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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강왕定康王

삼국사기 三國史記 · 김부식(金富軾) 등 · 1145년 (고려 인종 23) · 단락 2 · 한자 125자 · 낭독 0.5분

「삼국사기」 신라본기 「정강왕」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역사서. 신라·고구려·백제 본기와 지·표·열전으로 이루어졌다. 김부식이 곳곳에 「論曰」로 자기 평을 달아 두어, 편찬자가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나무랐는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1정강왕이 즉위하다

定康王立。諱晃,景文王之第二子也。八月,拜伊飡俊興爲侍中。國西旱且荒。

정강왕이 즉위하였으니 이름은 황(晃)이요 경문왕의 둘째 아들이다. 팔월에 이찬 준흥을 시중으로 삼았다. 나라 서쪽이 가물고 또 흉년이 들었다.

2이년 — 누이 만을 세우라 하다

二年,春正月,設百高座於皇龍寺,親幸聽講。漢州伊飡金蕘叛,發兵誅之。夏五月,王疾病,謂侍中俊興曰:「孤之病革矣,必不復起。不幸無嗣子,然妹曼天資明銳,骨法似丈夫,卿等宜倣善德、眞德古事,立之可也。」秋七月五日,薨。諡曰定康,葬菩提寺東南。

이년 봄 정월에 황룡사에 백고좌를 베풀고 몸소 거둥하여 강의를 들었다. 한주의 이찬 김요가 배반하므로 군사를 내어 베었다.

여름 오월에 왕이 병들어 시중 준흥에게 말하였다. "내 병이 위중하니 반드시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불행히 뒤이을 아들이 없으나, 누이 만(曼)은 타고난 바탕이 밝고 날카로우며 골법이 사내 같다. 경들은 마땅히 선덕과 진덕의 옛일을 본받아 세우는 것이 옳다."

가을 칠월 닷새에 죽었다. 시호를 정강(定康)이라 하고 보리사 동남쪽에 장사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