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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강왕憲康王

삼국사기 三國史記 · 김부식(金富軾) 등 · 1145년 (고려 인종 23) · 단락 11 · 한자 607자 · 낭독 2.4분

「삼국사기」 신라본기 「헌강왕」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역사서. 신라·고구려·백제 본기와 지·표·열전으로 이루어졌다. 김부식이 곳곳에 「論曰」로 자기 평을 달아 두어, 편찬자가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나무랐는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1헌강왕이 즉위하다

憲康王立。諱晸,景文王之太子。母,文懿王后;妃,懿明夫人。王性聰敏,愛看書,目所一覽,皆誦於口。卽位,拜伊飡魏弘爲上大等,大阿飡乂謙爲侍中,大赦內外殊死已下。

헌강왕이 즉위하였으니 이름은 정(晸)이요 경문왕의 태자다. 어머니는 문의왕후요 왕비는 의명부인이다. 왕은 성품이 총명하고 재빨라 책 보기를 좋아하였고 눈으로 한 번 본 것은 모두 입으로 외웠다. 즉위하매 이찬 위홍을 상대등으로, 대아찬 예겸을 시중으로 삼고, 안팎으로 죽을죄 이하를 크게 사면하였다.

2이년 — 백고좌를 베풀다

二年,春二月,皇龍寺齋僧,設百高座講經,王親幸聽之。秋七月,遣使入唐貢方物。

이년 봄 이월에 황룡사에서 승려에게 재를 올리고 백고좌를 베풀어 경을 강하게 하니 왕이 몸소 거둥하여 들었다. 가을 칠월에 사신을 보내어 당나라에 들어가 그 지방 산물을 바쳤다.

3삼년 — 태조대왕이 나다

三年,春正月,我太祖大王,生於松岳郡。

삼년 봄 정월에 고려 태조대왕이 송악군에서 났다.

4사년 — 황소의 난을 듣고 그치다

四年,夏四月,唐僖宗降使,冊封王爲使持節開府儀同三司檢校太尉大都督雞林州諸軍事新羅王,秋七月,遣使朝唐,聞黃巢賊起,乃止。八月,日本國使至,王引見於朝元殿。

사년 여름 사월에 당나라 희종이 사신을 보내어 왕을 책봉하여 사지절 개부의동삼사 검교태위 대도독 계림주제군사 신라왕으로 삼았다.

가을 칠월에 사신을 보내어 당나라에 조회하려 하다가 황소의 도둑이 일어났다는 말을 듣고 이내 그쳤다. 팔월에 일본국 사신이 이르므로 왕이 조원전에서 이끌어 만나 보았다.

5오년 — 산과 바다의 정령이 나타나다

五年,春二月,幸國學,命博士已下講論。三月,巡幸國東州郡,有不知所從來四人,詣駕前歌舞,形容可駭,衣巾詭異,時人謂之山海精靈古記謂,王卽位元年事,夏六月,一吉飡信弘叛,伏誅,冬十月御遵禮門觀射。十一月,獵穴城原。

오년 봄 이월에 국학에 거둥하여 박사 이하에게 명하여 강론하게 하였다.

삼월에 나라 동쪽 주군을 돌아보는데,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네 사람이 임금의 수레 앞에 나아와 노래하고 춤추었다. 생김새가 놀랄 만하고 옷과 두건이 괴이하므로 그때 사람들이 산과 바다의 정령이라 하였다. — 『고기』에는 왕이 즉위한 원년의 일이라 하였다.

여름 유월에 일길찬 신홍이 배반하다가 베임을 당하였다. 겨울 시월에 준례문에 나아가 활쏘기를 보았다. 십일월에 혈성 벌판에서 사냥하였다.

6육년 — 집을 기와로 덮고 밥을 숯으로 짓는다

六年,春二月,太白犯月。侍中乂謙退,伊飡敏恭爲侍中。秋八月,熊州進嘉禾。九月九日,王與左右,登月上樓,四望,京都民屋相屬,歌吹連聲。王顧謂侍中敏恭曰:「孤聞今之民間,覆屋以瓦不以茅,炊飯以炭不以薪,有是耶?」敏恭對曰:「臣亦嘗聞之如此」因奏曰:「上卽位以來,陰陽和,風雨順,歲有年,民足食,邊境謐靜,市井歡娛。此聖德之所致也。」王欣然曰:「此,卿等輔佐之力也,朕何德焉?」

육년 봄 이월에 태백이 달을 범하였다. 시중 예겸이 물러나므로 이찬 민공을 시중으로 삼았다.

가을 팔월에 웅주에서 아름다운 벼를 바쳤다.

구월 아흐레에 왕이 좌우와 함께 월상루에 올라 사방을 바라보니, 서울의 백성 집이 서로 잇닿고 노래와 풍류 소리가 이어졌다. 왕이 시중 민공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내가 듣기로 요즘 백성 사이에 집을 기와로 덮고 띠로 덮지 않으며, 밥을 숯으로 짓고 섶으로 짓지 않는다 하니 그러한가."

민공이 답하였다. "신도 일찍이 이와 같이 들었습니다." 이어 아뢰었다. "임금께서 즉위하신 뒤로 음과 양이 고르고 바람과 비가 순하며 해마다 풍년이 들어 백성이 먹을 것이 넉넉하고, 변경이 고요하고 저자가 즐거우니 이는 거룩한 덕이 이룬 바입니다."

왕이 기뻐하며 말하였다. "이는 경들이 도운 힘이지 짐에게 무슨 덕이 있겠는가."

7칠년 — 임해전에서 잔치하다

七年,春三月,燕羣臣於臨海殿,酒酣上鼓琴,左右各進歌詞,極歡而罷。

칠년 봄 삼월에 임해전에서 여러 신하에게 잔치를 베풀었다. 술이 무르익자 임금이 거문고를 타고 좌우가 각각 노랫말을 올려, 지극히 즐기다가 파하였다.

8팔년 — 일본 왕이 황금을 바치다

八年,夏四月,日本國王遣使,進黃金三百兩、明珠一十箇。冬十二月,枯彌縣女,一産三男。

팔년 여름 사월에 일본국 왕이 사신을 보내어 황금 삼백 냥과 밝은 구슬 열 개를 바쳤다. 겨울 십이월에 고미현의 여인이 한 번에 아들 셋을 낳았다.

9구년 — 문신에게 시를 짓게 하다

九年,春二月,王幸三郞寺,命文臣各賦詩一首。

구년 봄 이월에 왕이 삼랑사에 거둥하여 문신에게 각각 시 한 수씩을 짓게 하였다.

10십일년 — 황소를 깨뜨림을 하례하다

十一年,春二月,虎入宮庭。三月,崔致遠還。冬十月壬子,太白晝見。遣使入唐,賀破黃巢賊。

십일년 봄 이월에 범이 궁궐 뜰에 들어왔다. 삼월에 최치원이 돌아왔다. 겨울 시월 임자에 태백이 낮에 보였다. 사신을 보내어 당나라에 들어가 황소의 도둑을 깨뜨린 것을 하례하였다.

11십이년 — 헌강왕이 죽다

十二年,春,北鎭奏:「狄國人入鎭,以片木掛樹而歸。」遂取以獻,其木書十五字云:「寶露國與黑水國人,共向新羅國和通。」夏六月,王不豫,赦國內獄囚。又於皇龍寺,設百高座講經。秋七月五日,薨。諡曰憲康,葬菩提寺東南。

십이년 봄에 북진에서 아뢰었다. "오랑캐 나라 사람이 진에 들어와 나뭇조각을 나무에 걸어 두고 돌아갔습니다." 마침내 그것을 가져다 바쳤는데, 그 나무에 열다섯 자가 적혀 있어 이르기를 "보로국과 흑수국 사람이 함께 신라국을 향하여 화친하여 통하고자 한다" 하였다.

여름 유월에 왕이 편치 않아 나라 안 옥에 갇힌 죄수를 사면하였다. 또 황룡사에 백고좌를 베풀어 경을 강하게 하였다.

가을 칠월 닷새에 죽었다. 시호를 헌강(憲康)이라 하고 보리사 동남쪽에 장사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