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 삼국사기 › 신라본기

민애왕閔哀王

삼국사기 三國史記 · 김부식(金富軾) 등 · 1145년 (고려 인종 23) · 단락 2 · 한자 345자 · 낭독 1.4분

「삼국사기」 신라본기 「민애왕」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역사서. 신라·고구려·백제 본기와 지·표·열전으로 이루어졌다. 김부식이 곳곳에 「論曰」로 자기 평을 달아 두어, 편찬자가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나무랐는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1민애왕이 즉위하다

閔哀王立,姓金氏,諱明。元聖大王之曾孫也,大阿飡忠恭之子。累官爲上大等,與侍中利弘,逼王殺之,自立爲王。追諡考爲宣康大王,母朴氏貴寶夫人爲宣懿太后,妻金氏爲允容王后。拜伊飡金貴爲上大等,阿飡憲崇爲侍中。二月,金陽募集兵士,入淸海鎭,謁祐徴。阿飡祐徴在淸海鎭,聞金明簒位,謂鎭大使弓福曰:「金明弑君自立,利弘枉殺吾父,不可共戴天也,願仗將軍之兵,以報君父之讎。」弓福曰:「古人有言:『見義不爲無勇,吾雖庸劣,唯命是從。』」遂分兵五千人,與其友鄭年曰:「非子,不能平禍亂。」冬十二月,金陽爲平東將軍,與閻長、張弁、鄭年、駱金、張建榮、李順行統軍,至武州鐵冶縣,王使大監金敏周,出軍迎戰,遣駱金、李順行,以馬軍三千突撃,殺傷殆盡。

민애왕이 즉위하였으니 성은 김씨요 이름은 명(明)이며 원성대왕의 증손이요 대아찬 충공의 아들이다. 여러 벼슬을 거쳐 상대등이 되었다가 시중 이홍과 함께 왕을 다그쳐 죽이고 스스로 서서 왕이 되었다. 아버지에게 시호를 추증하여 선강대왕으로, 어머니 박씨 귀보부인을 선의태후로, 아내 김씨를 윤용왕후로 삼았다. 이찬 김귀를 상대등으로, 아찬 헌숭을 시중으로 삼았다.

이월에 김양이 군사를 모아 청해진에 들어가 우징에게 뵈었다. 아찬 우징이 청해진에 있으면서 김명이 자리를 빼앗았다는 말을 듣고 청해진 대사 궁복에게 말하였다. "김명이 임금을 시해하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으며 이홍이 내 아비를 억울하게 죽였으니 함께 하늘을 일 수 없다. 바라건대 장군의 군사에 기대어 임금과 아비의 원수를 갚고자 한다."

궁복이 말하였다. "옛사람의 말에 '의로움을 보고 하지 않으면 용기가 없는 것이다' 하였으니, 내 비록 용렬하고 못났으나 오직 명을 좇겠다." 마침내 군사 오천을 나누어 그 벗 정년에게 주며 말하였다. "그대가 아니면 화와 난을 평정할 수 없다."

겨울 십이월에 김양이 평동장군이 되어 염장·장변·정년·낙금·장건영·이순행과 함께 군사를 거느리고 무주 철야현에 이르렀다. 왕이 대감 김민주를 시켜 군사를 내어 맞아 싸우게 하였다. 김양이 낙금과 이순행을 보내어 기병 삼천으로 들이쳐 죽이고 다치게 하여 거의 다 없앴다.

2이년 — 민애왕이 해를 입다

二年,春閏正月,晝夜兼行。十九日,至于達伐之丘。王聞兵至,命伊飡大昕,大阿飡允璘、嶷勛等,將兵拒之。又一戰,大克,王軍死者過半。時,王在西郊大樹之下,左右皆散,獨立不知所爲,奔入月遊宅,兵士尋而害之。羣臣以禮葬之,諡曰閔哀。

이년 봄 윤정월에 밤낮으로 아울러 나아가 열아흐레에 달벌 언덕에 이르렀다. 왕이 군사가 이르렀다는 말을 듣고 이찬 대흔과 대아찬 윤린·억훈 등에게 명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막게 하였다. 또 한 번 싸워 크게 이기니 왕의 군사로 죽은 이가 반이 넘었다.

그때 왕이 서쪽 들 큰 나무 아래에 있었는데 좌우가 모두 흩어져 홀로 서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월유댁으로 달려 들어갔으나 군사가 찾아내어 해쳤다. 여러 신하가 예로 장사 지내고 시호를 민애(閔哀)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