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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소왕孝照王

삼국사기 三國史記 · 김부식(金富軾) 등 · 1145년 (고려 인종 23) · 단락 11 · 한자 433자 · 낭독 1.7분

「삼국사기」 신라본기 「효소왕」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역사서. 신라·고구려·백제 본기와 지·표·열전으로 이루어졌다. 김부식이 곳곳에 「論曰」로 자기 평을 달아 두어, 편찬자가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나무랐는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1효소왕이 즉위하다

孝照王立。諱理洪,神文王太子。母,姓金氏,神穆王后,一吉飡金欽運女也。唐則天遣使吊祭,仍冊王爲新羅王輔國大將軍行左豹韜尉大將軍雞林州都督。改左右理方府爲左右議方府,理犯諱故也。

효소왕이 즉위하였으니 이름은 이홍(理洪)이요 신문왕의 태자다. 어머니는 성이 김씨로 신목왕후이며 일길찬 김흠운의 딸이다. 당나라 측천이 사신을 보내어 조문하고 제사하며, 이어 왕을 책봉하여 신라왕 보국대장군 행좌표도위대장군 계림주도독으로 삼았다. 좌우이방부를 좌우의방부로 고쳤으니 '이(理)'가 임금의 이름을 범하기 때문이었다.

협주 2

一作恭。

공(恭)으로도 쓴다.

一云雲。

일길찬 김흠운(欽運)의 운(運)은 운(雲)이라고도 한다.

2원년 — 도증이 천문도를 올리다

元年,八月,以大阿飡元宣爲中侍。高僧道證自唐廻,上天文圖。

원년 팔월에 대아찬 원선을 중시로 삼았다. 고승 도증이 당나라에서 돌아와 천문도를 올렸다.

3삼년 — 김인문이 당나라에서 죽다

三年,春正月,親祀神宮,大赦。以文穎爲上大等。金仁問在唐卒,年六十六。冬,築松岳、牛岑二城。

삼년 봄 정월에 몸소 신궁에 제사하고 크게 사면하였다. 문영을 상대등으로 삼았다. 김인문이 당나라에서 죽으니 나이 예순여섯이었다. 겨울에 송악·우잠 두 성을 쌓았다.

4사년 — 자월을 정월로 삼다

四年,以立子月爲正。拜愷元爲上大等。冬十月,京都地震。中侍元宣退老。置西、南二市。

사년에 자월(子月)을 정월로 삼았다. 개원을 상대등으로 삼았다. 겨울 시월에 서울에 땅이 흔들렸다. 중시 원선이 늙어 물러났다. 서시와 남시 두 저자를 두었다.

5오년 — 나라 서쪽이 가물다

五年,春正月,伊飡幢元爲中侍。夏四月,國西旱。

오년 봄 정월에 이찬 당원을 중시로 삼았다. 여름 사월에 나라 서쪽이 가물었다.

6육년 — 임해전에서 잔치하다

六年,秋七月,完山州進嘉禾,異畝同穎。九月,宴羣臣於臨海殿。

육년 가을 칠월에 완산주에서 아름다운 벼를 바쳤는데 이랑이 다른데 이삭이 하나였다. 구월에 임해전에서 여러 신하에게 잔치를 베풀었다.

7칠년 — 일본 사신이 오다

七年,春正月,以伊飡體元爲牛頭州摠管。二月,京都地動,大風折木。中侍幢元退老,大阿飡順元爲中侍。三月,日本國使至,王引見於崇禮殿。秋七月,京都大水。

칠년 봄 정월에 이찬 체원을 우두주 총관으로 삼았다. 이월에 서울에 땅이 흔들리고 큰 바람이 불어 나무가 꺾였다. 중시 당원이 늙어 물러나므로 대아찬 순원을 중시로 삼았다. 삼월에 일본국 사신이 이르러 왕이 숭례전에서 만나 보았다. 가을 칠월에 서울에 큰물이 났다.

8팔년 — 동해 물이 핏빛이 되다

八年,春二月,白氣竟天,星孛于東。遣使朝唐貢方物。秋七月,東海水血色,五日復舊。九月,東海水,自擊,聲聞王都。兵庫中鼓角自鳴。新村人美肹,得黄金一枚,重百分,獻之,授位南邊第一,賜租一百石。

팔년 봄 이월에 흰 기운이 하늘에 뻗치고 동쪽에 살별이 나타났다. 사신을 보내어 당나라에 조회하고 그 지방 산물을 바쳤다.

가을 칠월에 동해 물이 핏빛이 되었다가 닷새 만에 예전대로 되었다. 구월에 동해 물이 스스로 부딪쳐 그 소리가 왕도에 들렸다. 무기고 안의 북과 뿔피리가 저절로 울었다. 신촌 사람 미힐이 황금 한 덩이를 얻었는데 무게가 백 푼이었다. 이를 바치므로 남변제일 벼슬을 주고 조 일백 섬을 내렸다.

9구년 — 경영이 배반을 꾀하다

九年,復以立寅月爲正。夏五月,伊飡慶永謀叛,伏誅。中侍順元縁坐罷免。六月,歳星入月。

구년에 다시 인월(寅月)을 정월로 삼았다. 여름 오월에 이찬 경영이 배반을 꾀하다가 베임을 당하였다. 중시 순원이 연좌되어 파면되었다. 유월에 세성이 달에 들어갔다.

협주 1

永一作玄。

경영(慶永)의 영(永)은 현(玄)으로도 쓴다.

10십년 — 제일을 섬으로 보내다

十年,春二月,彗星入月。夏五月,靈巖郡太守一吉飡諸逸,背公營私,刑一百杖,入島。

십년 봄 이월에 살별이 달에 들어갔다. 여름 오월에 영암군 태수 일길찬 제일이 공변됨을 등지고 사사로움을 꾀하므로 곤장 일백 대에 처하고 섬으로 보냈다.

11십일년 — 효소왕이 죽다

十一年,秋七月,王薨。諡曰孝照,葬于望德寺東。

십일년 가을 칠월에 왕이 죽었다. 시호를 효소(孝照)라 하고 망덕사 동쪽에 장사 지냈다.

협주 1

觀《舊唐書》云:「長安二年,理洪卒。」諸古記云:「壬寅七月二十七日卒。」而《通鑑》云:「大足三年卒。」則《通鑑》,誤。

『구당서』를 보면 "장안 이년에 이홍이 죽었다" 하였고, 여러 옛 기록에는 "임인년 칠월 스무이레에 죽었다" 하였는데, 『통감』에는 "대족 삼년에 죽었다" 하였으니 『통감』이 잘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