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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왕東明王

삼국사기 三國史記 · 김부식(金富軾) 등 · 1145년 (고려 인종 23) · 단락 10 · 한자 1,201자 · 낭독 4.8분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동명왕」의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을 단락마다 나란히 실었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역사서. 신라·고구려·백제 본기와 지·표·열전으로 이루어졌다. 김부식이 곳곳에 「論曰」로 자기 평을 달아 두어, 편찬자가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나무랐는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1금와가 나다

始祖東明聖王,姓高氏,諱朱蒙。先是,扶餘王解夫婁老無子,祭山川求嗣。其所御馬至鯤淵,見大石,相對流涙。王怪之,使人轉其石,有小兒,金色蛙形。王喜曰:「此乃天賚我令胤乎!」乃收而養之。名曰金蛙。及其長,立

시조 동명성왕은 성이 고씨요 이름은 주몽(朱蒙)이다.

이보다 앞서 부여 왕 해부루가 늙도록 아들이 없어 산천에 제사하여 뒤이을 아들을 구하였다. 그가 타는 말이 곤연에 이르러 큰 돌을 보고 마주하여 눈물을 흘렸다. 왕이 괴이하게 여겨 사람을 시켜 그 돌을 굴리게 하니 어린아이가 있는데 금빛이요 개구리 모양이었다. 왕이 기뻐하며 말하였다. "이는 곧 하늘이 나에게 아름다운 아들을 주신 것인가." 이에 거두어 기르고 이름을 금와(金蛙)라 하였다. 자라매 세워

협주 2

一云鄒牟;一云衆解。

추모(鄒牟)라고도 하고 중해(衆解)라고도 한다.

蛙,一作蝸。

와(蛙)는 와(蝸)로도 쓴다.

2유화가 알을 낳다

爲太子。後其相阿蘭弗曰:「日者,天降我曰:『將使吾子孫立國於此,汝其避之。東海之濱有地,號曰迦葉原,土壤膏腴宜五穀,可都也』」。阿蘭弗遂勸王,移都於彼,國號東扶餘。其舊都有人,不知所從來,自稱天帝子解慕漱,來都焉。及解夫婁薨,金蛙嗣位。於是時,得女子於太白山南優渤水,問之,曰:「我是河伯之女,名柳花。與諸弟出遊時,有一男子,自言天帝子解慕漱,誘我於熊心山下鴨邊室中,私之。即往不返,父母責我無媒而從人,遂謫居優渤水。金蛙異之,幽閉於室中。爲日所炤,引身避之,日影又逐而炤之。因而有孕,生一卵,大如五升許。王棄之與犬豕,皆不食。又棄之路中,牛馬避之。後棄之野,鳥覆翼之。王欲剖之,不能破,遂還其母。其母以物裹之,置於暖處,有一男兒,破殼而出,骨表英奇。

태자로 삼았다.

뒤에 그 재상 아란불이 말하였다. "일전에 하늘이 나에게 내려와 말하기를 '장차 내 자손으로 하여금 여기에 나라를 세우게 하리니 너는 이곳을 피하라. 동해 물가에 땅이 있으니 이름을 가섭원이라 한다. 흙이 기름져 오곡에 마땅하니 도읍할 만하다' 하였습니다." 아란불이 마침내 왕에게 권하여 그리로 도읍을 옮기고 나라 이름을 동부여라 하였다.

그 옛 도읍에 사람이 있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데 스스로 천제의 아들 해모수라 일컫고 와서 도읍하였다. 해부루가 죽으매 금와가 자리를 이었다.

이때에 태백산 남쪽 우발수에서 여자를 얻어 물으니 말하였다. "저는 하백의 딸이요 이름은 유화입니다. 여러 아우와 함께 나가 놀 때 한 남자가 있어 스스로 천제의 아들 해모수라 하며, 저를 웅심산 아래 압록강 가 방으로 꾀어 정을 통하고는 곧 가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부모가 저를 중매 없이 남을 좇았다 하여 꾸짖고 마침내 우발수에 귀양살이하게 하였습니다."

금와가 기이하게 여겨 방 안에 가두었다. 햇빛이 비추므로 몸을 끌어 피하니 햇그림자가 또 좇아와 비추었다. 이로 말미암아 아이를 배어 알 하나를 낳았는데 크기가 닷 되들이만 하였다. 왕이 이를 버려 개와 돼지에게 주었으나 모두 먹지 않았다. 또 길 가운데 버렸으나 소와 말이 피하였다. 뒤에 들에 버리니 새가 날개로 덮었다. 왕이 쪼개려 하였으나 깨뜨릴 수 없어 마침내 그 어미에게 돌려주었다. 그 어미가 물건으로 싸서 따뜻한 곳에 두니 한 사내아이가 껍질을 깨고 나왔는데 골격과 겉모습이 빼어나고 기이하였다.

3주몽이 물고기와 자라의 다리를 건너다

年甫七歲,嶷然異常,自作弓矢,射之,百發百中。扶餘俗語,善射爲朱蒙,故以名云。金蛙有七子,常與朱蒙遊戯,其伎能皆不及朱蒙。其長子帶素言於王曰:「朱蒙非人所生,其為人也勇,若不早圖,恐有後患,請除之。」王不聽,使之養馬。朱蒙知其駿者,而減食令瘦,駑者,善養令肥。王以肥者自乘,瘦者給朱蒙。後,獵于野,以朱蒙善射,與其矢小而朱蒙殪獸甚多。王子及諸臣又謀殺之。朱蒙母陰知之,告曰:「國人將害汝。以汝才略,何往而不可?與其遲留而受辱,不若遠適以有為。」朱蒙乃與鳥伊烏伊、摩離、陜父等三人為友,行至淹淲水,欲渡無梁,恐爲追兵所迫,告水曰:「我是天帝子,河伯外甥。今日逃走,追者垂及如何?」於是,魚鼈浮出成橋,朱蒙得渡,魚鼈乃解,追騎不得渡。

나이 겨우 일곱에 남달리 뛰어나 스스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쏘니 백 번 쏘아 백 번 맞혔다. 부여의 세속 말에 활 잘 쏘는 것을 주몽이라 하므로 그것으로 이름 지었다 한다.

금와에게 일곱 아들이 있어 늘 주몽과 함께 놀았는데 그 재주가 모두 주몽에 미치지 못하였다. 그 맏아들 대소가 왕에게 말하였다. "주몽은 사람이 낳은 바가 아니요 그 사람됨이 용맹하니, 만약 일찍 꾀하지 않으면 뒷걱정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없애기를 청합니다." 왕이 듣지 않고 그에게 말을 기르게 하였다.

주몽이 그중 준마를 알아보고 먹이를 줄여 여위게 하고, 둔한 말은 잘 먹여 살찌게 하였다. 왕이 살찐 것은 스스로 타고 여윈 것을 주몽에게 주었다. 뒤에 들에서 사냥할 때 주몽이 활을 잘 쏜다 하여 화살을 적게 주었으나, 주몽이 잡은 짐승이 매우 많았다.

왕자와 여러 신하가 또 죽이기를 꾀하였다. 주몽의 어머니가 가만히 이를 알고 알렸다. "나라 사람이 장차 너를 해치려 한다. 너의 재주와 꾀로 어디를 간들 안 되겠느냐. 머뭇거리다 욕을 받느니 멀리 가서 큰일을 하는 것만 못하다."

주몽이 이에 오이·마리·협보 등 세 사람과 벗이 되어 가다가 엄호수에 이르렀는데, 건너려 하나 다리가 없고 뒤쫓는 군사에게 다그침을 받을까 두려워 물에 고하였다. "나는 천제의 아들이요 하백의 외손이다. 오늘 달아나는데 뒤쫓는 자가 곧 미치려 하니 어찌하랴."

이에 물고기와 자라가 떠올라 다리를 이루니 주몽이 건널 수 있었고, 물고기와 자라가 이내 흩어져 뒤쫓는 기병은 건너지 못하였다.

협주 1

一名盖斯水,在今鴨綠東北。

일명 개사수(盖斯水)라 하니 지금 압록강 동북쪽에 있다.

4졸본에 도읍하고 고구려라 하다

朱蒙行至毛屯谷,遇三人:其一人着麻衣,一人着衲衣,一人着水藻衣。朱蒙問曰:朱蒙問曰:「子等何許人也,何姓何名乎?」麻衣者曰:「名再思」,衲衣者曰:「名武骨」,水藻衣者曰:「名默居」,而不言姓。朱蒙賜再思姓克氏;武骨仲室氏;默居少室氏。乃告於衆曰:「我方承景命,欲啓元基,而適遇此三賢,豈非天賜乎?」遂揆其能,各任以事,與之倶至卒本川。觀其土壤肥美,山河險固,遂欲都焉。而未遑作宮室,但結廬於沸流水上,居之。國號高句麗,因以高爲氏。時,朱蒙年二十二歲,是漢孝元帝建昭二年,新羅始祖赫居世二十一年甲申歲也。

주몽이 가다가 모둔곡에 이르러 세 사람을 만났다. 하나는 삼베옷을 입고, 하나는 기운 옷을 입고, 하나는 마름풀 옷을 입었다.

주몽이 물었다. "그대들은 어떤 사람인가. 성은 무엇이며 이름은 무엇인가." 삼베옷 입은 이가 말하였다. "이름은 재사입니다." 기운 옷 입은 이가 말하였다. "이름은 무골입니다." 마름풀 옷 입은 이가 말하였다. "이름은 묵거입니다." 그러나 성은 말하지 않았다.

주몽이 재사에게는 극씨, 무골에게는 중실씨, 묵거에게는 소실씨 성을 내렸다. 이에 무리에게 알려 말하였다. "내가 바야흐로 큰 명을 받아 으뜸 터를 열고자 하는데 마침 이 세 어진 이를 만났으니 어찌 하늘이 주신 것이 아니겠는가."

마침내 그 재능을 헤아려 각각 일을 맡기고 함께 졸본천에 이르렀다. 그 흙이 기름지고 아름다우며 산과 물이 험하고 굳은 것을 보고 마침내 도읍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미처 궁실을 지을 겨를이 없어 다만 비류수 가에 오두막을 얽어 살았다. 나라 이름을 고구려라 하고 이로 말미암아 고(高)를 성씨로 삼았다.

그때 주몽의 나이 스물둘이니 한나라 효원제 건소 이년이요 신라 시조 혁거세 이십일년 갑신년이다.

협주 3

《魏書》云:「至普述水。」

『위서』에는 "보술수에 이르렀다" 하였다.

《魏書》云:「至紇升骨城。」

『위서』에는 "흘승골성에 이르렀다" 하였다.

一云:朱蒙至卒本扶餘,王無子,見朱蒙知非常人,以其女妻之,王薨,朱蒙嗣位。

이르기를, 주몽이 졸본부여에 이르렀는데 왕이 아들이 없어 주몽을 보고 예사 사람이 아님을 알아 그 딸을 아내로 주었고, 왕이 죽으매 주몽이 자리를 이었다고도 한다.

5송양과 재주를 겨루다

四方聞之,來附者衆。其地連靺鞨部落,恐侵盜為害,遂攘斥之,靺鞨畏服,不敢犯焉。王見沸流水中,有菜葉逐流下,知有人在上流者。因以獵往尋,至沸流國。其國王松讓出見曰:「寡人僻在海隅,未嘗得見君子,今日邂逅相遇,不亦幸乎!然不識吾子自何而來。」答曰:「我是天帝子,來都於某所。」松讓曰:「我累世為王,地小不足容兩主,君立都日淺,為我附庸,可乎?」王忿其言,因與之鬪辯,亦相射以校藝,松讓不能抗。

사방에서 이 말을 듣고 와서 붙는 이가 많았다. 그 땅이 말갈 마을에 잇닿아 침노와 도둑질의 해가 있을까 두려워 마침내 물리쳐 내치니, 말갈이 두려워 복종하여 감히 범하지 못하였다.

왕이 비류수 가운데 나물잎이 흘러 내려오는 것을 보고 위쪽에 사람이 있는 줄 알았다. 이로 인하여 사냥하며 찾아가 비류국에 이르렀다. 그 나라 왕 송양이 나와 보고 말하였다. "과인이 바다 모퉁이에 치우쳐 있어 일찍이 군자를 보지 못하였는데, 오늘 뜻밖에 서로 만났으니 또한 다행이 아닌가. 그러나 그대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겠다."

답하였다. "나는 천제의 아들이니 아무 곳에 와서 도읍하였다."

송양이 말하였다. "나는 여러 대 왕이 되었는데 땅이 좁아 두 임금을 담기에 넉넉하지 못하다. 그대가 도읍을 세운 날이 얕으니 나의 딸린 나라가 됨이 옳지 않겠는가."

왕이 그 말에 성내어 이로 말미암아 그와 다투어 따지고 또 서로 활을 쏘아 재주를 견주니 송양이 맞서지 못하였다.

6이년 — 다물도를 두다

二年,夏六月,松讓以國來降,以其地為多勿都,封松讓為主。麗語謂復舊土為「多勿」,故以名焉。

이년 여름 유월에 송양이 나라를 들어 와서 항복하므로 그 땅을 다물도(多勿都)로 삼고 송양을 봉하여 주인으로 삼았다. 고구려 말에 옛 땅을 되찾는 것을 '다물'이라 하므로 그것으로 이름 지었다.

7삼년 — 성곽과 궁실을 짓다

三年,春三月,黃龍見於鶻嶺。秋七月,慶雲見鶻嶺南南,其色靑赤。四年,夏四月,雲霧四起,人不辨色七日。秋七月,營作城郭宮室。

삼년 봄 삼월에 누런 용이 골령에 나타났다. 가을 칠월에 경사스러운 구름이 골령 남쪽에 나타났는데 그 빛이 푸르고 붉었다.

사년 여름 사월에 구름과 안개가 사방에서 일어나 이레 동안 사람이 빛깔을 가리지 못하였다. 가을 칠월에 성곽과 궁실을 지었다.

8육년 — 행인국을 치다

六年,秋八月,神雀集宮庭。冬十月,王命烏伊、扶芬奴,伐太白山東南荇人國,取其地,為城邑。

육년 가을 팔월에 신령한 참새가 궁 뜰에 모였다. 겨울 시월에 왕이 오이와 부분노에게 명하여 태백산 동남쪽 행인국을 치고 그 땅을 빼앗아 성읍으로 삼았다.

9십일년 — 북옥저를 없애다

十一年,秋九月,鸞集於王臺。冬十一月,王命扶尉猒伐北沃沮,滅之。以其地爲城邑。

십일년 가을 구월에 난새가 왕대에 모였다. 겨울 십일월에 왕이 부위염에게 명하여 북옥저를 쳐서 없애고 그 땅을 성읍으로 삼았다.

10십사년 — 동명왕이 세상을 뜨다

十四年,秋八月,王母柳花薨於東扶餘。其王金蛙以太后禮,葬之,遂立神廟。冬十月,遣使扶餘饋方物,以報其德。十九年,夏四月,王子類利自扶餘與其母逃歸。王喜之,立為太子。秋九月,王升遐,時年四十歲。葬龍山,號東明聖王。

십사년 가을 팔월에 왕의 어머니 유화가 동부여에서 죽었다. 그 왕 금와가 태후의 예로 장사 지내고 마침내 신묘를 세웠다. 겨울 시월에 사신을 부여에 보내어 그 지방 산물을 보내 그 덕에 갚았다.

십구년 여름 사월에 왕자 유리가 부여에서 그 어머니와 함께 달아나 돌아오므로, 왕이 기뻐하여 세워 태자로 삼았다.

가을 구월에 왕이 세상을 뜨니 그때 나이 마흔이었다. 용산에 장사 지내고 동명성왕(東明聖王)이라 하였다.