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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덕왕憲德王

삼국사기 三國史記 · 김부식(金富軾) 등 · 1145년 (고려 인종 23) · 단락 18 · 한자 1,727자 · 낭독 6.9분

「삼국사기」 신라본기 「헌덕왕」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역사서. 신라·고구려·백제 본기와 지·표·열전으로 이루어졌다. 김부식이 곳곳에 「論曰」로 자기 평을 달아 두어, 편찬자가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나무랐는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1헌덕왕이 즉위하다

憲德王立。諱彦昇,昭聖王同母弟也。元聖王六年,奉使大唐,受位大阿飡;七年,誅逆臣,爲迎飡;十年爲侍中;十一年,以伊飡爲宰相;十二年爲兵部令;哀莊王元年爲角干;二年爲御龍省私臣;未幾爲上大等,至是,即位。妃,貴勝夫人,禮英角干女也。以伊飡金崇斌爲上大等。秋八月,大赦。遣伊飡金昌南等,入唐告哀。憲宗遣職方員外郞攝御史中丞崔廷,以其質子金士信副之,持節吊祭,冊立王爲開府儀同三司,檢校太尉,持節大都督鷄林州諸軍事兼持節充寧海軍使上柱國新羅王。冊妻貞氏爲妃。賜大宰相金崇斌等三人門戟。

헌덕왕이 즉위하였으니 이름은 언승(彦昇)이요 소성왕의 같은 어머니 아우다. 원성왕 육년에 당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대아찬 벼슬을 받았고, 칠년에 거스른 신하를 베어 잡찬이 되었으며, 십년에 시중이 되고, 십일년에 이찬으로 재상이 되고, 십이년에 병부령이 되었다. 애장왕 원년에 각간이 되고, 이년에 어룡성 사신이 되었다가 얼마 안 되어 상대등이 되었으며, 이때에 이르러 즉위하였다. 왕비는 귀승부인이니 예영 각간의 딸이다.

이찬 김숭빈을 상대등으로 삼았다. 가을 팔월에 크게 사면하였다. 이찬 김창남 등을 보내어 당나라에 들어가 부고를 알리게 하였다. 헌종이 직방원외랑 섭어사중승 최정을 보내며 그 볼모로 와 있던 김사신을 부사로 삼아, 부절을 가지고 조문하고 제사하게 하며, 왕을 책립하여 개부의동삼사 검교태위 지절 대도독 계림주제군사 겸지절충영해군사 상주국 신라왕으로 삼았다. 아내 정씨를 책봉하여 비로 삼았다. 대재상 김숭빈 등 세 사람에게 문극을 내렸다.

협주 1

按:王妃,禮英角干女也,今云貞氏,未詳。

살피건대 왕비는 예영 각간의 딸인데 이제 정씨라 하니 자세하지 않다.

2이년 — 김헌장을 당나라에 보내다

二年,春正月,以波珍飡亮宗爲侍中。河西州進赤烏。二月,王親祀神宮。發使修葺國内隄防。秋七月,流星入紫微。西原京進白雉。冬十月,遣王子金憲章入唐,獻金銀佛像及佛經等,上言:「爲順宗祈福。」流星入王良。

이년 봄 정월에 파진찬 양종을 시중으로 삼았다. 하서주에서 붉은 까마귀를 바쳤다.

이월에 왕이 몸소 신궁에 제사하였다. 사신을 보내어 나라 안의 제방을 고쳐 손질하게 하였다.

가을 칠월에 유성이 자미원에 들어갔다. 서원경에서 흰 꿩을 바쳤다.

겨울 시월에 왕자 김헌장을 보내어 당나라에 들어가 금은 불상과 불경 등을 바치고 아뢰기를 "순종을 위하여 복을 빕니다" 하였다. 유성이 왕량 별자리에 들어갔다.

3삼년 — 평의전에서 정사를 듣다

三年,春正月,侍中亮宗以病免,伊飡元興爲侍中。二月,以伊飡雄元,爲完山州都督。夏四月,始御平議殿聽政。

삼년 봄 정월에 시중 양종이 병으로 면직되므로 이찬 원흥을 시중으로 삼았다. 이월에 이찬 웅원을 완산주 도독으로 삼았다. 여름 사월에 처음으로 평의전에 나아가 정사를 들었다.

4사년 — 숭정을 북국에 보내다

四年春,以均貞爲侍中,以伊飡忠永年七十,賜几杖。秋九月,遣級飡崇正使北國。

사년 봄에 균정을 시중으로 삼고, 이찬 충영이 나이 일흔이므로 안석과 지팡이를 내렸다. 가을 구월에 급찬 숭정을 북국에 사신으로 보냈다.

5오년 — 현덕문에 불이 나다

五年,春正月,以伊飡憲昌爲武珍州都督。二月,謁始祖廟,玄德門火。

오년 봄 정월에 이찬 헌창을 무진주 도독으로 삼았다. 이월에 시조 사당에 뵈었다. 현덕문에 불이 났다.

6육년 — 나라 서쪽에 큰물이 나다

六年,春三月,宴羣臣於崇禮殿,樂極,王鼓琴,伊飡忠榮起舞。夏五月,國西大水,發使撫問經水州郡人民,復一年租調。秋八月,京都風霧如夜。武珍州都督憲昌,入爲侍中。冬十月,黔牟大舍妻,一産三男。

육년 봄 삼월에 숭례전에서 여러 신하에게 잔치를 베풀었다. 즐거움이 지극하매 왕이 거문고를 타고 이찬 충영이 일어나 춤을 추었다.

여름 오월에 나라 서쪽에 큰물이 나므로 사신을 보내어 물이 지나간 주군의 백성을 위문하고 한 해의 조세와 부역을 면제하였다.

가을 팔월에 서울에 바람과 안개가 끼어 밤 같았다. 무진주 도독 헌창이 들어와 시중이 되었다.

겨울 시월에 검모 대사의 아내가 한 번에 아들 셋을 낳았다.

7칠년 — 도둑이 벌 떼처럼 일어나다

七年,春正月,遣使朝唐,憲宗引見,宴賜有差。夏五月,下雪。秋八月己亥朔,日有食之。西邊州郡大飢,盜賊蜂起,出軍討平之。大星出翼、軫間,指庚,芒長六許尺,廣二許寸。

칠년 봄 정월에 사신을 보내어 당나라에 조회하니 헌종이 이끌어 만나 보고 잔치를 베풀고 차등 있게 내렸다.

여름 오월에 눈이 내렸다. 가을 팔월 초하루 기해에 일식이 있었다. 서쪽 변경의 주군이 크게 주려 도둑이 벌 떼처럼 일어나므로 군사를 내어 쳐서 평정하였다.

큰 별이 익성과 진성 사이에 나타나 서쪽을 가리켰는데 빛살의 길이가 여섯 자쯤이요 너비가 두 치쯤이었다.

8팔년 — 절동으로 먹을 것을 구하러 가다

八年,春正月,侍中憲昌出爲菁州都督,璋如爲侍中。年荒民飢,抵浙東求食者一百七十人。漢山州唐恩郡,石長十尺,廣八尺,高三尺五寸,自移一百餘歩。夏六月,望德寺二塔戰。

팔년 봄 정월에 시중 헌창이 나가서 청주 도독이 되고 장여가 시중이 되었다.

해가 흉년이 들어 백성이 주리므로 절동에 이르러 먹을 것을 구한 이가 일백일흔 사람이었다. 한산주 당은군에서 길이 열 자, 너비 여덟 자, 높이 석 자 다섯 치 되는 돌이 저절로 백여 보를 옮겨 갔다.

여름 유월에 망덕사의 두 탑이 서로 부딪쳤다.

9구년 — 주려 죽는 이가 많다

九年,春正月,以伊飡金忠恭爲侍中。夏五月,不雨,遍祈山川,至秋七月,乃雨。冬十月,人多飢死,敎州郡發倉穀存恤。遣王子金張廉,入唐朝貢。

구년 봄 정월에 이찬 김충공을 시중으로 삼았다. 여름 오월에 비가 오지 않아 산천에 두루 빌었는데 가을 칠월에 이르러서야 비가 내렸다.

겨울 시월에 사람이 많이 주려 죽으므로 주군에 영을 내려 창고의 곡식을 내어 구휼하게 하였다. 왕자 김장렴을 보내어 당나라에 들어가 조공하게 하였다.

10십년 — 일식이 있다

十年,夏六月癸丑朔,日有食之。

십년 여름 유월 초하루 계축에 일식이 있었다.

11십일년 — 당나라에 군사를 보내다

十一年,春正月,以伊飡眞元年七十,賜几杖。以伊飡憲貞,病不能行,年未七十,賜金飾紫檀杖。二月,上大等金崇斌卒,伊飡金秀宗爲上大等。三月,草賊遍起,命諸州郡都督太守,捕捉之。秋七月,唐鄆州節度使李師道叛。憲宗將欲討平,詔遣楊州節度使趙恭,徴發我兵馬,王奉勅旨,命順天軍將軍金雄元,率甲兵三萬以助之。

십일년 봄 정월에 이찬 진원이 나이 일흔이므로 안석과 지팡이를 내렸다. 이찬 헌정이 병들어 다니지 못하므로 나이가 일흔이 못 되었으나 금으로 꾸민 자단 지팡이를 내렸다.

이월에 상대등 김숭빈이 죽으므로 이찬 김수종을 상대등으로 삼았다. 삼월에 도적 떼가 두루 일어나므로 여러 주군의 도독과 태수에게 명하여 잡게 하였다.

가을 칠월에 당나라 운주절도사 이사도가 배반하였다. 헌종이 쳐서 평정하려 하여 조서로 양주절도사 조공을 보내어 신라 군마를 징발하니, 왕이 칙지를 받들어 순천군 장군 김웅원에게 명하여 갑병 삼만을 거느리고 돕게 하였다.

12십이년 — 목종이 인덕전에서 만나 보다

十二年,春夏旱,冬飢。十一月,遣使入唐朝貢,穆宗召見麟德殿,宴賜有差。

십이년 봄과 여름에 가물고 겨울에 주렸다. 십일월에 사신을 보내어 당나라에 들어가 조공하니, 목종이 인덕전에 불러 만나 보고 잔치를 베풀고 차등 있게 내렸다.

13십삼년 — 자손을 팔아 살아가다

十三年春,民饑,賣子孫自活。夏四月,侍中金忠恭卒,伊飡永恭爲侍中,菁州都督憲昌,改爲熊川州都督。秋七月,浿江南川二石戰。冬十二月二十九日,大雷。

십삼년 봄에 백성이 주려 자손을 팔아 스스로 살아갔다.

여름 사월에 시중 김충공이 죽으므로 이찬 영공을 시중으로 삼고, 청주 도독 헌창을 웅천주 도독으로 고쳐 삼았다.

가을 칠월에 패강과 남천의 두 돌이 서로 부딪쳤다. 겨울 십이월 스무아흐레에 크게 우레가 쳤다.

14십사년 — 김헌창이 장안을 세우다

十四年,春正月,以母弟秀宗爲副君,入月池宮。二月,雪五尺,樹木枯。三月,熊川州都督憲昌,以父周元不得爲王,反叛,國號長安,建元慶雲元年,脅武珍、完山、菁、沙伐四州都督,國原、西原、金官仕臣及諸郡縣守令,以爲己屬。菁州都督向榮,脱身走推火郡,漢山、牛頭、歃良、浿江、北原等,先知憲昌逆謀,擧兵自守。十八日,完山長史崔雄,助阿飡正連之子令忠等,遁走王京告之,王即授崔雄位級飡,速含郡太守,令忠位級飡,遂差員將八人,守王都八方,然後出師。一吉飡張雄先發,迎飡衛恭、波珍飡悌凌繼之,伊飡均貞、迎飡雄元、大阿飡祐徴等,掌三軍徂征。角干忠恭、迎飡允膺,守蚊火關門。明基、安樂二郞,各請從軍,明基與徒衆赴黄山,安樂赴施彌知鎭。

십사년 봄 정월에 어머니가 같은 아우 수종을 부군으로 삼아 월지궁에 들게 하였다. 이월에 눈이 다섯 자나 내려 나무가 말랐다.

삼월에 웅천주 도독 헌창이 아버지 주원이 왕이 되지 못하였다 하여 배반하고, 나라 이름을 장안(長安)이라 하고 연호를 세워 경운(慶雲) 원년이라 하였다. 무진·완산·청·사벌 네 주의 도독과 국원·서원·금관의 사신과 여러 군현의 수령을 위협하여 제 무리로 삼았다.

청주 도독 향영은 몸을 빼어 추화군으로 달아나고, 한산·우두·삽량·패강·북원 등은 헌창의 거스른 꾀를 먼저 알고 군사를 일으켜 스스로 지켰다.

열여드레에 완산 장사 최웅과 조아찬 정련의 아들 영충 등이 왕경으로 달아나 이를 알리므로, 왕이 곧 최웅에게 급찬 벼슬과 속함군 태수를, 영충에게 급찬 벼슬을 주었다. 마침내 원장 여덟 사람을 가려 왕도의 여덟 방향을 지키게 한 뒤에 군사를 내었다.

일길찬 장웅이 먼저 떠나고, 잡찬 위공과 파진찬 제릉이 뒤를 이었으며, 이찬 균정과 잡찬 웅원과 대아찬 우징 등이 삼군을 맡아 나아가 쳤다. 각간 충공과 잡찬 윤응은 문화 관문을 지켰다. 명기와 안락 두 낭이 각각 종군하기를 청하니, 명기는 무리와 함께 황산으로 가고 안락은 시미지진으로 갔다.

협주 1

秀宗或云秀升。

수종(秀宗)은 수승(秀升)이라고도 한다.

15십사년 — 헌창이 스스로 죽다

於是,憲昌遣其將,據要路以待。張雄遇賊兵於道冬峴,撃敗之。衛恭、悌凌,合張雄軍,攻三年山城,克之,進兵俗離山,撃賊兵滅之。均貞等與賊戰黄山,滅之。諸軍共到熊津,與賊大戰,斬獲不可勝計。憲昌僅以身免,入城固守。諸軍圍攻浹旬,城將陷,憲昌知不免,自死。從者斷首與身,各藏。及城陷,得其身於古塚,誅之,戮宗族黨與,凡二百三十九人,縱其民。後,論功爵賞有差。阿飡祿眞授位大阿飡,辭不受。以歃良州屈自郡近賊,不汙於亂,復七年。先是,菁州太守廳事南,池中有異鳥,身長五尺,色黑,頭如五歳許兒,喙長一尺五寸,目如人嗉,如受五升許器,三日而死,憲昌敗亡兆也。聘角干忠恭之女貞嬌,爲太子妃。浿江山谷間,顚木生蘖,一夜高十三尺,圍四尺七寸。夏四月十三日,月色如血。秋七月十二日,日有黑暈,指南北。冬十二月,遣柱弼入唐朝貢。

이에 헌창이 그 장수를 보내어 요긴한 길을 차지하고 기다렸다. 장웅이 도동현에서 적병을 만나 쳐서 깨뜨렸다. 위공과 제릉이 장웅의 군사와 합쳐 삼년산성을 쳐서 이기고, 군사를 밀고 속리산으로 나아가 적병을 쳐서 없앴다. 균정 등이 황산에서 적과 싸워 없앴다.

여러 군사가 함께 웅진에 이르러 적과 크게 싸우니 베고 사로잡은 것을 이루 셀 수 없었다. 헌창이 겨우 몸만 빠져나가 성에 들어가 굳게 지켰다. 여러 군사가 에워싸고 친 지 열흘 만에 성이 곧 함락되려 하므로, 헌창이 벗어나지 못할 줄 알고 스스로 죽었다.

따르던 이가 머리와 몸을 끊어 각각 감추었다. 성이 함락되매 그 몸을 옛 무덤에서 찾아 베고, 겨레붙이와 무리 무릇 이백서른아홉 사람을 죽였으며 그 백성은 놓아주었다. 뒤에 공을 논하여 벼슬과 상을 차등 있게 주었다. 아찬 녹진에게 대아찬 벼슬을 주었으나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삽량주 굴자군은 적에 가까우면서도 난에 더럽혀지지 않았으므로 일곱 해 동안 부역을 면제하였다.

이보다 앞서 청주 태수의 청사 남쪽 못 안에 기이한 새가 있었는데, 몸 길이가 다섯 자요 빛이 검으며 머리가 다섯 살쯤 된 아이만 하고 부리 길이가 한 자 다섯 치였다. 눈은 사람 같고 모이주머니는 닷 되들이 그릇쯤 되었는데 사흘 만에 죽었으니, 헌창이 패망할 조짐이었다.

각간 충공의 딸 정교를 맞아 태자비로 삼았다. 패강 산골짜기 사이에 넘어진 나무에서 움이 돋아 하룻밤에 높이가 열세 자, 둘레가 넉 자 일곱 치가 되었다.

여름 사월 열사흘에 달빛이 피 같았다. 가을 칠월 열이틀에 해에 검은 무리가 있어 남북을 가리켰다. 겨울 십이월에 주필을 보내어 당나라에 들어가 조공하게 하였다.

16십오년 — 하늘에서 벌레가 떨어지다

十五年,春正月五日,西原京,有蟲從天而墮。九日,有白、黑、赤三種蟲,冒雪能行,見陽而止。元順、平原二角干,七十告老,賜几杖。二月,合水城郡、唐恩郡。夏四月十二日,流星起天市,犯帝座,過天市東北垣、織女、王良,至閣道分爲三,聲如撃鼓而滅。秋七月,雪。

십오년 봄 정월 닷새에 서원경에 벌레가 하늘에서 떨어졌다. 아흐레에 희고 검고 붉은 세 가지 벌레가 눈을 무릅쓰고 다니다가 볕을 보고 그쳤다. 원순과 평원 두 각간이 나이 일흔이라 늙었음을 아뢰므로 안석과 지팡이를 내렸다.

이월에 수성군과 당은군을 합쳤다.

여름 사월 열이틀에 유성이 천시원에서 일어나 제좌를 범하고, 천시원 동북쪽 담과 직녀와 왕량을 지나 각도에 이르러 셋으로 나뉘었는데 소리가 북을 치는 것 같더니 없어졌다.

가을 칠월에 눈이 내렸다.

17십칠년 — 헌창의 아들 범문이 배반하다

十七年,春正月,憲昌子梵文,與高達山賊、壽神等百餘人,同謀叛,欲立都於平壤,攻北漢山城。都督聰明,率兵捕殺之。三月,武珍州馬彌知縣女人産兒,二頭二身四臂,産時天大雷。夏五月,遣王子金昕入唐朝貢,遂奏言:「先在大學生,崔利貞、金叔貞、朴季業等,請放還蕃,其新赴朝金允夫、金立之、朴亮之等一十二人,請留宿衛,仍請配國子監習業,鴻臚寺給資粮。」從之。秋,歃良州獻白馬。牛頭州大楊管郡黄知奈麻妻,一産二男二女,賜租一百石。

십칠년 봄 정월에 헌창의 아들 범문이 고달산의 도둑 수신 등 백여 사람과 함께 배반을 꾀하여 평양에 도읍을 세우려 하고 북한산성을 쳤다. 도독 총명이 군사를 거느리고 잡아 죽였다.

삼월에 무진주 마미지현의 여인이 아이를 낳았는데 머리가 둘, 몸이 둘, 팔이 넷이었고 낳을 때 하늘에서 크게 우레가 쳤다.

여름 오월에 왕자 김흔을 보내어 당나라에 들어가 조공하고 마침내 아뢰었다. "앞서 대학에 있던 학생 최이정·김숙정·박계업 등을 놓아 나라로 돌려보내 주시기를 청하며, 새로 조정에 나아온 김윤부·김입지·박양지 등 열두 사람은 머물러 숙위하게 하시고, 이어 국자감에 배치하여 학업을 익히게 하고 홍려시에서 밑천과 양식을 주시기를 청합니다." 그대로 따랐다.

가을에 삽량주에서 흰 말을 바쳤다. 우두주 대양관군의 황지 나마의 아내가 한 번에 아들 둘과 딸 둘을 낳으므로 조 일백 섬을 내렸다.

협주 1

平壤,今楊州也,太祖製莊義寺齋文有『高麗舊壤平壤名山』之句。

평양은 지금의 양주다. 태조가 지은 「장의사 재문」에 '고구려의 옛 땅 평양의 이름난 산'이라는 구절이 있다.

18십팔년 — 패강에 장성 삼백 리를 쌓다

十八年,秋七月,命牛岑太守白永,徴漢山北諸州郡人一萬,築浿江長城三百里。冬十月,王薨,諡曰憲德,葬于泉林寺北。

십팔년 가을 칠월에 우잠 태수 백영에게 명하여 한산 북쪽 여러 주군의 사람 일만을 불러 패강에 장성 삼백 리를 쌓게 하였다.

겨울 시월에 왕이 죽었다. 시호를 헌덕(憲德)이라 하고 천림사 북쪽에 장사 지냈다.

협주 1

《古記》云:「在位十八年,寶曆二年丙午四月卒。」《新唐書》云:「長慶寶曆間,羅王彦昇卒。」而《資理通鑑》及《舊唐書》皆云:「大和五年卒。」豈其誤耶。

『고기』에는 "자리에 있은 지 십팔년, 보력 이년 병오 사월에 죽었다" 하였고, 『신당서』에는 "장경과 보력 사이에 신라 왕 언승이 죽었다" 하였는데, 『자치통감』과 『구당서』에는 모두 "대화 오년에 죽었다" 하였으니 아마 잘못인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