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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안왕憲安王

삼국사기 三國史記 · 김부식(金富軾) 등 · 1145년 (고려 인종 23) · 단락 5 · 한자 469자 · 낭독 1.9분

「삼국사기」 신라본기 「헌안왕」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역사서. 신라·고구려·백제 본기와 지·표·열전으로 이루어졌다. 김부식이 곳곳에 「論曰」로 자기 평을 달아 두어, 편찬자가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나무랐는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1헌안왕이 즉위하다

憲安王立,諱誼靖,神武王之異母弟也。母照明夫人,宣康王之女。以文聖顧命卽位。大赦,拜伊飡金安爲上大等。

헌안왕이 즉위하였으니 이름은 의정(誼靖)이요 신무왕의 배다른 아우다. 어머니는 조명부인이니 선강왕의 딸이다. 문성의 유언에 따라 즉위하였다. 크게 사면하고 이찬 김안을 상대등으로 삼았다.

협주 1

一云祐靖。

우정(祐靖)이라고도 한다.

2이년 — 큰 물고기가 나오다

二年,春正月,親祀神宮。夏四月,降霜。自五月至秋七月,不雨。唐城郡南河岸有大魚出。長四十步,高六尺。

이년 봄 정월에 몸소 신궁에 제사하였다. 여름 사월에 서리가 내렸다. 오월부터 가을 칠월까지 비가 오지 않았다. 당성군 남쪽 강 언덕에 큰 물고기가 나왔는데 길이가 마흔 보요 높이가 여섯 자였다.

3삼년 — 제방을 손질하고 농사를 권하다

三年春,穀貴人饑。王遣使賑救。夏四月,敎修完隄防勸農。

삼년 봄에 곡식이 귀하여 사람이 주리므로 왕이 사신을 보내어 진휼하여 구하였다. 여름 사월에 영을 내려 제방을 고쳐 온전히 하고 농사를 권하게 하였다.

4사년 — 응렴이 착한 사람 셋을 말하다

四年,秋九月,王會羣臣於臨海殿。王族膺廉年十五歲,預坐焉。王欲觀其志,忽問曰:「汝游學有日矣,得無見善人者乎?」答曰:「臣嘗見三人,竊以爲有善行也。」王曰:「何如?」曰:「一高門子弟,其與人也,不自先而處於下;一家富於財,可以侈衣服,而常以麻紵自喜;一有勢榮,而未嘗以其勢加人。臣所見如此。」王聞之默然,與王后耳語曰:「朕閱人多矣,無如膺廉者。」意以女妻之,顧謂膺廉曰:「願郞自愛。朕有息女,使之薦枕。」更置酒同飮,從容言曰:「吾有二女,兄今年二十歲,弟十九歲,惟郞所娶!」膺廉辭不獲,起拜謝,便歸家告父母。父母言:「聞王二女容色,兄不如弟,若不得已,宜娶其弟。」然尙疑未決,乃問興輪寺僧。僧曰:「娶兄則有三益,弟則反是,有三損。」膺廉乃奏:「臣不敢自決,惟王命是從。」於是,王長女出降焉。

사년 가을 구월에 왕이 임해전에서 여러 신하를 모았다. 왕족 응렴이 나이 열다섯인데 그 자리에 참여하였다. 왕이 그 뜻을 보고자 문득 물었다. "네가 나가서 배운 지 여러 날이니 착한 사람을 본 일이 없느냐."

답하였다. "신이 일찍이 세 사람을 보았는데 가만히 착한 행실이 있다고 여겼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어떠하냐."

말하였다. "하나는 높은 문벌의 자제인데 남과 사귈 때 스스로 앞서지 않고 아래에 처하였습니다. 하나는 집이 재물이 넉넉하여 옷을 사치스럽게 할 만한데도 늘 삼베와 모시로 스스로 기뻐하였습니다. 하나는 세력과 영화가 있으나 일찍이 그 세력을 남에게 더한 일이 없었습니다. 신이 본 바가 이러합니다."

왕이 듣고 잠자코 있다가 왕후와 귀엣말로 말하였다. "짐이 사람을 많이 보았으나 응렴만 한 이가 없다." 딸을 시집보낼 뜻으로 응렴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바라건대 낭은 스스로 사랑하라. 짐에게 딸이 있으니 잠자리를 받들게 하겠다."

다시 술자리를 베풀어 함께 마시며 조용히 말하였다. "내게 두 딸이 있으니 언니는 올해 스무 살이요 아우는 열아홉이다. 오직 낭이 취하는 대로 하라."

응렴이 사양하다 못하여 일어나 절하고 사례하고는 곧 집에 돌아가 부모에게 알렸다. 부모가 말하였다. "듣기로 왕의 두 딸은 얼굴이 언니가 아우만 못하다 하니, 만약 마지못한다면 마땅히 그 아우에게 장가들라."

그러나 오히려 의심하여 정하지 못하고 이내 흥륜사의 승려에게 물었다. 승려가 말하였다. "언니에게 장가들면 세 가지 이익이 있고 아우는 이와 반대여서 세 가지 손해가 있소."

응렴이 이에 아뢰었다. "신이 감히 스스로 정하지 못하겠으니 오직 왕의 명을 좇겠습니다." 이에 왕의 맏딸이 시집갔다.

5오년 — 헌안왕이 죽다

五年,春正月,王寢疾彌留,謂左右曰:「寡人不幸,無男子有女。吾邦故事,雖有善德、眞德二女主,然近於牝雞之晨,不可法也。甥膺廉,年雖幼少,有老成之德。卿等,立而事之,必不墜祖宗之令緖,則寡人死,且不朽矣。」是月二十九日,薨。諡曰憲安,葬于孔雀趾。

오년 봄 정월에 왕이 병들어 누워 오래 낫지 않으므로 좌우에게 말하였다.

"과인이 불행히 아들이 없고 딸만 있다. 우리나라 옛일에 비록 선덕과 진덕 두 여자 임금이 있었으나, 이는 암탉이 새벽을 알리는 것에 가까우니 본받을 수 없다. 사위 응렴은 나이 비록 어리나 늙은이의 무르익은 덕이 있다. 경들은 세워 섬기라. 반드시 조종의 아름다운 실마리를 떨어뜨리지 않을 것이니, 그러면 과인이 죽어도 또한 썩지 않을 것이다."

이달 스무아흐레에 죽었다. 시호를 헌안(憲安)이라 하고 공작지에 장사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