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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장왕哀莊王

삼국사기 三國史記 · 김부식(金富軾) 등 · 1145년 (고려 인종 23) · 단락 10 · 한자 898자 · 낭독 3.6분

「삼국사기」 신라본기 「애장왕」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역사서. 신라·고구려·백제 본기와 지·표·열전으로 이루어졌다. 김부식이 곳곳에 「論曰」로 자기 평을 달아 두어, 편찬자가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나무랐는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1애장왕이 즉위하다

哀莊王立。諱淸明。昭聖王太子也。母,金氏桂花夫人。即位時,年十三歳,阿飡兵部令彦昇攝政。初,元聖之薨也,唐德宗遣司封郞中兼御史中丞韋丹,持節吊慰,且冊命王俊邕爲開府儀同三司檢校太尉新羅王,丹至鄆州,聞王薨,乃還。秋七月,王更名重熙。八月,授前入唐宿衛學生梁悅豆肹小守。初,德宗幸奉天,悅從難有功,帝授右贊善大夫還之,故王擢用之。

애장왕이 즉위하였으니 이름은 청명(淸明)이요 소성왕의 태자다. 어머니는 김씨 계화부인이다. 즉위할 때 나이 열세 살이므로 아찬 병부령 언승이 정사를 대신 보았다.

처음에 원성이 죽었을 때 당나라 덕종이 사봉낭중 겸 어사중승 위단을 보내어 부절을 가지고 조문하고 위로하게 하며, 또 왕 준옹을 책명하여 개부의동삼사 검교태위 신라왕으로 삼으려 하였는데, 단이 운주에 이르러 왕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이내 돌아갔다.

가을 칠월에 왕이 이름을 중희(重熙)로 고쳤다. 팔월에 앞서 당나라에 들어가 숙위하던 학생 양열에게 두힐 소수를 주었다. 처음에 덕종이 봉천에 거둥하였을 때 양열이 피난길을 따라가 공이 있으므로 황제가 우찬선대부를 주어 돌려보냈고, 그러므로 왕이 뽑아 쓴 것이다.

2이년 — 오묘를 다시 정하다

二年,春二月,謁始祖廟。別立太宗大王、文武大王二廟。以始祖大王及王高祖明德大王、曾祖元聖大王、皇祖惠忠大王、皇考昭聖大王爲五廟。以兵部令彦昇爲御龍省私臣,未幾爲上大等。大赦。夏五月壬戌朔,日當食不食。秋九月,熒惑入月,星隕如雨。武珍州進赤烏,牛頭州進白雉。冬十月,大寒,松竹皆死。耽羅國遣使朝貢。

이년 봄 이월에 시조 사당에 뵈었다. 태종대왕과 문무대왕의 두 사당을 따로 세웠다. 시조대왕과 왕의 고조 명덕대왕, 증조 원성대왕, 할아버지 혜충대왕, 아버지 소성대왕으로 오묘를 삼았다. 병부령 언승을 어룡성 사신으로 삼았다가 얼마 안 되어 상대등으로 삼았다. 크게 사면하였다.

여름 오월 초하루 임술에 일식이 있어야 하는데 없었다.

가을 구월에 형혹성이 달에 들어가고 별이 비 오듯 떨어졌다. 무진주에서 붉은 까마귀를 바치고 우두주에서 흰 꿩을 바쳤다.

겨울 시월에 크게 추워 소나무와 대나무가 모두 죽었다. 탐라국이 사신을 보내어 조공하였다.

3삼년 — 해인사를 세우다

三年,春正月,王親祀神宮。夏四月,以阿飡金富碧女,入後宮。秋七月,地震。八月,創加耶山海印寺,歃良州進赤烏。冬十二月,授均貞大阿飡爲假王子,欲以質倭國,均貞辭之。

삼년 봄 정월에 왕이 몸소 신궁에 제사하였다. 여름 사월에 아찬 김부벽의 딸을 후궁에 들였다.

가을 칠월에 땅이 흔들렸다. 팔월에 가야산에 해인사를 세웠다. 삽량주에서 붉은 까마귀를 바쳤다.

겨울 십이월에 균정에게 대아찬을 주어 임시 왕자로 삼아 왜국에 볼모로 보내려 하였으나 균정이 사양하였다.

4사년 — 일본과 사신을 오가며 좋게 지내다

四年,夏四月,王幸南郊觀麥。秋七月,與日本國,交聘結好。冬十月,地震。

사년 여름 사월에 왕이 남쪽 들에 거둥하여 보리를 보았다. 가을 칠월에 일본국과 사신을 주고받아 좋게 지냈다. 겨울 시월에 땅이 흔들렸다.

5오년 — 일본이 황금을 바치다

五年,春正月,以伊飡秀昇爲侍中。夏五月,日本國遣使,進黄金三百兩。秋七月,大閲於閼川之上。歃良州進白鵲。重修臨海殿,新作東宮萬壽房。牛頭州蘭山縣,伏石起立。熊川州蘇大縣釜浦水變血。九月,望德寺二塔戰。

오년 봄 정월에 이찬 수승을 시중으로 삼았다. 여름 오월에 일본국이 사신을 보내어 황금 삼백 냥을 바쳤다.

가을 칠월에 알천 가에서 크게 사열하였다. 삽량주에서 흰 까치를 바쳤다. 임해전을 고쳐 짓고 동궁에 만수방을 새로 지었다. 우두주 난산현에서 엎어졌던 돌이 일어섰다. 웅천주 소대현의 부포 물이 피로 변하였다.

구월에 망덕사의 두 탑이 서로 부딪쳤다.

6육년 — 공문서 서식 스무여 조를 반포하다

六年,春正月,封母金氏爲大王后;妃朴氏爲王后。是年,唐德宗崩,順宗遣兵部郞中兼御史大夫元季方,告哀,且冊王爲開府儀同三司,檢校太尉,使持節大都督,鷄林州諸軍事,鷄林州刺史兼,持節充寧海軍使,上柱國新羅王。其母叔氏爲大妃,妻朴氏爲妃。秋八月,頒示公式二十餘條。冬十一月,地震。

육년 봄 정월에 어머니 김씨를 봉하여 대왕후로, 왕비 박씨를 왕후로 삼았다.

이해에 당나라 덕종이 죽으니 순종이 병부낭중 겸 어사대부 원계방을 보내어 부고를 알리고, 또 왕을 책봉하여 개부의동삼사 검교태위 사지절 대도독 계림주제군사 계림주자사 겸지절충영해군사 상주국 신라왕으로 삼았다. 그 어머니 숙씨를 대비로, 아내 박씨를 왕비로 삼았다.

가을 팔월에 공문서 서식 스무여 조를 반포하여 보였다. 겨울 십일월에 땅이 흔들렸다.

협주 1

王母父叔明,奈勿王十三世孫,則母姓金氏,以父名爲叔氏,誤也。

왕 어머니의 아버지는 숙명이니 내물왕의 십삼세손이다. 그러니 어머니의 성은 김씨인데 아버지 이름으로 숙씨라 한 것은 잘못이다.

7칠년 — 절을 새로 짓는 것을 금하다

七年,春三月,日本國使至,引見朝元殿。下敎:禁新創佛寺,唯許修葺。又禁以錦繡爲佛事,金銀爲器用,宜令所司,普告施行。唐憲宗,放宿衛王子金獻忠歸國,仍加試秘書監。秋八月,遣使入唐朝貢。

칠년 봄 삼월에 일본국 사신이 이르러 조원전에서 이끌어 만나 보았다.

영을 내려 절을 새로 짓는 것을 금하고 오직 고쳐 손질하는 것만 허락하였다. 또 비단에 수놓아 부처의 일에 쓰는 것과 금은으로 그릇을 만드는 것을 금하고, 마땅히 맡은 관청으로 하여금 널리 알려 시행하게 하였다.

당나라 헌종이 숙위하던 왕자 김헌충을 놓아 나라로 돌아가게 하고 이어 시비서감을 더 주었다. 가을 팔월에 사신을 보내어 당나라에 들어가 조공하였다.

8팔년 — 숭례전에서 음악을 보다

八年,春正月,伊飡金憲昌爲侍中。二月,王坐崇禮殿觀樂。秋八月,大雪。

팔년 봄 정월에 이찬 김헌창을 시중으로 삼았다. 이월에 왕이 숭례전에 앉아 음악을 보았다. 가을 팔월에 큰 눈이 내렸다.

협주 1

一作貞。

이찬 김헌창(憲昌)의 창(昌)은 정(貞)으로도 쓴다.

9구년 — 김역기가 책서를 받아 오다

九年,春二月,日本國使至,王厚禮待之。遣金力奇入唐朝貢。力奇上言:「貞元十六年,詔冊臣故主金俊邕爲新羅王,母申氏爲大妃,妻叔氏爲王妃,冊使韋丹至中路,聞王薨却廻,其冊在中書省,今臣還國,伏請授臣以歸。」勅:「金俊邕等冊,宜令鴻臚寺,於中書省受領,至寺宣授與金力奇,令奉歸國。」仍賜王叔彦昇及其弟忠恭等門戟,令本國准例給之。發使十二道,分定諸郡邑疆境。秋七月辛巳朔,日有食之。

구년 봄 이월에 일본국 사신이 이르므로 왕이 두터운 예로 대접하였다. 김역기를 보내어 당나라에 들어가 조공하게 하였다. 역기가 아뢰었다.

"정원 십육년에 조서로 신의 옛 임금 김준옹을 신라 왕으로, 어머니 신씨를 대비로, 아내 숙씨를 왕비로 책봉하셨는데, 책봉 사신 위단이 도중에 이르러 왕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물러 돌아갔으므로 그 책서가 중서성에 있습니다. 이제 신이 나라로 돌아가니 엎드려 청컨대 신에게 주시어 가지고 가게 하소서."

칙명하였다. "김준옹 등의 책서는 마땅히 홍려시로 하여금 중서성에서 받아, 홍려시에 이르거든 김역기에게 펴서 주어 받들고 나라로 돌아가게 하라."

이어 왕의 숙부 언승과 그 아우 충공 등에게 문극을 내리고 본국으로 하여금 예에 준하여 주게 하였다. 사신을 열두 길로 보내어 여러 군읍의 강토 경계를 나누어 정하였다. 가을 칠월 초하루 신사에 일식이 있었다.

협주 1

申氏,金神述之女,以神字同韻,申爲氏,誤也。

신씨(申氏)는 김신술의 딸이니, 신(神) 자와 운이 같다 하여 신(申)을 성씨로 삼은 것은 잘못이다.

10십년 — 애장왕이 시해되다

十年,春正月,月犯畢。夏六月,西兄山城鹽庫鳴,聲如牛。碧寺蝦蟆食蛇。秋七月,遣大阿飡金陸珍,入唐謝恩兼進奉方物。大旱。王叔父彦昇與弟伊飡悌邕,將兵入内,作亂弑王,王弟體明侍衛王,并害之。追諡王爲哀莊。

십년 봄 정월에 달이 필성을 범하였다.

여름 유월에 서형산성의 소금 창고가 우는데 소리가 소 같았다. 벽사에서 두꺼비가 뱀을 잡아먹었다.

가을 칠월에 대아찬 김육진을 보내어 당나라에 들어가 은혜를 사례하고 아울러 그 지방 산물을 바치게 하였다. 크게 가물었다.

왕의 숙부 언승이 아우 이찬 제옹과 함께 군사를 거느리고 안으로 들어와 난을 일으켜 왕을 시해하였다. 왕의 아우 체명이 왕을 모시고 지키다가 아울러 해를 입었다. 왕에게 시호를 추증하여 애장(哀莊)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