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명왕景明王
1경명왕이 즉위하다
景明王立。諱昇英,神德王之太子。母,義成王后。
경명왕이 즉위하였으니 이름은 승영(昇英)이요 신덕왕의 태자다. 어머니는 의성왕후다.
2원년 — 위응을 상대등으로 삼다
元年,八月,拜王弟伊飡魏膺爲上大等,大阿飡裕廉爲侍中。
원년 팔월에 왕의 아우 이찬 위응을 상대등으로, 대아찬 유렴을 시중으로 삼았다.
3이년 — 궁예가 죽고 태조가 서다
二年,春二月,一吉飡玄昇叛,伏誅。夏六月,弓裔麾下人心忽變,推戴太祖。弓裔出奔,爲下所殺。太祖卽位,稱元。秋七月,尙州賊帥阿玆盖,遣使降於太祖。
이년 봄 이월에 일길찬 현승이 배반하다가 베임을 당하였다.
여름 유월에 궁예의 부하들의 마음이 문득 변하여 태조를 밀어 받들었다. 궁예가 달아나다가 아랫사람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태조가 즉위하여 원년을 일컬었다.
가을 칠월에 상주의 도둑 우두머리 아자개가 사신을 보내어 태조에게 항복하였다.
4삼년 — 태조가 송악군으로 도읍을 옮기다
三年,四天王寺塑像所執弓弦自絶,壁畫狗子有聲,若吠者。以上大等金成爲角飡,侍中彦邕爲沙飡。我太祖移都松岳郡。
삼년에 사천왕사 소상이 잡고 있던 활시위가 저절로 끊어지고, 벽에 그린 개가 소리를 내어 짖는 듯하였다. 상대등 김성을 각찬으로, 시중 언옹을 사찬으로 삼았다. 고려 태조가 송악군으로 도읍을 옮겼다.
5사년 — 견훤이 대야성을 함락하다
四年,春正月,王與太祖交聘修好。二月,康州將軍閏雄,降於太祖。冬十月,後百濟主甄萱,率步騎一萬,攻陷大耶城,進軍於進禮。王遣阿飡金律求援於太祖。太祖命將出師救之,萱聞乃去。
사년 봄 정월에 왕이 태조와 사신을 주고받아 좋게 지냈다. 이월에 강주 장군 윤웅이 태조에게 항복하였다.
겨울 시월에 후백제의 임금 견훤이 보병과 기병 일만을 거느리고 대야성을 쳐서 함락하고 진례로 군사를 밀고 나아갔다. 왕이 아찬 김율을 보내어 태조에게 구원을 청하니, 태조가 장수에게 명하여 군사를 내어 구하게 하였다. 훤이 듣고 이내 물러갔다.
6오년 — 성대를 열어 보다
五年,春正月,金律告王曰:「臣往年奉使高麗,麗王問臣曰:『聞新羅有三寶,所謂丈六尊像、九層塔幷聖帶也。像塔猶存,不知聖帶今猶在耶?』臣不能答。」王聞之,問羣臣曰:「聖帶是何寶物耶?」無能知者。時有皇龍寺僧,年過九十者曰:「予嘗聞之。寶帶是眞平大王所服也,歷代傳之,藏在南庫。」王遂令開庫,不能得見,乃以擇日齋祭,然後見之。其粧以金玉,甚長,非常人所可束也。
오년 봄 정월에 김율이 왕에게 아뢰었다. "신이 지난해에 고려에 사신으로 갔더니 고려 왕이 신에게 물었습니다. '듣기로 신라에 세 가지 보배가 있다 하니 이른바 장륙존상과 구층탑과 아울러 성대(聖帶)라 한다. 상과 탑은 아직 있거니와 성대는 지금도 있는지 알지 못하겠다.' 신이 답하지 못하였습니다."
왕이 듣고 여러 신하에게 물었다. "성대는 어떤 보배인가." 아는 이가 없었다. 그때 황룡사 승려로 나이 아흔이 넘은 이가 말하였다. "제가 일찍이 들었습니다. 보배로운 띠는 진평대왕이 차던 것으로 대대로 전하여 남쪽 곳간에 간직해 두었습니다."
왕이 마침내 곳간을 열게 하였으나 볼 수 없어, 이에 날을 가려 재계하고 제사한 뒤에야 보았다. 그것은 금과 옥으로 꾸미고 몹시 길어 예사 사람이 맬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7사론 — 나라의 보배는 무엇인가
論曰:「古者坐明堂,執傳國璽,列九鼎,其若帝王之盛事者也。而韓公論之曰:『歸天人之心,興太平之基,決非三器之所能也。』竪三器而爲重者,其誇者之詞耶?况此新羅所謂三寶,亦出於人爲之侈而已,爲國家,何須此耶?孟子曰:『諸侯之寶三:土地、人民、政事。』《楚書》曰:『楚國無以爲寶,惟善以爲寶。』若此者,行之於內,足以善一國;推之於外,足以澤四海。又何外物之足云哉?!太祖聞羅人之說而問之耳,非以爲可尙者也。」二月,靺鞨別部達姑衆,來寇北邊。時,太祖將堅權鎭朔州,率騎擊大破之,匹馬不還。王喜,遣使移書,謝於太祖。夏四月,京都大風拔樹。秋八月,蝗旱。
김부식이 논한다.
옛날에 명당에 앉아 나라 전하는 옥새를 잡고 아홉 솥을 벌여 놓는 것을 제왕의 성대한 일로 여겼다. 그런데 한공이 논하여 말하였다. "하늘과 사람의 마음을 돌아오게 하고 태평의 터를 일으키는 것은 결코 세 가지 기물로 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세 가지 기물을 세워 무겁게 여기는 것은 자랑하는 자의 말인가.
하물며 이 신라의 이른바 세 가지 보배도 또한 사람이 만든 사치에서 나온 것일 뿐이니, 나라를 위하는 데 어찌 이런 것이 필요하겠는가.
맹자가 말하기를 "제후의 보배는 셋이니 토지와 백성과 정사다" 하였고, 『초서』에 이르기를 "초나라는 보배로 삼을 것이 없고 오직 착함을 보배로 삼는다" 하였다. 이와 같은 것은 안에서 행하면 한 나라를 착하게 하기에 넉넉하고, 밖으로 밀면 온 세상을 적시기에 넉넉하다. 또 어찌 바깥 물건을 말할 것이 있겠는가.
태조가 신라 사람의 말을 듣고 물었을 뿐이지 숭상할 만하다고 여긴 것은 아니다.
이월에 말갈의 별부인 달고의 무리가 북쪽 변경을 침노하러 왔다. 그때 태조의 장수 견권이 삭주를 지키고 있다가 기병을 거느리고 쳐서 크게 깨뜨리니 한 필의 말도 돌아가지 못하였다. 왕이 기뻐하여 사신을 보내어 글을 부쳐 태조에게 사례하였다.
여름 사월에 서울에 큰 바람이 불어 나무를 뽑았다. 가을 팔월에 메뚜기가 나고 가물었다.
8육년 — 원봉과 순식이 태조에게 항복하다
六年,春正月,下枝城將軍元逢、溟州將軍順式,降於太祖。太祖念其歸順,以元逢本城爲順州,賜順式姓曰王。是月,眞寶城將軍洪述,降於太祖。
육년 봄 정월에 하지성 장군 원봉과 명주 장군 순식이 태조에게 항복하였다. 태조가 그 귀순함을 생각하여 원봉의 본성을 순주로 삼고, 순식에게는 왕(王)이라는 성을 내렸다. 이달에 진보성 장군 홍술이 태조에게 항복하였다.
9칠년 — 후당에 조공하다
七年,秋七月,命旨城將軍城達、京山府將軍良文等,降於太祖。王遣倉部侍郞金樂、錄事叅軍金幼卿,朝後唐貢方物。莊宗賜物有差。
칠년 가을 칠월에 명지성 장군 성달과 경산부 장군 양문 등이 태조에게 항복하였다.
왕이 창부시랑 김락과 녹사참군 김유경을 보내어 후당에 조회하고 그 지방 산물을 바치니, 장종이 물건을 차등 있게 내렸다.
10팔년 — 경명왕이 죽다
八年,春正月,遣使入後唐朝貢。泉州節度使王逢規,亦遣使貢方物。夏六月,遣朝散大夫倉部侍郞金岳,入後唐朝貢,莊宗授朝議大夫試衛尉卿。秋八月王薨。諡曰景明,葬于黃福寺北。太祖遣使弔祭。
팔년 봄 정월에 사신을 보내어 후당에 들어가 조공하였다. 천주절도사 왕봉규도 사신을 보내어 그 지방 산물을 바쳤다.
여름 유월에 조산대부 창부시랑 김악을 보내어 후당에 들어가 조공하니, 장종이 조의대부 시위위경을 주었다.
가을 팔월에 왕이 죽었다. 시호를 경명(景明)이라 하고 황복사 북쪽에 장사 지냈다. 태조가 사신을 보내어 조문하고 제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