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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성왕孝成王

삼국사기 三國史記 · 김부식(金富軾) 등 · 1145년 (고려 인종 23) · 단락 6 · 한자 534자 · 낭독 2.1분

「삼국사기」 신라본기 「효성왕」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역사서. 신라·고구려·백제 본기와 지·표·열전으로 이루어졌다. 김부식이 곳곳에 「論曰」로 자기 평을 달아 두어, 편찬자가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나무랐는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1효성왕이 즉위하다

孝成王立。諱承慶,聖德王第二子。母,炤德王后。大赦。三月,改司正丞及左右議方府丞,並爲佐。以伊飡貞宗爲上大等,阿飡義忠爲中侍。夏五月,地震。秋九月,流星入大微。冬十月,入唐沙飡抱質廻。十二月,遣使入唐獻方物。

효성왕이 즉위하였으니 이름은 승경(承慶)이요 성덕왕의 둘째 아들이다. 어머니는 소덕왕후다. 크게 사면하였다.

삼월에 사정승과 좌우의방부승을 아울러 좌(佐)로 고쳤다. 이찬 정종을 상대등으로, 아찬 의충을 중시로 삼았다.

여름 오월에 땅이 흔들렸다. 가을 구월에 유성이 태미원에 들어갔다. 겨울 시월에 당나라에 들어갔던 사찬 포질이 돌아왔다. 십이월에 사신을 보내어 당나라에 들어가 그 지방 산물을 바쳤다.

2이년 — 형숙이 조문하러 오다

二年,春二月,唐玄宗聞聖德王薨,悼惜久之,遣左贊善大夫邢璹,以鴻臚少卿,往吊祭,贈太子太保,且冊嗣王爲開府儀同三司新羅王。璹將發,帝製詩序,太子已下百寮,咸賦詩以送。帝謂璹曰:「新羅號爲君子之國,頗知書記,有類中國。以卿惇儒,故持節往,宜演經義,使知大國儒敎之盛。」又以國人善碁,詔率府兵曹叅軍楊季膺爲副,國高奕皆出其下。於是,王厚贈璹等金寶藥物。唐遣使,詔冊王妃朴氏。三月,遣金元玄入唐賀正。夏四月,唐使臣邢璹,以老子《道德經》等文書,獻于王。白虹貫日,所夫里郡河水變血。

이년 봄 이월에 당나라 현종이 성덕왕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오래도록 슬퍼하고 애석해하며, 좌찬선대부 형숙을 홍려소경으로 삼아 조문하고 제사하게 하고 태자태보를 주었으며, 또 자리를 이은 왕을 책봉하여 개부의동삼사 신라왕으로 삼았다.

형숙이 떠나려 할 때 황제가 시의 서문을 짓고, 태자 이하 모든 벼슬아치가 다 시를 지어 보냈다. 황제가 형숙에게 말하였다. "신라는 군자의 나라라 일컫고 자못 글을 알아 중국과 비슷하다. 경이 도타운 선비이므로 부절을 가지고 가게 하니, 마땅히 경서의 뜻을 펴서 큰 나라 유교의 성함을 알게 하라."

또 그 나라 사람이 바둑을 잘한다 하여, 조서로 솔부병조참군 양계응을 부사로 삼으니 나라의 높은 바둑꾼이 모두 그 아래였다. 이에 왕이 형숙 등에게 금과 보배와 약을 두터이 주었다.

당나라가 사신을 보내어 조서로 왕비 박씨를 책봉하였다. 삼월에 김원현을 보내어 당나라에 들어가 새해를 하례하게 하였다.

여름 사월에 당나라 사신 형숙이 노자의 『도덕경』 등 문서를 왕에게 바쳤다. 흰 무지개가 해를 꿰뚫고, 소부리군의 강물이 피로 변하였다.

3삼년 — 헌영을 태자로 삼다

三年,春正月,拜祖考廟。中侍義忠卒,以伊飡信忠爲中侍。善天宮成。賜邢璹黄金三十兩、布五十匹、人蔘一百斤。二月,拜王弟憲英爲波珍飡。三月,納伊飡順元女惠明爲妃。夏五月,封波珍飡憲英爲太子。秋九月,完山州獻白鵲。狐鳴月城宮中,狗咬殺之。

삼년 봄 정월에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사당에 뵈었다. 중시 의충이 죽으므로 이찬 신충을 중시로 삼았다. 선천궁이 이루어졌다. 형숙에게 황금 서른 냥과 베 쉰 필, 인삼 일백 근을 내렸다.

이월에 왕의 아우 헌영을 파진찬으로 삼았다. 삼월에 이찬 순원의 딸 혜명을 맞아 왕비로 삼았다. 여름 오월에 파진찬 헌영을 봉하여 태자로 삼았다.

가을 구월에 완산주에서 흰 까치를 바쳤다. 여우가 월성 궁 안에서 우니 개가 물어 죽였다.

4사년 — 영종이 배반을 꾀하다

四年,春三月,唐遣使,冊夫人金氏爲王妃。夏五月,鎭星犯軒轅大星。秋七月,有一緋衣女人,自隷橋下出,謗朝政,過孝信公門,忽不見。八月,波珍飡永宗謀叛,伏誅。先是,永宗女入後宮,王絶愛之,恩渥日甚。王妃嫉妬,與族人謀殺之。永宗怨王妃宗黨,因此叛。

사년 봄 삼월에 당나라가 사신을 보내어 부인 김씨를 책봉하여 왕비로 삼았다. 여름 오월에 진성이 헌원의 큰 별을 범하였다.

가을 칠월에 붉은 옷을 입은 여인 하나가 예교 아래에서 나와 조정의 정사를 헐뜯다가, 효신공의 문을 지나면서 문득 보이지 않았다.

팔월에 파진찬 영종이 배반을 꾀하다가 베임을 당하였다. 이보다 앞서 영종의 딸이 후궁에 들어왔는데 왕이 몹시 사랑하여 은혜가 날로 두터워지므로, 왕비가 시기하여 집안 사람들과 죽이기를 꾀하였다. 영종이 왕비의 친족을 원망하여 이로 말미암아 배반한 것이다.

5오년 — 쇠뇌 다루는 군사를 사열하다

五年,夏四月,命大臣貞宗、思仁,閲弩兵。

오년 여름 사월에 대신 정종과 사인에게 명하여 쇠뇌 다루는 군사를 사열하게 하였다.

6육년 — 효성왕이 죽다

六年,春二月,東北地震,有聲如雷。夏五月,流星犯參大星,王薨。諡曰孝成。以遺命,燒柩於法流寺南,散骨東海。

육년 봄 이월에 동북쪽에 땅이 흔들렸는데 소리가 우레 같았다. 여름 오월에 유성이 삼성의 큰 별을 범하였다. 왕이 죽었다. 시호를 효성(孝成)이라 하였다. 유언에 따라 법류사 남쪽에서 널을 태우고 뼈를 동해에 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