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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덕왕景德王

삼국사기 三國史記 · 김부식(金富軾) 등 · 1145년 (고려 인종 23) · 단락 24 · 한자 1,937자 · 낭독 7.7분

「삼국사기」 신라본기 「경덕왕」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역사서. 신라·고구려·백제 본기와 지·표·열전으로 이루어졌다. 김부식이 곳곳에 「論曰」로 자기 평을 달아 두어, 편찬자가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나무랐는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1경덕왕이 즉위하다

景德王立。諱憲英,孝成王同母弟。孝成無子,立憲英爲太子,故得嗣位。妃伊飡順貞之女也。

경덕왕이 즉위하였으니 이름은 헌영(憲英)이요 효성왕의 같은 어머니 아우다. 효성왕이 아들이 없어 헌영을 세워 태자로 삼았으므로 자리를 이을 수 있었다. 왕비는 이찬 순정의 딸이다.

2원년 — 일본 사신을 들이지 않다

元年,冬十月,日本國使至,不納。

원년 겨울 시월에 일본국 사신이 이르렀으나 들이지 않았다.

3이년 — 당나라가 책봉하다

二年,春三月,主力公宅,牛一産五犢。唐玄宗,遣贊善大夫魏曜來吊祭。仍冊立王爲新羅王,襲先王官爵,制曰:「故開府儀同三司使充持節大都督,鷄林州諸軍事兼持節寧海軍使新羅王金承慶弟憲英,奕葉懷仁,率心常禮,大賢風敎,條理尤明,中夏軌儀,衣冠素襲。馳海琛而遣使,準雲呂而通朝,代爲純臣,累効忠節。頃者,兄承土宇,沒而絶嗣,弟膺繼及,抑惟常經,是用賓懷,優以冊命,宜用舊業,俾承藩長之名。仍加殊禮,載錫漢官之號,可襲兄,新羅王開府儀同三司使持節大都督,鷄林州諸軍事兼充持節寧海軍使。」并賜御註《孝經》一部。夏四月,納舒弗邯金義忠女爲王妃。秋八月,地震。冬十二月,遣王弟入唐賀正。授左淸道率府員外長史,賜綠袍、銀帶,放還。

이년 봄 삼월에 주력공의 집에서 소 한 마리가 송아지 다섯을 낳았다.

당나라 현종이 찬선대부 위요를 보내어 조문하고 제사하게 하였다. 이어 왕을 책봉하여 신라 왕으로 세우고 앞 임금의 관작을 잇게 하며 조서에 말하였다.

"돌아간 개부의동삼사 사충지절 대도독 계림주제군사 겸지절영해군사 신라왕 김승경의 아우 헌영은, 대를 이어 어짊을 품고 마음을 늘 예에 따르게 하였다. 큰 어짊의 풍속과 가르침이 조리가 더욱 밝고, 중국의 법도와 거동과 의관을 본디 이어받았다. 바다의 보배를 달려 보내어 사신을 보내고 구름 낀 뱃길을 따라 조정에 통하며, 대대로 순수한 신하가 되어 여러 번 충성의 절개를 바쳤다.

요사이 형이 땅을 이었다가 죽어 이을 이가 끊어지고 아우가 이어받게 되었으니, 또한 오직 떳떳한 법이다. 이로써 손님으로 품어 책명으로 넉넉히 하니, 마땅히 옛 업을 써서 울타리 어른의 이름을 잇게 한다. 이어 남다른 예를 더하여 한나라 벼슬의 호를 내리니, 형의 신라왕 개부의동삼사 사지절 대도독 계림주제군사 겸충지절영해군사를 이을 만하다."

아울러 황제가 손수 주를 단 『효경』 한 벌을 내렸다.

여름 사월에 서불한 김의충의 딸을 맞아 왕비로 삼았다. 가을 팔월에 땅이 흔들렸다. 겨울 십이월에 왕의 아우를 보내어 당나라에 들어가 새해를 하례하게 하니, 좌청도솔부원외장사를 주고 초록 도포와 은띠를 내려 놓아 돌려보냈다.

4삼년 — 요망한 별이 나타나다

三年,春正月,以伊飡惟正爲中侍。閏二月,遣使入唐賀正,并獻方物。夏四月,親祀神宮。遣使入唐獻馬。冬,妖星出中天,大如五斗器。浹旬乃滅。

삼년 봄 정월에 이찬 유정을 중시로 삼았다. 윤이월에 사신을 보내어 당나라에 들어가 새해를 하례하고 아울러 그 지방 산물을 바쳤다.

여름 사월에 몸소 신궁에 제사하였다. 사신을 보내어 당나라에 들어가 말을 바쳤다.

겨울에 요망한 별이 하늘 가운데 나타났는데 크기가 닷 말들이 그릇만 하였다. 열흘이 지나서야 없어졌다.

5사년 — 사정부를 두다

四年,春正月,拜伊飡金思仁爲上大等。夏四月,京都雹,大如鷄子。五月,旱。中侍惟正退,伊飡大正爲中侍。秋七月,葺東宮。又置司正府、少年監典、穢宮典。

사년 봄 정월에 이찬 김사인을 상대등으로 삼았다. 여름 사월에 서울에 우박이 내렸는데 크기가 달걀만 하였다. 오월에 가물었다. 중시 유정이 물러나므로 이찬 대정을 중시로 삼았다. 가을 칠월에 동궁을 손질하였다. 또 사정부와 소년감전과 예궁전을 두었다.

6오년 — 승려 백쉰 사람을 두다

五年,春二月,遣使入唐賀正,并獻方物。夏四月,大赦,賜大酺,度僧一百五十人。

오년 봄 이월에 사신을 보내어 당나라에 들어가 새해를 하례하고 아울러 그 지방 산물을 바쳤다. 여름 사월에 크게 사면하고 큰 잔치를 내렸으며 승려 백쉰 사람을 두었다.

7육년 — 중시를 시중으로 고치다

六年,春正月,改中侍爲侍中。置國學諸業博士、助敎。遣使入唐賀正,并獻方物。三月,震眞平王陵。秋,旱。冬,無雪。民饑且疫,出使十道安撫。

육년 봄 정월에 중시를 시중으로 고쳤다. 국학에 여러 학업의 박사와 조교를 두었다. 사신을 보내어 당나라에 들어가 새해를 하례하고 아울러 그 지방 산물을 바쳤다.

삼월에 진평왕 능에 벼락이 쳤다. 가을에 가물었다. 겨울에 눈이 오지 않았다. 백성이 주리고 또 앓으므로 사신을 열 길로 내어 어루만졌다.

8칠년 — 대곡성 등 열네 군현을 두다

七年,春正月,天狗落地。秋八月,太后移居永明新宮。始置員察一員,糾正百官。遣阿飡貞節等,檢察北邊。始置大谷城等十四郡縣。

칠년 봄 정월에 천구성이 땅에 떨어졌다. 가을 팔월에 태후가 영명 새 궁으로 옮겨 살았다. 처음으로 정찰 한 사람을 두어 백관을 규찰하게 하였다. 아찬 정절 등을 보내어 북쪽 변경을 살피게 하였다. 처음으로 대곡성 등 열네 군현을 두었다.

9팔년 — 천문박사를 두다

八年,春二月,暴風拔木。三月,置天文博士一員、漏刻博士六員。

팔년 봄 이월에 사나운 바람이 불어 나무를 뽑았다. 삼월에 천문박사 한 사람과 누각박사 여섯 사람을 두었다.

10구년 — 어룡성 봉어를 두다

九年,春正月,侍中大正免,伊飡朝良爲侍中。二月,置御龍省奉御二員。

구년 봄 정월에 시중 대정이 면직되므로 이찬 조량을 시중으로 삼았다. 이월에 어룡성 봉어 두 사람을 두었다.

11십일년 — 동궁아관을 두다

十一年,春三月,以級飡原神,龍方爲大阿飡。秋八月,置東宮衙官。冬十月,加置倉部史三人。

십일년 봄 삼월에 급찬 원신과 용방을 대아찬으로 삼았다. 가을 팔월에 동궁아관을 두었다. 겨울 시월에 창부사 세 사람을 더 두었다.

12십이년 — 일본 사신을 만나지 않다

十二年,秋八月,日本國使至,慢而無禮,王不見之,乃廻。武珍州獻白雉。

십이년 가을 팔월에 일본국 사신이 이르렀는데 거만하고 예가 없으므로 왕이 만나지 않으니 이내 돌아갔다. 무진주에서 흰 꿩을 바쳤다.

13십삼년 — 성덕왕 비를 세우다

十三年,夏四月,京都雹,大如鷄卵。五月,立聖德王碑。牛頭州獻瑞芝。秋七月,王命官修葺永興、元永二寺。八月,旱,蝗。侍中朝良退。

십삼년 여름 사월에 서울에 우박이 내렸는데 크기가 달걀만 하였다. 오월에 성덕왕의 비를 세웠다. 우두주에서 상서로운 지초를 바쳤다.

가을 칠월에 왕이 관리에게 명하여 영흥사와 원영사 두 절을 고쳐 손질하게 하였다. 팔월에 가물고 메뚜기가 났다. 시중 조량이 물러났다.

14십사년 — 향덕이 넓적다리 살을 베어 아비를 먹이다

十四年,春,穀貴民饑。熊川州向德,貧無以爲養,割股肉,飼其父。王聞,賜賚頗厚,仍使旌表門閭。望德寺塔動。夏四月,遣使入唐賀正。秋七月,赦罪人,存問老疾鰥寡孤獨,賜穀有差。以伊飡金耆爲侍中。

십사년 봄에 곡식이 귀하여 백성이 주렸다. 웅천주 사람 향덕(向德)이 가난하여 봉양할 것이 없으므로 넓적다리 살을 베어 그 아비를 먹였다. 왕이 듣고 자못 두터이 내리고 이어 그 마을에 정문을 세워 드러내게 하였다.

망덕사 탑이 움직였다.

여름 사월에 사신을 보내어 당나라에 들어가 새해를 하례하게 하였다. 가을 칠월에 죄인을 사면하고 늙고 병든 이와 홀아비·과부·고아·홀로 사는 이를 위문하며 곡식을 차등 있게 내렸다. 이찬 김기를 시중으로 삼았다.

협주 1

唐令狐澄《新羅國記》曰:「其國,爲唐立此寺,故以爲名。兩塔相對,高十三層,忽震動開合,如欲傾倒者數日。其年祿山亂,疑其應也。」

당나라 영호징의 『신라국기』에 이르기를 "그 나라가 당나라를 위하여 이 절을 세웠으므로 이름으로 삼았다. 두 탑이 마주 섰는데 높이가 열세 층이다. 문득 흔들려 벌어졌다 합쳐졌다 하며 기울어질 듯한 것이 며칠이었다. 그해에 안녹산의 난이 있었으니 그 조짐인가 한다" 하였다.

15십오년 — 현종이 시를 내리다

十五年,春二月,上大等金思仁,以比年災異屢見,上疏極論時政得失,王嘉納之。王聞玄宗在蜀,遣使入唐,泝江至成都,朝貢。玄宗御製御書五言十韻詩,賜王曰:「嘉新羅王歳修朝貢,克踐禮樂名義,賜詩一首:『四維分景緯,萬象含中樞。玉帛遍天下,梯航歸上都。緬懷阻靑陸,歳月勤黄圖。漫漫窮地際,蒼蒼連海隅。興言名義國,豈謂山河殊。使去傳風敎,人來習典謨。衣冠知奉禮,忠信識尊儒。誠矣天其鑑,賢哉德不孤。擁旄同作牧,厚貺比生蒭。益重靑靑志,風霜恒不渝。』帝幸蜀時,新羅能不遠千里,朝聘行在所,故嘉其至誠,賜之以詩。其云:『益重靑靑志,風霜恒不渝。』者,豈古詩『疾風知勁草,板蕩識貞臣。』之意乎?宣和中,入朝使臣金富儀將刻本,入汴京,示舘伴學士李邴。李邴上皇帝,因宣示兩府及諸學士訖,傳宣曰:『進奉侍郞所上詩,眞明皇書。』」嘉嘆不已。夏四月,大雹。大永郞獻白狐,授位南邊第一。

십오년 봄 이월에 상대등 김사인이 요 몇 해 재앙과 이변이 자주 나타난다 하여 상소를 올려 시정의 잘잘못을 지극히 논하니 왕이 아름다이 여겨 받아들였다.

왕이 현종이 촉에 있다는 말을 듣고 사신을 보내어 당나라에 들어가 강을 거슬러 성도에 이르러 조공하게 하였다. 현종이 몸소 짓고 몸소 쓴 오언 십운의 시를 왕에게 내리며 말하였다.

"신라 왕이 해마다 조공을 닦아 예악과 이름과 의로움을 잘 밟음을 아름다이 여겨 시 한 수를 내린다.

'사방의 벼리가 해와 별을 나누고 온갖 모습이 가운데 지도리를 머금었다. 옥과 비단이 천하에 두루 하고 사다리와 배가 서울로 돌아온다. 아득히 생각하니 푸른 뭍이 막혔는데 세월토록 누런 도읍을 부지런히 찾았다. 아득아득 땅 끝이 다하고 푸르디푸르게 바다 모퉁이에 이어졌다. 일으켜 말하노니 이름과 의로움의 나라이니 어찌 산과 물이 다르다 하랴. 사신이 가서 풍속과 가르침을 전하고 사람이 와서 법과 꾀를 익힌다. 의관은 예를 받들 줄 알고 충성과 믿음은 유학을 높일 줄 안다. 정성스럽구나, 하늘이 그를 살피시리라. 어질구나, 덕은 외롭지 않다. 깃대를 안고 함께 목민을 하니 두터운 선물이 살아 있는 꼴에 견줄 만하다. 푸르고 푸른 뜻을 더욱 무겁게 하여 바람과 서리에도 늘 변하지 않는다.'

황제가 촉에 거둥하였을 때 신라가 능히 천 리를 멀다 하지 않고 머무르는 곳으로 조회하고 찾아왔으므로, 그 지극한 정성을 아름다이 여겨 시를 내린 것이다. 그 '푸르고 푸른 뜻을 더욱 무겁게 하여 바람과 서리에도 늘 변하지 않는다' 한 것은, 어찌 옛 시의 '모진 바람에 굳센 풀을 알고 어지러운 세상에 곧은 신하를 안다' 한 뜻이 아니겠는가.

선화 연간에 조회하러 들어간 사신 김부의가 새긴 판본을 가지고 변경에 들어가 관반학사 이병에게 보였다. 이병이 황제에게 올리니, 이로 말미암아 양부와 여러 학사에게 두루 보인 뒤에 말을 전하여 이르기를 '진봉시랑이 올린 시는 참으로 명황의 글씨다' 하고, 아름다이 여겨 감탄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여름 사월에 큰 우박이 내렸다. 대영랑이 흰 여우를 바치므로 남변제일 벼슬을 주었다.

16십육년 — 아홉 주의 이름을 고치다

十六年,春正月,上大等思仁病免,伊飡信忠爲上大等。三月,除内外群官月俸,復賜祿邑。秋七月,重修永昌宮。八月,加調府史二人。冬十二月,改沙伐州爲尚州,領州一,郡十,縣三十;歃良州爲良州,領州一,小京一,郡十二,縣三十四;菁州爲康州,領州一,郡十一,縣二十七;漢山州爲漢州,領州一,小京一,郡二十七,縣四十六;首若州爲朔州,領州一,小京一,郡十一,縣二十七;熊川州爲熊州,領州一,小京一,郡十三,縣二十九;河西州爲溟州,領州一,郡九,縣二十五;完山州爲全州,領州一,小京一,郡十,縣三十一;武珍州爲武州,領州一,郡十四,縣四十四。

십육년 봄 정월에 상대등 사인이 병으로 면직되므로 이찬 신충을 상대등으로 삼았다.

삼월에 안팎 여러 관원의 달 봉급을 없애고 다시 녹읍을 내렸다.

가을 칠월에 영창궁을 고쳐 지었다. 팔월에 조부사 두 사람을 더하였다.

겨울 십이월에 사벌주를 상주로 고치니 거느린 주가 하나요 군이 열이요 현이 서른이었다. 삽량주를 양주로 고치니 주 하나, 소경 하나, 군 열둘, 현 서른넷이었다. 청주를 강주로 고치니 주 하나, 군 열하나, 현 스물일곱이었다. 한산주를 한주로 고치니 주 하나, 소경 하나, 군 스물일곱, 현 마흔여섯이었다. 수약주를 삭주로 고치니 주 하나, 소경 하나, 군 열하나, 현 스물일곱이었다. 웅천주를 웅주로 고치니 주 하나, 소경 하나, 군 열셋, 현 스물아홉이었다. 하서주를 명주로 고치니 주 하나, 군 아홉, 현 스물다섯이었다. 완산주를 전주로 고치니 주 하나, 소경 하나, 군 열, 현 서른하나였다. 무진주를 무주로 고치니 주 하나, 군 열넷, 현 마흔넷이었다.

협주 1

良州一作梁州。

양주(良州)는 양주(梁州)로도 쓴다.

17십칠년 — 율령박사를 두다

十七年,春正月,侍中金耆卒,伊飡廉相爲侍中。二月,下敎:内外官請暇滿六十日者,聽解官。夏四月,選醫官精究者,充内供奉。置律令博士二員。秋七月二十三日,王子生。大雷電,震佛寺十六所。八月,遣使入唐朝貢。

십칠년 봄 정월에 시중 김기가 죽으므로 이찬 염상을 시중으로 삼았다. 이월에 영을 내려 안팎 관원으로 말미를 청하여 예순 날이 찬 자는 벼슬을 풀어 주게 하였다.

여름 사월에 의술을 정밀히 익힌 의관을 뽑아 내공봉을 채웠다. 율령박사 두 사람을 두었다.

가을 칠월 스무사흘에 왕자가 났다. 크게 우레와 번개가 쳐 절 열여섯 곳에 벼락이 쳤다. 팔월에 사신을 보내어 당나라에 들어가 조공하였다.

18십팔년 — 벼슬 이름을 고치다

十八年,春正月,改兵部、倉部卿、監爲侍郞,大舍爲郞中,改執事舍知爲執事員外郞,執事史爲執事郞。改調府、禮部、乘府、船府、領客府、左右議方府、司正府、位和府、例作典、大學監、大道署、永昌宮等大舍爲主簿。賞賜署、典祀署、音聲署、工匠府、彩典等大舍爲主書。二月,改禮部舍知爲司禮,調府舍知爲司庫,領客府舍知爲司儀,乘府舍知爲司牧,船府舍知爲司舟,例作府舍知爲司例,兵部弩舍知爲司兵,倉部租舍知爲司倉。三月,彗星見,至秋乃滅。

십팔년 봄 정월에 병부와 창부의 경과 감을 시랑으로, 대사를 낭중으로 고치고, 집사사지를 집사원외랑으로, 집사사를 집사랑으로 고쳤다. 조부·예부·승부·선부·영객부·좌우의방부·사정부·위화부·예작전·대학감·대도서·영창궁 등의 대사를 주부로 고치고, 상사서·전사서·음성서·공장부·채전 등의 대사를 주서로 고쳤다.

이월에 예부사지를 사례로, 조부사지를 사고로, 영객부사지를 사의로, 승부사지를 사목으로, 선부사지를 사주로, 예작부사지를 사례로, 병부노사지를 사병으로, 창부조사지를 사창으로 고쳤다.

삼월에 살별이 나타나 가을에야 없어졌다.

19십구년 — 월정교와 춘양교를 놓다

十九年,春正月,都城寅方,有聲如伐鼓,衆人謂之鬼鼓。二月,宮中穿大池。又於宮南蚊川之上,起月淨、春陽二橋。夏四月,侍中廉相退,伊飡金邕爲侍中。秋七月,封王子乾運爲王太子。

십구년 봄 정월에 도성 동쪽에서 북 치는 듯한 소리가 나므로 여러 사람이 귀신의 북이라 하였다.

이월에 궁 안에 큰 못을 팠다. 또 궁 남쪽 문천 위에 월정교와 춘양교 두 다리를 놓았다.

여름 사월에 시중 염상이 물러나므로 이찬 김옹을 시중으로 삼았다. 가을 칠월에 왕자 건운을 봉하여 왕태자로 삼았다.

20이십년 — 살별이 나타나다

二十年,春正月朔,虹貫日,日有珥。夏四月,彗星出。

이십년 봄 정월 초하루에 무지개가 해를 꿰뚫고 해에 귀고리가 있었다. 여름 사월에 살별이 나타났다.

21이십일년 — 여섯 성을 쌓다

二十一年,夏五月,築五谷、鵂巖、漢城、獐塞、池城、德谷六城,各置太守。秋九月,遣使入唐朝貢。

이십일년 여름 오월에 오곡·휴암·한성·장새·지성·덕곡 여섯 성을 쌓고 각각 태수를 두었다. 가을 구월에 사신을 보내어 당나라에 들어가 조공하였다.

22이십이년 — 이순이 왕에게 간하다

二十二年,夏四月,遣使入唐朝貢。秋七月,京都大風,飛瓦拔樹。八月,桃李再花。上大等信忠、侍中金邕免、大奈麻李純爲王寵臣,忽一旦避世入山,累徴不就。剃髮爲僧,爲王創立斷俗寺,居之。後,聞王好樂,即詣宮門。諫奏曰:「臣聞:昔者桀、紂,荒于酒色,淫樂不止。由是,政事凌夷,國家敗滅,覆轍在前,後車宜戒。伏望:大王改過自新,以永國壽。」王聞之感歎,爲之停樂。便引之正室,聞説道妙,以及理世之方,數日乃止。

이십이년 여름 사월에 사신을 보내어 당나라에 들어가 조공하였다.

가을 칠월에 서울에 큰 바람이 불어 기와를 날리고 나무를 뽑았다. 팔월에 복숭아와 자두가 다시 꽃을 피웠다. 상대등 신충과 시중 김옹이 면직되었다.

대나마 이순은 왕의 사랑하는 신하였는데, 문득 하루아침에 세상을 피하여 산에 들어가 여러 번 불러도 나오지 않고,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어 왕을 위하여 단속사를 세우고 거기 살았다. 뒤에 왕이 음악을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곧 궁문에 나아가 간하여 아뢰었다.

"신이 듣기로 옛날 걸과 주가 술과 여색에 빠져 음란한 즐거움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정사가 무너지고 나라가 망하였습니다. 엎어진 수레바퀴 자국이 앞에 있으니 뒤 수레는 마땅히 경계해야 합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대왕께서는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로워지시어 나라의 목숨을 길게 하소서."

왕이 듣고 느껴 탄식하며 그를 위하여 음악을 그쳤다. 곧 그를 정실로 이끌어 도의 묘함과 세상 다스리는 방도를 듣기를 며칠 만에야 그쳤다.

23이십삼년 — 양산 아래에 용이 나타나다

二十三年,春正月,伊飡萬宗爲上大等,阿飡良相爲侍中。三月,星孛于東南。龍見楊山下,俄而飛去。冬十二月十一日,流星或大或小,觀者不能數。

이십삼년 봄 정월에 이찬 만종을 상대등으로, 아찬 양상을 시중으로 삼았다.

삼월에 동남쪽에 살별이 나타났다. 용이 양산 아래에 나타났다가 이윽고 날아갔다.

겨울 십이월 열하루에 유성이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하여 보는 이가 셀 수 없었다.

24이십사년 — 경덕왕이 죽다

二十四年,夏四月,地震。遣使入唐朝貢,帝授使者檢校禮部尚書。六月,流星犯心。是月,王薨。諡曰景德,葬毛祇寺西岑。

이십사년 여름 사월에 땅이 흔들렸다. 사신을 보내어 당나라에 들어가 조공하니 황제가 사신에게 검교예부상서를 주었다.

유월에 유성이 심성을 범하였다. 이달에 왕이 죽었다. 시호를 경덕(景德)이라 하고 모지사 서쪽 봉우리에 장사 지냈다.

협주 1

《古記》云:「永泰元年乙巳卒。」而《舊唐書》及《資理通鑑》皆云:「大曆二年,新羅王憲英卒。」豈其誤耶。

『고기』에는 "영태 원년 을사에 죽었다" 하였는데, 『구당서』와 『자치통감』에는 모두 "대력 이년에 신라 왕 헌영이 죽었다" 하였으니 아마 잘못인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