풀밭 띠집에 있어도 바른 도를 행하면 복된 업이 오래갑니다. 진실로 그렇지 않다면 비록 사람을 수고롭게 하여 성을 짓더라도 또한 이로울 바가 없습니다." 왕이 이에 역사를 그만두었다.

가을 칠월 초하루에 왕이 죽으니 시호를 문무(文武)라 하였다. 여러 신하가 유언대로 동해 어귀 큰 바위 위에 장사 지냈다. 세속에 전하기를 왕이 용이 되었다 하여 그 바위를 가리켜 대왕석(大王石)이라 한다.

유조에 말하였다.

"과인은 운이 어지러운 때에 붙어 싸움의 시대를 만났다. 서쪽을 치고 북쪽을 쳐서 강토를 이겨 정하고, 배반하는 이를 치고 따르는 이를 불러 마침내 멀고 가까움을 편안히 하였다. 위로는 종묘의 남기신 돌보심을 위로하고 아래로는 아비와 아들의 묵은 원한을 갚았으며, 상 주는 것을 산 이와 죽은 이에 두루 미치고 벼슬을 안팎에 고루 나누었다.

병기를 녹여 농기구를 만들고 백성을 어질고 오래 사는 데로 몰았으며, 세금을 가볍게 하고 부역을 덜어 집이 넉넉하고 사람이 족하니, 백성이 편안히 살고 나라 안에 근심이 없었다. 곳간에는 곡식이 언덕과 산처럼 쌓이고 옥에는 풀이 무성하니, 그윽한 데와 밝은 데에 부끄러움이 없고 벼슬아치와 사람들에게 저버림이 없다 할 만하다.

스스로 바람과 서리를 무릅쓴 뒤로 마침내 고질이 되고, 정사와 가르침에 근심하고 수고하여 다시 무거운 병이 맺혔다.

32이십일년 — 유조를 마치다

運往名存,古今一撥,奄歸大夜,何有恨焉。太子早蘊離輝,久居震位,上從羣宰,下至庶寮,送往之義勿違,事居之禮莫闕。宗廟之主,不可暫空,太子即於柩前,嗣立王位。且山谷遷貿,人代推移,呉王北山之墳,詎見金鳧之彩,魏主西陵之望,唯聞銅雀之名。昔日萬機之英,終成一封之土,樵牧歌其上,狐兎穴其旁。徒費資財,貽譏簡牘,空勞人力,莫濟幽魂。靜而思之,傷痛無已,如此之類,非所樂焉。屬纊之後十日,便於庫門外庭,依西國之式,以火燒葬。服輕重,自有常科,喪制度,務從儉約。其邊城鎭遏,及州縣課税,於事非要者,並宜量廢,律令格式,有不便者,即便改張,布告遠近。令知此意,主者施行。」

운이 가고 이름이 남는 것은 예나 이제나 한가지이니, 문득 긴 밤으로 돌아간들 무슨 한이 있겠는가.

태자는 일찍 밝은 빛을 쌓고 오래 동궁의 자리에 있었으니, 위로는 여러 재상을 좇고 아래로는 뭇 관리에 이르기까지, 가는 이를 보내는 의로움을 어기지 말고 산 이를 섬기는 예를 빠뜨리지 말라. 종묘의 주인은 잠시도 비울 수 없으니 태자는 곧 널 앞에서 왕위를 이어 서라.

또 산과 골짜기가 옮기어 바뀌고 사람의 세대가 밀려가니, 오나라 임금의 북산 무덤에서 어찌 금 오리의 빛깔을 보겠으며, 위나라 임금의 서릉을 바라본들 오직 동작대의 이름만 들을 뿐이다. 옛날 만 가지 정사를 보던 영웅도 마침내 한 봉분의 흙이 되어, 나무꾼과 목동이 그 위에서 노래하고 여우와 토끼가 그 곁에 굴을 판다. 헛되이 재물을 쓰고 글에 나무람을 남기며, 부질없이 사람의 힘을 수고롭게 하여도 그윽한 넋을 건지지 못한다. 고요히 이를 생각하니 아프고 슬픔이 그치지 않는다. 이러한 따위는 내가 즐기는 바가 아니다.

숨을 거둔 뒤 열흘이면 곧 고문 바깥뜰에서 서쪽 나라의 법식대로 불에 태워 장사 지내라. 상복의 가볍고 무거움은 절로 정해진 법이 있으니 따르고, 장례의 제도는 검소하고 간략함을 힘써 좇으라.

그 변경 성의 지킴과 주현의 부세로 일에 요긴하지 않은 것은 아울러 마땅히 헤아려 없애고, 율령과 격식에 불편한 것이 있으면 곧 고쳐 베풀라. 멀고 가까운 곳에 널리 알려 이 뜻을 알게 하고, 맡은 이는 시행하라."

33삼국사기 권 제칠

三國史記,第七卷

삼국사기 권 제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