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왕神文王
1신문왕이 즉위하다
神文王立。諱政明,文武大王長子也,母,慈儀王后。妃,金氏,蘇判欽突之女。王爲太子時,納之。久而無子,後坐父作亂,出宮。文武王五年,立爲太子,至是繼位。唐高宗遣使冊立爲新羅王,仍襲先王官爵。
신문왕이 즉위하였으니 이름은 정명(政明)이요 문무대왕의 맏아들이며 어머니는 자의왕후다. 왕비는 김씨로 소판 흠돌의 딸이다. 왕이 태자였을 때 맞아들였는데 오래도록 아들이 없었고, 뒤에 아비가 난을 일으킨 데 걸려 궁에서 내쳐졌다. 문무왕 오년에 세워 태자가 되었고 이때에 이르러 자리를 이었다. 당나라 고종이 사신을 보내어 책명하여 신라 왕으로 세우고, 이어 앞 임금의 관작을 잇게 하였다.
협주 2
明之字日怊。
정명의 자는 일초(日怊)다.
一作義。
자의(慈儀)의 의(儀)는 의(義)로도 쓴다.
2원년 — 흠돌의 난을 다스리는 교서
元年,八月,拜舒弗邯眞福爲上大等。八日,蘇判金欽突,波珍飡興元,大阿飡眞功等,謀叛伏誅。十三日,報德王遣使小兄首德皆,賀平逆賊。十六日,下敎曰:「賞有功者,往聖之良規;誅有罪者,先王之令典。寡人以眇躬涼德,嗣守崇基,廢食忘餐,晨興晏寢,庶與股肱,共寧邦家,豈圖縗絰之内,亂起京城!賊首欽突、興元、眞功等,位非才進,職實恩升。不能克愼始終,保全富貴,而乃不仁不義,作福作威,侮慢官寮,欺凌上下。比日,逞其無厭之志,肆其暴虐之心,招納凶邪,交結近竪,禍通内外,同惡相資,剋日定期,欲行亂逆。寡人,上賴天地之祐,下蒙宗廟之靈,欽突等惡積罪盈,所謀發露,此乃人神之所共棄,覆載之所不容,犯義傷風,莫斯爲甚。是以追集兵衆,欲除梟獍,或逃竄山谷,或歸降闕庭。
원년 팔월에 서불한 진복을 상대등으로 삼았다. 여드레에 소판 김흠돌과 파진찬 흥원, 대아찬 진공 등이 배반을 꾀하다가 베임을 당하였다. 열사흘에 보덕왕이 사신 소형 수덕개를 보내어 역적을 평정한 것을 하례하였다.
열엿새에 영을 내려 말하였다.
"공 있는 이에게 상 주는 것은 지난 성인의 아름다운 법이요, 죄 있는 이를 베는 것은 앞선 임금의 아름다운 법도다. 과인이 보잘것없는 몸과 얇은 덕으로 높은 터를 이어 지키며, 먹기를 그치고 밥을 잊으며 새벽에 일어나 늦게 자면서, 팔다리 같은 신하와 더불어 나라를 편안히 하기를 바랐다. 그런데 어찌 상복 안에 서울에서 난이 일어날 줄 헤아렸겠는가.
도둑의 우두머리 흠돌·흥원·진공 등은 재주로 나아간 자리가 아니요 벼슬은 실로 은혜로 오른 것이다. 처음과 끝을 삼가 부귀를 온전히 지키지 못하고, 이에 어질지 못하고 의롭지 못하여 복을 짓고 위엄을 부리며, 벼슬아치를 업신여기고 위아래를 속이고 짓밟았다.
요사이 그 물릴 줄 모르는 뜻을 부리고 사납고 모진 마음을 마음대로 하여, 흉악하고 간사한 자를 불러들이고 가까운 내시와 결탁하여, 화가 안팎에 통하고 나쁜 무리가 서로 도우며, 날을 정하고 때를 잡아 난과 거스름을 행하려 하였다.
과인이 위로는 하늘과 땅의 도우심에 힘입고 아래로는 종묘의 신령함을 입어, 흠돌 등의 악이 쌓이고 죄가 가득 차 꾀한 바가 드러났으니, 이는 곧 사람과 신이 함께 버리는 바요 하늘과 땅이 담아 두지 못할 바이다. 의로움을 범하고 풍속을 다치게 함이 이보다 심한 것이 없다.
이로써 군사를 뒤좇아 모아 올빼미와 승냥이 같은 무리를 없애려 하니, 더러는 산골짜기로 달아나 숨고 더러는 대궐 뜰에 와서 항복하였다.
3원년 — 군관을 베는 교서
然尋枝究葉,並已誅夷,三四日間,囚首蕩盡。事不獲已,驚動士人,憂愧之懷,豈忘旦夕!今既妖徒廓淸,遐邇無虞,所集兵馬,宜速放歸,布告四方,令知此意!」二十八日,誅伊飡軍官,敎書曰:「事上之規,盡忠爲本;居官之義,不二爲宗。兵部令伊飡軍官,因縁班序,遂升上位,不能拾遺補闕,效素節於朝廷,授命忘,表丹誠於社稷。乃與賊臣欽突等交渉,知其逆事,曾不告言,既無憂國之心,更絶徇公之志,何以重居宰輔,濫濁憲章?宜與衆棄,以懲後進。軍官及嫡子一人,可令自盡。布告遠近,使共知之!」冬十月,罷侍衛監。置將軍六人。
그러나 가지를 찾고 잎을 캐어 아울러 이미 베어 없애니, 서너 날 사이에 갇힌 우두머리가 다 없어졌다. 일이 마지못하여 벼슬아치와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으니, 근심하고 부끄러운 마음을 어찌 아침저녁으로 잊겠는가.
이제 이미 요망한 무리가 말끔히 없어져 멀고 가까운 곳에 근심이 없으니, 모은 군마는 마땅히 빨리 놓아 돌려보내라. 사방에 널리 알려 이 뜻을 알게 하라."
스무여드레에 이찬 군관을 베고 교서를 내려 말하였다.
"윗사람 섬기는 법은 충성을 다함이 근본이요, 벼슬에 있는 의로움은 두 마음 없음이 으뜸이다. 병부령 이찬 군관은 벼슬 차례를 인연하여 마침내 높은 자리에 올랐으나, 빠진 것을 줍고 모자란 것을 메워 조정에 흰 절개를 바치지 못하고, 목숨을 바쳐 몸을 잊어 사직에 붉은 정성을 드러내지 못하였다.
이에 도둑 신하 흠돌 등과 사귀어 오가며 그 거스르는 일을 알고도 일찍이 알려 말하지 않았으니, 이미 나라를 근심하는 마음이 없고 다시 공변됨을 좇는 뜻이 끊어졌다. 어찌 재상의 자리에 무겁게 있으면서 나라의 법을 함부로 흐리게 하겠는가. 마땅히 여럿과 함께 버려 뒤에 나아갈 이들을 징계하겠다. 군관과 맏아들 한 사람은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하라. 멀고 가까운 곳에 널리 알려 함께 알게 하라."
겨울 시월에 시위감을 없애고 장군 여섯 사람을 두었다.
4이년 — 국학을 세우다
二年,春正月,親祀神宮,大赦。夏四月,置位和府令二人,掌選擧之事。五月,太白犯月。六月,立國學。置卿一人,又置工匠府監一人,彩典監一人。
이년 봄 정월에 몸소 신궁에 제사하고 크게 사면하였다.
여름 사월에 위화부령 두 사람을 두어 인재를 뽑아 쓰는 일을 맡게 하였다.
오월에 태백이 달을 범하였다.
유월에 국학을 세우고 경 한 사람을 두었다. 또 공장부감 한 사람과 채전감 한 사람을 두었다.
5삼년 — 김흠운의 딸을 왕비로 맞다
三年,春二月,以順知爲中侍。納一吉飡金欽運少女爲夫人。先差伊飡文穎,波珍飡三光定期,以大阿飡智常納采,幣帛十五轝,米、酒、油、蜜、醤、豉、脯、醯,一百三十五轝,租一百五十車。夏四月,平地雪深一尺。五月七日,遣伊飡文穎、愷元抵其宅,冊爲夫人。其日卯時,遣波珍飡大常、孫文、阿飡坐耶、吉叔等,各與妻娘及梁、沙梁二部嫗各三十人迎來。夫人乘車,左右侍從,官人及娘嫗甚盛。至王宮北門,下車入内。冬十月,徴報德王安勝爲蘇判,賜姓金氏,留京都,賜甲第良田。彗星出五車。
삼년 봄 이월에 순지를 중시로 삼았다. 일길찬 김흠운의 작은딸을 맞아 부인으로 삼았다.
먼저 이찬 문영과 파진찬 삼광을 보내어 날을 정하고, 대아찬 지상으로 납채하게 하니 폐백이 열다섯 수레요, 쌀과 술과 기름과 꿀과 장과 메주와 포와 젓이 일백서른다섯 수레요, 조가 일백쉰 수레였다.
여름 사월에 평지에 눈이 한 자나 쌓였다.
오월 이레에 이찬 문영과 개원을 그 집에 보내어 책봉하여 부인으로 삼았다. 그날 묘시에 파진찬 대상·손문, 아찬 좌야·길숙 등을 보내어 각각 아내와 딸 및 양부·사량부 두 부의 부인 각 서른 사람과 함께 맞아 오게 하였다. 부인이 수레를 타고 좌우에 모시고 따르는 벼슬아치와 딸과 부인들이 매우 성하였다. 왕궁 북문에 이르러 수레에서 내려 안으로 들어갔다.
겨울 시월에 보덕왕 안승을 불러 소판으로 삼고 김씨 성을 내렸으며, 서울에 머무르게 하고 좋은 집과 기름진 밭을 내렸다. 살별이 오거 별자리에 나타났다.
6사년 — 금마저의 배반
四年,冬十月,自昏及曙,流星縱橫。十一月,安勝族子將軍大文,在金馬渚謀叛,事發伏誅。餘人見大文誅死,殺害官吏,據邑叛,王命將士討之,逆鬪,幢主逼實死之。陷其城,徙其人於國南州郡,以其地爲金馬郡。
사년 겨울 시월에 저물녘부터 새벽까지 유성이 이리저리 흘렀다.
십일월에 안승의 조카뻘 되는 장군 대문이 금마저에서 배반을 꾀하다가 일이 드러나 베임을 당하였다. 남은 사람들이 대문이 베여 죽는 것을 보고 관리를 죽이고 고을에 웅거하여 배반하므로, 왕이 장수와 군사에게 명하여 치게 하였는데 맞서 싸우다가 당주 핍실이 죽었다. 그 성을 함락하고 그 사람들을 나라 남쪽 주군으로 옮겼으며 그 땅을 금마군으로 삼았다.
협주 1
大文或云悉伏。
대문(大文)은 실복(悉伏)이라고도 한다.
7오년 — 아홉 주를 갖추다
五年春,復置完山州,以龍元爲摠管。挺居列州,以置菁州,始備九州,以大阿飡福世爲摠管。三月,置西原小京,以阿飡元泰爲仕臣。置南原小京,徙諸州郡民戸分居之。奉聖寺成。夏四月,望德寺成。
오년 봄에 완산주를 다시 두고 용원을 총관으로 삼았다. 거열주를 떼어 청주를 두니 처음으로 아홉 주가 갖추어졌고, 대아찬 복세를 총관으로 삼았다.
삼월에 서원소경을 두고 아찬 원태를 사신으로 삼았다. 남원소경을 두고 여러 주군의 백성을 옮겨 나누어 살게 하였다. 봉성사가 이루어졌다.
여름 사월에 망덕사가 이루어졌다.
8육년 — 당나라에서 예기와 문장을 받다
六年,春正月,以伊飡大莊爲中侍。置例作府卿二人。二月,置石山、馬山、孤山、沙平四縣。以泗沘州爲郡,熊川郡爲州。發羅州爲郡,武珍郡爲州。遣使入唐,奏請《禮記》并文章。則天令所司,寫《吉凶要禮》,并於《文舘詞林》,採其詞渉規誡者,勒成五十卷,賜之。
육년 봄 정월에 이찬 대장을 중시로 삼았다. 예작부경 두 사람을 두었다.
이월에 석산·마산·고산·사평 네 현을 두었다. 사비주를 군으로 삼고 웅천군을 주로 삼았다. 발라주를 군으로 삼고 무진군을 주로 삼았다.
사신을 보내어 당나라에 들어가 『예기』와 아울러 문장을 청하니, 측천이 맡은 관청에 명하여 『길흉요례』를 베끼고 아울러 『문관사림』에서 그 말이 규범과 경계에 걸린 것을 골라 오십 권으로 엮어 내렸다.
협주 1
一作將。
대장(大莊)의 장(莊)은 장(將)으로도 쓴다.
9칠년 — 조상 사당에 제사하다
七年,春二月,元子生。是日,陰沉昧暗,大雷電。三月,罷一善州,復置沙伐州,以波珍飡官長爲摠管。夏四月,改音聲署長爲卿。遣大臣於祖廟,致祭曰:「王某稽首再拜,謹言太祖大王、眞智大王、文興大王、太宗大王、文武大王之靈。某以虚薄,嗣守崇基,寤寐憂勤,未遑寧處。奉賴宗廟,護持乾坤降福,四邊安靜,百姓雍和,異域來賓,航琛奉職,刑淸訟息,以至于今。比者,道喪君臨,義乖天鑒,怪星成象,火宿沈輝,戰戰慄慄,若墜淵谷。謹遣使某官某,奉陳不腆之物,以虔如在之靈。伏望:炤察微誠,矜恤眇末,以順四時之候,無愆五事之徴,禾稼豐而疫癘消,衣食足而禮義備,表裏淸謐,盜賊消亡,垂裕後昆,永膺多福。謹言。」五月,敎賜文武官僚田有差。秋,築沙伐、歃良二州城。
칠년 봄 이월에 맏아들이 났다. 이날 날이 흐리고 어두우며 크게 우레와 번개가 쳤다.
삼월에 일선주를 없애고 사벌주를 다시 두어 파진찬 관장을 총관으로 삼았다.
여름 사월에 음성서의 장을 경으로 고쳤다. 대신을 조상 사당에 보내어 제사하며 아뢰었다.
"왕 아무개가 머리를 조아려 두 번 절하고 삼가 태조대왕·진지대왕·문흥대왕·태종대왕·문무대왕의 영령께 아룁니다. 아무개가 비고 얇은 몸으로 높은 터를 이어 지키며, 자나 깨나 근심하고 부지런하여 편안히 있을 겨를이 없었습니다.
종묘에 힘입어 하늘과 땅이 복을 내려 지켜 주시니, 네 변방이 편안하고 고요하며 백성이 화락하고, 다른 나라가 손님으로 와서 보배를 실어 오고 직분을 받들며, 형벌이 맑고 송사가 그쳐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요사이 도가 없어져 임금 노릇 하는 일에 의로움이 하늘의 살피심에 어긋나, 괴이한 별이 모습을 이루고 불의 별자리가 빛을 잠기게 하니, 떨고 떨려 깊은 골짜기에 떨어질 듯합니다.
삼가 사신 아무 벼슬 아무개를 보내어 변변찮은 물건을 갖추어 올려, 계신 듯한 영령을 삼가 받듭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작은 정성을 밝게 살피시고 보잘것없는 몸을 가엾이 여기시어, 네 철의 기후를 따르게 하시고 다섯 가지 일의 조짐을 어긋나지 않게 하시며, 곡식이 넉넉하고 돌림병이 없어지며, 입을 것과 먹을 것이 넉넉하고 예의가 갖추어지며, 안팎이 맑고 고요하고 도둑이 없어져, 뒷사람에게 넉넉함을 드리우고 길이 많은 복을 받게 하소서. 삼가 아룁니다."
오월에 영을 내려 문무 관료에게 밭을 차등 있게 내렸다. 가을에 사벌·삽량 두 주의 성을 쌓았다.
10팔년 — 선부경을 더하다
八年,春正月,中侍大莊卒,伊飡元師爲中侍。二月,加船府卿一人。
팔년 봄 정월에 중시 대장이 죽으므로 이찬 원사를 중시로 삼았다. 이월에 선부경 한 사람을 더하였다.
11구년 — 녹읍을 없애다
九年,春正月,下敎:罷内外官祿邑,逐年賜租有差,以爲恒式。秋閏九月二十六日,幸獐山城。築西原京城。王欲移都達句伐,未果。
구년 봄 정월에 영을 내려 안팎 벼슬아치의 녹읍을 없애고, 해마다 조를 차등 있게 내리는 것을 늘 지킬 법식으로 삼았다.
가을 윤구월 스무엿새에 장산성에 거둥하였다. 서원경성을 쌓았다. 왕이 도읍을 달구벌로 옮기려 하였으나 이루지 못하였다.
12십년 — 전야산군을 두다
十年,春二月,中侍元師病免,阿飡仙元爲中侍。冬十月,置轉也山郡。
십년 봄 이월에 중시 원사가 병으로 면직되므로 아찬 선원을 중시로 삼았다. 겨울 시월에 전야산군을 두었다.
13십일년 — 이홍을 태자로 삼다
十一年,春三月一日,封王子理洪爲太子。十三日,大赦。沙火州獻白雀。築南原城。
십일년 봄 삼월 초하루에 왕자 이홍을 봉하여 태자로 삼았다. 열사흘에 크게 사면하였다. 사화주에서 흰 참새를 바쳤다. 남원성을 쌓았다.
14십이년 — 태종이라는 시호를 두고 다투다
十二年,春,竹枯。唐中宗遣使,口勅曰:「我太宗文皇帝,神功聖德,超出千古,故上僊之日,廟號太宗。汝國先王金春秋,與之同號,尤爲僭越,須急改稱。」王與羣臣同議,對曰:「小國先王春秋諡號,偶與聖祖廟號相犯,勅令改之,臣敢不惟命是從。然念先王春秋,頗有賢德,况生前得良臣金庾信,同心爲政,一統三韓,其爲功業,不爲不多。捐館之際,一國臣民,不勝哀慕,追尊之號,不覺與聖祖相犯。今聞敎勅,不勝恐懼,伏望,使臣復命闕庭,以此上聞。」後更無別勅。秋七月,王薨。諡曰神文,葬狼山東。
십이년 봄에 대나무가 말랐다. 당나라 중종이 사신을 보내어 입으로 칙명을 전하였다.
"우리 태종문황제는 신령한 공과 거룩한 덕이 천고에 뛰어나셨으므로, 신선이 되어 오르시던 날에 묘호를 태종이라 하였다. 너희 나라 선왕 김춘추가 그와 같은 호를 쓰니 더욱 참람하다. 모름지기 급히 고쳐 일컬으라."
왕이 여러 신하와 함께 의논하고 답하였다.
"작은 나라 선왕 춘추의 시호가 우연히 거룩한 조상의 묘호와 서로 범하였으니, 칙령으로 고치라 하시면 신이 감히 명을 좇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생각하건대 선왕 춘추는 자못 어진 덕이 있었고, 하물며 살아 있을 적에 좋은 신하 김유신을 얻어 한마음으로 정사를 하여 삼한을 하나로 아울렀으니, 그 이룬 공업이 많지 않다 할 수 없습니다. 세상을 떠날 즈음에 온 나라 신하와 백성이 슬퍼하고 사모함을 이기지 못하여, 높여 부른 호가 거룩한 조상과 서로 범하는 줄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이제 가르치신 칙명을 들으니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사신께서 대궐 뜰에 돌아가 아뢰실 때 이대로 위에 아뢰어 주소서."
뒤에 다시 다른 칙명은 없었다.
가을 칠월에 왕이 죽었다. 시호를 신문(神文)이라 하고 낭산 동쪽에 장사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